Self-pity / D. H. Lawrence
I never saw a wild thing
sorry for itself.
A small bird will drop frozen dead from a bough
without ever having felt sorry for itself.
자기연민 / D. H. 로렌스
자기를 측은하게 여기는
야생의 것을 난 본 적이 없다.
한 마리 작은 새는 자기를 측은해 하는 일없이
가지에서 얼어 죽어 떨어지리라.
■ 작품읽기 ■
예기치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시를 만날 때가 있다. 낯익은 시라면 예전에 어설프게 경험했던 감동에 구체적인 세월의 무게를 차분히 얹어 주었으면 좋겠고, 혹 그런 겸허한 계몽의 순간이 없더라도 괜찮다. 이런 조우는 옛 친구를 만난 것 같은 흥분과 떨림을 주기에 그 자체로 유쾌한 일이다. 하지만 우연히 맞닥뜨린 시가 난생 처음 보는 시일 경우 우리의 지적 감수성은 종종 판단유보 상태에 빠지기 쉽다. 시가 우리 삶으로 뛰어든 상황과 조건이 시의 의미를 단선적으로 해석하도록 종용할 가능성을 우리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경계하기 때문일 것이다.
D. H. 로렌스는 시인, 소설가, 비평가로서 두루 출중한 인물이었지만 필자에게 「자기연민」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것은 그의 시집이 아니라 『G. I. 제인』이라는 헐리우드 영화였다. 사실 헐리우드 감독들이 시를 영화의 중요한 장치로 사용하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억압받지 않는 시정신과 그런 삶의 길을 제자들에게 일깨워주려 했던 한 선생님의 이야기인 『죽은 시인의 사회』는 관객에게—월트 휘트먼이 노예 해방자 링컨에게 헌사했던—「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을 감동적으로 기억시킨다. 감옥의 높은 담이 아니라 오로지 두려움만이 인간 영혼을 구속시킨다는 주제를 담고 있는 『쇼생크 탈출』에서, 탈옥한 주인공이 만기 출소할 흑인 친구를 위해 편지를 숨겨둔 허물어진 돌담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담장 고치기」를 선명하게 연상시킨다. “나”와 “너” 사이에는 반드시 견고한 담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배타적 이기심 고발하는 프로스트의 시는 희망을 통한 경계의 무너짐을 말하는 이 영화의 실존적 메시지와 얼추 잘 어울린다.
그런데 필자에게 「자기연민」을 알게 해준 『G. I. 제인』은 앞의 두 영화와는 격이 다른 영화다. 예술성과 작품성은 접어두더라도, 도대체 시가 비집고 들어갈 만한 자리가 선뜻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는 헐리우드의 대중적인 단골메뉴 중의 하나인, 그래서 다분히 식상한, 특수부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주인공이 여자라는 점이다. 훈련교관은 "고통은 네 친구"라는 말을 내뱉으며 이 여자대원을 가학적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잔인하게 취급한다. 실전보다 더 가혹한 훈련과 고문을 견디면서 주인공은 교관에게 극도의 분노와 적개심을 켜켜이 쌓아간다. 그러나 주인공이 마침내 모든 훈련과정을 마치고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귀환하자, 교관은 주인공의 옷장에 북마크가 된 시집을 한 권을 남겨놓는다. 그 접힌 쪽에 적혀있던 시가 바로 로렌스의 「자기연민」이다. 영화는 주인공의 애수어린 표정으로, 교관의 본심이 이 짧은 시에 응축되어 있으며 이 순간이 바로 화해와 감사의 순간임을 극적으로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폭력 장면이 난무한 영화를 시 한편으로 "깔끔하게" 갈무리하는 감독의 대담한 신파조 감성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충동을 울컥 느끼게 한 영화였다.
물론 감독 입장에서 시 한 편을 꼭 영화에 끼어 넣고 싶었다면 이 보다 더 적절한 시를 찾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연민"은 분명 전사에겐 가장 위험한 감정일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로렌스의 시와 이 영화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서로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겪는 좌절과 절망과 모멸감이 불러일으키는 자기연민의 유혹은 엄격히 말해 훈련과 임무를 자청한 주인공의 주체적인 선택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공에게는 스스로를 연민의 대상으로 삼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고, 감독이 로렌스의 시로 의도했던, 주인공과 "야생의 것인 "작은 새"와의 비유도 논리적으로 보면 어긋난 것이다.
「자기연민」은 아무 데나 함부로 끌어다 쓸 수 있는 호락호락한 시가 아니다. 길이로 보면 하이쿠처럼 작은 새의 깃털 하나도 되지 않지만 이 시가 독자의 마음에 남기는 여운은 서사시처럼 장엄하고, 비극처럼 처연하며, 선언문처럼 단호하다. 이 장엄함과 처연함과 단호함은 야생의 생명력을 완전히 압도할 수 있는 자연의 무심한 파괴력 앞에 "작은 새"가 전적으로 무력하다는 실존적인 절망의 상황에서 비롯된다.
바꾸어 말하면, "작은 새"는 자기연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동정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작은 새"는 그런 동정을 거부한다. 사실, 거부한다기보다는 "동정"이란 개념 자체를 모른다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자기연민은 언어로 감정을 필요이상으로 예민하게 만든 인간의 감성적 유희의 산물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의연한 삶의 태도에 있어서 인간이 "야생의 것"보다 열등한 것은 분명한 듯하다.
■ 작가소개 ■
D. H. 로렌스 (David Herbert Richards Lawrence) (1885~1930)
현대문명과 산업화로 초래된 인간 정신의 황폐화에 생명력 넘치는 감각적인 언어로 맞선 영국의 소설가 겸 시인 겸 비평가. 교육열이 남달랐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무식한 광부 아버지의 험악한 삶의 길을 따르지 않고 고향 광산촌에서 학교로 탈출했다. 한때는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 작가가 천직임을 깨닫고—허약한 체질과 불안정한 삶에도 불구하고—주옥과 같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자기 모교 대학 교수 부인과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고 결혼까지 한 사건은 당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성문제를 비롯한 전통적인 관습과 도덕에 대한 로렌스의 개방적인 생각은 그에게 많은 적들을 만들어냈고, 더 중요하게는 그의 작품이 갖는 진면목을 가리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채털레이 부인의 사랑』이 오랫동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시는 형식주의의 무게를 종종 과감하게 털어내면서, 그의 산문에서 보여주는 즉각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을, 때로는 거침없이 때로는 정교하게 표현한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