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net 66 | William Shakespeare
Tired with all these, for restful death I cry:
As to behold desert a beggar born,
And needy nothing trimmed in jollity,
And purest faith unhappily forsworn,
And gilded honour shamefully misplaced,
And maiden virtue rudely strumpeted,
And right perfection wrongfully disgraced,
And strength by limping sway disabled,
And art made tongue-tied by authority,
And folly (doctor-like) controlling skill,
And simple truth miscalled simplicity,
And captive good attending captain ill.
Tired with all these, from these would I be gone,
Save that to die, I leave my love alone.
소네트 66 |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 모든 것에 지쳐 나는 휴식 같은 죽음을 원하노라.
미덕이 가난뱅이로 태어난 걸 보고,
옹색한 하찮음이 화사하게 치장한 걸 보고,
순전한 신념이 비참하게 버림받는 걸 보고,
황금빛 명예가 부끄럽게 잘못 주어진 걸 보고,
처녀의 정조가 무참하게 매춘당하는 걸 보고,
참된 탁월함이 부당하게 욕먹는 걸 보고,
강인함이 절름발이 통치에 꺾여 불구가 되는 걸 보고,
예술이 권력에 혀가 묶이는 걸 보고,
우둔함이 (의사인양) 노련함을 제어하는 걸 보고,
소박한 진리가 촌스러움으로 오해받는 걸 보고,
사로잡힌 선이 악한 적장을 시중드는 걸 보고.
이 모든 것에 지쳐 나는 떠나려 하노라,
죽어서 내 사랑을 홀로 남기는 게 아니라면.
[작품읽기]
셰익스피어는 모두 154편의 소네트를 썼지만 그 중 몇 편만이 잘 알려져 있을
뿐, 대부분은 독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거기에는 극작가로서의 셰익스
피어의 인상이 너무 강한 탓도 있겠고, 셰익스피어하면 일단 어렵다는 선입견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셰익스 피어가 시도 썼냐고 반문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만, 그의 시가 어려워서 읽지 않는다고 한다면 왠지 어설픈 변명처럼 들린다. 학
자에 따라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어림잡아 말하면, 그의 시가 그의
드라마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다.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를 제대로 즐기려면 적지
않은 사전 지식이 필요한 데 반해, 소네트의 경우는 그런 것이 필요 없다. 그냥
읽으면 된다.
66번 소네트는 셰익스피어의 시가 난해할 것이라는 대중적인 지레 짐작이
정당한 판단이 아님을 증명하는 좋은 예가 된다. 원문을 보건 번역문을 보건 이
시는 웬만한 설명 정도는 가당찮은 사족으로 전락시킬 정도로 명쾌하다. 따라
서 여기서는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만한 주변적인 얘기를 주로 하고자 한다.
셰익스피어가 작품 활동을 했던 16, 17세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때로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그와 그의 동시대 작가들은 언제나 검열을 신
경 써야 했으며, 실제로 적지 않은 수의 작가들이 당국에 잡혀가 취조를 받거나
고문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예외였다. 그
는 모든 암초들을 기가 막히게 피해갔다. 셰익스피어는 지배 권력의 심기를 불
편하게 하는 작가가 아니었다. 은퇴하여 고향에서 숨을 거두는 날까지 그는 승
승장구했다. 작금의 대한민국의 정치적 언어를 빌면 그는 ‘우익작가’였다. 그
러나 셰익스피어를 권력과 시대이데올로기에 철저하게 순응하고 봉사했던 작
가라고 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그의 드라마는 여러모로 정치적이고, 곳곳
에 체제 비판의 흔적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떤 해도 입지 않
았으니 이는 그리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
명한 것은 그에게는 자신의 작품이 드러내는 민감한 정치성을 능숙하게 위장하
는 탁월한 언어구사 능력이 있었다.
66번 소네트는 지배 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거슬리는 요소가 참 많은 시다.
화자는 자신이 최소한의 삶의 의욕조차도 짓밟아 버리는, 공평과 정의가 실종
된, 지긋지긋한 곳에 살고 있다고 부르짖는다. 화자가 분노하는 것은 우발적이
고 개인적인 악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
해 있는 악이 구조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정점에는 부패한 권력이 자리 잡
고 있다. 화자는 이런 거대한 악의 창궐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그래서 화자는
편안한 죽음을 원한다.
그러나 화자는 시의 마지막에서 대반전을 모색한다. 사랑하는 이를 악의 소
굴에 남겨 놓고 홀로 떠날 수는 없다고 선언한다. 악이 기쁘게 바라마지 않을
나약한 죽음에의 욕망이 사랑하는 이의 존재로 말미암아 의미 있는 생존의 에
너지로 바뀌는 것이다. 화자가 말하는 “내 사랑”은 특정한 개인일 수도, 그가
사랑하는 또는 그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의 집단일 수도 있다. 이제 화자에게
남겨진 의무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악한 세상의 영향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이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그저 그들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는 그 책임을 완수
할 수 없다. 싸워야 한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사랑의 가치를 정의와 공동체적 선의 문제로 인식한 이 시가 154편의 소네
트 중 하나로 몸을 낮추고 숨어버린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사악한 권력
과 이데올로기는 사랑을 단지 낭만적인 사적 감정의 문제라고, 소네트는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우리는 그런 자들
을 비웃는다.
[작가소개]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영국의 시인 겸 극작가. 일천한 교육과 그와 대조되는 놀라운 작가적 역량 때문에 살아
서는 존경과 질투, 죽어서는 간단없는 숭배와 간헐적인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에 관한
전기가 아직도 많이 쓰여 지고 있지만, 그에 관해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여전히 그리 많
지 않다. 작품 외에 그가 쓴 글로 확인된 것으로는 그의 유서가 거의 유일한데, 그 유서
어디에도 위대한 작가의 흔적이 엿보이지 않는다. 보르헤스는 그의 한 단편소설에서 셰익
스피어는 평생 자신이 무엇인가란 문제를 놓고 고뇌했으며, 그래서 자신의 흔적을 의도적
으로 지운 것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