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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부님 전 상서

작성자림보|작성시간13.05.29|조회수78 목록 댓글 3

 

 

조부님 전 상서

 

                                                                   임 보

 

조부님, 지내시기 어떠하옵신지요?

이미 옥체를 두고 떠나신 지 50성상이 넘었으니,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신지 여쭙기도 민망할 따름입니다.

소손(小孫)이 스물다섯 되던 해 조부님께서는 희수(喜壽)의 춘추를 겨우 넘기시고 이승을 하직하지 않으셨던가요?

와병 중에 계시던 당신께서는 군에서 막 제대하고 서둘러 돌아온 소손의 손을 잡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독자인 아버지는 저 하나 낳아 놓고 공부하겠다고 타국으로 떠나 소식이 끊겼지요.

그러자, 며느리인 제 어머니가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가야만 했으니 산골의 삶이 얼마나 팍팍하셨겠습니까?

그러니 어린 손자에게 정을 붙이고 지내셨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설이면 부드러운 왕골속으로 미투리를 곱게 삼아 신겨 주시고, 인동의 잔칫집에 출타하실 때는 저를 즐겨 데불고 다니셨지요.

 

조부님께서는 소손이 네댓 살 되면서부터 사랑에서 함께 지내도록 하셨습니다.

어린 제가 조부님 꾸중을 들어가며『추구(推句)』(좋은 시구들을 뽑아 엮은 어린이 교재)를 익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늦은 밤 꾸벅꾸벅 졸며 더듬거리고 읽는 손자를 깨우느라 장죽으로 재떨이를 두드리기도 하셨습니다. 그때 익혔던 몇 구절들이 아직도 제 뇌리에 생생하옵니다.

 

     狗走梅花落(구주매화락) : (개가 달려가매 매화꽃이 떨어지고)

     鷄行竹葉生(계행죽엽생) : (닭이 걸어가매 댓잎이 돋아나는도다)

 

눈 덮인 마당 위에 생겨난 개의 발자국을 매화꽃이라 이르고, 닭의 발자국을 댓잎이라 표현한 것이 아주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글이란 참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손이 한평생 시와 더불어 살게 된 것은 어쩌면 조부님께서 익혀 주신 이 몇 구절의 시문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옵니다.

 

우리 집이 종가인 터라 제사 모시는 일이 잦았지 않습니까?

조부님께서는 소손이 십여 살에 이르자 어린 제게 붓을 들려 지방(紙榜)이며 축문(祝文)을 쓰도록 가르치셨지요.

무슨 말인지 뜻도 모르면서 옮겨 적던 제가 언젠가 ‘顯考學生府君(현고학생부군)’의 그 ‘學生府君’이 무슨 뜻이냐고 여쭈워 보았지요.

그랬더니 조부님께서는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그 뒤 증조부 고조부 그 윗대에 이르기까지 다 ‘학생부군’임을 알고 저으기 불만스러웠습니다.

고백컨대 차마 말씀드리진 못했습니다만 벼슬자리 하나 얻지 못한 조상님들이 민망스럽게 생각되었던가 봅니다.

 

조부님, 그런데 이 모자란 소손이 나이 들어 세상의 물정을 차차 알아가게 되면서 ‘벼슬’이라는 것이 맑은 선비가 가까이 해서는 아니 될 자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조상들께서 ‘학생부군’이심이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겨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시 공부와 더불어 학문의 길에 들어 학위를 얻기는 했습니다만 평생 학교에서 학생들이나 가르치며 지냈을 뿐, 벼슬길에 오른 적 없으니 선조님들께 크게 누된 삶은 아닌 것 같사옵니다.

 

그런데 조부님, 매일 밤 먹을 갈아 열심히 쓰고 고치고 하시던 그 많은 시고(詩稿)들은 다 어디에 두셨습니까?

조부님 장의(葬儀)를 지내고 난 뒤, 조부님의 유물과 서책들을 정리하면서 찾아보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가 군에 있을 때 조부님께서는 스스로 임종이 머지않음을 예감하시고 묵적(墨迹)들을 손수 다 지우신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숙연키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아호를 ‘후은(後隱)’이라 칭하신 깊은 뜻을 헤아리게도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조부님, 지금 소손의 책상머리에는 조부님의 율시 1편과 절구 3편이 액자 속에 담겨 걸려 있습니다.

책갈피 속에 몰래 숨어 수난을 면한 시편을 가까스로 찾아낸 것입니다.

율시는 회갑연을 맞으실 때의 감회이고, 절구들은 흉년을 겪으시며 느낀 안타까운 심경을 읊으신 것으로 사료됩니다.

소손은 조부님이 남기신 이 단아한 필적을 수시로 바라보며 조부님을 뵙듯 옷깃을 여미곤 하옵니다.

 

조부님, 소손의 나이도 어느 덧 조부님 떠나시던 햇수에 가까워 가고 있습니다.

요즘 거울을 들여다보면 제 얼굴 속에서 희미하게 조부님의 신관이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일찍이 고향을 떠나 천리 밖 타향에 자리 잡은 지 반 세기가 넘습니다.

조부님 산소 가까이 지키지 못한 이 소손의 불효 용서받을 길이 없사옵니다.

곡성(谷城) 죽촌(竹村)의 산자락에 홀로 계시니 얼마나 적적하시겠습니까?

생전에 사시던 등구정(登龜亭) 마을도 멀리 보이시나요?

송림 사이로 보성강 물빛이라도 내려다보이면 덜 외로우시련만…….

전할 길 없는 이 글 올리면서 불효 소손 천리 밖에서 엎드려 우옵니다.

                                                                                  <에세이21> 2013.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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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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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홍예영 | 작성시간 13.05.30 문자향이 그득한 집안이시네요...일생을 배우고 익히다 돌아가다, 를 생각해 보는 아침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림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5.30 조부님께서는 큰 학자는 아니셨습니다만 농사일은 손방이신 선비셨습니다.
  • 작성자박원혜 | 작성시간 13.06.14 글이 왜이리 슬플까요..아버지 대신 할아버지를 부르시는 님의 마음에 울컥 목이 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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