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추모시/글/시인론

백숙천 시인 추모특집 (2015년 9월호)

작성자여 백|작성시간15.07.01|조회수235 목록 댓글 0

 

 

 

 

 ■ 백숙천 시인 추모의 글



                                금강석처럼 반짝이기를
                                


                                                            임보(시인)




  백숙천 시인이 지난 정초에 세상을 떴다. 고희의 나이에 접어들지도 못하고 아쉽게 갔다. 수년 전에 북한강변 그의 별저에 갔을 때 가평에 전원주택을 짓고 있다고 했다. 완공이 되면 초대를 하겠노라고 약속을 했는데 그 뒤 소식이 끊어지더니 부음을 맞게 되었다. 아마도 투병을 하면서 세상과 교류를 끊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백 시인을 내가 처음 만난 것은 15,6년 전쯤이 아닌가 싶다. 대학로의 한 문학행사 뒤풀이 장소에서 이태리 가곡을 구성지게 잘 부른 여인이 있었다. 키는 작은데 야무진 느낌을 주는 명랑한 여인이었다. 그가 바로 백숙천 시인이었는데 시중의 문인들 사이에는 익히 잘 알려진 활달한 여류였다. 나는 지나가는 말로 우이동시낭송회에서도 백 시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녀는 선뜻 그러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다음 우이동시낭송회에 참석했고, 약속처럼 노래를 들려주었고, 이어서 우이시회의 회원으로 선뜻 동참하게도 되었다.

  우이시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그녀는 부군 이재명 선생으로 하여금 우이시회의 후원자가 되게 하면서도 그 일을 세상에 드러내기를 꺼려했다. 뿐만 아니라 백 시인은 우이시회가 어렵게 지내는 사정을 알고 사무실 임대료로 적잖은 후원금을 쾌척하면서도 일체 알리기를 마다했다. 
  부군 이재명 선생 회고록에 의하면 백숙천 시인은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돕고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교회에서 만난 탈북 청년이 미국 유학을 갈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고, 형편이 어려운 시인에게 매달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가 하면, 가난한 화가가 외국에 전시회를 할 때 비행기표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세상을 떠나면서는 본인이 저축해 놓은 돈을 한 기독교 공동체에 헌금하라는 유언을 남기었다.
 문학행사가 끝난 뒤엔 적지 않은 문인들이 그가 마련한 제2차 주석에서 그의 노래를 들으며 늦은 밤까지 흥겹게 놀기도 했으리라.

  백 시인은 초등학교 때의 글짓기 대회며 중·고등학교 시절의 각종 백일장에 나가 많은 수상을 한 바 있다. 대학 시절엔 미당 서정주 시인의 사랑을 받으며 시 공부를 했는데 등단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40이 넘은 뒤에야 문단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시작 활동을 재개했다.
  그녀는 시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재능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때는 무용부에서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고, 중학교 때는 수영선수로 전국체전에 출전도 했으며 미술과 음악에도 관심이 적지 않았다. KBS 어린이 합창단원으로 활동했고 교회 성가대에서 꾸준히 노래를 해 왔다.
  그녀는 예술 전반에 걸쳐 타고난 예술적인 끼와 재능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그랬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시를 선택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녀는 인정이 많고 명랑하며 의로운 성품을 지녔다. 한편 못마땅한 일을 보면 거침없이 비판하고 쏘아붙이는 곧은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백 시인은 1987년 《심상》을 통해 등단한 후 『마음 한자락』 『그대, 무지개새』 『짜투리산, 아카시아 하얗게 오르고』 등 세 권의 시집을 간행했다. 그리고 유고시집 『금강석 화장법』(문학아카데미, 2015)이 얼마 전 출간되었다. 유고시집에 실린 「금강석 화장법」을 읽으며 그의 명복을 빌고자 한다.

서글플 땐
갈색 연필로 눈화장해 봐
어둠직한 그림자에 드리워져
잔잔히 출렁이게

서글프고 서글플 땐
녹색 연필로 눈화장해 봐
나뭇잎 모두 갈매새로 날려
푸른 노래 울창하게

서글픔보다 더 서글퍼서
비명 샐 땐 활활 타는 듯이
붉은 연필로 눈화장해 봐
붉게 태워 세상 하얗게 시리게

어여쁜 너
때로는 까맣게 화장해 봐
아무도 볼 수 없는 칠흑 속에

홀로 금강석
빛난다. 
─ 「금강석 화장법」 전문, 백숙천 시집 『금강석 화장법』

  시를 쓰는 일은 어쩌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화장 행위일지로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슬픔을 달래는 화장, 슬픔이 짙을수록 더 짙게 화장을 하다보면 결국 칠흑에 이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존재는 드디어 어둠을 배경으로 금강석처럼 빛난다고 노래한다. 곤경과 절망이 우리를 견고하게 한다는 잠언과 같은 시다.
  백숙천 시인은 떠나갔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과 그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들이 이 세상에 남아서 금강석처럼 반짝이기를 바란다.



비둘기 구구구 외 9편


백숙천



덫에 비둘기 발목이 잡혔다
발목의 혈도를 묶어
잘려져 나간 발가락

피오른 눈알 대롱거리며
보랏빛 육교 아래 웅크리고 있다
비둘기는 무엇을 먹고 살까
서울의 비둘기는 어디서 잘까
잘리고 떨군 깃의 저
비둘기는 날 수 있을까

비둘기를 안고
예수가 울고 있다
구, 구, 구,
구하라
구세주
구원해 달라.



눈을 뜨니



하루 자고나니 허벅지에 꽃 피었네

십오일 바이러스 잠복기간 동안 뿌리 내려

싹 트고 잎이 자라서 여문 꽃

씨알 맺었네

바늘 꽂는 듯한 바이러스 촉수마다

저미는 듯 저미는 듯한 아픔에 진저리치네

몸뚱이도 한 송이 꽃

뉘의 손질에 의해 피고 지고 열매 맺고 있음을

알게 되었네

연연한 가시와 애틋한 향기로 하여

고통을 겪으시는 그분 뜻을 알 것도 같았네.



내가 꽃이었다



꿈인데요
내 살던 건물 옥탑에
깃발 나부끼고 있었어요
가까이 보니 엉겅퀴꽃 붉은 나래
내 영혼이었어요

꽃향기에 취했어요

옥빛 바람 속
꽃들이 저마다
몽오리 몽오리 피어나는 밤

꽃이 된 내 영혼을 지켜보았어요.



투명 손톱



불빛 아래 문득
투명 손톱의 무채색
잔잔히 꽃빛 어린다

손가락마다 빛나는
투명의 삼광체 뼈

손톱을 다듬는다

나의 DNA

꽃빛으로
투명하다.



해바라기 산책



보기 좋고 향기 좋은 공원

활짝 핀 꽃이여

여기 저기 농염의 꽃 이파리들 하르르……

이 아침 흙 향기 이는 안개

바람 따라 달리다가

피고 지고 움 돋는다

이 발랄한 삶의 산책

해맞이 해 바라기

해바라기

감사하기다, 이뻐하기다.



이슬 잡기 2



해맑은 방

조그만 알갱이들

재잘대는 동그란 방

마알간 물알갱 오종종 모여 산다

실바람 지나가고 씻은 듯 빛나는 해

죽지 펴듯 찬란한 빛

이 설레임의 떨림 보셔요

해가 맑은 방 속에서 빛나네요

참 황홀한 빛 해맑은 방이네요.



겨울 청솔



바람 없는 겨울 산기슭 둔턱

푸석한 땅

들떠 걷다 보니

우듬지에

언 하늘 이고 내려오는 청솔

야윈 어깨 남루 걸치시고 허이연 입김

머리 깊숙이 조아려 인사한다

마주친 눈빛 참 따스하시다.



참 아름다운 세상



세상은 하늘 아래 보화 창고야

누군가를 사모한다 기다린다 하면

싱그러운 오월 에메랄드 신록이야

누군가 그리다 사랑에 빠진다면, 그대는

해저 따라 낭창이는 사파이어야

암청색 날리는 빛살이야

기다린다 사모한다 사랑한다

믿음의 그대, 어둔 하늘 보석상자야

번쩍 솟구는 핏빛 루비야

참 아름다운 세상, 눈부신 그대

천지 밝은 해야.



얼음 시편



강가

마른 풀과 풀 사이 빈 가지 사이 파아릇 얼음 앉을 때

어여뻐라

바람의 발자국 따라

흰 비오리 깃털 같은

얼음뼈 바늘,

앙상한 숲 담궈 흐르는 강물의 살을 꿰매고 있다

꿰맬수록 푸르게 날 서는

물결 따라 하늘 이불 덮고 간다

살 이불 들쳐 보는 아침

햇살 밝고 곱게 수놓겠다.



둥근 것은 아름답다



들을 날아가는 공을 보았다
둥근 것은 품위가 있다

딱딱한 것이나 부드러운 것이나
리듬을 품고, 현태를 품고, 색채를 품었다

뒹구르며 보는 마음 둥글둥글 돌리는
원심력
그 어느 꼭두에도 잡아 맬 수 없다

둥근 것은 아름답다
구심점 안에 참 모습을 감추고 있다

창공을 향해
팡팡 튀어 오르는 상징,
있는 힘을 다해 드라이버 휘날린다

나를 박차고 날아오른다.

* 비둘기 구구구 외 9편은 유고시집 『금강석 화장법』에서 발췌하였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