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
ㅡ 김혜천의 시 읽기
김예태(시인, 문학박사)
김혜천 시인이 첫 시집을 내면서 <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라는 파격적인 수사를 시집의 표제어로 사용하였다. 물론 ‘비문’이 성문화를 위한 문장 요건의 부적합을 의미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시인이 시적 대상에 대한 사변적인 인식에 있어서 비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서 그의 시들은 주어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의 수용을 거부하는 의식에서 출발하여, 끊임없이 순환되는 변증법적인 사유를 거쳐서 마침내 비수용의 문제적 현상을 극복했을 뿐만 아나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비문’으로 통칭 될 수 있는 그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을까.
또 ‘비문’을 극복하려는 그의 노력은 어떤 사유의 과정을 통해서 더 적극적으로 대상을 수용하는 의지를 보일 수 있었을까?
몽중에 나에게 온 이 문장은
선사시대를 헤엄쳐 온
해독되지 못한 아사 직전의 물고기
붉은 통점이 파닥파닥 잠을 깨운다
멈춰버린 농담처럼 행간 속에 가둔 비명의 날들
비늘처럼 달라붙은 남루를 벗긴다
쓰나미 잠들고
산란의 바다를 만날 때까지
그늘마다 검은 꽃이 무성하게 피었다
뻘밭에 꼼지락거리는 난해한 기호들
검은 꽃의 재해석은 묻어두기로 한다
낮을 되찾고 싶던
긴 밤의 서사를 비문으로 적는다
이제 거침없이
심해를 헤엄칠 수 있겠다
<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 > 전문 p18-19
위의 시는 시집의 서문이나 요약본처럼 시집의 중요한 부분을 함축하고 있다. 독자들은 시집의 첫 작품이자 표제시 이기도 한 이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 무척 솔직담백하다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바쁜 독자는 이 한 편으로 시집을 읽었다고 할 수도 있을 만큼, 여기에는 시적 화자의 상황과 문제의식, 그리고 문제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진화하는 의식의 단계, 나아가 작가의 시작 의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량이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시序詩와도 같은 그의 첫 시를 읽는 것으로 그의 시집에 대한 감상을 대신한다.
해독되지 못한 아사 직전의 물고기
붉은 통점이 파닥파닥 잠을 깨운다
멈춰버린 농담처럼 행간 속에 가둔 비명의 날들
비늘처럼 달라붙은 남루를 벗긴다
‘아사 직전의 물고기’, ‘행간 속에 가둔 비명’ 이런 상황이 ‘긴 밤의 서사’ 또는 ‘그늘마다 검은 꽃이 무성하게’ 핀 상황으로 정리될 수 있는데 이들은 이것들은 그냥 긴 밤이 아니라 "낮을 되찾고 싶던/ 긴 밤의 서사“들인 것이다.
이런 서사는 그의 시 속에서 첫행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흰나비가 나폴거리며 내리는 / 폐교 운동장”(화형식), “사막이라 써놓고 소용돌이에 갇힌 밤”(사하라), “남루한 옷을 걸치고/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아틀란티스) 등이 그렇다.
이런 상황은 소위 말해서 절대절명의 순간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시인은 이렇게 ‘검은 꽃의 서사’을 다양한 상황의 이미지들로 제시하여 보편성으로 인지될 수 있도록 독자적인 공감대를 형성해놓고 여기서부터 ‘비문’에 대하여 사유하기 시작한다.
쓰나미 잠들고
산란의 바다를 만날 때까지
그늘마다 검은 꽃이 무성하게 피었다
뻘밭에 꼼지락거리는 난해한 기호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 <바닥론>과 <폐허에서 오는 봄>을 읽어본다. 이 두 시에서 이루어지는 사유는 각각의 특수성으로 하여 몇 가지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① 이제 늪에 빠져 허우적대 본 사람은 안다/ 바닥이 얼마나 오르고픈 꿈인지
② 몸부림쳐 바닥에 올라본 사람은 안다/ 수없이 짓밟힌 바닥은 견고하다는 걸/ 다음 층계로 오르는 디딤돌이라는 걸
③그러므로 바닥은 / 끝이 아니라/ 스스로 이룩한 단단한 배경이다. (바닥론 부분)
① 지상에 발붙인 것들이 중력을 이겨낼 수 없어/ 어깨가 안으로 굽듯/ 날아가는 것에는 지친 영혼이 깃들어 있다
② 이쪽과 저쪽의 버티는 벽을 허무는 일은 / 살아있을 때의 일
③ 나선으로 뻗어 허물어져 가는/ 벽을 받치고 있는 고엽나무/ 그 아래를 지나가는 검정개의 충혈된 눈 (폐허에서 오는 봄 부분)
바닥론은 단계적 체험에 의한 경험론적 사유의 과정으로, 고통을 극복한 현실에 이르러서야 사유의 단계가 완성된다.
타자의 힘에 의해 좌절하는 사람은 그 좌절이 보여주는 힘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저항의 의지 투쟁의 의지다. ⟶ 이렇게 투쟁을 통해 무엇인가를 쟁취해본 사람은 타자가 주는 고통이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견고한 힘이며, 그 힘이 다음의 단계로 이르는 디딤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통은 끊임없이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배경이므로 시적 주체의 삶은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즉 바닥론은 주체에 작용하는 대상인 환경(객체)을 들여다보는 태도에서 온다.
그러나 <폐허에서 오는 법>은 이와 달리 환경(대상)에 적응해가는 주체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즉 의식과 대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들여다보는 거울 작용을 통해 자유 의식의 단계를 높여가면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다. 사변적 이해는 단번에 얻는 이해가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 진화되는 현상에서 변증법적인 순환을 통해서 도달하게 되는 사유다. 자연 세계가 항존할 수 있는 본질이 중력에 있듯이 인간의 생존은 자신의 내면에 본성으로 들어있는 자유를 자각하여 즉자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문의 설정은 시인이 시를 쓰는 행위를 통해 타자를 통한 자기 인식의 단계에 도달하려는 것으로, 이 비문은 끊임없는 자기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 안에서 창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검은 꽃의 재해석은 묻어두기로 한다
낮을 되찾고 싶던
긴 밤의 서사를 비문으로 적는다
이제 거침없이
심해를 헤엄칠 수 있겠다
시인은 ‘검은 꽃에 대한 재해석’을 묻어두겠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스로 해석 하는 순간 시적 의미의 변주와 확산은 정지되고 말 것이므로. 페소아는 “인생의 무게를 덜어주는 예술(시)의 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 힘이 예술에 의지하여 얻어지는 것이라는 말은 삼가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 찾아가는 진리나 구원, 신성과 같은 절대정신에서 오는 것으로 자유의식의 진보를 통해서 획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제 거침없이/ 심해를 헤엄칠 수 있겠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그가 문제의식을 갖기 이전과 이후에서 스스로의 세계인식의 단계가 크게 달라졌음을 뜻하고 있다. 그 증폭이 크면 클수록 독자들이 갖는 시적 감동은 커질 수밖에 없다.
김혜천 시인이 갑년을 넘기면서 출간한 첫 시집이 월여를 지나면서 2쇄를 찍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시인이 ‘비문’의 설정을 통해 시를 쓰는 의미를 분명히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성과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