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킹」을 『피로사회』의 관점에서 읽기
독일 철학자 Byung-Chul Han(한병철)의 저서 피로사회 는 현대인을 외부의 강제에 의해 억압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착취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마네킹」은 이러한 피로사회의 특징을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한병철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해야 한다"의 규율사회에서 "할 수 있다"의 성과사회로 전환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타인에 의해 강요받기보다 스스로 경쟁하고 자신을 계발하며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시 속 마네킹 역시 누군가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꾸민다.
"손때 묻은 몸을 문질러도 보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도 보고
몸뚱이를 거울에 비추어 본다"
이 장면은 자기계발과 자기관리의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 있다. 더 나은 모습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고 수정하지만 만족은 없다. 피로사회에서 인간은 타인을 착취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착취한다.
또한 시 속 마네킹은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호객한다"
오늘날 개인은 SNS, 직장,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항상 자신을 전시한다. 마네킹이 쇼윈도에 진열된 존재라면 현대인은 디지털 쇼윈도 속에 진열된 존재이다. 인정과 선택을 받기 위해 자신을 상품처럼 포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주체이면서 동시에 상품이 된다.
시의 핵심 정서는 불안이다.
"다음의 내일도 허탕이면 어떡하지"
"임금이 줄어들지도 몰라"
피로사회에서 인간은 실패를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실패의 공포는 더욱 커진다. 마네킹 역시 판매 부진의 원인을 사회구조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에서 찾으며 더 열심히 자신을 꾸민다.
특히 마지막 구절은 피로사회의 역설을 보여준다.
"나는 어제보다 높아진 진열대에 오른다"
높은 진열대는 성공과 승진의 상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더 많은 노출과 경쟁을 의미한다. 성과사회에서 성공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성과를 요구하는 출발점이다. 따라서 마네킹은 더 높은 곳에 올랐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피로하다.
종합적 해석
『피로사회』의 관점에서 「마네킹」은 자신을 상품화하며 끊임없이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마네킹은 억압받는 희생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관리하고 꾸미며 경쟁에 참여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 노력의 끝에는 해방이 아니라 더 높은 진열대와 더 큰 불안이 기다린다.
따라서 이 시는 단순한 소비사회 비판을 넘어, 한병철이 말한 "성과 주체의 자기착취", 인정 욕망, 만성적 피로와 불안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마네킹은 결국 쇼윈도 속 인형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인 셈이다.
*김정식 시인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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