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해봐야 허사라 말하지 말라」“Say Not the Struggle Naught Availeth” by Arthur Hugh Clough (1819~1861)
여국현(시인/영문학박사)
제 20대 대통령 선거가 60일(이 글이 인쇄 되어 나올 때면 30일이 되겠군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 당의 후보들은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고 있습니다. 국내외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끝날 줄 모르고 유행하는 펜데믹의 재앙 속에서 한 나라를 제대로 잘 인도할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 우리들의 한 표 한 표가 그만큼 소중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각 개인이 처한 정치적 입장에 따라 또는 개인적 선호도에 따라 지지하는 후보가 다를 터이긴 하겠지만 우리 각자가 지지하는 후보들이 없을 리 없겠지요. 지지하는 후보가 지지율이 높거나 낮거나에 따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지자들의 마음은 밝았다 흐렸다 하겠지요. 더러는 묵묵히, 더러는 직접적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어느 편이건 우리 각자가 지지하는 후보자가 당선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 당선자가 우리가 위임한 권력과 책임, 그에 따른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여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사회 공동체 전체의 선과 행복을 위해 올바른 능력을 지혜롭게 발휘할 사람이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대통령 선거건 혹은 사소한 개인들이나 집단의 일이건 한 사람 한 사람, 아니 나 하나의 전력을 다하는 일의 소중함을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개개인의 노력의 미미함과 헛됨을 담고 있기도 한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그 노력의 위대함을 함의하는 “한 방울의 물방울이 모여 바위를 뚫는다.” 같은 말들도 함께 생각해봅니다. 사실 얼마나 무모한 일일까요.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니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만큼의 시간을 한 없이 흘러야 한다는 건 얼마나 집요하고 쉼없는 노력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더러 우리가 지레 “에이, 나 하나 애써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하고 물러서거나 방관하기도 하는 까닭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 알고 있습니다. 개인의 삶이건 공동체의 시간이건 더 큰 인류의 역사든, 변화의 물결은 언제나 물러서지 않고, 방관하지 않고 기꺼이 계란을 던지고, 기꺼이 흐르는 물방울이 된 ‘하나’의 움직임과 ‘하나’의 걸음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번 달에는 아서 휴 클라프(Arthur Hugh Clough, 1819~1861)의 「투쟁해봐야 허사라 말하지 말라」“Say Not the Struggle Naught Availeth”를 읽습니다. 제목에서 이미 강렬하게 드러나듯 이 시는 ‘한 사람’의, ‘나 하나’의 방관과 비겁한 태도에 대한 꾸짖음이자 지레 단정하지 말라는 독려이기도 합니다. 클라프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세 살 때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아홉 살 때 다시 영국으로 오면서 영국의 유명한 사립학교인 럭비 스쿨Rubgy School에서 메튜 아널드의 부친인 토마스 아널드Thomas Arnold의 엄격한 교육을 받았지요. 나중에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매튜 아널드와 아주 가깝게 지내며 아널드 가문과의 관계를 이어갔으며, 고교회 운동(High Church Movement)--영국 국교회(성공회)에는 서방교회의 전통을 중시하던 고교회파와 개신교 전통을 중시하는 저교회파가 있었는데요, 성공회로 정교일치를 이루었던 영국에서 교회가 세속화되는 움직임에 반대하며 일어났던 종교개혁 운동이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신학교수들을 중심으로 벌어져다 해서 ‘옥스포드 운동Oxford Movement’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이 운동의 핵심은 국가가 교회에 간섭하는 것에 저항하여 교회의 독립성을 주장했으며, 초대 교부들의 교회이론을 새롭게 회복시키고, 교회 의식(전례)의 회복을 주장하면서 ‘소책자Tracts for Times’라는 소논문집에 자신들의 주장을 담아 유포했습니다. 이들의 운동을 ‘소책자운동Tractarian Movement’이라고 칭하기도 하는 까닭입니다.--에도 참여했다가 돌아섰으며, 영국 국교회의 교리를 가르치기를 거부하여 강사 직위도 박탈당하고 파리를 여행하면서 미국 초절주의 운동의 선구자인 시인-비평가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을 만나 그에게 깊은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이 시는 1848년 ‘차티스트 운동Chartist Movement’이 실패한 듯한 느낌을 받은 시기에 쓴 것이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차티스트 운동’은 19세기 영국을 이해하는 데는 물론, 전세계의 노동운동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 운동이고 이 시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도 필요한 것이니 잠시 소개하고 가겠습니다.
산업혁명의 절정기인 19세기 초반 영국의 노동자들은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없었으며 참정권마저 없었습니다. 그들의 격렬한 반발과 요구에 따라 1832년 선거법이 개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도시의 개별노동자들 모두에게 참정권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반발하여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고 이를 입법화 하기 위해 전개한 운동이 바로 ‘차티스트 운동’이었지요. ‘차트Chart’는 ‘법안, 헌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달리 말하면 ‘법안 만들기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운동에서 노동자들은 보통 선거, 비밀 선거, 선거구의 공평화, 의회 개선, 의원의 재산 자격 폐지, 의원 세비 지급 등의 인민헌장(People’s Charter)을 기치로 내걸고 광범위한 운동을 전개했지요. 1838년에서 1848년, 런던과 버밍엄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운동이 전개되어 수백만의 서명을 얻어 의회에 입법을 청원하였으며 일정한 성과도 없지 않았으나, 지도자들 사이의 분열과 갈등, 정부의 탄압으로 인해 완전한 성공을 이루지는 못하고 누그러집니다. 결국 1867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도시와 농촌의 개별 노동자들이 참정권을 획득하게 되지요. 클라프의 이 시는 1867년의 성공을 보기 전, 부분적인 실패를 경험한 이전의 과정들을 목격하면서 쓰인 시입니다. 클라프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개인과 집단이 지향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적극적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확인하면서 비관적 태도로 방관자가 되는 것의 위험을 인지 한 듯 합니다. 첫 구절이 강렬합니다.
Say not the struggle naught availeth,
The labour and the wounds are vain,
The enemy faints not, nor faileth,
And as things have been they remain.
투쟁해봐야 허사라 말하지 말라,
노고와 상처가 부질없으며
적은 기운이 약해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으며
여전히 세상사는 변함없을 것이라고.
완강한 적 앞에서, 강력한 상대방 앞에서 스스로의 무기력함을 합리화하며 내뱉을 수 있는 말,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클라프는 그 말을 금합니다. “노력과 상처는” 헛되지 않으며, “적은 약해지고” “(마침내) 무너”질 것이라고, (그렇게) “세상사는” 변하는 것이라고 클라프는 말하고 싶은 것이지요.
If hopes were dupes, fears may be liars;
It may be, in yon smoke conceal'd,
Your comrades chase e'en now the fliers,
And but for you, possess the field.
희망이 얼간이요, 두려움이 거짓말쟁이일 수 있을지라도
저 감춰진 연막 뒤에서
그대의 전우들이 여전히 패잔병들을 추격하고 있어
그대만 아니라면 전장을 손에 넣을 수도 있으리니.
너무도 가망없어 보이는 강력한 적 앞에서, 가혹한 현실 앞에서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얼간이”나 하는 짓이요,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장이”가 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저기 멀리 “(보이지 않는) 감춰진 연막 속에/ 동료들이 달아나는 (적군의) 패잔병들을 추격하고” 있어서 희망을 갖는 것은 얼간이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비굴하게 행동하고,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 하는 “그대만 아니라면” 승리를 쟁취할 수도 있는 상황일 수도 있지요. 눈 앞에 보이는 두려움 때문에 보이지 않는 희망과 미래를 지레 포기하는 겁쟁이들과 거짓말쟁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 우리는 압니다. 믿음이 없이는, 용기가 없이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 바로 그 믿음과 용기, 그것이 관건인 것이지요.
For while the tired waves, vainly breaking,
Seem here no painful inch to gain,
Far back, through creeks and inlets making,
Comes silent, flooding in, the main.
지친 파도가 헛되이 부서지며 애쓰지만
이곳에서는 단 한치도 얻을 곳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저 뒤, 시내와 어귀의 물살을 밀며
대양이 조용히 밀려들고 있지 않은가.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모두 절망의 흔적뿐, 지친 파도가 자기 몸을 부수며 바위를 때리지만 바위는 끄떡없는 것 같고, 단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는 것 같은 현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지요. 믿어야 합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저 뒤, 저 시내와 어귀의 물살을 밀며/ 대양이 조용히 밀려들고” 있음을. 그 믿음, 그 확신이 우리를 멈추지 않게 하는 힘이고,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힘이며, 연대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And not by eastern window only,
When daylight comes, comes in the light;
In front the sun climbs slow, how slowly!
But westward, look, the land is bright!
햇살이 밝아올 때
그 햇살 동녘 창으로만 드는 것 아니다.
앞쪽에서 태양은 얼마나 천천히 느릿느릿 솟아오르는지!
하지만 보라, 서쪽의 대지가 환하지 않은가!
그러니 보라. 새벽에 동이 틀 때 어디 햇살이 동쪽 하늘에만 뜨던가요. “앞쪽의 태양은...천천히 느릿느릿 솟아오르는” 것 같지만, 저 먼 반대편 “서쪽의 대지가 환하지 않은가!” 오늘 아침 새해 해돋이를 보러 지방 해안도시의 바닷가로 나갔지요.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해돋이 시간에 늦을 것 같아 원래 목표했던 바닷가가 아니라 다른 해변을 찾았지요. 다행히 아직 해는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미 동녘 하늘은 물론 저 먼 반대편 서쪽 하늘까지 밝은 기운이 가득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지요. 그리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수평선 위로 붉은 태양이 서서히 떠올랐어요. 눈 앞의 해는 서서히 떠오르지만 그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세상은 조금씩 환하게 밝아지고 있었어요.
눈 앞의 해가 보이지 않는다고, 어둠이 가지 않을 것이라 지레 포기해서 안 되는 것처럼, 당장의 무엇이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희망을 버리고 비굴해지지 않을 것이며, 두려워 거짓말 하지 않을 것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같은 믿음과 희망으로 그대를 믿으며 나아가고 있을 동료를 잊지 않고, 제 몫의 희망과 제 몫의 책음으로 걸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들 각자가 해야 할 일들이라는 것. 그러니 클라프는 말합니다. “투쟁해봐야 허사라 말하지 말라.” 1848년의 실패는 1867년의 성취를 위한 과정이었겠지만, 1848년의 실패 앞에서 절망하고 두려움애 가득 차 멈추었다면 그 다음의 성취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클라프의 이 시가 어디 꼭 19세기 중엽의 영국 노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오래 살아남지도 못했을 테지요. 지금 여기 살아가는 우리의 신념이 무엇이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어떤 것이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이 어디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건 쉽사리 얻어지는 것은 없지요. 우리의 노고와 쟁투로 스스로 얻어내야 하는 것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이라면, 그 인생의 전장에서 “애써봐야 허사”, “투쟁해봐야 허사”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기에 우리는 오늘도 우리 자신이 계란이 되어 각자의 바위를 치고,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되어 반석 위를 구르고 흐르며 우리 각자의 인생을 조각하며 살아갑니다. 아서 휴 클라프(Arthur Hugh Clough, 1819~1861)의 「투쟁해봐야 허사라 말하지 말라」“Say Not the Struggle Naught Availeth”입니다.
Say Not the Struggle Naught Availeth
Arthur Hugh Clough
Say not the struggle naught availeth,
The labour and the wounds are vain,
The enemy faints not, nor faileth,
And as things have been they remain.
If hopes were dupes, fears may be liars;
It may be, in yon smoke conceal'd,
Your comrades chase e'en now the fliers,
And but for you, possess the field.
For while the tired waves, vainly breaking,
Seem here no painful inch to gain,
Far back, through creeks and inlets making,
Comes silent, flooding in, the main.
And not by eastern window only,
When daylight comes, comes in the light;
In front the sun climbs slow, how slowly!
But westward, look, the land is bright!
투쟁해봐야 허사라 말하지 말라,
투쟁해봐야 허사라 말하지 말라,
노고와 상처가 부질없으며
적은 기운이 약해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으며
여전히 세상사는 변함없을 것이라고.
희망이 얼간이요, 두려움이 거짓말쟁이일 수 있을지라도
저 감춰진 연막 뒤에서
그대의 전우들이 여전히 패잔병들을 추격하고 있어
그대만 아니라면 전장을 손에 넣을 수도 있으리니.
지친 파도가 헛되이 부서지며 애쓰지만
이곳에서는 단 한치도 얻을 곳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저 뒤, 시내와 어귀의 물살을 밀며
대양이 조용히 밀려들고 있지 않은가.
햇살이 밝아올 때
그 햇살 동녘 창으로만 드는 것 아니다.
앞쪽에서 태양은 얼마나 천천히 느릿느릿 솟아오르는지!
하지만 보라, 서쪽의 대지가 환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