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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 해설

25-“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by William Shakespeare

작성자여국현|작성시간22.05.31|조회수1,289 목록 댓글 1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까요?」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by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여국현 (시인, 영문학박사)

 

3월의 마지막 날, 봄 햇살이 환히 비치는 카페의 창가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습니다. 환한 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사람들의 두런두런 소리와 블라인드에 어른거리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이들의 그림자를 느끼면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는 것보다 봄날 오후를 더 잘 보내는 방법이라면 연록의 나뭇잎과 고요히 흐르는 강물에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좋은 이와 나란히 두물머리 강변 어디쯤 걷는 일 정도일까요.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비 내리는 오후를 어찌 보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라고 했는데, 비가 내리지 않으니 저는 눈부실 만큼 밝고 환한 햇살 가득 비쳐드는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Sonnets 가운데 18번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까요?」를 읽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두말이 필요 없는 작가지요. 36편의 극작품과 수많은 시, 그리고 154편의 소네트를 묶은 소네트 연작시집(Sonnet cycle), 『소네트』를 남긴 세계 문학사상 최고의 작가입니다. 그는 1564년 영국 워릭셔(Warwickshire)주의 스트랫포드 에이븐(Stratford-upon-Avon)에서 태어나 열여덟 되던 해에 이웃의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와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았지요. 큰딸과 쌍둥이 남매. 그러나 쌍둥이 가운데 남자아이인 햄넷(Hamnet)은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요. 그는 쌍둥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향을 떠나 행적이 모호한 ‘실종의 시기lost years’(1585~1592)를 거쳐 런던에서 극작가로서 놀라운 성공을 거둡니다. 만년에는 다시 고향인 스트랫포드 에이븐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한 사람의 극작가로서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의 놀라운 성취를 이룩한 때문일까요. 그와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그의 신비함을 더하기도 합니다. 행적이 묘연했던 ‘실종의 시기’에 대해, “고향에서 죄를 짓고 도피했다”, “학교 교사로 일했다”, “이동극단 단원이었다” 등 불확실한 여러 이야기는 물론 그의 작품에 대해서도 “여러 작가들의 집단창작”이라거나 “다른 이의 작품에 셰익스피어의 이름만 붙인 것”이라는 등의 풍문들이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만 해도 서로 다른 철자로 여든 개가 넘을 정도인데다 그의 무덤에 새겨진 비문은 그의 신비함을 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Good friend, for Jesus' sake forbear, / To dig the dust enclosed here. / Blessed be the man that spares these stones, / And cursed be he that moves my bones.

 

선한 친구들이여, 제발 이곳에 묻힌 유골을 파내려하지 말기를. 이 묘비를 보호하는 이들에게 축복을, 유골을 옮기려는 이들에게 저주를.

 

그러나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신비한 이야기며 확인되지 않은 풍문들은 모두 당시의 기록이 정확하지 않은 까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온갖 소문과 신비화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시인The Poet of Nature”이라는 칭송과 함께 우리 삶을 그대로 무대에서 보여주는 “삶의 거울The Mirror of Life”과 같은 극을 창조해 냈다는 평을 받으며 영국은 물론 세계문학 사상 가장 탁월한 작가로 평가받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난 번에 그의 『햄릿』가운데 독백의 일부를 읽어 보았습니다만 오늘은 소네트 연작시집인 『소네트』중 가장 널리 읽히는 시편 가운데 하나인 18번을 읽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는 모두 154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소네트의 기본 소재인 사랑, 삶과 죽음에 대한 명상, 자연에 대한 예찬을 주제로 한 시들이 주를 이룹니다만, 최고의 극작가답게 소네트 또한 극적 구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화자와 ‘아름다운 남자친구Fair Youth’, ‘경쟁 시인the Rival Poet’, 그리고 화자의 연인인 ‘피부색 검은 여인Dark Lady’ 등 등장인물들을 통해 연인에 대한 사랑, 경쟁 시인을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질투, 남자친구에 대한 진한 우정의 감정 등 극적 구성을 띤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오늘 살펴볼 18번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까요?」는 시의 화자가 ‘아름다운 남자친구’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면서 변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유한한 아름다움, 이와 대조되는 변치 않는 친구의 영원한 아름다움, 그리고 예술의 영원성에 대해 언급하는 시입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읽히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가운데에서도 특히 유명한 소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e:

Rough winds do shake the darling buds of May,

And summer’s lease hath all too short a date: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까요?

그대는 더 사랑스럽고 더 온화해요

세찬 바람은 오월의 꽃망울을 흔들어대고

여름날은 너무도 짧기만 해요.

 

“그대”는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아름다운 남자친구’입니다. 전체 154편의 소네트 가운데 127편까지 이따금 등장하는 찬미의 대상이 되는 존재는 바로 이 ‘아름다운 남자친구’입니다. “여름날”은 우리가 생각하는 여름과는 조금 다른 계절로, 궂은 날이 많은 영국에서 날씨가 좋은 봄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어쨌건 “그대”는 그 좋은 날보다 “더 사랑스럽고 온화”하답니다. 계절이 여왕이라는 5월에도 “거친 바람”이 불어 “꽃망울을 흔들”고, 그 좋은 계절은 “너무나 짧”아서 이내 사라지고 만답니다. 이런 언급을 하는 것은 자연의 계절이 보이는 변화의 가능성과 변덕스러움을 “그대”의 한결같음과 비교하기 위함이지요. 4행의 “lease”라는 단어를 주목할 만합니다. ‘상업적 이미지commercial imagery’라고 할 수 있는데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와 극의 대사에는 이런 상업적 용어의 사용이 두드러집니다. 당시 부상하던 부르주아 계층과 상업의 중요성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lease” 즉 “차용기간”이라는 의미에서, 자연의 시간이라는 것도 그 자체의 것이 아니라 우주의 시간 가운데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지요.

 

Sometime too hot the eye of heaven shines,

And often is his gold complexion dimmed;

And every fair from fair sometime declines,

By chance, or nature’s changing course, untrimmed:

 

하늘의 눈동자는 때로 너무 뜨겁게 이글거리고

그 황금빛 얼굴은 종종 흐려지기도 해요.

아무리 아름다운 존재라도 언젠가는 그 아름다움 잃어요

우연이나 자연의 변화하는 흐름에 치장하지 못하고

 

2연에서도 자연의 가변성과 한결같지 못함을 비유하기는 마찬가지이지요. 이번에는 ‘태양’이군요. “하늘의 눈동자”라는 표현은 태양을 은유하는 것인데, 이런 표현은 아주 오래전, 고대 영시시대부터 시에 관행적으로 사용된 비유적 표현으로 ‘kenning(완곡법 혹은 대칭법)’이라고 해요. 예를 들어 일상어인 ‘바다’는 ‘고래의 길the path of whales’, ‘하늘’은 ‘백로의 길the path of white herons’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이 표현도 참신했겠지만 한 번 사용한 뒤에는 식상한 표현이 되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에서 고어 표현의 형태로 반복되어 사용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어쨌든 불변의 상징이랄 수 있는 태양도 구름에 가려 “흐려지기도” 하고, “너무 뜨겁게 이글거리”기도 합니다. 그처럼 모든 “아름다운 존재”는 “언젠가는 그 아름다움을 잃”게 되지요. 미인의 얼굴에 생채기가 날 수도 있고, 장미꽃 봉오리는 돌풍에 떨어지기도 하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때가 되면 미인의 얼굴에도 주름이 생기고, 장미는 시들게 되지요. 자연의 법칙이고 순리입니다. 세상 어떤 존재가 이 법칙을 이길 수 있을까요. 아, 요즘 같으면 달리 말할 수도 있을까요? 의술의 발달은 더러 사람들에게 시간을 거스르는 마법을 보여주기도 하니까요. 어쩌면 셰익스피어가 지금 살아있다면 조금 다른 표현을 사용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이렇게 어쩔 수 없는 변화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다음에서 보듯 ‘남자친구’가 지닌 아름다움의 불변성을 대조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이지요.

 

But thy eternal summer shall not fade,

Nor lose possession of that fair thou ow’st;

Nor shall Death brag thou wander’st in his shade

When in eternal lines to time thou grow’st: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하지만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이울지 않아요

그대의 소유인 그 아름다움 잃지도 않아요

죽음은 그대가 자신의 그늘 아래 방황한다 뽐내지 못할 거예요

영원한 시 구절 속에서 그대는 시간에 따라 성장해갈 테니까요.

인간이 숨 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이 시는 살아남아, 이 시가 그대에게 영원한 삶을 부여할 거예요.

 

환하게 빛나는 남자친구의 아름다움을 “영원한 여름”이라는군요. “이울지 않”는답니다. 게다가 그의 “아름다움”은 “잃지도 않”는답니다. 그뿐 아닙니다. 남자친구는 죽음의 세계에서 방황하지도 않을 거랍니다. 죽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육신의 죽음이 없다는 말은 아니군요. 단서가 붙어 있어요. “영원한 시 구절 속에서”--물론 이 시 구절은 지금 시인이 쓰고 있는 이 시를 말하는 것이지요-- “시간으로 성장해갈 테니까요.” 시인이 남자친구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쓴 이 시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잊히지 않고 남아있는 한 시 속에 묘사된 남자친구의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세월이 흘러가면서 시가 계속 살아남듯 남자친구의 아름다움 또한 그렇게 살아남아 영원히 시간과 함께, 역사와 함께 존재한다는군요. 인간은 유한하나 예술은 영원하다, 그 말이겠지요. 인간(남자친구)의 아름다움은 예술(이 시)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불멸성을 성취하는군요. 그러니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이 시는 살아남”을 것이며, 그로써 그대에게 “영원한 삶을 부여”하게 된다는군요.

 

변치 않는 영원한 아름다움, 영원한 생명, 영원히 잊히지 않는 예술, 이런 것이야말로 모든 예술가의 욕망이 아닐까요. 어디 예술가뿐일까요. 사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이기기 위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음을 이기고 영원히 기억되기 위해 지금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이룩하려고, 몇 세기를 넘어서까지 기억될 훌륭한 예술작품을 창작하려고 애쓰는 일은 물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가 아이를 낳고 하는 것을 보며 기뻐하고, 누구도 보지 않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할 일기를 하루하루 빠짐없이 기록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잊히고 싶지 않은,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 아닐까요. 그 욕망의 표현 가운데 예술가가 꿈꾸는 영원성의 욕망만큼 강한 것이 있을까요. 자신의 사랑이, 자신의 작품이 영원히 살아남아 잊히지 않고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 모든 예술가의 마음속 저 바닥에 자리한 깊고 깊은 바람 아닐까요. 셰익스피어는 소네트 18번에서 사랑하는 이의 아름다움이 불변하기를, 자신의 예술이 영원히 잊히지 않고 살아남아 기억되었으면 하는 욕망을 감춤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소네트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기억할 만합니다. 각운 체계를 보시면 ababcdcdefefgg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전체 154편의 소네트 가운데 3,4편을 제외한 전체 소네트를 이 각운에 맞춰 썼습니다. 한 편의 시를 각운에 맞춰 쓰기도 쉽지 않을 텐데 전체를 동일한 각운으로 쓰다니요! 놀라운 일입니다. 이 각운형식을 ‘셰익스피어 각운Shakespearean rhyme’ 혹은 영국을 대표하는 소네트 각운이라 하여 ‘영국 소네트 각운England sonnet rhyme’이라고 하는 까닭도 알 듯합니다. 16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유입된 소네트 양식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당시 거의 모든 시인이 소네트만으로 시집을 묶는 ‘소네트 연작시집Sonnet Cycle’을 출간했습니다. 그 가운데 소네트 연작시집 전체를 동일한 각운으로 지은 시인이 둘 있는데, 한 사람은 셰익스피어이고 다른 사람은 스펜서 경(Sir Edmund Spenser, 1552~1599)이었습니다. 스펜서는 자신의 소네트 연작인 『아모레티』Amoretti 89편 전체를 ababbcbccdcdee 형태의 각운으로 창작했습니다. 그의 다른 시 작품들 또한 당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었음에는 틀림없으나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와 다른 작품에는 비할 수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지요. 그래서 ‘영국 소네트 각운’이라는 호칭은 셰익스피어에게 양보해야만 했겠습니다.

 

18번 소네트의 또 다른 특징은 이탈리아 소네트 양식의 흔적도 보인다는 점입니다. 영국에 소네트를 들여온 사람은 토마스 와이엇 경(Sir Thomas Wyatt, 1503~1542)이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의 시인인 페트라르크(Francesco Petrarch, 1304~1374)의 소네트를 번역하면서 영국에 소네트를 소개했습니다. 페트라르크의 소네트는 독특한 내적, 외적 형식을 지니고 있었는데, 14행 가운데 전반부 8행(Octave)은 이야기를 전개하고, 후반 6행(Sestet)은 전반부 8행에 대해 반박하면서 시의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각운도 전반부는 abba abba 이런 규칙성을 지니고 있고, 후반부는 cde cde 혹은 cdc cdc 각운을 보입니다. 와이엇은 페트라르크의 소네트를 들여오면서 이 형식을 변형시켜 4행씩 3연으로 의미와 각운을 구분하고 마지막 2행에 강조점을 두도록 하는 형식의 영국식 소네트를 개발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편은 외적인 각운 형식에서는 전형적인 영국 소네트 형식을 취하면서 내용면에서는 전반부 8행과 후반부 6행이 대조를 이루는 내적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8행까지는 변화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9행부터는 변치 않는 “그대”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페트라르크 소네트와 영국 소네트를 절충, 혹은 결합한 형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 또한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위대함을 드러내는 것이라 한다면 지나친 칭찬이 될까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18번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까요?」였습니다.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e:

Rough winds do shake the darling buds of May,

And summer’s lease hath all too short a date:

 

Sometime too hot the eye of heaven shines,

And often is his gold complexion dimmed;

And every fair from fair sometime declines,

By chance, or nature’s changing course, untrimmed:

 

But thy eternal summer shall not fade,

Nor lose possession of that fair thou ow’st;

Nor shall Death brag thou wander’st in his shade

When in eternal lines to time thou grow’st: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까요?

그대는 더 사랑스럽고 더 온화해요

세찬 바람은 오월의 꽃망울을 흔들어대고

여름날은 너무도 짧기만 해요.

 

하늘의 눈동자는 때로 너무 뜨겁게 이글거리고

그 황금빛 얼굴은 종종 흐려지기도 해요.

아무리 아름다운 존재라도 언젠가는 그 아름다움 잃어요

우연이나 자연의 변화하는 흐름에 치장하지 못하고

 

하지만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이울지 않아요

그대의 소유인 그 아름다움 잃지도 않아요

죽음은 그대가 자신의 그늘 아래 방황한다 뽐내지 못할 거예요

영원한 시 구절 속에서 그대는 시간에 따라 성장해갈 테니까요.

인간이 숨 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이 시는 살아남아, 이 시가 그대에게 영원한 삶을 부여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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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정식 | 작성시간 22.06.01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18번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까요?」영시 해설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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