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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법어

의무로 베풀어야 할 세 가지 요소 - 지안 스님 -

작성자사람들|작성시간26.06.15|조회수36 목록 댓글 0

 

의무로 베풀어야 할 세 가지 요소

 

모든 강은 이름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강 압록강 두만강 등이 있다.

이 같은 강이 흘러 흘러서 어디로 가느냐 하면 바다로 들어간다.

바닷물로 합쳐지고 나면 낙동강 물도 아니고 한강 물도 아니고 압록강 두만강 물도 아니다.

 

법회에 모인 모든 대중은 부처님 마음, 즉 불심 하나로 각자의 성도 이름도 없애고

부산에 사느냐 서울에 사느냐 등등의 모든 생각을 없애라.

 

<금강경>은 상(相)을 없애는 법문을 중생들이 잘 알아듣도록 설해놓은 경전이다.

따라서 <금강경>을 터득하면 부처님의 지혜를 성취하리라 생각한다.

불교에서는 사람을 보고 이런 질문을 한다.

 

‘너의 본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사람마다 자기 얼굴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아침마다 거울을 들여다본다. 자기 얼굴을 보기 위해서 거울을 본다.

거울을 보면 현재 내 얼굴의 모습이 비친다.

그런데 내 얼굴 지금, 이 모습이 본래의 모습은 아니다.

내가 성장해 온 과정을 볼 때 어릴 때 얼굴 모습은 지금과 다르다.

그러므로 본래 모습이 어떠냐 하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 못 할 것이다.

내 본래 모습이 어떠한지 얼굴 모습을 가지고는 말할 수 없다.

본래 모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선문어록(禪門語錄)에는 ‘본래면목’이라는 말이 있다.

<금강경>에는 우리의 본래면목을 되찾자는 내용이 있다.

모든 상을 떠나서 본래의 순수한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가르쳐주는 법문이다.

부처님이 ‘나’를 넘어선 존재라면, 중생은 ‘나’에게 얽매여 사는 존재이다.

우리가 ‘나’의 굴레를 벗기란 참으로 어렵다.

너무나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간다.

그 멍에가 너무나 무겁고 힘든 것인데도 ‘나’를 비울 줄 모른다.

 

욕심이 발버둥 치는 모습으로 기도하거나 축원하기보다는,

‘나’를 비우는 아공(我空), 이것이 <금강경>에서 일관되게 가르치는 핵심 법문임을 잊지 말자.

부처님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쌓여있는 칠보를 남에게 보시하는 복덕보다

<금강경> 사구게를 수지독송하는 복덕이 더 높다고 말했다.

<금강경>을 듣고 높은 공덕을 이루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성불의 길이다.

 

부처님 본생담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선혜(善慧)’라는 보살이 불도를 닦고 있었을 때 연등불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선혜 보살은 연등불에게 공양을 올리고자 꽃을 구했다.

그러나 국왕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기 위해 온 나라의 꽃을 사들였으므로,

선혜 보살은 어디에서도 꽃을 살 수가 없었다.

 

때마침 구리 선녀가 연등불께 바치고자 푸른 연꽃 일곱 송이를 품고 가는 것을 발견한 선혜 보살은

그 꽃 한 송이에 은전 백냥씩 주고 다섯 송이를 사서 연등불께 바쳤다.

그리고 연등불의 행차가 진흙탕에 다다르자,

선혜 보살은 부처님의 발을 진흙이 더럽힐까 염려하여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길게 폈다.

옷이 진흙탕 길을 다 덮지 못하자 선혜 보살은 긴 머리를 풀어 진흙을 덮었고 그래도 모자라자,

진흙탕에 몸을 던져 부처님께서 밟고 건너가시게 했다.

이때 연등불이 선혜 보살을 찬탄하며 수기를 주셨다.

 

‘아 장하도다, 선혜여! 그대의 도를 구하는 정성은 참으로 갸륵하도다.

이렇듯 지극히 도를 구하는 정성으로 그대는 오는 세상에

결정코 부처의 도를 성취하리니, 호를 석가모니라 하리라.’

그렇다면 여래는 수기를 받고 연등 부처님 진리를 얻었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금강경> 법문에는 어떤 생각이 남아서 내가 무엇을 했다거나

자기 관념 속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 상이 된다.

그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의 뜻을 알기 때문에 수기를 받았지만,

진리를 얻은 것은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깨끗한 마음 청정한 마음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다.

 

참선 수행하는 사람들은 ‘무심(無心)이라는 말로 대체하기도 한다.

청정한 마음은 응당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않을 때 발현한다.

108번뇌 역시 전부 주(住)-하는 마음에서 생긴다.

생각이 어디 가서 딱 붙어버린다는 것이다. 이 마음은 전부 번뇌가 되는 마음이다.

이러한 번뇌의 원인이 되는 마음에 머물지 말고 본래의 깨끗하고 청정한 그 마음을 내라.

어떠한 감정이 생기면 감정대로 생각이 뭉쳐서 밉고 질투하는 생각이 나온다.

감정에 북받쳐 있으면 감정에 북받친 마음이 주한 마음이 되어서 업(業)을 진다.

주로 나쁜 업을 짓게 된다.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것은 어떤 감정에 치우쳐 있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의무로 베풀어야 할 요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다시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사람이 산다는 것은 세 가지 의무를 잘하기 위해서 산다고들 한다.

법회에 자주 다니면 인생에 눈이 뜨이고 선근(善根)이 생긴다.

특히 물질적인 가치보다 <금강경>을 수지 독경하여 정신적인 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가장 높고 제일가는 법을 성취할 것이다.

일상 삶 속에서 깨달음을 지향해서 우리 스스로 의식을 바로 일깨워서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우리가 경을 보고 기도하는 것은 깨닫기 위함이다.

 

<금강경>을 열심히 수지독송해라. 좋은 신행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

수행은 좋은 습관 하나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습관에 의해서 복이 온다.

경을 읽거나 사경하고 108배를 하는 것도 좋은 신행 방법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

<금강경>을 한 번씩 읽어보는 것,

<반야심경>을 꾸준히 사경하는 것…

 

이 같은 수행과 신행이 생활화된다면 낙숫물 물방울이 단단한 돌에 구멍을 뚫듯,

내 마음을 바르고 청정하게 닦아나갈 것이다. 마음을 닦으면 복이 지어진다.

그 속에 다시 지혜가 생기는 법이다.

 

- 지안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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