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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개의 눈동자

작성자물푸레|작성시간17.11.30|조회수125 목록 댓글 1

 


그는 멍한 얼굴로 앉아 있길 좋아했다. 딱히 바깥 어디를 본다고 할 수 없다. 그의 눈길을 따라가다 보면 장독대를 보는 것도, 장독대에 그늘을 드리우는 자두나무를 보는 것도, 자두나무에 그늘을 드리우는 구름을 보는 것도, 구름을 천천히 굴리는 하늘을 보는 것도 아니었다. 하늘을 넘어선 것을 보는 듯했다.

여보 뭘 봐?

그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걸레질을 하다말고 그는 어쩌면 눈이 필요 없는 것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자기 뇌 속 같은 데 말이다. 눈은 몸 바깥에 있는 세상을 보라고 있는 거지, 안을 보라고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눈동자 안의 깊숙한 곳에 또다른 검은 눈동자가 있을까? 내면을 볼 수 있는 눈동자, 둘은 바깥에 둘은 안에. 내가 사랑하는 그의 눈동자는 4개였다. 나는 바깥을 보는 눈동자보다 이 세상을 보지 않는 그의 눈동자가 좋았다.

그러니까 비현실적이야.

그니까 현실도피지.

지독한 방어기제야.

그렇게 말한다 해도 좋았다. 무얼 가지기보다 무얼 버릴까 골몰히 생각하는 그가 좋았다. 바깥세상은 보면 가지고 싶지만 내면 안을 보면 버리고 싶은 게 더 많다. 지독한 외로움, 폭력 앞의 공포, 남에 대한 분노, 자기를 스스로 속이는 속마음, 살면서 여기저기서 받은 상처들, 받고 싶지 않지만 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처들, 사랑하기 때문에 더 아프고 쓰린 것들, 괴이한 자신의 모습, 그가 자주 한 숨을 쉬는 까닭인지도 몰랐다. 그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고, 나도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상처가 상처를 알아볼 때 사랑은 다른 상처를 낳지만 그래도 알아본다는 것 자체가 나는 좋았다. 어쨌든 알아보니까.

여보! 방 다 닦았어. 이불 깔자.

술 한 잔 더 할까?

? 술 있어?

막걸리 사다놓은 거 있지.

그는 밥보다 막걸리를 더 좋아한다. 술은 완전식품이라나? 발효된 것이므로 소화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소화시키려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하잖아. 술은 힘들이지 않고 마시기만 해도 되니까. 그가 술을 마실 때마다 자주 하는 말이었다.

막걸리를 대접에 따르는 그에게 나는 두부를 붙여주었다.

나 없어도 술만 마시지 말고 꼭 안주하고 먹어, 알았지?

배불러.

배부르라고 먹는 거 아냐?

이게 밥이냐? 배부르라고 먹게, 취하려고 먹는 거지.

그래도 안 돼. 몸 버려

몸 버리면 안 되나?

안 돼. 몸을 왜 버려?

몸을 버리면 가벼워지잖아. 몸이 짐이야,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놓아야 되는 게 바로 몸이거든. 몸을 버리면 자유로워지는 거지. 몸이 없으니까 어디든 갈 수 있지.

나는 내 맘대로 살았으니까 후회 없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나도 후회는 없어.

나는 두부를 김치에 싸서 그에게 먹여준다. 받아먹기는 잘 받아 먹는다.

만약에 내가 없어지면 그냥 그런 줄 알아라. 난 병에 걸리면 어디 산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갈 거니까. 그런 줄 알고 찾지 말아.

여기가 산 속인데 또 어디 가려고?

여기가 산속인줄 알고 들어왔는데, 그게 아니더라.

뭔 말이야?

내 몸 돌보는데, 너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당신 없으면 나도 자유지. 나도 맘대로 편하게 살 거야.

그래 부디 그렇게 살아라.

당신은 나없으면 어떻게 할 건데?

?

그래 당신.

나는 똑같을 거야. 지금처럼 똑같이 살 거야. 불 때고 막걸리 한잔 마시고 조청 만들고 막걸리 한잔하고 담배피고 막걸리 한잔 마시고. 그러다 어느 날 너 있는 곳으로 가겠지. 거기서도 다시 만날까?

지겹지도 않아? 저 세상에서도 만나게?

나도 막걸리 한 잔 마신다. 그가 흐흐흐 웃는다.

나는 그의 웃음 소리가 좋다. 그는 웬만해서 웃지 않지만 가끔 흐흐흐흐 소리를 내며 웃을 때 정말 행복해 보인다.

나 죽으면 희양산에 뿌려주라.

그건 내 맘대로 할거 거든.

완전히 몸을 버리게 해주라.

씽크대에 기대어 앉아 그가 담배를 피운다. 외로울 때마다 피는 담배. 그는 담배를 많이도 피웠다. 그만큼 외로웠다는 증거다. 내가 있는데도 외로워하는 그에게 순간 섭섭하다.

담배도 좀 줄여.

쓸데없는 소리라는 걸 안다. 알면서도 나는 말한다. 그가 들은 척 만 척한다는 것도 안다. 그가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더 투정부리듯 이야기한다.

!

! !

내가 적극적으로 말렸더라면 그는 조금 더 오래 살았을까? 아니 적어도 그렇게 갑자기 아무 말 없이 가지 않았을까? 아니 천천히 생각해보면 아무 말 없이 간 건 아니다. 순간 그는 심장이 멈췄지만 아주 오랫동안 죽음을 준비해온 사람 같다. 그는 평소에 나에게 암시적으로 말했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거야. 그러니 찾지 말라고.

그렇지, 죽음이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거지. 그의 몸을 볼 수 없는 거지, 그의 몸을 만질 수 없는 거지, 바깥을 보는 눈동자가 볼 수 없게 되는 거지.

다행히도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실은 인간의 눈동자는 네 개라는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다. 그의 눈동자가 내게 말해주었다. 상처 난 영혼들끼리 한 눈에 알아봤을 때 이미 그것은 바깥으로 향한 눈동자가 볼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눈이 필요치 않은 세계, 그가 늘 바라보고 있었던 것, 그 세계 안에 그는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산 속 깊은 곳일 수도 있고, 낚시 줄을 깊이 드리운 강가일 수도 있고, 눈이 필요 없어 눈먼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깊은 바다 속일 수도 있다.

나는 눈을 감고 눕는다. 잠에 깊이 빠지면 꿈 속에 그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눈을 감아야 보이는 세계, 그 세계에서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본다. 흰자 없이 오로지 검은 눈동자. 어둠에서 태어나는 세계에서 나는 그를 만난다. 저 멀리서 그가 내게 걸어온다.

너 지겹지도 않니? 흐흐흐흐

그러게 말이야 내가 여기서도 당신을 만나다니.

검은 눈으로 나도 그를 본다.

흐흐흐흐

멋쩍게 웃는 그의 웃음소리에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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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침배미농부 | 작성시간 17.12.04 지금 엄청 추운 밤인디
    멍먹하야 잠이 오지 않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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