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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태동

작성자물푸레|작성시간14.03.14|조회수110 목록 댓글 5

 

 

 

나는 나무를 좋아한다. 소나무, 자작나무, 은사시나무, 백양나무, 각각의 나무가 있지만 어느 하나의 나무보다 그냥 나무를 좋아한다. 이름도 모르고 그 나무의 특별한 성질이나 쓰임새도 모른 채, 걸어가거나 차타고 지나칠 때의 그 스치는 느낌을 좋아한다.

 

활엽수든 침엽수든 꽃이 피든, 안피든, 열매를 맺든 안맺든, 나무라고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구체적인것이 아닌 두루뭉실한 나무들의 울림, 그 중에서도 이제 막 가지마다 물오르는 연두빛 새싹들이 때로는 기적처럼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어떤 나무이기 이전에 어떤 꽃이 피기 이전에 막 이제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발버둥은 뱃속의 아이처럼 신비스럽다.

 

부른 배를 보고 어떤 아이가 태어날까 이리저리 생각해보는 두근거리는 마음, 기다리는 마음, 우주창조의 징조처럼 맘껏 부풀어오르는 설레임.

 

내가 만삭이었을 때, 나는 자주 남편과 손을 잡고 저녁산책을 나가곤 했다. 마침 우리집은 한강시민공원과 가까이 있어 강가를 걷곤 했는데, 무거운 배는 나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도록 했다. 그 때는 여름 끝이어서 불어오는 바람은 늘 습기를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해가 강 저편으로 지곤 했는데, 그 해를 바라볼 때마다 뱃속에서 아이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은 움직이는 배를 바라보고 신기해하고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마냥 호기심어린 눈으로 해처럼 둥그런 배를 바라보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저녁의 산책시간이 가장 행복했고, 가장 기다림으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지금 아이가 자라서 열아홉살이 되었지만 그와는 또 다르게 그때의 내 뱃속의 아이는 지금도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뱃속의 아이처럼 나무는 둥그런 해이다. 나무라고 발음할 때마다 떠오르는 느낌은 나무 하나 하나의 개별적인 것이 아닌 나무가 탄생하기 이전의 그 어떤 원시적인 느낌, 잎이 나고 꽃이 펴서 자기가 무슨 나무라고 개별적 존재를 표현하기 전까지의 탯속의 나무, 나는 그 나무를 사랑한다. 그 나무를 상상한다.

 

나무는 해마다 새롭게 탄생하고, 나무는 해마다 새로운 잎과 꽃을 피운다. 따스한 봄바람은 불고, 강물은 여지없이 흘러가고 해는 날마다 붉게 진다. 나무는 그 모든 것을 날마다 보면서 태동을 느낀다.

 

그 마음이 느껴져 나는 마당에 나가 마주편 산을 보고 선다. 산은 나무들이 사는 마을이다. 무수한 인간 개인들이 모여살 듯 무수한 나무들이 모여 사는 조용한 마을이다. 이제 그 마을에 새로운 태동이 느껴지나니, 아이가 태어나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나는 가끔 맘껏 설레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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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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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춤추는해바라기 | 작성시간 14.03.15 마을에 새로운 태동을 느낍니다.
    우리의 태동들이 모이고 모여, 웅장한 산을 이루길 희망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물푸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17 그렇지? 요새 우리 마을의 새로운 변화를 위하여! 변화를 위한 고통쯤은 얼마든지 감수하면서 살리라
  • 답댓글 작성자또다른세상 | 작성시간 14.03.26 물푸레 흠마.. 고통은~ ㅎㅎ 천천히 즐거운 변화가 다가오길...
  • 작성자바람나무 | 작성시간 14.03.17 물푸레, 그리 나를 사랑했단 말이오!! ㅎㅎ
  • 작성자또다른세상 | 작성시간 14.03.26 언제봐도 사진이 멋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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