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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작성자물푸레|작성시간18.06.25|조회수154 목록 댓글 0

소금창고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마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 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 떼를 세어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이문재, 제국호텔』(문학동네, 2004)





******


20대에는 미래에 대한 공상을 많이 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까 고민했다.

50대가 되니 옛날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때 내가 그랬더라면 혹은 그때 내가 그렇게만 안했어도

작목반에 앉아 조은이가 노는 모습을 보니

대헌이 키울 떄가 생각난다.

대헌이를 가졌을 때 남편과 한강변을 산책하던 일

1살도 안된 대헌이가 아빠라고 말했을 때 병호형이 기뻐하던 모습

이곳으로 이사와서 대헌이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던 때

남편과 내가 얼마나 흐뭇해 했는지, 아이를 배웅하며 돌아오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

그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이를 키우는 은정이와 창환이는 지금의 기쁨을 온전히 기쁨으로 느끼고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작목반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들으며 혼자 생각에 빠지곤 한다.

어떤 날, 어떤 밤은 혼자 우두커니 앉아, 10살의 나로 돌아간다.

그때는 엄마와 단둘이 살 때였다.

엄마는 밤 10시가 넘어도 들어오지 않았다.

혼자 집에 있기가 무서워 골목과 시장 버스정류장 거리를 배회하며 돌아다녔다.

보험회사 일을 하던 엄마가 버스에서 내리길 기다리며 저녁시간을 보냈다.

작목반에서 사람들과 있다가 집으로 돌아모면 

나는 잠시 내가 가장 힘들고 외롭던 시간으로 돌아와 있는 느낌이 든다.

"시간은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구나."

가장 어둡고 깊은 동굴로 굴러떨어진 것처럼 나는 당황스럽다. 

하지만 어둠에 익숙해지고 침묵이 다정스러워질 때 또다시 생각한다. 

"그때는 10살의 아이였지만 지금 나는 쉰살의 어른이지. 그때는 나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나 혼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러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반복되는 시간을 견디며 나는 조금씩 고통에 반항하지 않고 익숙해지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참 다행이다. 외롭던 시절은 병호형괴 함께한 시간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오늘 하루 잘 살았다.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여기곤 한다.  

어쩌면 상처의 치유는 반복되는 고통의 시간을 다시 살면서 얻어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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