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에는 행선지가 없다
내가 온 길을 돌아본다고
내가 갈 길을 아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디로 가려고 걷는 게 아니다.
내가 걷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그냥 걸을 뿐이다.
걷다보면 저 멀리 내가 몸담았던 집이 보인다
내가 사는 곳이 저 곳이구나
허름하고 낡고 오래된 집
지붕 위를 떠도는 선한 구름과 묵직한 의지의 산 아래
보일 듯 말 듯, 무너질 듯 말 듯 위태로운 집
나는 집으로 잘 돌아가기 위해 집에서 나온다
가끔씩 노을에 물든 갈대가 흔들릴 때
집에서 나왔던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마주칠 때가 있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파도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나무들이 물 속으로 가지를 뻗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지는 해와 뜨는 달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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