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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안면 장춘리 바위글자 "계석암(繼昔巖)"과 여러 글자들

작성자닥밭골 심충성|작성시간14.12.07|조회수202 목록 댓글 6

 

 

비안면 동부교 앞에서 남쪽에 정자가 있는 길로 갑니다.

 

정자에서 오른쪽으로 난 비포장 강둑길로 1.5km정도 갑니다.

 

용재길 10-119번지 집에서 강따라 남쪽으로 100m정도 가면 길 왼쪽에 바위글씨가 있습니다. 

 

절벽 모양이 멋집니다.

전체 크기:가로 1m,세로 1m

 

繼昔巖(계석암)

繼:가로 27cm,세로 35cm

昔:가로 23cm,세로 35cm

巖:가로 25cm,세로 35cm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읽습니다.

天朴之下龍淵之陽□□朴淵卽(천박지하용연지양□□박연즉):천박의 아래쪽 용연(龍淵)의 양지인 □□박연(朴淵)은 곧

吾家十餘世所居淵之南厓巖號(오가십여세소거연지남애암호):우리 집안이 십 여 세대 동안 살아온 곳으로 박연의 남쪽 언덕 바위를 일러

桂石亦我.  先遺躅所在玆巖繼(계석역아. 선유촉소재자암계):나 또한 계석이라 부른다.선조가 남긴 발자취가 이 바위에 이어져 있다.

昔而不變其高吾家繼昔而不移(석이불변기고오가계석이불이):이 바위가 지금까지 그 높이가 변치 않았고, 우리 집안도 지금까지 지키며 옮겨 살지 않았다.

其守吾遊玆巖愴感者多仍用巖(기수오유자암창감자다잉용암):내가 이 바위에서 놀면 슬픈 감정이 많았다

號相似之音題以繼昔以寓繼繼(호상사지음제이계석이우계계):이에 바위 이름이 서로 비슷한 발음인 것으로써 계석(繼昔)으로 제(題)하여 잇고

如昔之意云爾(여석지의운이):이어 옛과 같이 우거한다는 뜻을 이른 것이다

永曆 後 五 乙未 重陽節 朴淵 晩生(영력 후 오 을미 중양절 박연 만생):영력제(남명의 마지막 황제(1649 - 1662) 후에 다섯 번째 을미년(1895년) 중양절(음9월9일)에 박연에서 늦게 태어난

 善山 金在誠 謹識(선산 김재성 근지):본관이 선산인 김재성이 삼가 기록함. 

 

 

 

 

 

 

 

 

 

 

 

 

 

 

 

강 건너 모래밭에서 보니 경치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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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닥밭골 심충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12.07 비안에는 경치좋은 곳이 많은지 글자도 여러군데 새겨 놓았습니다~^^
  • 작성자김홍배 | 작성시간 14.12.10 재작년인가 쳐다보면서 언젠가는 탁본으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선명한 사진과 함께 내용도 알게 되어 더욱 좋았습니다. 사진으로 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수고하셨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닥밭골 심충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12.10 전에는 그저 보고 지나쳤을텐데 향토사연구회원이다보니 한 글자도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잘 땡겨지는 사진기를 사니 마음먹은대로 찍을 수 있었습니다~^^
  • 작성자둔굴재 초부 | 작성시간 14.12.21 金在誠(1847~1920) 字 純伯. 號 繼巖, 본관은 선산. 비안 박연에 세거하였으며, 繼昔巖은 원래는 '桂石'으로 같은 소리가 나는 '繼昔'으로 바위이름을 삼아 자신의 아호로 하고 號說을 적은 것 같습니다. 楮田谷 열의에 감탄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닥밭골 심충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12.21 글을 새긴 분에 대해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닥밭골"을 한자로 적으며 "저전곡"이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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