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각찬약석 (本覺讚略釋) 1
[ 진언종真言宗 변조왕사遍照王寺 – 위금강원파전승적진언밀교실수도량為金剛院派傳承的真言密教實修道場 ( https://www.bukon.org.tw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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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覺讚略釋 – 真言宗遍照王寺 本覺讚略釋 ([본각찬 게송]) 「귀명본각심법신歸命本覺心法身, 상주묘법심연대常住妙法心蓮台 본래구족삼신덕本來具足三身德, 삼십칠존주심성三十七尊住心城 보문진수제삼매普門塵數諸三味, 원리인과법연구遠離因果法然具 무변덕해본원만無邊德海本圓滿, 환아정례심제불還我頂禮心諸佛」 「如實」乃當下, 即原始、原本; 亦即不增一些、不減一微,是 真如之本性; 因此舉凡一切的思惟、形相、音聲皆不著染, 若有皆為諸塵。 所以,應放下一切,悠遊輕盈之心情唱頌, 要先能「放下一切,不求任何」,而且「不急不緩」 才能真實地與自己內心深處相接觸 〈此內心深處是唯一而絕對的,是孤獨無偶,他識不知的〉, 也就是 必須「本著放下,以清淨中自現清淨」, 讓法音自然由心田流現, 此刻則陶冶在此流現的悠揚中。 內心之清淨本不可說, 無以言表, 但為方便乃立下文詞讚偈,歌頌讚歎自性, 正如「清淨」無以言喻,僅以無垢不染的白色蓮華作為闡揚之代表, 所以不要被偈中之文詞所拘, 不可在文字上作思惟, 也就是不要誤作「由外而內求」, 而是「內而自現」; 這是唱頌本覺讚應有的基本且重要的無上口訣。 「歸命本覺心法身,常住妙法心蓮台」 其實佛性是沒有任何形相,也沒有任何言語文字能描述的, 無奈眾生心垢塵染,無以見佛性 〈也就是無以見如來〉, 所以才善巧方便, 順應眾生執相之心, 而有所謂「大日如來的形相」; 藉著此假相之 面睹而了知原本之面目。 大日如來乃一切之總體,具足一切佛德, 所以真正清淨自成大日。 而所謂的菩薩等,不論何尊皆代表一一佛德所現, 此現可能是不同的因緣, 因應眾生之心識或乘願而現諸形, 所以若眾生之心能圓成某尊之德性,則成就該尊, 也就是代表眾生去除了 某些無明塵垢, 或說斷除了一種煩惱心,也就增加〈證得〉一分佛智慧; 所以,也成就一尊金剛護法身。 如果眾生能以歌聲而斷煩惱而契入佛性〈清淨〉, 則此刻即為金剛歌菩薩之示現, 也就是說此刻之心 已成金剛歌菩薩, 其示現,也就是說此刻之心已成金剛歌菩薩,其自內心之言語即為金剛歌菩薩之真言, 形表於外之梵行即為金剛歌菩薩之身境, 如此便具足菩薩三密。 所以舉凡一切無量菩薩皆是眾生轉塵識、業識而成之佛智,而成就之功德體。 眾生之心皆具八識,而眼耳鼻舌身五根乃人類對週遭一切有所覺,有所知的由來, 也是對色身香味觸五塵感覺存在的原因, 這也就是 「成所作智」的具體表徵,由此人類能覺知有形世界之存在; 以入世而言,眾生因此智而能作對立、分別, 諸如冷熱、喜怒、黑白、美醜 ……等; 以佛法而言,眾生以此智來觀察諸法本空, 了解一切迷妄之實,進而察覺事之真性, 導引眾生契入佛性,這就成就了「妙觀察智」。 人若無此妙智則不能看清事情之真相,就會過於執著, 引來無邊無盡的煩惱,甚至增添無限的貪、瞋無明,於是陷自心於無限的痛苦深淵之中; 若能具足妙觀察智,而且能如實受用, 則能了知真理及佛法之真諦, 於是薰習乃漸生「平等性智」, 於是能遠離一切的分別─ ─平等義, 不被事相所困而住入真如平等, 所以「平等性智」具足即能成就一切, 正如清明圓鏡能照澈一切景物,無所分別, 不執於任何相之存在與消失, 故能體照萬物如如不動的本來面目,能體證真如本性, 但是只能照知、覺知一切, 稱為「大圓鏡智」,但不能受用, 正如心中有不可名狀之思潮,但又不可外現, 一直到「心行滅處,言語道斷」 第九識才能完完全全展露, 才能完全受用,如此才成就「法界體性智」。 所以對於眾生之八識,無以言狀乃假「八葉心蓮」有相而示: 而白色表清淨,正如白業表清淨識, 而「中央蓮台」即表法界體性智,即心之本; 由自性流出無量心識轉成無量菩薩, 因此一一心識即為一一法門, 每一法門皆可契入心之本體, 即每一門皆能入實乃至開演而用, 所以真實清淨即本具、本覺, 理智二全即心法身, 一一妙法即能開演,亦皆能如實契入, 故稱「妙法心蓮台」, 所以本覺讚的 首句 「歸命本覺心法身,常住妙法心蓮台」 即道盡了真如本體。 「本來具足三身德,三十七尊住心城」 所謂「三身德」乃指「法、報、化」; 法身猶如一個人的思想、精神或理念; 長相即是報身; 以此報身去擔任不同的身分、角色就如同化身; 故任何人皆本具足三身德,因此「本來具足三身德」, 就真言宗而言即為 「身密、口密、意密,三密具足」, 也就是一切眾生本來具足此三種德性, 若能將此開展,一一呈現則具足三十七尊。 〈三十七尊乃大日如來以四方佛來闡揚其功德, 每一佛又流現四菩薩,故共有十六尊; 再加上八供養、四攝智、四波羅蜜及五方佛,一共三十七尊〉 此三十七尊既是由眾生之本性蓮台向外開展,一一流現轉成, 所謂自性蓮台即是胎藏界,是三十七的整體, 心包括了三十七尊,故稱 「三十七尊住心城」。 三十七尊由自性展露,故應無時不刻在眾生的心識或言語、舉止之間, 生活上每一環節都蘊存著, 只是眾生心不清淨缺乏智慧, 迷妄失真而不得見, 如能了知此本源,故則能深體 「即真即俗」的甚深道理, 若離開塵染塵識的娑婆世界,何能察知淨土的存在,更何處有淨土可求。 | https://www.bukon.org.tw/2020/03/08/20200308/ 본각찬약석 (本覺讚略釋) [본각찬 게송] 본각의 마음인 법신에 귀명하오니, 언제나 묘법의 마음 연화대에 머무시네. 본래부터 삼신의 공덕을 갖추었으니, 37분의 존상이 마음의 성에 머무시누나. 온 세상 티끌 수 같은 모든 삼매는, 인과 멀리 여의어 자연 그대로 갖춰져 있네. 가없는 공덕의 바다 본래 원만하니, 다시 내 마음속 제불께 정례하나이다. 1.唱頌(창송)의 무상구결(無上口訣): 내려놓음과 내면의 자현(自現) '여실(如實, 있는 그대로)'이란 당하(當下, 바로 지금 이 순간)를 말하며, 즉 원시(原始)이자 원본(原本)을 뜻한다. 또한 조금도 더하거나 감하지 않는 진여(真如)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무릇 일체의 사유, 형상, 소리는 모두 오염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만약 집착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번뇌의 티끌[諸塵]이 된다. 그러므로 응당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유유자적하고 가벼운[輕盈] 마음으로 이 찬탄의 게송을 노래해야 한다. 먼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구하지 않으며', 또한 '서두르지도 않고 늦추지도 않아야' 비로소 진실한 자기 내면의 깊은 곳과 접촉할 수 있다. <이 내면의 깊은 곳은 유일하고 절대적이며, 홀로 있어 짝이 없고, 다른 식[他識]으로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즉, 반드시 '내려놓음에 근본을 두고, 청정함 속에서 스스로 청정함이 나타나게 하여' 법의 소리[法音]가 마음의 밭[心田]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해야 하며, 이 순간 그 흘러나오는 아늑하고 아름다운(듬직하고 급하지 않은) 선율에 자기를 도야해야 한다. 내면의 청정함은 본래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나, 방편을 따라 문장으로 된 찬탄의 게송[讚偈]을 세워 자성(自性)을 노래하고 찬탄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청정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단지 때 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백련화(흰 연꽃)'를 통해 그 뜻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게송의 문구에 얽매여서는 안 되며, 문자 위에서 사량 분별을 해서는 안 된다. 즉, '밖에서 구하여 안으로 들이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되며,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나타나는 것[內而自現]'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본각찬》을 창송할 때 지녀야 할 기본적인 요체이자 가장 중요한 무상구결(無上口訣, 최고의 비결)이다. 2. "귀명본각심법신, 상주묘법심연대" (歸命本覺心法身,常住妙法心蓮台) 사실 불성(佛性)은 아무런 형상이 없으며, 어떤 언어나 문자로도 묘사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중생의 마음이 때 묻고 번뇌에 물들어 불성을 볼 수 없기에 <즉, 여래를 볼 수 없기에>, 선교방편을 써서 형상에 집착하는 중생의 마음에 수순하여 이른바 '대일여래의 형상'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가짜 형상[假相]을 마주함으로써 본래의 면목(참모습)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대일여래는 일체 만물의 총체이며 모든 부처의 공덕을 구족하고 있으므로, 진정으로 청정해지면 스스로 대일여래를 이룬다. 그리고 이른바 보살 등은 어떤 존상이든 모두 부처의 저마다 다른 공덕이 나타난 것이다. 이 나타남은 서로 다른 인연일 수 있으며, 중생의 심식(마음)에 응하거나 원력에 따라 여러 형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중생의 마음이 어떤 존상의 덕성을 원만히 성취한다면 곧 그 존상을 성취하는 것이 된다. 이는 곧 중생이 어떤 무명의 때를 제거했거나, 혹은 한 가지 번뇌심을 끊어내어 그만큼 부처의 지혜를 더 얻었다(증득했다)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한 분의 금강신(護法身)을 성취한 것이 된다. 만약 중생이 노래 소리[歌聲]로써 번뇌를 끊고 불성(청정함)에 계합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이 '금강가보살(金剛歌菩薩)'의 시현이다. 즉, 이때의 마음이 이미 금강가보살을 이룬 것이니, 그 내면에서 나오는 언어는 곧 금강가보살의 진언(주문)이 되고, 외적으로 표현되는 청정한 수행[梵行]은 금강가보살의 신체적 경계가 된다. 이렇게 되면 보살의 삼밀(三密: 몸·입·뜻의 비밀)을 구족하게 된다. 그러므로 무량한 모든 보살은 다 중생이 번뇌의 업식[塵識·業識]을 돌려 부처의 지혜로 바꾸어 성취한 공덕의 당체(當體)인 것이다. 중생의 마음은 모두 팔식(八識)을 갖추고 있다. 안·이·비·설·신(눈·귀·코·혀·몸)의 오근(五根)은 인간이 주변의 모든 것을 깨닫고 아는 유래이며, 색·성·향·미·촉의 오진(五塵)의 감각이 존재한다고 느끼는 원인이다. 이것이 바로 '성소작지(成所作智)'의 구체적인 징표이며, 인간은 이 지혜를 통해 형상이 있는 물질세계의 존재를 지각한다. 세간의 관점(입세·入世)에서 보면, 중생은 이 지혜 때문에 대립과 분별을 일으키니, 추위와 더위, 기쁨과 분노, 흑과 백, 미와 추 등이 그것이다. 불법의 관점에서 보면, 중생은 이 지혜를 통해 모든 법[諸法]이 본래 공함을 관찰하고, 모든 미혹과 망상의 실체를 이해하여 나아가 사물의 참된 성품을 찰지(察知)하고 중생을 인도하여 불성에 계합하게 하니, 이것이 바로 '묘관찰지(妙觀察智)'를 성취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만약 이 신묘한 지혜(妙觀察智)가 없다면 사물의 진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어, 가없는 번뇌를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무한한 탐욕과 성냄의 무명을 더하여 자심을 끝없는 고통의 심연 속에 빠뜨리게 된다. 만약 묘관찰지를 구족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如實] 받아들여 쓸 수 있다면, 진리와 불법의 참된 뜻을 깨닫게 되며, 이로부터 훈습되어 점차 '평등성지(平等性智)'가 생겨난다. 그리하여 일체의 분별을 멀리 떠나 평등한 뜻을 이루고, 사물의 현상[事相]에 갇히지 않으며 진여의 평등함에 머물게 된다. 따라서 '평등성지'를 구족하면 일체를 성취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맑고 밝은 둥근 거울(명경)이 일체의 풍경을 남김없이 비추되 아무런 분별이 없고, 어떤 형상의 존재와 소멸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만물이 여여하게 움직이지 않는 본래 면목을 비추어 알 수 있고 진여의 본성을 체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일체를 비추어 알고 깨달아 아는 것일 뿐이므로 이를 '대원경지(大圓鏡智)'라 부르며, 아직은 스스로 온전히 누려 쓰지[受用] 못한다. 이는 마치 마음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각의 흐름이 있으나 밖으로 나타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침내 '마음의 작용이 멸하고 언어의 길이 끊어진 곳[心行滅處, 言語道斷]'에 이르러서야 제구식(第九識, 아마라식)이 완전히 드러나고 온전히 수용할 수 있게 되니, 이로써 비로소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를 성취하게 된다. 그러므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중생의 이 여덟 가지 마음 작용(팔식)을, 가로되 형상이 있는 '팔엽심련(八葉心蓮, 여덟 잎의 마음 연꽃)'을 빌려 나타낸 것이다. 흰색은 청정함을 나타내니 마치 백업(白業)이 청정한 식을 나타내는 것과 같고, '중앙의 연대(蓮台)'는 곧 법계체성지이자 마음의 근본[心之本]을 나타낸다. 자성으로부터 무량한 심식이 흘러나와 무량한 보살로 바뀌므로, 하나하나의 심식이 곧 하나하나의 법문(法門)이 된다. 그리고 모든 법문은 다 마음의 본체로 계합해 들어갈 수 있으니, 즉 모든 문이 다 진실함[實]에 들어가 나아가 열려 쓰이게 된다. 그러므로 진실로 청정한 것이 곧 본래 갖추어져 있는 '본각(本覺)'이며, 이치와 지혜가 둘 다 온전한 것이 '심법신(心法身)'이다. 하나하나의 오묘한 법이 곧 펼쳐질 수 있고 또한 다 있는 그대로 계합해 들어갈 수 있으므로 '묘법심연대(妙法心蓮台)'라 한다. 따라서 본각찬의 첫 구절인 "귀명본각심법신, 상주묘법심연대"는 진여의 본체를 남김없이 말해주는 것이다. 3. "본래구족삼신덕, 삼십칠존주심성" (本來具足三身德,三十實尊住心城) 이른바 '삼신덕(三身德)'이란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을 가리킨다. 법신은 한 사람의 사상, 정신, 또는 이념과 같고, 외모와 형상은 곧 보신이며, 이 보신을 가지고 서로 다른 신분과 역할을 맡는 것은 화신과 같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 다 본래 삼신덕을 갖추고 있다. 이를 진언종(밀교)의 언어로 말하면 곧 '신밀(身密)·구밀(口密)·의밀(意密)의 삼밀구족(三密具足)'이 된다. 즉, 모든 중생이 본래 이 세 가지 덕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것을 펼쳐내어 하나하나 드러낸다면 서른일곱 분의 존상[三十七尊]을 구족하게 된다. <삼십칠존이란, 대일여래가 사방의 네 부처님을 통해 그 공덕을 드날리고, 각 부처님이 다시 네 분의 보살을 흘려보내니 도합 16존이 되며, 여기에 8공양보살, 4섭지보살, 4바라밀보살 및 오방불을 더하여 총 37존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 서른일곱 존상은 중생의 본성 연대(연꽃대)로부터 밖으로 펼쳐져 하나하나 흘러나와 바뀐 것이다. 이른바 자성의 연대란 곧 태장계(胎藏界)를 뜻하며, 이는 서른일곱 존상의 전체이다. 마음이 서른일곱 존상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므로 "서른일곱 존상이 마음의 성에 머문다[三十七尊住心城]"라고 한 것이다. 서른일곱 존상은 자성으로부터 드러나는 것이므로, 마땅히 한시도 빠짐없이 중생의 심식이나 언어, 거동 사이에 존재해야 하며, 생활의 모든 고리마다 깃들어 있어야 한다. 다만 중생의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고 지혜가 부족하여, 미혹되고 망령되어 참됨을 잃었기에 보지 못할 뿐이다. 만약 이 본원(본래 근원)을 깊이 깨달아 안다면, '진제(淨, 깨달음의 세계)가 곧 속제(俗, 현실 세계)이다'라는 매우 깊은 도리를 깊이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번뇌로 물든 사바세계를 떠난다면, 어찌 정토(부처님의 청정한 나라)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며, 다시 어느 곳에서 정토를 구하겠는가? |
본각찬本覺讚; 천태종과 진언밀교(동밀)의 핵심인 '본각(本覺)' 사상과 만다라 교리, 그리고 수행의 비밀스러운 구결(口訣)을 담고 있는 깊은 내용.
변조왕사遍照王寺(볜자오왕쓰); 대만 신베이시 루이팡구(新北市瑞芳區過港路過港巷)에 위치한 금강원파(金剛院派) 계승의 진언밀교 실천 도량.
경영輕盈; 1. (여성의 몸매와 동작이) 유연하다. 나긋나긋하다. 2. 경쾌하다. 가뿐하다.
재才; 1. 비로소, …에야(비로소), 겨우,간신히.
유양悠揚; 태도가 듬직하고 급하지 않음.
무내無奈; 1. 어찌 할 도리가 없다. 부득이하다. 할 수 없다. (=無可奈何‘, 無奈何(2)). 2. 그렇지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공교롭게도. [유감의 뜻을 지님] (=無如)
취시就是; 1. 그래, 맞아. 2. 설사 …일지라도, 가령 …하더라도. 3. 어쨌든, 원래, 과연, 정말, 바로.
장상長相; 용모.
각색角色; 1. 배역. (=각인角儿). 2. 인물. 명사(名士). 3. 역할.
정체整體; (집단이나 사물의) 전체. 총체. (↔개체個體, 局部, 部分) (→全体, 全局, 총체總体, 전반全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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