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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야小野의 옹달샘

음과 양

작성자소야(小野)|작성시간26.06.09|조회수43 목록 댓글 7

옹달샘:
음양陰陽은
고정된 무엇이 아닌,
변화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개념입니다.

동양사상의
하늘天과 땅地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음과 양은
고정된 주체
곧 울타리를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통적 관념에서
하늘은 양, 땅은 음
태양은 양, 달은 음
남성은 양, 여성은 음
긍정은 양, 부정은 음이라는
고정성을 입혀놓았지요.

음과 양은
존재가 드러나는 특정 시/공에서의
경향성을 가리킵니다.

음양은
대상 혹은 주체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닌
단일 특성 혹은 성격이
과한 방향으로 가면 양이고

결핍의 방향으로 가면
음이 됩니다.

즉, 음양은
독립된 2가지 상이한 변수variable의
비교가 아니며

단일 변수의 상태를 표현하는
방식이지요.

A의 특성이
활성화 쪽으로 가면 양
비활성화 쪽이면 음입니다.

빛이 양이고
어둠이 음이 아니라

빛이
더 과한 쪽으로 움직이고 있으면 양
약화되면 음이지요.

어둠이 짙어지고 있으면 양
옅어지고 있으면
음입니다.

이 표현에서
어떤 이들은 약간의 혼란을 느낄 수
있지요.

빛이 약화되는 것과
어둠이 짙어지는 것이
같은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음양의 진정한 특성이
여기서 드러나지요.

음양은
현실 속에 있는 대상 혹은 주체에
관심이 없으며

설정한 관찰의 기준을 중심으로
드러나는 양태가
어떠하냐를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당신은 '음의 성향이다'
혹은 '양의 성향이다' 라고 언급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뜻이지요.

사상체질의학에서
태음인, 소양인 등을 분류할 때

4가지 의학적 특성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을 분류하고 정의하는 방법에서
음과 양을 사용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4가지 특성에 관한 시시비비가
아니라

이들 상태에 관한 규정의 도구가
적절하지 않다는 뜻이지요.

음양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아주 오래 전이며

음과 양을
독립적이며 고정된 객체로
오해하기 시작한 것은

최소한
천 년 이상인 듯 합니다.

이것은
주역이나 명리학을 해석하는
방법론이

잘못된 도구를 사용해왔음을
지적하고 있지요.

이들 분야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늘天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땅地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음은 무엇을
양이 무엇을 가리키는 지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않는 듯 합니다.

소위, 고대 문헌이라는
어쩌면
중요한 지혜를 담을 수도 있으나

함량 미달의 견해가
치열한 검증없이 침투한
혼탁한 정보 조각에

너무 과다한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첫 단추가 어긋나면
전체가 어긋나지요.

근본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부족한
것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지금까지의 관념처럼
음양은
고정된 무엇이 아닙니다.

이것은
현상이 발현되고 있는

현장의 역동적 상황을 가리키고 있지요.

찰나의 전에 양이던 것이
찰나 후엔
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음양을 가르는 기준엔
2가지 요소가 작용하는데

첫째는
관찰자가 정하는 변수variable이며
둘째는
변수의 물리적 방향성이지요.

예를 들어
대인 관계의 친화성을 변수로 정하면

이 친화성의 활성화 정도가
음과 양을 결정합니다.

한 개인의 친화성은
시시각각 음과 양을 오고가지요.

전통적인
우리의 관념은

A라는 사람의 친화성을
고정된 무엇으로 확정하려는
강박을 지니고 있습니다.

붓다 메시지의 핵심은
이런 고정성을
깨고 나오는 것이지요.

제행무상은
금박으로 도금하여 고귀하게
모셔두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시시각각 작동하는
현상의 법칙입니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음과 양에 관한 선택을
요구받고 있지요.

친화성을 활성화할 지
비활성화할 지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음과 양엔
우열이 없습니다.

활성화가 적절할 때가 있으며
비활성화가
그럴 때가 있지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변수의 상태를 표현하는
계측일 뿐입니다.

문헌엔
'음양은 역동적이다' 라는 표현이
있지요.

그러나
사람들의 '역동'에 관한 이해가
다릅니다.

음양은
현상의 미세한 변화를 가리키는
도구입니다.

'남성은 양, 여성은 음' 이라는
무지막지한 저급한 해석은
그만두어야 하지요.

고대의 빛나는 유산을
허접한 해석의 도구로 전락시키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대 문헌이라는 점만으로
권위를 부여해선
안되지요.

어느 시대이든
불필요한 부산물이 더 많이 넘치는 것이
인간 세상입니다.

음양의 개념이
가치를 발하는 이유는

균형을 감지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도구는
그 자체가 아닌
그 쓰임에서 의미를 지니지요.

음양이
근원적으로 이미 존재하고,
그 이후,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이해하는 해석의 방법론으로
음양은 발생합니다.

현상은
고정성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붓다의 견해인 동시에

현재 이 견해를 수용하고
확인해가는 이들의 견해이기도
합니다.

음과 양은
현상의 춤사위와 같습니다.


모여든 직선 의미 높이니
곡선 다가와 지루함 덜고
밝은 공간 점유한 검은 색
유희에 녹아든 밀고 당김.
               ..260609小野

Antje Woo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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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수형 | 작성시간 26.06.09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 작성자보명화 | 작성시간 26.06.10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 작성자유현식 | 작성시간 26.06.10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 작성자자연인(定命) | 작성시간 26.06.10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 작성자하얀그림자 | 작성시간 26.06.10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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