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
삶의 기술은
기준점을 능숙히 변환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관찰엔
기준점이 있고
판단도
이것으로 인해 가능합니다.
견해를 가진다거나
사회에서 한 개체로 살아간다는 것
또한
이것에 기반하지요.
현상에서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도
복수의 기준점을
필요로 합니다.
현상은 2가지 성질에 의해 짜여져
있는데
단일성과 부분성이 그것입니다.
첫째
단일성은
끊임없는 연속을 가능케 하는 힘으로서
현상이
하나의 관계이도록 하는 바탕을
이루지요.
'세상은 하나' '우리는 하나' 라고
언급할 수 있는 출발입니다.
둘째
부분성은
연속을 거슬러 나누고자 하는
힘으로서
현상의 이원성을 촉발하는
원인이지요.
여기엔
나누어 배제한 영역이 항상 있기에
보편성이 약화되고
특이성이 강해지는 경향이
자연스럽습니다.
부분성의 존재 의미가
특화 혹은 편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분성에
왜 보편성이 약하냐고 따지면
논리적 모순이 되지요.
부분성의 편중이 다름을 만들고
다름이
개체를 낳고
의식이 탑재되면
관찰이 시작되고
관찰이 출발하는 곳에
기준점이 형성됩니다.
기준점의 모태는
부분성이지요.
현상에서 부분성은
임의성이기에
고정된 규칙과 절대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현상에서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지요.
판단과 견해는
부분이 제공하는 조건하에서 성립한
임의성입니다.
이제
개념의 나열을 떠나 일상의 수준으로
돌아오면
일상은
판단과 견해의 바다이지요.
앞에서 지루하게 나열한
얘기는
각자의 견해가 지니는
가치와 무게를
폄하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이 가진 제약과 조건으로 인해
그 특성과 고유성이
높아짐을 언급하기 위해서이지요.
인간 삶이란
무한한 가능성을 한번에 온전히
보여주는
절대 보편의 차원이 아닙니다.
삶은
현장이라는 부분의 플랫폼에서
펼쳐지지요.
현장은
조건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마당입니다.
그리고 여기엔
다름의 개체들이 있지요.
기준점은
우리의 습관적 이해처럼
그렇게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기준점은
누군가 만든 작품과 같지요.
거기엔
배경과 의도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기준점은
고유성의 가치를 지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보편적 옳음을 지니거나
현장의 적절성을
가진다는 뜻은 아니지요.
기준점의 유연성에 관한 이해를
높였다면
현상의 첫째 특성인 단일성에서
파생된
맥락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맥락은
다름과 동일성의 기본 성질을
지녔습니다.
분절된 다름에
통일성이 부여됨으로써
맥락이 탄생하지요.
맥락은
인간 삶에서 가치와 의미의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단면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가치에
연속성 혹은 역사성을
가미함으로써
관계의 복잡도와 수준을
높이고
높아진 관계성 속에서
2차 3차 파생하는 가치들이
전체 가치의
수준을 높이지요.
맥락은
현장에서 발생한 기준점의 평면성에
입체감을 부여합니다.
우리가
단일 기준점이나 견해에 관한 매몰을
경계하고
다양성을 강조하는 이유이지요.
맥락은
단편적 가치를 확장하는 도구입니다.
결론적으로
기준점은 수평적 개체들 사이에서
유연성을 얻고
입체적 맥락에서
확장을 획득합니다.
인간 사회는
견해들의 정글이지요.
모든 견해가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순 없습니다.
견해에 우열이 있는 것은
현상에
차원의 등급이 있기 때문이지요.
하나의 현장에선
하나의 기준점을 세우지만
성장하는 차원을 따르며
기준 또한
성장해야 하지요.
우리의 현실적 과제는
비록 현장에서
기준점을 설정하지만
이것의 전환에 관한
유연성의 요구입니다.
삶은 정지되어 있지 않고
성장하거나
쇠퇴할 수 있지요.
기준이란
고정성을 대표하지만
언제나
성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기준점의 존재 이유는
지키려는 불변이 아니며
성장의 맥락에서만
의미를 지닙니다.
각자의 높고 견고한 기둥
좁은 단면 쪼그려 앉으니
보일까 외면하는 허전함
파도는 누워 해변 품누나.
..260616小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