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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야小野의 옹달샘

성장의 근간은 지속성

작성자소야(小野)|작성시간26.06.19|조회수29 목록 댓글 7

옹달샘:
지속성은
역량이나 우호적 환경보다
성장에 더욱 결정적입니다.

성장에 관한 대표적 비유는
씨앗이 있지요.

여기엔
2가지 요소가 있는데

작은 것이 크게 된다는 사실과
어떤 밭
즉 환경의 적절성이 그것입니다.

씨앗의 은유는
가능성이 발현됨이 그 요지입니다.

여기에 들어있는 전제는
가능성의 방향이
이미 담지되어 있다는 점이지요.

큰 방해 요소만 없으면
씨앗은
발아하고 성장합니다.

운명론적 요소가
다분히 들어있지요.

그래서
신생아의 유전자를 조작해보려는
유혹을 받고

문화마다 다양한 점술을 통해
이것을 확인하려 합니다.

길고 방대한 관찰을 통한 인간 삶은
확실히
운명이라 할 수 있는
씨앗의 가능태가 있기는 하지요.

그러나
가능성을 지난 씨앗이
피할 수 없는 또 다른 운명은

자신의 여정이
언제든 단절될 수 있는 도전에
직면한다는 사실입니다.

점술가의 해석이 매번 빗나가고
유전자가
변이를 거듭하는 이유가
이 도전의 사건에서 발생하지요.

씨앗에 비유되는 인간의 설계도는
인연이라는
잠재성의 극히 작은 부분에
해당합니다.

인연은
각 씨앗에 설계도를 그려넣는 동시에
그 보다 더 큰 영역에서
작동하는
도전을 설계하고 있지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정보의 작은 소스에 매몰되어

큰 스케일 안에서 다가오는 도전에
적응할 훈련을 소홀히
합니다.

물론 씨앗 속엔
도전에 대응하는 정보도 있겠지요.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
그 정보는 소실됩니다.

현실에서
씨앗의 고유성이
온전히 발현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듯 합니다.

본인들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인연은
모든 씨앗에
충분히 발현할 기회를 주지만

우리가
그 기회를 붙들지 못하는 것이지요.

앞서 언급한 대응하는 정보와
기회의 상실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서 발생합니다.

삶의 현장은
씨앗의 정보나 자산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단편적인 곳이 아니지요.

오래된 성장의 은유에
항상 포함되어 있는 요소는
'성장의 조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쉽게 간과합니다.

주체 곧 씨앗의 성질과 특성이
본성이라는
사고의 패턴에 익숙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전통적으로
인간이나 주체에 초점을 맞추지

그 환경에 초점을 두는 사고는
많이 해보지 않았습니다.

어떤 주제이든
결국 자신이라 여기는 '나'의 모습에
귀속시키는 상황이
이것을 방증하지요.

실제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환경이지
씨앗이 아닙니다.

인간 성장의 관건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이지

물려받은 유전자나
부모의 후광이 아니지요.

물론
부모의 후광이
사회적 출발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성장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많은 자녀들이
부모의 후광을 소비하지만

그것을 성장으로 이어가기는
굉장히
어려운 과제이지요.

삶과 성장의 최전선엔
선택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성 없는 선택은
곧 흔들리고 쓰러지지요.

적절한 선택이
요행으로 발생할 수도 있으나

이것이
성장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성장은 그 구조상
일련의 과정과 시간을 필요로 하지요.

간단없는 지속성이
성장의 핵심입니다.

일시적 중단이나 끊김 이후
그 자리로 돌아오기엔
많은 힘이 들지요.

정교하고 어려운 과정일수록
그 복원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성장의 가지는 부러지지요.

씨앗에 설계도가 없어서도
선택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성장의 구조를 모르고
어디에
초점이 있는 지를 모르기 때문이지요.

누군가로부터
조언은 들었겠지만

태양아래 이슬처럼
흔적 조차 없습니다.

농사는
대표적 성장의 서사입니다.

한 시기의 단절이
전체 수확을 망치지요.

자신의 씨앗과 부모의 후광에
자만하면
성장은 없고 소비만 있지요.

우리는 태어나며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많은 자산을 가지고 시작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지
종착지도 과정도 아닙니다.

삶은
과정입니다.

이것은
지속성을 요구하지요.

꿈은 원대해도
도달하는 이가 적은 이유입니다.

성장에서
역량이나 선택이
주요한 역할을 하지만

지속성의 부재는
그 모두를
한 순간에 지워버리지요.

생명과 사건은
맥락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닦음은
종착지가 없는 과정입니다.

인간현상에
종착지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닦음은
지루하고 난해한 과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종착지가 없어도
우리가 감내하는 이유는
성장을 경험하기에 그렇지요.

과정이 아닌 목적지를 찾는 이들이
닦음에서
실패하는 이유입니다.

과거의 선현들은
어느 누구도
목적지를 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방향과 과정만을 제시했지요.

그러나
불교와 기독교를 비롯한 교단은
목적지를 쫓습니다.

원래 존재하지 않는 목적지를
찾으니
모호하고 혼란스럽지요.

깨달음을 얻어야 하고
신통을 해야 하고

메시아가 재림해야 하며
어떤 형태이든
천국에 진입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행위에
무엇이 잘못되었는 지조차
이해하지 못하지요.

인간현상은
맥락을 통해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정답을 맞추고
상응하는 상을 받는 것이
인간현상이 아니지요.

맥락은
지속성에서 의미가 발현합니다.

인간의 진정한 의미는
성장하고 있는 그 순간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순간 순간이
사실은 목적이지요.

자신의 존재 방식이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에겐
시간이라는 사선 위의 종착지가
없기 때문이지요.

영성 수련에서 이 점을 놓치면
모든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닦음에서
지속성의 비중이
충분히 이해되어야 합니다.


닳아 패인 긴 시간의 계단
오르는 수고 땀에 젖었고
내리는 긴장 바닥 갈라도
아직 숨쉬는 의연한 의미.
               ..260619小野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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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瑞彌(오혜식) | 작성시간 26.06.19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 작성자향림(세화) | 작성시간 26.06.19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 작성자수형 | 작성시간 26.06.19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 작성자자연인(定命) | 작성시간 26.06.20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 작성자유현식 | 작성시간 26.06.20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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