治心之道
荀子價值根源之所在——解蔽篇
순자 解蔽해폐
故由用謂之道(고유용위지도),盡利矣(진리의)。
실용만을 쫓는 것을 도라고 한다면
이로움만을 다하게 될 것이고
由欲謂之道(유욕위지도),盡嗛矣(진겸의)。
바램을 쫓는 것을 도라고 한다면
마음에 맞는 것만을 다하게 될 것이고
由法謂之道(유법위지도),盡數矣(진수의)。
법을 쫓는 것을 도라고 한다면
책략만을 다하게 될 것이고
由埶謂之道(유예위지도),盡便矣(진편의)。
권세를 쫓는 것을 도라고 한다면
아첨만을 다하게 될 것이고
由辭謂之道(유사위지도),盡論矣(진론의)。
말을 쫓는 것을 도라고 한다면
논의만을 다하게 될 것이고
由天謂之道(유천위지도),盡因矣(진인의)。
자연을 쫓는 것을 도라고 한다면
말미암는 대로 다하게 될 것이다.
此數具者(차수구자),皆道之一隅也(개도지일우야)。
이러한 묘책들이 갖추어진다 하여도
도의 한 구석에 견주어질 뿐이다.
夫何以知(부하이지)?
대저 어째서 도를 깨달아야 하는가?
曰:心知道(심지도),然後可道(연후가도);
사람의 마음이란 도를 깨달아야만
그런 연후에 따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可道然後守道以禁非道(가도연후수도이금비도)。
도 따르기가 가능해야 그런 연후에
도를 지켜낼 수가 있고,
도를 어긋나게 함을 금할 수가 있는 것이다.
以其可道之心取人(이기가도지심취인),
則合於道人(즉합어도인),
而不合於不道之人矣(이부합어불도지인의)。
가히 도를 구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상대한다면,
도와 합당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며
도와 거리가 먼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될 것이다.
以其可道之心與道人論非道(이기가도지심여도인론비도),
治之要也(치지요야)。
가히 도를 구하는 마음으로 깨달은 사람과 함께한다면
도를 어긋나게 하는 것에 대하여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근본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何患不知(하환부지)?故治之要在於知道(고치지요재어지도)。
어찌하여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는가?
본디 다스림의 근본은
도를 깨달음에 있다.
心者(심자),形之君也(형지군야),
而神明之主也(이신명지주야),
出令而無所受令(출령이무소수령)。
마음이란 육체의 임금이며, 신명의 주인이다.
명령을 내리기는 하지만
아무 곳으로부터도 명령을 받는 일이 없다.
自禁也(자금야),自使也(자사야),自奪也(자탈야),
自取也(자취야),自行也(자행야),自止也(자지야)。
마음은 스스로 금하고 스스로 부리며
스스로 뺏고 스스로 가지며 스스로 행하고 스스로 멈춘다.
故口可劫而使墨云(고구가겁이사묵운),
形可劫而使詘申(형가겁이사굴신),
心不可劫而使易意(심불가겁이사역의),
是之則受(시지즉수),非之則辭(비지즉사)。
입은 협박하여 침묵을 하거나 말을 하게 할 수 있고
육체는 협박하여 굽히거나 뻗게 할 수가 있으나,
마음은 협박하여 뜻을 바꾸게 할 수가 없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면 받아들이고,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면 물리친다.
故曰:心容(심용)--其擇也無禁(기택야무금),
必自現(필자현),其物也雜博(기물야잡박),
其情之至也不貳(기정지지야불이)。
그러므로 “마음은 그가 선택한 것을 받아들이는 데
금하는 것이 없고, 반드시 스스로 보고 택하는 것이며,
그것을 잡다하지만 그의 정신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에는
헷갈리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詩云:“采采卷耳(채채권이),不盈傾筐(불영경광)。
嗟我懷人(차아회인),寘彼周行(치피주행)。
”傾筐易滿也(경광역만야),卷耳易得也(권이역득야),
然而不可以貳周行(연이불가이이주행)。
<시경>에 “나물을 뜯고 또 뜯어도, 납작바구니에도 차지 못하네.
아아. 내 그리운 님 생각에 바구니도 한길 위에 내던지네.”라고 읊고 있다.
납작한 바구니는 채우기 쉬운 그릇이고, 나물을 뜯기 쉬운 풀이다.
그러나 “한길로 떠나간 님 생각”때문에 다른 일은 되지 않는 것이다.
故曰:心枝則無知(심지즉무지),傾則不精(경즉부정),
貳則疑惑(이즉의혹)。
그러므로 “마음이 갈라지면 아는 것이 없게 되고,
마음이 기울어지면 깨끗하지 못하게 되며,
마음이 헷갈리면 의혹이 생긴다”고 하는 것이다.
以贊稽之(이찬계지),萬物可兼知也(만물가겸지야)。
마음으로 참고하고 고증하면 만물은 아울러 알 수가 있게 된다
身盡其故則美(신진기고즉미)。
몸으로 일에 대해 성의를 다하면 곧 아름다워진다.
類不可兩也(류불가량야),
故知者擇一而壹焉(고지자택일이일언)。
모든 일은 한꺼번에 두 가지를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하나를 택해 한결같이 하는 것이다.
일정하지 않지만 일정한 것이 마음이요
부리지 않지만 스스로를 부리는 것이 또한 마음이다.
천리길도 마다 않는 것이 마음이요
한걸음도 마다하는 것 또한 마음이다.
精於物者以物物(정어물자이물물),
精於道者兼物物(정어도자겸물물)。
사물에만 정통한 사람은 사물을 그 사물로써만 다루고,
도에 정통한 사람은 사물들을 아울러서 다룬다.
故君子壹於道(고군자일어도),而以贊稽物(이이찬계물)。
그래서 군자는 도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구하고
사물들을 찬찬하게 헤아린다.
壹於道則正(일어도즉정),以贊稽物則察(이찬계물즉찰);
도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구하면 바르게 되고,
사물들을 찬찬하게 헤아리면 잘 살피게 된다.
以正志行察論(이정지행찰론),則萬物官矣(즉만물관의)。
뜻과 행동을 바르게 하고 사리를 잘 살피면
온갖 것들이 제 구실을 한다.
道經曰:“人心之危(인심지위),道心之微(도심지미)。”
危微之幾(위미지기),
惟明君子而後能知之(유명군자이후능지지)。
도경에 이르길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도의 뜻은 은미 하다."
위태롭고 은미 함의 낌새는
오직 군자다움이 드러난 연후에
깨달음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故人心譬如槃水(고인심비여반수),正錯而勿動(정착이물동),則湛濁在下(즉담탁재하),而清明在上(이청명재상),
則足以見鬒眉而察理矣(즉족이견진미이찰리의)。
사람의 마음은 마치 쟁반의 물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바르게 놓고 움직이지 않게 한다면
지저분하고 탁한 것은 아래로 내려가고 맑고 밝은 것은 위에 있게 된다. 그러한 물에서는 수염과 눈썹까지도 비추어 보고 잔주름까지도 살필 수가 있을 것이다.
微風過之(미풍과지),湛濁動乎下(담탁동호하),
清明亂於上(청명란어상),
則不可以得大形之正也(즉불가이득대형지정야)。
心亦如是矣(심역여시의)。
그러나 미풍이라도 불어오면 지저분하고 탁한 것이
아래편에서 움직이고, 맑고 밝은 것이 위편에서 어지러워져,
큰 형체조차도 올바르게 비추어 볼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마음도 이와 같게 된다.
故導之以理(고도지이리),養之以清(양지이청),
物莫之傾(물막지경),
則足以定是非決嫌疑矣(즉족이정시비결혐의의)。
그러므로 도리로서 행하고,
맑게 함으로서 기르고,
살피는 것을 기울어지지 않게 하면,
옳고 그름을 다스리고 의심과 함께 안정됨을 판단함에 만족하게
될 것이다.
小物引之(소물인지),則其正外易(즉기정외역),
其心內傾(기심내경),
則不足以決麤理矣(즉부족이결추리의)。
사소한 일에 이끌리게 되면
그 올바름이 다스림을 벗어나게 하고
그 마음은 기울어짐에 이르러
많은 도리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凡觀物有疑(범관물유의),中心不定(중심부정),
則外物不清(즉외물불청)。
무릇 사물을 봄에 있어 의심이 있어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면
바깥의 사물들을 분명하게 헤아리지 못한다.
吾慮不清(오려불청),未可定然否也(미가정연부야)。
나의 생각이 깨끗하지 않으면,
그러함과 그렇지 않음을 결정하지 못한다
凡以知人之性也(범이지인지성야),
可以知物之理也(가이지물지리야).
대체로 사람의 본성을 알면 사물의 이치를 알 수 있게 된다.
以可以知人之性(이가이지인지성),
求可以知物之理(구가이지물지리),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음으로 사물의 이치를 알길 추구한다 하여
而無所疑止之(이무소의지지),
의심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면
則沒世窮年不能遍也(즉몰세궁년불능편야).
세상에서 죽고 나이를 다 보낸다 해도
두루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其所以貫理焉(기소이관리언), 雖億萬(수억만),
이치를 꿰는 방법이 비록 억만 가지더라도
已不足以浹萬物之變(이불족이협만물지변),
與愚者若一(여우자약일);
이미 만물의 변화를 두루 알기엔 부족하니
어리석은 사람과 매일반이다.
學老身長子(학노신장자), 而與愚者若一(이여우자약일),
배우기 시작하여 몸이 늙고 자식이 장성했는데도
어리석은 사람과 매일반인데도
獨不知錯(독불지착), 夫是之謂妄人(부시지위망인).
홀로 어긋남을 알질 못하니 이것을 ‘망령된 인간’이라 말한다.
故學也者(고학야자), 固學止之也(고학지지야).
그러므로 배운다고 하는 것은 진실로 목적지에 그칠 것을 배우는 것이다.
傳曰:“天下有二(천하유이):
非察是(비찰시),是察非(시찰비)。”
천하는 두 가지 할 일이 있다.
그르다고 할 때는 옳은 것은 없는가 살피고,
옳다고 할 때는 그른 것은 없는가 살펴야 한다.
天下無二道(천하무이도), 聖人無兩心(성인무양심)
천하 원리는 둘이 될 수 없고,
성인에게는 두 마음이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