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고창군高敞郡 성송면星松面 **리里
정수(병)환鄭壽(秉)煥 씨전氏前 회람回覽
정읍군井邑郡 내장면內藏面 벽련암碧蓮庵
김벽산金碧山 **
<엽서 발송날자(명확하지 않음): 소화18~20년(1943~45년) 3월 7일>
뒤
達磨大師 曰
若不見性 說得十二部經敎 盡是魔說 魔家眷屬
不是佛家弟子 既不辨皂白 憑何免生死
若見性 即是佛 不見性 即是衆生
(乃至)先須見性然後 息緣慮 若不見性 得成佛道 無有是處
(乃至)假使說得千經萬論 若不見性 只是凡夫 非是佛法
至道 幽深 不可話會 典敎 憑何所及
但見本性 一字不識 亦得
(乃至)但不見性人 讀經念佛 長學精進 六時行道
長學坐不臥 廣學多聞 以為佛法 此等衆生
盡是謗佛法人 前佛後佛 只言見性 諸行無常
若不見性 妄言我得阿耨菩提 此是大罪人
十大弟子 阿難 聲聞中得第一 云 云 하셨으니
* 해석
(혈맥론에서)달마대사達磨大師 왈曰
1.
약불견성若不見性하면 설득12부경교說得十二部經教하여도
진시마설盡是魔說이며 마가권속魔家眷屬이며
부시不是불가제자佛家弟子니 기부변조백既不辨皂白이어니
빙하면생사憑何免生死리오
* 만약 견성하지 못하면 설사 12경부의 가르침을 모두 설하여도 모두가 마구니 말이오 마구니 권속이며 부처집안의 제자가 아니니 이미 흰 것과 검은 것을 가릴 줄 모르거늘 무엇에 의지하여 생사를 벗어나겠는가
2.
약견성若見性하면 즉시불即是佛이요
불견성不見性하면 즉시중생即是衆生이니라
* 만약에 견성하면 곧 부처요 견성하지 못하면 바로 중생이다
3.
선수先須견성연후見性然後에 식연려息緣慮니
약불견성若不見性하면 득성불도得成佛道가
무유시처無有是處니라
* 먼저 반드시 견성 후에 인연에 얽힌 생각을 쉬어야 하나니 만약 견성하지 못하고 불도를 이룬다고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로다
4.
가사설득假使說得천경만론千經萬論이라도
약불견성若不見性하면 지시범부只是凡夫요
비시불법非是佛法이라
* 설사 천 가지 경전과 만 가지 논을 설한다 하더라도 만약에 견성하지 못하면 다만 범부요 부처님 법은 아니니라.
5.
지도至道는 유심幽深하야 불가화회不可話會니
전교典教가 빙하소급憑何所及이리오
단견본성但見本性하면 일자불식一字不識도
역득亦得이니 견성見性이 즉시불即是佛이니라
* 지극한 도는 그윽하고 깊어서 말로는 이해할 수 없으니
경전의 가르침으로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다만 본 성품을 보면 글자도 모른다 해도 또한 얻은 것이니
견성이 곧 부처이다
6.
단불견성인但不見性人은 독경염불讀經念佛하며
장학정진長學精進하며 육시행도六時行道하며
장학좌불와長學坐不臥하며 광학다문廣學多聞으로
이위불법以為佛法하나니 차등중생此等衆生은
진시방불법인盡是謗佛法人이라 전불후불前佛後佛이
지언견성只言見性이니 제행諸行은 무상無常이라
약불견성若不見性하고
망언아득妄言我得아누보리阿耨菩提라하면
차시此是대죄인大罪人이니라
* 다만 견성하지 못한 사람은 경을 읽고 염불하며
오래도록 배우고 정진하며 하루 종일 도를 행하고
눕지 않고 오래 정진하며 널리 배워 많이 아는 것으로
불법을 삼는다 하니 이와 같은 중생들은 모두 불법을
비방하는 사람들이다 앞 뒤 모든 부처님들은 다만 견성을
말씀만 하셨으니 제행은 무상이라 만약 견성하지 못하고
헛되게 내가 위없는 보리를 얻었다고 한다면 이런 사람은
큰 죄인이니라
7.
10대제자十大弟子에 아난阿難이
성문중득제일聲聞中得第一 운云 운云
부처님 십대제자 가운데 아난이 성문(聲聞)가운데 제일 운 운 하셨으니 정력(靜力)만 *로(勞)치 말으시고
천일학혜(千日學慧) 불여일일지학도(不如一日之學道)요,
천일학도(千日學道) 불여일일지수행(不如一日之修行)으로 체득(體得)하시며 법연(法緣)을 용단(勇斷)하신 ******하십시요! **히 오(五) 책자(冊子)라 하나 팔구십권(八九十卷)
내지(乃至) 수천권(數千卷)이요.
*지(之)불문(不問)입니다. 이차(以此)**
* 견성(見性): 불교에서는 중생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는 부처가 될 수 있는 본성을 불성(佛性)이라고 한다. 따라서 마음을 잘 닦아서 미혹(迷惑)에서 깨어나면 곧 부처가 됨을 가르치고 있다.
교종(敎宗)에서는 이 마음 닦는 방법을 계(戒)·정(定)·혜(慧)의 3학(三學), 또는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 등 6바라밀(六波羅蜜)의 교리와 실천행을 제시하였다.
선종에서는 복잡한 교리나 단계를 밟는 수행법보다는 ‘마음이 곧 부처
[卽心卽佛]이므로 곧바로 본성을 보아서 부처를 이루는 것[見性成佛]’을 종지로 삼고 있다. 즉, 선법(禪法)으로서 마음을 직관(直觀)하고
정신을 통일하여 마음의 본바탕을 발견하면 부처가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견성을 가장 근본적인 과제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