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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켄 윌버의 일기

작성자山木|작성시간22.10.12|조회수113 목록 댓글 1

* 깨달음에 관한 가장 심원한 질문들


6월 2일 월요일

"이른 아침, 비어 있고 빛나는 명쾌함 속에서 오렌지빛 태양이 반짝거리며 천천히 떠오르고 있다. 마음과 하늘은 하나이고 태양은 원초적 자각의 광대한 공간 속에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단지 이것만이 존재한다. 한번은 아스타니 로시가 "깨달음에 대해 말하길,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깨달음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이 궁극의 실재를 이해하려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지만, 깨달음이나 자각과 함께 가장 심원의 질문들 모두가 마침내 답을 얻기 때문에, 바로 이것인 것이다."


6월 3일 화요일

"그래서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 세계의 에술 상태에 대해 우려하는가? <5280매거진 >에 실린 내용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우스꽝스러운 세상에 대한 리포트를 방송했을 때, 몰리 세이퍼는 요즘의 예술이라고 통하는 가장 모욕적인 본보기로 진짜 담배와 담배꽁초로 가득 찬 8피트 짜리 재떨이를 언급했다. 세이퍼가 해설로 덧붙이기를 , 그 재떨이를 최근 덴버 미술관에서 6만 달러를 주고 구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의 사업 윤리에 대해 우려하는가? "남자의 건강"에 보도된 내용이다. "직장에서 나타내야 할 자질; 1위는 충성심, 대표이사들을 대상으로한 최근의 설문조사에서 86%는 하급자에게서 충성심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고 답했다. 최하위는 성실성, 단 3%만이 성실성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6월 4일 수요일

"아침 내내 작업을 했다. 집 뒤편 아래쪽으로 조깅하러 가기로 했다. 만약 달리는 동안 주시자로 남는다면 내가 움직이지 않고 땅이 움직인다. 주시자로서의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는, 나 자신인 광대한 공간에 안식할 때 내게는 아무런 특성도, 아무런 기색도, 아무런 움직임과 동요도 없는 것이다. 움직임을 인식하기 때문에 주시자로서의 나는 움직임이 아니다. 따라서 달리고 있을 때, 실제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으며 -  주시자에게는 움직임도 정지도 없는 것이다. 땅이 그저 움직여 나가는 것 처럼 느껴진다. 마치 극장에 앉아 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않지만 모든 배경이 주위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이것은 고속도로에서 운전할 때 쉽게 할 수 있다. 그저 등을 기대고 앉아 긴장을 풀고,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배경만이 움직이는 척하는 것이다. 이는 종종 사람들을 실제 주시자 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 시점에서는 세상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무선택적 각성으로 그저 안식할 것이며, 전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순수한 각성인 이 움직이지 않는 중심은 실제로는 전체 온 우주적 대폭풍의 또는***@@@ 나-나다. 이 부동의 중심은 - 중심이 어디에나 경계는 어디에도 없는 원은 전 세계에 유일하게 하나만이 존재하며 모든 존재에 있어서 동일하다. 또한 우리의 혼이 갖는 인력의 중심이기도 하다."

"이것이 선에서 뉴욕에 있는 남자가 보드카를 마시자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남자가 취한다"라고 하는 이유다. 동일한 큰 마음은 영원히 그리고 무한히 두 장소에 모두 존재한다. 그리하여 뉴욕에서 마시는 것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취하는것은 부동의 무한한 주시자에게는 똑같은 것이다. 이것이 선에서 "움직이지 않고 뉴욕으로 가라"라고 하는 이유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이렇다. "나는 이미 그곳에 있다."


"주시자로서의 나-나는 시간을 관통하여 움직이지 않고 시간이 나를 관통하여 움직인다. 구름이 하늘을 떠나니듯 시간이 내 원초적 자각이라는 열린 공간을 떠다닌다. 그리고 나-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들의 불평에 흔들리지 않은 채로 남는다. 영원은 시간속에서 언제까지나 사는 것- 상당히 무서운 개념이다.- 이 아니라, 무한한 순간 속에서 시간과 그 소란 전부에 앞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무한은 정말로 큰 공간이 아니라 완전히 한계가 없음을 의미한다. 주시자로서의 나-나는 무한하다. 주시자로서의 나-나는 영원하다. 나-나는 영원속에 살며 무한에 깃든다. 단지 주시자가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뉴욕에서 보드카를 마시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취할 수 있는 이유다. 그리하여 오늘 아침 나는 조깅하러 갔고, 내 삶이라는 영화의 배경을 빼고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6월 5일 목요일

"아난다 쿠마라스와미에서 휴스턴 스미스에 이르는 학자들은, 영원의 철학에서 핵심은 존재의 대사슬, 즉 존재의 대둥지라는 것을 지적해 왔다. 그러나 이제 전통적으로 이해되었던 대사슬에는 적어도 네 가지 주요한 결함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며, 현대 그리고 포스트모던 세계로 대사슬을 가져오고 진정으로 통합적인 접근법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 결함을 조심스럽게 언급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대사슬은 물질, 신체, 마음, 혼 그리고 영으로 제시된다. 다양한 전승에서는 이것을 다시 하위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혼은 심령과 정묘 수준으로 흔히 나뉘며 영은 시원과 비이원으로 나뉜다. 그러므로 확장된 대둥지는 물질, 신체, 마음, 혼(심령, 정묘) 그리고 영(시원과 비이원)을 포함할 것이다."


"그것은 좋다. 하지만 그런 수준들은 모든 실재를 포함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이미 언급했듯 그것들 대부분은 단지 좌상상한@@@ (내적 의식의 스펙트럼)에만 적용되며 이것이 첫번째 결함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대사슬의 각 수직적 수준은 네 가지 수평적 차원(4상한)으로 분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려 해 왔다. ,간주관적인 문화적 배경(좌하상한)그리고 집합적 사회체제(우상상한)를 덧붙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며 대사슬은 근대성이 올바르게 퍼부어 온 통렬한 비판을 견뎌 낼 수 없다."


*아난다 쿠마라스와미(1877~1947); 인도의 미술사가이자 철학자로, 인도 미술사 및 동서양을 아우르는 철학, 형이상학에 큰 영향을 끼쳤음


'가령 여러 위대한 전승에서는 의식의 상태(좌상상한)가 유기체적 두뇌(우상상한)와 관련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정신약리학과 정신의학 그리고 의식연구에 대한 이해에 대변혁을 가져온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여러 전승에서 개인적 자각(좌상상한)이그 배경의 문화적 세계관(좌하상한)과 기술경제적 생산(우하상한)의 방식 -그 안에서 개인적인 자각은 스스로를 발견하다.-에 의해 심오하게 형성된다는 것을 이해했다는 증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대둥지는 특히 근대 생물과학, 마르크스주의자, 문화와 역사 연구로 부터 통렬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의식이단순히실체가 없는 초우 ㅓㄹ적 본체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과 문화적 배경, 그리고 사회 구조의 맥락 속에 깊이 파묻혀 있다는 것을 논증했던 것이다. 대사슬 이론가들은 이런 비난에 대해 믿을 만한 응답을 한 바가 없다. 그들에게는 이 영역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신체, 마음,혼 그리고 영이 4상한 (또는 간편하게 3대 가치)으로 구별되는 경우에만 이러한 비판을 다룰 수 있다."


"두번째 결함은 마음의 수준 그 자체는 초기의 발달을 고려하여 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서구 심리학의 공헌이 결정적이다.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마음, 그 자체는 적어도 네 가지 성장 단계를 갖는다. 즉, 마법적, 신화적, 합리적 이 통합적 -비조망적 또는 비전-논리 단계 말이다."


"동서양을 같이 참고로 하여 이 모든 증거를함께 모은다면, 보다 완전한 존재의 대둥지는 다음의 열가지 영역을 포함할 것이다. 각각의 영역은 내포이기도 한 발달 안에 앞의 것들을 감싸 안는다.


1. 감각운도 영역;물리적 신체, 물질 수준, 물리적 영역
2. 감정적 -성적 영역; 생물적 동인, 지각, 인식, 느낌/생명에너지, 생명의 약동, 리비도, 프라나, 생체 에너지
3. 마법적 영역;주관과 객관이 제대로 분화되지 않은 마음의 초기 형태(전 조작 또는 초기의 상징과 개졈들)로, 자기 중심성, 인공론, 물활론 , 인간중심주의 그리고 언어적 마법이 특징이다.  내부와 외부가 제대로 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물리적 객체는 인간의 자기 본위적 의도에 의해 물들여진다. 마찬가지로 자기도취된 에고는 세상을 직접 또 마법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토요일 아침의 어린이 만화는 대개 마법적 구조를 갖는다. 초인적 영웅은 힐끗 보기만 해도 산맥을 움직일 수 있고, 하늘을 날며 강철을 녹이고 적을 날려 버리며, 그 밖에도 순수한 마법적 힘으로 세상을 쥐고 흔든다.)간단히 말해, 주체와 객체가 명확히 분화되 않았기 때문에 마법적 에고는 세상을 스스로의 확장으로 간주하며 스스로의 자기본위적 특성으로 물들인다. 자기도취와 자기중심성이 지배하는것이다.


4. 신화적 영역; 마법적 힘이 에고에서 신화적 신과 여신의 주인에게로 옮겨가는 마음의중간 수준(구체적 조작 또는 구체적 법칙/역할의 마음) 에고가 기적적으로 세상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한다면 신과 여신은 그렇게 할 수 있다. 마법에서는 언제나 에고 그 자체가 기적을 행할 힘을 갖지만, 신화에서는 기적을 행할 힘을 언제나 아주 구체적이고 문자 그대로의  방식으로 가령 홍해를 실제로 가른 것은 여호와라는 식으로 위대한 타자가 갖는다. 그리하여 마법은 의식을 통해 스스로 기적을 행하는 힘을 나타낸다. 신화는 신 또는 여신이 기적을 행하게 끔 하려는 의도로 기도를 이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화는 에고 그 자체가 마법과 같이 세상을 쥐고 흔들지 못한다는 최초의 깨달음이며, 따라서 자기도취의 축소이자 자기 중심성의 감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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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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