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산파 장문인 곽종인(마지막)
돈 없이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수경신(守庚申) 공부도 했다. 경신일이 돌아오면 잠을 자지 않고 꼬박 새는 수행법이 바로 수경신이다. 조상들은 경신일에는 우리가 잘 때 몸 안에 있는 삼시충이라고 하는 벌레가 하늘로 올라가 염라대왕에게 우리의 단점을 일러바친다고 믿었다. 그래서 예부터 경신일에는 잠을 자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 곽 선생도 3년 동안 총 18회의 수경신을 지켰다.
1980년대 말부터는 경기도 화현면 운악산(雲岳山)의 바위봉우리 밑에 수진선도원(修眞仙道院)을 지어놓고 수련에 집중했다. 운악산도 악산이라 바위가 많고 기가 강해 수련에는 적지였다. 그러다가 1994년 여름에 재난을 만났다. 산에서 큰 바위가 굴러 떨어져 곽 원장이 수도하던 방을 덮쳤던 것. 그 사고로 무릎뼈, 갈비뼈, 대퇴골이 망가지는 중상을 입었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그때 죽었을 거라고 한다. 병원에 옮겨져 10시간이나 걸리는 대수술을 5차례나 받았다.
곽 원장은 이 사고를 당한 후 자신의 수행을 되돌아보게 됐다. 그동안 제대로 수행한다고 자부했는데, 진짜 도인이라면 어떻게 이런 사고를 당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사고는 자신의 한계에 대해 처절하게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중국으로 가라’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그래서 연고도 전혀 없는 중국으로 무작정 떠났고 그곳에서 왕리핑 선생과 화산의 다상팡을 만나게 된 것이다.
화산에서 수련하면서 그는 운악산의 부상을 완전히 회복했다. 보통사람이 그 정도 다치면 장애인이 됐겠지만 그는 이미 몸 속에 내단(內丹)을 형성하고 있었기에 원상태로 회복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5번 수술을 하면서 꿰맸던 흉터도 말끔하게 지워졌다. 몸 안에 축적된 기운이 피부를 통과하면 흉터가 저절로 지워졌기 때문이다. 곽 선생은 진정한 수행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런 사고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고로 인해 사망하거나 장애인이 된다면 수도할 자격이 모자란 탓이다. 고난과 장애를 극복해야만 프로 수도인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곽 선생과의 대화에서 인상깊게 들은 대목이 있다. 바로 ‘표주(漂周)’다. 표주는 주머니에 돈을 갖지 않은 채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화산 도사들의 커리큘럼에는 ‘전공필수’ 과목으로 표주가 들어있다고 한다. 대략 3년에서 5년 동안 표주를 경험해야만 한다.
그런데 돈 없이 어떻게 여행을 다닌단 말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 능력을 갖춰야 한다. 첫째는 의약에 관한 기술이고, 둘째는 사주팔자를 보아주는 능력, 셋째는 학문이다. 이를 갖추면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굶어죽지는 않는다. 그래서 도사들은 보따리에 침과 약재를 넣고 다닌다.
정처없이 세상을 떠돌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치료해 주고 사주와 주역으로 인생상담을 해주고 총기 있는 소년들에게 글공부를 가르쳐준다. 이렇게 하면서 천하의 인심이 어떻게 돌아가고 물류의 흐름은 어떻게 되며, 각 지역마다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어떠한지를 직접 체험한다.
세상 물정 모르면 엉터리 도사
표주를 해야만 사람이 겸손해지면서 세사를 간파하게 된다. 수도인이 공부하는 데 필수 지침으로 알려진 ‘학인이십사결(學人二十四訣)’이 있다. 24가지 항목 중 첫 번째 나오는 것이 ‘간파세사(看破世事)’다. 세상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물정 모르면 영점짜리 도사다. 표주는 간파세사를 하는 데 있어 필수 과정이다. 아울러 표주를 통해서 고향을 떠나는 경험을 한다. 그래야만 인간관계의 구속을 벗어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표주 도중 진사(眞師)를 만나기도 한다. 진사를 만나기 위해 표주를 자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곽 선생은 표주가 현빈일규(玄牝一竅·단학(丹學) 수련의 경지를 표현한 말. 현빈은 단전(丹田)의 다른 말이며 일규란 호흡수련을 통해 단전에 쌓인 기운이 나아갈 통로를 뜻한다)의 한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선도의 핵심은 현빈일규라는 한 구멍을 찾는 일이다. 이를 찾지 못하면 백날 공부해봐야 도루묵이다. 현빈일규는 외규와 내규(內竅)로 나눠진다. 외규는 밖에 있는 것이고 내규는 몸 안에 있다. “현빈일규를 이루면 어떻게 되는가”라고 물었더니 곽 선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수명이 연장되고 병 없이 장수할 수 있죠. 그리고 지능이 개발됩니다. 뇌세포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작업이기도 해요. 신선들이 현자(賢者)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체의 신비를 밝혀낼 수 있습니다. 현대의학은 인체를 아직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수련을 해서 세포가 활성화되면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인체의 비밀이 상당부분 밝혀지리라 생각합니다.”
趙龍憲
●1961년 전남 순천 출생
●원광대 대학원 불교민속학 전공, 철학박사
●한·중·일 삼국의 600여개 사찰과 암자를 현장 답사
●원광대 초빙교수
●저서 : ‘나는 산으로 간다’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한국이 좁은 나라 같지만 인물을 찾아보면 없는 것은 아니다.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온 지기가 강한 나라라서 그런지 영적인 자질을 갖춘 인물이 끊임없이 태어난다. ‘후천개벽(後天開闢)’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21세기는 여자도인들이 활동하는 시기라 하는데, 곽 선생도 그 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끝)
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발행일: 2004 년 08 월 01 일 (통권 539 호)
쪽수: 542 ~ 555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