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바라밀(六波羅蜜)
정의
대승불교의 여섯 가지 수행덕목(修行德目).
내용
우리 나라 불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보살의 실천행이다. 생사의 고해를 건너 이상경인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실천수행법인 육바라밀은,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등의 여섯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자기의 인격완성을 위하여서는 원시불교의 사제(四諦)와 팔정도(八正道)의 가르침으로 충분하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보살의 수행법으로서 팔정도를 채택하지 않고 육바라밀이라는 독자적인 수행법을 설하였다.
그것은 팔정도가 자기완성을 위한 항목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타(利他)를 위하여는 충분하지 않으며,
보시와 인욕과 같은, 대사회적인 항목을 포함하고 있는 육바라밀이, 보살의 수행법으로 알맞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육바라밀의 수행법에서 보시를
제일 먼저 둔 까닭도, 사회의 모든 사람이 상호협조적인 보시자선을 행하는 것이, 대승불교로서는 가장 필요한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팔정도와 육바라밀의 같고 다른 점은
육바라밀에는 팔정도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는 이외에,
팔정도에 없는 보시와 인욕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두 가지만은 대사회적인 것으로서 이타적인 대승불교의 특질을 나타내고 있다.
[보시]는
재시(財施)·법시(法施)·무외시(無畏施)의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재시는 자비심으로서 다른 이에게 조건 없이 물건을 주는 것이고, 법시는 다른 사람에게 부처의 법을 말하여 선근(善根)을 자라게 하는 것이며, 무외시는 스스로 계를 지켜 남을 침해하지 않고 다른 이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 주는 것이다.
[지계]는
부처가 제자들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막기 위하여 설정해 놓은 법규를, 지키고 범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여, 가지가지 선을 실천하고 모든 중생을 살찌게 하는 행위까지를 포함하게 된다.
[인욕]은
온갖 모욕과 번뇌를 참고 어려움을 극복하여 안주하는 것으로,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인, 성나고 언짢은 마음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이 인욕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복인(伏忍)으로,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먼저 성나는
그 마음을 조복(調伏)하여 억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역경만 참아서는 안 되며,
자기 마음을 즐겁게 하는 순경(順境)도
참아야 한다.
그 이유는, 역경을 참지 못하면 분노가 치밀어서 투쟁하기 쉽고, 순경을 참지 못하면 유혹에 빠져서 몸과 마음을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둘째 유순인(柔順忍)으로,
사람이 참기를 많이 하면 저절로 조복이 되어서, 역경이나 순경을 만날지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셋째 무생인(無生忍)으로,
참고 견디어 보살의 지위에 오른 사람의 인욕행이다.
인생이 무상하며 세상이 허황함을 깨닫고, 일체만법(一切萬法)이 인연으로 모였다가 인연으로 흩어지는 진리를 깨닫고 보면, 별로
성낼 것도 없고 참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넷째 적멸인(寂滅忍)으로,
이것은 부처의 지위에 있어서의 인욕행이다.
생사고해에 뛰어나서
본래부터 적멸한 열반의 경지에 서서
볼 때, 한 물건도 없는 경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인욕행을 닦음이 아니라,
본래부터 한 생각도 일으킴이 없는 곳에,
참된 인욕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진]은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 마음으로 항상 부지런히 닦아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다는 생각과 닦을 바가 있어서는 안 된다.
정(精)은
순일무잡(純一無雜)을 의미하고,
진(進)은 용맹무퇴를 말한다.
이 정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몸과 입으로써 부지런히 착한 일을 닦고 배우며 실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뜻을 항상 진리에 머무르게 하여 모든 생각이 착한 진리를 떠나지 않게 정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밖에도
사정진(事精進)과 이정진(理精進)이 있는데,
사정진은 세간사와 출세간사를 막론하고,
그것을 한번 이루려고 결심하였으면, 그 목적이 성취될 때까지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정진은 악한 생각을 없애고 선한 마음을 일으켜서, 여러 사람이 이롭고 나에게도 좋은 일이거든,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기어이 성취하도록 노력, 정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정]은
수행인이 반야의 지혜를 얻고 성불하기 위하여 마음을 닦는 것이며, 생각을 쉬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생활이 불만과 고통으로 가득차게 되는 까닭은, 잡다한 생각을 쉬지 못하고 어리석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정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공부로서 망념과
사념과 허영심과 분별심을 버리게 한다.
[반야]는
지혜라고 번역한다.
모든 사물이나 이치를 밝게 꿰뚫어보는
깊은 슬기로서, 지식과 다른 점은 지식이 분별지(分別智)인 데 반하여, 지혜는 무분별지이다.
보살이 피안에 이르기 위하여 수행하는
육바라밀 중 마지막의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의 어머니라 하며,
다른 5바라밀을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반야는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① 문자반야(文字般若)는,
부처님이 설한 경(經)·율(律)·논(論)
모두를 가리키는 것이고,
② 관조반야(觀照般若)는,
경·율·논의 문자반야를 통하여
진리를 알아내고
진리에 의하여 수행하는 것이며,
③ 실상반야(實相般若)는 부처가 체득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상의 육바라밀을 보살이, 무량한 세월 동안 수행함으로써 성불하게 되는데, 뒤에 육바라밀에 네 가지 바라밀을 첨가하여 십바라밀을 갖추게 되었다.
ㅡ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ㅡ
참고문헌
『불교학개론』(금동화, 보련각,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