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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지관(止觀)

작성자山木|작성시간22.10.29|조회수114 목록 댓글 1

* 지관(止觀)


정의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

마음을 고요히 하여
진리의 실상을 관찰함.


내용

지관은
지(止)와 관(觀)의
합성어이다.


지(止)는 정신을 집중하여
마음이 적정해진 상태이며,

관(觀)은 있는 그대로의 진리인
실상(實相)을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와 관은 서로
불가분리의 상태에 있으며,

지계(持戒) 등과 함께
불교의 중요한 실천덕목이 되어,

원시불교 이래의
여러 불경에 실려 있다.


이러한 지관을
종합적으로 설하고 있는 것은

수나라 때 천태 지의(天台智顗)가
지은 ≪마하지관 摩訶止觀≫으로서,


좌선할 때의 마음의 문제를
10종으로 분류하고,


나아가
그 마음의 파악 문제를
10종으로 분류하여

자세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는 지의 이후
천태종의 근본 교리가 되었다.


천태종에서는 지는,
마음의 동요를 누르고,

본원의 진리에
정주(定住)하는 것,


관은, 부동의 마음이
지혜의 활동이 되어,

사물을 진리에 따라 올바로
관찰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이때의 지는 정(定)에,
관은 혜(慧)에 해당한다.


즉, 지는 주체의 확립,
관은 이 주체의 확립에서

모든 현상을
전체적·객관적으로 관찰하여,

정확히 판단하고
자유로이 대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형식에는 3종이 있다.

① 선정을 닦아
차례로 실상의 진리를 깨닫는
점차지관(漸次止觀),

② 수행자의 성격이나 능력에 따라
실천의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은
부정지관(不定止觀),

③ 처음부터
실상을 대상으로 삼아
원만하게 결핍됨이 없이

즉시 깨닫는다고 하는
원돈지관(圓頓止觀)이 그것이며,

원돈지관을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하였다.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는
≪대승기신론소 大乘起信論疏≫에서

지관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가하고 있다.


원효는

“보살이 모든 법(法)에
분별하는 바가 없으므로
지라 이름하고,

모든 법의 본질적인 의미와
무한히 깊은 도리에 대한,

세속적
탁월한 지혜를 관이라 한다.”고

지관을 정의하였다.


즉, 지는
진여문(眞如門)에 의지하여

일체의 경계상(境界相)을 끊어
분별을 두지 않는 것이고,


관은 생멸문(生滅門)에 의지하여
인연의 생멸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그 본질적인 의미를
규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원효는 지에 대하여
상세한 주석을 가하였다.


먼저 지를 닦기 위해서는

고요한 곳에 머무를 것,

계율을 청정하게 지킬 것,

의복과 음식에 부족함이 없을 것,

훌륭한 스승인 선지식(善知識)을 만날 것,

모든 반연되는 일들을 쉴 것 등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의 구체적인 수행법을
≪대승기신론≫에서

내주(內住)·등주(等住)·안주(安住)·근주(近住)·조순(調順)·적정(寂靜)·최극정(最極靜)·전주일취(專住一趣)·등지(等持)

아홉 가지 과정으로 나눈 것에
대하여 알기 쉽게 풀이하였다.


그 요점을 정리해보면,

① 내주는 세속의 인과관계 속에서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이, 다 마음을 산란되게 하는 육진(六塵)이므로, 이와 같은 육진에 생각이 끌려감이 없이, 마음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라는 것이다.

② 등주는 평등한 생각으로 차별적인
번뇌들을 꺾어 미세하게 하는 것이다.

③ 안주는 차별적인 번뇌를 끊는 방편인, 평등한 생각마저도 버림으로써, 외경에 대한 번뇌를 대치한다는 생각을 모두 비워서, 편안히 머무는 것이다.

④ 근주는 일체법이 본래 무상(無相)임을 깨달아, 일체법에 능히 생각할 만한 것이 없음을 밝게 아는 것으로, 무상을 깨닫는 데 근주의 묘(妙)가 있다.

⑤ 조순은 다시 바깥 사물에 집착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밖으로 흩어지지 않게 조절하는 것이다.

⑥ 적정은 모든 분별하는 상(想)이 마음을 산란하게 만드는데, 앞과 같이 닦아 익힌 마음으로 움직이는 마음을 동하지 않게 된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⑦ 최극정은 그래도 또 마음이 흩어져 동요를 일으키면, “마음뿐이요 바깥 경계가 따로 없다[唯心無外境界].”는

정념(正念)을 일으켜서, 마음의 동요를 다스리고, 곧바로 마음의 자상(自相)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⑧ 전주일취는 이와 같은 적정이, 앉았을 때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 어떠한 일을 하든 간에, 적정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을 말한다.

⑨ 등지는 이와 같은 적정의 상태가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가, 진여삼매(眞如三昧)의 상태이며, 이를 바꾸어 한결같이[等] 마음을 유지[持]한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지는 진여삼매를 목표로 하며, 구종심주는 지에 의하여 생멸하는 마음을,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바꾸어 놓는 과정을, 아홉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수행자가 지에만 치중하면,
마음이 가라앉아 게을러지고, 모든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을 즐기지 않을 뿐 아니라,

대비(大悲)의 이타행(利他行)을
등한히 할 우려가 있으므로 반드시
관을 함께 닦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면의
관찰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① 이 세상에서 인과의 법칙에 따라 전변(轉變)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어느 하나도 영원하거나 불변하는 것이 없으며, 쉬지 않고 생성 파괴의 과정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할 것[無常觀].

② 인간의 생각과 말과 행위는, 모두 망념(妄念)의 발동으로 인하여,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이며,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고 관찰할 것(苦觀).

③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 우리가 생각해 내는 모든 의식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자주성을 지닌 것이 아니며, 과거의 것은 꿈과 같고, 현재의 것은 번개와 같고, 미래의 것은 구름과 같이 별안간 나타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관찰할 것[無我觀].

④ 인간의 육신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육신은 모두 부정한 것이며, 갖가지로 더럽혀져 있어 하나도 진실로 즐길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관찰할 것[不淨觀] 등이다.


이들 네 가지 관은 현실세계의 실상에 대한 기본적인 관이다. 이 관을 흔히 법상관(法相觀)이라고 부르는데, 법상관에 입각하여 보살은 대비관(大悲觀)을 닦아야 한다고 하였다.


“모든 중생은 근본적으로,
모두 무명(無明)의 훈습(熏習) 때문에, 마음의 동요를 일으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온갖 고통을 받게끔 되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한없는 핍박을 당하고 있으며 앞으로 받을 고통도 한계가 없다.


실로 버리기도 힘들고 벗어나기도 힘들며,
그 무명을 헤치고 지혜로워진다는 것 또한 용이하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중생이 불쌍한 존재임을 전제한 다음 수행자는 큰 용기를 내어 대서원(大誓願)을 세워야 한다고 하였다.


“원컨대 내 마음에서, 모든 차별 대립적인 의식을 없애고, 어느 곳 어느 때나 착하고 좋은 일을 하며,

가능한 방법을 다하여 고통 속에 있는 중생을 구제하여, 그들로 하여금 고통을 벗어나 평화를 얻도록 하겠다.”는 원을 발하는 것이다.


즉, 관이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자비심을 보다 깊이 심는 수행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스스로의 번뇌를 다스려 고요함으로 돌아가는 지(止)의 수행과 함께,

반드시 세상의 실체를 관찰하고 중생을 고통에서부터 구제하겠다는 관행(觀行)
함께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효는 결론적으로, 지와 관이 함께 갖추어지지 않으면 깨달음의 길에 완전히 들어섰다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지관의 수행은, 원효 이후
교학(敎學)을 닦는 수행자들에 의하여 널리 채택되었고,

중국 지의의 지관수행법과 함께, 우리 나라
고려의 천태종 수행법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선종의 발달과 함께
고려 중기 이후에는,

지관보다 참선(參禪)의 수행법
불교도들 사이에서 더 많이 채택되었다.



ㅡ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고문헌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원효사상』 Ⅰ(이기영, 홍법원, 1967) 
『불교학개론』(김동화, 보련각,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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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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