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정·무정 개유불성
우리가 잘 아는 부처님 말씀 중에
유정·무정 개유불성이라는 표현이 있다.
아무리 유마의 불이(不二) 설법에서는 사바세계와 부처님 정토가 다르지 않다고 하며
선가(禪家)에서는 유무(有無)나 마불(魔佛)이 따로 없다 하고, 우리 몸도 어차피 지수화풍의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그럴 수도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유정물(有情物)은 그래도 당장 눈앞에서 생생하게 돌아다니며 울고 웃고 하는 주인공을 지니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른 돌멩이 같은 무정물도 불성(佛性)을 지닌다 하니 어찌된 말일까.
생명체는 DNA라는 복제 가능한 유전물질을 바탕으로 생식활동을 통해 자신과 유사한 자손을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간단한 생물체로서 무생물과의 경계에 있다고 생각되어온 바이러스들도 스스로 복제하는 힘은 없지만 그 나름대로 유전물질을 지니고 있어서 숙주의 세포내에 들어와 기생하여 자신의 자손들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무생물은 유전자를 지니지 않기에 지금까지 생물과 무생물은 확실히 다른 것이라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이렇게 복제 가능한 유전자에 의거한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은 1990년대에 들어와 전면적으로 도전받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의 치매와 같은 증상을 일으킬 수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 파문을 일으킨 소에서의 광우병 원인체를 규명하고 나서부터였다.
프리온이라는 이 원인물질은 유전자를 전혀 지니고 있지 않은 단순한 단백질에 불과했던 것이다. 단순한 단백질에 불과하여 유전자도 없는 무생물이 생물체내에서 증식하고 전파되어 확산되어 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생물체와 무생물체의 기준인가?
이때 비로소 생명과학자들은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란 따로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유정, 무정이란 단순한 우리 기준의 분류이자 간택(揀擇)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유정, 무정이란 커다란 한 바탕으로부터 비롯되어 단지 원인과 결과에 의해 취하게 된 모양새(相)에 불과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고, 이것을 밝힌 미국의 프루즈너 교수는 1997년에 노벨상을 받게 된다.
이렇듯 우리가 생물이나 무생물로 어떻게 받아들여 이름 붙이건 그것은 단지 이름 하여 유정, 무정이지 그 본 바탕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
부처님께서 이미 이천년도 넘는 오래 전에 이러한 부분을 꿰뚫어 보시고 겉모양과 무관하게 모든 것의 원래 바탕으로서 불성을 말씀하신 것과 더불어 과학이 이렇듯 부처님 말씀에 맞아가는 것에 놀라게 된다(부처님 말씀이 이렇게 과학적이라는 표현과는 다르다는 점에 유의할 것).
삼라만상이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동시에 마음은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아
오직 이 마음이라 불리는 불성(佛性)을 제대로 알면 대장부 일을 마칠 것이니 불성에 실체가 있느냐, 없느냐의 공허한 논의는 시간 많은 이들이나 하라고 하고 우리는 오직 마음공부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면역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