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모든것이 변했다
저자 : 아니타 무르자니
출판사 : 샨티
저자 아니타 무르자니는
4년여를 암과의 사투끝에 결국은 임사체험을 하게된다.
임사체험시에 인류 70억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를 막론하고
장대한 영혼들임을 알게되는 체험을 하게된다.
계속해서 살것이냐, 환경이 천국같은 저세상으로 갈것이냐의 귀로에서
장대한 영혼으로서 다시 인간으로서의 삶으로 선택을 하게되고
자신이 왜 암으로 고생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삶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세상이나 저세상이나 생명은 고귀하며 아름다운것을 알게되고
질병에 대한 두려움 공포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이 척박하고 황량한 지구학교에서
여러가지 걱정들 근심들도 한순간에 날려버릴수가 있을것이다.
각종 잘못된 정보들 오류들이 우리들을 혼란케 하고 좌절케 하기도 한다.
여기에 믿음이라는것이 등장하게 되는데....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순간부터
거기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떠한 믿음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 거기에 갇히게 된다는것을 알고부터는
그것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고
탈출하기 시작하자 대자유에 이르렀으며, 몇년간을 괴롭혀 오던 암이
순식간에 단 몇일만에... 말끔히 깨끗이 사라지는 기적을 저자는 체험을 했고
지금은 전세계의 의료계에 의학계에 충격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자신에 대하여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이며 호의적인 곳에는
언제든지 달려가서 강연을 해주고 있다.
전세계 방송매체에서도 일제히 호응을 하고 있으며
방송강연 초청이 연쇄적으로 쇄도하고 있다.
암이라는것은 스스로가 만든것이지 누군가가 주어진것이 아니라는것을...
이것은 육체적인것에 한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정신적,마음적인 잘못된 믿음에도
거기에도 암이 존재한다는것을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는것이다.
제목: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원제 Dying to Be Me/ 2012년)
-암, 임사체험, 그리고 완전한 치유에 이른 한 여성의 이야기
지은이: 아니타 무르자니
"나는 점점 확장돼 모든 것과 하나가 되었고,
천국이란 장소가 아니라 상태임을 알았다."
“다른 세상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바깥쪽으로 더 넓어져가면서
나는 모두이자 모든 것이 되어갔다.
이는 내가 ‘물리적으로’ 어디 다른 데로 갔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내가 ‘깨어났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다.
내 영혼은 이 시공간을 넘어 또 다른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고
동시에 그것을 포함했다.
사랑과 기쁨, 황홀경, 경외감이 내 안으로 나를 뚫고 쏟아져 들어왔고,
나는 그 안에 잠겨버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웠고 진짜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했던 것들을 나는 갑자기 ‘알게’ 되었다.”
(7장 ‘세상 저편으로 가다’ 중에서)
아니타는 임사 상태에서 360도 시야각으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인지했고, 시간도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느껴졌다고 했다.
또 어느 쪽으로든 의식을 주면 그와 관련한 모든 것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자신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아니 모든 것과 분리되지 않은 하나임을 느꼈다. 천국도 어떤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라는 깨달음이 왔고, 자신이 지금 바로 그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임사 상태에서 아니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본질을 만나고
암으로 먼저 죽은 절친한 친구의 본질도 만난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말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완전히 하나가 되어 서로를 이해했다. 아버지의 말을 그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버지가 ‘되는’ 것 같았다”(8장 ‘무한하고 환상적인 어떤 것’ 중에서)고 아니타는 말한다. 인도인 여성으로서의 순종적인 삶에 저항하던 아니타를 마치 사회 부적응자처럼 대하던 살아생전 아버지의 모습은 없었다. 생전의 가치관들은
사후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고, 둘 사이엔 조건 없는 사랑만이 가득했다.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니타는
다채로운 실들을 엮어 만드는 커다란 태피스트리에 비유해서 표현한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커다란 태피스트리를 짜고 있는 한 가닥의 실이요 동일한 전체의 일면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 그림이 완성되려면 한 사람, 한 사물도 예외 없이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 쓸모 있는 것이나 쓸모 없는 것 할 것 없이—
모두가 꼭 필요하다. 아니타는 임사 체험 때의 그 어떤 신기한 경험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깨달음이었다고 말한다.
진정한 자신이 얼마나 장엄한 존재인지 깨닫고
자신이 전체와 연결된 하나임을 확연히 느낀 순간
아니타는 몸이란 내면 상태의 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만일 삶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면 자기 몸은 몇 주나 몇 달이 아닌
며칠 만에 곧 나으리란 걸 알게 된다.
죽음으로의 여행을 계속할지, 다시 몸으로 돌아갈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 아니타는 몸으로 돌아오는 쪽을 선택한다.
그 순간 아직 다 이루지 못한 목적 같은 게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일은 많은 사람들을 돕는 것과 연관이 있었다.
곧 “다른 사람들에게 치유의 도구”로 자신이 쓰일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14장 ‘병의 치유는 마침표가 아닌 시작’ 중에서)
“지금 난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살고 있다.
이것이 임사 체험 전과 후의 극명한 차이점이다.”
임사 체험을 하는 동안 의식의 확장을 경험하면서
아니타는 왜 자신이 암에 걸렸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은 것,
그리고 자신의 진실을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과 자기 사랑의 부족은
곧 암이라는 몸의 질병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암은 처벌도, 그 비슷한 무엇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암은 그저 내 자신의 에너지였다.
내 에너지가 두려움 때문에 내 본연의 장엄한 힘으로 표현되지 못하자
암으로 표현된 것이었다.”(15장 ‘내가 암에 걸리고 또 나은 이유’ 중에서)
아니타는 자기 밖에서 사랑과 인정을 구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한
그것은 결코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영혼의 차원에서 경험했다.
나를 힘 있게 하는 것이 외부에 있을 때
삶은 두려움으로 가득 채워질 수밖에 없다.
건강도 성공도 행복도 모두 내 바깥의 누군가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아니타는 우리가 자기 밖에서 뭔가를 구하는 것은 내가 그것과 분리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임을 임사 체험을 통해 깨닫는다.
“과거에 나는 내가 뭔가를 해야 하고 손에 넣어야 하고
이루어야 한다고 느끼면서 그것을 ‘추구하곤’ 했다.
하지만 뭔가를 추구하는 행동 그 자체가 바로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못 가질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이원성 안에 갇히고 만다.
애초부터 좇는 나와 좇을 대상이라는 그 ‘분리’에 초점이 가 있기 때문이다.”
(17장 ‘허용하는 삶’ 중에서)
아니타는 우리가 중심에서 분리될 수 없는 만큼 부족함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이 이미 우리 안에 있음을 알 때
우리는 더 이상 원하는 것을 못 가질까봐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사랑과 인정, 행복을 자기 밖에서 구하지도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허용할’ 뿐이다.
내가 바라는 걸 애써 추구하면 오히려 분리만 더욱 강화할 뿐이다.
그와 달리 ‘허용한다’는 것은 우리가 모두 하나이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내가 바라는 것이 이미 내게 있음을 안다는 뜻이다.”
(17장 ‘허용하는 삶’ 중에서)
진정한 자신이 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다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뿐이라고 아니타는 말한다.
암을 통해 아니타가 배운 것도 바로 자기를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자신을 소중히 하고 사랑할수록
실제로 몸의 면역력이 강화돼 암에 걸릴 확률이 줄어든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잘 살펴서 그 감정에 진실하게 사는 것,
자신의 열정을 따라 두려움 없이 사는 것, 무엇보다 삶을 즐기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할 수 있지?’나 ‘어떻게 하면 저걸 이룰 수 있지?’와 같은 ‘생각’이 아니라 ‘지금 내 감정이 어떤가?’ ‘내가 이 선택을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묻고 긍정의 ‘느낌’이 드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아가 아니타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곧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되고, 지구를 치유하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만약 한 사람이 행복하면
그 행복이 다른 이들에게 가 닿아 그들을 고양시키고
그들이 회복되도록 돕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치유할 때
우리는 또한 우리 자신과 이 행성도 치유하는 것이다.”
(13장 ‘내 길을 찾다’ 중에서)
그 자신의 체험은
'물리적으로 어디 다른 데로 갔다는 느낌이 아니었고
깨어났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다'
'시간'에 대한 그의 설명
'그 세상에서는 시간도 다르게 느껴졌는데,
나는 모든 순간을 한꺼번에 느꼈다.
시간은 우리가 여기서 경험하는 것처럼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그의 설명
"나는 언제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언제나,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저 장엄할 뿐이라는 앎이 나를 가득 채웠다!.......
나는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과 살아있는 존재들만이 아니라, 밖으로 넓어지고 넓어져
우주 안의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다 하나로 엮여 있는 통합체였다.......
나는 전체 우주가 살아있으며
모든 생명과 자연이 다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무한한 전체에 속해 있는 것이다.
나는 전체 생명과 떼려야 뗄 수 없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통합체의 일면들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이며,
우리 각자는 집단적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
"외부세상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느끼는 것을 거울처럼 되비쳐 준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을 모두 내려놓을 때
우리는 세상이 변형되도록 허용하게 된다.....
오늘 하루 일진이 사나웠다든가 한 주 내내 일이 잘 안 풀렸다든가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런 때에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가 더 중요하다."
'나는 미지의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불확실성을 신뢰하기로 했다.'
'우주는 내가 준비되어 있는 것만을 내가 준비된 '때'에만 준다.'
'나는 '우리는 이미, 우리가 얻으려고 평생을 들여 노력하는 바로 그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생에 들어올 때 이미 우리가 장엄한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종교나 절대자에 대한 그의 생각
"신이란 '존재(being)'가 아니라 '존재의 상태(a state of being)'이다."
"모든 믿음과 불신, 신조와 교리를 놓아버릴 때
무한한 우주는 내 뜻과 하나가 되며,
내 삶에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주기 위해 일하게 된다."
"나는 윤회 개념이란 한갓 해석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해석 방식인 것이다."
"나는 우리가 몸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기로 선택하는 것은
사랑과 열정,
그 밖에 수많은 인간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행동이 '행위함'에서 나오는지
'존재함'에서 나오는지 보려면 매일매일 결정을 내릴 때
어떤 감정이 뒤따르는지 보기만 하면 된다.
결정의 동기가 두려움인가, 아니면 열정인가?
내가 날마다 하는 모든 행동들이 삶에 대한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행동이 두려움의 결과라면 나는 '행위하는' 상태에 있다."
나는 내 자신은 물론 다른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스스로를 고양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
스스로 행복한 느낌이 드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런 내가 '긍정적인 생각'을 마치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하면
놀랄지도 모르겠다.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내 기분을 좋게 유지하는 것이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사실이다.
나 역시도 전체 우주에 대해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스며드는 것을 알아챘을 때에는
그 생각을 판단없이 받아들여
그대로 지나가게끔 두는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느낌을 바꾸려고 자신을 억누르거나 강요한다면,
그럴수록 그 감정은 더욱 강하게 반발한다.
그럴때 나는 아무 판단도 하지 않고
그저 그 감정이 나를 통해 흘러가게끔 내버려둔다.
그러면 그 생각과 감정은 결국은 지나간다.
따라서 나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둘때
내게 가장 좋은 길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펼쳐진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
본문188쪽에서 ----
나는 나에게 물어보았다.
'왜 내가 이것을 믿을까?
그저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만들어낸 조건일 뿐이지 않은가?
전에는 내가 그 적용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지금도 그것이 내게 참인가?
자라면서 그렇게 생각하도록 주입받고,
배운 것들을 그저 계속 믿고 있는 건 아닌가?'
때론 그게 참인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대답은 단연코 '참이 아니다'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여자는 순종적이어야 한다고 배우며 컸다.
자기 의견을 분명히 밝힌다거나
단호하게 군다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여자들에게는
늘 모종의 판단이 뒤따랐다.
여자의 가장 주된 역할은
남편을 잘 받느는 아내,
아이를 잘 기르는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기준에는 결코 부합하지 못했다.
나는 평생을 그런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신을
재단하고 질책하면서 살아왔다.
나는 늘 부적합한 존재라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임사체험 이후에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사회적으로 정한 거짓 기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또 내가 그다지 영적(spiritual)이지 못하며,
따라서 그 방면에서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행동을 하고 무엇을 믿든
우리는 모두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
바로 영적인 존재, 그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늘 자각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란 오직 자신을 사랑함으로써만,
자기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가슴을 따름으로써만,
그리고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함으로써만
얻어진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삶이 목적이 없는 것 같고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때(지금도 자주 그런 기분이 든다.)
그것은 바로 내가 자신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본연의 모습에,
내가 이곳에 와 있는 목적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일은 내가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을 때,
텔레비전 광고나 신문, 대형 제약회사, 친구들,
문화적.사회적 신념 같은 외부 원천에
내 힘을 내어줄 때 일어나곤 했다.
과거에 내가 길을 잃었다고 느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답을 찾으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책을 찾았고, 선생과 구루를 찾았다.
그들이 영원한 미제의 해결책을 들려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꼭 그랬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더 알 수 없었다.
내 자신의 힘을 자꾸만 바깥의 누군가에게 줘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으로부터 관점을(inside-out view) 갖는다는 건
내 내면의 안내자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온 우주가 영향을 받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이 우주 그물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전체(the Whole)가
나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행복하면 우주도 행복하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다른 이들도 전부 나를 사랑하게 된다.
내가 평화로우면 모든 창조물이 평화롭다.
바로 이런 식인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어려워지면
그 상황을 물리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대신
내 내면 세계를 들여다본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하거나 불만스럽거나 할 때면
나는 내면으로 들어가서 그 느낌을 먼저 들여다본다.
그리고 혼자 않아 있는다든지,
자연속을 걷는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하면서
고요하고 차분한 중심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렇게 할 때 외부세계 또한 바뀐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실제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많은 장애물들이 그냥 사라져버리는 것을 경험했다.
'중심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우주 그물의 중심에 있는 나를 느낀다는 뜻이다.
바로 내 위치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중심이 곧
우리 모두가 존재하고 있는 유일한 장소이며,
그러니만큼 이 중심자리를 가슴으로부터 '느끼는'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우주안의 이 중심자리를 잊어버리곤 했다.
물질세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드라마와 모순,
불안과 고통에 사로잡혀
내 자신을 확장하고 장엄하며 무한한 존재로 볼 수 없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참모습인데도 말이다.
감사하게도 임사체험 경험을 통해
나는 우리가 절대로 중심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다만 잠시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중심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평화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
우리는 분리라는 환상에 사로잡혀서
행복과 슬픔이 빛과 어둠처럼, 음과 양처럼
맞물려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떨어져 있다는 우리의 느낌은
한갓 이원성(duality)이라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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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원성의 환상때문에
일견 분리되어 보이는 것들이
하나임(Oneness)을 보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중심에 닿아 있다는 것은
이를 꿰뚫어본다는 것이며,
그리하여 '만유의 중심',
바로 '하나임의 중심'에 있는 우리의 무한한 자리를 다시 한번 느낀다는 것이다.
내게는 늘 우리 모두가 우주와 하나라는 직관적 앎이 있었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몸을 입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내가 의식을 하든 못하든
우주라는 거대한 그물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
이는 내가 곧 장엄한 존재이며
무한에 연결된 존재임을 깨닫는 것과 같다.
본문 199쪽에서
나를 위하여 일어나는 모든 일도
이 우주 전체를 위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임사체험은 내게만 일어난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돌아왔음에도
치유의 유익은 주로 '나'하고만 관련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내 이야기를 나누기가 두려웠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나의 경험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유익을 얻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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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날 그 방에서 무엇인가가 바뀌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난 변화를 보면서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암을 앓은 것도,
병이 나은 것도
사실은 '이 지구를 위한' 것이었음을 말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라면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일어나는 모든 일도
이 우주 전체를 위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아팠던 이유,
그리고 돌아오기로 선택한 이유가
다른 사람들에게 치유의 도구로 쓰이기 위해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치유는 비단 육체적 치유만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감정적 치유이기도 했다.
우리의 감정은
사실상 이 물리적 현실을 이끌어가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는 암에서 나은 것이
내 여행의 정점이자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일어난 모든 일의 절정이자
내 이야기의 마침표인 것 같았다.
그러나 두바이에서
나는 내가 병에서 회복된 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앞으로 펼쳐질 더 커다란 일의 서막이었고,
내가 할 일은 그저
모호한 미래속으로 발을 내딛는 것뿐이었다.
다시 한번 나는 내가 그 무엇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일이 벌어지도록 나를 '허용하기'만 하면
모든 것은 그저 펼쳐질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좋아요 !
앞으로 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 놓으셨든,
저는 열려있습니다 !
이제 알겠어요 !'
3월 16일,
나는 여전히 두바이에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가 왔겠구나 기대하면서
전자우편함을 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헤이하우스 출판사의 편집자로부터 메시자가 와 있었다.
"웨인 다이어 씨가 당신의 임사체험 글을 읽고
당신 팬이 되셨답니다.
혹시 임사 체험에 대하여 책을 쓸 생각이 있다면
저희가 집필과 출판을 돕고 싶습니다."
이 메일을 읽는 동안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완벽한,
얼마나 멋진 깜짝 생일 선물인가 !
전날의 내 느낌이 맞았다고
이보다 더 확실히 증명해 줄 수 있는 게 있을까 !
나는 이미 책을 쓰고 있었고,
어떻게 출판할지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해보던 터였다.
그러나 대형 출판사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내 능력으로는 일을 성사시키기가 역부족인듯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전날까지도
나는 더 큰 세상에 손을 뻗칠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본문 202쪽에서
웨인 다이어Wayne Dyer와의 만남
며칠뒤, 홍콩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오랜 친구 베로니카 리에게 메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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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다이어의 '헤이하우스 라디오 쇼'를 듣는데
그가 내 임사체험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이었다.
베로니카는 웨인 다이어가
몇 주 동안 연이어 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헤이 하우스 라디오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지난 방송을 들어보라고 했다.
맙소사 !
정말로 웨인이 내 이야기를 몇 주째 하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청취자들을 상대로
그가 내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있자니
표현할 수 없는 전율이 일었다.
그러고 얼마 뒤, 나는 웨인을 놀래주고 싶어서
그가 하는 생방송 라디오 쇼에 전화를 걸기로 했다.
청취자들의 전화를 받고 질문에 답을 해주는 코너였다.
홍콩에서는 시차 때문에
새벽 4시에야 그의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3시 반에 일어나서 라디오를 켜고 전화 다이얼을 누르기 시작했다.
처음 몇 번 걸었을 때는 통화중이라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반갑게도 마침내 전화가 연결되었다.
아직 4시가 되지 않은 때였다.
전화를 받은 이가 내 이름과 사는 지역을 물었다.
대답을 하고 나는 잠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드디어 라디오 쇼가 시작되었다.
시그널 멘트가 모두 끝나고 프로듀서 다이앤 레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이것 좀 봐요.
홍콩에서 전화가 와 있군요.
그 전화를 먼저 받아볼까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가슴은 두방망이질 쳤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웨인이 말했다.
"세상에,
누가 전화했는지 벌써 알겠어요 !
제가 생각하는 그 분이 맞나요?"
"안녕하세요, 아니타예요." 내가 대답했다.
"세상에, 아니타군요 !
임사체험을 한 그 아니타군요 !
내 라디오 쇼에서 통화를 하게 되다니 정말 감격스러워요 !"
그가 소리쳤다
"다이앤, 다른 전화는 모두 다음 기회로 미뤄주시면 어떨까요?
남은 시간 동안 계속 아니타와 이야기 하고 싶어요 ! "
그러더니 그는 방송으로 내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라디오 쇼가 끝나고 웨인은 내게 전화를 끊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한동안 더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는 혹시 내가 쓰는 책의 추천사를 쓰게 허락해 준다면
영광일 거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허락을 하라고요?
지금 농담하시나요?
저야말로 영광이죠 !'
웨인은 인터넷에 올라온 내 임사체험이야기를
모두 출력해서 읽었다고 덧붙였다.
21쪽이나 되는 긴 글을 말이다.
40부를 출력해서 아는 사람들에게 전부 나누어 주었으며,
자기 어머니에게도 그 인쇄물을 드렸다는데,
어머니는 그 글을 읽고 상당히 마음이 편해지셨다고 했다.
그는 또 내 글을 자신의 최근작 <소망한 대로 이루어진다>에서도 여러 차례 인용했다고 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오직 이런 말만 떠올랐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웨인 다이어가 최근 저서에서 내 이야기를 인용했다고?'
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했고, 웨인은 언제라도 전화주면 반가울 거라고 말했다.
나는 기쁨을 가눌 수 없었다. !
이후 며칠간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보냈다.
계속 흥분되고 떨려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어떤 큰 일이 벌어지기 직전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이것은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지낼 수 있는지,
오로지 내 자신이 되는 것,
흐름을 즐기는 것,
허용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능력을 시험해 보는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 후 몇 주 동안 나는 웨인 다이어와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책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 의논했다.
그는 자신이 쓴 아름다운 추천사를 읽어 주었는데,
다시 한번 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나는 조금 뭉클해진다.
특히 임사체험에서 얻은 비전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노라면 더욱 그렇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웨인이 이런 말을 했다.
처음 내 이야기를 읽고
그저 헤이하우스 출판사에 나를 소소문해보라고만 한 게 아니었단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찾아야 한다고,
혹시 내가 책을 쓰고 있다면
출판은 반드시 헤이하우스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
상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말에 정신이 다 나가고 말았다.
나는 어떻게 내 이야기를 알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는 뉴욕에 사는 미라 켈리라는 여성을 통해
나에 대해 들었다고 했다.
나중에 그는 그녀를 내게 소개해 주었다.
미라와 나는 이메일을 주고받고 전화로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웨인이 내 임사체험에 대해 알기까지
작지만 놀라운 일들이
알맞은 때에 얼마나 정확하게 일어났었는지
미라에게 들을 수 있었다.
웨인은 원래 인터넷 서핑도 하지 않고
긴 글을 컴퓨터로 오랫동안 읽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
우연히라도 내 이야기를 접할 일은 없었다.
본문 206쪽에서----
2011년 1월 11일,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웨인 다이어가 유럽에서 기적체험이라는 제목으로 워크숍을 열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직관적으로 기적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꽂혔지요.
웨인이 백혈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어쩐지 그가 이미 기적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처음에는 웨인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넘겼지만,
웨인과 꼭 이야기를 해보는 게 좋겠다는 느낌이 떠나질 않고
오히려 갈수록 더 커지더군요.
만일 내가 신의 손에 쥐어진 도구가 되게끔 되어 있다면
일어날 필요가 있는 기적이라면
뭐든 일어나도록 신께 나를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며칠 뒤 웨인에게 편지를 했어요.
한 달 뒤 그가 내게 전화를 했는데
나는 편지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지요.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막 통화를 끝내려던 참이었는데,
내가 웨인의 작별 인사를 중간에 끊고 말했지요.
나도 내가 놀라웠어요.
그에게 보내주고 싶은 뭔가가 있다고 말을 했거든요.
꼭 읽어 봤으면 한다면서요.
한 순간도 머뭇거림없이 그가 팩스번호를 알려주더군요.
그 뭔가가 바로 아니타의 임사체험 수기였어요.
영적인 주제들을 가지고 이메일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전날 보내준 것이었죠.
그 글을 보내준 사람은 글의 내용 중에서
모든 시간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부분을 강조해서 보냈는데,
그 부분에 마음이 끌리더군요.
전생 탐구 작업을 하는 게 내 일이거든요.
그리고 아니타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내 영혼이 진정한 전율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신비스런 감각을 느꼈었지요.
웨인과 전화를 끊고 나서 또다시 '왜'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왜 그렇게 아니타의 이야기를 웨인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당시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아니타의 이야기가 내가 믿는 것과
내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더없이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웨인에게 아니타의 수기를 보내주면서 나는 이렇게 썼지요.
"당신이 지금 바로 병에서 나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런 가능성은 분명 존재하지요.
만일 자신이 완벽히 건강하다고 인식하는 쪽을 선택한다면
저도 그 믿음이 현실이 되도록 돕겠습니다."
아니타가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아름다운 말로 표현한 것을
내가 이야기하자고 했더라면 훨씬 긴 설명이 필요했을 거예요.
이제 난 내가 왜 그렇게 웨인에게 아니타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는지
두 번째 이유를 알고 있어요.
아니타의 영감 넘치는 이야기를 지구 전체에 전하는 과정에
나 역시 일부분으로 참여하고 있었던 거예요.
시간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주 자 맞아 떨어진 거지요.
만일 내가 아니타의 수기가 담긴 이메일을 조금만 더 일찍 받았더라도
그 생각이 그 순간에 떠오르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랬다면 웨인에게 알려줄 수도 없었겠죠.
그 이메일이 조금만 늦게 도착했더라도
지금처럼 많은 이들에게 알려질 수 없었을 테고요.
이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동시성이라는 사건은
그저 마법과도 같아서,
모든 일이 한꺼번에, 영원의 한 순간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됩니다.
아니타가 임사 체험중에 알게 되었다는 것처럼요.
웨인고 나는 전생 작업을 하기로 약속을 잡았고,
내가 하와이 미우이로 가서 그를 만났어요.
4월 15일, 웨인의 집에 갔을 때 그는 전화를 하고 있더군요.
전화를 끊고 그가 그러는 거예요.
헤이하우스 출판사와 이야기를 했는데,
그곳에서 아니타의 책을 출판하기로 했다고요.
나는 열광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자신에게 일어날 기적 역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요.
그의 전생 작업은 매우 강력했어요.
그가 백혈병에서 나았다는 걸 그도 믿고 나도 믿고 있습니다.
내가 아니타의 이야기가 담긴 이메일을 다시 찾아보니,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더군요.
오지기안 줄케필이라는 루마니아 콘스탄차에 사는 한 엔지니어였어요.
그 사람에게 연락해서 이처럼 놀라운 우연의 일치들 속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말해주었는데,
그는 자기가 아니타의 임사체험 이야기를 어디서 찾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알려줘서 고맙고 매우 기쁘다는 답장을 보내왔어요.
그 사람은 이 일을 통해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해도
우리 각자가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는 이런 말로 이메일을 마무리했어요.
"비록 처음에는 잘 납득이 되지 않아도
삶의 순간순간에
정말 행복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 고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죠.
그리고 며칠 전, 아니타 무르자니라는 여성의
놀라운 인터뷰 동영상을 보라는 이메일을 받았어요.
임사체험을 하고 나서 기적적으로 암을 이긴 여자라면서요.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지요.
아니타의 이 강력한 사랑의 메시지가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을 북돋우도록
웨인과 내가 힘을 합쳐 도우면 좋겠다고 말했던 게 생각이 났거든요.
그 이메일을 받는 순간
원이 완성되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지요.
동시에 아니타의 말은 웨인의 치유에도 한몫을 했고요.
성령이 나를 통해 일하시도록
그분께 나를 맡김으로써
나는 신의 손에 쥐어진 도구가 되었답니다.
제가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