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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두이노의 비가(悲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작성자山木|작성시간22.12.01|조회수118 목록 댓글 1

 

 

<두이노의 비가 1>

 

내가 이렇게 소리친들, 천사들 중 대체 그 누가

내 목소리를 들어줄까? 한 천사가 느닷없이

나를 가슴에 끌어안으면, 나보다 강한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나 스러지고 말 텐데.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어내는

무서움의 시작일 뿐이므로, 우리 이처럼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는 무섭다. 나 이러한 심정으로

어두운 흐느낌의 유혹의 소리를 집어삼키는데,

아, 대체 우리는 그 누구를 필요로 하는가?

천사들도 아니고 인간들도 아니다.

영리한 짐승들은 해석된 세계 속에 사는 우리가

마음 편치 않음을 벌써 느끼고 있다.

우리에게 산등성이 나무 한 그루 남아 있어

날마다 볼 수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건 어제의 거리와, 우리가 좋아하는

습관의 뒤틀린 맹종, 그것은 남아 떠나지 않았다.

오 그리고 밤, 밤, 우주로 가득 찬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파먹어 들어가면,

누구에겐들 밤만이 남지 않으랴,

그토록 그리워하던 밤,

쓸쓸한 이의 가슴 앞에 힘겹게 서 있는,

약간의 환멸을 느끼는 밤.

밤은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더 쉬울까? 아, 그들은

그저 몸을 합쳐 그들의 운명을 가리고 있구나.

너는 아직 그것을 모르는가?

우리가 숨쉬는 공간을 향해

한 아름 네 공허를 던져라. 그러면 새들은

더욱 당차게 날갯짓하며

넓어진 대기를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봄들은 너를 필요로 할지 모르지.

많은 별들은 네가 저희들을 느끼기를 바랐다.

과거 속에서 파도 하나 일어나고,

또는 열려진 창문 옆을 지나갈 때

너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겠지.

그 모든 건 사명이었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완수했는가? 모든 것이

네게 애인을 점지해주는 듯한 기대감에

너는 언제나 마음이 어지럽지 않았는가?

(네가 그녀를 어디에 숨겨도,

크고 낯선 생각들은 네 가슴 속을

들락거리며 자주 밤마다 네게 머무르는데.)

꼭 하고 싶거든, 위대한 사랑의 여인들을

노래하라, 하지만 그들의 유명한 감정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리.

네가 시기할 지경인 사람들,

너는 그들이 사랑에 만족한 이들보다

훨씬 더 사랑스러움을 알았으리라.

결코 다함이 없는 칭송을 언제나 새로이 시작하라,

생각하라, 영웅이란 영속하는 법, 몰락까지도 그에겐

존재하기 위한 구실이었음을, 그의 궁극적 탄생이었음을.

그러나 지친 자연은 사랑의 여인들을,

두 번 다시는 그 일을 할 기력이 없는 듯,

제 몸 속으로 거두어들인다. 너는 가스파라 스탐파를

깊이 생각해보았는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받은

한 처녀가 사랑에 빠진 그 여인의 드높은 모범에서

자기도 그처럼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느끼는 것을?

언젠가 이처럼 가장 오래된 고통들이 우리에게

열매로 맺지 않을까? 지금은 우리가 사랑하며

연인에게서 벗어나, 벗어남을 떨며 견딜 때가 아닌가?

발사의 순간에 온 힘을 모아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되기 위해

화살이 시위를 견디듯이. 머무름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목소리, 목소리들, 들어라, 내 가슴아, 지난날 성자들만이

들었던 소리를, 엄청난 외침이 그들을

땅에서 들어올렸지만, 그들, 불가사의한 자들은

무릎 꿇은 자세 흩트리지 않고,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바로 그렇게 그들은 귀기울이고 있었다. 신의 목소리야

더 견디기 어려우리. 그러나 바람결에 스치는 소리를 들어라,

정적 속에서 만들어지는 끊임없는 메시지를.

이제 그 어려서 죽은 자들이 너를 향해 소곤댄다.

네가 어디로 발을 옮기든, 로마와 나폴리의 교회에서

그들의 운명은 조용히 네게 말을 건네지 않았던가?

아니면 얼마 전의 산타 마리아 포르모자의 비문처럼

비문 하나가 네게 엄숙히 그것을 명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내게 무엇을 바라는가? 내 그들 영혼의

순수한 움직임에 때때로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옳지 못한 감정을 조용히 버려야 하리라.

 

이 세상에 더 이상 살지 못함은 참으로 이상하다,

겨우 익힌 관습을 버려야 함과,

장미와 그밖의 무언가 하나씩 약속하는 사물들에게

인간의 미래의 의미를 선사할 수 없음과,

한없이 걱정스런 두 손 안에 들어 있는 존재가

더 이상 아닌 것, 그리고 자기 이름까지도 마치

망가진 장난감처럼 버리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서로

연결되어 있던 모든 것이 그처럼 허공에 흩어져 날리는 것을

보는 것은 이상하다. 그리고 죽어 있다는 것은

점차 조금의 영원을 맛보기 위해 힘겹게 잃어버린

시간을 보충하는 것-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은 모두

너무나 뚜렷하게 구별하는 실수를 범한다.

천사들은 살아 있는 자들 사이를 가는지 죽은 자들

사이를 가는지 때때로 모른다(이렇게 사람들은 말한다).

영원한 흐름은 두 영역 사이로

모든 세대를 끌어가니, 두 영역 모두를 압도한다.

 

끝내 그들, 일찍 떠난 자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

어느덧 자라나 어머니의 젖가슴을 떠나듯 조용히 대지의

품을 떠난다, 우리는. 그러나 그토록 큰 비밀을

필요로 하는 우리는, 슬픔에서 그토록 자주 복된 진보를

우려내는 우리는, 그들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언젠가 리노스를 잃은 비탄 속에서 튀어나온 첫 음악이

메마른 침묵을 꿰뚫었다는 전설은 헛된 것인가,

거의 신에 가까운 한 젊은이가 갑작스레 영원히

떠나버려 놀란 공간 속에 비로소 공허함이 우리를

매혹시키고 위로하며 돕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두이노의 비가 2>

 

무섭지 않은 천사는 없다. 하지만, 슬프게도,

너희들, 영혼의 거의 치명적인 새들을, 알면서도,

나 노래로 찬양했다. 토비야의 시절은 어디로 갔는가,

찬란한 천사들 중의 하나 길을 떠나려 약간 변장하고

수수한 사립문 옆에 서 있던, 조금도 두렵지 않던 그 시절은.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그 청년의 눈에도 청년으로 보이던).

이제는 위험스런 천사, 그 대천사가 별들 뒤에 있다가

우리를 향해 한 걸음만 내디뎌도, 하늘 높이 고동치며

우리 심장의 고동은 우리를 쳐죽일 텐데. 너희들은 누군가?

 

일찍 성취된 것들, 너희들 창조의 응석꾸러기들,

모든 창조의 산맥들, 아침 노을 드리운

산마루, 꽃피는 신성(神性)의 꽃가루,

빛의 뼈마디, 복도들, 계단들, 왕좌들,

본질의 공간들, 환희의 방패들, 폭풍처럼

날뛰는 감정의 붐빔, 그리고 갑자기 하나씩 나타나는

거울들 : 제 몸 속에서 흘러나간 아름다움을

다시 제 얼굴에 퍼담는.

 

우리가 느낄 때마다 우리는 증발하는 까닭이다. 아,

우리는 숨을 내쉬면서 사라진다. 하나씩 타들어가며

우리는 갈수록 약한 냄새를 낼 뿐. 그때 누군가 말하리 :

그래, 너 내 핏줄 속으로, 이 방으로 들어오라, 봄은 너로

가득 찼으니… 무슨 소용인가, 봄은 우리를 잡을 수 없어,

우리는 그 속, 그 언저리에서 사라진다. 아름다운 자들,

오, 그 누가 그들을 잡아둘까? 그들의 얼굴에는 끊임없이

겉모습이 씌어졌다 사라진다. 새벽 풀에 매달린 이슬처럼

우리의 겉모습도 우리에게서 뜬다. 마치 뜨거운 요리에서

열기가 떠나는 것처럼. 오 미소여, 어디로 갔는가?

오, 우러러봄이여 : 심장의 새롭고, 뜨겁고, 사라지는 물결- :

슬프다, 우리는 그러한 존재들, 우리가 녹아들어간

우주 공간도 우리 몸의 맛이 날까? 천사들은

정말로 저희들 것만, 제 몸에서 흘러나간 것만 붙잡나,

아니면, 가끔 실수로라도 우리의 본질도 약간

거기에 묻혀 들어갈까? 우리는 그들의 표정 속으로

마치 임신한 여인들의 얼굴에 모호한 것이 떠오르듯

묻혀 들어갈까? 그들은 제 속으로의 귀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어떻게 그걸 알리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밤 공기 속에서 놀랍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우리에겐 모든 것이 숨겨진 듯

여겨지는 까닭이다. 보라, 나무들은 존재하고, 우리 사는

집들은 여전히 서 있다. 우리는 다만 들며 나는 바람처럼

모든 것 곁을 지나칠 뿐이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되어

우리에게 침묵하는구나. 한편으로 수치스럽다고 여겨서인지,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는 희망에서 그런지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들, 너희 서로에게 만족한 자들아,

너희에게 나는

우리는 물어본다. 너희들은 서로 붙잡고 있다, 증거가 있는가?

보라, 나의 두 손은 서로를 의식하게 되었고, 또는

나의 닳고닳은 얼굴은 나의 두 손 안에서

몸을 사림을. 그것이 내게 약간의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누가 감히 존재한다 할 수 있으랴?

그러나 상대방이 압도되어 이제 그만이라고 간청할 때까지

상대방의 황홀 속에서 성장하는 너희들, 포도송이의

세월처럼 손길 아래서 더욱 풍요로워지는 너희들,

상대방이 우위를 점하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가끔

쇠락하는 너희들. 너희들에게 나는 우리에 대해 묻는다.

나는 안다, 그처럼 행복하게 서로를 어루만지는 까닭은

애무하며, 너희들 사랑스런 자들이 덮는 곳이 사라지지 않고,

너희들이 거기서 순수한 영속을 느끼기 때문임을.

그리하여 너희들은 포옹으로부터

영원을 약속한다. 하지만 너희들이

첫 눈길의 놀람과 창가의 그리움을 이겨내고, 단 한 번

정원 사이로 걸었던 너희들의 함께한 첫 산보를

이겨낸다면, 그래도 너희들은 그대로인가? 너희들이

서로 상대방의 입에 입맞추고 음료를 불어넣으면,

오, 거기서 몸을 빼는 것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까.

아티카의 묘석 위에 그려진 인간의 몸짓의 조심스러움에

너희들은 놀라지 않았는가? 사랑과 이별이, 마치 우리와는

다른 소재로 만들어진 듯, 그토록 가볍게 어깨 위에

걸쳐 있지 않았던가? 몸통 속에는 힘이 들어 있지만

그토록 누르지 않고 쉬고 있는 그 손들을 생각해보라.

스스로를 억제하는 것, 그 정도가 우리의 몫일 뿐,

이것이 우리의 것, 그렇게 서로를 어루만지는 것, 허나

신들은 그보다 세차게 우리를 압박하니, 그건 신의 몫이다.

 

우리도 순수하고 절제되고 좁다란 인간적인 것을,

그래 강물과 바위 사이에서 한 줄기 우리의 밭이랑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 자신의 마음은 신들을 넘어섰듯

우리까지도 넘어서기에.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는 그림들에서나, 아니면 더욱 위대하게

우리 마음이 억제된 신의 몸에서도 우리를 볼 수 없다.

<두이노의 비가 3>

 

사랑하는 여인을 노래하는 것과, 슬프다, 저 숨겨진

죄 많은 피의 하신(河神)을 노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

그녀가 멀리서도 알아보는 그녀의 젊은 애인은

욕망의 신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을까. 욕망의 신은 빈번히

이 쓸쓸한 젊은이로부터-처녀가 젊은이를 달래기도 전에,

거의 매번 그녀가 눈앞에 없는 것처럼

-신의 머리를 들어올렸다,

아, 알 수 없는 것을 뚝뚝 떨구며,

밤을 끝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가며,

오 피의 넵투누스이여, 오 그의 무시무시한 삼지창이여,

오 나선형 소라를 통해 그의 가슴에서 들려오는

어두운 바람이여!

스스로를 퍼내며 비워대는 밤의 소리에 귀기울여라.

너희 별들이여,

사랑하는 남자가 자기 애인의 용모에서 느끼는 기쁨은 너희들에게서 온 것이 아닌가? 그녀의 순수한 얼굴에 대한

그의 은밀한 통찰은 순수한 별자리에서 온 것이 아닌가?

 

그것은 그대도 아니었고, 오 괴롭구나,

그대의 어머니도 아니었다,

그의 눈썹을 이렇게 기다림의 아치 모양으로 구부려놓은 것은.

그대의 입 때문이 아니다, 그를 느끼는 처녀야,

그대와의 접촉 때문에 그의 입술이 이렇게 풍요로운 표현을 위해 구부러진 것은 아니다.

그대는 정말로 그대의 부드러운 접근이 그를 그렇게도

뒤흔들어놓았다고 생각하는가,

새벽 바람처럼 거니는 그대여?

그래 그대는 그의 가슴을 놀라게 만들기는 했다,

그러나 그대 손길의

충격에 그의 가슴속에서는 꽤 오래된 공포들이 무너져내렸다.

그를 불러보아라… 그대는 그를 그 어두운 교제에서 완전히 해방시킬 수는 없다.

물론 그는 도망치고 싶어하고 실제로 도망친다 ;

안심하며 그는 그대의 은밀한 가슴에 길이 들어서 뿌리를

내리고 그 자신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그 자신이 되기 시작한 적이 있는가?

어머니, 당신이 그를 작게 만들었다,

그를 시작시킨 것은 당신이었다.

당신에게 그는 새로웠고,

당신은 그의 새로운 눈 위로 친근한 세계를 아치처럼 드리워놓고 낯선 세계가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그를 위하여 당신의 그 호리호리한 몸만으로도 밀려오는 혼란의 파도를 막아내기에 충분하던 그 시절은 어디로 갔는가?

이렇게 해서 당신은 그에게 많은 것을 숨겼다 ; 밤이 되면

미심쩍어지는 방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만들었고,

당신 가슴의 가득 찬 은신처에서 더욱 인간적인 공간을

꺼내서 그의 밤 공간에다 섞어 넣었다.

당신은 어둠이 아니라, 그래 어둠 속이 아니라,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는 당신 곁에다 야간등을 놓았고,

등불은 다정하게 빛을 던졌다.

당신이 미소지으면서 설명하지 않은 바스락 소리란 없었다.

당신은 마루가 언제쯤 소리를 낼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귀를 기울였고 마음을 놓았다.

당신의 사랑스런 보살핌은 이렇게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었다 ; 외투를 걸친, 키 큰 그의 운명은

옷장 뒤로 걸아갔고, 그리고 그의 불안스런 미래는

금방 구겨지는 커튼의 주름에 순응했다.

 

그리고 이제 안심하면서 그곳에 누워

졸린 눈꺼풀 밑으로 당신의 가벼운 모습이 주는

달콤함을 녹이면서 서서히 잠들 때면,

그는 자신이 보호를 받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서는 :

그 누가 그의 혈통의 홍소를 막거나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을까?

아, 잠든 사람에게는 경계심이란 없었다 ; 자면서,

그러나 꿈꾸면서,

그러나 열병에 걸려서 : 그는 얼마나 빨려 들어갔던가.

새로 온 자, 부끄러워하는 자인 그는 얼마나

내면의 사건의 계속 뻗어가는 덩굴손에 얽혀 있었던가,

문양을 이루며, 숨막힐 듯이 성장하며,

동물처럼 치달리는 모양으로.

그는 얼마나 몰두했던가- . 그는 사랑했다.

그는 자신의 내면의 것을 사랑했다, 내면의 황야를,

그의 내면에 있는 원시림을 사랑했다,

그곳에 그의 마음은 말없이 쓰러진

거대한 나무들 틈에 푸른 싹처럼 서 있었다.

사랑했다, 그는 그곳을 떠나

자기 자신의 뿌리들을 지나서 그 거대한 근원을 향해 갔다.

그곳에서 그의 작은 출생이 오래 전에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는 더욱 오래된 피를 향해, 깊은 계곡을 향해 내려갔다,

그곳엔 공포스러운 것이 아버지들을 먹어치우고

배불러 누워 있었다.

그리고 끔찍한 모든 것들이

그를 알아보고, 눈짓을 보내며, 서로 통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경악스러운 것이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

당신은 그렇게 다정스레 미스지은 적이 없다.

그 경악스러운 것이

그에게 미소를 보내는데, 어찌 그것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당신을 사랑하기에 앞서 그는 그것을 사랑했다.

당신이 그를 가졌을 때

이미 그것은 태아를 뜨게 하는 양수 속에 녹아 있었으니까.

 

당신이 보다시피, 우리는 꽃처럼 단 한 해만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날

태곳적 수액이 우리의 양팔을 타고 오를 것이다. 오 소녀여,

이것이다, 우리의 내면 속의 단 하나의 존재,

미래의 존재가 아니라,

수없이 끓어오르는 것을 사랑하는 것.

각각의 어린애가 아니라,

산맥의 잔해처럼 우리의 가슴 깊은 밑바닥에서

쉬고 있는 아버지들을 사랑하는 것. 지난날의 어머니들의

메마른 강바닥을 사랑하는 것. 구름이라도 끼거나,

아니면 숙명의 구름 낀 또는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소리 없는 모든 자연 풍경을 사랑하는 것이다 :

이것이, 소녀여, 그대에 앞서 왔다.

그리고 그대, 그대 자신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 그대는

그대의 애인 속의 선사시대를 마구 휘저어놓았다. 오랫동안

죽어 있던 존재들로부터 어떤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는가.

어떤 여인들이 그곳에서 그대를 미워했는가.

젊은이의 핏줄 속에서

그대는 어둠 속에 묻힌 어떤 남자들을 깨워놓았는가?

죽은 아이들은 그대를 만지려고 했다… 오 부드럽게,

부드럽게

그를 위해 사랑의 하루를 시작해라, 믿을 만한 하루를,

그를 정원으로 인도하여 그에게 넘치는 밤들을

베풀어라…그를 자제시켜라…

<두이노의 비가 4>

 

오 생명의 나무들이여, 너희들의 겨울은 언제인가?

우리는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철새떼처럼

서로 통하지 못한다. 너무 앞서거나, 뒤처져 가다가

우리는 갑자기 바람 속으로 밀치고 들어가

느닷없이 무심한 연못으로 곤두박질친다.

피어남과 시듦을 우리는 한꺼번에 알고 있다.

그리고 어딘가 사자들이 어슬렁거리며 가리라, 그들의

위엄이 살아 있는 한, 노쇠 따위는 모르는 채.

 

그러나 우리가 전적으로 한 가지를 말하는 순간, 우리는

벌써 다른 것의 당김을 느낄 수 있다. 적대감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서로 안에서 절벽 쪽으로 다가가고 있지 않은가,

널찍한 공간과 사냥과 고향을 서로 약속한 그들이?

한 순간에 그리는 스케치에도

공들여 반대 바탕이 마련될 때,

우리는 그 그림을 볼 수 있다 ; 인간들은 분명함에

익숙하지 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의 윤곽을 알지 못한다 :

다만 바깥에서 그 윤곽을 만드는 그 무엇을 알 뿐이다.

자신의 마음의 장막 앞에 불안감 없이 앉아본 자 누구인가?

장막이 올라갔다 : 그곳엔 이별의 장면이 있었다.

금방 알 수 있었다. 눈에 익은 정원이었다, 정원이

조금 흔들렸다 : 이어서 먼저 남자 무용수가 등장했다.

그 남자는 아니다. 됐다! 그의 몸짓이 아무리 날렵해도,

그는 변장한 것일뿐, 앞으로 한 사람의 시민이 되어

부엌을 지나 거실로 들어갈 것이다.

나는 반쯤 채워진 이 가면들을 원치 않는다,

차라리 인형이 좋다. 인형은 가득 차 있다. 나는

속을 채운 몸통과 철사줄 그리고 외관뿐인

그 얼굴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여기. 나는 기다리고 있다.

조명이 나간다 해도, 누가 내게 ‘이젠 끝났어요’라고

말한다 해도, 휘익 불어오는 잿빛 바람에 실려

무대로부터 공허함이 내게 밀려온다 해도,

말없는 나의 선조들 중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내 옆에 앉아 있지 않다 해도, 어떤 여자도,

심지어 갈색의 사팔뜨기 눈을 한 소년마저 없어도,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으리라. 구경거리는 아직도 있다.

 

제가 옳지 않나요? 당신, 내 인생을 맛본 뒤로

나 때문에 인생이 온통 쓴맛이 되어버린 아버지,

내가 자라나면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만들어낸

텁텁한 첫 국물 맛을 계속해서 맛보면서,

알 수 없는 장래의 뒷맛 생각에 골치를 썩히면서

당신은 나의 흐릿한 눈빛을 살펴보셨습니다.

나의 아버지, 당신은 돌아가신 뒤로도 내 마음 속에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늘 걱정하셨고,

사자(死者)들이 누리는 평온함을, 평온함의 왕국을

보잘것없는 저의 운명을 위해 포기하셨습니다.

제가 옳지 않나요? 그리고 당신들, 내가 옳지 않은가,

당신들에 대한 나의 사랑의 조그만 시작의 대가로

나를 사랑했던 당신들, 나는 그것을 자꾸만 잊었다,

내가 비록 사랑하기는 했지만 당신들 얼굴에 어린 공간이

내게 우주 공간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 인형극 무대 앞에서

연극을 기다리고 싶은 생각이 들면, 아니, 차라리

무대를 뚫어지라고 응시하여 결국엔 내 응시에

보상을 해주기 위해 그곳에 천사 하나가 배우로

등장하여 인형들의 몸통을 위로 치켜들 때면.

천사와 인형 : 그러면 마침내 연극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우리가 언제나

둘로 나누었던 것이 합쳐진다. 그러면 비로소 변화의

전체 원이 우리 인생의 계절들 속에서 그 첫 기운을

찾게 되리라. 이윽고 우리 머리 바로 위에서는

천사가 연기를 한다. 보라, 죽어가는 자들, 그들은

분명히 짐작하리라, 우리가 이곳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얼마나 구실로 가득 차 있는지를. 이 세상

어느 것도 그 자체인 것은 없다. 오 어린 시절의 시간들이여,

그땐 형상들 뒤편에는 과거 이상의 것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땐 우리들 앞에 놓인 것이 미래가 아니었던 그 시절이여.

우리는 물론 자라났고, 그리고 우리는 더 빨리 자라나려고

가끔 서두르기도 했다, 그 이유의 반쯤은, 다 컸다는 것밖에

내세울 것이 없던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고독한 연극에서

영원한 것에 만족하며, 세계와 장난감 사이의

틈새에 서 있었다.

처음부터 순수한 사건을 위해 마련되어 있던

어느 한 자리에.

 

누가 어린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가? 누가 그를

별들 사이에 두고 거리를 재는 자를 손에 들려주는가?

누가 딱딱하게 굳어가는 잿빛 빵으로

어린아이의 죽음을 만드는가, 아니면 누가 그 죽음을

그의 둥근 입 속에 버려두는가, 예쁜 사과의

속처럼? 살인자들은 식별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것 : 죽음을 ,

완전한 죽음을, 삶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그렇게 부드럽게 품고서 화를 내지 않는 것,

이것은 형언할 수 없는 일이다.

<두이노의 비가 5>

 

그러나 말해 다오, 이들이 누구인지, 우리들보다 조금 더

덧없는 존재들,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어떤 의지가

누군가, 누군가를 위해 어린 시절부터 꽉꽉 쥐어짜고

있는 이들은? 만족은 커녕 이 의지는 이들을 쥐어짜고

구부리고 휘감고 흔들어대고

던져 올리고 다시 받는다 ; 그들은

기름칠을 해 반질반질한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다,

그들의 끊임없는 도약과 착지로 닳고닳아

더욱 얇아진 양탄자 위로, 우주 속에서

길을 잃은 이 양탄자 위로.

교외의 하늘이 그곳의 땅에 상처를 입힌 듯,

반창고처럼 그곳에 붙어 있는.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서 간신히,

똑바로 서서, 현존재의 첫 글자 모양을 보여주는가 했더니,

어느새 손길이 자꾸 다가와,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이,

그들 가장 탄탄한 남자들을 계속해서 굴려댄다,

강력한 아우구스트 대왕이 식탁에 앉아

주석 접시를 던져 올려 돌렸듯이.

아, 그리고 이 가운데를 둘러싼

구경의 장미꽃 :

활짝 피었다가 와르르 진다.

이 절굿공이 주위로, 이 암술 주위로, 제 꽃가루를

잔뜩 뒤집어쓴 이 암술 주위로, 내키지 않음의

가짜 열매를 또다시 맺게 하는 이 암술 주위로,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이 암술 주위로-가장 얇은

표면으로 내키지 않음의 가벼운 거짓 미소를 반짝이는.

 

저기 서 있는 시들어 주름진 장사(壯士),

이제 늙어 겨우 북이나 두드릴 뿐이니

자신의 힘찬 살갗 속으로 오그라든 모습, 마치 그 살갗 속에

예전에는 두 사내가 들어 있다가, 한 명은 죽어

이미 무덤 속에 누워 있고, 다른 한 명만 살아남은 듯하다,

이제 귀도 먹고 때때로 조금은

먹먹하다, 짝 잃은 살갗 속에서.

 

그러나 그 젊은이, 그 사나이는 마치 한 목덜미와

수녀의 아들이기라도 한 듯, 온몸이 팽팽하고 옹골차게

근육과 순박함으로 가득 차 있다.

 

오 그대들,

그대들은 아직 어리던 어떤 고통을 위해

그 언젠가 장난감으로 주어졌다, 그 고통의

오랜 회복기 중간에…

 

그대여, 그대는 날마다 수백 번씩, 설익은 채로,

여럿이 함께 쌓아올린 동작의 나무에서

열매들만이 알 수 있는 부딪침과 함께

떨어진다(물보다도 더 빠르게 몇 분 동안에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을 겪어내는 나무에서),

떨어지며 무덤에 부딪쳐 쿵 소리를 낸다 :

가끔, 잠깐 쉬는 동안에, 다정한 적이 거의 없는

그대의 어머니를 향해 사랑스런 표정이 그대의 얼굴에

떠오르기도 한다 ; 하지만 수줍어하며 어렵사리 지어본

그 표정은 그대의 몸뚱어리에 이르러 사라지고 만다,

그대 몸의 표면이

그것을 몽땅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또다시

그 남자는 그대에게 어서 뛰어오르라고 박수를 친다, 그리고

끊임없이 고동치는 그대 심장의 언저리에서 고통이 언젠가

더욱 뚜렷해지기 전에, 그대 발바닥에 화끈거림이 찾아온다,

그 원인을 앞지르면서, 몸에서 나온 몇 방울의 눈물을

재빨리 눈 속으로 감추면서.

그렇지만, 맹목적으로,

짓고 있는 저 미소…

 

천사여! 오 잡아라, 어서 꺾어라, 작은 꽃이 핀 그 약초를.

꽃병을 구해서 꽂아두어라! 그것을 우리에게 아직

열리지 않은 기쁨들 사이에 놓아라 ; 아담한 단지에다

화려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글씨를 새겨 찬미하라 :

“곡예사의 미소”라고.

그리고 너 사랑스런 소녀여,

너, 더없이 달콤한 기쁨들이 머리 위로

말없이 뛰어넘은 소녀여. 너의 술 장식들은

너 때문에 행복한지도 모른다- ,

또는 너의 젊고

탄력 있는 젖가슴 위에서 금속성의 초록빛 비단은

한없이 호강을 하며 부족함을 모른다.

너,

그때마다 항상 다른 모습으로, 균형을 찾아 흔들리는

모든 저울들 위에 올려진 무심한 장터 과일이여,

어깨 밑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며.

 

어디, 오 그곳은 어디 있는가- 그곳은 내 가슴속에 있다- ,

그들이 한동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서로에게서

떨어지기만 하던 곳, 날뛰기만 하지 제대로 짝을 짓지

못하는 동물들처럼 ; -

무게가 아직도 무거운 곳 ;

그들의 서툰 작대기 놀림에

아직도 접시들이

비틀대는 곳…

그러다가 갑자기 이 힘겹고 존재하지 않는 장소 안에서,

순수한 모자람이 놀랍게 모습을 바꾸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곳이

갑자기 저 텅 빈 넘침을 향해 뛰어든다.

자릿수가 많은 계산이

숫자 없이 똑 떨어지는 곳.

 

광장들, 오 파리의 광장이여, 끝없는 구경거리를 주는 곳이여,

그곳에선 잡화상인 마담 라 모르가 이 세상의 쉬지 못하는 길들,

끝없는 리본들을 말기도 하고 감기도 하면서

새로운 나비 매듭, 주름 장식, 꽃, 모자 장식, 모조 과일들을

고안해 낸다- ,

하지만 모두가 거짓되게 물감을 들였으니, -

운명의 값싼 겨울 모자에나 어울리는 것들일 뿐이다.

 

천사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광장이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곳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양탄자 위에서 연인들이

이곳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심장의 약동의

대담하고 드높은 모습들을, 그들의 황홀경의 탑들을,

바닥 없는 곳에서 오래 전부터 떨면서

서로 기대어 있는 사다리들을 보여주리라,

그들은 해낼 수 있으리,

둘러선 구경꾼들, 입을 다문 무수한 망자들 앞에서 :

그러면 그들은 그들 품속에 언제나 아껴두고 숨겨두었던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영원히 통용되는 그들의 마지막

행복의 동전을 이제는 진정된 양탄자 위에서

마침내 진정으로 미소짓고 있는 그 연인들의 발치에

던져주지 않을까?

<두이노의 비가 6>

 

무화과나무여,

너는 벌써 오래 저부터 내게 많은 의미를 주었다,

너는 개화의 단계를 거의 완전히 건너뛰고,

내세움 없이 너의 순수한 비밀을

때맞추어 결심한 열매 안으로 밀어넣는다.

너의 굽은 나뭇가지는 분수의 수관처럼 위아래로

수액을 나른다 : 그러면 수액은 잠에서 벌떡 일어나,

거의 깨지지 않은 채, 가장 달콤한 성취의 행복 속으로 뛰어든다.

보라 : 신이 백조의 몸 속으로 뛰어들었듯이.

··· 그러나 우리는 머뭇거린다, 슬프다,

우리가 내세울 것은 우리의 꽃피어남이니,

우리는 우리의 궁극적인 열매의 뒤늦은 핵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탄로나버린다.

몇몇 사람에게만 행동에의 충동이 강력하게 솟구치니,

이들은 벌서 그들 마음의 충마함 속에 머물면서 작렬한다,

꽃피움의 유혹이, 위안을 주는 밤공기처럼

그들의 젊은 입과 눈꺼풀을 스칠 때며 :

이들은 영웅들이거나 일찍 세상을 뜰 운명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의 혈관을 정원사 죽음의 신은 각각 다르게 비틀어놓았다.

이들은 돌진해간다 : 자신들의 미소보다 앞서간다, 마치

카르나크 신전에 부드럽게 새겨진 움푹한 부조에서

마차를 끄는 말들이 승리에 취한 왕을 앞서가듯이.

 

영웅은 놀랍게도 어려서 죽은 자들과 아주 가까이 있다.

영웅은 영속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에겐 상승이 현존재이다 ;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덜어내면서 계속되는 위험의 바뀐 별자리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를 발견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해줄 말이 없는 검은 운명은 갑작스레 열광하면서 그를 향해 그의 떠들썩한 세계의 폭풍 속으로 들어가라고 노래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목소리와 같은 소리는 듣지 못한다.

느닷없이, 밀려오는 공기에 실려 어두운 그의 음성이

나를 뚫고 지나가다.

 

그러면, 나는 이 큰 그리움으로부터 숨고 싶구나 :

오 내가 만일, 내가 만일 소년이라면,

내가 아직 소년이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미래의 팔을 괴고 앉아 삼손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면,

그의 어머니가 처음엔 아무것도 낳지 못하다가 나중엔 모든 걸 낳게 되었는지.

 

그는 이미 당신의 몸 속에서부터 영웅이 아니었던가, 어머니,

그의 영웅다운 선택은 이미 그곳, 당신 안에서 시작되지 않았던가?

무수한 것들이 자궁 속에서 들끓으면서 그가 되고 싶어했다,

그러나 보라 : 붙잡고 분별하고 선택하고 성취한 것은 그였다.

그리고 그는 기둥들을 부쉈다, 그것은 그가 당신 몸의 세계로부터 더욱 비좁은 세계로 갑자기 빠져나왔을 때였다,

이곳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선택하고 성취했다.

오 영웅들의 어머니들이여, 오 쏟아지는 강줄기의 원천이여! 너희 골짜기들이여, 처녀들은 벌써

너희들을 향해 마음의 높은 벼랑에서 울면서 뛰어내렸다,

그들은 앞으로 태어날 아들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었던 것이다.

영웅이 사랑의 정거장을 폭풍처럼 헤치며 지나갈 때마다,

그를 위해 뛰는 모든 심장이 그를 높이 들어올리는가 했더니,

어느새 몸을 돌려, 그는 미소의 끝에 서 있었다, 다른 모습으로.

<두이노의 비가 7>

 

더 이상 구애하지 마라, 저절로 터져나온 목소리여, 네 외침이

구애의 외침이 되지 않게 하라 ; 너 비록 새처럼 순수하게

외칠지라 모르지만,

계절이, 상승하는 계절이 새를 들어올릴 때면,

이것은 거의 잊고 하는 일,

새 역시 한 마리 근심하는 짐승에 지나지 않으며,

맑은 행복을 향해,

친근한 하늘을 향해 계절이 던져 올리는 유일한 마음이 아님을.

새처럼 바로 그렇게 너도

구애하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아직은 보이지 않는,

조용한 여자친구에게

구애를 하여, 네 목소리를 듣고서 그녀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대답이 서서히 눈을 뜨고 몸이 뜨거워지게 하고 싶은 것이다,

너의 대담한 감정에 어울리는 불타오르는 감정의 짝이 되도록.

 

오, 봄은 이해하리라-, 어느 조그만 틈새 하나라도

예고의 음조를 울리지 않는 곳이 없으니. 제일 먼저,

높아져가는 고요와 말없는 순수한 긍정의 날로 둘러싸여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저 작은, 묻는 듯한 피리 소리를,

그 다음엔 계단들을, 꿈속에서 본 미래의 사원을 향한

외침의 계단들을, 그 다음엔 종달새의 지저귐을,

약속된 놀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치솟는 물줄기로

잡아 올리는

분수들을 이해하리라··· 그러면 봄 앞엔 여름이 서 있으리라.

 

그 모든 여름 아침들뿐만 아니라, 이 아침들이

낮으로 바뀌어가며 해돋이로 빛을 뿌리는 모습뿐만 아니라,

꽃들 사이에선 점잖지만, 위쪽, 나무들 모습 사이에선

힘차고 거대한 날들뿐만 아니라,

이렇게 펼쳐진 힘들의 경건함뿐만 아니라,

길들뿐만 아니라, 저녁 무렵의 초원뿐만 아니라,

늦은 뇌우가 지나간 뒤에 느끼는 숨결의 청명함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잠과 저녁에 느끼는 예감뿐만 아니라,

그 밤들! 드높은, 여름날의 밤들,

그리고 별들, 대지의 별들.

오 언젠가는 죽는 것, 그들의 무한함을 아는 것,

그 모든 별들을 : 그들을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잊겠는가!

 

보라, 그때 나는 애인을 향해 외쳤다. 그러나 그녀만이

오는 것이 아니니라······ 무른 무덤들을 헤치고 나와

소녀들도 내 곁에 서리라······ 내 어찌 한 번의 외침을

제한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땅에 몯힌 소녀들은

언제나 이 세상을 찾고 있다. -너희 어린아이들아, 이곳에서

제대로 한 번 손에 잡은 것은 많은 이들에게도 소용되리라.

운명이 어린 시절의 밀도보다 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

얼마나 자주 너희들은 사랑받는 남자를 추월했던가,

무를 향한,

열린 세계를 향한 그 놀라운 달리기 끝에 숨을 내쉬며,

내쉬며.

 

이승에 있다는 것은 멋진 일. 너희들은 그것을 알았다,

소녀들이여,

너희들도, 너희들은 그것을 빼앗긴 것 같다,

너희들은 도회지의

가장 비참한 골목과 곪아터진 상처 속으로, 또는 쓰레기

구덩이 속으로 빠졌다. 모두 한 시간만을 가졌으니, 아니,

온전히 한 시간도 아닌, 시간의 척도로 거의 잴 수 없는

두 순간 사이의 시간을-, 모두 이 세상에 존재했을 때.

모두 모든 것을 가졌을 때, 현존재로 가득 찬 혈관들을.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다정한 이웃이 인정해주거나

시기하지 않는 것은 너무 쉽게 잊는다는 것. 우리는 남에게

행복을 눈에 띄게 보여주려 한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복은

우리가 그것을 마음속에서 변용시켰을 때 드러나는 법인데.

 

세계는, 사랑하는 이여, 우리의 마음속 말고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인생은 변용 속에 흘러간다.

그리고 외부 세계는 점점 더

적게 사라진다. 한때 옹골찬 집이 서 있던 곳에

가공의 이미지가 끼여든다, 비스듬히, 상상의 세계에

완전히 예속되어, 그 모든 게 아직도 머릿속에 들어 있는 듯.

시대정신은 힘의 거대한 창고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모든 것에서 취해온 긴장된 충동처럼 형체도 없다.

시대정신은 사원을 더 이상 모른다. 우리는 이 같은 마음의

낭비를 은밀하게 아끼려 한다. 그렇다, 아직 하나의 사물이.

지난날 숭배하던 것, 무릎 꿇고 모시던 것이 아직 남아 있어도,

그것은 있는 모습 그대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벌써 들어간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것을 마음속에

다시 지을 기회를 놓치고 있다, 기둥과 조각상으로 더 위대하게!

 

이 세상이 묵직하게 방향을 틀 때마다 폐적자들이 생기는 법,

이들은 과거의 것도 그리고 미래의 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미래의 것 역시 사람들에겐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

이것은 아직은 우리가 인식하는 형상을

보존하는 것을 강화시켜주리라.

이것은 한때 사람들 속에 있었고,

운명 속에, 파괴적인 운명의 한복판에 서 있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름 속에 서 있었다,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그리고 이것은 확정된 하늘에서 별들을 제 쪽으로 휘어놓았다.

천사여, 나는 그것을 그대에게 보여준다, 자 여기!

그대의 눈길 속에

그것이 구원을 받게 해다오, 마침내 똑바로 서도록.

기둥들, 탑문들, 스핑크스, 사라져가는 또는 낯선

도시 위로 우뚝 솟아 버티는 대성당의 잿빛 지주들.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던가? 오 천사여, 경탄하라,

바로 우리다,

우리다, 오 그대 위대한 존재여,

우리가 그 일을 해냈다고 말해다오,

나의 호흡은 그렇게 찬미하기에도 벅차다. 그러니 우리는

결국 공간들을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풍요로운 몫을,

이들 우리의 공간들을. (우리들의 느낌의 수천 년으로도 이들이 넘쳐나지 않았으니, 이들은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광대한 것일까.)

그러나 탑은 거대했다, 그렇지 않은가? 오 천사여,

탑은 거대했다,

그대 옆에 놓아도 거대했다. 샤르트르 성당은 거대했다,

그리고

음악은 훨씬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 우리를 넘어섰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여인도, 오, 밤의 창가에서 혼자서······

그녀도 그대의 무릎까지 다다르지 않았던가?

내가 실제 그대에게 구애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천사여, 내가 구애를 한다고 해도! 그대는 오지 않는다.

나의 부름은 언제나 사라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강렬한 흐름을 거슬러서는 그대는 올 수 없다.

나의 외침은 쭉 뻗은 팔과 같다. 그리고 무언가 잡으려고

하늘을 향해 내민 나의 빈손은 그대 앞에

공허하다. 방어하고 경고하는,

잡을 수 없는 그대, 까마득히.

<두이노의 비가 8>

 

생물들은 온 눈으로 열린 세계를 바라본다.

우리들의 눈만이 거꾸로 된 듯하며

생물들 주변에 빙 둘러 덫처럼 놓여

생물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막는다.

외부에 존재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동물의

표정에서 알 뿐이다 ; 우리는 갓난아이조차도 이미

등을 돌려놓고 사물들의 모습을 뒤로 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얼굴에 그토록 깊이 새겨져 있는

열린 세계를 보지 못하게. 죽음에서 해방되어.

죽음을 보는 것은 우리뿐이다 ; 자유로운 동물은

몰락을 언제나 뒤로하고

앞에는 신을 두고 있다, 일단 걷기 시작하면, 동물은

영원히 앞으로 걷는다, 마치 샘물이 흘러가듯이.

우리는 결코 단 하루도

꽃들이 끊임없이 들어갈 수 있는

순수한 공간을 앞에 두지 못한다. 항상 세계만 있을 뿐,

‘아니오’가 없는 ‘아무 데도 아닌 곳’은 결코 없다 : 순수한 것,

돌봄을 받지 않는 것. 우리가 숨쉬고

무한히 알지만 탐내지 않는 것. 어릴 적에

때때로 골몰하는 것, 조용히 키우다가 털어버려야 하는 것.

또는 죽어서 도달할 수 있는 것.

죽음과 가까이 있으면 죽음을 보지 못하니까,

그러면 바깥을 응시하게 된다, 어쩌면 짐승의 커다란 눈길로.

시선을 가로막는 상대가 없다면,

사랑에 빠진 자들은 여기에 가까워져 놀라움을 금치 못하리라······

마치 실수에 의한 것처럼 그들은 서로

상대방의 뒤쪽으로 열려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상대방을 지나칠 수 없으니, 그들에겐 다시 세계가 돌아온다.

언제나 피조물을 마주하고 있는 까닭에, 우리는

거기에 비친 바깥세상의 영상만을 볼 뿐이다,

우리가 침침하게 만든 영상을, 또는 어느 짐승이,

묵묵한 짐승이 머리를 들어 태연히 우리를 꿰뚫어볼지도 모른다.

이것이 운명이다 : 마주 서 있는 것

그리고 오직 이뿐이다, 언제나 마주 서 있는 것.

 

만약에 다른 방향에서 우리를 향해 똑바로 다가오는

짐승이 우리와 같은 의식을 갖고 있다면,

우리를 그의 걸음걸이 속으로

잡아끌고 다닐 텐데. 하지만 그의 존재는

그에게 무한하고 이해되지 않고 그의 상태를

살핌도 없이, 순수하다, 밖을 보는 그의 눈길처럼.

그리고 우리가 미래를 보는 곳에서 그는 모든 것에서

모든 것과 자신을 보며 영원히 치유된 상태에 있다.

하지만 따뜻하고 경계심 많은 짐승의 내면에도

커다란 슬픔의 무게와 근심이 들어 있다.

자주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 그에게도

들러붙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회상이다,

우리가 지금 잡으려 하는 것이 옛날엔 훨씬 가깝고,

진실했고, 그것과의 관계도 한없이 다정했다는

회상이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거리이지만,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호흡이었다. 첫 고향 뒤로

두 번째 고향은 잡종에다 바람만 드세다.

오 작은 생물들의 행복함이여,

저희를 잉태했던 자궁 속에 언제나 머물러 있으니 ;

오, 모기의 행복이여, 안에는 아직도 뛰어오는구나,

교미를 할 때조차도 : 그들에겐 자궁이 모든 것이니까.

그런데 보라, 새의 불완전한 안전을,

새는 태어나 때부터 이 두 상태를 알고 있는 것 같다,

에트루리아인의 영혼이라도 되는 것처럼,

뚜껑에 그 자신의 쉬는 모습을 새긴

관 속에 집어넣어진 주검에서 빠져나온.

그리고 자궁에서 태어난 것으로 날아야만 할 때

그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마치 저 자신한테

놀란 듯, 새는 번개처럼 허공을 가른다, 마치

찻잔에 쩌억 금이 가듯이. 그렇게 박쥐의

자취가 저녁의 도자기를 가르며 지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 구경꾼들, 언제 어디서나

그 모든 것을 보며 결코 그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것들로 우리는 넘쳐난다. 아무리 정리해도 무너지고 만다.

우리는 그것들을 다시 정리하다가 따라서 무너진다.

 

누가 우리의 방향을 이렇게 돌려놓았기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우리는 언제나 떠나는 사람의 자세인가?

자기가 살던 계곡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마지막 언덕에

이르러 다시 한 번 몸을 돌려 서서 서성이는 그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면서 언제나 이별을 하는 것이다.

<두이노의 비가 9>

 

왜, 우리 현존재의 짧은 순간을 월계수처럼

다른 모든 초록빛보다 좀더 짙은 빛깔로,

나뭇잎 가장자리마다 (바람의 미소처럼)

작은 물결들을 지니고서 보낼 수 있다면,

왜 아직도 인간이기를 고집하는가, 운명을

피하면서 또다시 운명을 그리워하면서?

 

오, 행복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행복이란 다가오는 상실에 한 발 앞선 한시적인 누림일 뿐.

호기심 때문도 아니고, 또한 마음을 쓰기 위함 때문도 아니다,

월계수에도 그런 마음이 있다면 좋으련만

 

사실은 이곳에 있음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든 것, 사라지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고,

나름대로 우리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더 덧없는 존재인 우리를.

모든 존재는 한 번뿐, 단 한 번뿐. 한 번뿐, 더 이상은 없다. 우리도

한 번뿐. 다시는 없다. 그러나 이

한 번 있었다는 사실, 비록 단 한 번뿐이지만 :

지상에 있었다는 사실은 취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달려들어 그것을 수행하려 하며,

그것을 우리의 두 손 안에, 넘치는 눈길 속에,

말문이 막힌 가슴속에 간직하려 한다.

그것이 되고자 한다. -누구에게 주려고? 아니다,

그 모든 걸 영원히 간직하고만 ····· 아, 슬프다, 우리는

다른 관계 쪽으로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우리가 여기서

더디게 익힌 바라보기도, 여기서 일어난 일도 아니다. 아무것도.

우리는 고통을 가져간다. 무엇보다 존재의 무거움을 가져간다,

사랑의 긴 경험을 가져간다, -그래,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가져간다. 그러한 훗날,

별들 아래서, 왜 근심할까 : 이들이 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걸.

결국 방랑자 역시 산비탈에서 계곡으로 가지고 돌아오는 것은

누구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한 줌의 흙이 아니라,

어렵게 익힌 말, 순수한 말, 노랗고 파란 용담꽃이 아니던가.

어쩌면 우리는 말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다 : 집,

다리, 우물, 성문, 항아리, 과일나무, 창문 그리고

잘해야 : 기둥, 탑이라고······ 그러나, 그대는 알겠는가, 이것들을

말하기 위해 사물들 스스로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으리라.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재촉하여

서로 감정을 나누는 가운데 모든 것이 황홀해지도록 한다면,

이것은 말없는 대지의 은밀한 책략이 아닌가?

문턱 : 사랑하는 두 사람에겐 무엇을 뜻할까,

오래된 그들의 문턱을 조금 더 닳게 만든다는 것은,

그들보다 앞서간 많은 사람들 뒤에 그리고

앞으로 올 많은 사람들에 앞서서······, 가볍게.

 

여기는 말할 수 있는 것을 위한 시간, 여기는 그것의 고향이다.

말하고 고백하라. 예전보다 더 많이

사물들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사물들은 우리에게서 멀어져간다,

모습이 없는 행동이 그것들을 밀어내며 대체하기 때문이다.

껍데기들로 덮여 있는 행동이다, 안쪽에서 행동이 너무 커져

다른 경계를 요하게 되면 금방 깨져버리고 마는 껍데기들로.

우리의 마음은 두 개의 망치질 사이에

존재한다, 우리의 혀가

이 사이에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찬양을 그치지 않듯이.

 

천사를 향해 이 세상을 찬미하라,

말로 할 수 없는 세상은 말고,

호화로운 감정으로는 너는 천사를 감동시킬 수 없다 ; 천사가

모든 것을 절실하게 느끼는 우주공간에서 너는 초심자일 뿐이다.

그러니 천사에게 소박한 것을 보여주어라,

몇 세대에 걸쳐 만들어져 우리 것이 되어

우리 손 옆에 그리고 눈길 속에 살아 있는 것을.

그에게 사물에 대해 말하라. 그는 놀라워하며 서 있으리라 ; 네가

로마의 밧줄 제조공 옆에, 나일 강의 도공 옆에 서 있었듯이.

사물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

얼마나 순수한지 그리고 얼마나 우리 편인지,

구슬픈 고통조차 어떻게 순수하게 제 모습을 갖추어,

사물로서 봉사하거나

죽어서 사물 속으로 들어가는지,

바이올린조차 다시 불러들일 수 없는

공간으로 넘어가는지 천사에게 보여주어라.

-그리고 이들 무상함을

먹고 사는 사물들은 알고 있다, 네가 그들을 칭송하다는 것을 ; 죽어 가면서,

이들은 가장 덧없는 존재인 우리에게서 구원을 기대한다.

이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우리의 보이지 않는 마음 속에서

- 오 끊임없이-

완전히 우리 자신으로 변용시켜주기를 바란다!

우리들이 누구이든지 상관없이.

 

대지여, 그대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닌가? 우리의 마음에서

보이지 않게 다시 한 번 살아나는 것. -언젠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그것이 그대의 꿈이 아니던가? -대지여! 보이지 않음이여!

변용이 아니라면, 무엇이 너의 절박한 사명이랴?

대지여, 내 사랑이여, 나는 그것을 해낼 것이다.

오 내 말을 믿어라,

나를 얻기 위하여 더 이상의 그대의 봄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한 번의 봄, 단 한 번의 봄도 나의 피에게는 너무 많은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나는 그대에게 가기로 결심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항상 그대의 말이 옳았다,

그대 자신이 해낸 성스러운 생각이란

친근한 죽음이다.

 

보라, 나는 살고 있다. 무엇으로?

나의 어리 시절도 나의 미래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넘치는 현존재가

내 마음속에서 솟아나기 때문이다.

<두이노의 비가 10>

 

언젠가 나 이 무서운 인식의 끝마당에 서서

화답하는 천사들을 향해 환호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리라.

내 심장의 망치들 중 어느 것 하나 부드러운 현이나,

의심하거나 격하게 물어뜯는 현에 닿는다 해도

맑은 소리 그치는 법 없으리라. 넘쳐흐르는 나의 얼굴이

나를 더욱 빛나게 하리라 ; 이 수수한 울음도 꽃 피어나리라.

오 너희 밤들이여, 나, 비탄에 젖어들던 밤들이여, 그러면

너희는 내게 얼마나 소중하랴. 너희 슬픔의 자매들이여,

왜 나는 너희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더욱 세차게 무릎 꿇고

너희들의 풀어헤친 머리카락 속에 나를 풀어 바치지 않았던가?

우리는 고통의 낭비자.

우리가 어떻게 슬픔을 넘어 응시할 수 있을까,

슬픔의 지속을, 언젠가 이것이 끝나지 않을까 바라면서.

그러나

고통은 우리의 겨울 나뭇잎, 우리의 짙은 상록수,

우리의 은밀한 한 해의 계절 중의 한 계절,

그런 시간일 뿐 아니라,

고통은 장소요 주거지요 잠자리요 흙이요 집이다.

 

정말로 괴롭다, 고통의 도시의 뒷골목은 낯설기만 하구나,

그곳엔 넘쳐나는 소음으로 만들어진 거짓 고요 속을

공허의 거푸집에서 나온 주물들이 마구 활보하며 걷는다 :

금으로 도금한 소음, 파열하는 기념비.

오, 천사가 있다면 얼마나 흔적도 없이 짓밟아버리겠는가,

그들이 완제품으로 사들인 교회가 경계를 긋고 있는 위안의 시장을 :

깨끗하게, 문을 닫아버릴까, 실망이 크도록,

일요일의 우체국처럼,

그러나 밖에는 언제나 대목장의 변두리들이 넘실대고 있다.

자유의 그네요! 열정의 잠수부여, 곡예사들이여!

그리고 여러 모양들로 예쁘게 꾸민 행운의 사격장에서는

양철 과녁이 넘어지며 덜커덩 소리를 낸다.

어느 솜씨 좋은 사람이 명중시킬 때마다, 그 사람은 갈채에서

우연으로 비틀대며 간다 ; 온갖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게들이

외치며 북을 치고 물건을 사라고 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을 위한 특별한 볼거리도 있다. 돈이 어떻게 새끼를 치는가,

해부학적으로도 타당한 것. 재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

돈의 생식기.

남김없이 행하는 것, 행위 그 자체. 교육적이고

성적 능력 향상에도 좋은 것······

······ 오 그러나 그곳을 벗어나자 곧,

마지막 판자 뒤편에 “영생불사”라는 광고문이 붙어 있다,

저 쓴 맥주 광고, 마시는 사람들은 달콤하게 느낄 것 같다,

거기다가 늘 신선한 심심풀이를 곁들여서 씹는다면······

바로 그 판자 뒤쪽을 보니, 그 뒤쪽은 현실적이다.

아이들은 놀고 있고, 연인들은 서로 끌어안는다, -한쪽에서,

진지하게, 듬성듬성한 풀밭에서. 그리고 개는 마냥 개다.

젊은이는 자기도 모르게 좀더 걸어간다.

그는 어느 젊은 비탄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 뒤를 따라 초원으로 들어선다.

그녀가 말한다 :

-좀 멀어요. 우리는 저기 바깥쪽에 살고 있어요·····

어디요? 그러면서 젊은이는

따라간다. 그녀의 자태에 그의 마음이 끌렸다.

어깨와 목덜미-,

그녀는 귀한 가문 출신인가봐.

그러나 그는 그녀를 그냥 두고서

돌아가다가 돌아서서 손짓을 한다······ 부질없는 짓.

그녀는 비탄인걸.

 

다만 어려서 죽은 자들만이 처음으로 맞는, 시간을 넘어선

평온함의 상태에서, 모든 습관을 버린 상태에서

사랑으로 그녀의 뒤를 따른다. 그녀는 소녀들을

기다렸다가 그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에게 살며시

몸에 지닌 것을 보여준다. 고통의 진주알들과 인내의

고운 면사포. -그녀는 소년들과 함께 걸어간다,

말 없이.

 

그러나 그들이 사는 계곡에 이르자, 어느 노파가, 비탄의

노파 하나가 소년의 물음에 대답한다 : 우리는

위대한 종족이었지. 그녀가 말한다.

옛날에, 우리 비탄들은. 우리 조상들은

저기 큰 산에서 광산일을 했어. 사람들에게서 가끔

매끄럽게 연마된 태곳적 고통 덩어리나,

오래된 화산에서 캐낸, 화석이 된 분노 찌꺼기를 볼 거야.

그래, 그게 다 저기서 나온 거지. 옛날에 우린 부자였어.

- 그리고 그를 드넓은 비탄의 풍경 속으로 가볍게 이끌어,

그에게 사원들의 기둥이나 허물어진 성들을 보여준다,

그곳에선 한때 비탄의 영주들이 백성들에게 어진 정치를

베풀었다. 그녀는 그에게 우람한 눈물의 나무들과

꽃 피어나는 슬픔의 밭들을 보여준다.

(산 자들은 이것을 부드러운 나뭇잎으로만 알고 있다)

그녀는 그에게 풀을 뜯고 있는 슬픔의 짐승들을 보여준다,

그때 가끔 새 한 마리가 놀라서 그들의 시야 안으로

낮게 날아가면서 곳곳에 제 고독한 울음의 그림을 그려놓는다.

저녁이 되자 그녀는 그를 비탄 가문의 노인들의 무덤으로

안내한다, 그들은 여자 무당들과 예언자들이다.

그러나 밤이 다가오자, 그들은 더 천천히 거닌다. 이윽고

달이 떠오르고, 달빛 속에서 모든 것을 감시하는 묘비.

나일 강변에 있는 것과 쌍둥이 같다 :

엄숙한 모습의 스핑크스,

말 없는 묘혈의 얼굴.

그리고 그들은 왕관을 쓴 머리를 보고 놀란다,

그 머리는 무게를 재려고 사람의 얼굴을

별들의 저울에 올려놓고 있었다, 조용히 그리고 영원히.

 

그의 시선은 그의 이른 죽음으로 아직 어지러워

그 광경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왕관의 테두리 뒤에서 나와, 부엉이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러자

부엉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완숙하게 둥근

뺨을 따라 아래로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죽음에 이어 생긴 새로운 청각 위에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윤곽들을 부드럽게 그려넣는다,

양쪽으로 펼쳐진 책 속에다 써넣듯이.

 

그리고 더 높은 곳에는 별들, 새로운 별들,

고통의 나라의 별들.

비탄은 별들의 이름을 천천히 불러본다 : -이쪽을 봐,

기수, 지팡이가 있지. 그리고 아주 밀집해 있는 저 별자리를

이곳에서는 열매의 화환이라고 불러.

다음엔, 계속, 극 쪽을 봐 :

요람 ; 길 ; 타오르는 책 ; 인형 ; 창문이 있지.

그렇지만 남쪽 하늘에는 성스러운 손바닥의

안쪽처럼 순수하게 밝게 빛나는 “M”이 있어,

이건 어머니들을 뜻하지······

 

그러나 죽은 젊은이는 떠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이 든 비탄은

말 없이 그를 깊은 골짜기로 데리고 간다,

거기 달빛 속에 은은히 빛나는 것,

기쁨의 샘물이다. 비탄은 깊은 경외심에서

그 이름을 부르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 세계에서는

이것은 생명을 잉태하는 물결이지. -

 

그들은 산 발치에 이른다.

그때 비탄은 그를 포옹한다, 울면서.

 

홀로 그는 올라간다. 태곳적 고통의 산을.

그의 발걸음에서는 소리 없는 운명의 소리 한 번 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영원히 죽은 자들이 우리에게 하나의 비유를 일깨워 주었다면,

보라, 그들은 손가락으로 텅 빈 개암나무에 매달린

겨울 눈을 가리켰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비를 생각했을까, 봄날 어두운 대지 위로 떨어지는.

 

그리고 솟아오르는 행복만을

생각하는 우리는

행복이 떨어질 때면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느끼리라.

여기가 말할 수 있는 시간이요, 여기가 그 고향이다.

말하라, 그리고 고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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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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