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스리는 명상
인드라 초한
1장 사랑의 문
* 스스로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행복의 반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나머지 반은?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면 됩니다.
말은 가장 좋은 약입니다.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합니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의 말이 상대방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낸다.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이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혹은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말 한 마디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의 빛이 되기도 하고, 이와는 반대로 무심코 던진 말이 상대방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기도 합니다.
생각 없이 한 말이 당사자에게 용기를 준다면 다행이겠지만
실제로는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로써 타인을 죽이기도 하니
참 죄 많은 동물이지요.
사람들은 늘 남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의식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타인의 말이 심장을 찌르는 칼날이 되기도 하지요. 당신도 남의 말 한 마디에 기분이 나빴거나 괴로웠던 일을 여러 번 겪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말을 내뱉기 전에
'내 한 마디가 저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라고 신중히 생각하며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현대는 그렇게 여유 있는 시대가 아니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가족, 이웃, 친척들 혹은 약한 사람들에게는 평소 상대를 존중하는 말을 쓰도록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며, 말하는 사람의 됨됨이와 인간성을 나타내는 척도입니다. 착한 사람은 좋은 말을 쓰고 악한 사람은 본성을 속이려 해도 그 말로써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값이면 말로써 절망에 빠진 이에게 희망을 주고 방황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합니다.
사람은 마로써 힘을 얻고 성장하며, 따뜻한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은 늘 인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지혜를 가집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은 어떤 의사의 주사나 약보다 훌륭하게 사람의 마음을 치유합니다.
사랑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
자녀가 열 명이라고 애정을 10분의 1씩 나눠 주는 부모는 없습니다.
부모는 모든 자식에게 100% 이상의 애정을 주는 법입니다.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사람이 제일 불행할 때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가 없다고 느낄 때다.
'얼마나 사랑하느냐?'
'얼마나 사랑받느냐?'
사랑은 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깊이 또한 측량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이든 가족의 사랑이든 인류애이든,
사랑은 말이나 형식이나 동작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그 자체가 존재입니다.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부모가 숨을 거두면 자식들은 슬퍼합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비록 부모가 무의식상태에 있어도 자식들은 그저 숨쉬고만
있는 부모의 존재에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불행은 굶주림, 질병, 전쟁, 살육이 아닙니다.
사람이 제일 불행할 때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이며 자신을 사랑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또한 자신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여길 때입니다.
이때 인간은 가장 큰 불행을 경험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귀중한 존재입니다.
우주의 사랑은 사람 사이의 애정 혹은 인간이 삼라만상에게
주는 애정과 그 뿌리가 같습니다.
애정은 상대에게 주고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목적을 띠고 창조됐습니다.
그것은 사랑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사랑한 만큼 사랑받고 싶다.'
보답을 기대한다면 그 사랑은 투자에 불과합니다.
참사랑은 한없이 주고 또 주는 것.
至高한 사랑은 자아희생입니다.
사랑은 보답을 바라지 않고, 주고 또 주는 것이다.
'사랑한 만큼 사랑 받고 싶다.'
이는 욕심쟁이입니다.
인간은 독점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이상한 동물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이 상대방에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부담을 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커다란 착각이고, 실은 빼앗기만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투자가 아닙니다. 물론 정기적금도 아닙니다.
사랑은 '전부를 잃어도 괜찮다'랄 만큼 강합니다.
자신은 전부 잃어도 좋지만 상대를 희생시키지 않으며
또한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를 파멸시키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보답을 바라지 않고, 주고 또 줍니다.
자식을 열심히 공부시켜서 대학에 보내는 일만이 과연
사랑일까요. 아이가 진심으로 바라는 일이라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자녀 교육이 당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투자일 뿐입니다.
자기의 꿈이나 장래 계획을 희생시켜도 자녀의 희망이나
목표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일이 사랑에 더 가깝겠지요.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언젠가 투자로 바뀔지 모르니
주의하십시오.
사랑의 적은 미움이 아닙니다.
사랑의 적은 무관심입니다.
이웃의 고뇌를 동정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으로 무관심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과 미움은 종전의 양면과 같다.
사랑의 반대쪽에 위치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결코 미움이나 증오가 아닙니다.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사랑이 지나쳐 죽도록 증오한다'라는 말은
사랑과 미움이 뿌리가 같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반대에 위치하는 것은 무관심입니다.
자신과는 관계 없다고 단정하는 일, 이것이 무관심입니다.
무관심은 무시와는 다릅니다. 무시는 증오에 가까운 것으로
사랑의 변형이며, 무관심이라는 것은 의식이 거기에 없는 것 - 생각조차 없는 것입니다.
이웃의 땀과 눈물, 고심, 고생, 고민, 분노 그러한 모든 일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일, 이것이 무관심입니다.
지구상에는 아직도 많은 지역에서 전쟁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여러 곳에서 굶주림이나 자연재해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먼 나라의 서건, 혹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한 이 세상에서 전쟁이나 기아가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웃나라에 큰 지진이 발생했기 때문에
당신의 나라에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고 도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일 수 있으며 타인의 불행이 언제 나에게
덮칠지도 모릅니다.
우리 각각은 살아 있는 한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누군가를 보살피고 있기도 합니다.
사랑하면 사랑 받습니다. 주면 받습니다.
믿으면 믿음을 받게 됩니다.
미워하면 미움 받습니다.
빼앗으면 빼앗깁니다.
의심하면 의심 받습니다.
사랑하면 사랑 받게 되고 믿으면 신임 받게 된다.
세상의 모든 현상은 작용 - 반작용입니다.
밀면 안 밀리려는 힘이 생기고
당기면 안 끌려오려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은 물리학뿐만 아니라 사물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인 인도나 동남아시아, 혹은
아프리카나 남미 등의 자원을 착취했습니다. 금, 은, 석유 등의 천연자원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사람들을 신대륙에 노예로
팔아먹는 등 인간자원도 착취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개발도상국의 빈민층이 이전의 식민종주국으로 이민하고 있습니다. 선진국 정부는 그들을 몰아내려 하지 영주권을 줄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은 저개발국가로부터의 대량 이민에 불안해 하면서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어떤 조치도 현재의 대량 이민추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현재의 이민문제는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를 착취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애초의 원인을 만든 것이 누구입니까?
빼앗으면 빼앗기는 법입니다. 미워하면 미움을 받게 되고
의심하면 의심 받게 되는 것이 인간사회의 원리입니다.
그 반대논리도 역시 진리입니다.
주면 받게 됩니다. 사랑하면 사랑 받게 되고 믿으면
신임 받게 됩니다.
스스로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행복의 반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나머지 반은?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면 됩니다.
마음 깊이 있는 감정을 처음부터 부정할 필요는 없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남의 성공을 부러워하거나 남의 실패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거나 말해 버리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표현을 한 후에 자신이 매우 비열했다고 여기고 자포자기하거나 낙담하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을 행동화하지 않으면 좋은데 사람이란 그렇게 논리적으로만 움직이는 동물은 아닙니다.
당신도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겠지요.
인간이란 본래 그런 존재라고 여겨집니다. 사람이 질투, 선망, 분노, 배신, 모략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은 솔직한 것입니다.
마음 깊이 있는 것을 처음부터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에 성인군자는 없으니까요.
문제는 그런 감정을 실제 표현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차이일 뿐입니다.
부러우면 마음껏 부러워하고 마음껏 남이 실패하기를 바라도 괜찮습니다. 자신이 그런 비열한 마음을 지녔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소 주위 사람들도 당신과 비슷한 감정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하십시오.
그러면 주위 사람들은 모두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타인을 사랑하게 되면 질투심도 사라지고 남이 실패하는 것을 발지 않게 됩니다.
모든 존재는 아름답고 일어난 일들은 모두 좋습니다.
사랑은 때로 심한 착각에 근거하기도 합니다.
無知한 것만큼 슬픈 일은 없습니다.
無知蒙昧만큼 슬픈 일은 없다.
인도의 캘커타에는 인구 1천2백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중 노상 생활자가 40만 명을 넘는다고 합니다만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의사의 보살핌이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길거리에서 짐승처럼 죽오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걸려서 쥐나 개미를 먹기도 하고
온 몸에 난 상처에서는 고름이 나옵니다.
불행하게 버림을 당한 사람들을 보고 '그들은 내세에 환생하기 위하여 현세에서 카르마(숙명)를 벗어나려는 것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힌두교는 카르마를 믿는 종교입니다. 인간은 죽으면 저 세상으로 가서 다시 돌아옵니다. 선행을 많이 한 사람은 훌륭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인간으로 환생하지 못하고 저급한 짐승이 된다는 인과응보를 가르칩니다.
카스트 사회는 인과응보의 윤회사상을 기반으로 유지돼 왔습니다.
이승에서 가난하고 괴로워도 좋은 일을 하면 내세에서는 행복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같은 인과응보의 윤회사상은 이 세상에 대한 포기와 복종을 가르칩니다.
노상 생활자는 거지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자신의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장차 거지로 살아가는데 유리하도록' 아기의 다리나 팔을 모두 잘라 버리는 자도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주위 사람들이나 관광객들의 동정을 불러 일으키려고 일부러 더 비참한 모양으로 자신의 자녀를 불구로 만듭니다. 그들에게는 사활의 문제이니까요.
이것을 부모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무지몽매만큼 슬픈 일은 없습니다.
가족이 건강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하다고 감사해야 합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프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가족들이
사랑으로 뭉치게 되었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가정이 사랑으로 충만해 있는 것만큼 정신적인 안정을 주는 일은 없다.
가족이 건강하다는 것, 그 이상의 행복은 없겠지요.
그 이상의 것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이나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일이나 사업, 혹은 출세 등 세속적인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불치병을 앓는 가족이 있을 경우 자신의 생활은 크게 제약 받게 됩니다.
항상 가족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여 출장이나 여행을 결정해야 하고 때로는 중요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도 됩니다.
가족 중에 건강치 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장애가 되는 것이지요. 가족 모두 건강하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의 절반은 얻은 것입니다.
가족들이 건강하여 걱정 없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으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프다면........ 그 덕분에 오히려
그 가정은 아픈 사람을 중심으로 단단히 결속할 수 있습니다.
그 가정은 식구들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사랑으로 충만해 있는 것만큼 정신적인 안정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 몸이 약한 사람이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사랑의 가정을 이룰 수 있게 된 점에 감사해야 합니다. 불평하거나
불만을 가짐으로써 가정을 어둡게 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이 싫은 이유는
그를 잘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사고방식이나 인간성,
더 나아가 가족 관계까지 알게 되면
이 세상에 미워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마음의 벽을 허물게 되면 서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다.
인간은 스스로 좋고 싫음의 감정에 따라서 행동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감정은 일정하거나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건이 달라지면 완전히 바뀌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당신은 그의 부탁이나 지시, 명령 따위는 절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이유는 그 사람이 싫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싫어하게 된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 사람이 자기 실수를 당신의 책임으로 떠넘긴다거나 지시가 수시로 바뀌고, 혹은 언제나 이런저런 일로 까다롭게 구는 등등 여려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반드시 진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소간 괴로움이나 고민을 안고 살게 마련입니다. 수완 있는 사업가나 경영자들도 사실은 돈 무제로 고생하고 있거나 집안 식구 중에 환자가 있는 등 여러 가지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출근할 때 열이 높아지고 아프기 시작한 아이 때문에 고민이 돼서 기분이 나쁘고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정을 알면 싫은 사람이나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싫거나 상대하기 어려운 까닭은 마음속에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기 때문이며, 이 마음의 벽을 허물게 되면
백년간 싸워온 원수 사이라도 서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런 것이지요.
어떤 인물에 대한 평가도 정이 좌우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에 감동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을 창조하신 신의 위대함에
감동을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한 누구든지 인생은 열린다.
낯선 이국의 도시에 비행기에서 내리면 긴장하게 마련이지만, 자연이 살아 숨쉬는 시골은 아직 넉넉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곳을 가더라도 자연은 살아 있습니다. 목이 마르면 과일을 나눠 받을 수 있고 천연 벌꿀도 듬뿍 받을 수 있습니다.
히마라야에서 쵸애란마를 보았을 때 신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이구아스 폭포, 미국의 요세미트 공원 등 일상을 넘어선 대자연의 품에 안기면 우주 속에 살아 있는 자아를 확실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그 자연의 은혜를 듬뿍 받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한 누구에게나 인생은 열립니다.
대자연의 법칙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한다.
이것이 대자연의 법칙을 따른 삶입니다.
세계의 최고봉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교만이나 오만은 있을 수 없으며 대자연 속에 안긴 작은 존재로서의 인간만을 볼 수 있습니다.
대자연 속에서 한 인간은 미력한 존재일 뿐이지만 이제 인류는 지구의 생명까지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숭고한 대자연을 조절하기에는인간의 지혜는 너무나 천박한 것 같습니다.
대자연의 창조주에게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이 아름다움을 창조하신 그분의 위대함을 찬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2장 지혜의 문
역경은 삶에 강력한 활력을 제공합니다. 빚을 진 덕분에
일이 잘 되어 사회에 유익한 업적을 남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빚도 일종의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의 차이는
그것을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가 못하는가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뛰어난 분별력을 포함하며 양심이다.
지식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으며 방법 혹은 체계를 띠어야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지식의 최고 단계인 과학도 '인류와 그 호나겨을 위하여'라는 식의 허풍을 떨지 않아도 가까운 문제로부터 유익하게 쓰려면 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20세기는 물질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정신문명은 치명적으로 후퇴한 시기입니다.
과학의 발달은 인류에게 회기적인 편리성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것이 행복을 가능케 한 큰 요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인류는 과학이 발달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착각하고 어느새 과학 그 자체를 목적화하고 말았습니다.
과학이 신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현재의 과학은 과학 그 자체를 위하여
발달한다고 하는 이기주의의 극치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지금보다 백 배 더 발달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핵을 개발해 미사일을 쏘며 서로 싸울 것입니다.
아무리 치밀한 컴퓨터를 개발하더라도 핵발사단추를 컴퓨터 자신이 스스로의 의지로 누를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원숭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핵발사단추를 누르더라도 미사일은 발사돼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지식의 결과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실은 양심입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 지혜는 뛰어난 분별력을 포함합니다. 인간의 판단능력이 자기 식으로 흘러간다면 그것은 원숭이만도 못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과학이 발달한 만큼 정신문명의 발달도 촉진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는 이성이 의문시되는 시대, 이성이 위기에
처한 시대입니다.
정신문명이 건전하게 발달했더라면 과학도 지금처럼 저차원
단계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문젯거리는 늘 多面體,
이 방향에서 보면 크게 보이고
다른 방향에서 보면 작게 보입니다.
보는 방식에 따라서는 전혀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문젯거리는 다면체적인 성격을 띠며, '다른 방법이 없다'는
태도는 있을 수 없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일이 갑자기 장애를 만나면 필요 이상 곤란한 표정을 짓거나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문제에 대한 면역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황하지 말고 차분히 난관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결방법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 문제가 본인에게는 매우 중대해서 생명을 빼앗길 정도의
충격을 받을지 모르나, 같은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신경쓸 필요도 없는 사소한 문제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문제를 어느 측면에서 보는가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바로 문젯거리는 늘 다면체의 성격을 띠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문제가 발생해도 놀라지 않습니다. 문제를 가장 손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보는 방식에 따라 문젯거리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충격을 받고 쓸데없이 당황하는 것보다 어디서부터 접근하면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할 것입니다.
문젯거리는 다면체적인 성격을 띱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보는 의견이 다를 수 있고 해결방식도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태도는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한테서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보통사람은 학력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
부자나 유명한 사람의 말만 듣습니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서도
배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한테서나 배울 수 있는 사람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누구한테서도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배운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여러 차례 반복합니다. 지난날의 경험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다 보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당연하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식인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 혹은 학력이 높은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그들의 의견을 자신의 생각보다 중요시하기 쉽습니다.
자신의 직관을 경시하고 남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죠.
이것은 겸손하다기보다는 비굴한 태도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이 없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행동양식을 보입니다.
그러나 지식인이나 학력이 높은 사람들의 판단이 항상 옳았을까요. 오히려 전쟁이나 쓸데없는 마찰이 일어난 것은 대부분 그런 사람들의 의견이 계기가 된 것이 아니었나요.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한테서나 배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식견 있는 사람들은 물론,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냈던 뉴턴과 같이 삼라만상까지 스승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현대는 정보사회이므로 어리석어서는 정보수집도 못할 것이고 평범해서는 정보수집에만 신경을 쓰게 될 것입니다.
올바른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배웁시다.
사람은 논리에 근거해서만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관계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움직일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마음이 있어서 감동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감정의 미묘한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무엇에 감동 받고 삶의 의욕을 갖게 되며,
어떤 일에 분노해서 의욕을 상실하는 것일까?
또 어떤 말에 공감하고 반발하는 것일까?
인간감정의 미묘한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단지 지능이 높아서 만은 아니며,
마음이 있어서 감동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다른 점입니다.
경주마가 騎手의 마음에 공감해서 열심히 달린다라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에게 감명을 받아서 자기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려 노력합니다. '知'가 아니라 '情'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요.
어느 시대에나 이해관계에 밝은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사람은 이해를 초월하고 때로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고 단언해도 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척정신을 높이 사는 것은 감동 할 수 있는 마음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열심히 사는 사람을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성원을 보내고 반드시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 소리가 들립니까, 안 들립니까? 그 손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전혀 다른 생각 없이 어떤 일에 전념하면 주위가 보이지 않습니다.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며 도움의 손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끔은 하던 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 보는 일도 중요합니다.
무언가 충고를 하고 싶어서 중얼거리는 사람이 주위에 반드시 있을 겁니다.
사물은 반드시 양면성을 띱니다.
일방적인 견해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 옳은지는
신만이 아시기 때문이죠.
진실은 여러 표정을 짓고 있다.
인간은 소문 때문에 망설일 때가 많은 존재입니다. 치우친 정보만을 수집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견해나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물에는 반드시 양면성이 있습니다.
惡에도 善이, 善에도 惡이 함께 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간세계입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콩고의 밀림 속에 병원을 짓고 의료봉사와 전도활동에 전 생애를 바친 슈바이처 박사는 밀림의 성자로 칭송받았습니다.
그런데 슈바이처 박사는 문명사회로부터 설탕, 우유 등을 가져와 밀림에는 없던 백내장, 결핵 등의 질병을 만연시켰습니다.
선을 베풀었으나 나쁜 영향까지 동시에 초래한 것이지요.
그러나 세상의 평판이 어떨지라도 박사가 숨을 거두자 수천 명의 원주민들이 그의 묘지에 꽃을 바쳤다는 그 사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이지요.
사람의 견해라는 것은 이런 것이어서 어떤 사람에게는 선이
다른 사람에게는 약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진실한 모습이냐 하면 모두가 진실한 모습입니다.
진실은 여러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일방적인 견해로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판단을 내릴 때는 그것과 다른 판단도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하십시오.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신밖에 모릅니다.
꿈이란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꿈은 현실세계의 계시입니다.
꿈으로부터 배우는 자세가 있으면
인생을 두 배로 즐길 수 있습니다.
꿈은 현실세계의 계시이며 장래로부터의 메시지이다.
꿈 중에서도 장래에 관한 꿈을 豫知夢이라고 합니다.
심리학자 '칼 융'이 이런 꿈을 자주 꾸었다고 하는데 그는 유럽대륙 전체가 피투성이가 되는 불길한 꿈을 여러 번 꾸고 우울증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하고 고민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융은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친구의 사망과 같이 자기 주변에서 생길 일에 관해서도 여러 번 예지몽을 꾸었습니다.
융이 '꿈이야말로 생활의 안내자이며 꿈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고 말한 것은 흥미 있는 일입니다.
꿈은 무의식의 세계를 말합니다. 선입관이 없는 세계가 암시하는 바를 순순히 배우면 우리의 미래도 열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마음속으로 미워하는 사람을 꿈속에서 죽였다고 합시다. 꿈속에서는 현실과의 경계선이 없으므로 땀을
흠뻑 흘릴 정도로 흥분하고 있을 것입니다.
죽이고 낫 '큰 일을 하고 말았다'고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잠이 깨어서는 '꿈이어서 다행'이라며 안심할 것입니다.
꿈은 현실세계의 계시입니다. 꿈의 교훈을 잊지 않으면 범죄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꿈은 장래로부터의 메시지이며, 현실생활의 예습이고
복습인 것입니다.
잠자는 시간마저도 유익하게 쓸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역경은 삶에 강력한 활력을 제공합니다.
빚을 진 덕분에 일이 잘 되어
사회에 유익한 업적을
남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빚도 일종의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패배에서 얻은 교훈을 새겨 대책을 생각하고 노력한다.
의욕을 불러일으키며 정열이 불타오르는 도전.
인간행동의 기폭제는 다음 두 가지입니다.
그 하나는 자신감입니다. 자신감에서 시작하면 무순 일이든
적극적으로 합니다.
싸움닭을 훈련시킬 때 조련사는 자기 닭에게 본시합에 나갈 때까지 약한 상대하고만 연습시합을 시켜 승리만을 가르칩니다.
패배를 모르는 닭은 자신만만해지고 더욱 강해져 어떤 강적을 만나도 기가 꺾이지 않지만,한 번 진 닭은 두 번 다시 못 쓰게 됩니다. 힘의 근원인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한 번 지면 자신감을 잃게 되지만 패배에서 얻은 교훈을 새겨 대책을 생각하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자신감을 회복해 재도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제 자신감의 반대편에 있는 열등감(콤플렉스)이 원동력이요, 활력이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랐으므로 '부자가 되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을 가지고 있거나,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해 엄청난 일을 하는 등 역경이 큰 활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승과 저승은 다른 세상이 아닙니다.
이승과 저승은 그림자처럼 함께 붙어 있는 동반자입니다.
死後 세계를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면
현세는 보다 더 풍요롭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과 영혼은 또 하나의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한다.
'영혼 따위를 생각하는 것은 무익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영혼을 믿는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인도 사람들은 사후 세계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 중에는 來世에 왕족으로 환생할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후 세계를 염두에 두는 일은 전혀 무익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 유익한 가치관을 제공합니다.
만일 사후 세계에 극락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인간은
보다 더 이 세상을 풍요롭게 살게 될 것이며,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악덕이 횡행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죽음은 육체가 사라지는 것일 뿐, 영혼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육체는 이승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3차원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즉 상하, 전후, 좌우의 구별이 있는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삶은 초, 분, 시, 일, 주, 월, 년이라는 단위로 이루어지고 행동은 모두 시간과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일정 기간 살다가 죽습니다.
前生, 現世, 來世로 이어지는 輪廻는 저승에서도 거듭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나 영혼은 또 하나의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고 나서 저승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저승에 있는 것입니다.
육체를 벗을 때 본래의 마음, 기억, 인격, 영혼이 나타납니다. 영혼은 육체를 벗어나기 전의 상태 그대로의 모습이랍니다.
저승은 본적지이고 이승은 현주소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인생이나, 일이나, 가정에서나 방침이 필요합니다.
방침은 배의 나침반과 같은 것,
'동생을 구박해서는 안 된다'
'밥을 더 달래고 남겨서는 안 된다'등
어린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쉽고 단순한 것이 좋은 것입니다.
삶의 차원이 달라지면 삶의 목적도 바뀐다.
인생에 명확한 목적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어떻게 다를까요.
목적 있는 인생은 현실이 아무리 목적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서히 그 목적 실현을 향해 나아가지만, 목적 없는 인생은 그렇지 못합니다.
목적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은 나침반도 없이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배와 같아, 거친 세파 속에서 헛되이 방황만 할 뿐이고 자신이 지금 어디로 향하는지는 물론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인생의 나침반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한상 궤도수정을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차원이 달라지면 삶의 목적도 바뀌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돈을 벌 생각이었는데 어느 틈에 사회활동이나 영적수행에 눈뜰지 모릅니다.
빈틈없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간단한 방침을 세워서 실천해 나가는 것이 결국 결실을 얻게 됩니다.
이런 방침은 인생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을 할 때나 가정생활에서도 중요합니다.
교육방침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야단맞겠는데', '그러면 안 되지' 하고 어린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해야 합니다.
원칙 없이 어떤 때는 야단치고 어떤 때는 아무 말도 안 한다면 어린이는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모두 불행해질 것입니다.
투입과 산출,
이 세상에서 투입과 산출이 똑 같은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항상 어느 한쪽이 많게 마련입니다.
언제나 양자는 불균형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기회는 평등해야 하지만 성과는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현대에 이르러 세상에 여러 가지 차별이 없어진 것은 사실이나 오히려 지나친 평등주의가 널리 퍼진 것 같습니다.
선진국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면서 특히 못 가진 자가
가진 자보다 힘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평등의 의미를 확대하여 능력의 차이를 무시하고
평등하게 분배하는 制度를 수립한 나라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국민이 이런 制度에 만족하고 있는 한 그 나라는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회는 평등해야 하지만 성과는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정당한 代價를 부여하는 制度가 없어진다면 사람들이 활력을 잃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따름입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투임과 산출이 반드시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한쪽이 다른 쪽보다 크거나 작은 것이 보통입니다.
1루피를 넣으면 반드시 커피 한 잔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은 매우 불평등한 것입니다.
투입과 산출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작은 투자로 큰 이익을 얻는 사람도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행운이 따르면 큰 성공을 얻을 수 있기에
인생은 자극적인 것입니다.
삶은 예측할 수 업으므로 더욱 흥미진진한 것입니다.
3장 가능성의 문
'못해요.' '불가능한 일이에요.'
이 같은 말로 간단히 당신의 잠재능력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수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에는 항상 위험이 따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만이
성공을 향한 도전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위기와 기회는 세상 도처에 널려 있다.
'기회가 많지 않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기회를 기회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회는 이 세상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기회는 보통 위험을 수반합니다.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앞 뒷면과 같아서 기회가 많으면 그만큼 위험도 많습니다.
기회는 위기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므로 위험을 무릅쓰고 까지 그 위기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별고 없으며 도전하려는 경쟁자 또한 적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이때야말로 찬스입니다.
중요한 것은 위기에 도전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기회를 얻으면 대부분 비슷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위기에 처하면 자신의 인간성을 드러내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위기시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는 다른 사람들의 주목의 대상이 됩니다.
별로 어렵지 않은 위기에 빠져도 금새 의욕을 잃는 사람도
많습니다.
역경에 약할지 어떨지, 자포자기에 쉽게 빠질지 어떨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못해요.' '불가능한 일이에요.'
이 같은 말로 간단히 당신의 잠재능력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 순수하게 마음을 여는 생활,
사고방식이 중요하다.
인간은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로 보입니다.
옛날부터 달을 쳐다보고 '달에 가고 싶다'고 원했던 사람은
많이 있었겠지요. 그리고 언젠가 꼭 달에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으므로 그 꿈이 실현된 것입니다.
달 착륙에 성공한 요인은 '못해요', '불가능해요'라는 다수의
견해 중에서도 '이론상 가능하다',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해보자'라는 긍정적 의견을 믿어 왔다는 것입니다.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달에 가까워진 것이지요. 멀지않아 하루 안에 달 여행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작은 가능성도 부정하지 않고 노력할 때 어려운 과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없다.'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가능할지 모르겠다.'
'가능할 것 같다.'
'분명히 할 수 있다.'
'이제 다 했다.'
이 여섯 단계의 사고방식은 잠재능력과 가능성을 개발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 순수하게 마음을 여는 생활, 사고방식이 귀중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천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재'도 제 때와 장소, 그리고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천재성을 꽃피울 수 없습니다.
물을 주고 버팀목을 대주고 길러 주는 사람이 있어야
'천재'도 활짝 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개성이 있다.
보통 천재로 불리는 사람의 이면에는 그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기회'와 '장소' 그리고 그런 '인연'을 만들어 준 사람이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누구나 천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천재가
실질적으로 천재가 되지 못하는, 즉 재능이 꽃피우지 못하는 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
둘째, 본인에게 각성이 없었다는 점.
셋째, 천재성을 개화시켜 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모두 개성이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만의 특성, 나는 나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능 혹은 개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특성은 좋은 환경 하에서 최고로 발휘됩니다.
적성은 자신의 개성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것이므로 자기에게 알맞은 일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재미있습니다.
시간이 가도 모를 뿐만 아니라 피곤하지도 않습니다.
창의적인 연구도 저절로 나오게 되며 하루하루 발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 일이 자기한테 맞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빨리 찾는 사람이 자기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은 기회를 도약대로 발전하는 존재입니다.
세상은 한 가지로 정형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수식으로 표현하면 '1+1=2'가 되는 것만이 아니고
'1+1=3'또는 '1+1=1' 그리고 '1+1=0'도 옳은 대답입니다.
획일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이론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이치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위와 같습니다.
'1+1=2'는 보통 사람들이 대답하는 상식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1+1=3'이라는 해답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서 만일 쌍둥이를 낳는다면 '4'라는 답도 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산소와 수소가 만나 화학변화를 일으켜 물이 되면
'1+1=1'이라는 답도 될 수 잇겠지요.
'1+1=0'은 어떤 경우일까요. 두 사람이 함께 회사를 창업했다가 도산하면 이렇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의 산수에서는 '1+1'이라는 단순한 질문에도
해답은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는 것이죠.
세상은 이론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만사를 무턱대고 이론만으로 따지려드는 것은 무리입니다.
우리 선배들은 문제를 이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법률이나
규칙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법이나 규칙의 해석은 천차만별합니다. 사람 수만큼 법이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여러분이 인생 길에서 만나는 문제는 예외 투성이인 응용문제들입니다. 답하기 어려운 문제뿐이고 그 중에는 해답이 없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해답을 찾는 일, 그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세상을 획일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최고를 지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최고만 고집하다가는
뒤쳐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등이 언제까지나 일등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백화점 입구에서 나란히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별 세일이 있다면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제일 유리하고 가장 좋은 물건을 얻게 되겠지요.
그런데 백화점 옆 가게에서 더 좋은 제품을 할인 판매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그 가게로 제일 먼저 뛰어간 사람은 백화점에서 맨 뒤에 서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일등이 언제까지나 일등은 아닙니다.
상황이 바뀌면 일등은 꼴찌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세상사에는 이런 일이 적지 않습니다.
대기업도 제품에 하자가 생겼을 때는 그 존립 자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안정을 바란다면 몇 가지 제품에 부담을
분산시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톱을 지향하다가 좁은 시야만을 지니게 된다면 어느새 시대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톱이 되었다'고 생각될 때 사실은 주위보다 뒤쳐지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최고를 지향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위 상황이 바뀌어 버리는 경우 최고가 항상 최고일 수는 없습니다. 마차를 모두 구입했더니 철도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기 산업에 취직했다 했더니 10년이 지난 뒤 그 직장은 구조적으로 불황산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같이 웃지 못할 일들이 들리곤 합니다.
무엇이든지 착수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지
본인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망설이기보다는 시도해 봐야 합니다.
인생은 용기와 계산을 요구하므로 철저히 준비해서 시작한다.
'실수하고 싶지 않다.'
'창피당하고 싶지 않다.'
이런 식으로 말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철저히 준비해서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준비에만 시간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같은 태도는 어느 쪽이나 도전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큰 가능성이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따라서 일단 한 번 해 봐야 합니다.
복권을 사지 않고도 당첨될 리는 없습니다.
경쟁에 응모하지 않고 당선할 리도 없습니다.
자기 인생의 극본가, 연출가는 자신뿐인 셈이지요.
남이 나의 인생 각본을 써주지는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좋은 소질, 기회, 장소, 그리고 도와주는 사람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은 '내가 하겠습니다'라고 손을 올린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겁이 많고 대책이 없으면 말할 필요도 없고 우유부단하면 한 우물을 파지 못하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승부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인생은 용기와 계산을 요구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생이라는 큰 승부에서 한 번은 모험을 걸어야 합니다.
히말라야를 사진으로 본 사람,
비행기에서 본 사람,
실제 올라가 본 사람,
저마다 본 풍경은 다를 것입니다.
진선미의 세계는 머리로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물론 산을 오르는 사람은 산의 전경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눈으로 가 아니라 몸 전체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세포 하나 하나가 히말라야를 기억하고 있는 셈이지요.
즉 산과 일체가 돼 있다고 해도 좋겠지요.
히말라야까지 가지 않고 작은 산에 올라도 풍경은 다르게 보입니다.
그것은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비행기에서나 사진으로 산을 보면 몸이 피곤하지 않기 때문에 무심히 볼 수 없습니다.
육체의 힘이 완전히 빠지고 모든 잡념이 머리에서 사라진 후에야 피사체의 참된 모습이 자연히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이 진선미의 세계는 머리로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나, 어둠 속에서 방황할 때, 나는 마음속에 계시는 신에게 조용히 여쭤 봅니다.
그러면 아주 미약한 전파이긴 하지만 분명한 지시를 내려 줍니다.
머리로만 생각하려 하지 말고 오로지 마음속에 있는 신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얻을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머리로 생각하려 해도 무리입니다.
육체의 힘이 다 빠져 무심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전개되듯이,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으려 해야 합니다.
직관력을 훈련시킨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이것은
본질을 파악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직관력이 작용한다.
직관력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좋고 싫음의 감정입니다.
어떤 사람은 첫인상부터 아무래도 좋아하게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느낌을 갖게 되면 좀처럼 생각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직관이 정답일 경우가 많습니다. 말하자면 파장이 맞지 않는 것이지요.
당신도 살아 오면서 많은 이들을 만나셨지요.
직관은 자체 자료에 의거해 컴퓨터보다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나름대로의 해석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싫어하는 사람과도 함께 일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좋고 싫음의 감정을 감추고 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직관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현재까지 축적해 온 단순한
자료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수 만년 전 전생으로부터 상속 받은 재산입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처음 만난 사람의 인상을 갖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직관력은 계속 잘못된 답을
주겠지요.
사기꾼은 신사보다 더 훌륭한 모습과 말씨로 접근합니다.
그러나 직관력을 옳게 사용한다면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겉 모습에 눈이 멀지 마십시오. 눈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직관력이 작용합니다.
알게 되는 것은 작은 깨달음.
눈앞에 있어도 몰랐던 것을
어느 순간에 깨닫게 됩니다.
모든 존재는 아름답고
모든 사건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청년은 육체로 세상을 배우고 장년은 마음과 지성으로
세상을 대하며 노년은 영혼으로 세상을 느낀다.'
이것은 신비교육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말입니다.
의식이 우주와 연결돼 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여러 번 윤회를 거듭해야 알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의식과 우주가 관계가 있음을 어렴풋이 아는 것만도
드문 일입니다.
알게 됐다는 것은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퍼뜩 생각이 들었을 때 우리는 순간적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눈앞에 있어도 몰랐던 세계가 벽을 넘자마자 똑똑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들어가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병은 건강의 귀중함을 알리기 위하여 신이 우리의 의식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고난은 영혼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우리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선물입니다.
'삶'은 그냥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삶'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일들은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깨달음은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후 찾아오는 것이지요.
돈도 사람도 정보도 진심으로
그것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모입니다.
돈이나 사람이나 정보는
모두 스스로의 가치가 올바르게
평가되면 아주 좋아합니다.
실제보다 과대 평가하면 업신여기는 것과 같다.
돈은 그것을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모입니다.
인재는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모입니다.
정보를 귀중하게 생각해야 그것을 수집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한 번 쓰고 버릴 듯이 다루는 사람에게는 돈이나
사람, 정보가 모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사람, 자기를 제대로 평가해 주는 사람에게 호의를 가지게 마련이며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면 사람들은 의외의 정보를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정보를 확대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인터넷을 이용해서 열심히 정보수집을 할 수도 있으나 별반
효과를 얻지 못하며 그것보다는 자신이 가진 정보를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정보가 틀렸을 수도 있고 상대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간단한 정보로 놀라운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도 있겠지요.
정보는 독점하지 말고 나누어야 합니다. 다른 곳으로 보내면 친구를 데려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점 때문에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약점을 보완해 주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언제든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르게 평가해 주어야 합니다.
실제보다 과대 평가하면 업신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4장 성공의 문
실패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시원치 않게 성공한 사람보다
큰 성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상대가 자기보다 능력이 훨씬 크면
상대의 태도를 잘 지켜 봐야 한다.
실력이 비슷하면 먼저 열심히 하는 사람이 이긴다.
자기보다 훨씬 못한 상대와 쓸데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챔피언에게는 챔피언에게 어울리는 전법이 있다.
인간에게나 기업에게나 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의 집합체인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소국은 강대국과 상대해 싸울 경우 핵무기 등 강력한 무기가 없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현명한 지도자는 무모한 전쟁을 일으켜서 국민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이든 기업이든 능력이 훨씬 뛰어난 상대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순간적인 기습은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점이 드러납니다.
장기간의 지구전으로는 약한 자가 강자를 이길 수 없습니다.
헛된 싸움은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다툼으로 번지지 않도록 항상 주도권을 지켜야 합니다.
상대를 결코 화나게 만들면 안 됩니다.
만약 규모나 힘에서 비슷하면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행동에 옮기는 쪽이 이깁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를 볼 틈은 없습니다.
먼저 행동하는 쪽이 이깁니다.
그러면 한쪽이 강대국이나 대기업인 경우는 어떨까요?
상대가 하는 대로 놓아두었다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해서 대처하면 됩니다.
챔피언에게는 챔피언에게 어울리는 전법이 있습니다.
빨리 성공하고 싶으면 스승이 많아야 합니다.
스승이란 나이, 성별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어린아이에게도 배우는 자세를 가지면
성공은 보장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에게도 배운다.
사람의 인생은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성공도, 실패도, 행복도, 불행도 모두 이것에 달려 있습니다.
'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그러므로 일뿐만 아니라 삶의 원리원칙을 지도해 주는 스승을 모시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이 차이가 있는 친구와 스승을 가질 것을 충고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당신에게 없는 지혜, 정보, 인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문제 발생시 사태를 다각적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당신에게 절실한 충고를 해줄 것입니다.
나이 차가 있는 친구나 스승은 물론, 상사와 선배, 동료와 후배 등 우리에게 스승이 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수많은 스승이 있으며,
성공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에게도 배웁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바로 이 점에서 실패하는 사람과 다릅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타인의 지혜를 이끌어 내지 못합니다.
주위 사람들의 지혜를 살릴 수 없는 것이지요.
성공을 위한 원리와 원칙은 자신이 스스로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 주변 사람이
깨닫게 해주는 것뿐입니다.
한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자신을 위해 그것을 살리는 데에 있습니다.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하는 일,
모순되는 것을 양립시키는 일,
복잡한 것을 단순히 생각하는 일,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성공의 요소는 단순하며 유능한 사람은 하나를 듣고 열을 안다.
유능한 사람은 하나를 듣고 열을 압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무에서 유를 생각해 내는 능력보다 하나를
듣고 여러 가지를 유추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합니다.
중요한 것은 발상력보다 연상력입니다. 차례로 유추해 내는
연상 중에 한두 가지 반짝거리는 아이디어가 있는 것처럼 사물이나 사고에 대하여 인지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에 따라, 세상에서의 성공은 당사자 이외에는 전부 추상적인 일입니다.
성공을 위한 법칙을 들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타이밍이 맞았고, 그 장소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소화불량만을 일으키게 됩니다.
자신에게는 무엇이 유용한지 깊이 생각하고 자기의 말로 소화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추상적이어서 이제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이 구체적인 의미를 띠고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모순되는 일들을 양립 시키는 것이 성공의 길입니다.
좋은 제품을 싸게 판다는 것은 원래 모순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양립 시키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뛰어난 아이디어는 반드시 상식을 벗어난 것입니다.
상식적인 사람은 상식을 벗어난 아이디어를 가질 수 없습니다.
보통사람은 상식에서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공의 요소는 단순한 것입니다. 단순하지 않은 것은 실용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수도 없습니다.
간단한 일은
손을 놓지 말고 주의 깊게 하십시오.
어려운 일은
대담하게 진전시키십시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인생이나 일에 있어서 실패하는 것은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적당히 생각해서
손을 뺍니다.
그리고 실패합니다.
반대로 어려운 일은 좀처럼 착수하려 하지 않습니다.
쓸데없이 시간을 흘려 보내고 제한 시간이 가까워지면
급하게 서두릅니다.
그리고 실패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패하는 사람이 하는 방식의 반대로 하면 됩니다.
간단한 일은 오히려 손을 놓지 않고 조심스럽게 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이 일하는 태도를 보고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손을 뺀 간단한 일도 창의롭게 연구해서 열심히 한다면 '이 사람은 작은 일도 이렇게 정성 들여 하니 큰 일도 매우
정확히 할 거야. 한 번 시켜 보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싶습니다.
'더 큰 일을 주세요. 작은 일은 진지하게 할 수 없어요'라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일을 맡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거래 금액이 큰 일만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대담한 발상으로 세심한 주의를 들여
진전시키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큰 일이라 해도 결국 작은 일들이 모인 것이므로 매우 조심스럽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이 크면 클수록 발상은 대담해야 합니다.
발상도 작은 일과 같으면 안 됩니다.
변화한다는 것은 진보를 뜻합니다.
변화를 부정하거나 무시하거나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변화에는 활력의 기세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타는 것입니다.
휴식도 運을 놓치지않는 비결 중의 하나이다.
인생에는 機運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인생에는 파도와 바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파도에는 높은 파도와 낮은 파도, 바람에는 순풍과 역풍,
각각 두 종류가 존재합니다.
파도가 낮고 순풍을 받으면 돛을 활짝 펴고 나아갈 수 있지만 반대로 파도가 높고 역풍이 불면 점점 목적지로부터 멀어지고 배가 난파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슬럼프이므로' 자신의 불운을 불평하는 사람은 확실히 바람과 파도의 상태를 알고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한탄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을 보다 나은 환경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지, 파도 높이에 변화가 없는지 등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운이 나쁘더라도 사람들의 평가는 올랐다 내렸다 합니다.
역풍은 길어야 3년, 그것을 맞받아 나가려 한다면 힘을
소진할 뿐입니다.
그때는 힘을 보존하고 충전해야 합니다.
휴식도 운을 놓치지 않는 비결 중의 하나입니다. 쉴 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따라 기회가 돌아올 때 유익하게 작용합니다.
흐름에는 기세가 있습니다. 역풍의 기세가 꺾이고 풍향이 바뀔 때 바로 엄청난 힘을 등에 받고 전진해야 할 때입니다.
새것은 언제나 낡은 것보다 강합니다.
좋다, 나쁘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새것은 항상 낡은 것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통도 귀중하지만 개혁은 더 중요하다.
新參은 반드시 古參보다 강합니다.
시대든, 나라든, 기어이든, 개인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세상사의 이치입니다.
아무리 큰 유행이었더라도 낡은 유행은 새 유행에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새것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큰 힘을 가집니다.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관계가 없습니다.
나라의 制度가 낡으면 새로운 制度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바람이 붑니다.
챔피언 자리를 지키기는 대단히 어렵고 도전자는 언제나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항상 새것은 젊은 활력을 지녀 다른 것을 능가합니다.
시대가 성숙해서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새 바람이 낡은 바람을 몰아냅니다.
새 바람이 불어오면 그 힘을 막기보다는 그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성공은 시대의 바람이 어느 쪽을 향해 불고 있는가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전통도 귀중하지만 개혁은 더 중요합니다.
불변하는 것, 변하는 것, 변해야 할 것, 이것들의 내용을 확실히 파악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활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시원치 않게 성공한 사람보다
큰 성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체험을 통해서 어떻게 배우느냐가 중요하다.
성공이든 실패든 우리의 체험을 분류하면 다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도움이 되는 경험,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험,
유해한 경험입니다.
경험 중에는 여러분이 장래에 큰 일을 하기 위해 면역을
길러 주는 것도 있고 지나친 출혈로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것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피와 살이 되는 것은 바로 도움이 되는 체험입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체험 그 자체가 도움이 되거나 도움이
되지 않거나 해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체험을 통해 어떻게 배우느냐가 중요하고 그 결과에 따라
위의 세 부류로 나뉩니다.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하십시오.
사람들은 평범한 인생 속에서는 배울 기회를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패하면 자신의 부족한 점, 약점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에 싫더라도 이를 극복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 같은 심한 체험을 통해서 '이런 식으로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법칙이나 반대로 '저런 식으로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직관을 익히게 됩니다.
인생에서는 우리가 단념할 때까지 패자부활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 번 실패한 체험을 통해약점을 극복하고 경영방식을 바꾸었으므로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기업을 이룩한 사람도 있습니다.
실패를 깨달음에 이르는 跳躍臺로 잘 활용한 결과입니다.
실패를 잘 살리면 어설픈 성공보다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요인이 됩니다.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을 압니다.
그 일은 남에게 맡기면 됩니다.
그것이 성공에의 길입니다.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므로 자신을
신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람은 신이 아니므로 전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노력하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노력에 따라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한두 가지의 일이라도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하물며 무엇이든지 다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머리가 좋은 사람은 이 점을 인식하고 대처하는 사람입니다.
우선 자기가 못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경영은 할 수 있지만 기술개발은 못한다면 기술자를 고용하면 됩니다.
교육은 할 수 있지만 판매확대는 할 수 없다면 자신은 인재
육성을 담당하고 다른 분야는 전무가를 쓰든지 하면 됩니다.
기술은 있지만 자금이 없으면 은행에서 빌리면 됩니다.
한마디로 '떡은 떡집', 못할 일은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에의 지름길이요, 왕도입니다.
이런 단순한 일을 깨닫지 못하고 모두 혼자서 떠맡아 하려다 고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그런 식으로 산다면 아무리 시간이 있어도 부족하겠죠.
자신을 신처럼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운세가 있는 사람은
강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에너지가
더 큰 운세를 불러옵니다.
운세는 에너지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나 자문자답하면서 열심히 인생을 설계합니다.
마음가짐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진리가 존재한다면 이 말이야말로 진리입니다.
'나는 운이 없다', '너는 운이 있다' 이런 식으로 말들 하지만
운을 보는 방식은 다음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의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운이 있다'거나 '운이 없다'라고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운이 없을 때도 '운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실제로 행운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운세는 에너지입니다.
행운의 여신은 引力처럼 그 에너지에 끌려 문을 엽니다.
성공하면 운이 좋았다. 실패하면 스스로 부족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성공을 자기 실력 때문이라고 자만하면 안 됩니다.
실패를 운이나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아야 합니다.
평소 이런 마음의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 운이 찾아옵니다.
운세는 에너지입니다.
강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비슷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모입니다.
'類類相從'이라고 하듯이 끼리끼리 모입니다.
친구들 중에 성공한 사람, 운이 좋은 사람을 보십시오.
그의 주변 사람들도 모두 운이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
질병과 건강,
모두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한
신의 선물입니다.
여유만큼 사람을 느긋하고 온화하며 상냥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삶은 변화하는 것입니다.
변화는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순풍을 타고 순조롭게 출항을 한 사람에게 변화는 실패나
질병 등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합니다.
좋지 않은 변화는 겉으로는 매우 곤란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모두 마음과 영혼을 훈련시키기 위해 계획된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깨닫게 하기 위해 준비된 것이지요.
평온할 때는 누구나 훌륭하고 환해 보입니다.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유만큼 사람을 느긋하고 온화하며 상냥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유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 뿐,
영혼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10루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지에게 1루피를 나눠 주는 것은 쉽겠지요. 그것은 영혼이 주는 것이 아니라 여유가 주는 겁니다.
그러나 당신이 온 재산을 기부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인간성
전체가 하는 행위입니다.
어려운 일, 실패나 질병 등은 모두 마음과 갚은 관계가 있습니다.
곤란이 닥쳤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가, 여기에 그 사람의 인간성 전체가 달려 있습니다.
실패, 질병 등 역경은 그 어려움을 넘어서 사람의 본질을 성장시킬 수 있을 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시금석입니다.
5장 미래의 문
인생에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양자택일은 없습니다.
늘 도 하나의
선택 시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3의 선택 시기를 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고 맙니다.
미래를 알고 싶으면
먼저 과거를 알아야 합니다.
과거 속에 현재의 원인이 있고
현재 속에 미래의
현상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에서 배우고 지혜로운 사람은
歷史에서 배운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선인들의 지식이나 지혜를 참고해
인생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또 성공이나 실패를 통하여
인생의 眞髓를 배워 옳고 효과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선인의 지혜를 하나의 가치로 생활 속에서 具現化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에서 배우고 지혜로운 사람은 力士에서 배운다'고 합니다.
하나의 끝은 하나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과거의 결과는 현재 발생하는 일의 원인이고 현재의 결과가
미래에서 발생할 일의 원인이 되는 것이죠.
미래를 알려면 우선 과거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과거 속에 현재의 원점이 있고 현재 속에 미래의 현상이 응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리를 모르는 사람만이 '무관'하다는 말을 쓰는 것이지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인연으로 뿌리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현재는 지난날의 행동의 代價입니다.
현재 처한 상황이 불만스럽다면 과거를 후회하기보다
현재의 궤도를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 것인가 고민하십시오.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불행, 불운, 빈곤은 하나의 전염병입니다.
예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철저하게 피하는 것,
또 하나는 면역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운세는 에너지이므로 전파의 성질을 띤다.
운은 에너지입니다.
운이 좋은 사람에게는 에너지가 작용해 운이 좋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반대로 에너지가 약해서 실패만 반복하는 사람, 불행, 불운,
빈곤이 겹쳐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도
같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므로 이는 지옥과 같은 양상을 띠게 됩니다.
운세는 에너지이므로 전파의 성질을 띱니다.
한마디로 불행, 불운, 빈곤은 전염병과 같아서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갑니다.
에너지가 강한 사람은 면역성이 강하므로 발병하지 않지만
에너지가 약해진 사람은 쉽게 감염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최근 불운과 불행이 계속된다거나 가난해지는 것 같다고 느낀다면 여러분 자신의 에너지가 떨어진 점에 더해 비슷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의 영향도 받았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가 그 사람의 탓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도 그 영향을
받아들이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방법, 치료 방법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높이는
일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조언한다면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을 것, 철저하게 피할 것, 불운, 불행, 빈곤을 경험해서 면역성을 가질 것 등입니다.
여러 가지 일들을 미리 생각해서 고민하지 맙시다.
움직여야 할 때가 되면 그때 생각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망설일 때
神의 힘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망상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신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흐름을 기다려야 합니다.
무리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것은 망설이기 때문입니다.
왜 결정짓지 못합니까?
어느 쪽이라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라도 좋기 때문에 결정을 못하고 갈피를 못 잡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류 학교와 삼류 학교, 양쪽 다 합격했다면 어느 쪽에 진학할지 아무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차이가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결정 못할 때는 일류 대학을 여러 군데 합격했을 경우입니다.
이때는 차이가 없으므로 어느 쪽이 좋을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장래를 위해 어느 쪽이 유익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망설이는 것입니다.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해 보려고 고민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 바꿀 수 없는 과거, 알 수 없는 미래를 밝히려고 하는 것은 번뇌일 뿐입니다.
그것은 妄想입니다.
망상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앞으로의 일에 관해 지나치게 생각해서 고민하지 맙시다.
망설일 때는 신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산다는 것은
신이 벌려 주시는 시간을 어떻게 지내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빛나게 만들 수 있는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미래는 언제나 신비한 것이다.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 자신도 옛날에는 사람들의 미래를 예견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인생이 예언 덕분에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을까요?
바뀌지 않습니다.
내일 길을 잃어서 헤맬 것이라고 알려 주면 지도를 들고 길을 가지만 어느 사이에 역시 길을 잃고 헤매게 됩니다.
장래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미리 아는 것과 앞날이 즐겁고 빛나리라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만이
우리에게 허락된 일입니다.
인간에게 미래는 언제나 신비한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는 더욱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앞날을 안다면 누구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빈 몸으로 이 세상에 와서 빈 몸으로 갑니다.
그 동안을 인생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신으로부터 빌린 시간입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결국에는 신 앞에 돌려 주어야 할 운명입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 다 빛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합시다.
이것이 신에게서 빌린 시간에 대한 이자입니다.
불행은 해일처럼 연이어 밀려옵니다.
처음이 중요합니다.
치명상을 피하고 싶으면
두 번째의 재해를 막아야 합니다.
불행이나 재난을 만나 슬퍼하기만 한다면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인간 만사 塞翁之馬'라고 하지만 불행은 한 번뿐이 아니라
연이어 발생합니다.
불행으로 마음이 아픈데다가 또 다른 불행이 발생하면 견디기 어려워 자포자기할 수 있고 또한 그 불행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만의 불행이 한 번 더 겹치는 것이지만 '내 인생은 불행한 일만 계속된다'고 확신하면 결과는 그대로가 되고 맙니다.
누구도 불행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사람은
실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재의식 속에서 세 번째 불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외곬수로 생각하며 불행이나 재난을 만나 슬퍼하기만 한다면 상황은 바꾸지 않습니다. 원래의 상황으로 되돌아가지도 않습니다.
슬퍼하기만 해서 두 번째 재해를 일으키는 것보다 '엎지른 물'이라고 인정함으로써 괴로운 마음을 뿌리치고 전진적으로
상황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현상을 바꾸는 일이 됩니다.
누구나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 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할 수 있다면 불행은 사라지고 개운해집니다.
하지 못한다면 일생 동안 과거에 질질 끌려 다녀야 합니다.
사람은 일단 충격을 받으면 좀처럼 재기하지 못합니다.
계속 그대로 눕고 싶겠지요.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지 않으면
두 번째 재해가 닥치고 그때에는 완전히 잠기고 맙니다.
딱 한 번만의 인생이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인생에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양자택일은 없습니다.
늘 또 하나의 선택 시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3의 선택 시기를 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고 맙니다.
선택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인생은 선택의 역사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어떤 부모로부터 태어날까를 선택한 이후
죽을 때까지 계속 선택하게 됩니다.
어느 학교로 갈까, 무슨 일을 할까, 누구랑 결혼할까 등 모두 선택입니다.
그런데 인생에서 무언가를 선택할 때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양자택일뿐이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선택은 양자택일이 아닙니다.
적어도 세 번의 선택은 있습니다.
나아갈까 물러날까 아니면 쉴까.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흑백을 명백히 하려고 해서 자기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고 맙니다.
지능이 높은 인간이 손해될 일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그렇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 원인은 자존심, 허세, 고집 등입니다.
그런 것들이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의 성공이나 행복을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의 길을 막는 것은 언제나 여러분 자신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그때는 거기에 서서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등산 도중 안개 때문에 길을 잃었을 때는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안개가 걷혀 주위가 똑똑히 보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잠시 피난해 휴식을 취하는 것도 치명적인 궁지에 빠지지 않기 위한 중요한 대처 방법입니다.
사귀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100%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환경에 따르는 동물,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는지에 따라
장래가 결정됩니다.
사람은 외면에 따르지 않는다.
정어리를 잡는 노르웨이 어부들은 환경이 바뀌면 금방 죽고
썩어 버려 팔지 못하게 되는 정어리가 오래 가도록 낚은
정어리를 낳는 배 밑바닥에 메기를 몇 마리 넣습니다.
이렇게 하면 정어리가 긴장해서 오래 가기 때문입니다.
즉 다른 것이 들어오면 무리는 긴장합니다.
그만큼 같은 종은 떼를 짓고 싶어하고 그 속에서 완전히 안심하고 있습니다.
'끼리끼리 모인다(類類相從)'는 말처럼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끼리,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끼리 친해집니다.
동물은 같은 성질, 같은 계급, 같은 구조, 같은 종류와 함께
하면 안심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그 사람에게 묻기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과 사귀는지,
주위에 어떤 사람이 모이는지를 보면 금세 알게 됩니다.
성실해 보여도 나쁜 사람과 사귄다면 그 사람의 본질은 악합니다. 역으로 인상이 좋지 않아도 어울리는 사람들이 착하면
그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외면에 따르지 않는다'라는 말은 예외 중의 예외입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입니다.
무리 속의 법이나 습관이 사람을 만듭니다.
당신의 장래는 당신이 어떤 사람들 속에서 자라는지,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갈 지에 따라 백 퍼센트 결정됩니다.
적당한 긴장과 이완이
발상을 풍부하게 합니다.
잠자는 시간에도
뇌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긴장만 하면 좋은 발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시타르(인도의 민속악기)는 실이 느슨해지면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무 팽팽해도 안 됩니다. 적당히 조여지고 적당히 느슨하지 않으면 마음을 감동시키는 좋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잠자는 시간은 죽은 시간, 그러므로 수면시간을 줄여서라도
일을 한다.'
극성스럽게 일하는 비즈니스맨이 많은 나라에서는 이런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계속 긴장만 하면 좋은 발상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실은 잠자는 시간에도 뇌는 움직입니다. 깨어 있는 동안
입력된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고속회전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정계, 재계, 스포츠계, 예술계를
막론하고 모두 몸과 정신을 휴식하는 방법을 잘 압니다.
일은 철저하게 하고 놀 때도 또 철저하게 놉니다.
생활에서 긴장과 이완을 잘 조절하면 휴식할 때도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뛰어난 발명가 중에는 잠자는 시간에 발명했다는 일도 있지만 그들은 깨어 있는 동안에는 죽도록 연구에 몰두합니다.
그리고 잠자는 시간에 발명이 떠올랐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도록 잠을 자도 발명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만큼 열심히, 지속적으로 몰두하고 한계상황까지 긴장한
뒤에 그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할 때 순간적으로 발명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인생에서는 긴장도 중요하지만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쉬는
시간도 중요합니다.
겁이 많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업습니다.
겁이 많으면 오히려 열심히 노력합니다.
교만한 마음이 싹틀 때야말로
여러분의 미래는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겁이 많은 것은 신중하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선인들의 명령을 순진하게 지키므로 크게 이탈하거나 실패하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커다란 성공을 거두는 일도 없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한테서도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험과 실적을 쌓아 자신이 넘치게 되면 큰 성공을
거두기 전에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이는 사업, 예술,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 적용됩니다.
세계기록을 보유했다고 해도 갑자기 뛰어나가면 따뜻해지지 않은 근육은 놀라고 급격히 수축되어 끊어지고 맙니다.
자신감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오만이나 교만으로 바뀌면 치명적인 실패를 할 수 있습니다.
겁이 많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겁이 많은 선수는 조금이라도 기록을 갱신하려고 준비운동을 잘 하고 모든 점을 배려하겠지요.
겁이 많은 것은 신중하다는 얘깁니다.
겁이 많기 때문에 더 열심히 노력합니다.
교만이 생길 때야말로 위험합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난 후에 독단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주위 사람들이 제지하는데도 등지 않고 독선적인 행동을 하게 될 때가 위기이며 그러면 여러분 장래도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을 수 없다', '기적이다'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이런 말을 외쳤습니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기적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계산대로 되지 않으며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믿을 수 없는 만큼 기쁜 일이 있으면 사람은 기적이라는 말을 쓰고 싶어하지만 이 세상에 기적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들은 미리 계획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집행할 뿐입니다.
불가사의한 일은 없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이번에는 성공한다', '이번에는 실패한다'고
사전에 알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떨까요?
처음에는 '편리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없겠지요.
성공을 기다리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요.
모든 것을 예측하고 있다면 인간이 아니겠지요.
세상은 계산대로 되지 않습니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지요.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는 것입니다.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적이다'라고 소리치는 것도 가능합니다.
마음이 구애받지 않게 되면 성공도 좋고 실패도 좋다는 경지에 이릅니다. 즉 미래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마음을 키우게 되는 것이지요.
6장 인생의 문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옳은 사람도 없는 것이며
절대적으로
옳은 진리도 없습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인 것입니다.
인생은 무대입니다.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장면에 따라 주연, 종연, 엑스트라역을
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여러 배역을 맡기도 합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레이스가 아니라 랠리와 같은 것이다.
인생은 레이스가 아닌 장거리 랠리입니다.
'파리-다카르랠리'(프랑스의 수도 파리와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사이에 매년 열리는 자동차 및 오토바이 장거리 경주)는 순위를 겨루는 경주가 되고 말았지만 원래는 사막이나 바위 등 험한 자연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실감하면서 사랑과 지혜를 배우는 행사였습니다.
1위, 2위가 아닌 共同의 목표를 세웁니다. 그러므로 사막에서 꼼짝 못하는 팀이 있으면 오와주고 전원이 목적지에 도달하려 했습니다.
이것이 랠리의 정신입니다.
사람의 인생도 레이스가 아니라 랠리와 같은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랠리는 모든 사람들이 차례로 역할을 담당한 무대이고 각자 자기가 맡은 배역을 부지런히 연기합니다.
인생은 여행과 같습니다.
목적지에 도달하여 도달감 성취감을 맛보려 하지 마시고
여행중에 만나는 사람 길가의 풍경을 즐기십시오.
사람은 자기의 파동과 맞는 일만을 만납니다.
모르는 세계와 만남을 즐기려면 자기의 파동을 바꾸어야합니다.
파동이 우주와 조화하면 영혼이 기뻐할 수 있는 삶이 열립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언제나 미래를 꿈꿉니다.
꿈이 있으므로 공부합니다.
꿈이 있으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꿈이 있으므로 위험을 무릎씁니다.
꿈은 인생의 에너지입니다.
세상도 인생도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옳은 사람도 없고
절대적으로 옳은 진리도 없는 것입니다.
삶이 파란만장하면 할 수록 살아있다는 만족감을 흠뻑 느낄 수 있습니다.
벽에 부딪치며 몸부림 치는 것도 인생입니다.
인생은 키(舵) 하나로 언제나 방향을 바꿀 수 있음을 잊지마십시오.
인생에 헛된 일은 없다고 생각하여야 헛된 일들을 의미있게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과 싸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삶과 싸웁니다.
갑옷이 무거워서 싸움이 어려워 지듯이
신념이 깊어 살아가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유연하게 살아야합니다.
제7장 마음의 문
주위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모두 마음의 반영입니다.
항상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삶을 밝게하는 것입니다.
기쁨 절망 교만 의심 질투 모두 순간순간 깨닫기 위한
기회입니다.
성공은 결과에 불과합니다. 마음이 막혔습니까.
그것은 배가 사막에 닿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얼른 낙타로 갈아타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되면 삶의 방향이 바뀝니다.
마음 속에 벽을 쌓지마십시오.
자가 껍질 속에 틀어 박히지 마십시오
약점이 있으므로 사랑받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더욱 관대하여야합니다.
용서는 치유입니다. 남을 용서하는 마음은 자신을 치유하는 마음입니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두려움에 떨지 마십시오
문제가 발생한 후에 염려해도 되고 성공하기 전에
너무 기뻐하지 마십시오
성공한 후에 기뻐하면 됩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마음대로 하려하면
상처만 입게됩니다.
가만히 있는 일은 함부로 행동하는 일보다 어렵습니다.
사랑한 일 베푼 일, 믿음을 준 일을 기억하고
버림받은 일, 배신 당한 일 빼앗긴 일은 잊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이런 일을 통하여 배우면 삶은 풍요로와 집니다.
제8장 인격의 문
인간이 아름다운 때는 이기고 자랑할 때가 아니라
지고나서입니다.
패배는 다음 도전을 위한 기회입니다.
인간은 길을 헤매며 신에게 도달합니다.
날마다 깨닫고 날마다 헤맵니다.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제9장 운명의 문
영광도 성공했던 경험도 과거는 과거로 잊어버리십시오.
세상에는 버려야 얻을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운명을 창조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운명을 바꾸는 것도 마음입니다.
매사에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은 잘될일은 잘 되도록 잘 안될 일은 잘 안되도록 만듭니다.
인생의 밑바닥은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는 도약대입니다.
밑바닥까지 떨어져보고 밑바닥의 따뜻함을 아는 사람은
한층 더 크게되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제10장 행복의 문
행복은 재산이나 지위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물질이 충분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동물의 차원이며
마음의 조화가 있어야 인간입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고 의의가 있습니다.
우주에 무의미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무엇인가를 위해 관련을 맺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주고 받기를 바라지 않을 때 인생안에서 지고한 만족이 싹틉니다.
우주안에는 모든 것이 평등입니다.
우주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완전한 것을 존경하지도 않으며추악한 것을 미워하고 불완전한 것을 경멸하는 일도 없습니다.
일생을 바쳐서 해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무엇을 잡으십시오.
그것은 마음과 영혼이 기뻐하는 일이어야합니다.
마음도 몸도 피곤하지 않는일 ... 그것은 오직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