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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로버트 엘스버그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1.17|조회수117 목록 댓글 1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로버트 엘스버그-

 

참사람되어

 

The Saints' Guide to Happiness (Robert Ellsberg 저) 

 

서 언

1. 깨어 살아가는 것을 배우기

2. 놓아 버리는 것을 배우기 

3. 노동하는 것을 배우기 

4. 고요히 머무는 것을 배우기 

5.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 

6. 고통받는 것을 배우기 

7. 죽는 것을 배우기 

8. 보는 것을 배우기 

결 언 

 

 

서 언

 

 

우리는 행복하기 위하여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완전하게 행복한 사람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권리가 있다, “나는 지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 라고. 모든 의로운 사람들, 모든 성인들, 모든 거룩한 순교자들은 행복했다.

- 도스토예브스키, 「카라마죠프가의 형제들」

 

 

모든 사람은 마음속 깊숙이 행복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행복을 다양한 통로와 다른 모습으로 찾고 있으며 자주 착각이 되기도 하지만, 같은 목표를 추구한다.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어떤 사람은 전쟁에 가고, 또 어떤 사람은 가지 않는 이유는 둘 다 똑같은 욕망을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 욕망이 모든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의 동기이다.”

 

그러나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철학만큼이나 보편적이고, 오래된 질문이다. 행복의 추구는 수많은 책들의 주제가 되어 왔다. 그 중에 꽤 많은 책들은 행복을 얻기 위한 구체적 단계들을 제시한다­“다섯 가지 원칙들”, “9개의 전략” 혹은 “100가지 비법들” 등등. 어떤 책들은 분명하게 행복을 “성공”과 동일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성공을 물질적 번영이나 심리적 안녕과 연결 지어 생각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행복의 영적인 차원을 밝히면서 깨달음의 자세나 감사, 용서 같은 덕을 강조한다. 이런 범주에 속하는 책들은 불교에서 많이 나온다. 달라이 라마도 「행복의 예술」이라는 베스트셀러로 기여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런 책들을 읽기 전부터 끊임없이 문화적 메시지의 흐름에 의하여 행복에 관한 상상을 키워왔다. 보다 나은 성, 더 젊게 보이는 용모, 혹은 수익이 더 큰 투자 등으로 행복을 약속하는 것은 잡지기사만이 아니다. 실제로 모든 광고와 TV선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그들과 더 같게 보이고, 더 그들처럼 될 때에만 행복하다고 외친다.

 

이 모든 접근방식들은 행복을 어떤 주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공통으로 갖고 있다. 행복은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느낌이란 심술궂고 변덕스러운 것이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과 영향에 종속되기 마련이다. 이 사실은 행복이라는 영어단어 어원에 나타난다. “행복(Happiness)”은 “기회”, “운”을 의미하는 hap에서 나왔는데, 이hap에서 파생된 단어로는 “일어나다(happen)”나 “우연한 일(happenstance)”이 있다.

 

그러나 행복이 주관적인 것이 아니며, 느낌이나 운의 문제도 아니고, 단순히 그냥 일어나는 어떤 것도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만일 행복이 보다 객관적인 조건, 신체적 건강과 비슷한 것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관점을 가졌다. 그가 행복의 의미로 사용했던 희랍어, eudaimonia는 느낌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 어떤 충만한 삶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이란 우주의 이성적 도덕적 질서에 일치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프로이드의 쾌락의 원칙보다는 건강한 식물의 만개에 더 가까운 의미이다. 그에게 행복은 영혼의 습관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진지한 노력의 선물이다. 또한 같은 이유로 행복은 변덕스러운 운의 대상이 아니다.

 

신약을 그리스말로 번역한 저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단어를 쓰지 않았다. 그들은 또 다른 희랍어, makarios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신들의 행복을 의미한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수가 산상수훈을 선포할 때 쓴 단어가 바로 이것이었다. 4세기에 신약을 라틴어로 번역한 예로니모 성인은 beatus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것은 행복과 축복의 개념을 합한 것이다. 그래서 이 구절들은 진복팔단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성서영역자들은 더 익숙한 표현인 “복되도다(Blessed) ...”를 선택한다. 결국 진복의 선언은 “웃는 얼굴”이나 행복하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혀 느낌이나 감정에 관한 것이 아니다. 진복선언은 하느님의 생명과 영을 나누는 것­행복에 관한 것이다. 그러한 영 안에서 제자(예수 자신처럼)는 “복된” 처지에 있으면서 슬픔, 고통, 상실을 경험할 수 있다. 여기에서 “복되도다”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행복한 것과 같다.

 

이렇게 본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너무나 꺼려하는 것은 뜻밖의 일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행복의 추구가 헛되거나 자기 중심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복음이란 구원에 관한 것이지, 성공이나 “기분 좋게 느끼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를 우울한 도덕주의 그리고 자기부정과 연결시킨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에 관한 충고를 제일 마지막에 구할 수 있는 자리가 그리스도교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런 모든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다른 모든 종교와 피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의 주제가 비단실처럼 그리스도교 전통 전체에 흐르고 있으며, 특히 성인들이라고 알려진 거룩한 사람들, 그리스도교 초기의 뛰어난 인물들이 지녔던 지혜 속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볼 때, 이런 주장은 낯설거나 이상하게 들린다. 성인들은 물론 거룩함의 전문가들이나, 그들이 행복에 관해서 무엇을 알까? 그것은 물론 우리들이 행복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또한 거룩함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서도 결정되는 문제이다. 우리는 보통 성인들이 결점이 없는 사람들이며 오래 전에 기적을 행했고 교회 안에서 생을 보냈으며, 고통받는 기회를 열심히 찾고 일찍 세상을 뜬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미지의 성인들을 계속 그리고 있는 한 그들의 지혜는 우리가 닿을 수 없고 당혹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우리 마음 속의 가장 깊은 염원에 거의 대답할 수 없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성인들에 대해 더 알게되면서 우리는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질문들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즉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의 수많은 희망과 계획들이 왜 슬픔과 실망으로 끝나는가? 우리는 어떻게 참다운 평화를 찾을 수 있는가? 상실, 고통, 변하는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행복이 있는가? 등의 질문들이다.

 

많은 성인들은 꽤 알려져 있다. 어떤 이들은 순교자로 죽었다. 혹은 기도와 이웃 사랑에 헌신했다. 몇몇 성인들은 살아 있는 동안에 기적을 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그들이 성인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그들의 죽는 모습이나 환시, 혹은 훌륭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 사랑과 선함에 대한 탁월한 역량 때문이었으며, 그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일깨워 주었다.

 

성인들의 삶은 우리들의 삶처럼 대부분 고통과 시련의 삶이었다. 그러나 성인들을 고통과 비참함과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그들의 균형과 유머, 연민과 관대함, 장애물과 역경 앞에서 가진 평화와 자유의 정신, 그리고 모든 것 안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능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자질들은 많은 경우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또한 당대인들에게 경이로움과 갈망의 대상이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성인들을 단순히 오래 전의 인물들로만 여기는 것 역시 잘못이다. 그들은 우리 가운데 어느 곳에든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도로시 데이, 토마스 머튼, 오스카 로메로, 마더 데레사 처럼 예외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 다른 성인들은 우리가 알고 있거나 매일 지나치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하느님을 상기시켜 주는 사람들, 그들의 사랑, 용기, 그리고 내적인 조화가 보통의 인간성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사람으로서 취해야 할 바를 알려주는 기준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더 큰 기쁨을 느끼고, 살아 있는 것이 더 감사하며, 아마도 그들의 내적인 빛남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할 것이다. 어떤 성인도 “행복에 이르는 안내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실상 많은 성인들은 복음을 어떤 기능체제나 “쉬운 단계들”로 축소시키려는 유혹을 신중하게 경고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관찰한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상담에 귀 기울이고, 영적인 가르침을 배우고, 이런 주제를 다루는 수많은 책들을 소유하고 읽는 것이 아무리 해도 늘 부족하다.” 성인들은 거룩함을 실천하는 것과 단지 “거룩함을 다루는” 수많은 책들을 읽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이러한 경고를 새기며 나는 이 책에서 다양한 그리스도교 성인들의 삶과 저서들을 통하여 행복의 의미를 드러내려고 한다. 실제로 나의 목표는 우리가 그들로부터 온전하고도 진정한 삶의 의미에 관하여 배울 것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행복의 추구에 관하여 그들은 어떤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가? 참다운 자아, 최상의 자아로 가는 길에 있어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일련의 이 교훈들은 이성보다 직관의 순서를 따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여러 장들 중 어떤 한 장도 성인들의 지혜로 들어가는 입문이 되고, 우리 자신의 여정에 시작으로 사용될 수 있다. 물론 실제 생활에 있어서 이러한 주제들은 서로 얽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초기 단계로부터 마지막 단계로 가는 전 과정에는 그것을 다 덮고 있는 어떤 궁형 같은 것이 있다.

 

행복의 추구는 자주 보다 진실한 삶에 대한 처음의 갈증, 사막의 교부들로부터 현대의 탐구자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성인들을 이끌었던 어떤 충동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기존 문화의 “무기력함”과 그 가짜 약속들에 저항하는 것으로 행복의 추구를 시작한다. 이러한 충동은 놓아버리기, 노동하기, 고요히 침묵하기, 사랑하기를 배우기­모든 영적 실천의 마지막 목표인­로 그들을 이끈다.

 

이 지점에서 배움은 더 어려워진다. “고통받기를 배우기”는 행복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어렵지만, 가장 필요한 주제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성인들의 지혜는 특별히 효력이 있다. 성인들은 우리에게 고통을 피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며 고통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다만 오로지 거룩함의 길을 따라 가면서 우리가 고통이 더 이상 필연적인 장애물이 되지 않는 그런 행복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죽음의 주제에 관해서도 똑 같이 말하고 있다. 성인들의 행복으로 가는 길에 있어 죽음은 더 이상 적이나 두려운 종말이 아니다. 죽는 것을 배우는 것은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데 있어 분리될 수 없는 측면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죽음을 넘어 아직도 넘어야 할 마지막 교훈이 있다. 성인들은 죽음을 인간 역사의 마지막 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비전은 이승의 삶이 품을 수 있는 것 보다 더 큰 행복의 차원에 훈련되어 있다. 매일의 삶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이 궁극적인 목표는 앞서 나타난 모든 교훈에 가치와 의미를 주고 있다.

 

성인들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심오한 지혜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사람들이다. 자연히 그들의 가르침은 신앙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에게 더 구체적인 의미를 준다. 그러나 성인들은 한편 같은 인간적 조건을 나누고 있으므로 그들의 경험은 어느 정도 보편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일탈, 좋은 일, 내적인 평화, 그리고 사랑의 중요성 등 많은 지혜가 다른 상담자들과 안내자들의 실천적인 충고와 맥을 같이 한다. 가장 인기가 있는 최근의 격언들 중에서 하나는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 마라”이다. 이런 격언은 예수가 제자인 베타니아의 마르타에게 했던 충고를 연상시킨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쓸데없이 많은 것에 신경을 쓰고 걱정한다. 그러나 한가지만 필요하다.”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말한다. “행복이란 정확하게 ‘한가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에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것을 찾아내면 나머지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 할 것이다. 그 때에는 거룩한 역설에 따라 한가지 필요한 것과 함께 다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한 가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각 사람에게 그것의 형태는 다르겠지만, 그 내용은 항상 같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 자신의 운명을 실현하는 것, 하느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교훈들”은 나 자신의 지혜나 거룩함이 아니라, 나의 질문들과 탐구에 근거하고 있다. 그 탐구 때문에 나는 오래 전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고 가톨릭 일꾼으로 향했다. 여러 가지 동기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갔다. 열아홉 살에 나는 삶을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에 지쳤고, 무엇인가 더 크고 더 의미있는 것에 나를 던지고 싶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반대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나의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고 싶었다.

 

가톨릭일꾼운동의 창시자이며 운동이 발간하는 신문의 편집자인 도로시 데이는 이러한 동기들을 잘 이해했다. 그는 자신이 쓴 마지막 글에서 “가톨릭일꾼운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묻고 대답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학교이며 노동캠프이다. 그 곳에는 마음이 넓고 사회적 의식이 있는 젊은이들이 와서 성소를 찾는다. 수개월 혹은 수년을 지낸 후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 확실하게 깨닫는다. 어떤 이들은 의료, 간호, 법, 교사, 농사, 저술, 출판계로 간다. 그들은 연민으로 사랑하는 것을 배울 뿐만 아니라, 폭력을 재촉하는 위험한 감정,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배운다.”

 

나는 도로시 데이의 생애 마지막 5년 동안 가톨릭일꾼에서 함께 살았다. 떠날 때 나는 내가 추구하고 있던 것을 거의 다 발견했고, 그 보다 더 많이 찾았다, 그 중에 하나는 내가 가톨릭이 된 것이었다. 가톨릭의 매력은 교의나 교회의 권위와 거의 상관이 없었고, 나는 그것에 대해 거의 이해하는 바가 없었다. 가톨릭의 매력은 훨씬 더 성인들의 지혜와 모범에 그리고 다양한 영적 고전서가 지닌 힘에 있었다. 어거스틴 성인에게서 나는 나의 삶이 하느님의 창조와 은총이야기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배웠다. 파스칼에게서 나는 복음의 메시지가 내 마음의 질문들과 상응된다는 것을 배웠다. 훌래너리 오코너로부터 삶을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얼마나 다른가를 배웠다. 그리고 도로시 데이로부터 나는 성인들을 알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단지 그리스도교 역사의 전설적인 인물들로서가 아니라, 친구와 동료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웠다. 도로시 데이는 성인들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을 그렇게 여겼다.

 

거룩함과 행복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준 것은 도로시 데이였다. 그는 특별한 활력을 지닌 사람이었다.­기도에 깊이 잠기지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현존했다. 다른 이들의 고통에 예민하게 깨어 있지만, 그와 똑 같이 아름다움의 징표에 민감하며, 그가 “기쁨의 의무”라고 했던 것에 늘 깨어 있었다. 도로시 데이는 영원의 빛으로 매일의 뉴스를 읽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있을 때면 당신이 세계를 바꿀 수 있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느끼게 해 주고, 그 작업은 엄청난 모험이 될 것이라고 믿게 해 주는 놀라운 영향을 미쳤다.

 

가톨릭이 된 후 수년동안 사람들은 자주 나에게 사제나 수도자가 될 계획이 없느냐고 물어왔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나의 길이 아니었다. 나는 결혼했고,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종교서적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한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 속에서, 가정생활의 기쁨과 소란 속에서, 나는 성인들과 대화를 계속한다. 때때로 그들의 삶은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나는 때로 잠자리에서 부럽게 이런 생각을 한다. 수도원의 방에서 고요와 고독 가운데 하느님을 찾는다면 얼마나 수월할까.

 

그러나 성인들의 중심적인 교훈이 떠오른다: 우리 삶의 현재상황과 주어진 조건이 거룩함으로 가는 우리의 길을 모두에게 마련해 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나의 수도원이다! 현재 삶에서 하느님께 가는 길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일 가운데에서, 가족 생활 속에서, 나의 시간과 주의를 요구하는 수많은 필요들에 응답하면서 찾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인내, 겸손, 용서, 자기희생, 너그러움을 연습하는 기회를 찾기 위하여 어떤 특별한 종교적 장소로 도망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배워야 한다. 가족은 바로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이상적인 자리가 될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수도원보다 더 좋은 자리이다. 모든 것, 이 책을 쓰는 것조차 하느님께로 가는 나의 길이다. 그렇게 존재하는 것, 그것이 나 자신의 행복에 이르는 길이 되어야 한다.

 

 

 

 

성인들의 삶에서 정규적으로 나타나는 복음구절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예수와 “부자청년”의 이야기이다. 청년은 예수께 와서 행복의 비밀(“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합니까?”)을 물었다. 예수는 그에게 “가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나를 따라 오라”고 말했다. 그 분은 이 젊은 청년에게 비참한 삶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 그가 전에 알고 있는 어떤 것보다 더 부유한 삶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마르꼬 사가는 예수가 그를 바라보고 “사랑했다”고 의미심장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확실히 예수의 초대는 그 청년에게 지나친 요구였고, 동시에 충분치 않은 요구였다. 아마도 청년은 “다섯 가지 원칙들”이나, “열 가지 쉬운 단계들”을 더 선호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슬프게 떠나갔다.

 

수많은 성인들에게 이 부자청년의 이야기는 그들의 삶에 있어 중추적인 선택을 의미했다. 그들은 예수의 도전과 초대에 응답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 역시 부자 청년처럼 슬프게 떠나 갈 것인가? 행복하게도 그들은 초대에 응답했다. 이 책의 교훈들은 그들이 보았고 배웠던 것들을 서술하고 따라가 본다.

깨어 살아가는 것을 배우기




당신께 간청합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깨어있게 하소서.


- 트뮤이스의 세라피온


나의 주님, 생명의 주님이시여, 저의뿌리에 비를 보내주소서.


- 제라드 맨리 홉킨스




삶의 슬픔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슬픔은 행복의 반대가 아니다. 적어도 슬픔 속에서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주 문제는 실상 슬픔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실존에 따라다니는 죽음과 같은 상태, 생기 없음, 무감각의 상태이다. 세상의 속도와 압력, “생존을 위한” 투쟁, 끝없는 광고로 야기되는 불안함, 소비문화의 산만함과 소음­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피곤하게 무기력하게 만들고, 모든 것에 무감각한 상태를 가져온다. 우리의 신체들은 아마 이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 남을 것이다­지금까지 어떤 세대도 오늘날과 같은 긴 수명이나 건강상태를 누린 적이 없다­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 병은 어쩔 것인가.


우리는 통근하는 열차 속에서 혹은 쇼핑가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이 병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거울에 비쳐지는 우리의 얼굴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그러나 교회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이 병은 보인다. 종교 자체는 이러한 무기력, 생기 없음에 대해 특별한 면역체를 주지 못한다. 특히 종교생활이 단순히 또 다른 수행과제나 복종해야 할 일련의 규칙들에 불과 할 때에는 더욱 무력한 것이다.
돌보는 양떼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들이 생명을 얻고 또한 풍성하게 얻기 위하여 왔다.” 생명이 풍성한 삶이라는 표현은 행복의 의미를 정의해 주는 한가지 길이다. 그것은 메마르고 속이 빈 삶에 대한 해독제 같은 역할을 해 준다. 공허한 삶은 우리의 “즐거움과 갈망들”에 대한 기억마저 둔하게 만든다. 그러나 수세기 동안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이러한 약속을 죽음 저편에서야 실현되는 것으로 바꿔치기 했으며, 현재에 생명과 행복을 추구하려는 도전과 노력들을 무시해 왔다. 초기 사막의 교부들 중 한 사람인 테오파니스 수도승은 “현재세계에서 생명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내세에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으로 당신 자신을 기만하지 마라”고 경고하였다.


2세기의 주교이며 신학자인 이레네우스 성인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하느님의 영광은 인간존재가 충만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이레네우스는 세상 안의 물질적 실존을 경멸하는 영성에 반대하기 위하여 이런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들은 삶을 일이나 쾌락 혹은 내세주의적 영성으로 축소시키고 안주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전을 준다. 충만하고 온전하게 살아있는 것­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창조되었다. 성인들이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듯이 그리스도는 이 목표에 도달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길을 잃었다.




생명이 넘치는 삶에 대한 끌림


“충만하게 살아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분명히 단순하게 먹고 숨쉬는 것이 아니다. 또한 미친 듯이 행동에 들떠있는 소란스러움도 아니다. 충만하게 살아있다는 것은 자아의 가장 깊은 부분을 살아내는 것이다. 자아의 가장 깊은 부분을 마음이나 영혼이라고 부른다. 마음이나 영혼은 우리 존재의 중심적이며 내밀한 핵심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소음과 산만함을 볼 때, 그러한 부분이나 자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매우 힘든 일이다. 우리는 그저 표면을 미끄러지듯 살고 있다. 신문이나 이웃, 혹은 TV 광고로부터 우리의 역할을 받는다. 이것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며, 무엇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인지 말해 준다. 그러나 그 소리들에 더 귀를 기울일수록 우리는 자신들에 대해 더 알 수 없게 된다. 행복이 그렇게나 잡히지 않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성인들이라고 불리는 남녀들은 다른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다. 그 길은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었으며, 또한 동시에 그들의 진정한 자아에 도달하는 길이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는 막대하다. 하지만 안내자로서, 스승으로서, 그들의 권위는 자주 그들에게서 분명하게 보이는 “다름”이라는 그림자 속에 묻혀버린다. 이 다름은 보통사람들에게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것으로 비쳐지고 매력을 별로 주지 않는다. 이처럼 성인들은 완전한 사람들로서 “우리와 같지 않은” 존재들이라고 여겨진다. 성인들의 전통적인 이야기들은 이런 모습을 더 강화시킨다. 그들에게서 인간적인 부분들을 말소시키고 기적이나 내세적인 흔적들을 강조하기 일쑤다.


그러나 도로시 데이는 다른 의미를 전해준다. 그는 인스턴트 커피 한잔의 맛을 음미했고, 매우 드문 신선한 빵을 즐겼다. 그는 바닷가의 물결치는 파도를 즐겨 바라보았고, 토요일 오후에는 라디오방송의 오페라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다.
토마스 머튼은 성인다움이란 보다 더 풍요로운 인간이 되어 가는 문제라고 보았다. 이것은 “관심을 가지는 것, 고통과 이해, 공감에 대한 능력, 또한 웃음과 재치, 즐거움의 능력, 삶의 선함과 아름다운 것들을 감상하는 능력”을 의미했다. 우리는 이러한 특징들을 근대의 성인들에게서 볼 수 있다. 마더 데레사, 요한23세, 달라이 라마­이 분들은 존재의 담백함을 풍긴다. 앗씨시의 프란치스꼬, 아빌라의 대데레사 에게서도 생명의 현존, 풍성한 생명력을 맛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기력의 진흙수렁에 빠져 있는 우리들은 행복에 이르는 길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아마도 막연한 불만족, “삶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더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 어떤 불안감으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질문에 대해 우리문화는 이미 대답을 갖고 있다: 삶에는 무언가 더 있다. 그것도 무한하게 더 있다­더 많은 물건들, 더 많은 쾌락, 더 많은 재미가 있다고 말한다.


세상은 헤아릴 수 없는 즐거움과 기분전환 꺼리를 가져다 준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의 가장 깊은 갈증을 채워 줄 수 없다. 이 사실을 깨닫고 또한 우리의 불안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그 때에 탐구가 시작된다. 탐구는 우리가 삶의 일상 속에 가라앉지 않는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탐구의 가능성을 깨닫게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일어날 것 같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는 것은 곧 절망에 빠지는 것과 같다.
헨리 데이비드 쏘로우는 “깨어있는 것이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온전히 깨어있는 사람을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고 썼다. 그는 “의식을 갖고 숙고하며 살아가는 것, 삶의 기본적인 사실만 직면하는 것, 그리고 삶이 가르치는 것을 배울 수 있다면, 그래서 죽을 때가 되었을 때 내가 살아있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막과 같은 뉴잉글랜드에 한동안 칩거하였다.




사막으로


4세기경,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로 승인되었을 즈음,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이 현상은 후기 로마사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경이감과 매력을 불러 일으켰다. 처음에는 소수의 용감한 남녀선구자들 뿐이었으나, 점차 꽤 많은 사람들이 사막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하였고, 이어 팔레스타인, 아라비아, 시리아, 이집트의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지역에까지 확산되었다. 사막에 들어간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작은 공동체를 이루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외따로 떨어진 동굴이나 버려진 폐허에서 살기도 했다. 고독 속에서 그들은 기도와 단식에 전념하였고, 성서묵상, 그리고 단순한 노동을 수행했다.


그들이 추구하던 것은 무엇이었나? 많은 대답이 나올 수 있다: 더 사려 깊게 살아가기 위하여, 구원에 이르는 더 좁은 길을 찾기 위하여, 주위의 문화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생명의 원천에 닿기 위하여 등등. 그렇다, 이 모든 것들이 답이다. 그런데 한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사막의 순례자들이 갈구하던 것이 결국 행복의 추구와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사막의 교부들 가운데 가장 저명한 사람은 안토니오 성인으로서 356년에 105세라는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집트의 부유한 그리스도인 가족에서 태어난 안토니오는 어느 일요일 예수와 부자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극적으로 삶을 변화시켰다. 그는 특히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받을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고 한 그리스도의 명령에 충격을 받았다. 아마 그 날 교회에 모여있던 다른 사람들도 똑 같은 구절을 들었을 것이나, 안토니오는 진심으로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는 재빨리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광야로 나갔으며, 아라비아사막에 있는 폐허 요새의 언덕 꼭대기에 정착했다. 그 곳에서 안토니오는 20년을 살았다. 기도, 관상, 그리고 텃밭을 가꾸며 지냈다. 한 철학자가 그를 찾아와 어떻게 “책의 위로” 없이 행복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안토니오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책은 창조된 자연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싶을 때마다 내 앞에는 책이 늘 열려 있습니다.”


안토니오 성인의 삶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아타나시오 성인이 쓴 책에 정리 되어 있다. 안토니오 성인이 죽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쓰여진 「안토니오의 삶」 성인의 수많은 금욕행위와 시련을 그리고 있다. 굶주림, 갈증, 철야, 또한 사자, 악어, 뱀, 전갈의 위험 등등. 가장 극적인 일화들은 다양한 모습과 위장으로 은밀하게 유혹하는 악마의 끝없는 공격에 맞서는 안토니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시련 후 안토니오가 오랜 고독의 생활을 끝내고 사람들 앞에 다시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그의 육체적인 모습에 경탄한다. “그는 운동의 부족으로 뚱뚱해 지지도, 단식과 악마들과의 싸움 때문에 수척해 지지도 않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안토니오 성인의 내면의 평정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의 영혼은 혼란으로부터 자유롭고, 외적인 감각 또한 평온하였으며, 영혼의 기쁨 때문에 그의 얼굴은 즐거웠다. 몸의 움직임을 볼 때에도 영혼의 안정된 상황을 느끼고 인식할 수 있었다.” 점차적으로 그는 수도승들의 공동체에 원장이 되기로 동의했다. 아타나시오에 의하면 “그는 결코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다. 그의 영혼은 평온함을 유지하였으며, 절대로 우울하게 보이지 않았고, 마음은 즐거웠다.”


사막의 수도자들은 이러한 평정을 무관심이나 활기 없는 상태와 전혀 다른 것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사람이 더 이상 분노, 두려움, 탐욕, 그리고 자만심의 노예가 되지 않을 때, 참다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모든 욕정들이 제거되면 그 결과는 감정, 느낌의 부재가 아니라, 친절, 온유, 그리고 연민으로 표현되는 균형과 온전함의 상태가 된다. 그것은 한마디로 “영혼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안토니오의 얼굴에서 확연히 나타난 모습이다.


안토니오의 삶은 대중에게 인기를 얻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책으로부터 영적인 영웅주의의 맛을 느꼈다. 그 중에 어거스틴 성인도 있었다. 어거스틴은 후에 히포의 주교가 되었고, 그리스도교 역사에 우뚝 솟은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고백록」에서 어거스틴은 그가 회심하기 전날 저녁 한 그리스도인의 방문을 받았고, 그에게서 처음으로 안토니오 성인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술회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거의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에 하신 놀라운 일을 듣고 경악했다”고 했다(어거스틴은 안토니오 성인이 죽은 지 2년 후인 354년에 태어났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경탄과 함께 고뇌에 빠졌다. 그리스도교의 논리를 이성적으로 얼마동안 포용했지만, 삶을 새롭게 발견한 확신에 맞추어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복음서의 부자청년처럼 그는 “세상의 즐거움을 여전히 붙잡고 포기하는 것을 미루었다. 포기한다면 새로운 다른 행복을 자유롭게 찾아 나설 수 있었지만, 발견은 둘째치고 그 새로운 행복을 찾는 과정자체를 위해서도 나는 모든 인간의 재화와 왕국의 발견을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어거스틴은 안토니오 성인의 삶이 행복을 추구했던 삶이라고 생각했다. 안토니오는 그 행복을 발견했고, 어거스틴도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1600년이 지난 오늘 이러한 이야기들이 사람들에게 매혹적이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는 자기부정보다는 자기실현을 더 높이 산다. 그래서 전갈들 사이에서 사는 삶에서 얻어지는 행복보다 현재의 “노예살이”가 주는 비참함이 더 좋고 익숙하게 보인다.


토마스 머튼도 회심하던 전날 알더스 헉슬리의 책에서 고행생활을 찬양하는 글을 읽고 비슷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고행이라니! 그런 생각은 나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아. 그건 자연의 순리를 매우 괴상하고도 추하게 거스르는 것이고, 불의하고 왜곡된 사회 속에서 미쳐버린 사람의 자학적인 태도에 불과해.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야! 육체의 욕망을 부인하고, 이러한 욕망을 징벌하고, 억제하기 위하여 훈련까지 한다? 오늘날까지도 이런 생각들은 나에게 소름만 끼치게 할 뿐이다.”


그러나 고행극기를 말할 때 자기징벌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측면들이 분명히 있다. 사막의 수행자들이 고행과 희생을 한 것은 의지를 훈련하기 위해서였고, 영적인 목표에 집중하고 강력하게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사막의 수행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한 것은 실제로 권력, 재산, 쾌락, 그리고 지위에 대한 추구라는 사회적 관습을 거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세속적인 것”에 대한 부정이었다. 세속적인 것이란 실제보다 허상을, 존재하는 것보다 가지는 것을 더 선호하는 문화, 가치관들을 의미한다.


초기 수도승들은 무기력으로부터 생명, 활력으로 가는 길을 추구했다. 그들은 단지 물질적 쾌락을 상대하지 않기 위하여, 또 자신들을 징벌하기 위하여 “세상”으로부터 도피한 것이 아니라, 관습, 일상, 그리고 사회적 기대치의 굴레보다 더 깊고 풍요로운 실존에 “깨어있기 위하여” 사막으로 간 것이다. 머튼은 후에 이렇게 말했다, “사막의 교부들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안의 참다운 자아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하여 교부들은 가짜 자아, 형식적인 자아, ‘세상’ 속에서 사회적인 규약 아래 제조된 자아를 완전히 거부해야 했다. 그들은 알려져 있지 않은 또한 자유롭게 선택하는 하느님의 길을 찾았다. 그 길은 사람들이 앞서 그려놓은 길, 다른 이들로부터 전해 받은 길이 아니었다. 교부들은 어떤 다른 사람이 고정시켜 놓은 ‘주어진’ 하느님이 아니라, 그들 홀로 발견할 수 있는 하느님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살아있는 것, 깨어있는 것을 배워간 사람들이었다.




자유


자서전「칠층산」에서 머튼은 목적없이 이 세상에 사로잡힌 생활로부터 수도원의 골방에 갇힌 “자유”의 삶을 얻기까지의 여정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이 세상의 온갖 쾌락, 흥분, 열정을 다 경험하고 살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환상이라고 하며 거부하였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만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참으로 진실이라면­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단지 모든 것을 움켜쥐고,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경험을 다 해 보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면, 나는 벌써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요람으로부터 지금까지만 해도 나는 영적인 백만장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머튼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나 자신을 채우면서 나는 오히려 비어 갔다. 움켜쥐면서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쾌락과 즐거움을 게걸스럽게 삼키면서 나는 실망과 분노와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고뇌와 혼란으로부터 머튼은 삶에 더 깊은 목적과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살아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의 현존과 실제로 가득찬 세상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임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동안 머튼은 이미 영성작가로서 명성과 인기를 누렸다. 1968년에 죽은 후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의 인기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수많은 독자들 중에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그를 따라 수도원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원에 가지 않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경험에 동감하고 있다. 그들은 행복을 찾는 여정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길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충만한 삶으로 초대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 초대는 세상이 정해 놓은 틀을 넘어서는 초대이다.




새벽별


성인들의 행복은 억제와 자기훈련을 더 늘이는 것에 있지 않다. 우리를 놀라게 하고 이끌리게 하는 성인들의 가장 좋은 점은 그들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가에 있지 않고, 그들의 행동과 태도 속에서 빛나는 “영혼의 기쁨”에 있다. 그들의 무거움이 아니라, 담백함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사막의 교부들이 남긴 말씀 중에 한 젊은 수도승과 연장자간에 이런 대화가 있다: “로트 원장이 죠셉 원장에게 와서 말했다, ‘아버지! 저는 할 수 있는 만큼 겸손하게 규칙을 지키고 단식, 기도, 묵상, 그리고 관상 속의 침묵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제 마음 속의 생각을 깨끗이 하려고 애썼습니다. 이제 제가 더 이상 무엇을 해야합니까?’ 연장자는 대답하기 위하여 일어섰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뻗쳤다. 그래서 그의 손가락은 마치 열 개의 불이 켜진 등불처럼 보였다. 그는 말했다, ‘그러면 그냥 불 자체로 변해 버리면 어떨까요?’”


모든 사람은 사막의 은둔소에서 고행을 한다든가 트라피스트회 수도승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길들이 우리의 길이 아니라 해도 세상의 흐름대로 표류하는 것에 저항해야 하는 도전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것, 우리의 마음을 생명의 원천에 모으는 것, 그리고 죽기 전에 우리가 참다운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숙제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도 성인들처럼 다른 이들에게 생명과 빛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토니오 성인이 즐겨 말한 것처럼,“옛 교부들은 사막으로 갔으며 그 곳에서 온전한 사람이 되었을 때, 그들은 의사가 되었고, 다시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을 온전하게 만들었다.”









헨리 데이비드 쏘로우는 일상과 관습의 유혹과 잠식에 매우 민감하게 깨어 있었다. 그것들은 우리 모두를 몽유병 환자로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얼마나 쉽게, 그리고 무감각하게 우리는 어떤 특정한 길에 빠지고, 우리 자신을 위해 마음대로 길을 뒤틀리게 만든다. 지구의 표면은 사람들의 발에 의해 부드럽게 되고 길들여진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그런 길들을 따라 표류한다. 세상의 고속도로는 얼마나 낡아빠졌고 먼지투성인가. 전통과 적응의 바퀴자국은 얼마나 깊숙이 새겨져 있는가!”


그러나 쏘로우는 이러한 무기력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월든」에서 그는 극적인 영상으로 성찰을 마무리한다. 그것은 “한 농부의 부엌에 60년 동안 놓여 있었던 사과나무로 만든 오래된 식탁의 마른 잎에서 기어 나온 강하고 아름다운 작은 벌레”의 모습이다. 이 벌레는 식탁으로 쓰여진 나무가 살아 있었던 수십 년 전에 까놓은 유충 알에서 부화되었다. 쏘로우는 말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 누가 부활과 불멸에 대한 믿음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아름다운 벌레”는 우리들의 딱딱한 껍질로 둘러싸인 일상 아래에서 생명의 영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적절한 상징이다. 모든 것이 차갑고 둔하고 마비된 것 같이 보여도 한 겨울의 둥근 튤립뿌리처럼,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잠재력­결코 죽지 않고 단지 잠들어 있는­을 깨우쳐 준다.
쏘로우의 말들은 깨어나라는 오래된 도전을, 무기력의 또아리를 흔들어 풀어버리라는, 더 충만하게 살아있기를 배우라는 도전처럼 메아리친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만 새벽은 오는 법이다”라고 그는 썼다. “더 많은 날들이 새벽을 기다리고 있다.” “태양은 다만 새벽 별일 뿐이다.”


놓아 버리는 것을 배우기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우리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한가지, 그리고 단 한가지요인을 알아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집착이다. 집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특정한 것, 어떤 특정한 사람이 없다면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적인 매달림이다.


- 안소니 드 멜로




“영이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들은 하늘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서언이며 그분의 기본적인 가르침의 정수인 진복팔단을 시작한다. 수를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이 “진복팔단”에 몰입하여 영적인 가난의 행복을 얻기 위하여 실제로 얼마나 가난해야 하는지, 아니면 더 정확하게 표현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사유재산을 허락하는지 알기 위해 고심해 왔다. 그러나 예수님이 무슨 생각을 했든 간에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즉 가난에 관한 한 그분의 의도는 현대 상품문화의 정신과 결코 화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사회는 우리를 유혹의 두터운 구름으로 둘러싸고 있다. 어딜 가든지 우리는 행복이 바로 코앞에 있다고, 행복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며 더 좋은 것이나 더 새 것을 가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회에 직면하게 된다. 아메리카 자본주의의 태조들은 물론 이 신경을 정착시켰다. 록펠러는 무엇이 그를 행복하게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1달라 더 가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미국의 경제는 그렇게 무제한의 욕망 위에 세워진다. 비극의 9/11사건이 일어난 후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경악하고 있을 때, 그래서 소비에 대한 맛조차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을 때, 개인적으로 부시대통령은 사람들에게 일어나 쇼핑하러 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 격려도 사실 필요가 없다. 소비를 부추기는 온갖 광고들은 어느 잡지를 보아도 쉽게 나타난다. 우리는 꿈에서도 이런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우리가 움켜쥐는 것은 재물만이 아니다. 우리의 안전, 자기이미지, “지배하려는” 욕구, 옳다고 생각하는 지나친 확신 등등. 우리는 실제의 우리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욕구, 존경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값을 지불한다. 또 우리의 비참함에도 매달린다. 상처, 수치스러운 기억,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이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진복팔단의 행복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그것은 오래된 잘못과 갚지 못한 빚들의 정신적인 기록부를 지우겠다는 결심, 즉 용서의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는 상황들을 평온하게 받아들이고 모든 것이 다 완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써 시작될 수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때에 놓아버리는 것은 감사의 표현으로, 가진 모든 것에 대한 고마움과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상적으로 생각하자면, 집착을 놓아버리고 남는 것은 어떤 가난의 상태이다. 그 상태를 비움, 자유, 단순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성인들은 바로 그 가난의 상태에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은 사람들이다.




집착이라는 갈구리


탐욕스러운 정신은 매우 오래된 현상이다. 사막의 교부들은 그것을 사악한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교부는 “슬픔의 악마”라고 표현하면서, “이 악마는 특히 우리가 기울어지고 있다고 보여지는 곳에 올가미를 쳐 놓고 슬픔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사막으로 간 수많은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무엇보다도 이 악마로부터 도망가고자 했다. 그들은 단지 남는 재산을 처리하는 것이 이 악마로부터 벗어나는 해결책이라고 보지 않았다. 더 깊은 내적인 회심 없이 외적으로 가난해지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모세원장으로 알려진 수도승에 의하면, “금은보화나 토지를 내놓은 사람들이 칼, 연필, 핀 하나에 흔들린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모든 재산을 포기했지만, 작은 것들에 대한 오랜 욕심을 그냥 갖고 있어서 순식간에 평온함을 잃어버린다.” 그는 한때 어부였던 베드로 성인의 모습을 보고 비웃는다, “주님,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랐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받게 될까요?” 모세원장은 이렇게 표현한다, “제자들은 다 낡아버린 낚시망 밖에 버린 것이 없었다.”


소유물을 없애면서 사막의 수도자들은 마음 속에서 집착의 갈구리를 떼어버리려고 애썼다. 그들은 가난 그 자체를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 가난은 다만 또다른 “교환의 도구”였으며, “마음의 순결”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한 방법에 불과했다. 단식, 기도, 가난 같은 고행을 통하여 사막의 은수자들은 “가시덤불과 잡초”(분노, 탐욕, 욕망, 질투 등)를 뿌리 채 뽑고자 했다. 이런 것들은 마음을 질식시켜서 사랑하는 능력을 죽여버리기 때문이다. 어떤 은수자들은 극단적인 행동까지 했다. 세라피온이라는 은수자는 성서책들을 팔아 가난한 이들을 돕기도 했다. 그는 “나는 모든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고 가르쳐 주는 책을 팔았다”고 말한다. 안토니오 성인은 이렇게 주장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영혼을 흔들고 더 나쁜 생각과 착각을 일으키는 욕망의 노예가 된다. 욕망은 모든 것이 나쁘므로 새롭고 더 좋은 것을 소유해야 한다고 부추긴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갖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것을 갈망하는 데에 있다(더 좋은 표현은 만족하는 데에). 이 만족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을 놓는 것 못지 않게, 현재 부족한 것을 채워야만 행복하다는 착각을 버리는 데에서 발견된다. 많은 성인들은 실제로 가난을 받아 들였지만, 단순히 세상의 재화를 거절하는 것 그 이상을 실천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했던 것처럼 좀이나 녹이 들어 올 수 없는 곳에 재화를 쌓는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살았다. 이렇게 노력하면서 그들은 다른 것들­재화와 소유, 물론 가짜 야심, 욕망, 그리고 소소한 감정들­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을 발견하였다.


“들에 핀 백합을 보라”고 예수님은 말한다.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입지 못했다”(마태오 6,28-29). 복음서는 신뢰와 철저한 단출함에 대한 권고를 여러 곳에서 표현한다. 백합의 모형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른 모형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가난한 사람


역사에서 앗씨시의 프란치스꼬는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의 삶은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여겨질 뿐만 아니라, 교회의 테두리를 넘어 보편적으로 추앙을 받는 몇 안 되는 성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여기에 한가지 특징을 더 첨가한다면, 그는 분명히 즐거움을 그의 성인됨의 특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구미오의 사나운 늑대를 길들인 것, 참새들에게 설교하고, “형님인 태양과 누이 달” 같은 찬가를 노래한 것, 그밖에 프란치스꼬의 많은 저술과 이야기들은 한결같이 그의 행복한 모습,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찬양,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쁨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느님을 섬기며 기뻐하는 그의 모습은 집착으로부터 계속 벗어나면서 가능했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프란치스꼬는 무엇보다도 집착을 놓아버리는 예술의 달인이었다.


프란치스꼬는 늘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아름다움에 민감했고, 추함에 대해서는 혐오를 느꼈다. 그러나 어느 날 길에서 그는 나병환자와 마주쳤다. 그 불쌍한 사람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고, 냄새를 풍겼다. 프란치스꼬는 말에서 내려와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동전 몇 닢을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어떤 충동으로 무릎을 꿇고 나서 나환자의 참혹한 손에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전환점이었다. 그 만남으로부터 프란치스꼬의 삶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가족과 사회의 가치관과 반대의 방향이었다. 나환자에게 입맞춤으로써 프라치스꼬는 죽음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지위, 안전, 세상적인 성공에 기반을 둔 그의 모든 정체성을 놓아 버렸다.


프란치스꼬와 그의 동반자들은 바깥이나 아주 초라한 움막 같은 곳에서 살았다. 그들은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하여 들에서 농부들과 함께 일했다. 일이 없을 때, 그들은 구걸하거나 굶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병자들을 돌보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했으며,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르쳤다.
프란치스꼬의 매력은 무엇이었는가? 추종자 마쎄오형제도 익살스럽게 이런 질문을 했다, “왜 당신입니까? 왜 사람들과 세상 모두가 당신을 따르고 있는 겁니까? 모든 사람들이 왜 당신을 보고 싶어하고, 듣고자 하며, 당신에게 복종하는 겁니까? 당신은 잘 생기지도 않았고, 많이 배운 것도 아니고, 지혜도 출중하지 않고, 귀족도 아닌데, 세상이 왜 다 당신을 쫓아다니는 겁니까?”


프란치스꼬는 특유의 겸손함으로 하느님의 영광은 자기 같이 “보잘것없는 종”의 약함에서 더 밝게 빛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답은 그의 확실한 신뢰성을 표현해 주는 말이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더 이상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이론으로 훌륭하나 실천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세속적인 교황 인노센트 3세조차 프란치스꼬가 말하는 새로운 수도회를 인준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교황의 한 측근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이 사람은 우리가 복음에 따라 살기를 원할 따름이다. 이제 그런 삶이 인간의 능력 밖이라고 말하면, 우리가 복음서를 따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선포하는 셈이 된다. 그러면 복음서의 저자인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이런 성실함과 신뢰성말고 또 다른 측면이 있다. 프란치스꼬의 모습은 도덕성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깊은 매력이 흘러 넘친다. 그는 자유와 기쁨의 영이 충만했다. 사람들은 그 옆에 가까이 있고 싶어했고, 즐거움의 비밀을 알고 싶어했다. 프란치스꼬의 첫 번째 전기작가인 셀라노의 토마스는 이렇게 묘사했다, “그 삶의 순결함, 마음의 깨끗함, 하느님에 대한 사랑, 형제적 애덕, 철저한 순명, 평온한 승복, 천사 같은 표정은 얼마나 아름답고 빛났으며 영광스러웠든가!”


프란치스꼬와 가난의 만남은 확실히 극단적이었다. 그가 실천한 가난은 잘 정돈된 수도원의 가난도 아니고, 방랑자의 낭만적인 가난도 아니었다. 그의 가난은 참으로 가난한 이의 불확실하고 부서지기 쉬운 모습이었다. 그는 소유가 하느님과 이웃사랑에 매우 위험하고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세 재화에 대한 갈망이 없다고 했다.


프란치스꼬는 세상의 관점과 가치관을 전도시켰다. 다른 사람들이 안전을 발견하는 곳에서 그는 오직 구속만을 보았을 뿐이다. 다른 이들에겐 성공으로 여겨지는 것이 그에게는 하느님과 이웃사랑에 대한 장애물이요, 다툼만 일으키는 길이었다. 뿐만 아니라, 프란치스꼬는 재물이나 소유만 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사회 속에서 명성과 지위, 자신의 변덕스러움, 분노, 자만심, 그리고 야심들­한마디로 그의 사랑하는 능력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다 포기했다. 그러나 이렇게 놓아 버리는 끝은 무(無)가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잡동사니로 가득 찼던 그의 마음은 이제 세상이 줄 수 없는 매우 큰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는 너무나 감사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창조주께 그는 이렇게 쓴다, “당신은 사랑이시고 자비이십니다. 당신은 지혜이십니다. 당신은 겸손이시고, 인내입니다. 당신은 아름다움이고, 온유함입니다. 당신은 안전이시고, 내적인 평화입니다. 당신은 기쁨이고, 우리의 희망이요 기쁨이십니다... 위대하시고 훌륭하신 주님, 전능하신 하느님, 자비로운 구세주시여.”


프란치스꼬의 모범을 따라 우리는 위대한 일들을 하고 영웅적 행동을 수행하며 삶의 모든 갈등들을 나환자에게 한 번 키스하고 해결해 보는 꿈을 꾼다. 그러나 도로시 데이가 쓴 것처럼, “때때로 그저 단 한 걸음만으로 될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며 더 많이 보게 되면서 나는 삶이 수많은 걸음들로 이루어지며 그것도 거대한 한 걸음이 아니라, 매우 작은 사건들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나환자에게 의식적으로 키스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프란치스꼬의 철저한 이탈은 아마도 극소수의 사람들과 관련된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러나 이탈이 작은 걸음들에 의해서든, 큰 걸음에 의해서든 간에 놓아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빈손이 더 낫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핵심은 손이 닿을 수 있는 모든 것에 매달리게 될 때, 우리가 지불해야 할 값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이다. 이탈하는 법을 깨우칠 때까지 세상은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는 올가미와 장애물을 던져 우리의 행복을 방해할 것이다. 도전은 있는 모습대로의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우리 안의 움켜쥐는 성향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질 때 토마스 아 캠피스가 「준주성범」에서 말했듯이, “모든 창조된 것은 우리에게 생명의 거울이요, 거룩한 가르침의 책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선하심을 반영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보잘 것 없고 추하다 해도, 이 세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쉴 수 없는 마음들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집착과 욕망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한다면, 왜 우리는 그렇게 그것들에 매달리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히포의 성 어거스틴 만큼 깊게 고심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행복에의 염원이 인간존재를 규정하는 특징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잘못되고 해악한 것이라 해도­ 행복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을 얻는 길에 관하여 잘못 인도되고 있다. 우리는 피조물로부터 그것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원한다. 결과는 슬픔이고, 두려움이며, 불안이다. 어거스틴은 이 문제를 하느님과 연결시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당신은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 쉴 때까지 쉴 수가 없습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문제가 행복에 대한 갈망, 그리고 충동적인 욕망과 감정에 억매여 나타나는 무력감 사이의 충돌과 대립이라고 깨달았다. 이러한 갈등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그는 문제가 통제되지 않는 성욕보다 더 깊은 것이며, “강한 욕망의 가시덤불”이라는 표현을 자주 암시적으로 했다. 그는 한 유명한 에피소드를 꽤 오랫동안 다루면서 어렸을 때 이웃에서 배나무서리를 할 때 느꼈던 감정을 표현한다. 그것은 굶주림이나 필요에 의한 행동이 아니라, 순전히 일부러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구의 발산이었다는 것이다. 이 경험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의 불순종을 연상시킨다. 어거스틴이 경험한 것도 똑같은 경우로서 인간죄악의 전형적인 표현이었다. 그는 이것을 우리의 의지를 감금하여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끈질기고 강력한 욕망이라고 일컫는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원죄교의를 정의하는데 있어 막대한 책임이 있다. 그는 이 원리를 애정의 무질서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너무나 많이 사랑해서가 아니라, 무절제하게 사랑하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의 참다운 가치에 걸맞게 그것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추락한 인간성의 기본조건이다. 단지 “탐욕”이 우리를 길에서 빗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자신이 우리의 작은 소우주의 중심이라고 상상하면서 선한 것들­사랑, 아름다움, 진리­에 대한 갈망에서조차 우리는 잘못 인도되고 있다. 우리의 이기심은 굶주림을 폭식으로, 사랑을 색욕으로, 애정을 탐욕스러운 소유욕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이러한 갈등과 긴장은 어느 날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위기에 봉착했다. 「고백록」에서 그는 이 경험을 승복의 초대, 놓아버림의 부르심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자신의 죄에 대한 집착이었고, 그것이 그를 혼란스럽게 한 것이었다. “나는 그저 하찮은 것들에 매달려 있었다. 나의 모든 오래된 집착들, 가장 무가치한 어리석음에... 이것들이 나의 육신의 옷을 낚아채면서 속삭였다, ‘넌 우리를 버릴 것이니? 그러면 이 순간부터 우리는 절대로 영원히 너와 함께 하지 않을 것이야?’”


그가 이 씨름에 한창 빠져 있을 때, “자, 들고 읽으세요”라고 말하는 한 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성서가 손에 쥐어졌다. 아무 곳이나 펼쳤을 때, 바로 서간의 구절을 발견했다. “향연이나 음주가 아니라, 욕망과 방종이 아니라, 싸움과 경쟁이 아니라,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갑옷을 입으십시오. 본능과 본능이 주는 맛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거스틴의 전환은 재산, 사람, 혹은 “세상”을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낡은 자아, 게걸스러운 자기탐욕의 깊은 구렁을 놓아버림으로써 회심을 이루었다. 오직 이 길을 통하여 그는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소유하고 지배하며 소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의 참다운 가치를 알아보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그는 자신의 무절제한 사랑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세상은 더 이상 올무가 아니었다. 모든 피조물을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행복이란 당신 안에서, 당신을 위하여, 당신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이며 다른 행복은 없습니다.”




선물의 교환


우리는 소유문화의 유혹적인 부추김에 저항하기 위하여 광야로 나갈 필요가 없다. 프란치스꼬 처럼 자유를 얻기 위하여 벗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성인들의 행복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혹은 부족한 것에 근거하여 우리 자신을 보면서, 진정으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 이해하기 위하여 조금씩 한결같이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움직임에서 이탈의 도전은 단지 우리자신의 물질적 집착이나 분명한 잘못과 죄악을 놓아버리는 것만이 아니다. 세상은 불행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후회에 짓눌린 사람들, 과거상처의 기억, 삶의 모든 슬픔과 불공평의 짐에 허덕이는 사람들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이런 짐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을 벗어버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복음서의 부자청년처럼 우리는 “슬프게 떠나간다.” 낯선 대안보다 공허한 재물이 더 낫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성인들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놓아버리는 것, 빈손으로 따르는 것을 택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탈의 과제를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물건, 우리의 과거, 슬픔 등 우리가 매달려 있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것을 다른 것과 바꾸는 것이다. 한 가지 정체성이나 삶의 조건을 또 다른 종류의 정체성, 삶의 조건으로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이제는 다른 정신의 영향을 받아 다른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놓아버리는 것, 이탈하는 것은 인색한 내핍생활, 영적으로 말하자면 부서질 정도로 단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의 움켜짐, 긴장을 푸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가난은 어떤 자의적인 생활방식으로 해석될 수 없다. 궁극적으로 영적인 가난이란 우리의 보물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했듯이,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노동하는 것을 배우기

 

 

노동에서 오는 기쁨 없이 살아가는 것은 즐거움이 없는 삶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

 

 

사막의 동굴에서 고용주나 십장이 없이도 초기수도자들은 매일 많은 시간을 손노동으로 보냈다. 밭을 가꾸고, 바구니를 엮거나 만드는 일이었다. 이처럼 그들은 바오로 사도의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마라”(Ⅱ데살로니카 3,10)는 엄한 훈령대로, 필요한 물질적 요구들을 스스로 채웠다. 노동이 전혀 영적인 삶의 목적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축복으로, 일에 의해 치유되는 것으로, 지루함과 슬픔을 몰아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사막의 교부들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노동자체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효율성이나 보상의 차원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다. 폴 원장은 동료 은수자들 처럼 많은 시간을 종료나무 잎파리로 바구니를 짜는데 보냈다. 바구니가 동굴 안을 가득 채웠을 때, 그는 불을 질러 바구니를 다 태우고 나서 다시 시작하곤 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를 바보 같은 모습이라고 간주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초기 수도승들의 연대기를 보면 다른 의미가 있었다. 폴원장은 그런 행위를 통하여 “손으로 일하지 않고서 수도승은 그의 자리에 머물러 사는 것을 견딜 수 없으며, 거룩함의 정점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영원의 빛으로 볼 때에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은 이와 비슷하게 바보짓으로 보인다. 우리는 내일이면 다시 더러워질 마루를 닦는다. 또한 어떤 사람의 마루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책을 쓰고 발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은 인간조건에 있어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노동(일)은 단지 매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방법뿐만이 아니다. 또한 노동은 우리가 청구서를 갚는 방법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노동은 어떤 의미에서 이 우주에 인간의 독특한 자리를 표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노동을 통하여 계속되는 창조사업에 참여한다. 또한 노동으로 물질과 맞서고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우리의 모습도 형성시켜 간다.

 

혼자서 하든, 대중의 갈채 속에 하든 노동은 온 마음을 다해 수행 할 때 오로지 자유롭게 주어질 수 있는 선물이 된다. 노동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육체와 정신이 개입되지만, 언제나 우리의 영혼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행복에 대한 모든 믿을만한 처방은 노동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매우 자주 행복에 관한 대중적 “광고들”은 노동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있다. 우리는 노동시간을 정확하게 족쇄같이 채우면서 행복을 휴가나 “여가시간” 때에만 가능한 것으로 예치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노동은 단순히 성가신 필수품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은 생계를 버는 수단이며 행복은 그 필수품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휴가를 즐길 때에만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개입된 과제, 일, 노동에는 더 깊은 행복이 있으며 우리의 존재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해 준다. 성인들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올바른 정신에서 생각해 보면 그러한 의미나 행복은 실제로 모든 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동과 거룩함

 

레오 톨스토이는 말년에 이 주제를 “도덕에 관한 이야기”들 중의 하나인 “한가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에서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톨스토이는 특히 사회적 기대가 주는 부담과 영적인 갈망사이에서 느끼는 긴장에 대하여 자세히 말한다. 중년기에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 등의 작품으로 유명해진 그는 이제 거의 자살을 생각할 만큼 절망 속에 있다. 특권과 안락의 삶을 누린 후 그는 이제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고 느낀다. 이 모든 것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성찰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행복의 추구가 거룩함에 대한 초대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거룩함이란 삶을 하느님의 규율과 일치시키는 것이고 톨스토이가 이해하는 한, 산상수훈은 이 거룩함에 대한 요약이었다. 그러나 그런 의미의 거룩함은 톨스토이가 보건대, 교회 혹은 수도원보다 노동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에서 더 발견된다. 그는 자신이 속한 특권계층과 그의 땅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비교해 보면서 이런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아무리 고달파도 이 평범한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종일 일하고 삶의 선함을 기본적으로 신뢰하면서 밤에 잠든다. 물론 농민의 삶에 대한 이런 인식에는 감상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가한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농민들과 그들의 단순함, 신앙, 그리고 노동의 삶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면서 톨스토이는 그에게서 빠져나간 행복을 찾고자 했다.

 

“한가한 사람들에게...”에서 톨스토이는 한 이상적인 젊은 청년의 입을 빌어 자신의 이상을 표현한다. “나는 나의 전 재산을 포기하고 시골에 가서 가난한 이들 사이에 살 것입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일하고, 손으로 노동하는 것을 배우며, 내가 받은 교육이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눌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기관을 세우거나 책을 써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형제로 살면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땅에서 단순한 삶을 시작했다. 농민들과 함께 들에 나가 일도 했다. 그는 “게으름이 아니라, 노동이 모든 인간 존재의 행복을 찾기에 있어 분리될 수 없는 조건”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가르쳤던 이상을 결코 완전히 수용할 수 없었다. 그는 가족과 끊임없이 부딪쳤다. 또한 그 자신도 괜찮을 때에는 들에 나가 일했지만, 집에 돌아와선 비단 잠옷을 입고 잤다. 행복에 대한 그의 추구는 모호한 측면이 많았고, 82세에 죽을 때까지 갈라진 양심으로 괴로워했다.

 

올바르게 사는 것...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의 기반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러나 무엇이 올바른 삶을 구성하는가? 톨스토이의 생각에 의하면, 올바른 삶이란 단순히 외적인 도덕규약에 복종하는 것 그 이상을 뜻한다. 그것은 우리의 행복과 거룩함에 대한 추구가 한 곳에 모이는 조건, 궤도 위에 있는 것을 뜻한다. 그러한 조건은 보편적인 도덕률이 우리 영혼에 실제로 새겨질 때에 가능하다. 그러한 삶은 이 세계의 상식적인 지혜를 거부하는 삶이다. 톨스토이에 따르면, 그것은 매일의 삶에서 어떤 비전을 갖고 사는 것이다. 이기심과 경쟁보다 사랑과 연대를 나누며 사는 삶이다. 톨스토이 자신이 그가 그렸던 조화를 결코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는가? 노동, 행복, 거룩함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성인들의 삶에서 더 넓은 지지를 받았다.

 

 

노동과 기도

 

노동의 필요를 발견한 것은 성인들이 아니었다. 창세기를 보면 마침내 하느님께서 불순종한 아담과 대면하신다.“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땀흘려 일하여 빵을 먹게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노동을 저주요, 우리의 타락한 본성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인들에게 도전은 필수품과 행복을 화해시키고, 노동과 매일의 과제가 축복 받으며 거룩한 삶을 향해 가는 길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었다. 14세기 독일의 신비가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처럼, “올바르기 위하여 사람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해야 한다. 하나는 노동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를 배워야 하고, 그 곳에서 하느님을 꽉 붙잡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노동을 다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며 다양한 행위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하는 모든 일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붙잡는 것”, 노동과 기도 사이의 조화를 찾는 것은 베네딕도 성인의 규칙으로 돌아가는 수도생활의 기본 특색이다. 서구 수도 전통의 창설자인 베네딕도 성인은 550년에 죽은 이태리인 수도원장으로서 매일의 생활이 기도, 공부, 그리고 노동으로 조심스럽게 나누어져야 한다고 규칙에서 말하고 있다. 이 세가지 중에 어떤 것도 나머지 것들보다 더 중요하거나 고귀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 베네딕도에 의하면 수도자란 들에서 일할 때에도 초조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교부들과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손노동으로 살아야 참다운 수도자이기 때문이다.”

 

베네딕도의 사상은 단순한 표어, “기도와 노동”으로 요약될 수 있다. 두 행위가 함께 온전하고도 거룩한 삶의 보완적인 차원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표어이다. 그러나 베네딕도는 노동과 기도의 조화를 표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수도생활은 기도라는 거룩한 영역과 “세상적인” 노동행위를 인위적으로 갈라놓지 않는 상태를 목표로 삼는다. 기도는 그 자체가 하나의 노동­하느님의 일­이므로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손노동은 하나의 기도형태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어떻게 노동이 기도가 될 수 있는가?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손은 얌전하게 포개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하는 한 기도와 노동의 연결은 분명하게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기도의 기본적인 의미는 하느님 앞에 현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노동이 기도적인 특색을 가지게 되려면, 노동의 영(정신)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하면서 기도할 때처럼 우리의 온 마음을 집중시키고 하느님의 현존 앞에 머무는 그런 영이 있어야 한다.

 

설거지나 정원의 풀에 물주는 등 별로 정신적으로 집중할 필요가 없는 단순한 노동을 할 때에 이런 영을 가지는 것은 더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를 치거나 무거운 기계를 움직이면서 어떻게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 수도회의 관점에 의하면 모든 일은 나름대로의 선을 갖고 있다. 노동할 때 그 선에 대한 적절한 주의와 존중심을 갖고 한다면, 우리의 노동은 기도로 가득 차고 그래서 하느님이 그 안에 계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부주의하게 일의 선에 대한 존중 없이 하는 일은 기도의 성격을 잃게 된다.

 

이러한 주제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고전서 가운데 하나인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연습」에서 정교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 책은 17세기 불란서 가르멜 평신도 형제회 회원이었던 사람과의 대화, 서신에서 발췌하여 만든 책이다. 이 사람은 부활의 로렌조형제로 알려져 있는데, 중년의 나이에 오랫동안 군복무를 한 뒤 파리의 한 수도원에 입회하였다고 한다. 농촌출신이고,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으므로 그는 부엌일을 하게된다. 80세에 죽을 때까지 부엌에서 40년 동안을 냄비와 후라이팬 속에서 살았다. 살아 생전에 위대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사후에 출판된 책에 의하여 그는 당대 가장 위대한 영적 대가들 중의 하나로 인정된다.

 

그의 영성의 본질은 책의 제목에서 명료하게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영성생활의 방법은 단순하다. 항상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의식을 고양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깨어 있음으로써 우리의 모든 행위가 거룩하게 된다고 믿었다. 즉 끊임없는 기도의 상태나 “하느님과의 대화”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기본적으로 하느님이 지금, 이곳에 하고 있는 일 속에 계시다고 확신하는 행위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에게 일하는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부엌의 딸그락 딸그락 하는 소리 속에서, 때때로 이것저것을 청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나는 마치 성체조배 때처럼 깊은 고요 속에서 하느님을 모신다.” “우리의 성화는 우리의 일을 바꾸는데 있지 않고, 지금하고 있는 평범한 일들을 하느님을 위해 하는데 있다. 하느님은 일의 위대함을 보시지 않고, 그것을 얼마나 사랑을 갖고 하는가를 보시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덧붙인다.

 

로렌조 수사의 가르침은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거룩한 일”, 수도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일과 “세상 속의” 사람들이 하는 현세적인 일 사이의 간격에 다리를 놓아준다. 실상 성인들도 “보통의 일”을 하고 산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교사, 간호원, 로렌조 수사 같은 부엌데기도 있었다. 비록 대부분의 시성된 성인들이 성직자이고 수도자였어도 또 다른 많은 성인들이 실제로는 온갖 종류의 일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의 종류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자신이 그 일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 이라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주장은 옳다.

 

결국 “거룩한 일”이란 없는 법이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해를 끼치거나 정직하지 않은 일이 아닌 한 “영광스럽게” 변화될 수 없는 일이란 없다. 참으로 어떤 형태의 노동이건 간에 섬김이나 자선의 기회로, 기도의 때로, 혹은 아름답고 진실하며 생명을 주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일들은 자주 주의를 끌지 못하거나 별로 특징이 없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풍요로운 은총과 사랑으로 하기 때문에 일터를 거룩한 자리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을 우리는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매일 만나는 성인들이다.

 

노동과 거룩함에 관하여 19세기의 예수회 회원이며 시인인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고, 대죄로부터 자유로우면 모든 하는 일이 그 안에 죄가 없는 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기도만이 아니라, 노동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면, 모든 일은 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당신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그 분은 모든 것을 통하여 위대한 존재가 되신다.”

 

전설에 의하면 크리스토퍼 성인은 강을 건너는 여행자들을 등에 업고 날라다 주는 일로 생계를 꾸려 가는 거인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밤 그가 한 아이를 업고 있었는데 갈수록 무거워졌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당연하지요!” 하고 아이가 말했다. “당신은 온 세계를 업고 있었어요. 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당신이 찾고 있는 왕이지요!” 일상의 일이 지루하고 부담스러워도 하는 일이 우리가 찾고 있는 왕을 섬기는 일이라고 믿는다면, 얼마나 다르게 평범한 과제에 접근 할 수 있겠는가!

 

많은 성인들은 거룩함을 추구하면서 어떤 일들은 확실히 포기했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었기 때문이다(로마군대에 복무했던 투르의 마르띠노 성인 등). 또한 도덕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일(영국재상이었던 토마스 모어의 경우)이나, 더 넓은 자리에서 일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베드로사도, “나를 따르라,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에 하던 일을 기꺼이 포기했다. 그러나 성인들이 표현했던 것처럼, 거룩함으로의 초대는 보통 하는 일을 단념하고 어떤 특별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일 안에서, 삶의 조건 안에서 거룩함을 발견하라는 초대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우리의 소명, 행복에 이르는 참다운 우리의 길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르심

 

“소명”이란 말은 라틴어에서 왔는데 호출, 초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이 말은 단순하게 어떤 직업, 혹은 우리가 “하는” 어떤 일 따위로 자주 그 의미가 변질되어 사용되고 있다. 다른 한편 종교계에선 전통적으로 어떤 특별한 부르심과 같은 뜻으로 여겨진다. 즉 사제직이나 수도생활에 대한 부르심으로 통한다. 그래서 성소를 가졌다는 것은 신부, 수도자,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그러나 성인들의 삶을 보면, “성소”의 의미는 상식적인 의미보다 한편으론 더 넓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더 좁기도 하다. 바오로사도의 말처럼, 우리들의 부르심이 궁극적으로는 거룩함 그 자체가 목적이며 단순히 종교적 서원을 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의미에서 더 넓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성소란 궁극적으로 개인의 문제이며, 어떤 특정한 개인에게 해당된다는 뜻에서 더 좁은 의미를 갖는다. 성소는 우리 각자가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도록 초대된 방식이다.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우리 각자의 고유하고도 특정한 성소가 실현되고 드러나게 표현되는 과정을 묘사하기 위하여 “자기화”라는 단어를 발명했다.

 

모든 소멸될 것들은 한 가지 같은 일을 한다:

각자가 머물고 있는 내면의 존재를 다루는 일이다,

자아들­은 스스로 행한다. 나의 자아. 그것은 말하고 읽는다,

내가 하는 것이 나라고 울부짖는다: 그것을 위하여 나는 왔다고

 

물총새나 나무의 자기화작업은 더 본능적이게 마련이다.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표현한다, “나무는 나무가 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 하느님의 뜻대로 되어 가는 것은 그분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분의 창조적 사랑에 ‘동의하는 것’이다. 하느님 안에 있는 것, 그러므로 하느님의 정수와 다르지 않는 이데아를 표현하는 것이므로 나무는 나무가 됨으로써 하느님을 닮는다.” 그러나 인간존재는 어떤가? 머튼은 대답한다: “나에게 있어 성인이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거룩함과 구원의 문제는 실상 내가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것, 그리고 나의 진정한 자아를 찾는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소”를 어떤 특정한 일이나 생활방식과 같은 것이라고 여길 수 없다. 성소는 미리 맞춰진 옷을 입는 것이 아니다. 많은 성인들의 투쟁은 당대에 가능한 선택을 넘어 거룩함으로 가는 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안토니오는 사막에서, 베네딕도는 수도원에서, 프란치스꼬와 글라라는 철저한 가난이라는 그들만의 길을 찾았다. 그들 모두는 다른 사람들이 따르도록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길은 기존의 방법들을 먼저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싹텄다. 무엇인가가 그들로 하여금 다른 길을 찾도록 만든 것이다.

 

샤를르 드 후꼬(1858~1916)는 퇴폐적인 불란서 기병대 장교로서 초기 삶을 시작했다. 후에 그는 알제리의 한 은둔소에서 사는 자신의 고유한 길을 발견했다. 그는 나자렛 고향마을 목수로서 꽤 오랫동안 살았던 그리스도의 삶의 중요한 부분을, 예수의 “숨겨진” 삶을 닮으려고 했다. 후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느님은 그분이 창조한 모든 영혼들이 그들의 온 존재를 다해 사랑하라고, 현세와 다음세상에서 그렇게 사랑하라고 부르신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들 모두를 거룩함에, 완전함에, 그분을 가까이 따르고 그분의 뜻에 복종하라고 부르신다. 그러나 하느님은 모든 영혼들이 똑같은 일로 그들의 사랑을 그분께 보여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똑같은 사다리로 천국에 오르고 똑같은 방식으로 선을 행하라고 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천국에 이르는 나의 길은 어떤 길인가? 어떤 삶으로 나는 나 자신을 정화시켜야 하는가?”

 

후꼬의 질문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어떤 종류의 일, 어떤 자리에서 나는 나의 진정한 자아를, 그렇게 되어야 할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가? 머튼이 쓴 것처럼,“그 자리를 찾는다면 우리는 행복할 것이다. 그것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완전히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성서에서 부르심은 하느님과 노아, 아브라함, 야곱, 사무엘 등 신앙의 영웅들이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단순히 “여기 제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던 의미 있는 만남들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성서에서 이렇게 되풀이되는 응답들은 그냥 똑같이 “여기 있습니다!” 라고 소리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이 중대한 순간임을 선포한다. 그것은 한 사람의 정체성 전체와 목표에 대한 감지가 응답 속에 녹아들어 어떤 초월적인 도전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도전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가? 모세에게 온 것처럼 불타는 덤불 한 가운데에서? 프란치스꼬의 경우처럼 무너진 교회 안의 십자가에서 “나의 교회를 다시 세워라”하고 말하는 소리 속에서? 많은 다른 성인들의 경우처럼 성서의 어떤 구절을 마치 그들 자신에게 말하고 어깨를 움켜쥐는 구절로 듣는 가운데에서?

 

성인들의 삶은 이러한 결정적인 순간들에 달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인들에게서 보여지는 특징은 그들의 부르심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았거나 나그네의 요구를 채움으로써, 혹은 현재 순간에 대한 어떤 도덕적인 도전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인들이 부르심을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들었고, 따라서 전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때가 올 때 ­오늘날 나의 온 정체성과 목표가 녹아있는 초월적인 도전의 질문에 대해 대답할 의지가 있다면­ 그러한 부르심을 알아차리는 것은 더 쉬워질 것이다.

 

 

육체와 영혼

 

도로시 데이에게 그런 질문은 이미 아이 때에 형성되고 있었다. 그는 1897년 뉴욕의 부르클린에서 한 자유 스포츠 기고가의 딸로 태어났다. 집에선 하느님이라는 이름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으나, 어린 나이 때부터 그는 성인들의 삶에 매료되었다. 그는 병자들, 절름거리는 사람들,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성인들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또 다른 질문이 내 마음 속에 있었다, ‘왜 악을 처음부터 피하지 않고, 그것을 치료하는 일에만 매달려 있는가?’ 사회질서의 변화를 위해 일하는 성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노예들을 보살피기만 하지말고, 노예제도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성인들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 고심한 끝에 그는 종교에 문을 닫고, 당대의 진보적인 정치에 희망을 두게 된다. 그의 친구들은 공산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들로서 그들과 함께 다양한 좌익간행물이나, 반제국주의 연맹 같은 조직에서 일하기도 한다.

 

이같은 “역사”에 대한 흥분된 참여에도 불구하고, 도로시의 초년 삶은 외로움과 도덕적, 영적 혼동으로 가득했다.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를 동료들로부터 구분짓게 하는 초월에 대한 염원을 항상 가졌다고 한다. 어떤 친구는 후에 그가 좋은 공산주의자가 되기엔 너무 “종교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도로시 데이도 나중에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도스토예브스키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의 말을 빌려 “살아오는 동안 내내 나는 하느님에게 사로 잡혀 왔다”고 말했다.

 

초월적인 것에 대한 이 염원이 결국 그를 가톨릭 교회로 가게 했다. 슬픔과 실망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그의 회심은 슬픔 때문이 아니라, 임신과 딸의 출산이라는 “자연적인 행복”의 경험으로 찾아왔다. 그는 즐거움과 감사의 충동을 너무나 크게 느꼈기 때문에 하느님께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하였다.

 

그러나 그의 회심은 친구들과 관습에 의한 남편(데이는 그를 이렇게 불렀다)의 이해를 엄청나게 뛰어 넘은 비약이었다. 불가지론자이며 무정부주의자였던 남편은 가톨릭주의를 경멸했고, 그가 종교를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관계가 끝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데이는 “하느님인가 사랑인가를 택해야 하는 단 하나의 질문에 봉착했었다”고 쓰고 있다.

 

이런 고뇌에 더하여, 가톨릭이 되려는 그의 결정은 노동계층을 배신하는 것같이 비쳐졌다. 한편으로 그는 가톨릭교회가 가난한 이들, 서민대중, 이민자들의 교회라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 그의 진보적인 친구들과 도로시 데이 자신에게도 교회는 더 자주 부자들의 교회, 기존특권 그룹의 옹호자로 보였다.

그는 그의 초기신앙과 사회정의에 대한 투신을 어떻게 화해시켜야 하는지 몰라서 상심하고 있었다. 1927년 세례 후, 그는 5년의 외로운 시간을 방황 속에서 자신과 딸, 타말의 생계를 불확실한 자유기고가의 수입으로 지탱하면서 보낸다. 그러면서 “육체와 영혼을 이 세계와 다음세계에서 화해시킬 수 있는” 삶의 길을 찾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응답은 하늘에서 들려온 것이 아니라, 강한 불어의 억양으로 말하는 한 덥수룩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1932년 어느 날 데이가 그를 만났을 때, 그의 주머니는 팜플랫과 자료 따위로 불룩해 있었다. 때는 경제공황시기였고, 도로시 데이는 워싱턴에서 열린 공산주의자들이 조직한 실업자행진을 취재하고 막 돌아온 뒤였다. 여행은 그의 갈망에 위기를 더욱 부풀렸다. 워싱턴의 성모무염시태 성당에 가서 “내가 가진 모든 탈렌트를 동료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어떤 길이 열리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나서 뉴욕에 돌아가자, 곧 피터 모린이 집 문 앞에 도착한 것이다. 그는 불란서의 농가출신으로 55세였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녔고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복음을 행동에 옮기는 고유한 비전을 구상하였다. 그는 데이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고, 서로 만나기도 전에 이미 데이가 그의 비전을 실제화 시킬 인물이라고 결정하고 있었다.

 

모린은 데이와 함께 복음서의 철저한 사회적 메시지를 수행하는 운동을 구상했다. 그들은 단순히 불의를 고발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질서, “노동의 철학”과 가난한 이들안의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것에 기초한 새 질서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피터 모린은 말했다. 그들은 교회나 정부가 그러한 프로그램을 시행하도록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그들의 비전에 따라 오늘을 살기 시작할 것이며, “사람들이 선해지기가 더 수월한” 사회를 창조하는 일을 할 것이다.

 

얼마 지난 후에야 도로시 데이는 이 이상한 사람이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만남과 이어 운동을 통하여 그는 나머지 생애 내내 거의 오십 년 동안이나 자신이 관여하게 된 일이라고 깨달았다. 가톨릭노동자 신문은 1933년 5월 1일 그 첫 호가 유니온광장에서 배부되었다(노동자 성요셉 축일에). 신문은 미국 전역에 있는 “환대의 집”에 중심을 두고 있는 운동의 도구가 되었다. 가톨릭 일꾼공동체들 안에서 전통적인 “애덕의 활동”(굶주린 이를 먹이고, 벌거벗은 이를 입히며, 집 없는 이에게 잘 곳을 주는)은 평화와 사회정의 활동과 결합되고 있다.

 

그래서 데이는 어린 시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었다. 사회질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성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 질문은 도로시 데이 자신의 삶이라는 대답을 요구했다. 가난한 이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섬기며, 불의와 싸우고 평화적인 대안을 창조하기 위한 작은 방법들을 시도하면서 그는 자신의 성소의 의미를 발견했다. 새로운 거룩함의 모형을 개발함으로써 데이는 행복에 이르는 자신의 길을 깨달았다.

 

 

더 깊이 들어가기

 

성소의 징표들은 보통 평범한 모습 속에 숨겨져 있다. 우리의 고유한 선물과 탈렌트 안에 우리 마음의 내적인 염원, 우리를 가장 온전히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감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성소를 분별해내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일생에 걸치는 도전이 여전히 남아 있다. 더 깊이 들어가고, 끝까지 충실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진로를 조정하는 도전이다. 참으로 많은 성인들은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가 표현했던 것처럼, “부르심 안의 부르심”을 발견하였다.

 

더 깊게 들어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또 다른 말은 “회심”이다. 우리는 보통 이 말을 죄로부터 돌아서는 의미로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성인들의 이야기에서 문제가 되는 회심은 자주 그들의 진정한 부르심을 찾는 것이다. 그런 회심이 일어나면, 수많은 무질서로부터 즐거움이 가득찬 해결책으로의 전환이 그들에게 주어진다. 삶이 평범함의 짐으로 무거웠지만, 이제는 타오르는 불길로 밝게 빛난다. 이미 종교적 서원으로 봉헌되었지만 갑자기 특정한 부르심의 발견으로 그들의 삶과 일은 새로운 모습, 그 전에 없었던 생기와 에너지를 갖게된다. 이러한 성소에 대한 깨달음이, “천국으로 가는 나의 길”의 발견이, 지루하고 귀찮으며 반발조차 일으키는 일을 행복의 길로 변화시킨다. 한 서양의 언론인이 마더 데레사가 죽어 가는 이를 보살피는 것을 보면서 “나라면 백만 달러를 줘도 할 수 없을 겁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 때,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미에 대한 추구

 

유대인 심리학자이며, 대학살의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은 자신이 나치수용소에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예리한 연구결과를 글로 썼다. 「인간의 의미추구」에서 그는 자신이 의미요법이라고 명칭한 치료법의 유래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의미는 일, 가치, 결단, 투신에서 발견되지만, 의미가 없다면 인간의 정신은 말라죽는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는 삶의 의미에 대하여 묻기를 그쳐야 했으며, 대신 매일 순간순간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자신에 대하여 생각했다. 우리의 대답은 반드시 토론이나 묵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처신에 있어야 한다. 삶이란 궁극적으로 문제들에 올바른 대답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리고 각자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는 과제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미의 문제는 수용소라는 극한적인 조건 속에서는 특별한 긴급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결국 삶의 과제와 도전에 대답해야 하는 요구는 항상 우리 모두 앞에 놓여있다. 이러한 과제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톨스토이의 이야기에 나오는 지루하고 불행한 저녁손님들, 그들 자신의 대화에 갇히는 죄수처럼 된다. 반대로 도전을 받아들이고 일어서는 사람들은 공포스러운 상황 가운데에서조차 지속되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1980년 12월 2일 이타 포드라는 젊은 메리놀수녀와 다른 북아메리카 교회여성들이 엘살바도르의 안보원에게 납치, 살해되었다. 9개월 동안 포드는 내란과 정부지원의 테러에 갇힌 피난민들을 위하여 일하는 선교사 팀의 일원이었다. 엘살바도르에서 가난한 이들 편에 서는 것은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말했듯이, 가난한 이들과 똑같은 운명을 지는 것이다, 즉 “사라지고, 고문당하며, 갇히고, 죽은 채로 발견되는 것”이다. 이타 포드와 동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해 초여름, 포드는 부르클린의 고등학생인 조카 제니퍼에게 열여섯 살 생일을 축하하며 편지를 보냈다:

 

지금 엘살바도르의 청년들은 매우 어려운 때를 겪고 있다. 많은 이상주의와 결단이 여기저기에서 탄압을 받는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가에 대하여 생각할 때, 복잡한 이유들이 얽혀있지만, 분명하고 단순한 가닥들이 보이기도 한다. 하나는 사람들이 살고, 희생하고, 투쟁하며, 죽기 조차할 수 있는 의미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6년을 살든, 60이나 90년을 살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은 목적을 주고 있다. 많은 의미에서 이곳 사람들은 행운의 사람들이다.

부르클린은 엘살바도르의 삶의 드라마에 끼어 들지 않고 있지만, 어디에 있든, 또 나이가 얼마이든 간에 어떤 진실한 것은 있다. 나는 네가 이곳에 와서 무엇이 너의 삶에 깊은 의미를 주는지, 너에게 활력을 주고 열중하게 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해주는 그 무엇을 찾기 바란다.

 

그 누가 삶에 의미를 주는 것, 우리를 열광케 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하는 것을 찾고 싶지 않겠는가? 톨스토이에게 있어 행복의 열쇠는 이론적으로는 단순하나, 실천에 있어서는 붙잡기 어렵다. 그것은 일탈, 노동, 그리고 연대이며 이 모두를 사랑의 정신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거룩함의 의미는 꽤 단순하다: “당신이 해야 할 다음 일을 하는 것, 당신의 온 마음을 다해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하면서 기쁨을 발견하는 것.”

 

성인들은 노동에 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한편으로 그들은 삶에서 우리자신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분명하든, 희미하든, 중요한 것은 다만 그 길이 우리자신의 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수행하는 모든 특정한 일이나 과제 속에 숨겨져 있는 거룩함을 찾겠다는 더 겸손한 훈련에 대해 가르쳐 준다. 예수회 사제이며, 신비가이고, 과학자였던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글을 보면, “그분 안에서 가장 살아있고 가장 육화 되어있는 모든 것 안에 계시는 하느님은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듣고 냄새맡으며 맛보고 있는 이 세계로부터 격리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행동의 매순간, 순간적인 노동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그분이 내 펜의 끝, 내 삽, 내 바늘의 끝에 계시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한 획을, 한 줄을, 한 땀을 열심히 뜨면서 마지막 완성까지 계속한다면, 나의 가장 깊은 의지가 향하는 그 마지막 지점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성인들의 행복안내의 이 지점에 노동이 자리잡게 된다. 그러한 정신으로 살고 노동하는 것은 이타 포드처럼 자신들의 길을 발견한 행운의 사람들 중 하나가 되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행운의 사람들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래서 마지막에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 “여기 제가 있습니다” 라고 대답할 용기도 발견한 사람들이다.

 

고요히 머무는 것을 배우기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인줄 알아라. 

 

-시편 46,10

 

 

우리는 하느님을 시끄럽거나 격동이 칠 때 발견할 수 없다.

자연, 나무, 꽃, 그리고 잔디는 침묵 속에서 자란다.

별, 달, 그리고 태양은 침묵 속에서 움직인다.

 

-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

 

 

오지의 부탄왕국은 히말라야의 그림자 아래 조용하게 앉아있다. 수년 전 부탄의 왕은 많은 관심을 끈 이상한 발표를 하였다. 그는 그의 작은 부탄의 국가정책이 국민 총 생산의 증가가 아니라, 국민 총 행복의 증가라고 선포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들과 언론 관계자들은 이 행복한 왕국의 비밀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곳에 몰려들었다.

 

방문객들은 그곳의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가난하지만, 참으로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들고 돌아갔다. 부탄은 소위 현대기술문명의 “혜택”이 많이 부족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황폐되지 않았다. 어떤 기준에서 보면, 오히려 부러울 만큼 풍요로움을 즐기고 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경제전문가들이 거의 상품가치가 없다고 판정하는 상품이지만 “국민 총 행복”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요인인 시간을 그곳 사람들이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부탄의 주민들이 마술로 뉴욕 맨하탄에 이주한다면 무엇에 가장 관심을 가질까 궁금하다. 아마도 휴대폰을 들고 말하면서, 군중이 가득한 거리를 볼일을 보러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문화의 가장 전형적인 특색일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현상은 “시간이 돈”이라는 규율을 말해준다. 어떤 순간도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두 세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전달매체의 놀라운 발달로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대화할 때나 교회에 앉아 있을 때, 혹은 잠을 잘 때에도 항상 끊임없이 대기중이다. 전화회사들은 이제 “우리 모두가 연결된다”고 외친다.

다른 한편 이 모든 “연결”은 현재의 순간만 빼고 다른 모든 곳에 있으려는 우리의 비참한 욕구를 반영한다.

 

우리에겐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도 우리는 시간을 무서워한다. 우리는 바쁜 일정이 주는 소모적 압력을 불평하지만, 자주 우리가 참으로 아쉬워하는 것은 더 많은 것을 하기 위한 시간이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긴 시간, 고독, 혹은 고요함은 공포스러울 수 있다.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일정을 없애면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까? 텔레비전을 틀거나 신문을 보거나 전화기를 들어 통화하고, 우리가 그 전에 경험했던 것 보다 더 우리를 소진시킬 어떤 여행을 계획한다.

 

물론 참다운 노동의 정신이 있는 것처럼, 참다운 여가를 즐기는 정신도 있다. 그러나 진짜로 우리를 부추기는 것이 조용히 있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라면,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행복을 위한 처방은 끊임없이 변화를 갈구하는 욕구를 채우는 것 그 이상이다. 만일 그런 의미의 “행복”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진실한 조건을 감추는 위장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성인들은 물론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많은 큰 일들을 했다. 그러한 그들의 행위는 고요함을 얼마나 잘 지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었다. 참으로 그들은 많은 시간을 기도와 관상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 고요함과 침잠 속에서 그들은 다른 모든 일과 행동을 분별해주는 평화를 발견했다.

 

조용한 장소는 점점 더 드물어지고 있다. 그러나 단지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내적인 소음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바깥이 조용해도 우리는 내적인 소리와 경고들, 해야할 일을 상기시켜주고, 잘못 처리한 일들,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상기시켜주는 안의 소리들로 가득차 있다. 이런 소리들은 끊임없이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여기 지금으로부터­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곳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으려고 하며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 소리들은 만일 우리가 다음 번 마감 때까지 해 치울 수 있다면, 적절한 신용장을 얻기만 한다면, 완벽한 일자리를 얻거나 안정권의 점수를 딸 수만 있다면 미래에 행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끊임없이 과거에 살거나 미래에 살 것을 준비한다면, 우리가 참으로 깨어 살게 될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산만함

 

우리세계는 산만함과 여흥의 기회를 끝없이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 다양함에 대한 굶주림은 근래의 현상이 아니다. 17세기의 철학자이며 과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은 이미 이 문제에 관해 날카로운 분석을 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때때로 사람들의 다양한 행위에 대하여 생각해 볼 때, 불행을 일으키는 유일한 이유는 그가 방에서 조용하게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파스칼은 시간을 보내는 세상의 방법들이 지닌 한계를 알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간파한다, “세상의 방법들이 실제로 행복을 가져다 주어서도 아니고, 사람들이 참다운 행복이란 도박에서 이길 돈을 갖거나 사냥해서 잡힌 토끼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아무도 행복을 그냥 선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불행한 조건에 대하여, 전쟁의 위험이나 생계의 부담에 대하여 생각하게 해 주는 단순하고도 평화스러운 삶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 방향을 바꾸게 하는 선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포획물보다 사냥을 더 좋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이 세상의 방법들에 끌리는 것은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 주기보다 우리의 불행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의 방법들은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불행을 앞질러 막아준다. 파스칼에 의하면, 그러한 산만스러움은 재물과 권력에 집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파스칼은 이렇게 외친다,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공허하고 비열한가!”

 

그러나 그는 언짢은 염세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연의 실체, 특히 수학의 원리로 드러나는 자연의 모습에 끊임없이 호기심을 보였다. 천재 신동으로 그는 기하학에 관한 책을 썼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계산기를 발명했다. 이밖에도 진공의 존재를 증명하고, 공기의 무게를 정하며, 파리의 공공교통체제를 처음으로 고안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파리시는 그를 지하철의 은인으로 존경한다.

 

그러나 어떤 시점에서 파스칼의 실제에 관한 이해는 극적으로 확대된다. 그는 그 날짜를 ­1654년 11월 23일, “밤 10시 30분 경부터 12시 30분 경”까지 라고­ 정확하게 적어 놓았다. 그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과 깊고도 신비스러운 만남을 경험했다. 그는 이때의 감동을 한 양피지 조각에 적었고 그것을 윗저고리 안쪽에 꿰매었으며, 죽는 날까지 간직하였다. 그는 8년 후 서른 아홉 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증언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었다, “확실함, 확실함,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기쁨, 평화, 예수그리스도의 하느님...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파스칼은 이 체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체험 이후로 그의 탁월한 능력을 원추와 미적분보다 신앙의 문제에 집중시켰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교를 열렬히 옹호하는 글을 쓰고, 당대의 회의적인 지식인들에게 도전했다. 그러나 그의 신앙에 관한 글, 역설적이게도 사후 1662년에 발간된 미완성의 글 「팡세」로, 파스칼은 가장 잘 알려지게 되었다.

 

원래 파스칼의 계획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교를 옹호하기보다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에 대한 증언과 인간마음의 신비에 대해 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계획을 세웠다. “1부: 하느님 없는 인간의 비참함, 2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인간의 행복”

 

하느님 없는 인간의 비참함? 파스칼이 마음에 두었던 청중은 예의바른 불가지론자들이었다. 그들은 과학에 열중하고 가장 최근의 지적인 유행을 선도하고 책들을 끼고 있으며, 또한 도박, 운동, 취미 등으로 쾌락을 즐겼던 사람들로서 자신들을 지상에서 비참한 사람들 측에 넣지 않는다. 그러나 파스칼은 이러한 상태를 논쟁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권태로움, 변덕, 불안”이 인간조건의 번지르르한 측면을 요약해 줄 수 있는 말이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파스칼은 기분전환 꺼리를 허기진 듯 갈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다:

 

우리는 절대로 현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를 회상한다. 우리는 마치도 미래가 너무 천천히 온다고 하면서 그것을 서둘러 오게 하려는 것처럼 미래를 기대한다. 혹은 마치 과거가 너무 빨리 날아간다고 생각하며 과거를 기억한다... 우리 각자의 생각을 살펴보자. 그러면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현재에 대하여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한다고 해도 현재가 우리의 미래계획에 어떤 도움을 준다고 할 때에만 바라볼 뿐이다. 현재는 결코 우리의 목적이 되지 못한다. 과거와 현재는 그저 우리의 수단일 따름이고, 미래만이 우리의 목표가 된다. 이처럼 우리는 결코 실제로 살아있지 못하고 살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항상 행복해 지려고 계획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대로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어거스틴 처럼 파스칼도 인간존재가 행복에의 욕구와 그것을 찾을 줄 모르는 선천적인 혼동사이에서 찢겨진 존재라고 보았다. 우리의 비참함에 있어 가장 심각한 징후는 조용히 있을 수 없는, 현재에 존재할 수 없는 무능력이다. 대신 우리는 영원히 이것저것 우리를 산만하게 만드는 것들을 추구한다. “만일 사람이 행복하려면 성인들과 하느님처럼 덜 산만하게 되는 만큼 더 행복할 것이다.”

 

파스칼의 한탄을 알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다. 오늘날 이러한 산만스러움과 기분전환의 꺼리들은 더 수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17세기 불란서보다 더 복잡해지고 있다. 단추 하나만 누르면 산만함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컴퓨터, 인터넷, CD, DVD, 가족오락체제 등, 이 모든 것들은 동시다발적으로 편재하고 있으며, 모두 고독과 침묵의 관점에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그러나 침묵에 대하여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우리 방에 조용히 앉아있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아마도 우리를 걱정하게 하는 것은 침묵 그 자체보다, 오직 우리 자신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밤에 홀로 미치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은 내적인 삶이 양성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독은 확실히 “지적인 삶”, 즉 학식을 배우는 역량과 같은 것이 아니다. 고독은 존재의 핵심에 머무는 문제이며, 사막의 교부들은 그 핵심을 마음, 혹은 영혼이라고 불렀다. 바쁜 상업문화에서는 그와 대조적으로 모든 것이 우리로 하여금 내적인 삶을 비켜나 표면에 살도록 부추기고, 소비, 기분전환, 최근의 화제 꺼리, 혹은 다음의 큰 전율을 재빨리 정함으로써 우리의 불안한 갈증을 만족시키도록 몰고 간다.

 

이처럼 파스칼의 “변덕, 권태, 불안”이란 표현이 우리시대의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런 것들이 인간 삶의 총체라면 행복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헛수고이다. 그러나 파스칼의 구도에서는 비참함이 마지막 말이 아니다. 그는 인간존재의 비참함은 추방된 영장의 불행으로, 그에게 참다운 행복의 기억은 공허한 그림자처럼 맴돌며 어슬렁거릴 뿐이라고 한다. 어거스틴처럼 파스칼도, “하느님 홀로 인간의 참된 선이다. 그리고 인간이 하느님을 버렸는데도 자연의 아무 것도 그 하느님의 자리를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별, 하늘, 땅, 식물 등등… 참다운 선을 잃어버렸으므로 사람은 아무 것에서도, 심지어 자신의 파멸 속에서도 선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빠져나갈 길은 있다. 파스칼에게 그리스도교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딜레마(창조와 추락에 관한 그리스도교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위대함과 비참함의 혼합)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힘과 두 번째로, 문제의 해결책에 대한 신뢰도에 있다. 그는 우리의 무질서의 심연과 하느님 사랑의 깊은 심연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참다운 본성, 우리의 진정한 집에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우주는 더 이상 우리가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고 있는 차갑고 무심한 방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 신비에 머물면서 우리는 두려움없이 우리의 방에 앉아있을 수 있으며, 우리가 결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인들과 함께 참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홀로 있기 위한 더 나은 길

 

최근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선불교 등 동방의 종교적 실천방법에서 영감을 받고 있으며, 그것이 각자의 신앙과 아무런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선불교의 특징은 조용하게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훈련이 매우 요구된다. 선수행자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서 그들의 호흡에 주의하며, 마음의 집중을 지향한다. 마음의 집중이란 현재에 충만하게 살아있는 깨우침, 자각을 뜻한다.

 

고대 불교경전인 “홀로 있기 위한 더 나은 길을 익히기”는 붇다와 테라라는 스님사이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테라로부터 삶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붇다님은 그에게 “홀로 있는 더 나은 길”을 가르친다. 그것은 “과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래가 아직 오지 않았으며,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현재의 순간에 편안히 머무는 길이다. 사람이 이렇게 살아갈 때, 더 이상 마음 속에 주저함이 없다. 사람은 모든 불안과 초조, 회한을 버리며, 모든 욕망의 굴레를 놓아버리고, 그를 자유롭지 못하게 방해하는 족쇄들을 끊어버리게 된다.”

 

이 경전의 의미는 단순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은 아무 의미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홀로 있어도 갈등을 일으키는 생각들과 욕구들에 의해 동요할 때는 더욱 그렇다. 신체적으로 조용하게 앉아있는 행위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오려면, 그에 상응하는 내적인 고요함이나 정적이 함께 있어야 한다.

 

초기 사막의 은수자들도 이와 똑같은 주제를 다루었다. 평화와 고요를 찾아 사막으로 갔던 사람들은 그곳에서 “악마들”의 군대로부터 창피를 당했을 뿐이다. 모든 분노, 참지 못함, 그리고 질투, 시기가 세상에서 피해간 그들을 동행했다. 동방종교와 만나기 훨씬 전에 이 그리스도교의 영적 탐구자들은 그들 자신의 “홀로 있기 위한 더 나은 길”을 고안했다. 사막의 교부들은 거룩한 성귀나 예수의 이름을 되풀이 하면서 마음을 집중한 기도의 실천을 개발했다. 이러한 실천은 내적인 기도와 하느님 안의 휴식을 구하는 영적인 훈련으로서 “정적, 침잠”을 목적으로 삼았다.

 

침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항상 기도하라”는 바오로의 권고를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항상 기도하라”는 문자 그대로 번역하자면, “와서 쉬어라”는 의미였다. 예수의 이름이나 예수 기도를 (“주 예수 그리스도님,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때때로 호흡의 리듬과 맞추기도 하면서 수도승들은 영적인 실제에 최고로 집중하는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한 상태에 이르면, 성령께서 그들을 통하여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아토산의 그리스 수도승인 그레고리오 팔라마스 성인(1359년 사망)은 이 방법의 가장 유명한 대가인데, 그리스도인은 이 기도를 통하여 거룩한 본성을 붙들게 되고, 바위 위에 마음대로 움직이는 로프처럼 자유롭게 세상적인 집착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이러한 침잠(정적)의 영성에 관한 주요자료들이 수세기 동안 수집되어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다. 이 책의 현대판에 의하면 그것은 “깨우침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고, 주의와 의식을 개발하는 것이며, 거룩함의 표지인 마음집중의 상태를 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700년대에 그리스어로 처음 출판되었고, 다음세기 초에 슬라브어로 된 책이 모스코바에서 나왔다. 이 책은 러시아의 현대 영성 고전서 중의 하나인 「순례자의 길」에 영감을 주었다.

 

「순례자의 길」은 1884년 모스코바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는데, 19세기 중반에 러시아 전역과 시베리아를 걸어서 횡단하는 환상적인 여정을 수행했던 익명의 농민 출신 순례자의 체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을 한 거룩한 수도승으로부터 소개받았다. 그는 수도승에게 바오로사도가 끊임없는 기도라고 말한 것의 설명을 요청하였다. 수도승은 그에게 하루 3천 번씩 예수 기도를 되풀이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라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수 주간이 지난 후 순례자는 6천 번씩 하게 되고, 이어 하루에 만 이천번씩 하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의 온 갈망은 한가지에만 집중되었다. 예수의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기도를 계속하자마자 나는 기쁨과 해방으로 가득 찼다. 마치 나의 입술과 혀가 나로부터 어떤 자극도 받지 않고, 전적으로 그것들 스스로 기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하루를 큰 만족 속에서 지낸다... 마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기도는 그가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한결같은 친구가 되었고, 그는 고독의 길을 계속해 갔다. 점차 그는 기도가 그의 입술에서 마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느꼈다. 이 시점에서 그는 더 이상 말을 되풀이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제 기도는 그의 호흡, 그리고 그의 가슴의 박동과 일치되었다.

 

삶의 가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순례자는 그의 끊임없는 “마음의 기도”를 통해서 세상을 영광의 빛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꼈을 뿐만 아니라, “바깥세계 전체도 매력과 즐거움이 넘치게 보였다. 모든 것이 나를 사랑으로 이끌어 하느님, 사람들, 식물들, 동물들에게 감사했다. 나는 그들 모두를 마치 피붙이처럼 보게 되었고, 그들 모두에게서 하느님의 이름이 지닌 마술적인 힘을 발견했다.”

 

예수 기도를 되풀이하면서 얻게되는 내적인 침묵은 세상과 그 움직임으로부터 물러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이 더 투명하게 보인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모든 것은 그에게 하느님을 말해준다. 모든 얼굴은 그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반영해 준다. 결과는 커다란 행복이고, 그는 열정을 다해 만나는 모든 사람과 그 행복을 나눈다.

 

 

현재의 순간

 

선의 대가인 베트남의 스님 티크 나트 한은 행복과 현재순간에 현존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주시한다. “현재로 돌아가는 것은 생명과 만나는 일이다. 생명은 오직 현재의 순간에서 발견될 수 있다. 왜냐하면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처됨, 해방, 깨달음, 평화, 기쁨, 그리고 행복은 오직 현재의 순간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생명과의 해후는 현재의 순간에 일어난다. 우리의 약속의 장소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순간에 대한 불교의 강조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그리스도교의 희망과 대조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불란서의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까뮈 같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가 “내세의 삶”에 대한 선입견으로 현재에 대한 우리의 윤리적 참여 능력을 약화시킨다고 비난하였다. 의심할 바 없이, 거룩함을 추구하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비난을 받아 마땅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위대한 성인들과 영적인 대가들 중에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을 가졌으나, 현재를 무시하는 것과 달리 매순간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느끼며 투신한다.

 

그런 사람들 중에 18세기 불란서의 예수회 회원이었던 쟝-삐에르 드 꼬사드가 있다. 그의 명성은 1751년 그가 죽은 후 100년 만에 발간된 책 「거룩한 섭리에의 의탁」에서 왔다. 로렌조 수사의 회상록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실천」을 성찰하면서 꼬사드는 매일의 과제와 의무를 수행하는 가운데에서 거룩함에 이르는 길을 요약했다. 꼬사드에 의하면 모든 매순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이므로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과 양보로 우리에게 혐오와 권태를 일으키는 것을 견딜 때” 우리는 거룩함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순간”이란 말은 꼬사드의 저서에서 중심이다. 심지어 “현재 순간의 성사”라고 까지 말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성찬례 안에서 빵의 형상아래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의 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충실한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느님의 뜻이 비록 숨겨져 있지만 참으로 현존하고 있음이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성찬례는 그냥 평범하고 일상적인 예식에 불과할 것이다.

 

한편으로 꼬사드의 영성은 노동과 다른 행위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그의 영성은 우리를 침잠과 깨어있음으로 초대한다. 꼬사드는 우리가 삶의 매순간을 하느님의 뜻이 그 뒤에서 우리의 식별을 기다리고 있는 어떤 베일이나 그림자로 생각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러한 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 실존의 거룩한 심연에 깨어 있는 것이다. 현재의 순간에 하느님이 보내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것이 바로 너무나 작아서 사람들이 거의 알아보지 못하거나, 추수하지 못하는 겨자씨이다. 찾기엔 너무나 잘 숨겨져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이 보물을 찾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런 것은 없다. 이 보물은 어느 곳에나 있다. 보물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

 

삶은 불가피하게 지루한 상황들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교통혼잡 때문에 정지되어 있다던가, 줄을 서서 기다린다든가 등등. 그러나 이런 일들이 우리의 영적인 실천을 중단시키거나, 산만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의 뜻은 편안하고 기쁠 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지루한 순간 속에도 있으며, 우리를 더 큰 인내와 겸손, 연민으로 이끌고 있는지 모른다.

 

상황과 그 적절한 응답이 어떻든지 간에, 꼬사드는 거룩함의 길이 하느님의 뜻에 대한 주의와 복종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우리 삶에서 보여지는 모든 혼란과 무질서에도 불구하고 그런 정신으로 살려고 노력할 때에 “우리는 거룩한 지혜의 모든 사랑스러움과 완전함을 보게될 것이다. 신앙은 지상을 낙원으로 바꾼다. 신앙에 의하여 우리의 마음은 천국에 가까이 있다는 즐거움으로 고양된다. 모든 순간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드러내준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의 의미라고 꼬사드는 주장한다. 신앙은 “장막을 옆으로 치우고, 우리가 영원한 진리를 볼 수 있게 해준다.” 만일 우리가 그런 빛으로 살지 못한다면 “행복도, 거룩함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신심행위를 열심히 수행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정주

 

서구의 수도전통은 나름대로 고요에 접근하는 방법을 지녀왔다. 그것은 말 그대로 신체를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 뿌리에 닿아있다는 의미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가난, 정결, 순명의 서원에 더하여 베네딕또 성인은 정주, 결단의 서원을 더 첨가했는데, 원칙적으로 자신의 본래 수도원에 그대로 남는 것을 의미한다. 베네딕또는 이 수도원에서 저 수도원으로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소위 “순회수도승”들을 꾸짖으면서 그들이 절대로 결단을 하지 않으며, “그들 자신의 뜻과 취향에 노예가 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한 결단이 없다면, 상황이 악화되거나 지루할 때 더 마음에 맞는 초원을 찾아 나서는 유혹에 걸려 넘어진다는 것이다.

 

결단을 싫어하는 모습은 비단 순회수도승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에 대한 결단을 끝없이 연기하기도 한다. 그들은 배우자를 결정하는 것이 다른 선택들을 미리 막아버리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만일 오늘 발견하는 이 사람과 결혼한다면, 내일 혹은 내년에 더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쩔까? 한편 결혼을 결정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항상 다른 선택의 문을 열어놓고 결단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상황이 어려워지면 도피구를 찾기가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인간본성의 불완전함을 볼 때, 실제에 있어 “완전한 배우자”나 “완전한 공동체”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어떤 곳에, 저 밖의 어느 곳에 우리를 위한 더 나은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는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는 진짜로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삶의 바닥에 닿아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미끄러지듯 도망치며 살게될 때, 우리는 인간존재로서의 충만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끝없이 무지개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행복에만 몰두할 때에 우리는 앞에 다가온 행복을 잊기 쉬울 것이다.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항상 미래에 대해 행복을 꿈꾸고 있으므로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순간인 현재에 결코 행복할 수가 없게 된다.

 

사막의 수도승들은 이렇게 쉴 수 없는 음울함을 나태, 무감각이라고 불렀다. 지금 우리는 그런 모습을 고요하게 있을 수 없는 무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막의 교부는 이 나태함에 대하여 이렇게 관찰한다, “나태함이 행복하지 않은 마음을 사로잡으면, 자기가 살고 있는 자리를 혐오하게 되고, 방에 머물러 있기가 지루해지며, 함께 사는 형제들을 비난하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우리는 다른 곳에 멀리 떨어져 있는 수도원들을 칭송하고, 그들이 수도생활의 진전에 더 도움이 되고, 영혼의 건강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토마스 머튼은 이 “한낮의 악마”에 사로잡혀 고통을 겪었다고 일기에 분명히 밝히고 있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들어가 그곳이 “아메리카의 중심”이며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던 그가 후에 쓴 일기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수도원의 일상적인 운영에 화가 나고, 장상과의 갈등, 고독한 기도의 생활에 대한 자신의 염원을 질식시킬 것 같은 종교적 체제에 대한 두려움 등.

 

그래서 그는 더 “순수한” 수도회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로마에 청원하여 더 적막한 곳에 암자나 새로운 수도공동체 설립까지 꿈꾼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장상들에 의해 무산된다. 그 후 머튼은 자기가 살고있는 겟세마니 수도원 내의 작은 암자에서 살 수 있는 허락을 받고, 기도와 글쓰기에 더 좋은 조건 속에서 지내게 된다. 마침내 더 포용적인 장상의 허락으로 그는 수도원 바깥으로 여행할 수 있게 되고, 결국 1968년 방콕의 회의에 참석중 전기사고로 죽는다. 그때쯤 머튼은 자신의 성소와 정주서원에 관하여 평화를 되찾고 있었다. 겟세마니는 결국 그의 집이며, 거룩함을 추구하는 영역이었다. 그는 그곳이 그의 구원을 위한 자리였음을 확신하게 된다.

 

물론 정주서원은 베네딕도가 간략하게 표현한 것처럼 “태도의 변화”, 즉 성장과 영적인 성숙의 지속적인 과정이 일어날 때에만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자신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나 관계를 일생 끌어간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수도원의 정주는 수도회원들이 서로와 하느님께 대한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수도회 회원들이 각자의 깊숙한 마음을 깨닫거나 영혼의 성소와 삶의 상황을 깊게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에, 즉 보다 깊은 것을 추구하려는 결단과 합쳐질 때에 정주는 의미가 있고 영적인 가치를 갖게 된다.

 

사막의 교부들은 수도생활의 리듬과 절기에 관하여 탁월한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은 위안에 대한 경험이 달의 변화만큼이나 다양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결과 수도승들은 그들이 마음의 동요라고 부르는 현상에 대해 연민을 가졌다. 그들이 고안한 처방은 노동이며, 계속적인 기도나 쇄신된 훈련이었다. 에바그리우스 수도승은 특히 예리한 방법을 제시한다: “나태함의 악마와 만나게 될 때,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우리의 영혼을 두 갈래로 갈라놓아야 한다. 한 부분은 격려해야 할 부분이고, 또 다른 부분은 격려 받아야 할 부분이다.”

 

 

여린 소리

 

성인이란 하느님의 거룩함에 대해 맛을 들인 사람이다. 그의 마음은 사랑의 리듬에 조율되어 있다. 일상생활의 소음과 동요 가운데에서 그 리듬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듣기 위해서는 어떤 장소와 침묵, 그리고 시간이 요구된다.

 

많은 성인들은 우리들 대부분처럼 마감과 책임감 때문에 소진되어 그런 특정한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나름의 “내적인 성”을 만들었다. 시에나의 가타리나(중세 이태리의 신비가이며, 예언자였던)는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한 가족을 두고 이런 방법을 썼다. 아버지가 그를 집안에 가두고 하인처럼 부렸을 때, 가타리나는 “마음 속에 작은 기도방”을 짓고, 일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그곳으로 들어가 침묵의 기도를 했다. 바깥에서 보면 바쁜 집안 일에 정신이 없었지만, 그러는 동안 그의 참다운 삶은 자신의 비밀 방에서 피난처를 구한다. 이렇게 하여 일상의 과제와 의무들을 천국에 이르는 사다리로 변화시켰다고 가타리나는 후에 말하고 있다.

 

성서에 나오는 가장 신비한 이야기들 중의 하나인 열왕기Ⅰ서 19,11-12를 보면, 예언자 엘리야가 그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치며 동굴에 숨어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기다린다. “크고 강한 바람 한줄기가 일어 산을 흔들고, 야훼 앞에 있는 바위를 산산조각 내었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았다.” 이어 지진이 일어났으나, 또한 큰불이 일어났으나, 야훼는 거기에 계시지 않았다. 그러나 불길이 지나간 다음 엘리야는 “한 조용하고 여린 소리”를 듣는다.

 

하느님의 소리가 지진도, 큰불도, 혹은 강한 바람 속에도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분별이 필요하다. 그러나 작고 조용한 소리 속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분별 그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 즉 작은 침묵이 필요한 것이다.

 

보통 우리는 우리자신을 이 침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세상에 의지한다. 무엇보다도 세상의 소음과 수많은 기분전환의 기회들은 우리 안의 내적인 공간에 있는 공포스러운 침묵을 피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그런 기회들을 붙잡으면서 우리는 값을 치른다: 끝없는 변화, 권태, 불안의 댓가를 지불해야한다. 그것과 대조적으로 성인들의 행복은 어느 정도의 내향성을 제안한다. 그것은 단순하게 말해 내적인 삶을 추구하는 역량이다. 표면에 빠져 살면서 어떻게 내적인 삶을 만들 수 있을까?

 

기도의 위대한 스승들은 영적인 삶을 대양에 비교했다. 표면의 삶은 바람과 파도가 심하다. 그러나 표면 아래에는 아무리 폭풍이 몰아쳐도 고요한 물이 있을 뿐이다. 행복의 추구는 이 깊은 심연에 닻을 내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 요한Ⅰ서 4,7-8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거나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 Ⅰ고린토 13,4-7

 

성서는 인간존재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고 가르쳐준다. 이것은 우리가 사랑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 사랑의 모상을 반영할 때까지 우리는 참다운 우리자신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사랑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우리들은 일생동안 몇 사람을 깊게 사랑할 수 있으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나 배우자, 아이들, 혹은 친구들이 그 소수의 사람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중문화는 어디에선가 “우리 삶의 사랑”이 될 한 사람의 존재를 찾는 것과 이러한 사랑들을 비교해 보도록 만든다. 그러나 성인들에 의하면, 사랑에 관한 더 큰 잣대가 있다.

 

사랑하고 사랑 받고자 하는 갈망보다 우리 존재에 더 깊숙이 새겨진 것은 없다. 노래나 시, 심지어 인사카드에도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다만 사랑뿐”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성인들은 사랑을 단지 “우리 마음의 갈망”이 만족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를 성장과 회심의 한결같은 과정으로 이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우리갈망의 만족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하는 역량이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테가 표현하듯이 사랑과 일치되어 “태양과 별들을 움직여야 한다.”

 

지상에서 우리의 과제는 사랑의 빛을 발산하는 것이다. 이것을 성취하면 우리의 삶이 길든 짧든, 우리는 우리존재의 목적을 실현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성인들의 행복을 달성하는 것이다. 14세기 영국의 신비가인 리챠드 롤은 성인들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 속에서 환희를 맛 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사랑이 순수하고 완전하다면, 우리의 마음이 사랑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이 된다.”

 

 

사랑 안에서

 

사랑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시인들은 항상 사랑에 대한 찬미노래를 부른다. 사랑이 우리를 더 생기있게 해주고 다른 이의 선에 너무나 몰두하여 모든 분리감을 잃어버리게 하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참도록” 해준다고 묘사하며 사랑의 힘을 알려준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지루하고 회색 빛으로 보이던 것이 색깔을 입는다. 삶은 목적과 약속으로 가득 찬다. 닫혀있던 것이 갑자기 열린다.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우리의 즐거움과 슬픔을 나누는 사람, 우리마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선물에 알맞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사랑에 관하여 우리는 성인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성인들이란 보통사람들의 영역을 넘어서는 어떤 영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가정을 갖고 있을 때에는 별로 배울 것이 없다.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는 그의 짧은 생애의 사명이 단지 “사랑이 사랑 받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추상적이지만 야심있는 말이다.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사랑과 공감할 수 있는 동반적 대상 사이에서 (개나 고양이),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것을 택한다. 그렇다면 성인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의미는 단순히 천상적인 어떤 것, “실제적인 것”의 냉혹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인가?

 

성인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다른 이들, 다른 장소나 다른 것들의 사랑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들은 사랑이 열쇠라고 믿는다. 그러나 각각의 문이 열릴 때마다, 거기에는 더 넓은 것으로 이끄는 또 다른 문이 있다.

 

성인들은 그림자와 도피의 세계에 정착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더 커져가고, 더 깊어져 가는 인간성의 원천에 도달하는 여정을 중단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승 속의 모든 사랑, 모든 아름다움, 모든 행복이 “실제인 어떤 것”의 모형이며, 예조라고 믿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어거스틴 성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물질적 아름다움이나, 현세적 질서의 아름다움은 아니다. 우리 눈을 너무나 즐겁게 해주는 지상의 번쩍이는 빛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그분을 사랑할 때, 나는 어떤 빛, 어떤 소리, 어떤 향기, 어떤 음식, 어떤 포옹을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내면의 자아 속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나의 영혼이 공간에 제약받지 않는 빛 속에서 씻길 때, 결코 죽어 사라지지 않는 소리에 나의 영혼이 귀를 기울일 때, 바람에 날아가 버리지 않는 향기로 숨을 쉴 때, 절대로 먹어서 없어지지 않는 음식을 맛볼 때, 욕망의 성취에 의해 단절되지 않는 포옹에 영혼이 매달려 있을 때, 나는 내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셈이다. 이것이 나의 하느님을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모습이다.

 

사랑하기 위하여 성인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오직 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성인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자연적인 행복

 

도로시 데이는 그의 회상록인 「긴 외로움」에서 포스터라는 남자에 대한 사랑이야기와 그의 영적인 여정을 서두르도록 포스터가 했던 역할을 표현하고 있다. “내가 사랑했던 남자, 법적으로 결혼관계에 있었던 그 남자는 무정부주의자이고, 영국계통이었으며, 생물학자였다.” 그들은 1920년대 초기에 만났고, 곧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들의 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데이는 그들의 관계가 “법적인 결혼”이었다고 생각했다. 포스터는 “가족이라는 기관”에 대한 경멸을 결코 숨기지 않았으며, 그들의 관계가 단순히 “동지관계”라고 여겼다. 그러나 데이는 그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이러한 “자연적 행복”을 누리던 시기에 데이는 더 큰 행복을 상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포스터는 자연을 맹렬하게 사랑했고, 그래서 종교를 무시했으나, 데이는 이 자연적 행복으로부터 전혀 반대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모든 것들의 창조주”에게로 가고 있었다. 그는 산보하는 중에 기도하기 시작했고, 미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든 것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느님이 안 계실 수 있는가?” 그는 포스터에게 도전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거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결국 둘은 데이가 아이를 낳고 세례를 받게 하면서 갈라서고 말았다. 아마도 어거스틴의 경우처럼 도로시 데이의 “순전히” 인간적 사랑과 “더 고귀한” 종교적 염원사이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도로시 데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나는 남자와 여자간의 사랑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대립된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고 썼다.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갖게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대로 하느님을 닮게 만들어 졌으며, 그분과 함께 공동창조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데이는 “온전한 사랑, 육체적이며 영적인 사랑을 통하여”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것이 데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었다. “자연적 행복”을 경험하면서 그는 더 큰 행복에 대한 갈증이 더 커졌다. 포스터에 대한 사랑, 딸에 대한 사랑, 지구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 가난한 이들과 낙오된 이들에 대한 사랑이 모두 더 큰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져다 주었다. 이 모든 것은 피터 모린과 만난 수년 후에 가톨릭 일꾼공동체로 통합되었다.

 

어거스틴 성인은 삶을 “사랑에 이르는 길”이라고, 무엇이 우리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으며, 어떻게 적절히 사랑하는가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사랑 속에, 안락과 소유, 혹은 명성 따위에 의해 한정된 감옥 속에 살아가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한 사람이나, 몇 사람을 선택하여 벽을 쌓기까지 한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가족, 그들의 나라, 혹은 그들의 교회 주위에 울타리를 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문제는 우리를 더 깊이 초대하는 소리에 우리가 열려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랑이 지평선으로 있을 때 그리고 우리의 실존을 제한하지 않을 때, 모든 것들은 그들의 숨겨진 깊이를 드러내고, 우리를 더 앞으로 이끈다. 단지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 보잘 것 없고 초라한 것들까지도 무한한 것을 보여주는 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 우리의 이웃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두 가지 측면으로 대답한다. 첫 번째 측면은 하느님을 “온 마음과 온 정신, 그리고 힘과 영혼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첫째 측면은 즉시 이어 두 번째 계명과 연결된다. “첫 번째 계명에 못지 않은” 이것은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계명의 구체적인 예를 예수님은 사마리아사람의 이야기로 표현한다. 사마리아인들은 정통파 유대인들이 경멸하던 사람들이었다. 어느 한 사마리아사람이 길을 가다가 상처입고 벌거벗은 채 누워있는 나그네를 발견했을 때, 가던 여정을 멈추고 돌보아준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예를 우리는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이를 가지고 낳아 키우는 부모들을 보면서 타인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 지 볼 수 있다. 또한 열정적이며 보호적인 사랑으로 다른 이들의 필요에 응답한 부모이외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 몰로카이의 다미안 성인, 오스카 쉰들러 등 수많은 사례가 있다. 특히 오스카 쉰들러의 경우는 그가 보통기준에서 “성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이면서도 그런 사랑을 실천한 예다.

 

아마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기준은 우리가 결코 그 수위에 완전하게 도달할 수가 없으며 다만 노력해야 하는 하나의 지평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온 마음과 몸과 정신과 영혼을 다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준이 너무 높게 설정되었다 해도 예수님이 더 간단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내가 굶주렸을 때, 너희는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내가 나그네였을 때 너희는 나를 받아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 너희는 나를 찾아주었다”는 기준이다. 그러면 언제 우리가 주님에게 이런 일을 했단 말인가? 여기에서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사람의 비유에 숨겨진 의미를 드러낸다. 즉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을 했다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마태오 25,31-46).

 

성인들은 이 신비스러운 대칭에 내포된 의미에 따라 살아간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웃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난다고 믿었다. 길가의 벌거벗고 피 흘리는 사람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병든 사람들, 우리가 빵을 나누는 굶주린 이들, 우리가 짐을 가볍게 해줘야 하는 외로운 이들 속에 예수님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보면, 이러한 등식은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없게 보인다. 한편으론 넝마를 걸친 걸인이고, 또 다른 한편으론 하느님의 아들이라니. 그런데 양편을 공평하게 균형 잡아주는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이 부족하고, 한편으로 원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거지들이다. 마더 데레사가 썼던 것처럼, “하느님은 굶주린 이들, 병든 이들, 헐벗은 이들, 집 없는 이들과 그분 자신을 동일시했다. 굶주림은 단지 빵 뿐만 아니라 사랑, 보살핌에 대한 굶주림으로, 누군가에게 누군가가 되는 것이다. 헐벗음은 단지 입을 것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소수의 사람들만이 나누는 연민에 대한 헐벗음이다. 집 없음은 단지 돌로 만든 있을 곳에 대한 것만 아니라,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여정을 가든, 이웃들을 사랑하는 여정을 가든 궁극적으로 똑 같은 종말에 이르게 된다. 갚음을 바라거나, 계산하지 않고 줄 때마다 우리는 사랑의 빛을 반사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랑과 행복

 

그러나 그런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대답은 우리 각자가 알고 있는 사랑과 행복의 의미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대상을 붙잡고 계속 움켜쥐려는 소유적인 본능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런 사랑에서 오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할 것이며, 그렇게 사랑하는 대상을 잃게 될 경우 불행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떤 다른 사람의 마음도 참으로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랑에 근거하는 행복은 너무나 부서지기 쉽다.

 

그러나 성인들은 이런 사랑을 한 것이 아니다. 복음이 지닌 역설들 중에 하나는 우리가 버릴 때에 참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갚음에 대한 기대를 갖고 하는 사랑은 시장법칙에 불과하거나, 시몬 베이유가 말한 것처럼 중력의 법칙일 뿐이다. 참다운 사랑은 중력의 법칙을 거부한다. 참다운 사랑은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이 주는 것으로 표현된다.

 

행복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머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자신만을 추구하는 행복은 절대로 발견할 수 없다. 나눔에 의하여 소멸되는 행복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만큼 풍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만족에서 오는 행복은 가짜이며, 일시적이고, 항상 슬픔으로 끝난다. 그런 가짜 행복은 우리의 정신을 편협하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참다운 행복은 이타적인 사랑에서 발견된다. 이타적 사랑은 나눌수록 증가되는 사랑이다.”

 

사랑의 숨결이 없는 삶은 비참한 삶이다. 충분한 물이 없는 식물은 한동안 메마르게 살 수 있겠지만, 꽃을 피울 수는 없다. 우리의 삶도 사랑이 호흡하지 않는다면 이와 마찬가지이다. 또한 동시에 우리 각자의 중심에는 숨겨진 신원이 있다. 그것은 우리자신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잠들어 있으며, 마침내 입맞추어 깨어나게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입맞춤은 여러 가지 형태를 띈다. 프란치스꼬의 경우 그것은 나병환자의 입맞춤이었다. 안토니오 성인에게는 성서구절로서, 그를 새로 태어나게 만들었다. 사랑이 우리의 삶에 어떤 형태로 들어오든지 간에 그것은 우리를 보다 나은 자아가 되도록 초대한다. 더 용감해지고, 더 친절하며, 더 용서하고, 더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고, 더 변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게 만든다.

많은 성인들은 무화과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의 사랑의 눈길을 받았던 자캐오와 같은 경험을 했다. 그들은 하느님을 알게되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다. 이 사랑 안에서 그들은 새롭게 시작하고 불가능한 것들을 하며,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용기를 발견했다. 요한 복음사가가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도 사랑합니다”(Ⅰ요한 4,19)라고 썼듯이.

 

“지옥은 더 이상 사랑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죠르쥬 베르나노스는 그의 작품 「어떤 시골신부의 일기」에서 말한다. 그러나 “가장 밑바닥에 내려간 인간도 비록 그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그 안에 사랑하는 힘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베르나노스는 쓰고 있다. 이 사랑의 능력은 비록 상실되고, 잊혀질지라도 모든 인간존재의 고유한 핵심, 즉 영혼을 형성한다. “구원”의 의미에는 항상 이 보이지 않는 능력이 재발견되고 배양된다는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어떤 소중한 것을 잃었으나, 이제 다시 발견된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날 때, 또 다른 라자로가 다시 일어난다.

 

 

행동하는 사람

 

그리스도교의 신비가들은 하느님과 영혼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하여 사랑의 감정, 갈망, 불타는 열정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과 영혼의 관계란 “지상의 두 사람이 깊게 사랑해서 서로를 너무나 잘 이해하는 것과 같다. 눈길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는 것 같은 관계”라고 했다.

성인들은 감정에 대하여 무감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이 말과 감정 그 이상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배우자, 이웃, 적 등 누구를 사랑하든지 간에 사랑은 행동으로 표현될 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카라마죠프가의 형제들」에서 도스토예브스키는 죠시마 신부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사랑을 하는 경험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확신한다. 이웃을 적극적으로 끈질기게 사랑하려고 노력하라. 그러면 그런 사랑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와 우리 영혼의 불멸을 더 확신하게 될 것이다. 이웃을 완전히 이타적으로 사랑하게 되면, 다시 믿음을 회복하고 어떤 회의도 우리영혼 속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적극적인 사랑? 우리는 사랑에 대해 꿈꾸는 것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없다. 우리는 실제로 사랑함으로써 사랑하기를 배운다. 초기 사막교부들 중의 한 사람인 은수자 테오판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에게 겸손이나 사랑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것들이 없는 한 모든 영적인 것은 없다... 겸손은 겸손한 행위로써 얻어지고, 사랑은 사랑의 행위로써 얻어진다.” 매일 반복되는 사랑의 행위는 사랑의 습관을 만들어준다. 의식적인 노력으로 시작되는 것은 실습을 통하여 삶의 어떤 일정한 행동이 되어간다. 우리의 모습이 자비에 의해 빚어진 것처럼, 그것은 모든 상황과 모든 만남에 대한 우리의 응답을 형성시킨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마워하지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그 때에 우리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충고를 마음에 새겨보자: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을 심어 보라. 그러면 그 곳에서 사랑을 얻을 것이다.”

 

 

사랑의 기술

 

그래도 우리에게 사랑으로 되갚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자연스럽지 않고”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서 은총의 역할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은총은 큐피드의 화살과 같은 것이 아니다. 선택과 훈련이 역할을 해야한다. 에릭 프롬이 말한 것처럼,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 성인(1873~1897)은 불란서 노르만디 지방의 한 가르멜 수도원에서 짧은 생애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매우 탁월한 숙련공이었다. 어렸을 때에 이미 데레사는 성인이 되려고 결심했고, 그것을 위한 나름대로의 방법도 고안했다. 그는 그 방법을 “영적인 아이의 길”, 혹은 “작은 길”이라고 말했다. 이 길은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의탁의 태도에 기반을 둔 길로서, 일상생활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들, 만남들, 작은 모욕 등에 사랑으로 응답하려는 노력을 의미했다. 데레사는 이 길을 실천함으로써 삶의 일상사를 사랑의 용광로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모든 삶의 상황이 거룩함을 표현하기 위한 마당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행동과 의도의 아주 작은 영향력이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데레사는 자신을 하느님의 정원에 핀 “작은 꽃”이며, “아기 예수의 장난감”이라고 칭하길 좋아했다. 그는 강철같은 의지의 소유자였고, 성인이 되는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대충하여 달성될 수 있는 목표가 아니었다. 죽은 후 발간된 자서전, 「영혼의 일기」에서 데레사는 모든 성소에 대한 부르심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전사, 사제, 교회의 박사, 순교자 등등.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는 자신의 성소가 “사랑 그 자체”라고 믿었다. 이 사랑의 덕은 모든 성소를 하나도 빠짐없이 포용하는 덕이다. “나의 성소는 사랑입니다!”하고 그는 썼다.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나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이런 확신이 그에게 대가를 지불하게도 했지만, 한편으론 기쁨을 주었다. 거룩함에 이르는 “작은 길”은 데레사에게 공동생활에서 나타나는 모든 일상적인 콕콕 찌르는 아픔들까지 받아들이는 길이 되었다. 동료들을 판단하고 비난하려는 충동을 절제해야 하는 모든 일상의 기회들은 데레사의 인내와 용서를 더욱 확장시켜 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수녀원 안에 적은 없다. 그러나 자연히 어떤 수녀는 좋아하게 되고, 또 다른 수녀는 마주칠 기회를 피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피하고 싶은 수녀를 사랑해야 하고,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드는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성서말씀을 인용한다, “너희들이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사랑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죄인들도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한다.”

 

데레사는 공동체생활의 일상적인 괴로움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악성폐결핵으로 마지막 수개월 동안 몸과 정신이 큰 고통 속에서 단련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방법을 끝까지 고수했고, 그러한 충실함 속에서 마지막 승리를 증언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어느 날 수녀 하나가 데레사에게 영원한 행복에 대한 책을 읽어 주고 있을 때, 그는 갑자기 이렇게 외쳤다: “나를 끌어당기는 것은 영원한 행복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이 나를 사로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상에 다시 돌아와 하느님의 사랑이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임박하면서 그는 말했다, “나의 사명은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듯이, 영혼들이 좋으신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이며, 나의 작은 길을 영혼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나의 이런 갈망이 채워진다면, 세상종말까지 이 지상에서 나의 천국을 지낼 것입니다. 그래요, 나는 나의 천국을 지상에 선한 일을 하면서 보낼 것입니다.

 

데레사는 겨우 24세였다. 그렇지만 그의 메시지는 세계에 엄청난 호응을 일으켰다. 그리고 시성된 후, 오늘날 가장 인기있는 성인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의 “작은 길”은 모든 사람들에게 와 닿았다. 위대한 일을 하도록 불리운 사람은 소수이다. 그러나 데레사가 표현하듯이,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해야 하는 모든 상황에 대한 응답과 성인들과 순교자들이 증언했던 “위대한” 응답들 사이에는 어떤 연결의 원칙이 있다. 데레사에 의하면 사랑의 정신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영웅이 되는 순간이며, 행복과 거룩함으로 가는 길에서 한 걸음씩 더 내딛는 행동이다.

 

 

사랑하기를 선택하기

 

데레사가 죽던 해, 1897년에 태어난 도로시 데이는 “소화”와 별로 닮은 점이 없다. 실제로 도로시 데이는 데레사를 처음 알았을 때 호의를 가지지 않았다. 1928년 고백신부에게서 데레사의 자서전을 받았을때,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말했다, “열여덟 살에 엄격한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하면서 약을 먹거나 식사를 할 때, 추위와 더위를 견디고, 수녀원 안의 악의 있는 동료들을 참아내는 일이 영웅적인 애덕을 실천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느꼈다니, 도대체 이 성인은 어떤 성인이었는가?” 개혁자 아빌라의 대 데레사나 쟌다크 같은 성녀에게 도로시 데이는 더 이끌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데이는 소화 데레사를 좋아하는 성인으로 삼았고, 그에 대한 책을 쓰기도 하고, “작은 길”의 영성에 대해 표현하기도 했다. 데이는 소화 데레사의 가르침에서 사회적 의미를 파악한 몇 안되는 사람이 되었다. “작은 것들의 중요성을 우리는 무시한다. 작은 것들을 위한 항의와 입장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성인이 되도록 불리었고, 거룩함이란 사랑의 실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라고 데이는 주장한다.

 

데레사의 “사랑의 기술”이 지닌 실천적인 지혜는 도로시 데이에게 있어서 “무시되고 상처받은 이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생활로 광범위하게 확인되었다. 가톨릭일꾼운동은 아직도 어떤 규칙이나 심사규정을 갖고 있지 않다. 모두가 환영되고 받아들여진다. 결과는 도스토예브스키의 소설에서 보이는 것처럼, 온갖 사람들의 집합체로 나타난다. 순례자들, 학자들, 그리고 “거룩한 바보들”, 젊은이들과 나이든 사람들, 노동자들, 부랑자들, 미친 사람들, 하층사람들, 쓸모 없는 사람들이 모인다. 사랑만이 그런 집구석을 유지시킬 수 있다.

 

또한 데이는 이런 집에서 나타나는 긴장과 갈등, 어려움을 모르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짐은 너무 무겁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고, 내 사랑은 너무나 작다. 어떤 폭력까지 느낀다. 내 마음 속엔 사랑이 없고, 아무것도 그들에게 줄 것이 없다. 그래도 마치 사랑이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고 아름다운 일은 그런 가장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길 원한다면, 곧 당신은 사랑하게 된다. 이 미치광이 노인을 사랑하길 원한다면, 언젠가 당신은 그렇게 사랑하게 된다.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가에 달린 것이다.” 도로시 데이가 분명히 사랑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그가 매우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가톨릭일꾼운동의 무정부적인 기능은 전형적인 수도원의 체제와 너무나 다르게 보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비슷하다. 즉 일꾼운동에 모여든 사람들 하나 하나가 “애덕의 학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공동체로 산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협력과 이해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 반대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소화 데레사의 생각을 다시 살펴보자. 우리는 한 식탁에 앉아 소리내어 먹으면서 신경을 거슬리는 사람을 참는 것보다 추상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다. 이처럼 일상의 작은 일을 하며 치러야 할 단련이 우리의 사랑하는 능력을 정제시켜 준다. 우리는 용서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 비로소 용서를 배우게 되고, 우리의 인내가 불가피하게 시험될 때에 인내를 배우기 때문이다.

 

토마스 머튼은 수도공동체를 “우리가 행복하게 되는 길을 배우는 학교”라고 불렀다. 이것은 수도원이 소위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머튼에 의하면, 수도공동체에서 우리는 우리의 행복이 “하느님의 행복을 나누는데” 있다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아니면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바보들을 쫓아버리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길이라고 믿기 쉽다.

 

이런 관점은 가족에 관해서도 사실이다. 가족은 우리가 선택해서 만드는 공동체가 아니다. 때때로 가족은 자연적인 사랑과 지지의 장소이다. 또 다른 때에 가족은 숨막히게 만드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족 역시 애덕의 학교이다. 우리가 가장 친밀하게 알고 있고, 또 우리를 그렇게 알고 있는 가족 안에서도 우리는 단순히 서로 참아낼 뿐만 아니라, 더 용서하고 더 인내하는, 더 나은 우리자신이 되라는 도전을 받는다. 그런 도전을 찾아 다른 자리로 나아갈 필요가 없다. 도전들은 매일, 매순간이 아니라도 우리를 찾아내고 있다.

 

도로시 데이는 가톨릭 일꾼가족 안에서 보여지는 실패와 불화에 끊임없이 울었다. 그리고 천국을 일별하는 것 같은 짧은 순간의 친절함과 동료애로부터 위로를 받았을 뿐이다. 「긴 외로움」에서 데이는 모든 소명의 핵심에 있는 근본적인 고독에 대하여 표현한다. 그러나 그는 책을 이렇게 끝내고 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는 빵을 쪼개면서 그분을 알고, 빵을 쪼개면서 서로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긴 외로움을 알고 있고, 유일한 해결책이 사랑이며, 그 사랑은 공동체와 함께 온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다.”

 

 

새로운 눈

 

사랑은 우리에게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허락한다. 표면 밑에 있는 더 깊은 진실과 가치를 보도록 해준다. 분명한 가치나 품격이 보이지 않고 초라하며 낡아빠진 어떤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것일 때, 혹은 우리가 특별히 행복할 때, 거기에는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부여된다. 우리 아버지의 낡은 스웨터, 어머니의 오래된 찻잔 등을 보면, 그 낡은 겉모습 아래 숨겨진 진실을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은 고유한 비밀의 삶을 지니고 있다. 사랑은 이 공통점이 없는 것들을 한데 모으고, 그것들이 은총의 도구가 되도록 만든다. 성인들에게 온 자연질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므로 무한한 소중함과 잠재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 사랑에 참여하는 만큼, 모든 것들은 자신들의 초월적인 의미를 드러낸다. 모든 것들은 제각기 우리를 우리의 진정한 집으로 초대한다.

 

성인들은 보이지 않는 실제에 조율을 맞춘 사람들이었다. 즉 우리 모두가 사랑의 그물망 속에 연결되어있다는 사실, 그래서 온 우주가 한 실제에 뿌리를 두고 있고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깨어 있었던 사람들이다. 만일 우리에게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서로 갈라져있다는 꿈에서 즉시 일어나 경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실제를 성인들은 보았다.

 

이런 “사랑의 빛들”에 깨어있었던 한 젊은 가톨릭사제 잉겔마르 운자이티그는 바바리아 지방의 나치 수용소 한 가운데에서 그의 사명의 의미를 이해했다. 다카오의 이십만 수용인들 중에는 2500명이 넘는 그리스도교 성직자들이 있었고, 운자이티그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나치 점령자들은 성직자들을 따로 분리시켜 수용했다. 그래서 성직자들은 직분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미가를 만들고, 비밀미사를 하거나, 동료 수용인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다카오는 “세상에서 가장 큰 수도원” 이었다.

 

유대인들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서품된지 얼마 되지 않아 오스트리아에서 체포된 운자이티그 신부는 다카오에서 첫 번째 소임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는 수용소를 거룩함을 배우는 학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누나에게 몰래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때때로 불운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매우 큰 행운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삶의 학교에서 오로지 경험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는 지요.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다른 이들을 위하여 세상에 얼마나 평화가 부족한지 느끼고 경험해야하며, 또한 그들이 참다운 평화에 이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에게서 매우 소중하고 아끼는 것을 가져가신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1944년 12월 수용소에 장티푸스가 발병했다. 첫 번째 달에 2천명 이상의 수용인들이 죽었다. 전염된 사람들은 지저분한 막사에 격리되었고, 아무런 돌봄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다카오의 지옥 안에서도 이 격리된 곳은 내적인 지성소가 되었다. 병자들을 위한 잡역부 소집에 운자이티크 신부는 20명의 자원 사제들과 함께 응답했다. 장티푸스의 심각한 전염 사태를 볼 때, 자원의 의미는 모두에게 확실했다. 이 자원자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사제들은 이 없음 속으로 자신들의 사랑과 믿음을 가져갔고, 사람들에게 위로와 존엄성을 표현할 수 있었다. 병자들을 돌보고, 그들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끝이 없는 일이었다. 사제들은 또한 고백을 들었고, 마지막 성사를 주며,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나치들이 병동에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그곳은 인간애가 표현되는 특별한 자리가 되었다.

 

수주일 후, 잉겔마르 신부는 열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는 1945년 3월 2일, 서른 네 살 생일 다음날, 그리고 미군이 수용소를 해방시키기 수주 전에 죽었다. 죽기 바로 전에 쓴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은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승리는 하느님 편에 있어야 합니다. 비록 때때로 세상에 사랑을 전파하는 것이 우리에게 쓸모없는 일로 여겨진다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이 사랑에 깨어 있음을 , 그리고 그 사랑이 피조물이 아니라 참으로 하느님께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오래 지탱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될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여 사랑과 평화가 곧 다시 피어나기를 희망합니다.”

고통받는 것을 배우기

 

 

성인에게 고통은 여전히 고통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 고통이 그의 사명에 장애물이 되거나,

행복에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다.

행복과 사명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결정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 토마스 머튼

 

 

행복의 추구를 고통과 연결시켜 말하는 것은 어리석게 보인다. “고통이 없다면 얻어지는 것도 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단식이나 운동에 해당되는 말 같다. 진짜 고통은 그이상의 어떤 것이다. 확실히 행복은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것과 가능한 멀리 떨어질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고통을 “통과” 하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도 고통은 늘상 똑같이 우리에게로 다가온다.

 

일, 사랑, 내적인 평화를 통하여, 혹은 모든 일상의 걱정에서 이탈할 때에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추구는 어쨋건 어떤 만족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단지 만족할 때에만 행복할 것이라는 말은 단순한 중언부언에 불과하다. 만족이란 어떤 거절, 불똥, 얼음 한 조각, 부서진 막대기 하나 때문에도 쉽게 사라질 만큼 약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성인들의 안내가 가장 필요하다. 그들은 고통이 더 이상 절대적인 장애물이 되지 못하는 행복에의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들은 우리에게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길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고통을 겪을 수 있는지 가르쳐 준다. 그들은 고통의 “의미”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이 결코 파괴시킬 수 없는 어떤 의미나 진리가 삶의 심장부에 있다는 확신을 갖고 살았다. 그들은 고통이 “좋은 것”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하느님이 선하시다는 사실, 그리고 “어떤 죽음이나 생명도... 어떤 높이나 깊이도” 참으로 우리가 그 선을 원한다면, 결코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하느님이 버리는” 자리는 아무 곳에도 없으며, 모든 상황 속에서, 심지어 가장 무자비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사랑으로 충만한 생명으로... 행복으로 가는 길은 열려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사실이 복음의 가장 심오한 신비이다. 성인들에게서 배울 생각이 있다면, 그 문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이다.

 

 

수레바퀴의 축

 

어떤 성인들은 고통에 관한 완벽한 논문들을 썼다. 첫 번째로 쓴 사람은 보에티우스(480~524) 성인으로 「철학의 위안」을 썼다. 불행을 직접 경험하면서 쓴 이 책은 고통과 행복의 관계를 명료하게 다루고 있다. 보에티우스는 명망이 높은 그리스도인으로 로마왕실의 고위층 관리였다. 궁정의 음모에 휘말려서 반역죄와 “철학에 대한 불경한 연구”의 죄목으로 명예가 박탈되고, 구금, 고문 후, 결국 처형되었다. 감옥에서 그는 의인화한 후견인, 철학부인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 “철학부인”은 고통 중에 있는 그의 제자를 위로하면서 보에티우스에게 세상의 걱정에서 이탈하고 오직 최고의 선, 하느님, 모든 것의 창조주에 몰두하라고 촉구한다. 그러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면, 그의 평화와 평온함은 더 이상 바깥의 상황에 따라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보에티우스의 지금도 이어지는 유산 중의 하나는 삶을 천천히 돌아가는 운명의 수레바퀴로 묘사한 것이다. 보에티우스에 의하면 지상에서 재물, 권력, 명성 등을 즐기는 사람들은 “떠오르는” 지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운명의 수레바퀴는 계속 돌아가기 때문에 지나가 버리는 것들로부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바퀴의 표면에만 매달리는 한,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우리의 번영과 만족은 걱정과 주의 때문에 그늘진다. 우리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찾으려고 이웃과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해야 한다. 인간행복의 즐거움은 한 순간에 그치며, 회한과 분리될 수 없다. 아무리 즐겁다 해도 행복은 떠나려고 결심하면 가차없이 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철학부인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가? 행복하고자 한다면, 수레바퀴의 바깥테를 떠나야 한다고 한다. 즉 행복이 지나가 버리는 재화에 있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 움직여야 한다.­다시 말하자면, 절대로 변화하지 않는 수레바퀴의 중심을 향해 가야 한다. 그렇게 할 경우, 행복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거룩함의 추구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보에티우스는 거룩함을 무엇이라고 생각했는가? 단지 스토아철학에서 주장하는 체념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한가? 대답은 우리가 수레바퀴의 축에서 무엇을 발견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 주제에 관해서 철학은 더 이상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가 없다.

 

중세기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고통에 대해 더 실제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14세기 초에 쓰여진 「거룩한 위안」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에크하르트는 30여 가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어떤 주장은 소수의 신비가들만이 따를 수 있는 제안이다: “참으로 완전한 사람은 자아에 죽고, 하느님과 그분의 뜻에 취한 나머지 그의 온 행복은 자아와 자아에 관한 관심에 전혀 의식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과 진리만 알고자 한다.” 또 다른 주장은 좀 더 지상에 가까이 내려앉아 “어떤 상실도 완전한 상실이 아니다”라는 격언에 관한 성찰로 표현한다. 잃어버린 것 보다 갖고있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 방법이다. 그리하여 편안해지려면, 자기보다 더 잘 사는 사람들 대신 더 못사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는 주장을 펼친다. “받은 축복을 헤아려 보고”,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도 있었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 얼마나 더 좋은가! 또 때로는 철학부인이 보에티우스에게 주었던 충고를 상기시키는 주장도 한다. 즉, 우리의 고통은 “사물의 바깥에 살고 있거나 비우지 않거나,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피조물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처럼 되지 않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들 속에는 확실히 지혜가 있다. 고통에서 이탈할 때, 다른 이들의 불행과 우리의 고통을 비교하거나, 받은 축복들과 그 무게를 견주어 볼 때, 우리는 아마도 보다 넓은 전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가서 철학적 논쟁을 통하여 적절한 위안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실제로 대부분의 우리들은 우리의 짐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다가오는 한 친구의 친절한 행위와 이 모든 철학적 논쟁들을 기꺼이 바꿀 것이다.

 

고통을 체험하면서 우리들은 무심한 온 우주가 우리와 대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장 확고부동한 무신론자들조차 그들이 혼자가 아니며, 누군가 그들에게 관심을 두고, 그들의 은밀한 슬픔을 이해하고, 연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받는다. “연민”이란 “함께 고통받는다”는 뜻이다. 에크하르트도 고통을 축복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한 연민을 축복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결국, 예수님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은 옆에 무심하게 물러나 앉아서 세상의 고통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길은 그분을 십자가로 이끌었다. 그 십자가는 모든 고통이 집중된 자리였다. 십자가가 돌아가는 세계의 움직이지 않는 축이 된다는 의미는 우리의 슬픔과 고통이 무심한 귀에 떨어지지 않고, 실제의 심장부에서 자비와 연민의 원리와 만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에크하르트는 우리를 철학의 위안 너머로 데려간다. 그는 “우리가 고통 받을 때,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고통받고 계시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미 아는 것처럼, 고통이 친구의 공감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라면, “하느님의 연민 속에서 내가 받는 위로는 얼마나 클 것인가!”

 

 

성인들의 삶

 

모든 성인이 다 고통에 관한 글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고통을 하나도 겪지 않고 성인이 된 사람은 없다. 박해, 질병, 굶주림, 친구와 가족의 죽음, 위대한 일과 개인적 꿈의 실패, 결실 없는 노동에 의한 소진, 외로움, 영적인 고통 등등. 성인들의 삶은 고통의 연대기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 고통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값이었다. 또 다른 경우에 고통은 신앙이 단련되고, 시험을 받는 도가니와 같았다. 그리고 많은 성인들은 그들의 회심과 소명의 분별 때 고통을 겪었다.

 

앗씨시의 프란치스꼬 성인의 삶을 보면 중요한 전환점에서 고통이 보이고 그 고통은 성인에게 새로운 “관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해준다. 많은 다른 성인들의 삶에서도 우리는 프란치스꼬의 체험과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음을 본다. 그들의 삶에서 무기력이 끼치는 영향을 방해하고, 새로운 목표에 필요한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고통과 불행의 역할을 깨닫는다. 어떤 경우에 그 고통은 질병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경우에는 사랑하는 연인의 상실로, 혹은 어떤 야망의 무너짐으로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고통을 겪으면서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고 더 깊은 대답들을 찾기 위하여 나아간다. 우리는 더 이상 수레바퀴의 표면에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영적인 안내자

 

고통이 우리 삶의 황량함과 “헛됨”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 결과는 마땅히 절망일 것이다. 그러나 성인들의 삶에서 고통은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 고통은 성인들이 갖고 있던 착각과 망상을 벗겨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들을 열어주고, 은총의 현존을 더 빨리 느끼도록 예민하게 만든다. 이렇게 될 경우 고통은 자비로운 친구가 되고, 심오한 영적인 안내자가 될 수 있다. 이 역설적인 진리를 깨달으면서 어떤 성인들은 십자가의 고통에 자신들을 내던질 수 있는 경험을 갈구하기도 했다. 그들의 목적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었다. 즉 영감. 연민, 깊은 헌신 등, 극한적인 상황이 가져올 수 있는 경험들을 원했던 것이다.

 

노르위치의 쥴리안(1342~1416) 이야기는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는 영국의 은둔자이며, 신비가로서 저서인 「거룩한 사랑의 계시」에서 젊었을 때 죽음과 같은 위중한 병에 걸려보기를 기도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 실감있게 느껴보고 깨닫기 위해서였다. 또한 회심, 연민, 하느님에 대한 갈망에서 오는 “세 가지 상처들”을 받고자 했다.

 

현대인들에게 이런 쥴리안의 기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보인다. 그런데 쥴리안이 흑사병 대란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보자. 그는 고통이 말 그대로 실제이고, 만연되어 있던 때에 살았다. 쥴리안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겪었고, 그래서 고통의 본질과 그 의미를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개인적 경험 안에서 발견했다. 그의 말대로 “질병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로 정화되고, 그 후에 그 질병 때문에 더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위해서”였다.

 

쥴리안은 고통을 체험하고자 하는 그의 간구가 서른 살 때에 응답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 때 그는 신비스럽고 파괴적인 질병을 앓았다. 나흘 밤낮으로 그는 마비상태에 있었고, 견딜 수 없게 고통을 겪었다. 마침내 사제가 병자성사를 주기 위하여 왔고, 쥴리안의 얼어붙은 시선 앞에 십자가를 들었다. 그 때 갑자기 모든 고통과 비탄이 그를 떠나갔다. 그 순간에 쥴리안의 표현을 보면, 그는 “살을 입은 예수님, 고통 중에 있는 살을 입은 예수님을 보았다”고 한다. 예수님은 쥴리안에게 말했고, 다른 신비들뿐만 아니라, 그분의 신체적 고통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는 하느님의 손안에 호두처럼 잠겨있는 세계를 보았고, 확신이 자리 잡았다. 결국 우리의 살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모든 것이 좋을 것이며, 모든 것이 좋을 것이고, 모든 사물의 모습이 좋을 것”이라는 잊을 수 없는 환시를 본다.

 

그리스도의 고통에 대한 쥴리안의 환시는 병리학적으로도 생생하다. “나는 왕관 밑으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고, 그것은 뜨겁고 마음대로 풍부하게 흐르며, 살아있는 시내였다. 떨어지는 커다란 핏방울... 마치 청어의 비늘처럼”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을 지켜보면서 그의 관상은 사랑의 깊이에 모아졌다. “왜,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그분이 고통을 받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쥴리안에게는 이 모든 사실이 위안과 기쁨의 원천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갑자기 그분은 기쁨의 모습으로 변했다­그분이 고통을 받았던 이유는 그분의 본질적인 선함 때문에, 우리를 그분과 함께 그분의 기쁨의 상속자로 만들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거룩한 사랑의 계시」에서 그리스도는 당신의 의미를 드러낸다. “내가 너를 위하여 고통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완전히 만족하는가? ... 네가 만족한다면 나도 만족한다. 너를 위하여 수난 받는 것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며, 끝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므로 내가 더 고통받을 수 있다면, 분명코 나는 더 고통받을 것이다...”

 

모든 예상과 빗나가며 쥴리안이 죽지 않고 완쾌되었을 때, 그는 받은 계시를 모두 라틴어가 아니라 중세영어로 썼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노르위치의 교회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지금까지 그의 본명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먼저 극한의 고통을 겪었으나 패배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으로부터 더욱 강해지고 에너지를 충만하게 받은 삶의 지혜를 절실하게 구하는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으며 살았다.

 

14세기의 쥴리안이 가졌던 비전들이 오늘날 우리자신의 고통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고통에 대한 쥴리안의 신비적인 관점은 교회의 전통적인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예수는 십자가의 고통으로 인류의 모든 죄의 빚을 대신 “갚았다”. 많은 사람들은 이 빚을 대신 갚았다는 말에 대해 위안을 받지 못하며, 편안하지도 않다. 그러나 쥴리안의 관점은 이 대속의 의미를 넘어선다. 쥴리안에게 예수의 고통이 지닌 깊은 의미는 하느님의 연민이 얼마나 깊은가­우리와 함께 기꺼이 고통을 겪으시는 하느님­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에서 위로를 얻을지 모르지만, 쥴리안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강조했다. 쥴리안은 고통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는 우리 모두가 “영혼과 육체로서 하느님의 선함으로 옷을 입고, 그것에 둘러싸인 존재” 라는 거룩한 진리를 통찰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쥴리안이 스스로 고통을 겪으면서 터득한 영감이며, 절망이나 금욕적인 체념이 아닌 깨달음이었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이 연민을 실천하는 기회라고, 다시 말하자면 하느님과 함께 고통을 겪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또한 사랑을 표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생각으로는 간단하지만, 실천하기엔 엄청난 사랑의 이야기이다. 그렇게 성인들은 우리를 가르친다.

 

 

수동적 축소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뇌의 작은 부분만 사용하게 된다. 우리 몸에는 운동이 부족한 근육들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 인간성의 어떤 부분들은 어떤 체험들이 일어날 때까지 ­사랑에 빠진다든가, 아이를 가지거나, 죽음에 직면하는 등­ 잠들어 있거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체험을 하게되면, 생명을 얻는다. 고통은 이러한 체험들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불란서의 가톨릭 작가인 레온 블로이는 이렇게 썼다. “사람은 그의 빈약한 마음 속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자리들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들로 고통이 들어가 생명을 불어넣는다.”

 

마음 속의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이 자리들은 그렇게 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우리 모두는 고통이 필연적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키거나, 좋은 모습이 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통은 회한, 자기연민, 냉소를 더 가져오기 십상이다. 고통 그 자체를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그러나 고통은 생산적일 수 있다. 우리가 행복을 절대적으로 고통을 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모든 고통과 두려움은 단지 장애물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나 성인들은 목표를 다르게 설정한다.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존경하며 섬기도록” 창조되었다고 확신하며, 그렇게 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그런 사명을 충만하게 수행하는 만큼 행복을 얻게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목표를 설정한다면, 고통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과 동맹자가 될 수도 있다.

 

니체는 말했다, “나를 파괴시키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그러나 성인들은 대부분 힘보다 연민을 더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쟁기가 굳은 땅을 뒤엎어 물을 더 스며들게 하듯이, 고통도 굳어진 마음을 열어 더 깊은 지혜를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다. 초기 사막의 교부들 가운데 한 사람인 표티키의 디아도코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노동과 약함으로 시험되어야 하느님의 거룩함이라는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아빌라의 데레사는 고통이 “십자가로 가는 왕도”라고 하면서 그 길은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이고 준비하신 길이라고 한다. 그러한 빛으로 조명한다면, 우리를 파괴시키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의 모상을 더 잘 간직할 수 있게 만든다.

 

불란서의 예수회회원이며 신비가였던 피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고통과 실패가 가져오는 건설적인 영향에 대해 썼다. “성인들의 삶, 그리고 일반적으로 볼 때 지혜와 선함이 출중한 모든 사람들은 그들을 비하시키거나, 영영 보잘 것 없게 만들 것 같이 보이는 시련, 추락으로부터 단련되고 정제되어 고귀하게 된 사람들이다. 그런 경우 실패는 마치 식물을 전지하는 칼처럼 그를 더욱 순결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고통은 우리 내면의 생명수가 흐르도록 길을 열어주고, 우리 존재의 가장 순결한 ‘성분들’을 자유롭게 풀어줘서 우리가 더 높이, 더 강하게 피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

 

신학자요, 고생물학자였던 떼이야르는 바오로사도의 우주적 신비주의와 진화론 및 현대우주론의 사상을 화해시키고자 했다. 그는 수십 년을 중국의 고비사막에서 인간의 유래에 관한 발굴을 하면서 돌과 화석화된 유물을 수집했다. 그는 별들의 폭발, 거대한 대륙 형성, 그리고 산과 협곡들을 만들어내는 지각변동 등을 과학적 상상력으로 가능한 한 가장 넓게 관망하면서 그 안에서 생명과 우주를 보려고 했다. 그러나 또한 신앙의 눈을 가지고 무생물로부터 원시적인 형태에 이어 더 복잡한 형태로 변해 가는 생명의 모든 변화 뒤에 있는 어떤 운용의 원리를 진화과정 속에서 분별하였다. 이러한 유기체들은 변화를 거듭하며 의식, 사랑, 그리고 더 고귀한 영적 에너지의 형상으로 진화한다고 보았다.

 

떼이야르는 개인의 삶에서도 이와 비슷한 변화를 알아 볼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최고의 영적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인간화의 원리이다. 다시 말하자면 거룩해지는 변화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의식적인 선택에서 뿐 아니라, 아마도 더 큰 변화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겪는 것에 의하여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떼이야르는 이것을 수동적 축소의 원리라고 불렀다. 우리의 삶에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모든 형태의 불운들이 있으며, 이것들도 수동적 축소에 포함된다. “즉,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 우리를 둘러싸는 벽, 우리 몸에 침투하는 보이지 않는 병균,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말 한마디... 다양한 종류와 다른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들과 사고들, 비극적인 개입과 중단... ‘다른’것들의 세계와 우리로부터 투사되는 세계사이에서 오는 모든 것들”이다. 또한 수동적 축소에는 이런 것들 이외에도 세월의 덧없는 흐름, 노년이라는 점차적 쇠퇴가 있다. 세월과 나이는 “조금씩 우리자신을 훔쳐서 결국 마지막에는 우리를 막다른 벽”에 밀어 놓는다. 떼이야르는 우리가 성취뿐만 아니라 패배에 의해서도, 우리의 힘뿐만 아니라 약함에 의해서도, 우리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참아내야 하는 것에 의해서도 형성되며, 평가된다고 생각했다. 즐거움과 고통 모두가 우리의 영적 에너지를 해방시켜서 실제의 거룩한 중심과 연결시켜주는 것이다.

 

떼이야르 자신도 성취와 패배를 직접 경험했다. 그가 살아있을 때, 교회당국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진화론을 통합시키려는 그의 노력을 의심스럽게 생각했다. 그들은 그가 원죄교리와 성서의 청조이야기를 훼손시킨다고 비난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신학적 견해를 피력하거나, 책을 출간할 수 없었다. 그는 교회당국의 끊임없는 비난과 그의 정통성에 대한 중상 아래 연구했다. 이러한 제재는 그에게 큰 고통을 안겼으며, 수동적 축소에 관한 생각도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형성되었다.

 

떼이야르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들 중에 미국의 여 작가 훌래너리 오코너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작품 주제가 “은총을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미치는 은총의 행위” 라고 서술했다. 오코너는 그의 소설에서 소시민의 덕, 사회적 지위, 자기 만족적인 이성주의, 혹은 조용하고 고상한 기호 등 착각과 망상이 억지로 벗겨지고 잘려져 버린 인물들을 자주 묘사했는데,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더 깊은 진실과 용서의 필요를 깨닫게 된다. 오코너는 독자들에게 의미 없는 바보짓으로 여겨지는 육화, 원죄, 구원 등의 주제에 관해 써야 한다는 도전을 강렬하게 느꼈다. 가톨릭 신앙과 인간의 지성이 어울릴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반증으로 떼이야르 샤르댕의 저서들을 권유했다. 그리고 떼이야르의 작품들 중에서도 수동적 축소의 개념이 특히 오코너에게 개인적으로 강한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오코너는 일찍이 루퍼스를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아버지도 같은 병으로 사망하였다. 나중에는 치료약의 영향 때문에 관절이 점차 쇠약해져서 지팡이에 의존하며 걸었다. 그래서 죠지아의 밀레쥐빌에 있는 가족 농장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고, 그곳에서 매일 아침 두시간 정도 글을 쓰거나, 가축들을 구경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오코너는 부조리에 대해 날카로운 안목을 지니고 있었고, 우스꽝스러운 것과 비참한 것을 화해시키는 능력을 지녔다. 그는 감상적인 동정심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의 저술 활동과 병력을 연결시켜 평가하려는 비평가들에게 강한 반발을 가졌다. 그렇지만 그는 병 때문에 저술에 도움이 되는 훈련을 받았고, 우선 순위들에 대한 감각을 갖게 되었다. 그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상이 떼이야르의 “수동적 축소”라고 하면서 어떤 노력으로도 변화시킬 수 없는 고통이나 상실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고귀한 자질이라고 평했다. “나는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충분히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오코너는 “어쨋건 내가 할 일은 쓰는 것뿐이며, 모든 것을 은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예술가로서 그의 가장 큰 책임이 예술을 훌륭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는 자신의 삶이 진행 중에 있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여겼다. 그러한 삶의 의미는 바깥으로 드러나는 성공에 따라 평가받지 않는다. 인간존재로서 우리의 가장 고귀한 책임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선물들을 사용하며 “하느님을 찬미하고 존경하며 섬기는 것”이다. 오코너는 말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창조적 삶의 행위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행위는 이 세계의 재화들이 최대한으로 거기에 충만하게 활용되어야 하는 지속적인 행위이다. 긍정적인 선물들과 함께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가 말한 ‘수동적 축소’ 까지 다 포함하여 활용되어야 한다!”

 

오코너는 물론 자신의 긍정적 탈렌트와 고통 등 모든 재화를 “활용”하여 그가 “진정한 나라”라고 불렀던 나라를 향해 살았다. 한 친구에게 이렇게 썼던 것처럼, “나는 결코 아픈 것말고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아픔은 장소이다. 그 장소는 유럽으로 긴 여행을 가는 것보다 더 배울 바가 많은 장소이다. 또한 언제나 아무도 함께 있지 못하고,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장소이다.”

 

오코너는 39살에 죽었다. 그의 짧은 삶에는 소위 흥미로운 드라마가 부족하다(일생 집과 닭장 사이에서 살았기에). 그러나 그의 삶이 피폐한 삶이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는 상식적인 의미에서 신비가도 아니었지만, 그리스도교적 신비의 핵심을 매우 깊게 살았다. 그것은 노르위치의 쥴리안이 거룩한 “계시” 속에서 받은 것과 같은 영감으로서, 이 세계가 그 모든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위하여 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느님께서 인정하셨다는 신비이다.

 

 

하느님의 뜻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보증한 고통에 대한 위로책 중 하나는 이것이다. 만일 “내가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변형시킨다면” 고통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고 에크하르트는 말했다. 이렇게 되면, “나는 평온해지고 완전히 행복할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런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역사를 보면 많은 설교가들이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에게 그런 충고를 강요해 왔다. 그런 충고가 인간의 행복을 더 증가시켰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다른 대안들이 없을 때는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진, 가뭄, 전염병이 들 때 그것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가난의 고질화, 에이즈 환자들을 보면서 “고통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견뎌낼 힘을 받든가 아니면 하느님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중적 체념을 대신할 대안이 있다. 쟝 삐에르 꼬사드는 그의 책 「거룩한 섭리에의 의탁」에서 현재의 순간 속에 있는 하느님의 뜻을 함께 찾아보자고 한다. 꼬사드는 매일의 모든 행위가 갖고 있는 영적인 차원을 지적한다. 즉 우리가 수행해야 할 과제와 의무들,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 깃든 영적인 차원에 대하여. 모든 행위들은 그 순간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성사”다. 그러한 사실에 늘 깨어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매일의 경험이 지니고 있는 거룩한 심연에 민감해 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고통받을 때 특히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도전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 도전은 우리의 영적인 자세가 바깥의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통찰을 가지는 것이다. 매우 심각한 불행 한가운데에서조차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 있다. 우리가 불운의 베일을 뚫고 어떤 변하지 않는 진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신앙에 의해서이다.

 

꼬사드가 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옆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진 두 도둑의 경우를 그 예로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의 외적인 상황은 똑같았으나, 내적인 자세는 알다시피 매우 대조적이다. 그 차이는 첫 번째 도둑으로 하여금 회한과 증오의 태도를 취하게 했고, 두 번째 도둑은 그의 조건을 넘어 영원과 만나게 된다.

 

꼬사드는 단지 이렇게 주장한다, “하고 있는대로 계속하면서 인내해야만 할 때 인내하라­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할 때, 당신의 태도를 변화시켜라. 그리고 이 변화는 단지 하느님이 청하시는 모든 것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꼬사드의 이런 주장을 직접 들었던 사람들은 방문회 수녀들이었고, 그는 그들의 영적 지도자였다. 그렇다면 그런 수녀들이 삶의 잔인함, 역사의 암흑을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란서 혁명 때, 옷을 벗기우고 단두대로 행진해 갔던 사람들은 바로 그런 수녀들이었다.

 

그러나 고통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 매우 우둔한 소리로 들린다. 대학살 속에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세계무역센타 붕괴 속에? 캄보디아인들의 몰살 속에? 이런 폭격 속에? 한 아이의 고통 속에?

 

그런데 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표현을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 말이 단순히 일어나고 있는 나쁜 일들을 합리화하는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즉 어떤 상황에 대한 결론이 아니라 도전으로, 모든 상황 속에 현존하는 하느님을 추구하는 도전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느님의 뜻”이란 우리의 운명에 대한 축복이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다가오는 숨겨진 도전은 모든 상황 속에서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정의와 진리를 증언하는 방식으로 응답하라는 것이다.

 

영국의 여의사인 쉴라 캐시디는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 도전을 발견했다. 1970년대 초기에 칠레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었던 그는 군사쿠테타에 이은 폭력적 탄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는 한 부상당한 혁명가를 치료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수천 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문을 당했고, 죄수들 수용소에 갇혔다. 수많은 정치범들이 사라져갔다. 캐시디의 경우, 국제적인 압력으로 석방되어 칠레에서 추방되었다. 회고록에서 캐시디는 고문의 힘이 자신을 두려움과 공포로 너덜너덜해진 공처럼 만들었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사람들은 일생 시달리는데, 단지 겪었던 고통에 대한 기억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존재들이 서로에게 어디까지 극한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가를 알게되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는 고문이 그쳤을 때, 제일 먼저 하느님께 도와달라고 울부짖었다. “철창에 매달려서 풀려나게 해 달라고 애원하며 영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러자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도 “내 빈손을 탄원보다 봉헌으로서 하느님께 뻗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나를 나가게 해 주세요’ 라기 보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받아주십시오.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재게 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나의 무력함과 감금 속에서 남은 것이 하나있다면 그것은 자유였다. 즉 하느님의 손에 내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자유였다.”

 

이 기도의 효과는 그의 태도를 즉시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필요한 용기와 힘을 가지고 상황을 직면케 한 점차적인 과정으로 나타났다. 캐시디는 이렇게 표현한다, “이 의탁의 선택은 상황의 굴레에 빠져버린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선택이며, 갇힌 사람들이 그들의 굴레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새장 속의 새처럼 그들은 철창에 날개를 부딪치면서 소진되는 선택을 하거나, 감옥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마침내 놀랍게도 그 안에서 노래부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정치범의 상황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후에 캐시디는 영국에서 호스피스 의사로 일하며 칠레에서의 경험으로 불치의 암환자들과 공감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는 환자들의 절망적인 질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 나입니까?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입니까?” 우리도 회한과 절망 속에서 힘을 소진시키며 철창에 우리의 날개를 때리든가, 아니면 마리아의 기도(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뜻에 따라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에 우리의 기도를 합쳐서 노래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뜻이 죽음이 아니라, 이 날 그분과 함께 있는 것, 말하자면 낙원에 있는 것임을 신뢰할 때 할 수 있는 기도이다.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의 저자인 미국의 예수회 회원 월터 씨스체크 신부도 이와 비슷한 자유와 평온함의 경험을 했다. 그는 소련의 수용소에서 23년을 살면서 수 차례 죽음과 직면했다. 그가 경험한 잔인함과 고생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가장 큰 고통은 그가 자기운명의 부당함에 대하여 정신적으로 싸우게 됐을 때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는 만큼 그는 모든 상황 속에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자리에 자기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그 때에 자유와 평화를 느꼈다. 그의 시련은 의미를 갖게되었다,­동료 죄수들에게 영적인 위로를 주거나, 사제직분을 수행할 때, 혹은 단순히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고통과 일치할 할 때에. 그럴 때 그는 “즐거움, 하느님만 신뢰하는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신앙에 대한 확신”을 경험했다.

 

씨스체크 신부는 후에 상황이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을 때 실망하고 도망가려고 하는 것은 큰 유혹이라고 했다: “이런 삶은 내가 기대했던 삶이 아니다. 내가 추구했던 것은 이것이 아니다... ‘하느님, 당신은 저를 용서하셔야 합니다. 저는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도 이런 유혹을 알았다. 그러나 그의 위로는 항상 “하느님 뜻”을 믿는 것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의 하느님의 뜻이 아니며, 우리가 그렸던 대로가 아니고, 우리인간의 빈약한 지혜에 적합한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이란 하느님이 계획하신 대로의 뜻이고, 매일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창조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뜻이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뜻은 매일의 24시간이다. 그때에 우리 앞에 놓여진 상황, 장소, 사람들 속에 있다. 그순간 그분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하느님 보시기에 중요한 것이며, 우리에게 행동하도록 바라시는 바로 그것들이다...”

 

쟝 삐에르 드 꼬사드의 주장은 씨스체크 신부의 경험으로 증명되었고, 다음의 내용이 신심적인 이상주의가 아니라 생생한 삶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느님은 모든 것 안에 계시고, 모든 것을 존재케 하며 모든 것을 이끄신다. 이 사실을 모든 상황과 모든 조건 속에서 식별하는 것, 모든 것 안에서 그분의 뜻을 알아본다는 것은 모든 상황과 현실을 받아들이고 완전한 신뢰와 확신 속에 자신을 그대로 맡기는 것이다. 아무것도 나를 그분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다. 그분은 모든 것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가 겪은 시련에 대해 쓰면서 씨스체크 신부는 아무런 회한이나 후회의 자취를 보이지 않는다. 그의 경험은 매우 독특하지만, 그가 배운 교훈들은 모든 다른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씨스체크 신부는 믿는다. “우리 모두에게 구원은 매일 그리스도의 같은 십자가를 지고 매일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매일 아침 하느님께 모든 기쁨, 모든 일, 그리고 그 날의 모든 고통을 하느님께 다시 봉헌하는 것일 뿐이다.” 그는 감옥에서도, 시베리아 노동수용소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행복의 비밀은 단순히 매순간을 목적과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었고, 모든 상황과 모든 사람 속에서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발견하기로 결심했으며 대면한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추구는 헛되지 않았다: “삶에서 신앙의 진실을 믿고 매일 그것을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보다 더 큰 평화를 알 수 있는 사람, 더 투신할 수 있는 사람,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모든 이야기가 너무 단순하게 보인다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위하여 다만 직접 해보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해볼 때에 당신은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읽기

 

현재의 순간 속에서 거룩함과 행복의 길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은 현재 순간들의 연속 그 이상이다. 우리들의 삶은 그 전체를 덮는 궁형과 같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그 이야기는 아마도 고통으로 점철된 이야기일 터이지만, 고통이 그 이야기의 주제는 아니다. 다만 피할 수 없는 질문, 즉 나의 고통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가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대답을 얻기 위하여 먼저 우리들의 삶의 의미를 찾아보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순간”에 제한하여 그 의미를 찾아본다면, 우리의 삶을 하나의 전체로서 보기가 어렵다. 고통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지독한 외로움, 어떤 공허감 밖에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 고통을 겪을 때,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지금 이렇게 고통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자로의 누이, 베타니아의 마리아도 예수께 그렇게 불평했다: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라자로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 11,32). 그러나 나의 삶을 계속되는 어떤 이야기로 보고 어떤 차원에서 그것을 또한 하느님의 이야기로 믿을 때에, 나는 삶의 의미가 어떤 한 순간이나 또 다른 순간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가장 좋은 순간이나 가장 나쁜 순간도 아니며, 이야기 그 전체 속에서 발견되는 것임을 알게된다. 라자로는 죽었으나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아니며, 그의 죽음은 마지막 말이 아니다.

 

성 어거스틴은 그의 삶을 전체로서 보았던 첫 번째 사람이다. 자신의 삶이 흩어져있는 일화들의 연속물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이며 영적인 성찰의 대상으로서, 더 깊게 파고 들어가 숙고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삶의 중추점인 회심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본다. 이 빛으로 볼 때, 그는 그를 보살피고 행복을 향해 이끄는 하느님의 섭리의 손길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손길은 하느님이 그에게서 멀리 계시다고 생각했던 도덕적, 심리적으로 방황하던 시기에도 그곳에 있었다. 하느님을 발견할 때까지 그는 행복을 우정, 쾌락, 사회적 지위, 그리고 학식에서 추구했다. 그러나 이런 추구에서 성공했어도 그에게는 슬픔과 고통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무엇인가가 빠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빠진 것은 확실했다. 후에 깨달았지만, 그는 절대로 혼자 있은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내, 저 멀리에서 당신의 자비는 충실하게 제 주위를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통이 우리를 꽉 잡을 때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현재 겪는 고통, 상실 혹은 배신이 우리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의 길이 닫히면 또 다른 길이 열리고 있음을 알아보는 안목이 부족하다. 우리의 희망과 계획의 좌절이 또 다른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확실하게 보이는 죽음이 새로운 생명의 전조라는 것을 신앙으로 배우게 된다. 성인들은 우리들의 발걸음을, 비록 우리가 가고 싶지 않을 길로 이끈다 해도, 인도하는 섭리가 있다고 믿었다.

 

까를르 까렛또(1910~1988)는 예수의 작은 형제회 회원이었다. 44세에 그는 작은 형제회에 입회했다. 그는 그때까지 이태리의 가톨릭 청년운동에 유명한 지도자로 활동했다. 친구들은 사막으로 가는 그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부르심에 응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내가 원하는 것은 너의 행동과 치적이 아니다. 나는 너의 기도, 너의 사랑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하라사막에서 일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다. 가난, 고독, 기도의 분위기 등 그는 이 모든 것을 빨아 들였다. 그러나 까렛또는 한가지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알프스에 작은 형제회 공동체를 만들고 산악인들을 위한 구조팀 역할을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갑자기 그 꿈은 눈사태처럼 쓸려가 버렸다. 사막을 걷던 도중, 그의 친구가 그의 넒적다리에 주사를 잘못 놓아서 하루밤 사이에 다리를 못쓰게 되었고 일생을 절룩거리게 되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까렛또도 왜 이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났는지, 어떻게 하느님이 용납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나는 여기에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왔는데, 그분은 나를 골탕먹이고, 절름발이가 되게 해버렸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후, 그는 그 실수가 은총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정말 운이 나빴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것을 은총으로 바꾸셨다.” 그는 찦차를 얻어 기상학자가 되었다. “내 의사하고 상관없이 나는 내가 속한 곳에, 사막에 있었다. 눈 속을 걷는 대신, 모래 속을 걷고 있다... 불운은 나에게 새로운 길을 던져주었다.”

 

까레또의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 비탄과 절망 속에서 그를 끌어내어 새로운 수용의 상태로 데려간 은총에 계신다. 선이 악으로부터 올 때, 신앙의 눈은 그것이 하느님의 실수할 수 없는 징표라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의 발길은 고통을 우회하지 않는다. 까레또는 가난과 고통의 상처가 특별하고 매우 소중하며 달콤한 꿀을 만들어 준다고 말한다. 그것은 예수가 산상에서 선포했던 진복팔단이라는 꿀이다.

 

 

이 잔 모두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예수의 이야기로 조명하며, 바라보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예수 이야기의 의미는 단순히 교의와 도덕적 격언집으로 축소될 수 없다. 또한 예수 이야기의 의미는 “영광스러운 신비들”(기적들)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거부, 배신, 버림받음, 외로움, 피땀이 흐르는 고통까지 포함한 이야기 전체에서 발견된다.

 

예수는 충실함의 기쁨과 고통이 서로 갈라질 수 없게 섞여있다고 믿었다. 두 제자들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아들들을 하느님 왕국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을 때, 그분은 대답한다: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청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마시려고 하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마태오 20,20-23). 잔을 마신다는 것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쓴 것과 단 것, 슬픔과 영광을 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잔을 마실 수 있는가?」라는 저서에서 나웬은 잔이 삶 자체를 상징하며, 우리는 삶 안에 있는 모든 갈등들을 받아들이도록 초대되었다고 성찰한다. 잔 안의 내용물은 너무나 분리 할 수 없게 섞여있기 때문에 잔을 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이 사실은 나웬이 삶에서 직접 경험한 교훈이었다.

 

나웬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가를 알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어거스틴과 달리, 청년 나웬은 이미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 속의 자신의 자리에 대해 어거스틴과 비슷한 불안감, 걱정을 느꼈다. 그는 애정과 인정에 대한 무절제한 욕구로 시달렸다.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내적인 공허감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나웬은 우정의 큰 선물을 지니고 있었고 가는 곳마다 공동체의 씨앗을 뿌렸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그를 한 자리에서 밀어내고 또 다른 것을 계획하게 만든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사명으로, 서커스그룹의 지도신부 등등. 그러나 대중의 인정도 오직 고립감만 더 깊게 해 줄뿐이었다. 그는 사막에서 예수가 경험했던 유혹들이 “더 인기가 있고, 더 강력해지며, 더 위대해지려는 것”이었다고 표현한다.

 

1986년 그는 토론토에 있는 새벽 라르슈공동체에 거주사제가 되었다. 그는 장애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 집에서 살았다. 그는 심각한 장애를 지닌 젊은 청년 아담을 돌보는 일을 맡았다. 아담은 말할 수도 없고, 혼자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아담을 돌보면서 나웬은 자신에게 더 깊은 내적 회심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나웬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투쟁의 끝은 아니었다. 새벽공동체에서 일년을 지낸 후, 나웬은 오랫동안 눌러온 긴장이 극도에 달하며 신경쇠약으로 고통을 겪게 되었다. 몇 달 동안 그는 거의 말을 할 수도 없었고, 방을 나갈 수도 없었다. 이제 그 자신이 무력한 사람이 되어 침묵 중에 존재에 대한 확신을 울부짖고 있었다. 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다­나의 자기인정, 살고 일하는 나의 에너지, 사랑받고 있다는 나의 느낌, 치유에 대한 나의 희망, 하느님께 대한 나의 신뢰... 모든 것이.” 그것은 전적인 암흑의 체험이며, “끝이 안보이는 심연”으로의 추락이었다. 이 기간동안 그는 자주 하느님이 실제인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일까 하는 의심으로 불안해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후에 그는 이렇게 썼다. “이제 나는 내가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느꼈을 때에도 하느님께서 나를 홀로 있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는 이런 상태에서 벗어났으며, 더 평화롭고 더 전체적인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내면에서 들리는 사랑의 목소리”에 대한 더 깊은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그 목소리는 그를 “나의 짧은 생의 울타리를 넘어 그리스도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는 곳”으로 초대하고 있다.

 

라르슈를 찾는 사람들은 처음에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공동체를 집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고통만이 그곳의 유일한 실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곳에는 축하, 친밀함, 동료애, 소속감, 가족으로서 수용되는 기쁨이 있다. 즐거움과 슬픔은 이곳에서 서로 섞여있다. 다시 말하면, 즐거움이 슬픔 속에 숨어있기 때문에 분별이 필요하다. 나웬은 이렇게 표현한다. “새벽공동체에 살면서 나는 많은 이들이 슬픔만 보는 곳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눈을 갖게 되었다... 슬픔은 여전히 그 곳에 있지만, 어떤 것이 나를 변화시켜서 다른 사람들 앞에 앉아있게 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공동체감을 느끼도록 해준다.”

 

나웬의 삶에서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 우리는 나웬의 성공과 영광뿐만 아니라, 그의 고통과 아픔도 바라봐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한 이야기에 속하며 궁극적으로 은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나웬이 예수의 메시지라고 했던 메시지이다. 즉 “진정한 기쁨과 평화는 고통과 죽음을 우회하지 않고, 그것들을 정면으로 통과할 때에만 얻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사실과 신비

 

고통의 갈래는 우리존재 깊숙이 파고 들어와 전체에 얽혀 있어서, 그 갈래를 마구 잡아당기면 나머지 부분도 걷잡을 수 없이 헝클어진다. 우리는 비틀거리고, 넘어지며, 걷는 것을 배운다. 우리의 변화는 막다른 끝이나 실망으로 점철되어 있고, 아무도 그것들로부터 온전히 빠져나갈 수 없다. 질병과 고통은 몸이든 마음이든, 피할 수 없다.

 

고통은 사실이다.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그 고통을 직면하는가 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준주성범」에서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는 항상 대기중이다. 그리고 어디서든 당신을 기다린다. 당신이 어디로 도망가든지 십자가를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딜 가든지 당신은 항상 자신을 달고 가며,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의 대안들을 제시한다: “십자가를 기꺼이 지면 십자가가 당신을 질 것이며, 당신이 원하는 목표로 이끌어 줄 것이다. 더 이상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그러나 십자가를 기꺼이 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짐이 되고, 당신을 더 무겁게 누를 것이다. 그러니 십자가를 반드시 져야한다. 한 십자가를 쫓아버리면, 또 다른 십자가, 더 무거운 십자가가 당신을 쫓아올 것이다.”

 

성인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동일시하면서 위로 그 이상의 것을 발견한다. 즉 그들은 고통을 변모시키는 길을 발견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에 더 친밀하게 자신들을 연결시키고, 이웃과 더 연민어린 통합을 이룬다. 성인들은 이렇게 행복에 대하여 가장 어렵지만 가장 결정적인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삶의 상황에 대하여 제한된 통제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우리의 태도를 결정지을 수 있는 힘은 갖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안락과 사치 한 가운데에서 비참하게 느낄 수 있는 것만큼, 성인들이 증언한 바와 같이, 고통 한가운데에서도 행복 할 수 있다.

 

초기교회 교부들은 하느님이 예수를 “미끼”로 사용하여 어떻게 사탄을 잡으려고 하는지 묘사하기 위하여 쥐덫의 이미지를 즐겨 사용하곤 했다. 성인들도 고통 중에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기 위하여 그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리의 고통에 대해서도 말해주는 바가 있다.

덫은 튀어 오르지만 우리는 잡히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깊은 심연은 멀리 떨어진 우리의 참 나라에 있다. 그 나라는 천둥과 서리, “무너지는 빌딩”의 땅 너머 요동치는 세계의 고요한 중심에 존재한다.

죽는 것을 배우기

 

죽음을 애써 구하지 마라.

죽음이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충만하게 만드는 길을 찾아라.

 

- 다크 함마숄드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죽음으로,

그리고 죽음 후에는 심판으로 정하신다.

그러나 죽어 가는 모습들은 하나도 같지 않다.

 

- 아폴로니우스 성인

 

 

어떤 의미에서 보면 행복과 죽음에 관한 생각, 죽음의 현실을 화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죽음에 집착하는 것은 우울증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죽음의 손아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마른하늘에서 구름을, 장미꽃 뒤에서 소멸의 그림자를 보기 십상이다, 그런 사람들은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모든 기쁜 소식에도 그들은 “그래. 하지만, 내일이면 우리 모두가 죽을 꺼야”하고 말한다.

 

물론 이와 정반대의 극한적인 경향이 모든 소멸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부정하는 광적인 낙관주의다. 텔레비전 광고, 체육관에서 미친 듯이 운동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이런 모습이 보인다. 이 낙관주의에 의하면, 중요한 사실은 다만 우리가 오늘 살아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삶은 불멸성을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대면하는 삶이다. 죽음의 실제를 회피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망상, 두려움, 삶의 깊이에 몰입하지 못하거나, 내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뿐이다.

 

죽음은 가까이 있건 멀리 있건 간에,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어떤 가능성뿐만이 아니다. 죽음은 우리가 숨쉬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의 존재 안에 짜여져 있다. 이렇게 본다면, 죽음을 어떤 일직선상의 끝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죽음이란 모든 것에 앞서있는 어떤 차원이다. 죽음은 우리의 실존자체를 의문으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질문을 회피하거나 비오는 날로 연기해 버린다. 파스칼이 말했듯이, “죽음, 비참함, 무지를 치유할 수 없어서,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하여,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참다운 행복은 불행한 생각들을 피하겠다는 결심으로 얻어질 수 없다. 그런 태도는 마치 우리가 비올 때를 제외하고 영원한 햇빛의 땅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두려움이나 회피 없이 죽음을 직면하는 만큼, 우리는 두려움 없이 삶을 직면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참으로 행복의 시작이다.

만일 성인들의 행복이 더 견고한 기반에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죽음을 끝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떤 새로운 것으로 과월하는 것이라고 여겼다는 점이다. 나치정권에 저항하다 처형된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런 확신을 가졌다. 플로센베르크 감옥의 교수대에서 그는 동지들에게 말했다, “이것이 끝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생명의 시작이다.”

 

결국 성인들은 “다가올 세계의 생명”을 믿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니체아 신경의 이 구절은 죽음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걸림돌이다.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매 일요일마다 똑같은 믿음을 입으로만 되뇌이고 있다. 아직도 영원한 생명이라는 개념은 구름에 쌓인 성처럼 우리들의 평상적인 체험으로부터 멀리 있다. 아마도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지상에서의 모든 고통이 끝난 후, 거기에 대한 미래의 보상처럼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기도와 섬김의 삶을 살아간 성인들이나, 박해의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진 사람들은 단지 미래의 보상에 대한 희망에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영원한 생명을 이미 가졌고 만졌기 때문에 영생을 믿은 것이었다.

 

 

삶에 예의를!

 

성인들로부터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배우고 싶다면 ­특히 신앙이 그다지 굳건하지 못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미숙하게 영원한 생명의 주제로 뛰어오르는 것은 실수다. 또한 죽음으로 시작하는 것도 잘못이다. 죽음에 대한 성인들의 자세는 먼저 삶에 대한 자세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죽음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살아있음의 피할 수 없는 측면이라면, 실존이라는 더 넓은 현상이 바로 진짜 신비이다. 다시 말하자면 질문은 단순히 “왜 우리가 죽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는 살고 있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음의 현실에 직면하는가를 결정하게 된다.

 

1961년 비행기 사고로 순직한 전 유엔사무총장 다크 함마숄드는 개인일기를 갖고 있었는데, 내적인 삶을 기록한 것으로 사후에 「비망록」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한 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누가 ­혹은 무엇이­ 질문을 던졌는지 모르며, 언제 그 질문이 나왔는지 모른다. 나는 대답했던 것조차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나는 어떤 사람에게 ­혹은 어떤 것에­ ‘예’라고 대답했고, 그 시간부터 나는 실존이 의미로 가득 차 있으므로 삶도 목적을 갖고 있다고 기꺼이 승복하며 확신했다.”

 

성인들에게 삶의 의미는 부분적으로 그리스도의 삶, 죽음, 그리고 부활에서 드러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삶의 의미와 목표를 드러내고 있다면, 그것이 실제의 본질에 관한 어떤 진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 실존의 경계선과 한계를 지웠으며,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진실이다. 그러므로 삶의 실제에 근본적으로 ‘예’라고 응답하면서 성인들은 그 대답을 예치해 두었다가 죽음의 순간에 현금으로 바꾸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그들의 ‘예’는 기본적으로 현재 속에서 삶을 향하여 취한 태도였다. 그것은 새로운 생명이 오직 우리의 옛 생명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통찰하고 경험한 것에 바탕을 둔 태도였다.

 

 

죽으면서, 우리는 산다

 

고기잡이 그물을 호숫가에 버린 시몬과 안드레아 사도이든, “죽은 사람들의 장사는 죽은 이에게 맡겨라”는 소리를 들은 예비 제자이든, “용서받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마라”는 말씀을 들은 간음한 여인이든, 예수를 따른 사람들 중에 무엇인가 뒤에 남기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이 점이 본 회퍼의 사상에 기반이기도 했다. “십자가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행복한 삶을 끝맺는 비참한 종말이 아니며, 그리스도와 우리의 일치가 시작되는 점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그리스도가 사람을 부를 때, 그분은 그에게 와서 죽으라고 명령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제자들이 무엇인가 ­재난, 무기력, 죄악 등­ 뒤에 남기는 것은 무한히 더 가치있는 것을 위해서이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오 13,44). 그리스도가 추종자들을 부를 적에 그분은 그들에게 와서 살라고 한다.

 

죽음과 삶의 주제가 상호 혼합 되어있는 모습은 바오로서간에 자주 나타난다. 이미 제자들은 이 지상의 삶에서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에 부활했다고 바오로사도는 주장한다. “예전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로마서 6,56). 또 다른 곳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그 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골로사이 3,2. 12-13).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것은 죽을 때만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이며, 그리스도교 입문예식의 중심인 세례성사의 의미이기도 하다. 세례성사는 정화예식이 아니라, 실상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성사이다.

 

세례를 받으면서 초기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세상에” 죽고 어리석게 보이거나 미친 것같이 보이게 하는, 심지어 전복적으로 느껴지는 가치관을 받아들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세주와 동맹을 선포하였다. 그것은 구세주의 운명, 즉 체포와 고문과 수치스러운 죽음에 동참하는 선택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런 죽음은 자기 자신과 죄에 죽는 우선적이고 자발적인 과정의 정점일 뿐이었다. 바오로사도의 말처럼, “우리는 매일 죽는 것 같으나,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Ⅱ고린토 6,9)

 

박해시기가 끝났지만, 사막의 교부들은 광야 속에 머물며 다른 영역에서 그들의 생명을 바치고자 했다. 그들의 욕망과 세상의 가치관에 죽으면서 그리스도교 시대에도 사람들이 악덕, 탐욕, 권력에 대한 갈증으로 물드는 것을 보았고, “새로운 생명 안에서” 거닐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러한 영감은 후기 수도회 전통 속에 이어졌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모든 회심이 다 바깥세상과의 급격한 단절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가장 즉각적인 회심의 결과는 처음에 내면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죽는 것 자체는 여전히 실제적이다. 어거스틴 성인은 죄에 대해 죽는 것이 단순히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성찰한다: “나는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 줄 죽음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성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게도 삶과 죽음은 많은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는 육체적 죽음의 문제와 그 너머에 있는 모든 문제들을 직면하기 훨씬 전에 그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함이다. 무기력으로 치닫는 삶의 방식들을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다. 또한 동시에 신비스럽게도 더 활기찬 삶으로 이끄는 죽음의 길도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신앙생활에 각인되어 있는 어떤 표지를 드러내 준다. 그 표지를 읽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단순히 적이나 끝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의 눈에 의하여 우리는 직면하는 모든 상황 속에서 새롭고 더 위대한 생명으로 이끄는 길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우리는 육체적 죽음에 직면했을 때조차, 하느님이 그런 길을 마련하신다고 믿는 것이 더 이상 어떤 비약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나를 붙드는 존재를 신뢰하기

 

헨리 나웬이 생의 마지막 수년 동안에 쓴 저서들을 보면, 그가 이 특별한 본향(죽음)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관상하고 준비했는가를 잘 알아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얼마나 더 오래 살 것인가?... 한가지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매일 매일을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단순한 진리인가! 그런데도 나의 노력은 아직도 부족하다. 나는 오늘 평화를 주었는가? 어떤 사람의 얼굴에 웃음을 띄게 했는가? 치유의 말들을 했는가? 내가 지닌 분노와 회한을 놓았는가? 용서했는가? 사랑했는가? 이런 것들이 진실한 질문들이다! 내가 지금 심는 작은 사랑의 씨앗이 지금 이 세계에서, 또한 앞으로 다가올 삶에서 많은 열매들을 맺을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이것은 그냥 우연히 지나치는 생각들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에 대한 관망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던 사람, 그리고 그런 관망에 따라 온 삶의 태도를 순응시켜 나갔던 사람의 깊은 성찰이다. 죽음에 대하여 던져야 할 중심적인 질문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죽어 가는 모습이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과 하느님의 성령을 보내는 새로운 길이 되도록”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 이다.

 

이러한 나웬의 성찰에 특별한 촉매제가 되었던 것은 새벽공동체로 옮긴 후 겪었던 교통사고였다. 그는 이 사고로 거의 죽을 뻔했는데, 목숨이 위태로웠던 것 이외에 어떤 다른 체험을 하게 되었다.

후에 그는 이 체험을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예수에 대하여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내가 경험했던 그 거룩하고 충만한 현존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내가 본 것은 따스한 빛도, 무지개도, 혹은 열린 문도 아니었다. 내가 느낀 것은 인간적이지만 거룩한 현존, 그 자체였다. 그 거룩한 존재는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또한 모든 두려움을 놓으라고 초대하고 있었다.” 그는 매우 혹독한 고통을 겪었지만 한편으로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쓴다. “죽음은 그 권세를 잃었다. 그리고 나를 너무나 친밀하게 둘러싸고 있던 생명과 사랑 속에 소멸하고 말았다. 마치도 바다를 걷고있는데 파도들이 멀리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다른편 해안가로 안전하게 가고 있었다. 모든 질투, 회한, 그리고 분노가 부드럽게 사라져 갔고, 지금까지 내가 걱정했던 그 어떤 권세보다 사랑과 생명이 더 크게, 더 깊게, 더 강하게 나타났다.”

 

그 전에 나온 책을 읽은 독자라면 나웬의 타고난 걱정하는 성향을 알고 있을 터이고, 그래서 위의 표현이 지닌 의미가 얼마나 큰 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평화의 선물”을 받으면서 나웬은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깨달음을 나눠야 한다고 느꼈다. 영원과 만나는 체험을 한 후, 그는 그에게 주어진 덤 같은 시간을 “지상 그 건너편”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만일 신학이 “하느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라면, 그에게는 “좀 더 신학적으로 살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전에 나온 책에서 나웬은 우리들의 생명이 우리에게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그는 그런 인식을 죽음에까지 적용한다. 우리가 죄책감, 수치감, 분노, 회한을 갖고 죽는다면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세상에 남기는 유산이 되어 우리가족과 친구들의 삶을 옭죄고 무겁게 만들 것이다. 또 다른 한편, 죽음을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느끼는 평화를 다른 이웃에게 전해주는 선물이요 기회로 여기고 떠날 수 있다.

 

나웬은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특히 일생 서커스에 매료되어 있던 그는 한 이미지를 서커스에서 뽑아낸다. 가까이 지냈던 서커스 일가의 한 공중곡예사가 “날으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를 붙잡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한다”라고 말했을 때, 나웬은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 곡예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가 밑에서 붙잡는 사람에게 날아갈 때, 난 그저 내 팔과 손을 그를 향해 뻗칠 뿐이지요. 그러면 그는 나를 붙잡아서 밑의 착지대 안에 안전하게 내리도록 끌어당깁니다... 날으는 사람은 날아야 하고, 붙잡는 사람은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날으는 사람은 팔을 뻗으면서 붙잡는 사람이 그를 위해 밑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서커스의 지혜에서 나웬은 위대한 힘과 위안의 메시지를 발견하였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얼마나 모든 것을 잘 통제하며 다스릴 수 있는가에 따라 우리의 정체성과 성공여부를 판가름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우리 삶의 최종의미는 우리가 얼마나 믿고 놓으며 타 존재의 손에 우리자신을 맡길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그는 십자가 위의 예수님이 했던 말씀을 상기한다. “아버지! 당신의 손에 제 영을 맡깁니다.” 나웬은 “죽는 것은 붙잡는 이를 믿는 것”이라고 성찰했다.

 

나웬은 자신이 죽기 몇 달전, 아담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아담은 그가 새벽공동체에 온 첫 해에 돌보았던 심각한 장애를 지닌 청년이었다. 나웬은 그를 통하여 늦은 나이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이”가 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진정으로 깨달았다.

아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상적 일들(먹고 말하고 입는 것 등)을 혼자서 전혀 할 수 없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왜 그런 사람이 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보다, “왜 하느님이 그런 사람을 살게 했는가?”가 먼저 던져질 질문이었다. 그러나 나웬은 아담의 삶과 죽음에서 복음이야기의 인간적인 재현을 보았다. “아담은 매우 단순하게, 조용히, 그러나 파문을 일으키며 그곳에 있었다. 그는 단지 그의 삶 자체로서 우리 하느님의 놀라운 신비를 선포하였다. ‘나는 소중하고 사랑 받는 존재, 온전하며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난 존재입니다.’ 아담은 침묵으로 이 신비를 증언하였다. 그 신비는 그가 말을 하거나 못하거나, 걷거나 못 걷거나, 자신을 표현하거나 못 표현하거나 상관없이 존재하는 신비였다. 그 신비는 다만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와 상관 있는 신비이다. 아담은 하느님의 사랑 받는 아이였고, 사랑 받는 아이로 존재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선포했던 소식과 같은 소식이다... 삶은 선물이다. 우리 각자는 고유하며 이름으로 알려지고 우리를 만들어 내신 존재에 의해 사랑 받고 있다.”

 

예수님 역시 짧은 공생활 동안에 별로 성취한 바가 없었다. 그분도 세상의 눈으로 보기엔 “실패”하고 죽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아담은 모두 하느님의 사랑 받는 아들들이다 ­예수님은 본성으로, 아담은 ‘입양’으로­ 그리고 그들은 우리들 사이에서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로 살았다. 그것이 아버지 하느님께 봉헌해야 할 유일한 제물이었다. 자녀로서의 삶, 그것이 예수님과 아담에게 유일하게 맡겨진 사명이었다. 그것은 또한 당신과 나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 사명을 믿고, 그것으로부터 살아가는 것이 참다운 거룩함이다”라고 나웬은 쓴다.

 

나웬은 아담에 관한 책을 썼다. 그는 아담의 삶을 통하여 우리 각자의 삶이 예수의 삶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삶 역시, 예수의 삶 안에서 설명된다고 믿었다. 나웬은 아담의 죽음으로부터 팔을 뻗쳐 자신의 비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초대를 느꼈던 것 같다. 중력으로부터, 육체와 정신의 온갖 뒤틀림으로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는, 붙잡는 존재의 품안으로 스며들어가는 비상을. 나웬은 이렇게 썼다. “마치도 아담이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헨리! 두려워하지 말아요. 나의 죽음으로 인해 당신이 죽음을 맞아들이는 것을 돕도록 해 주세요. 당신이 더 이상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당신은 충만하게, 자유롭게, 그리고 가득찬 즐거움으로 살수 있어요.’”

 

그 소리는 전에도 들었던 소리였다. 사후에 발간된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8년 동안 많은 친구들과 친척들이 떠나갔다. 나 자신의 죽음도 그렇게 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전보다 더 깊고, 더 강한 사랑의 소리를 안으로부터 듣는다. 나는 그 소리를 계속 믿고 싶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이끌려서 나의 짧은 삶의 경계를 넘어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이 되시는 곳으로 가고 싶다.”

 

 

죽음의 경고

 

시간은 다양한 얼굴들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시간은 마치 고양이처럼 늘쩍지근하게 기지개를 켜며 별다른 변화 없이 한 가지에 이어 또 한가지 일이 일어나며 지나간다. 그러나 때때로 성서가 kairos라고 표현한 것처럼, 특별한 때가 생겨난다. 무엇인가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기 위하여 무르익은 때, 어떤 결정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위기의 때가 이른다.

 

죽음도 마찬가지로 다른 모습들을 입는다. 멀리 떨어진 나라의 지진피해자들, 혹은 신문에 난 유명인사의 부고기사로 만나는 죽음의 모습은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인 얼굴이다. 그 때 만나는 죽음은 우리자신의 죽음을 잠깐 상기시키며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다. 한가지 일화 같은 모습에 불과하다.

그러나 죽음이 우리와 매우 중요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닥칠 때는 다른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그 때에 죽음은 일화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보는 모든 것에 다른 빛을 던지는 치명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된다. 이 대격변에 영향을 받지 않는 별들, 모든 무죄한 피조물들이 우리를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죽음의 사건이 이처럼 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일어날 때, 모든 것이 달라진다. 가까이 와 있는 죽음을 숙고해도 그것이 가장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새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세계는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다르게 보인다. 두려움, 절망, 공포가 다가온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 다르게 처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수많은 일들, 미완성과 미해결의 많은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이 가까이 오면, 이상하게도 해방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직면했을 때만큼 삶을 충만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고 증언한다. 많은 걱정들과 주의들이 별 상관이 없게 된다. 많은 것들이 그것들의 참다운 가치에 따라 분명해지고 확연하게 드러난다. 또한 더욱 심오해진다. 1945년 나치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던 알프레드 데프(예수회)신부는 감옥에서 이렇게 썼다. “지난 마지막 주간 동안 삶은 갑자기 훨씬 더 온순해졌다.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하게 보였던 수많은 것들이 새로운 차원을 띄게 되는 것 같다. 보이지 않던 온갖 측면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거의 만질 수 있게 된다. 항상 알고 믿었던 것들이 지금은 너무나 구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나는 그것들을 믿지만, 또한 그것들을 살고 있다.”

 

죽음은 가장 용감한 사람들에게도 공포와 두려움을 일으키게 할 수 있지만 더 긍정적인 영향도 가져다 줄 수 있다.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강력하게 정신을 집중시켜서 영적인 통찰과 도덕적 분별력을 크게 해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은 “행복한 죽음”이란 적절한 예고와 준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죽음이라고 한다.

 

초기교회시대의 영적인 대가들은 죽음에 대한 깨우침을 영적인 혜택이라고 하며 감사했다. 예를 들면, 「준주성범」의 저자인 토마스 아 켐피스는 이렇게 썼다. “당신은 마치 오늘이 당신의 죽음의 날처럼 여기며 모든 행위와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결국 모든 날은 우리의 마지막 날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항상 준비하고 살아야 하며, 그래서 죽음이 준비 안된 당신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책의 또 다른 부분에서 아 켐피스는 이렇게 썼다. “만일 사람이 사는 동안 내내, 죽을 때에 발견하고자 하는 자기의 모습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행복할 뿐만 아니라, 현명한 사람이다.”

 

「무지의 구름」(14세기 페스트가 창궐할 때 쓰여진 신비적 고전서)을 쓴 익명의 영국저자는 기도할 때 어떻게 마음을 모을 수 있는지 다음의 충고를 하고 있다. “기도를 시작할 때 ­그 기도가 길건, 짧건 상관없이­ 가장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길은 기도가 끝났을 때에 당신이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기도를 끝내기 전에 당신이 죽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저자는 이어 덧붙이기를, “물론 확실하게 당신은 기도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에 의지하는 것은 잘못이고, 당신자신에게 그것을 약속하는 것은 실수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인정을 하든, 안하든 간에 우리 모두는 탄환이 들어있는 권총을 우리 머리에 대고 살고 있다. 오늘 권총이 발사되지 않으면, 아마도 내일 발사될 것이다. 내일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발사될 것이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가? 모든 말과 행위가 우리의 궁극적인 의도를 담는다면,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나?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일이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인가? 어떤 이가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면, 어떤 걱정들을 놓아야 할까?

 

우리는 전쟁, 테러리즘, 그리고 비이성적인 폭력 등으로부터 오는 죽음의 영상과 실제에 둘러싸여 있을 뿐 아니라, 핵 재앙, 환경파괴로 인한 영혼의 무기력에서도 죽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우리문화 속에서 개인의 죽음은 대부분 병원이나 양로원에 숨겨져 있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의 행동과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하는 중대한 이유나 급박한 약속처럼 보이지 않고, 통계숫자로 우리의식 속에 남게 된다.

 

물론 삶에 대한 우리의 역량을 마비시킬 수 있는 죽음에 대한 병적인 집착현상도 있다. 그러나 그런 현상보다 더 일반적인 현상은 죽음을 피하려는 두려움에 찬 선입견, 전심을 다해 참여하기를 요청하는 삶에 무디어지게 만드는 선입견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모험, 위험에 대한 두려움, 불편함에 대한 두려움, 우리로 하여금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식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뀔 수 있다. 그리하여 죽음의 망령은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모두를 갇힌 죄수로 만들 수 있다. 그러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왕 앞에 자신의 양심을 내보이며 죽음을 불사했던 토마스 모어의 평온함, 자유와 비교해 보자.

 

왕에게 최고의 충성을 서약하라는 친구의 말에 토마스 모어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나는 오늘 죽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일 죽을 것입니다.”

 

성인들이 우리들 모두보다 매 순간이 그들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인위적으로 기대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지만, 죽음에 대한 정기적인 성찰을 통하여 삶의 의미와 종착점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매순간의 가치와 긴급성을 진심으로 깨어 기억하면서 그들은 자신들과 모든 중요한 것들에 대한 명확한 의식을 유지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더 이상 그들에게 족쇄를 채우지 못했다. 그들은 다른 편으로 건너갔다. 그들은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과월했다. 그리고 죽음이 그 권능을 잃었을 때, 모든 것­행복마저도­이 가능하다.

 

 

생명의 씨앗

 

영국의 가톨릭 작가인 도날드 니콜은 암으로 죽으며 생의 마지막시기에 감동적인 일기를 썼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살아있는 그 어느 누구도 죽음에 대하여 나에게 가르칠 수 없다.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하여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죽었거나, 어떤 식으로든 그 경험을 목격한 사람들뿐이다. 순교자들(증거자들)은 적어도 우리에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순교자들과 선조들에게 우리를 동반자로 받아달라고 청한다. 그들이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온 마음을 다해 죽음 속으로 들어가고, 온 마음을 다해, 그리고 즐거움 안에서 죽음에 대한 경험을 포옹하라는 것이다.”

 

처음의 순교자들은 참으로 그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포옹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처형대로 나아가면서 찬송가를 부르거나 공개적으로 기도했다고 초기순교사화는 전한다. 용기와 확신에 가득찬 그들의 모습에 처형자들조차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었고,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을 북돋아 주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자인 터틀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것이다.

 

교회는 시작부터 이들 순교자들을 특별한 안내자로 삼았다. 그들의 죽음은 어떤 한 죽음이 아니라 뽈리까르뽀 성인의 죽음처럼, “복음과 하나된” 죽음이었으며,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재현한 죽음이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면서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닮았을 뿐만 아니라, 부활에 대한 그들의 강력한 신앙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순교시대는 네로와 디오클레시안 시대로 막을 내리지 않았다. 현대세계의 곳곳에서 많은 남녀들이 그들의 신앙에 댓가를 치루었고 그들의 죽음은 그런 의미에서 “복음에 일치된” 삶이었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 그들의 이야기는 죽음에서 끝났기 때문에 특출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들이 우리에게 모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가르쳐 준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최소한도 그들은 한가지 진실을 증언하고 있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과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진실이다. 즉 인간 삶의 가장 고귀한 목적은 할 수 있는 껏 우리의 신체적 실존을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르틴 루터 킹 2세 목사는 1967년의 한 인터뷰에서 위의 진실을 표현하는 태도를 보인다. “나는 매일 죽음의 위협과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수년 전, 만일 죽음이 나를 정복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전혀 내가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아니라 높고, 고귀하고, 선한 진실들을 전하는 나의 의무를 얼마나 잘 수행하는가 이다.”

 

실상 킹은 공적인 여정을 시작하던 초기에 이미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1956년 1월 어느 늦은 밤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사악스러운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 그런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번 걸려왔고 그 때는 보통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미 그는 몽고메리 버스타기 거부운동 이후로 엄청난 폭력과 증오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 자신과 가족들은 더 이상 위협을 견딜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하느님께 향했다. 후에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어디에선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마르틴 루터! 의를 위하여 일어서거라. 정의를 위하여 일어서라. 진리를 위하여 일어서라. 그러면 보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 후에 그는 “모든 것을 대면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다.

 

마르틴 루터 킹의 이어지는 길은 끊임없는 위험에 노출되는 길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지 사흘 후, 그의 집은 폭발했다. 계속해서 감옥에 투옥되었다. 어떤 때는 거의 치명적으로 칼에 찔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의심과 절망의 유혹을 받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그는 계속 사회 불의와 증오의 뿌리에 더 깊숙이 내려갔으며, 복음의 근본적인 도전 속으로 더 나아갔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 약속을 향하여 서서히 다가갔다.

 

1968년 4월 그는 멤피스에서 청소원들의 파업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분위기는 긴장으로 고조되어 살벌했다. 폭력이 코앞에 있었다. 그의 유명한 “꿈”은 점점 더 악몽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3일 저녁, 그는 한 시위에서 연설을 했고 다음의 말들로 끝을 맺었다:

 

“자, 이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앞날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산꼭대기에 가 본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오래 살고 싶습니다. 오래 사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나를 산꼭대기에 올라가라고 하실 것입니다. 나는 꼭대기에서 둘러봅니다. 약속된 땅을 봅니다. 아마도 여러분들과 함께 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오늘밤 우리가 한 백성으로서, 약속의 땅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오늘밤 행복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무도 무섭지 않습니다. 나의 눈은 영광스럽게 오시는 하느님을 봅니다.”

 

그는 다음날 암살되었다.

순교자로서 죽는 것을 교회는 특별한 소명이라고 여겨왔으며, 소수의 사람들이 순교에 초대되므로 아무도 순교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 킹이 암살전야에 암시했던 행복이 그의 죽음보다 우리와 더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성인들의 행복에 관한 한, 그것은 주로 내적인 신뢰의 문제이며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고 해도 내적인 신뢰만 있다면, 그것은 행복으로 가는 올바른 길이며, 그의 영혼과 운명은 사랑스러운 하느님의 손안에 있다. 성인들에게 행복의 기반은 또 하루나, 또 하나의 절기를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신뢰와 확신이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들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없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로마서 14,7-8).

 

 

죽음과 친구가 되기

 

Martyr”(순교자)라는 단어는 그리스말 “증거자”에서 온다. 물론 순교자들은 목숨을 바치면서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그들의 신뢰를 증언한다.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또한 신앙이 어떻게 한 사람으로 하여금 용기와 평온함을 갖고 죽음과 대면 할 수 있게 하는지 증언한다. 물론 순교자의 죽음은 보통 고문과 폭력이 수반되는데, 소수의 사람들한테만 허락되는 예외적인 운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죽음에는 고통과 두려움이 예외 없이 따라온다. 그리고 가장 좋은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에도 모든 익숙하고 친밀한 것으로부터 떠나 홀로 계속 가야하는 순간을 깊게 생각할 때, 두려움은 피할 수 없이 밀려온다. 그런 사실 때문에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도 증언과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죽는 이들 까지도 거룩한 순교자들처럼 증언하고 섬김을 표현할 수 있으며, 남는 사람들의 신앙을 강하게 해주고 격려해 줄 수 있다.

 

죽음에 대하여 그러한 공적인 증언을 해준 사람들 중에 시카고의 사랑 받는 대주교였던 죠셉 버나딘 추기경이 있다. 죽음 앞에서 그가 보여준 용기와 평정은 그가 성취한 다른 많은 일에 대한 기억보다 더 오래 남아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1996년 죽음이 다가왔을 때, 버나딘은 미국의 가톨릭 교회에서 뛰어난 지도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는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초대 사무총장이었고, 후에 주교회의 의장을 지냈다. 핵전쟁에 관한 주교들의 사목교서를 초안한 주교위원회 위원장이었고 신시내티 교구장을 지냈으며, 54세에 추기경에 임명되어 시카고의 교구장이 되었다. 이밖에도 생명의 거룩함에 접근한 교서, 「솔기없는 옷」을 작성하였다. 이 문서에는 교회의 낙태반대, 사형제도 및 안락사 반대, 평화와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 사회의 가난하고 가장 연약한 이들에 대한 투신 등, 교회의 입장에 합류하는 일관성 있는 윤리가 표현되어 있다. 그의 공적생활의 모습은 이러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또 다른 측면, 덜 보여지는 측면이 있었다.

 

그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수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몇 명의 사제들 그룹이 도전적인 질문을 제기하며 그를 만났다. 그들은 버나딘의 삶이 교회에 더 치중해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에게 더 집중되어 있는가를 고려해 보도록 청했다. 그들의 질문은 버나딘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고, 그는 자신의 삶에서 많은 우선순위들을 재고하였다. 먼저 그는 매일 아침 더 일찍 일어나 더 많은 시간을 기도에 쏟았다. 그는 저금을 다 비워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변화는 그의 외모에조차 반영되었다. 한 때는 풍채가 좋았으나 점차 생애 마지막 시기의 모습처럼, 더 수척하고 수도자다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이 모든 것은 조용한 회심의 과정이었지만, 성공한 한 교회사람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앞으로 다가 올 시련에 그를 준비시켰다.

 

1993년 초에 버나딘은 혹독한 시련에 휘말렸다. 한때 신시내티의 신학생이었던 사람이 당시 그의 교구장이었던 버나딘에게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고소한 사건으로 그 시련은 시작됐다. 이런 비난에 당혹스러웠지만, 버나딘 추기경은 차분하게 확신을 갖고 응답했다. 그는 단호하게 그런 주장을 부인하고, 그가 직접 그런 사건들을 다루기 위하여 설립한 심사위원회에서 사건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대방의 인격에 대해 비난하기를 거부했으며, 다른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피해가 될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사건은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극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면허가 없는 치료사의 말을 들었던 상대방은 그의 기억이 믿을만하지 못하다고 인정하면서 즉시 고소를 취하했다. 버나딘의 명성은 씻을 수 없게 손상되었지만, 그는 에이즈로 죽어가던 그 젊은 친구를 개인적으로 만나서 함께 미사를 드리고 그를 용서했다.

 

그래서 이 사건은 행복한 결말을 상으로 받으며 복음에 대한 강력한 증언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버나딘의 십자가의 길에 있어서 그것은 오직 시작일 뿐이었다. 위의 사건이 해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버나딘은 기자회견을 열고 그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발표했다.

 

이 개인적인 정보를 그의 “가족”인 시카고의 시민들과 나누고 싶은 모습은 버나딘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의 솔직함은 교회이든, 사회이든, 공직자들의 전통과 대조를 이루었다. 가장 건강한 상태에서 실제로 장례식때까지 계속하여 보고하는 방식이었다. 버나딘은 담당의사들에게 정기적으로 기자회견을 가지라고 부탁했다. 수많은 미국의 가톨릭인들이 수술, 방사선치료 등 그의 치료에 관한 세부사항까지 알게되었다. 교구장의 일상적인 의무 이외에 그는 같은 암환자들의 비공식 담당신부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수백 명의 환자들이 그에게 다가와 기도와 지지를 청했다. 그는 병든 사람들을 만나고 직분을 행하면서 사제의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했다고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버나딘은 생명의 거룩함에 대한 변치 않는 신념과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의 선물은 고귀한 의무감과 책임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보통 인간의 약함과 연대하는 모습에서 더욱 더 가치 있고 빛을 발했다. 교구민들에게 보내는 사목서한에서 그는 회복기동안 “밤들이 얼마나 긴가를 발견했으며... 때때로 그전에는 거의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 울고있는 자기 자신을 본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은 얼마나 많이 하잘 것 없고 중요치 않은 일로 소모되고 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1996년 8월 그는 다시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암이 간에 전이되었고 수술조차 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에겐 몇 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대교구 일에 대하여 말한 후, 그는 모여든 기자들과 대중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인다. “나는 참으로 성실한 마음으로 내가 평화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이 삶의 이 순간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죽음을 적이나 친구로 바라볼 수 있다. 적으로 본다면, 죽음은 불안과 공포를 일으킨다. 그러면 죽음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죽음을 친구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태도는 참으로 달라진다. 신앙인으로서 나는 죽음을 친구로, 지상의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가는 이동이라고 본다.”

 

이 메시지의 내용은 특별하지 않다. 어느 주일날 강론의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배경과 그런 권위에 의해 표현될 때에 메시지는 비범한 힘을 가진다. 추기경의 발표에서 헨리 나웬의 영향을 감지한 사람들은 틀리지 않았다. 버나딘은 후에 나웬의 방문을 받고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모른다고 표현했다. 나웬은 추기경을 방문하고 죽음을 친구로 여기는 것에 관해 조언을 했다(그러나 나웬은 같은 해인 1996년, 추기경보다 앞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마지막 시기의 노력은 버나딘 자신의 책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화의 선물」에서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인간의 조건에는 항상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한다는 것, 그리고 만일 우리가 ‘놓아버린 다면’, 만일 우리 자신을 온통 하느님의 손에 맡긴다면, 선이 이긴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하여” 썼다고 말한다. 신뢰하고 놓아버리는 과제는 일생 걸리는 과정이며,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 되는 것이라고 버나딘은 알려준다.

 

1996년 9월의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교로서 나는... 인간 생명의 고유한 가치, 그리고 생명에 대한 우리의 공동 책임이라는 도덕적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하여 애썼다. 나의 삶이 천천히 사라져 가는 때에, 나에게 주어진 현세의 시간이 매시간, 매일 마감되는 때에 나는 불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한 확신이, 생명이, 하느님의 존재로부터 흘러나오는 선물이며 우리 모두에게 위탁된 선물이라는 확신이 다시금 선명해지고 있다.”

 

마지막 주간에 생명의 불꽃이 눈에 띄게 짧아지면서 버나딘은 단지 동료 가톨릭인들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무신론자들, 불가론자들로부터도 엄청난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쇠잔한 모습이지만 신앙으로 충만한 사람이 죽어 가는 방식으로 가장 위대한 선물을 주고 증언하는 모습은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버나딘 추기경은 1996년 11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날 시카고시는 정지되었으나, 그의 가르침은 계속되었다. 그의 책이 발간되었고 죽기 며칠 전 그는 봄이 겨울에 따라 올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봄에 살아있지 않을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곧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생명을 경험할 것이다. 비록 죽은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 이 지상에 사는 동안 나의 온 힘을 다해 그분을 섬기도록 부르셨던 것처럼, 지금은 집으로 나를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에 그리고 후에

 

그리스도교는 우리 존재의 신비에 대하여 유일하게 대답을 제시하고 있는 종교가 아니다. 수많은 철학자들과 종교교사들이 인간존재의 근원, 의미, 종착점에 대하여 질문들을 던져왔다. 다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있어 새로운 것은 한 사람­하느님의 아들­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의 미래 운명의 베일이 걷혔다는 것이다. 죄를 벗어버리고 ­무기력의 무게를­ 그리스도의 영을 입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워해야 할 적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영으로 살게 하고 삶을 포옹하며 한 뼘 같은 인생을 믿게 하였고, 지상이란 그 너머에 있는 신비스러운 심연에 열려있는 작은 항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했다.

 

예일대학의 학생들로 가득찬 교실에서 헨리 나웬은 어느 날 칠판에 자신의 생년월일, 1932년을 적고 짧은 줄을 그으며 2010년이라고 적고 그 뒤에 물음표을 찍는다. “이것이 내 인생을 표현할 수 있다”고 그는 청중에게 말했다,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한 기간”(그 방에 있었던 나웬과 학생들 중의 아무도 나웬의 생명줄이 실제로 얼마나 훨씬 짧았는가를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나서 머리를 흔들며 칠판으로 다가와 칠판의 한끝에서 다른 한끝까지 줄을 그으며 말했다, “나는 어디에선가부터 와서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나웬이 깨달았던 것처럼 우리 존재의 근원은 하느님이시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그렇게 가르친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의 궁극적인 종착점이다. 인생에서 우리의 과제는 ­그것이 짧든 길든, 슬픔으로 무겁든 축복으로 가볍든 혹은 대부분의 삶처럼 슬픔과 축복이 혼합되어 있든­ 우리의 진정한 종착점으로 우리를 이끄는 길을 찾는 것이다.

 

명성과 재물, 혹은 위대한 성취 그 어떤 것도 우리와 함께 지상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할 것이다. 회한, 증오, 분노, 그리고 후회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마치 황금처럼 그것들을 생각하며 매달린다. 우리와 함께 그것들을 가져가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일 것이다.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려는 우리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모든 것들을 놓거나 벗어버리는 길을 배워야 한다. 놓아 버리는 것이 덜 고통스러운 길이다. 죽음은 우리가 완성시키지 못하고 남긴 일들을 끝낼 것이다.

 

보는 것을 배우기

 

 

세상의 눈은 교회 문이 닫혔을 때,

나의 눈이 벽 그이상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지상의 삶, 그 이상을 더 멀리 보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의 눈은 영원 깊숙이 들여다보는 눈이다.

 

- 아르스의 본당신부 성 요한 비안네

 

 

“죽는 것을 배우기”로 행복으로 가는 길에 있어 마지막 부분에 도착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생각해보면, 우리 지상의 여정이 끝나는 곳도 죽음이다. “나머지”는 햄릿이 말한 것처럼 “침묵”이다. 그러나 성인들은 우리에게 더 가르쳐 줄 것이 남았다. 그들의 눈에는 삶이나 행복에의 소명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지상의 삶이 담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을 위하여 창조된 존재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삶의 목적은 더 큰 행복을 향하여 우리를 이끄는 것이고, 우리의 갈망, 행위, 그리고 고통들을 그것들의 참다운 가치에 따라 행복의 빛 안에 자리잡게 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우리의 마지막 행복이 성취되는 그 목표를 보는 행위, 진복의 비전이라고 서술하여 왔으며,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이라고 했다. 이 진복의 비전은 무엇보다도 어떤 중재 없이 받게되는 빛, 명료함이 특징이다. 바오로사도가 썼던 것처럼,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Ⅰ고린토 13,12) 이다. 그 비전은 또한 우리를 변화시켜서 우리의 마음과 의지를 재조정하여 눈에 보이는 것들의 참된 가치를 볼 수 있게 한다.

 

단테는 지옥의 심연으로부터 연옥의 산까지, 그리고 마침내 천상낙원의 황홀경에 이르기까지 상상에 의한 순례 여정을 「신곡」에서 묘사한다. 시인이 목적지에 도달할 때, 그는 삼위일체를 응시할 수 있게 인도된다. 삼위일체는 마치도 세 개의 무지개가 서로를 반영하는 모습으로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다. 시인이 이 신비를 꿰뚫어보려고 할 때 갑자기 마음 속에 “거대한 이해의 섬광”을 받게 되고, 그래서 그는 이렇게 적는다. “완전한 균형을 갖춘 바퀴가 돌아가는 것처럼, 나는 나의 의지와 욕망이 태양과 별들을 움직이는 그 사랑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단테가 사용했던 그런 말들로 그리스도교 예술가들은 결단코 다 표현될 수 없는 진복의 상태를 묘사하려고 애썼다. 단테 이후 지금까지도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림, 시, 영화 등으로 시도하고 있다. 한편 현대물리학도 외계에 대한 연구로 “해와 별을 움직이는” 힘에 대한 이해를 더욱 증가시키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나 예술이 답할 수 없는 문제들이 여전히 남는다. 완전한 행복이란 것이 참으로 있는가? 있다면, 그러한 궁극적인 행복이 “우리가 알고 경험하는” 이 지상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우리들과 단테의 상상 속에서 등장하는 그 진복의 비전이 연결되는 것을 지금 보게 해 주는 길이 있는가?

 

대부분의 성인들은 진복의 비전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그들은 가장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상황 속에서도 특별한 차원을 알아보았다. 어거스틴 성인은 모든 참되고 사랑스러우며 선한 것들은 우리를 그것들의 궁극적인 원천으로 이끌어 당기는 촉매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바로 이러한 관점, 방향에 대한 이런 인식 ­원천을 향하여 아무리 희미하게 인식된다 하더라도­ 이 성인들의 특징이다. 원천을 향하는 이런 자세가 우리들에게도 역사, 상업, 그리고 자연의 칙칙하고 우울한 표면을 넘어 제라드 맨리 홉킨스가 칭했던 것처럼, “사물의 심연 속에 있는 가장 사랑스러운 신선함”을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진복의 비전은 어떤 특별한 “종교적” 장소에서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다른 눈으로, 다른 방식으로 보는 것을 배우기만 하면 된다. 어거스틴 성인은, “이 지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하느님이 계시는 우리 마음의 눈을 건강하게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성인들은 건강한 마음의 눈을 가졌고, 행복으로 가는 그들의 모든 가르침과 안내에서 그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성인들은 신앙의 눈으로 보면서 그들의 행동과 태도에, 즉 그들의 일, 사랑, 침묵, 슬픔 등에 목표를 부여한 더 포괄적인 실제 속에서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것이 그들의 행복에 원천이었고, 만일 우리가 그들의 모범에서 배울 마음이 있다면 우리 행복의 원천도 될 수 있다.

 

 

모든 길은 천국으로

 

많은 신학자들, 설교가들, 그리고 예술가들은 천국에 있는 성인들의 행복을 상상했다. 그와 대조적으로 지상에서 누리는 성인들의 행복에 관해서는 거의 주의를 두지 않았다. 실제도 어떤 사람들은 지상의 삶에서 참다운 행복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원할 수 있는 목표인가 하며 회의를 품었다.

 

많은 가톨릭인들은 이젠 소수에 지나지 않겠지만, 아직도 교리문답서의 시작구절을 암기할 수 있다:

 

누가 너를 지었느뇨? 하느님이 지으셨도다.

왜 하느님이 너를 만들었느뇨? 이 세상에서 그분을 알고, 사랑하고, 섬김으로써, 내세에서 그분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기 위하여 만드셨도다.

 

만일 전통적인 교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의 가능성을 무시했다면, 그건 큰 실수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삶을 단지 수단으로, 더 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매우 오래된 경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행복” 이라는 목적은 결코 죽음을 겪는 존재들이 도달할 수 없는 목적이 되고 만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이 질문에 많은 설명을 할애했는데, 주로 행복이 궁극적인 의미에서 “거룩한 정수를 보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재물, 명예, 명성, 권력, 건강, 쾌락 등 일시적인 재화들을 재고한 후, 아퀴나스는 이런 것들이 완전한 행복을 마련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헛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아퀴나스는 “완전한” 행복에 너무나 단호하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그 목적에 미달하는 모든 것은 거명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 목적에 초점을 둔다는 의미에서 아퀴나스는 오랜 전통의 상속자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지상의 삶은 우리의 지정한 나라에서 “외롭게 유배된 추방”의 상태일 뿐이다. 마리아를 흥숭하는 중세 때의 찬송가 “살베 레지나”의 가사를 보면, 우리는 “가난하고, 쫓겨난 에와의 자녀들이며 눈물의 골짜기에서 울며 슬퍼하는” 자들이다. 지상의 삶에서 행복해 보려는 노력은 헛될 뿐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 사람인가를 잊게 할 수 있으므로 꽤 해롭기조차 하다.

 

어거스틴 성인에 따르면, 모든 것은 우리가 마지막 목적지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만큼만 선하고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지상에서의 지나친 행복은 우리가 “수단”에 고착하게 되고 참다운 목표를 잃어버리게 할 위험을 갖고 있다.

 

물론 어거스틴의 이런 경고에는 우리가 유의해야 할 부분이 확실히 있다. 이 지상의 삶에서 우리는 영원히 변치 않을 집을 구할 수 없으므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면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완전한 행복”을 지상에서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어거스틴과 아퀴나스의 경고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 부분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경고인가? 우리가 가장 귀를 기울여야 할 유일한 경고인가?

 

고통과 시련 한 가운데에서 모든 슬픔이 위안을 받고, 모든 눈물이 씻어질 미래의 삶에 우리의 희망을 두는 것은 격려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다가올 어떤 이상적인 낙원을 선호하여 지상의 삶이 지니고 있는 모든 축복, “여정의 즐거움” 자체를 무시해 버리는 영적인 처방에 대해서는 의심해 볼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한 태도는 무관심과 소극적인 경향을 키울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냉정한 광신주의를 발생시킨다. 아무리 영향이 적다해도 은총을 망각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도 독방 감옥에서 편지를 쓰면서 이런 유혹에 저항했다. “나는 우리가 이 지상의 삶 안에서,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보낸 모든 좋은 것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때가 오면 그분께 사랑, 신뢰, 그리고 즐거움을 갖고 갈 수 있도록”

 

비록 천국이 우리 행복의 완성이요 완전함을 나타낸다고 해도, 우리가 그곳에 갈 수 있는 것은 죽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거룩함에 의해서이다. 그렇게 성인들은 가르쳤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천국을 준비하는 길은 하느님의 사랑과 선하심에 한결같이 순응하는 것뿐이다. 천국에 이르는 길은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상의 삶이 단지 눈물의 골짜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지상의 삶에도 참다운 달콤함이 있으므로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고 인정할 수만 있다면, 그 달콤함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고 축복해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성인들은 천국의 완전한 행복과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보이는 그늘진 행복사이에 깊은 틈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많은 성인들은 대부분 지상의 참다운 행복과 천상의 행복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아퀴나스조차도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지상의 어떤 행복이 천상의 참다운 행복을 어느 의미에서 닮아있다고 평가한다. 그런 평가가 다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일리가 있다고 본다.”

 

아퀴나스는 그 연결점이 관상이라고 생각했다. 관상에 의해 우리는 하느님의 정수에 더 가까이 이끌린다. 다른 한편 아일랜드의 6세기 수녀원장이었던 브리지드 성인은 지상의 거룩함을 강조했던 사람으로 연결점을 환대의 실천이라고 본다. 성인은 천국을 맥주호수 주변에 둘러앉은 거대한 가족이라고 비유했다. 성인들마다 제각기 다른 길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인들의 삶을 보면, “여기”와 “다음” 세상 사이에서 보이는 틈이 사라지는 통찰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은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인이 썼던 것처럼, “모든 천국으로 가는 길이 바로 천국”이라는 사실이 분명해 지는 순간이다.

 

 

태양처럼 빛나며

 

토마스 머튼은 자서전, 「칠층산」으로 일찍이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그 명성은 그에게 부담이 되었다. 대중의 마음 속에 그는 영원히 고깔 수도복으로 머리를 깊숙이 가리고 엄격한 수도공동체로 들어가며 행복하게 확신하는 젊은 수도승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세상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그림은 머튼의 수도여정에서 오직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가 무척 어려웠다. 후에 머튼은 너무 화가 나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칠층산은 내가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한 남자의 작품이다.”

 

이 책에 대해 특히 그가 후회하고 있는 측면은 “세상”과 그곳의 운이 없는 시민들에 대한 맹신적 경멸의 태도가 표현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책에서 그는 수도원이 저주받을 세상에서 분리되어 있는 천국이라고 여겼다. 시간이 흐른 후에 그는 “수도원이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님을 깨달았다. 오히려 수도원에 살면서 나는 세상의 모든 고통과 투쟁에 나의 참다운 역할을 한다”고 썼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그의 저서들은 연민이 풍부해지고 범교파적인 작품이 되어 갔다.

 

출간된 일기들 중의 한 부분에서 그는 수도생활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신비스러운 깨우침의 순간을 묘사한다. 깨우침은 수도원에서 가까운 루이스빌에 심부름을 하러 갔을 때 일어났다. “쇼핑구역의 중심인 4번가와 월낫가의 모퉁이에서 나는 갑자기 내가 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으며, 그들은 나에게 속하고 나는 그들에게 속하며, 우리는 전혀 낯선 사람들이지만 결코 서로 이방인이 될 수 없다는 깨달음에 압도되었다. 마치도 특별한 세계, 이탈과 소위 거룩함의 특별한 세계 속에 겉치레로 고립되어 있다는 꿈, 격리되어 있다는 꿈으로부터 잠이 깨어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머튼은 인류와 연대감을 발견하였다. 단지 죄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은총도 함께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을 참다운 행복에의 깨우침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에게 그들 모두가 태양처럼 빛나며 돌아다니고 있다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라고 그는 썼다. “아무도 이방인은 없었다... 천국의 문은 모든 곳에 있다.”

 

머튼은 이 통찰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편협한 종교적 관점의 한계를 벗어나게 되었다. 루이스빌에서 일어났던 이 체험은 매일의 실제가 “변모되어” 영원히 그의 비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순간이었다.

그는 이 변모된 실제를 “순수진리점”이라고 하면서 그것이 우리존재의 중심에 놓여있으며 “전적으로 하느님께 속한” 부분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단어로 표현하자면, 이 순수진리점은 지복의 비전인데 머튼은 하느님의 영광이 우리 존재 안에 새겨진 지점이라고 묘사하였다. “그것은 순수다이아몬드와 같다. 또한 볼 수 없는 천국의 빛으로 타오르고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 안에 있어서 만일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다면, 수천만 개의 빛이 마치 정면의 태양이 보내는 광채처럼 함께 다가와 모든 어두움과 삶의 잔인함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변모

 

이러한 머튼의 체험은 수많은 성인들과 신비가들의 삶에서도 똑같이 발견되고 있다. 노르위치의 쥴리안은 세계를 하느님의 손안에 있는 소중한 개암나무열매라는 비전을 받았으며, 12세기 독일의 신비가인 빙겐의 힐데가르트 성인도 다음과 같이 비전의 체험을 표현한다. “강렬한 빛이 열려진 천국의 창공에서 번쩍였다. 그 빛은 나의 머리를 관통하였고 나의 마음과 온 가슴을 덥혔는데, 태우지 않고 따스한 불길로 그렇게 하였다, 마치도 태양이 그 빛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을 따스하게 데우듯이.” 이런 체험들을 통하여 신비가들은 공통적으로 성서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 우주의 운명, 혹은 단순히 일상의 빛나는 마음에 대한 깨우침을 말한다. 그들이 나누는 것은 실제의 바깥 장막이 잠시동안이라도 옆으로 걷어져서 그 안에 참으로 있는 것이 드러나도록 해주는 섬광 같은 통찰이다.

 

이 체험들은 성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를 떠올리게 해준다. 그 때 예수님은 세 제자들­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갑자기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여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셨다”(마태오 17,2). 성서에서 가장 특별한 이야기들 중 하나이며, 제자들이 비유로서가 아니라 상황 그 자체를 직접 흘낏 볼 수 있었던 경우였다. 미래의 영광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 실제의 더 깊은 핵심에 대한 영감? 베드로는 두려움과 충격 속에서 겨우 말한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갑자기 그 순간은 사라지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제자들은 산을 내려오며 본 것에 대하여, 그 의미에 대하여 서로 중얼거렸을 뿐이다.

 

일상생활에서 그러한 현현은 자주 일어나지 않거나, 거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들은 태양을 똑바로 바로 볼 수 없는 것만큼이나 어떤 노골적인 진리를 바라볼 수 있는 자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므로 오히려 그런 경험이 없는 것이 더 최상이다. 죠르쥬 베르나노스가 쓴 것처럼, “만일 하느님께서 우리가 선과 악 모두에 있어 서로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를 분명하게 알려주셨다면,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의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든 것이 너무나 분명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어떤 순간들을 경험하며 기억한다. 어떤 결정적인 만남이나,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깊은 대화가 그런 경우이다. 갑자기 모든 일상의 베일이 걷어지고 거룩한 땅에 서 있는 우리자신을 느낀다.

 

이런 경험들이 일어나면 우리는 어떻게 했는가? 대부분의 경우는 그것들을 지워버리거나 내쳐버린다. 우리가 소위 현실이라고 부르는 일상의 계획과 일들을 그것이 방해하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성인들에게 그러한 경험은 실제의 진정한 시금석이었으며, 삶의 여정을 제대로 방향 잡게 해주는 별자리였다.

이 결정적인 순간은 아주 단순한 것일 수 있다. 부활의 로렌조 수사는 불란서군대에 오랫동안 복무하고 있을 때 그런 순간을 경험했다. 백년전쟁의 노련한 군인으로 그는 무엇이 공포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잎이 하나도 없는 마른 나무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는 나무의 앙상한 가지들이 봄이 되면 다시 잎으로 덮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갑자기 “하느님의 섭리와 권능에 대한 깊은 영감”을 얻었다. 후에 그는 이 통찰에 의해 파리의 가르멜 수도원으로 곧장 갔고 그곳에서 일생 “하느님의 현존”을 실천하며 살았다. 또한 깨우침의 순간은 도덕적인 도전이나, 인간 고통과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 혹은 다른 성인과의 만남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 4세기의 주교였던 뚜르의 성마르띠노는 한 가난한 걸인과의 만남에서, 에디뜨 슈타인 성인은 아빌라의 대데레사 성인의 자서전을 읽고 그런 순간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발견의 순간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지만, 그 영향은 오래 지속된다.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도 짧은 순간 진리를 만나게 된다해도, 우리가 더 깊고 넓은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초월

 

어거스틴도 「고백록」에서 그러한 순간을 묘사한다. 그가 회심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또한 어머니 모니카가 죽기 며칠 전, 두 사람이 함께 대화를 나누던 중 그런 체험이 일어났다. 수년동안 모니카는 방탕한 아들 때문에 고통을 겪었고 그의 회심을 위해 기도해 왔다. 모니카는 단 한가지 목적을 위해 살았다. 아들이 세례 받는 것이었다. 이 목적이 성취된 지금, 어머니와 아들은 어느 날 오후 성인들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눈이 볼 수 없고, 귀가 들을 수 없으며, 어떤 인간의 마음도 알 수 없는 삶, 성인들의 영원한 삶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마음의 입술을 그분의 샘, 모든 생명의 원천이신 그분의 샘에서 흐르는 천상의 시내에 대고 그 생명수의 세례를 받으며 할 수 있는 껏, 이 위대한 신비를 이해하고자 한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그들은 그 어떤 신체적 쾌락이나 지상의 기쁨도 “성인들의 삶이 가지는 행복”과 비교할 만한 가치가 없고,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사랑의 불길이 점점 더 강렬하게 타오르면서” 그들을 더 높이 고양시키고 영원한 하느님을 향하게 해준다. 그들의 생각은 “다양한 모든 물질세계 위에 펼쳐지고 천국까지 올라가는데, 그곳에서 태양과 달과 별들이 지구를 비추고 있다.”

 

시간을 잊어버리고 모자는 상승을 계속한다. “아직도 더 높이 올라가며, 우리는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며, 놀라고 있습니다. 마침내 당신은 우리의 영혼에 다가오시어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진리의 음식으로 영원히 배불리 먹이고 계시는 영원의 풍요로움이 깃든 그곳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들의 대화는 끊어질 줄 모르고 더 높이 상승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영원한 지혜에 대해 말하고, 그것을 갈망하며, 우리 마음의 온 힘을 다해 끌어안을 때, 찰라의 순간, 그것에 도달하고 만져본다.”

그것은 짧은 산꼭대기 체험중의 하나이며 우리가 그것을 움켜쥐려고 할 때에 사라져버리는 그런 체험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영원한 빛과 아름다움의 영역을 만지려고 갈망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삶에는 아직도 그들이 무엇인가 경이롭고 두려우며 초월적인 어떤 것을 경험했던 때, 자신들만이라도 “이것이 진리다!” 라고 말하도록 하는 어떤 것을 느꼈던 때가 있다.

 

자신의 회심에 대해 말하면서 도로시 데이는 어렸을 때 시카고에서 경험했던 그런 사건을 포함시킨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옆집에 사는 작은 소녀 캐트린 바렛트를 보러 갔다. 현관, 부엌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도로시는 침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곳에는 캐트린의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고 있었다. 도로시의 침입에 전혀 방해를 받지 않는 모습으로 바렛트 부인은 도로시를 돌아보며, 자기 딸과 다른 아이들이 가게에 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기도를 계속했다.

 

도로시는 “난 바렛트 부인에 대해 사랑의 충동을 느꼈지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이 평범한 만남의 기억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도로시가 후에 가난과 불의의 문제에 시달려도 “비참함과 계급투쟁 한가운데에서도 삶의 영광이 빛났던 순간들이 있었다. 바렛트 부인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집에서 아침 10시쯤 설겆이를 끝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이런 작은 사건들이 도로시의 장차 올 회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 한 사건은 딸 타말의 출생이었다. 그러나 행복에 대한 체험만이 그의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도록 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삶에서 부족한 것에 대한 두려움, 이웃들, 그가 열렬하게 지지했던 가난한 이민자들의 결핍 역시 도로시의 회심에 영향을 끼쳤다. 이민자들은 대부분 충실한 가톨릭인들 이었으며, 그들은 물질적인 고통을 넘어 그들의 삶에 의미를 주는 진리와 가치들을 새기며 살고 있었다.

 

회심한 후, 그는 몇 년 사이에 피터 모린의 도움을 받으며 가톨릭일꾼운동을 소명으로 삼았다. 그러나 데이는 아직껏 외로움과 슬픔을 느꼈다. 그는 “인간운명의 몹시 비참한 시련에 대해 신음하고” 있었다. 그러나 데이는 모든 것 안의 거룩함에 대한 깊은 직관을 결코 잃은 적이 없었다. 그는 예수님의 육화에 의해 모든 생명들은 그것이 아름답든 추하든, 은총으로 만져지고 있다고 믿었다. 모든 인간과 자연 속의 모든 것들­밤에 짐승의 울부짖음, 바닷가의 미풍 등­은 도로시에게 하느님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가 겪어야 했던 고난과 불안전 속에서도 공동체 삶이 천국잔치를 일별케하고 미리 알려준다는 믿음을 견지했다. 일과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에 대해 물었을 때, 도로시는 단순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지요.”

 

 

진복의 비전

 

어거스틴 성인은 그의 책 「신국론」을 천국에 있는 성인들의 활동에 대한 긴 성찰로 마무리한다. 그는 특히 우리 모두가 하느님을 “직접 대면” 할 것이라는 바오로 사도의 약속에 관심을 두었다. 직접 하느님을 대면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어거스틴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성인들은 우리가 지상에서 모든 것을 보듯이, 신체의 눈으로 하느님을 본다는 말인가? 어거스틴은 쉬운 질문이 아니라고 한다. 아마도 어거스틴은 이렇게 제안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음의 눈”으로 보게될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 몸의 눈이 닫히면, 영적인 눈으로 보는 모든 곳에서 하느님이 “온 우주를 다스리고 계심”을 볼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사실인가? 그러한 행복이 가능한가? 그러한 행복은 우리의 현재 삶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지금 행복하고 싶은 욕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우리 각자는 천국에 대해 생각할 때 제각기 다른 이미지를 떠올린다. 취향도 다르고, 궁극적인 행복이 성취되는 상태에 대한 개념도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다양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한가지만은 확실하다. 즉, 우리는 천국을 우주의 지도에 배치할 수 없다. 천국의 실제를 인간 이성으로 증명해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이 실제인가? 이것은 객관적이며 중립적인 과학이나 논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복음에 나타나는 진리는 객관적인 검증이 아니라, 개인적인 결단에 호소하고 있다. 복음서의 진리는 논리적인 삼단논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살아가는 경험에 의하여 입증될 뿐이다. 그러므로 “어디에 머무십니까?” 라는 일반적인 질문에 예수님은 그들을 제자로 초대하시며 대답하신다, “와서 보라”(요한 1,39).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아는 길들이 있다. 이 시점에서 바오로 사도가 다음과 같이 서술했던 것처럼, 신앙이 대두된다. “사물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근거, 증거를 갈망하고 있다.” 비록 우리가 성인들의 체험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도 그들의 증언에 주의할 수는 있다. 그들은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을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 이 세계와 그 안의 평범한 삶을 다른 빛으로 인식했다고 증언한다. 쟝 삐에르 드 꼬사드가 성찰한 것처럼, “신앙은 지구를 낙원으로 변화시킨다. 신앙에 의하여 우리 마음은 천국 가까이 있다는 기쁨으로 고양된다.”

 

“하느님이 계신 곳은 어느 곳이나 천국이다”라고 아빌라의 데레사는 말했다. 그리고 하느님은 모든 곳에 계시므로 우리는 매일의 삶이 참으로 천국에 이르는 길, 우리 행복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음을 보고 있다. 신앙의 눈으로 보는 것을 배우게 될 때, 우리는 그만큼 마지막 행복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 마지막 행복을 어거스틴은 「신국론」의 끝 찬미가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침잠하며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보게 될 것이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게 될 것이고, 찬미할 것이다.”

 

신앙의 삶이란 반드시 수도원이나 교회에서만 지내야 하는 생활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성인들은 체계화된 종교적 실천과정을 거치며 살았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기도했고, 일찍 일어나 성서를 묵상하고, 묵주신공, 정기적인 양심성찰, 영적 지도자나 수도회 장상들의 충고에 복종하는 삶을 살았다. 그들은 신앙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했다. 또한 단식, 쇄신, 축일 등 전례력을 충실히 따랐다. 성인들의 삶을 연구하고, 성지를 순례하며, 성사생활을 했다. 이 모든 것들은 깨어있는 신앙의 눈을 훈련시키기 위한 도구들, 습관들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실천하는데 있어 더 중요한 의미는 하느님으로부터 그들의 마음을 떼어놓는 삶의 모든 산만함을 차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느님으로부터 그들을 떼어놓을 수 없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었다.

 

오래된 교리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기 위하여, 그럼으로써 다음 세상에서 하느님과 영원히 행복하기 위해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한다. 이 가르침에 대하여 당황스럽고 만족할 수 없는 것은 어떤 인과관계를 독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는 측면이다. 즉 천국, 행복이 이 지상에서 거룩하게 살았던 것에 대한 “보상” 이라고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의 관계 이외에 다른 관계나 연결은 없는 것인가? 만일 거룩함의 길이 또한 행복의 길이며, 영원이란 이 지상에서 우리가 실제로 취했고 추구했던 선택의 봉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면, 교리가 훨씬 더 타당하게 여겨질 것이다.

빅토리아시대의 저명한 신학자인 죤 헨리 뉴먼 추기경은 한 설교에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왜 거룩해져야 하는가를 물었다. 하느님은 우리의 약함을 고려하여 또 다른 쉬운 기준을 만드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

 

뉴먼은 이런 질문에 대답한다.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 천국에 애써 들어갔다 해도 그는 그곳에서 행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천국에 가게 하는 것은 자비가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이란 하느님의 현존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뜻 안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쁨이 없는 곳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거룩함이란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다주는 어떤 압제적인 승리의 티켓이 아니다. “천국은 거룩한 사람들에게만 천국이며 행복한 자리이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천국이 될 수 없다” 라고 뉴먼은 말한다.

 

천국은 거룩한 사람들 이외에는 천국이 아니다. 그러나 거룩함의 여정을 걸으면서 성인들은 토마스 머튼과 함께 “천국의 문은 어느 곳에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한 빛 속에서 우리는 이 지상의 삶 역시 우리가 거룩해지는 만큼 그리고 신앙의 눈으로 보기를 배우는 만큼, “행복의 자리”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도스토예브스키의 「카라마죠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거룩한 죠시마 신부의 통찰이었다. “사람들이여, 당신들 주변에서 하느님의 선물을 보라! 맑은 하늘, 깨끗한 공기, 부드러운 풀들, 새들을. 자연은 아름답고 무죄한데 우리들, 오직 우리 사람들만이 죄가 많고 어리석다. 우리는 삶이 천국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직 삶이 천국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때에만 삶은 우리에게 그 온갖 아름다움을 보여줄 것이며,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울게 될 것이다.”

 

성인들은 죽음의 경고에 대하여 말하고 영적인 긴박함에 대한 감각을 높여준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자각은 모든 상황 속에서 모든 때에 양성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자.

 

네덜란드의 가르멜회 사제였던 티투스 브랜스마는 유대인들을 옹호하다가 나치에 체포되어 처형되었는데, 다카오 수용소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보내온다. “나는 그분의 손이 하시는 일 속에서 하느님을 뵙고 모든 보일 수 있는 것 안에서 그분의 사랑의 흔적을 본다. 그래서 때때로 나는 다른 모든 기쁨을 넘어서는 최고의 기쁨에 사로잡힌다.”

 

무엇보다도 이런 자각이 우리세계에 너무나 필요하다. 이 자각은 삶이 그 모든 불합리함과 잔인함의 세력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의미로 가득 차 있으며, 선하다는 확신을 고무시킨다. 또한 노르위치의 쥴리안이 말했듯이 이 자각은, “모든 것이 좋을 것이다. 모든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들의 모습이 좋을 것”이라는 희망을 지지해 준다.

맺는 말




하느님의 지혜로 가는 길에 있는 여행자들은 더 멀리
갈수록 길이 더 열리고, 무한하게 뻗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 오리겐




나는 성인들에 관한 책을 읽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중세의 전설들, 영적 비망록, 순교전, 그리고 헌신에 관한 안내서 등등. 그러나 그런 노력이 행복하기 위한 충분조건이라면 토마스 머튼이 말하는 것처럼, “나는 요람에서 지금까지 볼 때에 매우 행복한 사람, 영적인 백만장자가 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행복이나 거룩함이란 우리가 무엇을 읽는가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실천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매일은 새로운 실패들을 가져다 준다. 나는 참을성이 줄어든다. 나는 작은 것들에 대해 걱정하고 다른 사람들을 당연하게 여긴다. 온갖 혼란스러움에 휘말리고 은총의 징표에는 무감각하다. 영웅적인 행동을 꿈꾸지만 애덕을 행할 수많은 기회들을 게을리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사람처럼 나는 행복을 염원한다. 이러한 욕구는 인간존재의 특징이고, 우리가 보다 풍요로운 삶에 초대받고 있다는 징표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이곳 저곳에서 행복을 찾고 어떤 야망을 성취하거나 어렴풋한 위기를 해결하면 행복이 따를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경험에 의하면, 내가 공부했고 알고 있는 성인들의 지혜가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행복이 지나가는 느낌이나 바깥의 조건, 상황에 있지 않다고 믿었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참다운 행복이 우리가 거룩함이라고 하는 것의 이면이라고 알려준다. 거룩함과 행복은 똑 같은 실천으로 얻어지며 똑같은 목표에 모인다.
만일 거룩함이 어떤 천성이나 도덕적인 완성을 의미한다면 이런 목표는 오로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 그러나 거룩함이란 “올바른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어떤 규정이나 처방전 같은 것도 아니다. 거룩함이란 존재하는 습관, 삶의 어떤 충만함, 혹은 “사랑스러운 영”에 더 가까운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존재목표와 근거를 충만하게 채워주는 어떤 품성, 기질의 이름이다. 그렇지만 이런 품성, 기질은 그냥 우연하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앞서 묘사했던 의미의 거룩함이라면, 그것은 상당한 일과 실천에서 오는 결실이다.
거룩함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에게 마감이란 결코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그리고 오로지 그 길에 있을 따름이다. 그런 까닭에 마치 성인들을 어떤 다른 피조물을 대표하는 것인 양 말하지 말고, “거룩함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면 즉시 우리는 성인들, 우리의 동료여행자들과 일치되는 것을 느낄 것이며 그런 느낌은 성인들과 우리를 갈라놓는 느낌보다 훨씬 더 깊은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이 그렇게 되길 원하는 만큼 “진행중”인 성인들이다. 확실히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멀리 나아간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그의 청중들을 성인들이라고 부르면서 아무런 구별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성인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성인들인 것이다.
똑같은 이유로, 행복으로 가는 길은 없다. 다만 행복의 길, 쾌활함과 균형의 길, 우리로 하여금 경험을 받아들이고, 인간다움과 용서를 얻는 길, 매순간의 거룩한 깊이 뿐만 아니라, 독특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길이 있을 뿐이다. 매우 자주 우리들은 마치도 “정신적인 망원경”을 통하여 보면서 다른 동료인간들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우리가 보는 것이 다 하잘 것 없고 지루하며 의미없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우리의 행복에 대한 갈망이 거룩함에 대한 초대의 길과 합쳐지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집중하고 몰두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을 새로운 빛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새로운 빛 속에서 일상적인 삶은 한없이 가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찬란히 빛나고 생기 돋게 된다.









이러한 생각들의 중요함은 내가 이 책을 거의 끝낼 즈음, 한 오랜 친구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다시 확인되었다.
나는 척 매타이를 28년 전 어느날 밤, 그가 나의 대학 기숙사 방에 나타났을 때 처음 만났다. 나는 그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몰랐으나, 어쨌건 그의 방문은 나에게 때맞춘 방문이었다. 그 해 겨울 18살이 되어가면서 나는 양심적인 병역기피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며 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가던 시절, 내 주위에는 이 병역기피의 문제가 왜 중요한가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척은 이해하고 있었다. 나의 딜레마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는 차를 얻어 타고 주를 넘어 나를 보러 왔다.
후에 알았지만, 척의 이런 태도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도덕적인 갈림길에 선 젊은 사람 누구에게나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어떤 문제이건 간에, 그는 다가와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상대방이 더 깊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숙고해 보도록 이끌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의 엄청난 에너지, 사명에 대한 의식,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비전에 매료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척과 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날 밤 우리는 밤새도록 얘기를 나누며 그의 철학과 삶의 여정에 대하여 나누었다. 나는 그가 자신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학을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징집서를 불태우며 이동하는 평화조성가의 삶을 택했는지 들었다. 할 수 있는 대로 철저하게 그는 비폭력의 정신으로 살았고, 간디, 톨스토이, 도로시 데이 등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의 가장 중대한 주제는 어떤 상황에 처했건 간에 우리의 응답과 태도를 취하는데 있어 항상 가져야 할 자유였다.
나는 그가 엄격한 채식주의자로서 일주일에 하루를 단식하고, 모든 쇼핑은 값이 싼 떨이시장에서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소유물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고행은 어떤 도덕적인 명분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훈련과 단련의 문제이기도 하며, 어떤 고행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가능한 고행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어떤 완고함이나 도덕주의적인 느낌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아타나시우스 성인이 안토니오 성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처럼, “그는 전혀 걱정스러워 하지 않았다. 그의 영혼은 차분하고, 전혀 우울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쾌활하다.” 척은 여정에서 만나는 누구에게나 자유와 책임의 정신을 전했고, 결국 각자의 이상에 따라 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표현했다.
이러한 척의 모범에 힘입어서 나는 대학을 떠나 뉴욕에 있는 가톨릭 일꾼으로 가서 도로시 데이와 함께 일했다. 그 후 수년간 척의 여정과 나의 여정은 자주 마주쳤다. 도로시 데이를 존경했지만, 그의 영적인 감수성은 퀘이커의 정신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그는 “내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영혼과 다른 이들의 영혼 속에 있는 “하느님의 씨앗”을 배려하였다. 실제로 척은 종교적인 표시를 피했고, 심지어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지 조차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알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산상수훈을 더 철저하게 살았던 사람이었다.
꽤 오랫동안 척의 평화조성 에너지는 대안적 경제분야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비폭력의 원칙들을 가난한 이들의 삶을 진정으로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체화시키고 싶어했다. 그 목적을 위하여 그는 투자기금, 토지신탁, 그리고 기타 프로그램들을 설립하여 수많은 가난한 가족들과 어려운 공동체들에게 혜택을 주었다. 과제나 도전이 어떻든지 그는 항상 온 힘을 다해 성심껏 일했다. 그의 어머니가 나중에 말했던 것처럼, “그의 삶은 그의 일이었고, 그의 일은 그의 삶이었다.”
이제 그런 삶이 끝나가고 있었다. 갑상선암으로 오랜 투병을 해 왔던 척은 이제 먹을 수도 없게 되었고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하면서 시골집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서 나는 서둘러 그를 보러 떠났으나 만나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음날 도착했을 때, 그는 컴퓨터를 무릎 위에 놓고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그는 매우 늙고 약해 보였으나 그 익숙한 정신은 여전히 그의 눈 속에, 그리고 겨우 키보드를 약하게 쳐서 모니터에 나타나는 글 속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가 아플 동안 너무나 소원했던 것을 사과했으나 척은 그런 말을 흘려 들으면서, “우리 둘은 너무나 적절하게 다 바빴다”고 하며 타자를 치면서 “그렇지만 지금 너는 이 곳에 있잖아! ”하고 응답했다.
소식을 이것저것 말하면서 나는 쓰고 있는 이 책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거룩한 사람들의 삶을 통하여 무엇이 삶을 온전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만드는가를 밝혀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 주제에 관해 나도 많은 생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함께 나누자고 청했다. 그는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병든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화가 나고 두려우며 회한을 느끼지 않는지 물었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치명적인 진단을 받으면 무엇보다 먼저 사람들은 혼자 있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다르게 살수도 있었는데 하고 방황한다. 그러나 나는 결코 혼자 있어 본 적이 없다. 나는 좋은 친구들과 공동체에 둘러싸여 살았고 의미 있는 일을 갖게 된 축복을 받았다. 나는 결코 돈이나 가장 잘난 사람이 되려는 압력 때문에 결정을 해 본적이 없다. 물론 되돌아보면 다르게 처리했었으면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만일 달랐더라면 하는 것은 내가 삶에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는 때때로 용기를 잃게되는 유혹을 받는다고 인정했다. “도로시 데이가 「긴 외로움」 후기에서 ‘기쁨의 의무’를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라고 썼던 것을 기억하지. 그러나 내가 누렸던 삶과 오고 있는 마지막을 묵상할 때에 나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삶이었어. 그렇게 좋은 일과 좋은 친구들을 은총으로 받을 수 있었으니’ 하고 생각해. 나는 우리에게 한번도 의미 없는 선택은 없었다고 확신해. 그런데 우리가 속해있는 문화는 사람들을 의미 없는 소비적 선택으로 거의 질식시키면서 가장 중요한 삶의 결정에 있어서는 그들이 너무나 무력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지.­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야.”
그는 때때로 멈추고 때로는 타자로 쳤던 말을 고치기도 했다. 그는 너무나 쇠약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 대화의 첫 번 주제에 대하여 다시 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들어오는 순간을, 또한 우리 앞에 놓여진 상황들을 선택할 수 없고, 결정을 하거나 그런 결정 때문에 직면하게 되는 결과들을 선택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는 언제나 결정할 수 있다... 우리는 결코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단 하나의 ‘소유물’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존엄성, 성실함, 영혼 같은 것이다. 그 점이 우리를 정의해 주는 결정이며,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첫 번째 ‘삶의 교훈’이지.”
그는 조카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매일 아침 해야 할 결정은, 내가 일어날 수 있고 나에게 주어진 것, 내가 잃은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결정이다. 혹은 일어나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난 여기 있네. 움직이기 시작하자!’ 좋은 일. 좋은 친구들, 그리고 훌륭한 가족에 대해 감사하면 ‘기쁨의 의무’를 기억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야.”
대화는 그날 늦게까지 계속됐다. 가을 해가 지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삶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감을 표현하고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척은 “도스토예브스키는 모든 시대에 소수의 바보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타자를 쳤다.
그날 우리의 대화는 가족, 친구들, 일 등 평범한 일상에 대한 것이었지만 나는 위대한 영혼과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내가 묘사하려고 애쓰는 온전하고도 행복한 삶을 나름대로 찾았던 사람이었다. 28년이 지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가 이미 찾은 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날 밤 돌아오면서 나는 나의 아내와 잠들어 있는 아이들, 그리고 해야할 일, 또한 기쁨의 의무에 관하여 생각했다.









이 책에서 생각해 본 성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도덕적 영웅주의, 애덕, 하느님에 대한 열정, 혹은 영적인 삶의 천재성으로 당대 사람들 위에 우뚝 서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적인 삶들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그들의 희생, 비전, 혹은 작은 선행조차 우리들의 능력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안내자로서 별로 의미가 없다는 위험스러운 평가를 내리게 된다. 도로시 데이는 이러한 위험을 민감하게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당신을 성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당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라고 데이는 표현했다.


그러나 역사에 나타난 엄청난 수의 거룩한 사람들 중에서 시성된 성인들은 오직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성인들은 직계가족이나 이웃사람들 이외에는 익명으로 남아있고 알려지지 않는다. 이 익명의 성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찬란한 모습이고, 또 어떤 이들은 단순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한가지 필요한 것”만을 이루기 위하여 투쟁했고, 그 한가지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복음의 모습에 그들의 삶을 일치시키는 것이었다.
세상의 증가되는 선은 부분적으로 평범한 행위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상황은 당신과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다지 나쁘지 않다. 그것은 성실하게 숨겨진 삶을 살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 속에 휴식하고 있는 사람들 덕분인 것이다.
시성된 성인들이 영적인 삶의 천재들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다 천재로 불리는 것은 아니다.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도 친절함과 연민이라는 평범한 행위로 우리의 거룩함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다른 성인들에 의해 부드럽게 다져진 이 거룩함의 길을 걸어가면서 우리는 우리자신이 행복으로 가는 길 위에 서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화책의 결말 같은 행복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행복 속에는 더 크고 더 위대한 어떤 것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며, 그런 결말만이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희망을 정당화 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교훈은 그 여정의 입구를 제시해 준다. 어떤 사람들은 더 멀리 나갈 것이다. 또 다른 이들은 거의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위대한 일처럼, 이 여정도 항상 첫 번 발걸음으로 시작된




하느님의 지혜로 가는 길에 있는 여행자들은 더 멀리
갈수록 길이 더 열리고, 무한하게 뻗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 오리겐




나는 성인들에 관한 책을 읽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중세의 전설들, 영적 비망록, 순교전, 그리고 헌신에 관한 안내서 등등. 그러나 그런 노력이 행복하기 위한 충분조건이라면 토마스 머튼이 말하는 것처럼, “나는 요람에서 지금까지 볼 때에 매우 행복한 사람, 영적인 백만장자가 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행복이나 거룩함이란 우리가 무엇을 읽는가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실천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매일은 새로운 실패들을 가져다 준다. 나는 참을성이 줄어든다. 나는 작은 것들에 대해 걱정하고 다른 사람들을 당연하게 여긴다. 온갖 혼란스러움에 휘말리고 은총의 징표에는 무감각하다. 영웅적인 행동을 꿈꾸지만 애덕을 행할 수많은 기회들을 게을리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사람처럼 나는 행복을 염원한다. 이러한 욕구는 인간존재의 특징이고, 우리가 보다 풍요로운 삶에 초대받고 있다는 징표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이곳 저곳에서 행복을 찾고 어떤 야망을 성취하거나 어렴풋한 위기를 해결하면 행복이 따를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경험에 의하면, 내가 공부했고 알고 있는 성인들의 지혜가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행복이 지나가는 느낌이나 바깥의 조건, 상황에 있지 않다고 믿었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참다운 행복이 우리가 거룩함이라고 하는 것의 이면이라고 알려준다. 거룩함과 행복은 똑 같은 실천으로 얻어지며 똑같은 목표에 모인다.


만일 거룩함이 어떤 천성이나 도덕적인 완성을 의미한다면 이런 목표는 오로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 그러나 거룩함이란 “올바른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어떤 규정이나 처방전 같은 것도 아니다. 거룩함이란 존재하는 습관, 삶의 어떤 충만함, 혹은 “사랑스러운 영”에 더 가까운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존재목표와 근거를 충만하게 채워주는 어떤 품성, 기질의 이름이다. 그렇지만 이런 품성, 기질은 그냥 우연하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앞서 묘사했던 의미의 거룩함이라면, 그것은 상당한 일과 실천에서 오는 결실이다.


거룩함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에게 마감이란 결코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그리고 오로지 그 길에 있을 따름이다. 그런 까닭에 마치 성인들을 어떤 다른 피조물을 대표하는 것인 양 말하지 말고, “거룩함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면 즉시 우리는 성인들, 우리의 동료여행자들과 일치되는 것을 느낄 것이며 그런 느낌은 성인들과 우리를 갈라놓는 느낌보다 훨씬 더 깊은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이 그렇게 되길 원하는 만큼 “진행중”인 성인들이다. 확실히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멀리 나아간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그의 청중들을 성인들이라고 부르면서 아무런 구별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성인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성인들인 것이다.


똑같은 이유로, 행복으로 가는 길은 없다. 다만 행복의 길, 쾌활함과 균형의 길, 우리로 하여금 경험을 받아들이고, 인간다움과 용서를 얻는 길, 매순간의 거룩한 깊이 뿐만 아니라, 독특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길이 있을 뿐이다. 매우 자주 우리들은 마치도 “정신적인 망원경”을 통하여 보면서 다른 동료인간들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우리가 보는 것이 다 하잘 것 없고 지루하며 의미없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우리의 행복에 대한 갈망이 거룩함에 대한 초대의 길과 합쳐지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집중하고 몰두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을 새로운 빛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새로운 빛 속에서 일상적인 삶은 한없이 가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찬란히 빛나고 생기 돋게 된다.









이러한 생각들의 중요함은 내가 이 책을 거의 끝낼 즈음, 한 오랜 친구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다시 확인되었다.


나는 척 매타이를 28년 전 어느날 밤, 그가 나의 대학 기숙사 방에 나타났을 때 처음 만났다. 나는 그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몰랐으나, 어쨌건 그의 방문은 나에게 때맞춘 방문이었다. 그 해 겨울 18살이 되어가면서 나는 양심적인 병역기피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며 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가던 시절, 내 주위에는 이 병역기피의 문제가 왜 중요한가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척은 이해하고 있었다. 나의 딜레마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는 차를 얻어 타고 주를 넘어 나를 보러 왔다.


후에 알았지만, 척의 이런 태도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도덕적인 갈림길에 선 젊은 사람 누구에게나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어떤 문제이건 간에, 그는 다가와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상대방이 더 깊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숙고해 보도록 이끌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의 엄청난 에너지, 사명에 대한 의식,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비전에 매료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척과 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날 밤 우리는 밤새도록 얘기를 나누며 그의 철학과 삶의 여정에 대하여 나누었다. 나는 그가 자신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학을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징집서를 불태우며 이동하는 평화조성가의 삶을 택했는지 들었다. 할 수 있는 대로 철저하게 그는 비폭력의 정신으로 살았고, 간디, 톨스토이, 도로시 데이 등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의 가장 중대한 주제는 어떤 상황에 처했건 간에 우리의 응답과 태도를 취하는데 있어 항상 가져야 할 자유였다.


나는 그가 엄격한 채식주의자로서 일주일에 하루를 단식하고, 모든 쇼핑은 값이 싼 떨이시장에서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소유물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고행은 어떤 도덕적인 명분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훈련과 단련의 문제이기도 하며, 어떤 고행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가능한 고행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어떤 완고함이나 도덕주의적인 느낌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아타나시우스 성인이 안토니오 성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처럼, “그는 전혀 걱정스러워 하지 않았다. 그의 영혼은 차분하고, 전혀 우울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쾌활하다.” 척은 여정에서 만나는 누구에게나 자유와 책임의 정신을 전했고, 결국 각자의 이상에 따라 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표현했다.


이러한 척의 모범에 힘입어서 나는 대학을 떠나 뉴욕에 있는 가톨릭 일꾼으로 가서 도로시 데이와 함께 일했다. 그 후 수년간 척의 여정과 나의 여정은 자주 마주쳤다. 도로시 데이를 존경했지만, 그의 영적인 감수성은 퀘이커의 정신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그는 “내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영혼과 다른 이들의 영혼 속에 있는 “하느님의 씨앗”을 배려하였다. 실제로 척은 종교적인 표시를 피했고, 심지어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지 조차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알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산상수훈을 더 철저하게 살았던 사람이었다.


꽤 오랫동안 척의 평화조성 에너지는 대안적 경제분야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비폭력의 원칙들을 가난한 이들의 삶을 진정으로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체화시키고 싶어했다. 그 목적을 위하여 그는 투자기금, 토지신탁, 그리고 기타 프로그램들을 설립하여 수많은 가난한 가족들과 어려운 공동체들에게 혜택을 주었다. 과제나 도전이 어떻든지 그는 항상 온 힘을 다해 성심껏 일했다. 그의 어머니가 나중에 말했던 것처럼, “그의 삶은 그의 일이었고, 그의 일은 그의 삶이었다.”


이제 그런 삶이 끝나가고 있었다. 갑상선암으로 오랜 투병을 해 왔던 척은 이제 먹을 수도 없게 되었고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하면서 시골집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서 나는 서둘러 그를 보러 떠났으나 만나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음날 도착했을 때, 그는 컴퓨터를 무릎 위에 놓고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그는 매우 늙고 약해 보였으나 그 익숙한 정신은 여전히 그의 눈 속에, 그리고 겨우 키보드를 약하게 쳐서 모니터에 나타나는 글 속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가 아플 동안 너무나 소원했던 것을 사과했으나 척은 그런 말을 흘려 들으면서, “우리 둘은 너무나 적절하게 다 바빴다”고 하며 타자를 치면서 “그렇지만 지금 너는 이 곳에 있잖아! ”하고 응답했다.


소식을 이것저것 말하면서 나는 쓰고 있는 이 책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거룩한 사람들의 삶을 통하여 무엇이 삶을 온전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만드는가를 밝혀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 주제에 관해 나도 많은 생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함께 나누자고 청했다. 그는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병든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화가 나고 두려우며 회한을 느끼지 않는지 물었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치명적인 진단을 받으면 무엇보다 먼저 사람들은 혼자 있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다르게 살수도 있었는데 하고 방황한다. 그러나 나는 결코 혼자 있어 본 적이 없다. 나는 좋은 친구들과 공동체에 둘러싸여 살았고 의미 있는 일을 갖게 된 축복을 받았다. 나는 결코 돈이나 가장 잘난 사람이 되려는 압력 때문에 결정을 해 본적이 없다. 물론 되돌아보면 다르게 처리했었으면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만일 달랐더라면 하는 것은 내가 삶에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는 때때로 용기를 잃게되는 유혹을 받는다고 인정했다. “도로시 데이가 「긴 외로움」 후기에서 ‘기쁨의 의무’를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라고 썼던 것을 기억하지. 그러나 내가 누렸던 삶과 오고 있는 마지막을 묵상할 때에 나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삶이었어. 그렇게 좋은 일과 좋은 친구들을 은총으로 받을 수 있었으니’ 하고 생각해. 나는 우리에게 한번도 의미 없는 선택은 없었다고 확신해. 그런데 우리가 속해있는 문화는 사람들을 의미 없는 소비적 선택으로 거의 질식시키면서 가장 중요한 삶의 결정에 있어서는 그들이 너무나 무력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지.­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야.”


그는 때때로 멈추고 때로는 타자로 쳤던 말을 고치기도 했다. 그는 너무나 쇠약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 대화의 첫 번 주제에 대하여 다시 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들어오는 순간을, 또한 우리 앞에 놓여진 상황들을 선택할 수 없고, 결정을 하거나 그런 결정 때문에 직면하게 되는 결과들을 선택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는 언제나 결정할 수 있다... 우리는 결코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단 하나의 ‘소유물’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존엄성, 성실함, 영혼 같은 것이다. 그 점이 우리를 정의해 주는 결정이며,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첫 번째 ‘삶의 교훈’이지.”
그는 조카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매일 아침 해야 할 결정은, 내가 일어날 수 있고 나에게 주어진 것, 내가 잃은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결정이다. 혹은 일어나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난 여기 있네. 움직이기 시작하자!’ 좋은 일. 좋은 친구들, 그리고 훌륭한 가족에 대해 감사하면 ‘기쁨의 의무’를 기억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야.”


대화는 그날 늦게까지 계속됐다. 가을 해가 지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삶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감을 표현하고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척은 “도스토예브스키는 모든 시대에 소수의 바보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타자를 쳤다.


그날 우리의 대화는 가족, 친구들, 일 등 평범한 일상에 대한 것이었지만 나는 위대한 영혼과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내가 묘사하려고 애쓰는 온전하고도 행복한 삶을 나름대로 찾았던 사람이었다. 28년이 지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가 이미 찾은 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날 밤 돌아오면서 나는 나의 아내와 잠들어 있는 아이들, 그리고 해야할 일, 또한 기쁨의 의무에 관하여 생각했다.









이 책에서 생각해 본 성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도덕적 영웅주의, 애덕, 하느님에 대한 열정, 혹은 영적인 삶의 천재성으로 당대 사람들 위에 우뚝 서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적인 삶들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그들의 희생, 비전, 혹은 작은 선행조차 우리들의 능력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안내자로서 별로 의미가 없다는 위험스러운 평가를 내리게 된다. 도로시 데이는 이러한 위험을 민감하게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당신을 성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당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라고 데이는 표현했다.


그러나 역사에 나타난 엄청난 수의 거룩한 사람들 중에서 시성된 성인들은 오직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성인들은 직계가족이나 이웃사람들 이외에는 익명으로 남아있고 알려지지 않는다. 이 익명의 성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찬란한 모습이고, 또 어떤 이들은 단순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한가지 필요한 것”만을 이루기 위하여 투쟁했고, 그 한가지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복음의 모습에 그들의 삶을 일치시키는 것이었다.


세상의 증가되는 선은 부분적으로 평범한 행위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상황은 당신과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다지 나쁘지 않다. 그것은 성실하게 숨겨진 삶을 살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 속에 휴식하고 있는 사람들 덕분인 것이다.


시성된 성인들이 영적인 삶의 천재들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다 천재로 불리는 것은 아니다.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도 친절함과 연민이라는 평범한 행위로 우리의 거룩함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다른 성인들에 의해 부드럽게 다져진 이 거룩함의 길을 걸어가면서 우리는 우리자신이 행복으로 가는 길 위에 서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화책의 결말 같은 행복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행복 속에는 더 크고 더 위대한 어떤 것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며, 그런 결말만이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희망을 정당화 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교훈은 그 여정의 입구를 제시해 준다. 어떤 사람들은 더 멀리 나갈 것이다. 또 다른 이들은 거의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위대한 일처럼, 이 여정도 항상 첫 번 발걸음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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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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