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역사
Wisdom : A History
Trevor Curnow 트레버 커노 / 정연우 / 한문화
글을 시작하며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지혜를 갈망해왔다. 어떤 이는 지혜가 인간이해의 범주를 벗어난다고 믿으며 본질적으로 신성한 것으로 간주했다.
어떤 현자는 물리적 고민에서 벗어나고자 은둔과 사색의 삶을 추구하지만, 오마하의 현자 워런 버핏이 그런 삶을 추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역사적으로 지혜는 조언자, 재판관, 치료사, 마법사, 점술가, 시인, 발명가 등의 역할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
지혜로운 자는 늘 사회의 엘리트로 대접받는다.
이 책은 인류역사 속에서 드러난 다채로운 형태의 지혜를 보여 주고자한다.
지혜와 관련해 한 가지로 합의된 개념정의는 없다.
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사례를 언급해보자.
"지혜는 철학적 제1원리다. 제1원리는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근본적으로 설명해주는 지식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지혜란 영혼이 건강한 상태를 뜻한다." - 키케로.
"지혜란 신을 숭배하고 신에게 헌신하는 신앙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가 부분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 외에도 지혜에 대한 정의는 수없이 많다.
지혜에 대한 내 관점은 간단하다. 지혜는 원칙적으로 사람에 관한 것이다.
즉 지혜는 무엇보다도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발현되고 비롯된다.
격언은 으레 지혜롭다는 평판이 자자한 사람이 했던 말이라고 여겼던 고대의 관습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이 실제로 그 말을 했다는 증거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잠언>에 실린 격언 3천 개는 솔로몬이 직접 지었다고 알려졌지만,
입증할 만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 솔로몬 사후 수백 년이 지난 뒤 세상에
나타난 智慧書라 불리는 성경 제2 정전을 전부 그가 지었을 리는 만무하다. 사람들이 이 책을 솔로몬이 지었다고 믿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 책의 실제 저자는 독자들이 그런 결론에 이르도록 수많은 단서를 글에
심어 두었다. 솔로몬이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자기저서의 신뢰도를
크게 높이려 했던 것이다. 인류역사 속에 많은 격언이 지혜로운 자의 입을
찾아간 듯 보이는 사례는 단지 솔로몬 시대에 새롭게 생겨난 관행이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지혜롭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살면서 부딪치는 여러 문제에 대처하는 능력이 지혜와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삶의 문제에 대처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삶의 문제에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인식의 한계 때문이다."
- 조지프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많은 사람들이 흔히 꿈을 꾸는 것과 다름없는 상태로 살아간다는 견해는
다양한 사상적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각종 영웅담에서 주인공은 잠에서 깨어나는 일종의 각성을 통해 새로운 빛 속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이를 통해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세상문제를 더 잘
다룰 수 있게 된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이러한 개념을 묘사한 이야기를 남겼다.
실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동굴을 벗어나 빛 속으로 나아간 자들 뿐이다.
이는 지혜와 인지능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비유다. 이같은 생각은 여러 시대 다양한 문화권에서 볼 수 있다. 현인은 남들보다 큰 그림과 넓은 지평을
더 뚜렷하게 볼 줄 아는 사람이며, 지혜의 빛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조언을 구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배를 만들거나 페인트를 칠하거나 구두를 수선하는 일을 묻기 위해 지혜로운 자를 찾아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지혜와 관련된 조언은 그다지 전문적이거나 기술적이지 않다. 지혜로운 사람이 지닌 기술은 삶을 잘 꾸려 나가고, 좋은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다. 이를 보고 '지혜는 대처능력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지혜를 최소한만 이해한 표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잘사는 삶을 두고 번창이라는 한 차원 높은 표현을 썼다. 유사한 개념층위의 정점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상생활에서 우리에게 좋은 조언을 해주는 사람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본래 올바른 조언을 해주는 사람을 가려내기는 어려우며, 그렇기에 지혜를 탐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역사기록에는 거짓예언자, 치명적 결점을 지닌 영웅, 잘못된 길을 제시한 선지자들이 가득하다.
1장. 신과 지혜
대부분의 사회, 문화, 종교에는 지혜를 관장하는 신이 있다.
힌두교의 사라스바티와 가네샤, 이집트의 이시스와 토트, 그리스의 아폴로와 아테나, 로마의 미네르바, 북유럽의 오딘과 오그마, 불교의 문수보살,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
이러한 신들은 형상과 능력이 제 각각이며, 모두 지혜와 어느 정도 연관성은 있으나 같지는 않다. 이는 마치 지혜가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 같다. 고대의 지혜를 살펴볼 때 혼동되거나 모순된 점이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고대 소수의 사람들만이 글을 쓸 줄 아는 사회에서 서기는 대부분 지혜로운 자였다. 서기는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사회적 엘리트에 속했으며,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인물인 경우가 많았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들의 서기관으로 여겨졌던 토트에게 문자의 발명자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2장. 신화와 전설 속의 지혜
전통적으로 신의 使者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물고기보다 새를 보편적으로
이용했다. 일반적으로 신은 하늘에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는 신비한 현자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왕이라고도 불리는데 동방에서 찾아왔다고 한다. 세 사람의 이름은 주로
발타사르, 가스파르, 멜키오르로 알려져 있으며, 그들의 유해는 12세기 이후 퀼른대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런데 성경 어디를 봐도 이들이 정말 3명이었는지, 왕이었는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세 사람의 이름은 지어낸 것이며, 3이라는 숫자도 유일하게 동방박사를 언급한 마태복음에서 이들이 세 가지 선물을 바쳤다는 기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때로 이들은 아라비아, 인도,
페르시아의 왕으로 표현된다. 또한 다른 전승에서는 이들이 3명이 아닌
12명이었다고도 한다.
복음서에서 이들을 지칭한 표현은 마기로, 성경번역자들은 이를 점성술사로 옮겼다. 이야기 속에는 분명히 점성술이 등장한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메시지를 읽었다고 주장했다. 마기가 무엇을 뜻하든, 왕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2세기의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는 그의 저술에서 이들이 왕이거나 왕에 준하는 인물이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밝혔다. 아마도 이들이 헤롯 왕을 직접 대면할 정도로 비중있는 인물로 묘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3명이었다는 해석은 3세기의 신학자 오리게네스의 저술에 기원을 두고 있다. '마기의 경배'로 불리는 2세기의 로마 프리실라의 카타콤 벽화가 이들에 대한 최초의 묘사다.
에녹은 創世記에 등장하는 인물로, 聖經에서의 비중은 희박하지만 어쩐
일인지 지혜롭기로 상당히 명성이 높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365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 창세기 5:21~24.
이 짧은 문장에서 에녹에 대한 모든 신화가 탄생했다. '그를 데려가셨다'는
표현은 그가 죽지 않았고, 더 높은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로 본다.
3장. 역사 속의 지혜
솔로몬. 솔로몬은 장자가 아니었기에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 책략을 써야 했다. 40년간이 통치기간 동안 풍족하게 지냈지만 재물을 허비했고, 그 결과 아들에게 분열된 왕국을 물려 주었으며, 그의 사후 왕국은 둘로 갈라졌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솔로몬은 지혜로운 자는 고사하고 위대한 군주조차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솔로몬의 이름은 지혜를 연상시킨다.
솔로몬 사후 수백 년 뒤에 만들어진 <잠언>이 솔로몬의 이름으로 나온 것도 그의 명성 덕을 보기 위해서였다. 지혜로 명성 높은 사람이 격언의 출처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며, 솔로몬은 그러한 영광을 가져갈 만한 대중적 인기가 있는 인물이었다.
솔로몬은 누가 진짜 엄마인지 가려내기 힘든 상황에서 아이를 둘러 잘라
두 여인에게 반쪽씩 내주라는 명령으로 진자 엄마를 가려냈다. 사실 솔로몬의 지혜를 묘사한 일화는 반쪽 아기 이야기가 유일하지만, 어쨌든 이 판결에 사람들이 탄복했다. 하지만 만약 두 여인이 모두 아기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禪불교에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남전 화상은 동당과 서당의 수행승들이 고양이를 두고 다투었으므로 고양이를 잡아 들고 말했다. "그대들이여, 무엇인가 한마디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고양이를 살려 줄 테지만, 말할 수 없다면 베어 버릴 것이다." 수행승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전은 마침내 고양이를 베어 버렸다.
밤에 조주가 외출하고 돌아왔다. 남전은 낮에 있던 일을 조주에게 이야기했다. 바로 조주는 신발을 벗어 머리에 얹고 나가 버렸다. 그러자 남전은 말했다. "만일 조주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고양이를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 無門關 14칙 남전참묘(南泉斬猫) : 남전이 고양이를 죽이다.
일곱 현자. 고대 그리스의 일곱 현자가 누구였는지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은 BC.7세기 혹은 6세기에 살았던 자들이다.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에 따르면, 일곱 명은 델포이에서 모두 함께 만났다고 한다. 이는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며, BC.582녀에 일어났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플라톤이 제시한 칠현자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밀레토스의 탈레스 - BC.585년에 일식을 예측했다고 전해진다.
이 기록은 서양철학사에서 연대를 신뢰할 수 있는 가장 오랜 기록이다.
덕분에 탈레스는 흔히 서양의 첫 번째 철학자로 불린다.
마틸리네의 피타코스 - 현명한 지도자이자 입법자였다.
프리에네의 비아스 - 타고난 연설가였으며, 부당한 핍박을 받는 자들의 수호자였다.
아테네의 솔론 - 아테네 법을 재정비했으며, 시에도 재능이 있었다.
린도스의 클레오불로스 - 시, 경구, 수수께끼를 잘 만들기로 유명했다.
첸의 뮈손 -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에서 당대에 살아 있는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신탁을 받았는데,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스파르타의 킬론 - 고결한 성품과 진실한 조언으로 아주 명망이 높았다.
이들이 당대의 현자로 불렸던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이들이 당대의 누구보다도 지혜로웠던 것일까? 플라톤은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답변을 내놓았다. "그들은 모두 스파르타의 문화를 동경한다. 그들의 지혜는 모두가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문장과 인상적인 격언을 사용하는 스파르타의 문화에 속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이 <프로타고라스>를 쓴 시기가 델포이에서 칠현자가 모두 모였던
시기로부터 200년 후임을 감안하면, 플라톤 역시 당대에 상식으로 통용되던 지식을 그대로 반영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혜를 간단, 명료하면서도 기억하기 쉬운 형태로 표현한 것을 다른 말로
격언이라고 한다.
죽림칠현. 죽림칠현은 3세기에 중국에 살았던 도교철학자 집단이다.
혜강 - 죽림칠현의 중심이고, 시인이자 음악가였다. 죽림칠현의 모임장소로 알려진 대나무 숲이 그의 집 근처에 있었다.
유영 - 술병과 삽을 든 종을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술병은 술을 마시고 싶을 때 언제든 마시기 위해서, 삽은 그가 죽으면 곧바로 땅에 묻기 위해서다.
"술에 취한 자에게는 세상 모든 일이 강가의 개구리밥처럼 보인다." 그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그는 집에 있을 때면 늘 옷을 벗고 지내서 찾아오는 많은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곤 했다. "천지가 집이요, 이 집은 내 옷"이기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완적, 완함, 상수, 왕융, 산도.
공적인 세상은 복종을 높이 평가하고 요구했지만, 그들은 자발성을 드러냈다. 공적인 삶은 술에 취하지 않은 맑은 정신을 강요했지만, 그들은 술에
취한 흥겨운 삶을 택했다. 그리스의 견유학파와 마찬가지로, 도교의 마음의
고향 역시 사회의 변두리 내지는 경계지역에 있었다.
지혜의 집. 자기인식이 곧 지혜라는 관점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에 새겨진 격언 중 하나였다.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아부 자파르 알 만수르는 762년에 바그다드를 건립한 인물이다. 그는 새롭게 만든 도시가 권력의 중심이자 학문의 중심이 되기를 바랬다. 그는 힌두교 학자들을 바그다드로 초청해 귀중한 문헌들을 많이
모았다. 그는 열정적으로 도서를 수집했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고서관을
만들었다. 대다수의 문서가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 그리스어로 쓰여
있었으므로, 모두를 아랍어로 번역할 사람들을 데려와야 했다. 아랍학자들은 번역된 문헌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 더욱 발전시키고 활용할 수 있었다.
차후 이러한 모든 일을 계획, 수행하는 기관을 지혜의 집으로 불렀는데 번역부서, 도서관, 학술원 등으로 구성되었다. 최우선 과제는 가치있는 지식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지혜의 집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그들이 수집할 수 있는 모든 그리스의 과학, 철학 책을 바그다드로 가져와
아랍어로 번역했고, 이를 토대로 거 깊은 학문적 발견과 토론을 이끌어 냈다. 지혜의 집이 중요한 이유 중에는 그것이 여러 문화의 교차지점에 있었다는 사실도 포함된다.
칼리프 알 마문은 당대의 가장 완벽한 세계지도를 완성했다. 위대한 수학자 무하마드 이븐 무사 알 콰리즈미도 그의 통치기에 지혜의 집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최초로 아라비아 숫자체계에 대한 책을 지었다. 이를 인도에서 발전시킨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숫자체계다. 이 체계를 아라비아 숫자로 부르는 이유는 전적으로 알 과리즈미 때문이다. 알고리즘이라는
단어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대수학(algebra)이라는 용어도 그의 저서 <알 자브르>에서 유래했다.
당시 라틴 지역 학자들은 유클리드 기하학을 거의 혹은 아예 몰랐지만,
무슬림 학자들은 열정적으로 탐구했다. 칼리프 아부 자파르 알 만수르는
유클리드에 깊은 영감을 받아 바그다드를 기하학적 무늬에 따라 설계했고, 신하들에게 그리스어 책을 아랍어로 번역할 때 제일 먼저 유클리드의
<원론>을 넣도록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바그다드와 지혜의 집의 위상도 하락했다. 1258년 바그다드를 점령한 몽골군에게 아바스 왕조의 마지막 칼리프가 처형당했다.
다행히 그 시기는 이미 지혜의 집의 결실이 카이로, 다마스쿠스, 이스파한 등 다른 무슬림 지역의 학문중심지로 전해진 이후였다.
영성, 학문, 정치는 지혜가 드러나는 세 가지 형태 혹은 방식으로 널리 여겨진다. 詩도 지혜와 자주 연관되는 소재로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마법과 발명은 역사적으로 지혜와 연관성이 높았다.
4장. 문학과 지혜
과연 글이라는 수단으로 얼마나 많은 지혜를 담아 낼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당대 그리스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였지만, 아무 것도 글로 남기지 않았다. 예수나 붓다에 대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의 글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언어라는 수단은 기대만큼 우리의 생각을 완벽하게 전달해주지 못한다.
"지혜가 말로 전해질 수 있다면, 누구나 자기 형제들에게 말해주었을 것이다." - 장자.
그래도 언어와 문자에는 지혜로운 문학작품을 만들어 내어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줄 수 있는 힘이 있다.
우파니샤드와 베단타. 인도의 현자들이 설명한 만물의 이치가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200년 사이에 만들어진 <우파니샤드>이며, 이를 완전하고
절대적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전통 힌두교 사상이다. 하지만 그 다양한 문헌들 안에서 하나의 통일된 사상체계를 정립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자는 문헌을 편파적으로 선별하거나,
특정 문장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혹은 둘 다일 것이다.
<우파니샤드>에서 정립된 모든 철학적 논의를 말하는 베단타라 부르는데, <우파니샤드>에 대한 해석과 접근방법이 수없이 많은 것처럼, 베단타 철학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모든 <우파니샤드>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우파니샤드>에서 하나의 단일한 사상체계를 정립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그럼에도 <우파니샤드> 철학의 기본적인 입장은 괘나 단순하고 확고한 데다가 이해하기도 쉽다.
만약 우주만물에 내재해 있는 영혼이 있다면, 그것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반드시 있다. 우리도 우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자들의 말씀은
바로 그 이치를 설명하는 것이다. <우파니샤드>에서는 모든 실재하는 것에 내재된 우주의 영을 브라만, 개별적인 존재들에 내재된 영을 아트만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현자들의 체험은 브라만이기도 하지만 아트만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믿음은 인도철학의 근간을 뒷받침한다.
즉 그 수많은 인도철학은 바로 이 믿음을 이끌어 내기 위한 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다.
현자들의 지식은 직접 체험을 통해 얻어낸 것이다. 비록 그 지식을 전하기
위해 언어라는 수단을 극한까지 활용한 것이 <우파니샤드>와 그에 딸린 수많은 주석이긴 하지만, 이들은 한 번도 언어가 가장 적절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파니샤드>를 통해 자신들의 체험을 정확하게 묘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체험을 따라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러한 기술들을 모두 통칭하는 용어가 요가다. 산스크리트어 요가(yoga)는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나로 묶는 것을 뜻한다.
모든 종류의 요가 수행에 내포된 사상은 지극히 단순하다. '어떤 대상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그 대상으로 직접 들어가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대상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파니샤드>의 맥락에서 요가란
브라만과 아트만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 내지는 도구다.
요가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으며, 모든 요가는 우리가 만물의 본질을 보는 데에 방해가 되는 것을 제거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목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통제하고, 내면에 집중하고, 침착하게 인내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평상시 우리의 인식은 욕망, 흥미, 야망 따위에 왜곡된다. 우리는 언제나 이 세계를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인식하려 한다. 그러기에 <우파니샤드>는 우리에게 좀 덜 이기적이고 덜 자기 중심적으로 살라고 촉구한다. 여기에는 도덕적인 이유가 아닌 실용적인 이유가 있다. 이기적인 마음은 우리가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욕망하게 되면, 대상을 평소처럼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요가의 목표는 우리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그러한 인식의 장막을 벗겨 내는 것이다.
<우파니샤드>는 일반독자 뿐 아니라 힌두교와 인도철학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들도 섣불리 이해했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텍스트다.
원활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이 동반되어야 한다.
반야경과 중관학파. 불교문헌 <반야경>의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기원전 100년 경 인도에서 작성되었다는 추론이 가장 합리적이다. 이는 <우파니샤드>가 쇠락하는 시점에 <반야경>이 등장했다는 뜻이다.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냐파라미타(prajna paramita, 반야바라밀다)는 일반적으로 '완벽한 지혜'로 번역한다. paramita(바라밀다)는 '완벽,궁극'이라는 뜻이고, prajna(반야)는 대상을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반야바라밀이라는 문헌의 맥락에서는 '대상의 본질을 꿰뚫는 직관'으로 보는 것이 옳겠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 즉 반야를 완성한다는 뜻은 '그러한 지혜를 함양함으로써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다'로 풀어 쓸 수 있다.
첫 <반야경>은 기원전 1세기에 쓰였지만, 이후 1천 년에 걸쳐 발전하면서
내용도 달라지고, 범위도 넓어졌다. 불교경전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반야심경>과 <금강경>도 <반야경>의 일종이다. 이들 역시 <우파니샤드>와 마찬가지로 내용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데, 의도적인 측면도 있다. 인도의 신성한 경전은 전통적으로 주석이 있어야 완전해진다. 있는 그대로 직역한 <금강경>을 보고 내포된 의미를 온전히 깨닫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금강경>을 해설한 책이 있기는 하지만, 가장 잘 된 해설서조차도 또 다른 해설이 필요할 정도다.
"완전한 지혜란 모든 지식을 갖춘 상태다... 그녀는 눈먼 자에게 빛을 줌으로써 모든 두려움과 고통을 떨치게 해준다... 그녀는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된 슬픔과 어둠을 흩어 버린다. 그녀는 그릇된 길에 빠진 자들을 안내해준다... 그녀는 보호받지 못하는 자들을 보호해준다." - <소품반야경>.
여기서 '그녀'란 반야바라밀을 신격화한 표현이다. 신격화된 반야바라밀은 조력자, 수호자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엄밀히 따졌을 때, '그녀'를 과연 완벽한 지혜의 화신이라 칭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우파니샤드>와 마찬가지로 <반야경>도 철학적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모두 저자들의 경험을 가능한 한 그대로 드러내 보이기 위해 썼다.
이 문헌들은 저자가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들의 궁극적인
관점은 "존재(色,thing)의 자성(본질)은 비어 있으며, 마음의 묘한 작용으로 존재한다. 이는 서로 떼어 낼 수 없는 관계다."라는 것이다.
空은 <반야경>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기도 하지만, 중관학파라는 철학적 사조의 바탕이 된 개념이기도 하다. 중관학파의 철학체계 전체를 관통하는 논점은 그 어떤 것에도 자성이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 空. 즉 사회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으로 본질은 어떤 항구적 본체 없이 생멸한다. 空은 붓다가 브라만교의 장사밑천인 윤회를 끊어 버리기 위해 사용한 개념으로, 윤회의 토대인 영혼의 불변성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다. 구체적인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 낸 붓다의 空 개념을 형이상학 논점으로 옮겨서 복잡성에 갇혔다.
"모든 것은 실제이자 비실제이다. 모든 것은 실제이기도 하고, 비실제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실제도 비실제도 아니기도 하다.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 나가르주나. <중론송>. 2세기.
겉보기에 진리는커녕 아무 의미조차 없는 듯하다. 이 문장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이 문장의 논리구조는 4구부정(四句否定)이다.
4구부정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옵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1) 모두 참이다.
2) 모두 거짓이다.
3) 모두 참인 동시에 거짓이다.
4) 모두 참도 거짓도 아니다.
과연 어떤 옵션이 맞는 것일까? 맞는 옵션이 있기는 할까?
4구부정은 네 가지 옵션이 모두 참임을 증명하는데 쓰기도 하지만,
모두 참이 아님을 증명하는데도 쓰인다. 모든 옵션이 참임이 증명되었다면, 이는 모두가 참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네 가지 옵션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네 가지 옵션이 모두가 참이 아니라고 해도 고를 수 있는 옵션은 남아 있지 않다. 어느 쪽으로 접근하든 4구부정의 결론은 같다.
대상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안주하는 우리에게,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결국 이처럼 모순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언제나 잘못된 방식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제3의 해석도 가능하다. 어느 측면에서는 모든 것이 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리 만물(色)에 자성(본질)이 없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만물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이러한 모순을 확실하게 해소할 수 있는 해석은 하나 뿐이다.
서로 다른 측면의 두 가지 진실(참)을 인정하고 따로따로 분리해서 받아들이면 모순은 없어진다. 모순은 논리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이므로, 이렇게 인정하는 편이 낫다.
그러나 만약 중관학파의 사상을 <반야경>에서 유래한 혹은 파생된 사상으로 여긴다면, 이는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반야경>의 기본적인 논점이라는 뜻 된다. 그러므로 4구부정을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상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받아들이고 논의를 이어 갈 수 없다.
모순은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이는 논리를 초월해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순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논리에 굴복하겠다는 뜻이다.
<우파니샤드> <반야경> 그리고 <반야경>에서 파생된 베단타와 중관학파의 문헌 속 지혜는 모두 형이상학적 논점을 주로 다룬다. 세상의 궁극적인 실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으며, 설명한 바를 체험을 통해 확인하길 요구한다. *空. 즉 사회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으로 본질은 어떤 항구적 본체 없이 생멸한다. 空은 붓다가 브라만교의 장사밑천인 윤회를 끊어 버리기 위해 사용한 개념으로, 윤회의 토대인 영혼의 불변성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다. 구체적인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 낸
붓다의 空 개념을 형이상학 논점으로 옮겨서 복잡성에 갇혔다.
교훈문학. 고대 이집트의 유명한 <프타호텝의 교훈>은 이렇게 시작된다.
"영원히 살아 계실 이세이 폐하의 신하로서 수도의 관리자이자 고관을 맡고 있는 프타호텝의 교훈."
파라오 제드카레 이세이는 기원전 2414~2375년 이집트를 통치했다.
이 책의 저자는 그의 관료 프타호텝이 지었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솔로몬 등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지혜로 명성이 높은 이들이 지었다는 교훈서는 실제 저자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대개 교훈문학은 마치 아버지가 축적한 경험을 아들에게 전해주듯이 쓰였다.
"누군가의 탄원을 들어줘야 할 때는 친절한 태도로 탄원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탄원자는 찾아오게 된 사연을 다 이야기할 때까지 누군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 <프타호텝의 교훈>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는 전통적인 교훈서로는 <아메네모페의 격언>도 있다.
"행복과 건강을 위한 수칙과 삶의 교훈을 전해주고자 한다... 아들에게 바른 삶의 길을 제시함으로써 세상의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 그가 악의 길을 멀리하도록..." - <아메네모페의 격언>.
이 책은 <잠언>과 무척이나 유사하며, <프타호텝의 교훈>보다 1천 년 후에 나왔다. 아메네모페 역시 고위관료였다. 고대 서아시아와 이집트 지역에는 이와 같은 교훈문학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저울 추를 무겁게 하지 말고, 무게를 속이지 말고, 자의 눈금을 줄이지
말라..." - <아메네모페의 격언>.
이같은 조언은 장사꾼들의 미심쩍은 행위가 수천 년 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아메네모페 이후 1천 년 뒤 <앙크쉐손키의 교훈>이 등장한다. 앙크쉐손키는 지혜로운 의사였는데,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하기 전에 감옥에서 아들에게 전해줄 교훈집을 완성했다고 한다.
"호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이자를 내면서까지 돈을 빌리지 말라."
- <앙크쉐손키의 교훈>.
"고양이를 보고 웃지 말라." - <앙크쉐손키의 교훈>.
* 고양이 머리를 가진 여신 바스테트와 관련된 미신으로 추측된다.
"사원의 부는 그 신성함에 있고, 창고의 부는 그 비축물에 있으며,
지혜로운 자의 부는 그의 말 속에 있다." - <앙크쉐손키의 교훈>.
비슷한 기원전 5세기 경 <아이칼의 지혜>가 있다. 아이칼은 기원전 7세기에 아시리아의 센나케리브 왕과 그의 아들 에사르하돈을 모시던 관료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 네 입이 너를 슬픔에 빠뜨리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라... 나는 쓰디쓴 모과와 꽃상추도 먹어 봤지만, 그 무엇도 가난보다 쓰지는 않았다...." - <아이칼의 지혜>.
교훈문학은 세계 곳곳에서 꽤 오래 전부터 있었다.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 특히 자녀에게 전하고자 하는 욕망은 인류공통의 오래된 역사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교훈문학은 사람들의 삶을 저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만들어졌다.
"옮길 장소를 미리 살펴두지 않았다면, 원래 있던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된다. 한쪽 발을 제대로 딛지 않은 채로 다른 발을 움직이면 넘어지고 만다!...
다수가 의견을 하나로 모으면 아무리 약한 자라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 - 좋은 조언의 보석함>. 사캬 판디타(1182~1251).
"장차 지도자가 될 사람은 미리 높은 자리에 오를 준비를 해야 한다.... 사치스럽게 살지도, 구두쇠처럼 살지도 말라... 진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공정함을 받아들이고, 항상 정중히 행동하라... " - <지도자를 키우는 교육과 훈육에 대한 노트>. 마드하브 라오 신디야. 인도북부 괄리오르 왕. 1925.
중국에는 은둔학자 홍응명(홍자성)의 <채근담>이 있다. 책의 제목은 철학자 왕신민이 "사람이 항상 나물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일을 다 이룰 수 있다."라고 한 것에서 나온 것이다. 홍응명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태도로 유교, 도교, 불교의 철학을 융합해 썼다.
"타인의 실수와 잘못은 덮어 주되 자신의 실수와 잘못은 덮어두지 말라...
명예와 부를 논하기 꺼리는 자는 아직 그것들을 잊지 못한 자다...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가짐은 독한 술을 마실 때 얻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콩죽을 먹고 찬물을 마실 때 얻을 수 있다." - <채근담>.
교훈의 다른 말은 교육이다. 이집트 교훈문학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자녀교육의 일환으로 교훈문학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글을 배우는 아이에게 교훈문학을 베껴 쓰게 함으로써 가치를 내면화하고 다음 세대에까지 전해지게 했다. 이집트에서 글을 배울 수 있는 어린이는
극소수였기 때문에, 교훈문학이 지향하는 가치는 바로 엘리트 계층이 지향하는 가치였다.
"먹을 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개처럼, 여자에게 푹 빠져서는 안 된다."
- 아즈텍 격언.
"모든 일에는 알맞은 때가 있으며, 때로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 아즈텍 격언.
교훈문학은 인간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에서 빛나는 보석으로 탈바꿈시키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목표로 하는 인간상은 사회에 따라 다르고, 같은 사회이더라도 계층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지혜문학과 성경. 2세기 무렵부터 유대교에서는 <욥기> <전도서> <잠언>을 지혜를 다루었다는 이유로 다른 경전들과 구별하기 시작했다. 이들 경전은 후대에 추가된 <솔로몬의 지혜서> <집회서>와 더불어 유대교와 기독교의 핵심적인 지혜문헌으로 자리잡았다. 이들 중 가장 창작연대가 늦은 <솔로몬의 지혜서>는 기원전 1세기의 저작이다.
고통받는 인간의 이야기인 <욥기>, 설교의 형식을 띤 <전도서>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저서는 모두 어떤 일을 일어나도록 혹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지 따지는 것, 즉 인과관계를 고민하는 책이다.
<잠언>은 이집트의 지혜문학과 상당히 유사하다. 단순히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잠언>의 첫 9개 장은 다른 지혜문학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 뒤로 13개 장은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비교가 이어지는데,
이는 또 다른 이집트의 지혜문학 <파피루스 인싱어>의 방식을 따라 한 것이다.
"지혜로운 자녀는 키울 가치가 있으나, 어리석은 아들은 남의 아들보다도
못하다." - 파피루스 인싱어.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어리석은 아들은 어머니의 근심거리가 된다." - 잠언 10:1.
인접한 다른 문화권의 문학에서 고대 이스라엘 문헌의 특성이 발견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덕을 추구하는 자는 누구인가? 덕은 지혜를 향한 노력의 결실이다.
절제, 예지, 정의, 용기는 지혜의 가르침이다." - <솔로몬의 지혜서>.
뒷 문장은 플라톤의 <파이돈>에 실린 것과 같다. <솔로몬의 지혜서>를 지은 사람은 그리스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 분명하다.
우화, 동화, 비유담. 지구상에 이야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문화는 없다.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서사시와 반대되는 것이 우화, 동화, 비유담이다.
이야기라면 재미있는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우화와 격언을 구분하기에 충분하다. 기원전 3세기 우화모음집인 인도의 <판차탄트라>처럼 우화에는 정치적 술수가 가득한 것도 있다.
로마의 파이드루스(BC.15~ AD.50)의 우화집에는 비밀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본성을 잘 표현한 이야기가 있다.
한 남자가 아내를 시험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내가 지금 알을 낳았소."
그러고는 절대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물론 아내는 이웃에게 털어놓았고, 이웃은 또 친구에게 전했고...
그렇게 소문은 펴졌다.
소문이 갈수록 부풀려져, 다음날 남자가 낳은 알은 하나가 아니라 100개가 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내의 행동을 비판하겠지만, 교훈은 비밀을 지키고 싶다면 스스로 입 밖으로 꺼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기 잔 프란체스코 포조 브라치올리니의 <우스갯소리 모음>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밀라노의 귀족태생인 한 콧대 높은 군인이 플로렌스에 대사로 부임했다.
그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매일같이 각양각색의 목걸이를 잔뜩 걸고 다녔다.
풍부한 학식과 신랄한 표현으로 유명했던 니콜로 니콜리는 그의 바보같은 허영심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말했다.
"다른 미친 놈들은 쇠사슬 하나면 충분한데, 저 놈은 특별히 미천 놈이라
쇠사슬 하나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비유담(유비추론, 메타포)의 목적은 오직 비유를 통한 가르침에 있다.
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비유담은 효과가 없다.
이솝우화의 몇몇 이야기처럼 그리 도덕적이지 않아 보이는 이야기들은,
지혜라는 것이 얼마나 문화적인 개념인지 일깨워 준다.
전 세계 지혜문학에 적용할 수 있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바로 "그 어떤 책도 우리를 실제로 현명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은 모두 저자들이 나름의 방법으로 지혜를 담았지만, 같은 지혜를 담고 있지는 않다. 만약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만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지구에는 현자가 넘칠 것이다. 물론 우리를 지혜의 길로 인도하는 책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정표를 목적지로 착각하지는 않았는지 항상 주의해야 한다.
소설을 지혜문학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지혜를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는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조지 엘리엇, 벤자민 디즈레일리, 토마스 하디는 독자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기를 원했던 작가들이다. 지혜문인들은 독자들과 논쟁하기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보여 준다.
5장. 점술과 지혜
점술의 사전적 정의는 초자연적 요소에 중점을 둔다. 하지만 모든 점술이
그렇지는 않다. 손금보기가 좋은 예다. 손금을 보는 사람들은 손바닥에 그어진 선과 그 사람의 평균적 삶의 패턴 및 방향성 사이에 적으나마 연관성이
있다고 믿는다. 초자연적 존재에게 기대지는 않는다.
수유신탁(水油神託)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표면에 기름을 얇게 띄운
다음, 어떤 물체를 떨어뜨려 기름의 움직임을 살피는 점술이다.
이 세계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를 조사하면 다른 것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 것이다.
손금이 살피는 대상은 당연히 그 손의 주인이지만, 水油神託에서는 훨씬
넓고 다양한 대상을 살필 수 있다고 믿는다.
점술의 일반적인 특성.
1) 점술로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만이 점술의 유일한 기능은 아니다.
2) 때로는 현재를 알기 위해, 때로는 조언을 구하기 위해, 때로는 결단을 내리기 위해 점술을 이용한다.
3) 점술 중에는 과학의 일종으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종류도 있다.
점성술. 천문학자들은 그들이 몸담고 있는 과학이 점성술과 혼동되는 상황을 무척 불쾌해 한다.
점성술은 항성, 행성, 태양, 달을 등 여러 천체의 움직임과 상대적 위치를
측정, 조합해 세상일 또는 인간의 성격, 기질을 해석, 예측하는 행위다.
점성술에는 천체의 구성과 지구의 일 사이에 유효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믿음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점성술은 별의 위치와 움직임을 기록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수학적 천문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생겨날 수 없다.
천궁도는 사람이 태어난 때를 대표하는 천체를 지정하고, 그로부터 그 사람의 삶의 방향성을 알아보는 데에 널리 쓰인다.
1980년대 레이건이 백악관에 점성술사를 고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많은 비난을 받았다.
점성술의 역사는 각기 다른 세 가지 전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서양 점성술, 동양 점성술, 중앙아메리카 점성술.
1) 서양 점성술 - 기원전 제1천년기 후대에 이집트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되며, 메소포타미아의 자료와 그리스의 지식이 혼합되었다.
이집트에서 기원한 이 점성술은 동쪽으로 인도와 서쪽으로 유럽으로도 전해졌다.
서양 점성술은 황도 12궁을 기본으로 삼는다. 이는 해, 달, 별들이 움직이는 하늘 길을 12개로 나누어 파악하는 방법이다.
각각의 궁(sign)에는 그 안에 포함된 별자리에서 유래한 이름이 있다.
양자리,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게자리, 사자자리, 처녀자리. 천칭자리,
전갈자리, 사수자리, 염소자리, 물병자리, 물고기자리...
3월 21일 전후로 있는 춘분을 태양이 첫 번째 궁인 양자리에 들어서는 시기로 삼는다.
각각의 궁에 따라 사람의 성격유형이 달라진다고 믿는다.
2) 동양 점성술 - 기원전 제1천년기 대부분을 차지했던 周나라 때부터 시작되어. 漢나라 때에는 고전적인 양식의 중국 점성술이 확립되었다.
중국 천문학자들이 판별하고 명명한 별자리는 대부분 서양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예컨대 서양에서 오리온의 허리띠로 명명된 3개의 밝은 별들은 중국에서는 각기 다른 별자리에 속해 있다.
서양 점성술의 주기는 12달이 기준이지만, 중국 점성술은 동물의 이름이 붙은 12해가 기준이다. 각 상징동물은 각기 다른 성격유형을 나타낸다.
대중적인 점성술에서는 태어난 연도만 주로 살피지만, 제대로 된 점성술은 훨씬 정교하고 섬세하다. 이는 서양과 마찬가지다.
각 상징동물은 연,월,일 뿐만 아니라, 하루의 모든 시각에도 부여된다.
이 모든 것을 계산에 넣으면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결과물이 나온다.
3) 중앙아메리카 점성술 -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이전의 메소아메리카 지역사회 역시 점성술과 천문학을 크게 구분하지 않았다.
달력은 세족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것이었다. 이들은 1년을 365일로 계산하는 태양력 기반의 달력 외에 다른 형식의 달력도 함께 사용했다.
아즈텍에서도 악어, 바람, 집, 도마뱀, 뱀, 죽음, 사슴, 토끼, 물, 개, 원숭이,풀, 갈대, 재규어, 독수리, 콘도르, 움직임, 부싯돌, 비, 꽃 등이 상징으로 사용됐다.
점성술을 믿는 자들과 비판자들 간의 지적인 논의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하지만 효과가 없다고 해서 아무런 의미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신탁.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신탁(oracle)은 델포이의 아폴로 신탁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는 다른 신들도 신탁을 많이 내렸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전설적인 부를 소유했다는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누구의 신탁이 가장 믿을 만한지 알아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스의 다양한 신탁 뿐만 아니라 리비아에 있는 아몬 신전에도 특사를 보냈다. 그중 크로이소소의 시험을 통과한 신전은 델포이가 유일했다. 그리스 뿐만 아니라
로마제국의 영토 전반에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신전들이 있었다.
중국의 <역경>은 아주 오래된 책이지만 인기가 조금도 시들지 않았다.
<역경>의 기원에 대해서는 복희와 周문왕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며,
周문왕의 아들인 周公 희단과 孔子 또한 <역경> 제작에 힘을 보탰다고 한다.
<역경>을 읽을 때는 두 가지 기본적인 사항을 유념해야 한다.
1) 易經 또한 신탁이기에 질문이 있어야 답을 얻을 수 있다.
2) 변화의 흐름을 타면 성공을 거두지만, 거스르면 실패를 초래한다.
易經은 변화의 흐름을 탈 수 있는 항해술을 가르치기에, 점 치는 용도와는
별개로 많은 중국 철학자들이 위대한 지혜가 담겨 있다고 인정한다.
신탁의 세계에서는 수많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모든 예언은 틀릴 수 있다. 하지만 '큰 폭풍우가 오니 달아나 몸을 상하지 않게 하라'는 예언이 틀렸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양을 계속 기를 것인가?'를 물었을 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 지는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양을 계속 기를 경우 최악의 상황은 양 떼를 일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탁에 항의한다 해도 다음의 답을 들었을 것이다. '네가 양을 갖고 있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끔찍한 일을 당했을 것이다!' 이때 예언이 틀렸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신탁은 그저 결정을 내리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신은 부패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이 신탁을 내릴 때는 대부분 인간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인간은 나약하며, 신관도 예외는 아니다. 확신을 받고 싶다는 욕구는 인간이 지닌 고유한 약점 중 하나이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신전을 찾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꿈. 꿈은 선명하고도 생생하기 때문에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기 힘들고, 워낙 자주 꾸기 때문에 더 특별해 보인다. 사실 꿈을 꾼다는 행위는 워낙
보편적인 일이기 때문에, 꿈을 꾸는 이유와 의미를 궁금해 하지 않았던 인간사회가 있다고는 믿기 어렵다. 많은 문화권에서 꿈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여겼으며, 적극적으로 의미를 찾아내고자 했다.
20세기 초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전적으로 새로운 연구가 아니었다.
프로이트는 꿈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지만, 해석은 반드시 과학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꿈이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욕망의 표출이며, 주로 섹스와 연관된다. 꿈은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조셉 카스터는 살해당하는 꿈은 아버지보다 오래 살게 된다는 꿈이라는
이집트인들의 해몽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로이트보다 3천 년 앞선 직관적이고 훌륭한 심리학적 해석이다.
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는 억압된 무의식의 결과가 드러난 표현으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속죄받기 위해 꿈에서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꿈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전조. 전조(omens)란 미래의 사건을 알리는 징후이며, 온갖 형태와 크기로 나타난다. 영국에서는 검은 고양이를 둘러싼 미신이 많은데, 이는 주로 마녀가 검은 고양이를 데리고 다닌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검은 고양이들이 목숨에 위협을 받기도 했다. 반면 1866년 기록에는 검은 고양이가 바다에 나간 선원들을 지켜 준다는 미신이 생겨 선원의 아내들이 검은 고양이를 집에 두기 시작하면서 검은 고양이의 인기가 치솟기도 했다. 이는 수많은 미신이 얼마나 근거가 빈약한지를 보여 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전조를 매우 중시해서 전조에 대한 분석, 분류, 기록이 수천 건에 이를 정도다. 특별한 두 가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면 둘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했다. 이들은 세심하게 하늘을 관찰했기 때문에, 많은 전조들이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과 관련이 있었다.
로마군대는 멀리 원정을 나갈 때가 많았다. 이때 지휘관들이 주피터 신의
의사를 확인할 때마다 로마에 있는 복점관을 찾자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으므로, 대신 신성한 닭들을 데리고 다녔다. 필요할 때는 닭에게 모이를 주고 먹는 모습을 관찰해 점을 쳤다. 키케로는 닭을 굶기기만 하면 모이를 먹는
행태는 사실상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며 냉소적으로 언급했다.
그리스 남부의 모넴바시아 근처에는 에피다우로스 리메라의 유적이 있다. 여기에서 여신 이노의 신전이 있어서 해마다 여신을 기념하는 축제가 열렸다. 이노 신전에서 신탁을 읽는 방법은 독특하다. 보릿가루로 구운 빵 덩어리를 신성한 연못에 던져 빵이 가라앉으면 여신께서 받아들였다는 뜻이니
좋은 전조라 여긴다. 반면 빵이 떠 있으면 여신께서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나쁜 전조다. 지역 제빵사들의 기술이 신탁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을까?
점술. 책점은 현대까지 행해지는 점술 중 하나로, 아무렇게나 책을 펼쳐서
나온 구절을 전조로 삼는 점술이다. 주로 종교적인 책을 사용했으며, 기독교인들은 거의 성경을 이용했다. 교회에서 인정하거나 옹호한 적은 없었지만, 대체로 묵인했다. 몇 세기 가량은 권장하기도 했다. 易經을 비롯한 중국의
여러 점술 책들도 일종의 冊占이라 할 수 있다.
샤먼. 샤먼이라는 용어는 시베리아에서 나왔지만, 샤머니즘은 세계 각지의 역사 속에서 발견된다. 석기시대에도 샤머니즘을 행했다는 증거가 있다.
샤먼이 없이는 샤머니즘도 없다. 샤먼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다.
샤먼의 역할은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나 어떤 일에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샤머니즘 의식에서 향정신성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약물을 사용한 이가 실제로 어딘가로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특정 약물로 인식이 변화된 상태에서 하는 경험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겪는 경험과도 같다.
인식의 문을 떼어 낸 사람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언제까지나.
인간은 스스로 그 문을 닫아 두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동굴 속에서 작은 틈새로
모든 것을 보아왔던 것이다. - 윌리엄 블레이크. <천국과 지옥의 결혼> 중에서.
이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도 암시하고 있다. 아울러 일부 문화권에서는
샤먼이 약물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모든 샤먼이 그렇지는 않다. 신비주의자들에 따르면, 일종의 종교적 황홀경과 유사한 의식의 전환상태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샤먼에게서 발견되는 중요한 공통점이다.
약물은 그런 상태에 진입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만,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오늘날의 점술.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점술에 의지한다.
1) 약간의 위안과 확신을 얻기 위해서.
2) 예측 불가능한 운명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3) 뜻하지 않은 재난을 미리 피하기 위해서.
4) 미래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해서.
5)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6) 결단을 위해서.
오늘날 미래예측 사업의 규모는 자본금 수십억 달러에 종사자 수십만 명에 이른다... 매년 미래예측 사업체가 제공하는 정보는 2천억 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예측성적은 분야를 막론하고 형편없다. 사실을 말하자면, 예측가들의 예측은 대부분 틀린다. 로마의 정치가 카토가 두 명의 예언가가 길을 걷다 만나도 서로 싸우거나 비웃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어 했을 만도 하다.
점술을 중시하고 높이 평가하는 사회에서 점술을 칠 줄 아는 자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점술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경우, 점술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척 많다.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과 같은 고대의 점술기관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녔는지는 델포이 근처에 세워진 여러 그리스 도시들의 크기와 부유함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권세와 위신, 어마어마한 부가 거기에 있었다.
미국인들이 우려했던 것은 레이건이 점성술사를 백악관에 들였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미국인들 대다수도 점성술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형태의 점을 본다. 그들이 우려했던 것은 점성술사가 정부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었다.
점술사는 무엇이 적절한 행동이고 무엇이 부적절한 행동인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문화권에 따라서는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면, 일부를 통해 전체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을 중시하는 경우도 있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작동하는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려 하는 모든 자는 지혜의 세계에 들어 있는 것이다.
6장. 철학과 지혜
여러 시대와 문화권의 철학을 살펴보면, 지혜를 보는 관점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모든 철학자들이 지혜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다. 근현대의 서양 철학자들은 거의 관심이 없었다. 특히 현대철학은 과학과의 연결성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보니 지혜가 끼어들 여지는 더욱 없어졌다.
물리학. 피타고라스가 철학자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는 오랜 믿음이 있다.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을 발견하고 사색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다. 초기 서양철학이 전통적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기본원칙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물리학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자연을 뜻하는 physis인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물리학을 과학으로 분류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물리학은 철학의
일부였으며, 때로는 자연철학으로 불리기도 했다.
윤리학. 키케로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으로 삶, 도덕, 선악에 대한
답을 강구한 최초의 인간이었다'고 한다. 설령 소크라테스가 첫 번째가 아니더라도, 그가 인간의 삶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많이 던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철학적 질문이 발전해 윤리학이 되었으며,
이는 그리스어로 성품을 뜻하는 ethos에서 유래했다.
논리학. 이후 철학자들은 기존의 물리학, 윤리학에 논리학을 더했으며,
이로써 철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논리학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사상,이성을 뜻하는 logos이며, 이성적 사고와 논리적 주장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물리학, 윤리학, 논리학 중 가장 중요한 학문이 무엇인지, 세 학문을 어떻게 조화시킬 지에 대한 견해는 철학자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세 학문이 철학의 세 가지 구성요소라는 점에는 오래도록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또한 비록 철학이라는 용어가 지혜를 향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해도, 철학자들 중에는 지혜를 사랑하기는커녕 관심조차 없는 이들도 있다.
자연에 대한 사색과 발견. 서양철학의 시초가 탈레스라는 주장도 있지만,
피타고라스라는 주장도 있다.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을 따랐던 사람들은 서양 철학사에서 진정한 의미로 첫 번째 조직적 학파였던 피타고라스학파를 이루었다. 하지만 현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들은 학파라기보다는 종교단체에 가까웠다. 비밀스럽기로 유명했으며, 대문에 지금도 그들의 교의를 정확하게 복원하기가 무척 어렵다.
피타고라스는 그의 이름을 딴 기하학 정리로 유명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피타고라스 정리에 조금이라도 기여했을 확률은 희박하다.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은 영혼의 환생을 믿었고, 다른 동물로 환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채식주의를 실천했다. 피타고라스도 자신이 여러 번의 전생을 거쳤다고 말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피타고라스가 대단한 다독가임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저 호사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는 피타고라스가 방대한 지식의 소유자일지는 몰라도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추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아마도 헤라클레이토스는 피타고라스주의에서 보이는 절충주의적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피타고라스를 갖가지 경범죄로 고소하기도 했다.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이 정확히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그다지 호감을 주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피타고라스와 추종자들은 크로토네에서 쫓겨나 다른 곳으로 가야 했다.
피타고라스는 어떤 글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으로 된 격언은 많이
전해진다. "지혜는 영혼의 약이다..." 하지만 이는 피타고라스만의 고유한
관점이라기보다는 당대 여러 철학자들의 공통적인 관점에 가깝다.
피타고라스학파가 다른 학파들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세상의 이치는 본질적으로 수학적인 것에 담겨 있다'라고 믿었던 점이다.
에페소스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이토스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그가 남겼다는 격언 중에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것이 꽤 있다.
"바다는 가장 깨끗한 물인 동시에 가장 더러운 물이다."
다음은 헤라클레이토스의 가장 유명한 격언이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이 유명한 표현에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의 핵심이 담겨 있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지만, 그것이 혼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세계는 정해진 질서 안에서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우리의 이성도 정해진 질서 안에서 작동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지혜로운 자란, 만물이 움직이는 원리를 아는 자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지혜란 세상 모든 움직이는 것에 내재된 근본적인 변화의 원칙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적 세계관은 <易經>과 매우 유사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온갖 것들에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라는 말도 남겼다.
엠페도클레스(BC.494~434)는 시칠리의 아크라가스에서 태어났으며,
헤라클레이토스보다 어렸지만 같은 시대에 살았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그가 피타고라스의 추종자였다는 추측도 있다. 하지만 엠페도클레스는 다른 사람이 주도하는 단체활동에 일원으로 참여할 인물은 아니다. 엠페도클레스는 샤먼이면서도 특정 직업에 구애받지 않고 마법사, 박물학자, 시인, 철학자, 설교자, 치유사, 대중상담가의 역할을 모두 해냈다. 에트나 산의 분화구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엠페도클레스의 철학자로서의 명성은 남겨진 두 권의 저작에서 비롯되었다.
<자연에 대하여>에서는 세계가 흙, 불, 공기, 물이라는 네 가지 기본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 네 요소는 사랑과 싸움이라는 두 요소에 의해 움직인다고 했다. 이는 각각의 요소들을 역동적으로 합치기도 하고 흩어 놓기도 하는 힘이 각각 사랑과 싸움이다.
<정화>에서는 인간이 고통받는 이유는 동물을 희생시켜 고기를 먹기 때문이라며, 이 불결한 행위가 인류를 타락시켰다고 했다. 피타고라스처럼 엠페도클레스 역시 영혼이 여러 생명체를 거쳐 윤회한다는 믿음 때문에 채식주의를 고집했고, 자신도 물고기, 새, 덤불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전생을 겪었다고 했다. 엠페도클레스는 윤회를 거듭한 영혼은 언젠가 신이 되어 불멸한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이 바로 그렇게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그가 <정화>의 첫 구절에서 스스로를 '더 이상 멸하지 않는 불멸의 신... 조언, 예언, 치료를 구하는 수천 명의 남녀들에게 존경받는 존재...'라고 칭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엠페도클레스의 철학은 모두 자연에 대한
사색과 발견을 위주로 한다. 그들 모두는 겉으로 보이는 자연현상의 이면에서 돌아가고 있는 우주의 작동원리를 탐구했다. 그리고 수, 변화, 사랑과
싸움 등을 답변으로 제시했다.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하면 세계와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도 최상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들이 지혜를 탐구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세 명의 철학자다.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에서 소크라테스는 당대의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신탁을 받았다.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결론은 두 가지였다.
1) 당대에 그가 가장 지혜로운 인간이라면, 인간의 지혜가 본래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뜻이다.
2) 그가 가진 지혜란 자신의 한계, 특히 지식의 한계를 자각하는 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유명한 문구 "너 자신을 알라!"에 딸린 여러 해석 중에는 "네 자신의 한계를 알라!"는 문구도 있었다. 자기탐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해주지만, 어떤 사람이 아닌지도 알게 해준다. 소크라테스의
지혜는 자신에게는 겸손이 되었지만, 다른 이에게는 시험이 되었다.
시험을 받는 자는 자신이 어떤 것을 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으며,
그렇지 못하면 안다고 하기를 포기해야 했다.
소크라테스는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그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 플라톤의 글에서 비롯되었다. 플라톤의 저서에 기록된
소크라테스는 끊임없는 질문으로 다른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남자였다.
플라톤의 저작에는 소크라테스와 논쟁을 했다가 풀 죽은 채 돌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플라톤. 플라톤은 긴 생애에 걸쳐 수많은 저작을 남겼다. 갖가지 주제에 대한 플라톤의 견해를 보려면, 그의 저작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의견들을 짜맞춰 봐야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조합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플라톤 철학에서 지혜라는 주제를 모아보면 두 가지 논점이 드러난다.
1) 플라톤은 네 가지 기본 덕목 지혜, 용기, 절제, 정의 중 첫째로 지혜를 들었다.
2) 지혜는 인간을 신에 가까운 존재로 만들어 준다. 신과 가까운 존재가 되어갈수록 우리는 인간의 어두운 면과 제약에서 멀어질 수 있다.
플라톤의 이러한 견해는 지혜를 지극히 영적인 관점에서 고찰했던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과는 다른 관점을 지녔다.
그의 사상을 관통하는 주된 내용은 '지혜는 특정한 원리와 이유에 대한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지혜는 일종의 지식이지만, 단순히 어떤 사실만을
지칭하는 지식이 아니다. 그가 지혜라고 부르는 대상은 무엇?이라기보다는 왜?에 대한 답에 더 가깝다. 즉 지혜란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다.
예컨대 원주율(π) 값을 소수점 100 자리까지 외울 수는 있지만 원주율의
원리를 이해하면, 언제든 수치를 계산해낼 수 있으므로 굳이 100 자리까지 외울 필요가 없다. 일단 기본적인 이유와 원리를 파악했다면, 아무리 특수한 대상, 현상을 많이 접하더라도 그와 관련된 지식을 도출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저절로 되는 게 아니고, 어떤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결론만 취해서도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원리에 대한 이해와, 이해를 토대로 쓸모있는 답을 도출하는 능력을 모두 갖춰야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지혜로운 이는 유달리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세계를 움직이는 기본적인 원리와 이유를 배운 대가로 다른 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상당한 정도의 심리적 만족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지혜와 만족감 사이의 뚜렷한 연관성은 그의 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기도 하다. 지혜는 유용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며, 다른 이들에게 감명을 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가치있고 만족스럽게 만들어 준다. 이는 철학적 논의의 커다란 발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혜를 갖추는 일을 즐거운 일로 만듦으로써, 지혜를 좀더 인간적으로 보이게 한 동시에 지혜를 추구해야 할 뚜렷한 이유를 제시했다.
지혜가 오직 신에게만 허락되었다고 생각한 소크라테스, 지혜를 신과 같이 되기 위한 방편으로 여겼던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무척이나 인간적이다.
지혜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은 수백 년 동안 소수의 철학적 사조에 좌우되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냉소주의(견유학파), 금욕주의(스토아철학),
쾌락주의(에피쿠로스철학), 회의주의(피론주의) 등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지혜는 영혼의 약'이라는 비유를 따른다면, 각각의 철학적 사조는 나름대로 인간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내린 셈이다.
냉조주의(견유학파). 소크라테스의 지지자였던 안티스테네스는 욕망과
본능이 인간이성을 마비시키고 지배할 수 있으며, 인간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주된 원인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전통과 관습을 신뢰하지 않았다. 인간은 전통과 관습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기 쉽지만, 때로 이것이 인간의 본성과
이성이 지시하는 방향과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사상이 바로 견유학파의 핵심이었다. 실제로 견유학파는 反사회적이었다. 그들은 사회의 변두리를 가장 편안하게 느꼈고, 그런 곳에서 사는 경우도 많았다.
* 견유학파는 행복은 외적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다며 문명사회의 관습 및
제도를 무시하고 지극히 간소하고 자연에 가까운 생활을 추구함.
냉소적인(cynic)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로 개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기원한다. 개는 안테스테네스의 별명이자 犬儒라는 명칭의 유래다. 결코 좋은 뜻으로 붙인 별명은 아닐 것이다. 견유학파는 인간과 살아가는 동물처럼 굴기도 했지만, 사회 변두리에서 인간사회를 비판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사회에 속해 있었지만 온전히 속해 있지는 않았다. 견유학파는 아무 생각 없이 사회적 관습을 따르다가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디아트리베(diatribe, 통렬한 비판, 독설적 논쟁)라는 문학장르를 발달시켰다.
초기부터 견유학파를 따랐던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했다.
"안테스테네스가 나를 자유롭게 해주기 전에 나는 노예였다... 그는 무엇이 진짜 내게 속한 것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알려 주었다. 부귀는 내게 속한 것이 아니었다. 일가친척, 친구, 명성, 익숙한 장소들, 타인과의 관계. 이 모든 것도 내게 속하지 않았다."
우리는 견유학파의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지혜와 자신감의
상관 관계가 더 새롭고 넓게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일이 흐른 뒤 견유학파는 간소한 복장을 하게 되었다. 옷 한 벌, 지팡이,
작은 가방 하나만 지님으로써 많은 이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들에 무관심하다는 점을 외형적으로 드러냈다. 디오게네스는 수년간 집을 거부하고 나무통 안에서 살았다. 견유학파에게 富란 시험이자 유혹이다. 이는 가난한 자가 복을 받으리라는 新約聖經의 내용과 유사하다. 예수도 견유학파의 가르침을 들었을 것이다. 나사렛에서 직선으로 40km 떨어진 가다라 마을은 저명한 견유학파 철학자들을 여럿 배출한 곳이다.
디오게네스의 제자인 테베의 크라테스(BC.365~285)가 내세운
'자연과 일치하는 삶'은 견유학파의 슬로건이라 할 수 있다. 크라테스와 아내 히파르키아는 성에 대한 사회적 관습까지 모두 거부한다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했다. 자연히 이 부부는 수많은 스캔들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금용주의(스토아철학). 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은 키프러스의 제논(BC.334~262)은 견유학파의 反사회적 내용은 그다지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자연과 일치하는 삶'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해 새로운 철학사조를 일으켰다. 제논이 가르침을 폈던 곳이 아테네의 스토아였기에 스토아학파로 불린다.
*제논의 역설로 유명한 엘레아의 제논(BC.490~430)과는 다른 인물임.
제논에게 자연과 일치하는 삶이란 동물처럼 산다는 뜻이 결코 아니었다.
자연과 일치하는 삶은 자연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믿었던 제논의 스토아학파는 철저하게 학문을 배척한 견유학파와 달리 배움을 권장했다.
"삶을 관통하는 법칙을 배우면... 모든 일에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 세네카(BC.4~AD.65). 로마의 스토아철학자.
세네카의 말은 "지혜로운 자의 지식은 가능한 모든 범위에 이른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격언과 유사하다. 그들은 모든 것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아니라, 만물의 조화를 이루고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이치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했던 것이다.
제논은 인간의 문제에 대한 진단에서는 견유학파와 상당부분 의견을 같이 했지만, 처방전이 달랐다. 제논이 자연을 탐구했던 주된 목적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과 피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 안에서 활로를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그에게 자연이란 동식물의 생태가 아닌, 세계의 작동원리였다.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렸지만,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 에픽테토스(55~135). 스토아철학자.
이는 지식을 추구하는 실용적 목적을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인간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하고, 필요한 것은 원하지 않기에 불행해진다." - 제논.
결론적으로 제논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주적 계획에 따라 전개되기 때문에, 인간은 본래 수동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우리에게 달려 있는 일은 극히 일부 뿐이지만, 그 사건에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 대응할 것인지, 내면의 변화로 대응할 것인지는 거의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즉 어떤 일에 우리가 기뻐하면 그것은 기쁜 일이 되지만, 슬퍼하면 슬픈 일이 된다. 어떻게 반응할 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기에, 우리 모두는 행복과 불행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셈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연구하는 이유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갖추기 위함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안다고 해도 불행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일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최소한 머리로 납득은 할 수 있다. 스토아학파의 지혜는 단순히 세상에 대한 지식만이 아닌, 그 지식을 이용해 적절하게 감정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까지 포함된다. 스토아철학을 가장 잘 요약한 문구는 스피노자의 말일 것이다.
"감정에 사로잡힌 자는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없다." - 스피노자.
쾌락주의(에피쿠로스철학). 에피쿠로스(BC.340~270)와 제자들은 지식을 중시했다는 점에서는 스토아학파와 같았지만, 추구하는 지식이 서로 달랐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이 고통받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 인간의 무지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두려움은 사람을 망친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대상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간의 공통적 두려움인 죽음에 대해 이렇게 썼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면 죽음은 현실이 아닐세. 그리고 죽음이 현실이 되는 때에는 우린 어차피 존재하지 않아." - 에피쿠로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죽음은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죽음이 닥친 순간 우리는 이미 없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도 똑같은 말을 했다.
"죽음은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 죽음을 체험할 수는 없다." - 비트겐슈타인.
에피크로스에게 죽음이란 그저 알고 나면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대상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가다라의 필로데모스의 말은 에피쿠로스 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신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자는 조롱을 받아도 마땅하다. 좋은 것은 받아들이면 되고, 나쁜 것은 견디면 된다." - 필로데모스. 에피쿠로스학파.
이 간결한 문구가 인간에 대한 에피쿠로스학파의 처방전이다.
'좋은 것은 받아들이면 된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우리에게는 자신에게 알맞은 방향으로 삶을 조직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정말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통받을 이유가 없다. 에피쿠로스는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삶을 위의 처방에 맞춰 조직하기에 더 쉬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정원이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설립했다.
'나쁜 것은 견디면 된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도 이겨낼 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육체적 고통과 일상적으로 찾아오는 정신적 괴로움을 구별했다.
로렌스가 엄지와 검지로 성냥불을 눌러 끈다. 옆 사람이 어떻게 했느냐고 묻자, 로렌스가 대답했다.
"속임수죠."
하지만 그는 로렌스를 따라 했다가 소리친다.
"뜨겁잖아?"
"뜨겁지 않다고 마음을 속이는 것이 속임수입니다."
- 영화 <아리비아의 로렌스>.
"지혜로운 자는 고문을 받을 때조차도 행복해 할 수 있다."라고 말한 에피쿠로스 역시 이와 같은 속임수의 달인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생각한 '신에게만 허락된 지혜'와는 상당히 다른 종류의 지혜를 볼 수 있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는 모두 자신의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삶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지혜를 중시했다.
회의주의(피론주의). 엘리스의 피론(BC.360~272)는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와 동시대 인물이다. 두 사람은 실제로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의 스승이었고, 피론은 알렉산더가 페르시아와 인도로 원정을 떠날 때 함께 했다고 한다. 당연히 피론은 원정길에서
만난 인도 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피론은 글로 남긴 것이 없지만, 그의 제자 프리우스의 티몬은 많은 저작을 남겼다.
피론의 사상은 다른 철학사상에 대한 반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러 문헌 속에서 그 정확한 내용을 추려 내기가 쉽지 않다.
"어떤 문제라도 확실하지 않다고 여겨진다면, 판단을 유보해야 당연하다.
또한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드물다."
회의주의자의 주장은 언제나 '맞아, 하지만...'으로 시작한다. 모든 의견에는 반대의견이, 모든 근거에는 반대증거가 존재한다.
회의주의자들은 모든 대상은 사람,시대,장소,조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중시했다. 이 수많은 차이점을 보고도 누군가 "이것만은 확실하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회의주의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도 인정하지 않고, 동의를 구하지도 않으며, 항상 의문을 품고 반론을 제기하는 데에 있다. 하지만 피론주의자에게 의심은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인간의 고통에 대해 피론은 '믿고 싶어하는 마음이 고통의 근원'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사람들은 진실이라 믿었던 것이 아니라고 판명되면 크게 상심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진실과 거짓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면 그렇게 상심할 일도 없다.
고대 회의주의에는 이처럼 치유의 속성도 있었다. 그 어떤 것이라도, 심지어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이라도 결코 의심 없이 믿지 않는다. 여기에 회의주의의 지혜가 있다.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는 이상, 회의주의는 그 무엇도 고정된 관념으로 바라보기를 거부한다.
피론에 대해 전해지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피론의 친구들은 피론이 절벽을 보면 그것이 진짜 절벽인지 확인하기 위해 틀림없이 허공을 걸어볼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그를 쫓아다니며 감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피론의 수명이 꽤 길었음을 고러하면, 이 이야기는 사실아 아닐 확률이 높다. 아니라면 피론은 무척 운이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안티스테네스, 제논, 에피쿠로스, 피론은 각기 다른 철학을 설립하고 전파했다. 하지만 이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동일했다. 넷의 철학은 모두 인간의 고통을 설명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그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바로 그들의 처방전이자 지혜였다.
안티스테네스 - 행복은 외적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다며 문명사회의 관습 및 제도를 무시하고 지극히 간소하고 자연에 가까운 생활을 추구.
제논 - 인간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하고, 필요한 것은 원하지 않기에 불행해진다. 삶을 관통하는 법칙을 배우면... 모든 일에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감정에 사로잡힌 자는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없다.
에피쿠로스 - 두려움은 사람을 망친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대상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피론 - 어떤 문제라도 확실치 않다고 여겨진다면, 판단을 유보해야 당연하다.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드물다. 모든 대상은 사람,시대,장소,조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인간의 고통에 대해 피론은 '믿고 싶어하는 마음이 고통의 근원'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사람들은 진실이라 믿었던 것이 아니라고 판명되면 크게 상심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진실과 거짓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면 그렇게 상심할 일도 없다.
이슬람 철학과 지혜. "그들은 전체 체제 안에서 취하는 입장이 일치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근본적 전제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 - 알 가잘리.
알 가잘리(1058~1111)가 비판한 것은 나쁜 철학과 틀린 사고다.
이성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한 나머지, 이성을 풀 수 없는 문제까지 이성으로 풀고자 했기 때문이다. 욕망 때문에 근거가 빈약한 전제를 자주 내세웠던 것이다.
중국철학과 지혜. 중국철학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철학을 추구하기 때문에,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지혜 자체보다는 지혜의 화신인 현자들에게 훨씬 관심이 많았다. 지혜로운 자와 인자한 자의 통합이 유교의 성인 개념이다.
"지혜란 본질적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이다." - 맹자.
중국철학에서는 지혜를 과거의 특정한 지도자들에 대입하는 일이 흔했으며, 더 과거의 인물일수록 높은 권위를 부여했다.
<도덕경>은 난해하기로 악명 높으며, 내용도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위대한 道가 쇠락하면 仁과 義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 <도덕경>.
사람들이 仁과 義를 내세우는 이유는,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못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仁義와 같은 신조를 내세우는 것은 道가 쇠락하는 징후인 것이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 성인이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 <회남자>.
성인은 개인적 욕구나 야망이 없기 때문에 어떤 세상사에도 개입할 이유가 없다. 성인은 세상사에 순응하기는 해도 개입하지는 않는다.
"성인들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휘둘리지도 않는다."
- <회남자>.
"성인은 명예를 구하기 위해 선을 행하지 않지만, 선을 행하면 명예가 따라온다. 명예는 구하는 것이 아니라 따라오는 것이다." - <회남자>.
"성인은 선행을 숨기고, 남 모르게 한다." - <회남자>.
르네상스 시대의 지혜. 르네상스는 유럽이 기독교 사상과 관념에 지배받던
1천 년의 시기가 끝난 뒤 찾아온 예술과 철학의 황금기였다. 르네상스가
反기독교인 것은 아니지만, 문화와 사상 분야에 기독교가 걸어두었던 많은 제약을 해제한 것은 맞다. 그 결과 절충주의가 여러 분야에서 환영받았고,
지혜에 대한 탐구 또한 그 혜택을 받았다.
중세 기독교 신학자들은 당연히 지혜를 신과 관련지어 이해했다. 르네상스 시기에 그러한 관점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사상가들은 전보다는 훨씬 더 지혜의 인간적인 측면을 중시했다. 그 중에는 아예 신을 고려하지 않은 사상가들도 있었다. 르네상스의 사상을 인본주의라 부르는 것은 이러한 변화가 반영된 결과다.
샤를 드 보벨은 <현자에 대한 책>에서 지혜를 습득하는 과정을 일종의 탈바꿈으로 생각했다.
"지혜는 본질적으로 지식이지만, 지식에는 외면적 지식과 내면적 지식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지혜로운 자는 세상에 대한 외면적 지식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내면적 지식도 함께 탐구한다. 궁극적으로 두 지식은 하나가 된다... 이러한 지식을 얻은 자는 평소에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사회의 변두리에 있었다 하더라도, 사회를 완전히 등지지만 않았다면 이상적인 통치자가 될 수 있다." - 샤를 드 보벨. * 인간과 세상에 대한 탐구.
"인간은 자신이 인식한 세상의 정수를 추출하고 흡수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있다... 인간은 지적 먹이를 흡수하면 지혜로워질 수 있다." - 샤를 드 보벨.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사람은 그가 먹는 음식이다."라는 격언은
보벨의 논의를 참고한 것인 듯하다.
지혜를 보는 관점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모든 철학자들이 지혜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은 당연하며, 대부분의 근현대 서양 철학자들은 지혜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철학의 정수라고 단언한 대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대상이 된다는 점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철학자들은 '철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조차 수많은 다른 대답을 내놓고 있으며, 철학이 논의해야 할 소재 역시 그 대답에 따라 달라진다.
현대철학에서는 과학과 철학을 연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과학적 세계관에는 지혜가 끼어 들 여지가 별로 없다.
7장. 신비주의, 마법과 지혜
많은 사람들이 마법과 신비주의를 무시하지만, 지혜의 역사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뿐 아니라 실제로 인류 역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마법적 힘에 대한 믿음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으며,
위대한 신비주의자들은 지구상의 여러 종교를 설립하는 데에 일조했다.
마법과 신비주의에 대한 책은 많지만, 솔직히 그중 대부분은 수준이 의심스럽다. 지혜의 세계는 스스로를 오컬트(Occult, 祕學) 전문가 내지는 깨달은 존재라고 칭하는 사기꾼이나 거짓 예언자들이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다.
신비주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마법이라는 말을 들으면 말도 안 되는 미신이나 영리한 속임수로 치부하기 마련이다. 신비주의적 체험 또한 일종의 망상으로 여기기 쉽다. 그럼에도 마법,신비주의와 지혜의 역사적인 연관성은 충분히 탐구할 가치가 있는 주제다. *비본질적 유비추론에 의한 현혹.
마법의 본질. 마법이란 무엇인가? 마법의 본질은 온갖 사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힘이다.
물론 인간은 주변의 사건에 영향력을 미칠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마법은
일반적인 사람은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종류의 힘이어야 한다.
엘리파스 레비(알퐁스 루이 콩스탕의 필명)는 모든 마법적 행위에 내재된
세 가지 기본원칙을 제시했다.
1) 대응법칙 -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주의 축소판, 즉 소우주와 다름없다는 믿음에서 나왔다. 인간의 각 신체부위는 우주의 특정 부분에 대응한다.
2) 인간의지의 법칙 - 마법이란 의지력을 수련하는 과정이며,
인간의지가 바로 자연적인 힘이다.
3) 아스트랄 빛의 법칙 - 전 우주에 스며들어 있는 신비로운 물질로,
인간의지를 수련하면 이것을 모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마법. 마법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유물은 약 6천 년 전의
이집트 부적들로, 종류가 수백 가지에 이른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랫동안 계급을 막론하고 부적이 필요했던 것 같다. 부적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부적을 지닌 사람을 수호하는 것이다. 수호 부적으로 오래도록 깨지거나 변하지 않는 물질을 더 선호한 것은 당연하다. 변하지 않는 부적이란 대개 보석을 말한다. 이집트에서는 겨의 모든 보석이 부적의 기능도 겸했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대상자를 수호하는 일은 이집트 마법의 주된 목적이기도 했다.
파라오 케티(BC.22세기)는 아들 메리카레에게 물려주었다는 교훈집에서
마법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비하기 위한 무기'라고 간략히 서술했다.
글로 쓰든 입으로 말하든, 말에는 힘이 있다는 믿음은 여러 문화권에서 발견되며, 이집트도 그중 하나였다. 어떤 사람 혹은 대상의 (진짜)이름을 알면 대상을 조종할 힘이 생긴다는 믿음 또한 널리 퍼져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마법. 피타고라스와 추종자들이 마법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으며, 실제로 피타고라스에게서 샤먼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 일화도 상당히 많다. 엠페도클레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그와 유사한 이야기를 남겼다.
"피타고라스의 지진 예측은 빗나간 적이 없고, 전염병이나 돌풍을 피해야 할 때도 맞췄다. 그가 폭풍우를 멎게 하고, 강과 바다를 잠재운 덕분에 동료들은 편안한 항해를 즐길 수 있었다." - 포르피리우스. AD.3세기.
아무래도 지혜를 사랑한 최초의 인물에게는 마법적 능력을 보여 주는 일화를 붙여 주고 싶은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티아나의 아폴로니우스(AD.1세기)의 이름은 여러 자료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추종자들은 아폴로니우스를 기적을 행하는 구원자이자 半신적 존재로 여겼으며, 이런 이유로 초기 기독교 저서들에서는 그를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페르시아,인도,이집트를 여행하며 학문을 터득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후 떠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가르치고, 병을 고쳐 주며,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
아보노테이코스의 알렉산더(AD.2세기)는 외형적 속임수인 마법을 보여
주는 사기꾼이었다. 아둔한 자들을 먹이로 삼아 성공적으로 사기극을 펼쳐 수년 동안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그는 자신이 사기꾼임을 자백하려 했지만,
수많은 추종자와 친분이 있는 고위인사들에게 그의 신탁은 사실이어야 했기 때문에, 죽을 때가지 사기극을 계속해야 했다.
연금술. 연금술사는 시대를 막론하고 전형적인 마법사로 언급된다. 연금술사의 대중적 이미지는 쇠를 금으로 바꾼다고 주장하는 사기꾼에 가깝다.
전설에 따르면,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의 무덤을 발굴할 때 그의 시신이 글자가 새겨진 에메랄드 타블릿을 꼭 죄고 있었다고 한다. 그 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내 이름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다. 이는 내가 전 세계의 지혜 세 가지를 소유했기 때문이다."
에메랄드 타블릿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다음일 것이다.
"위에 있는 것과 아래에 있는 것이 같고, 아래에 있는 것이 위에 있는 것과
같으니, 이들이 하나의 기적을 이룬다." 이것은 엘리파스 레비가 밝힌 모든 마법에 내재한 기본원칙인 대응법칙과 같아 보인다. 대응법칙은 하나의
대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와 유사한 다른 대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법칙이다.
연금술은 다른 방향으로도 발전했다. 어떤 연금술사들은 하나의 물질이
다른 물질로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물질적 대상에만 적용하지 않았다.
물질을 정화하는 일은 곧 아픈 상태를 건강한 상태로 변화시키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연금술을 의술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또 불순물을 순수하게 만드는 과정을 영적 성장 과정에 대입함으로써 연금술을 영적 측면으로도 탐구하기 시작했다. 기독교는 연금술에서 영혼을 변화시켜 주는 언어적, 물리적 수단을 찾았다. 이는 마법이 신비주의로 옮겨 오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지주의. 영지주의는 기독교 이전부터 넓은 지역에 퍼져 있었던 일종의
사상적 경향성으로 유대교,이교신앙,동양사상 등이 혼합주의적으로 결합된 것이다. 신비주의는 신, 신성한 존재, 원천, 근원 등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탐구다. 모든 신의 대리인이나 중재자를 거부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 대립하거나 이단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이러한 방식이 기존에 확립된 종교적 전통과 대립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영지주의는 초기 여러 세기 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기독교 저술가들 중
상당수가 영지주의를 위험한 이단으로 분류했고, 영지주의 저작을 없애고자 했다. 이들의 활동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 마을에서 영지주의 문서 다발이 발견되었다.
영지주의자들은 만물이 존재하게 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설화를 만들어 냈다. 이들은 자신의 육체를 포함한 물리적 현실세계를 대단히 부정적으로 인식했고, 그 결과 신성한 존재가 불완전한 피조물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문제점에 직면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불완전하게 창조한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중간책임자가 필요했으며, 대개 지혜에 악역을 맡겼다.
그들은 물리적 세계를 부정적으로 여길수록 더욱 자신과 세계를 분리시키려 노력했다. 궁극적인 유일한 탈출구는 물리적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며, 이는 죽음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옵션이 있었다. 여느 신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영지주의자들도 기도,명상활동 등을 통해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 일시적으로나마 영혼을 분리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금욕주의, 反율법주의는 그러한 삶의 방편 중 하나였다.
금욕주의는 물리적 육체를 복종시키는 수련을 통해 더 이상 육체가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했고, 反율법주의는 육체에 관련된 관습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표시로 관습법을 무시했다. 그러한 관습에는 性과 관련된 법이
많았던 탓에, 反율법주의자들은 온갖 가십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수피즘. 수피즘은 흔히 이슬람 신비주의로 여겨진다. 수피즘에는 각기
고유한 전통을 지닌 여러 종파가 있으며, 서로 강조하는 부분이 다르다.
가장 유명한 수피 교단은 빙글빙글 도는 춤으로 유명해 휠링 데르비시로
불리는 메브라나 교도들이다.
신비주의의 목적이 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탐구라면, 목적을 달성한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알 할라즈(858~922)의 사례를 통해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한다.
알 할라즈는 현재의 이란 지역에서 태어나 이라크 지역에서 죽었다.
어린 시절부터 코란을 암송했고, 십대 때는 당대의 위대한 수피 스승을 찾아 떠났고, 마침내 바그다드에서 아부 알 카심 알 주나이드의 제자가 되었다. 40세 즈음에는 메카를 세 번 참례하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전했고, 인도에서 몇 년간 선교활동을 하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그가 살던 시대는 수피즘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때였으며,
그가 대중 앞에서 신비주의적 체험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런 눈총을 많이 받았다. 알 할라즈는 자신의 신비주의적 경험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 도취된 수피로 여겨졌다.
알 할라즈는 "내가 진리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 말을 '그가 신과 직접 소통했다는 수준이 아닌, 자신을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겼다'고 받아들였다. 그 결과 알 할라즈는 체포되어 922년 바드다드에서 처형되었다.
*예수의 일생과 일맥상통함.
여기에는 정치적 음모가 끼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신을 가까이에서 접했다고 주장하는 신비주의자들은 그로 인해 오해를 살 위험이 많았으며, 때로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그런 주장을 하는 신비주의자들은 인간세상의 모든 제도와 권력을 무시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신성한 지혜와 직접 소통하는 자라고 해도 언제 어디서나 환영받지는 못했다. 조직 관점에서 보자면 신비주의자는 언제나 최악의 경우엔 이단이고, 잘해야 골칫거리인 존재였다.
대부분의 사회에는 갖가지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 지혜로운 자가 있었다. 이들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여겼다. 비록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묻지 않고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마법과 신비주의는 서로 중시하는 요소가 다르다. 전반적으로 마법은 외부대상을 목표로 특정 사건에 영향력을 미치려 했고, 신비주의는 자기 내부를 대상으로 개인영혼을 발전시키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둘의 공통영역이 극대화되면 영적 발전이 외적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형태로 발현된다. 잦은 기적을 성인의 증표로 여기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마법과 신비주의를 무시하지만, 지혜의 역사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뿐 아니라, 실제 역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마법적 힘에 대한 믿음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으며, 위대한 신비주의자들은
여러 종교의 설립에 일조했다.
마법과 신비주의가 가장 흥했던 시절에는 부와 권세를 가진 자라면 간접적으로나마 연금술사의 문을 두드리지 않은 자가 없었을 정도였다.
현대의 평가와는 별개로, 마법과 신비주의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또한 스스로가 어떤 식으로든 지혜와 일치를 이루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았다.
8장. 속담과 지혜
최초의 속담 모음집은 기원전 2500년 이전에 나왔다. 고대 수메르의 <슈루파크 왕이 아들 지우수드라에게 전하는 교훈>은 단순한 속담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수 세기 이후에 편집된 <성경>의 잠언 또한 마찬가지다.
속담은 여러 문화권에서 제각기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든 문화적 맥락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정의를 찾을 수 없다.
속담은 짧고 멋지게 표현된 어떤 생각이다. 속담의 힘은 무엇보다도 간결함과 강렬한 인상에 있다.
"누구나 하는 생각을 누구보다도 멋지게 표현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위트의 본질이다." - 알렉산더 포프. <비평론>.
속담은 기억하기 좋다. 물론 기억하기 쉽다고 해서 기억할 가치까지 지녔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 기억할 가치가 있는 속담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권위자의 인증이 필요하다. 실제로 솔로몬과 관계가 전혀 없는 수천 개의 속담이 솔로몬의 말한 것으로 되어 있는 이유도 그런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속담의 출처를 솔로몬에게 돌린 이유는 그가 지혜로 명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속담의 세 가지 특징은 짧은 문장, 훌륭한 식견, 세련된 표현이다."
- 모세 이븐 에즈라.
"속담은 1인칭 재치, 만인의 지혜다." - 존 러셀.
속담은 그 안에 지혜를 담고 있어야 한다. 세련된 표현을 갖춘 문장을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쉬워도, 훌륭한 식견까지 담고 있기는 힘들다.
때로는 서로 상반된 듯 보이는 속담들도 있다.
"Absence makes the heart grow fonder. 떨어져 있으면 더욱 그리워진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최근까지 인류역사에서 입으로 했던 말은 대부분 입에서 나온 순간 사라졌다. 하지만 글로 남겨진 문장은 영원히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특정 상황에서 쓰기 좋은 속담이 다른 상황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속담을 이해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바보에게 속담을 말할 때는 반드시 그 뜻도 함께 설명해 줘야 한다."
- 아프리카 속담.
짧은 문장은 속담의 강점인 동시에 제약이다. 기억하기에는 좋지만,
내용전달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짧은 깨달음은 줄 수 있지만, 지속적인 논의를 이어 갈 수는 없다. 속담집은 일관성,체계성을 갖춘 철학서가 아니다.
9장. 오늘날의 지혜
영적인 반문화 운동, 뉴에이지. 뉴에이지는 흔히 1960년대 북미, 유럽 등에서 일어난 反문화운동의 영적측면 혹은 영적특성을 강조한 분파로 여겨진다. 뉴에이지에 포함할 수 있는 신앙,운동은 무척 광범위하고 다양해서, 완전히 새로운 것도 있고 오래된 것도 있으며, 새로운 운동이지만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도 있다.
뉴에이지에는 불교,기독교,힌두교,이슬람교,도교,신비주의종파 등이 들어간다. 켈트, 드루이드, 마야, 인디언 등 이교도의 종교적 가르침도 들어간다. 기타 온갖 활동들, 禪, 명상, 주술숭배, 계몽세미나 ,관리자교육, 샤머니즘의식, 황야행사, 영적치료법, 긍정사고 등이 주석으로 덧붙여진다.
1960년대의 반문화운동이 기성체제에 대한 반항이었던 것처럼,
영적인 반문화인 뉴에이지 운동은 기성종교에 대한 반항이었다.
뉴에이지 사상과 문학에서 특별히 자주 등장하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영원철학과 영성적 자아다.
1) 영원철학 - 세상에는 보편적인 진리가 있으며, 역사 속의 깨달은 존재들은 보편적 진리를 포착했다는 믿음이다. 보편적 진리는 직접적, 즉각적 경험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며, 오직 마음이 가난하고 순수하며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진리를 입에 담는 이는 많지만, 진실로 깨닫는 이는 극히 드물다.
말은 진리를 감지하거나 찾아가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진리를 말에 담을 수는 없다.
신비주의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궁극적인 관점은 모든 종교가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들 사이의 겉모습 차이는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보편적 진리를 깨닫지 못한 대다수의 종교인들은 그저 천박한 광신도일 뿐이다.
2) 영성적 자아 - 오로지 내적 영역만이 완벽한 삶을 구성하는 자질인 진정한 생명력, 창조력, 사랑, 평안함, 지혜, 힘, 권위 등을 제공한다. 외적 영역은 절대적으로 거부한다. '신은 내 안에 있다'라는 관념은 우파니샤드부터 영지주의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났다. 이는 모든 관습을 거부하고 자연과
일치하는 삶을 추구했던 과거의 견유학파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신은 내 안에 있다'라는 믿음은 자칫 '내 안에 있는 것이 곧 신이다'라는 잘못된 위험한 믿음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개인의 내적 영역에 포함된 모든 요소는 제각기 인간의 진정한 혹은 신성한 본성과 일치하거나 그 일부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본성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며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심리적 재앙에서 자신을 구해줄 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영원철학과 영성적 자아 외에도 뉴에이지 운동에는 다른 수많은 크고 작은 동서고금의 개인적 움직임들이 분포되어 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뉴에이지 운동은 거대한 영적 요구에 상응해 일어났으며, 다양한 사상가들이 그 요구를 충족시켰다는 점이다.
1970년대 유럽과 북미의 많은 사람들이 찬드라 모한(1931~1990, 오쇼, 브하그완 스리 라즈니시)의 아시람(수행지)을 찾았다. 그의 아시람은 원래 인도 푸나에 있었으나, 이후 미국 오리건 州에 새로운 아시람을 열었다. 세계 곳곳에서 오렌지색 옷을 입은 그의 추종자들을 볼 수 있었다.
"인생의 목적은 자각에 있다... 완전한 자각은 요가의 목표이기도 하다."
- 찬드라 모한(라즈니시).
하지만 미국에서 일부 극성 라즈니시 추종자들이 일으킨 불미스러운 생화학 테러사건은 그의 명성에 오점을 남겼다. 롤스로이스를 광적으로 수집했던 라즈니시의 기호도 나쁜 평가에 한몫했다.
뉴에이지는 포괄적 용어로 하나의 동일한 사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뉴에이지 사상가들은 자신들의 영감을 다양한 형태의 사상적 운동으로 만들었다. 일부는 약자를 먹이 삼아 사기를 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뉴에이지 운동은 전통종교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 자들에게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다양한 대안경로를 제시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19세기 말부터 있었던 신지학(神智學)이라는 사상적 운동은 많은 뉴에이지 사상가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神智學은 지혜를 받드는 종교이며,
여러 지혜의 스승 혹은 전수자들로 구성된 신비한 비밀형제회가 수 세기
동안 보존 및 전수해 왔다고 한다. 뉴에이지 운동이 神智學에 많은 매력을 느끼고 관심을 가진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神智學은 여러 가지 사상을 절충하고 혼합해 만들어 낸 사상이다.
아프리카의 현자철학. 현자철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인물인 케냐 출신 헨리 오드라 오루카(1944~1995)는 민중의 현자가 지닌 지혜는 철학적
형태를 갖추지는 못했다고 주장했다. 민중의 지혜는 수많은 개인들의 생각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들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공통된 이론적 기반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철학은 비판적 사고를 중시하지만, 민중의 지혜는 태생적으로 보수적이다. 민중의 현자는 현재 체제의 가치를 대변한다. 하지만 철학자는 언제든 현재의 체제를 비판할 준비를 취하고 있으며, 때로는 체제를 거부하기도 한다.
"대중적 지혜는 대체로 체제 순응적이지만, 교훈적 지혜는 때로 기존공동체와 대중적 지혜에 비판적이다." - 헨리 오드라 오루카.
지혜의 과학을 지향하며.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지혜의 정의는 없다!"
- 로버트 스턴버그. <지혜의 탄생>. 1990.
지혜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으며, 그 중에는 매우 상반된 입장도 있다.
뿐만 아니라 지혜 자체도 일반적 지혜, 개인적 지혜, 이론적 지혜,
초월적 지혜 등으로 분류된다.
제아무리 극단적 절충주의를 적용하더라도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정의를 뽑아 낼 수는 없다.
지혜는 일종의 지식인가? 아니면 기술인가? 지각능력인가? 성격특성인가? 아니면 이들 중 일부 혹은 전부로 구성된 그 무엇인가?
지혜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최근의 정의는 베를린 위즈덤 패러다임(지혜 연구 프로젝트)에서 나왔다. 이는 독일 막스 플랑크 사회발전연구소의 폴 발테스 등의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베를린 위즈덤 패러다임은 지혜의 핵심요소 5가지를 제시한다.
1) 삶에 대한 풍부한 사실적 지식 2) 삶에 대한 풍부한 절차적 지식 | 지식에 대한 요소. |
3) 인생 여정에 대한 맥락주의 | 지식과 적응력 모두에 대한 요소. |
4) 삶의 가치와 우선순위에 대한 상대주의 5) 불확실성에 대한 인식과 관리 | 적응력에 대한 요소. |
이는 '지혜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자 '어떻게 지혜를 판별하는가?'에
대한 지침도 된다. 가령 이 정의에 맞는 지혜로운 자는 이럴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알거나,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며,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행동으로 드러난다."
베를린 위즈덤 패러다임(지혜 연구 프로젝트)의 본질은 독단론(dogmatism)으로부터의 자유다.
하지만 베를린 위즈덤 패러다임의 결론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주로 감정적 측면이 결여되었다고 지적한다.
그중 모니카 아델트는 지혜를 인지적 차원, 반성적 차원, 정서적 차원의
세 가지로 재단하는 3차원 지혜 측정법을 제시했다.
1) 인지적 차원 - 베를린 위즈덤 패러다임에서 제시한 정의와 비슷하다.
2) 반성적 차원 - 자기반성과 자각능력을 뜻한다.
3) 정서적 차원 - 타인을 향한 감정이 포함된다.
"정서적 차원은 타인을 향한 공감, 자비, 사랑으로 구성된다. 개인의 주관을 초월해 스스로를 반성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자기 중심적 사고를 줄일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과 타인의 행동과 동기를 더욱 깊이 통찰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지혜는 타인에 대한 더욱 깊은 공감과 배려를 가능하게 하며, 건설적인 상호작용을 이끌어 낸다." - 모니카 아델트.
캐롤린 알드윈 등은 다른 방식으로 지혜를 정의했다.
"지혜는 자기인식, 집착 버리기, 동화, 자기초월, 자기중심에서 벗어나는
과정 등에서 획득되는 사고력이다." - 캐롤린 알드윈.
이 연구는 과학보다는 철학, 심리학, 신비주의 전통에 좀더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2008년 모니카 아델트, 캐롤린 알드윈 등 여러 학자들이 모여 지혜에 대한 다양한 사상적 줄기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의를 도출하고자 했다.
"지혜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인 동시에, 개인이 자기인식, 자아통합,
집착 버리기, 자기초월, 타인에 대한 연민을 증가시켜가는 발전적 과정에
있음을 드러내는 실천이다. 이 실천에는 좀더 향상된 자기관리와 바람직한 윤리적 선택이 수반되며, 결과적으로도 자신과 타인에게 훨씬 이롭다."
당연하지만, 이 정의도 만장일치를 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혜가 다차원적이라는 인식의 공감대가 생겨났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오늘날 지혜 연구에 참여하는 다양한 학문들은 각기 지혜의 다른 측면을 조명함으로써 서로
협력한다.
신경생물학 역시 지혜 연구에 참여할 명분이 충분하다.
지혜가 인식, 반성, 감정 등의 정신적 능력으로 분석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그 능력에 관여하는 생물학적 신경조직에 대한 분석 또한 당연히 가능하다. 이 분야는 새로운 가능성이 크게 열려 있는, 기대되는 분야다.
최근 지혜 연구는 좀더 과학적인 방법을 모색하며 발전하고 있다.
사회과학이 먼저 지혜 연구에 관심을 보였으며, 지금은 자연과학자들도
시선을 돌리고 있다.
글을 마치며
"모든 논의에 같은 수준의 정밀성을 요구할 수는 없으며, 필요한 수준에
이르렀다면 더 이상 세세하게 파고들 필요는 없다." - <니코마코스 윤리학>.
지혜는 질서를 관장하기도 하지만, 지혜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질서보다는 혼돈에 가까운 편이다.
지혜를 협소하게 바라보았던 이들 중에는, 지혜의 계보를 최초의 인류인
아담에게까지 연결시키려 한 유대교 신비주의자들도 있었다.
전통적 방식은 지혜의 비밀스런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계보를 통해 전해지는 지혜의 숨은 의미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음을 뜻한다.
지혜와 지식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중 일부는 지혜가 백과사전적 지식을, 다른 일부는
철학적 제1원칙과 같다고 이해했다. '불확실성에 대한 인식과 관리'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논의해봐야겠지만, 어쨌든 지식과 같은 종류보다는 인식능력 및 기술과의 연관성이 더 높아 보인다.
"게임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고 하면, 모든 게임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특징을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는 문제점에 직면한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그저 유사한 것들끼리 겹쳐지고 교차되는 복잡한 네트워크일 뿐이다. 유사성 또한 전체적일 때도 있고, 부분적일 때도 있다." - 비트겐슈타인.
지혜의 다양한 측면을 조명해주는 주제들.
창조성 - 전통적 세계 창조(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기독교), 문화창조, 문제해결능력(솔로몬)...
상대주의 - 모든 문화권은 각기 다른 전통과 관습을 지니기 마련임.
한 문화에서 통용되던 지혜가 다른 문화권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음.
보편주의 - 인간심리에 내포된 진리는 언제 어느 사회에서나 통함.
조언 - 지혜와 지식의 연관성, 지혜와 인식능력의 연관성. 이기심은 지혜를 가로막는 장애물. 현자는 자기 중심적, 당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남.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 자신이 사는 세상을 편견을 갖고 바라보게 됨...
지혜를 하나로 정의 내리는 시도는 지혜라는 큰 그림의 일부를 선명히 보여 주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림 전체를 감상하는 데는 방해가 될 것이다. 지혜는 원칙적으로 사람에 대한 연구다. 실제로 지혜란 지혜로운 사람에게서만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속담은 삶의 일부분에 대한 통찰일 뿐이며, 적합한 상황에 쓰일 때에만 유용하다. 속담과 격언에 담긴 지혜는 적절하게 사용될 때 힘을 발휘한다.
지혜를 담은 격언이 아무리 시대를 뛰어넘어 전해진다 하더라도, 지혜를 살려 내는 길은 여전히 사람에게 달려 있다.
부록 - 지혜의 격언 100선.
속담. 지혜는 평화를 부르고, 평화는 번영을 부른다.
때로는 어리석은 척하는 것도 지혜다.
'Tis wisdom sometimes to seem a fool.
현명한 사람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시작한 곳에서 끝낸다.
산울타리에 드문드문 심어진 재목처럼,
지혜로운 인재도 세상 곳곳에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건강하고 부유하고 현명해진다.
어리석은 자에게는 자신을 위해 쓸 지혜도 없다.
지혜로운 사람을 따르는 자는 지혜롭다.
지혜로운 자는 한 번만 속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두 번을 속는다.
낮에는 지혜로운 사람도 밤에는 어리석을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가질 수 없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바보는 지혜로운 사람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한다.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한마디면 족하다.
손실을 입으면 지혜가 생긴다. - 아랍 속담.
현인은 지혜를 찾아다니고, 광인은 지혜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 페르시아 속담.
시인.
일이 끝난 뒤에 깨닫기는 쉽다. - 호메로스.
지혜는 운보다 강하다. - 유베날리스.
무지가 축복인 세상에서는, 지혜를 추구하는 자가 바보다. - 토마스 그레이.
억압은 지혜로운 자를 미치게 한다. - 로버트 브라우닝.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혜롭다. - 로버트 브릿지.
행복한 일상이 우리를 지혜롭게 해준다. - 존 메이스필드.
지식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정보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 T.S.엘리엇.
아는 것이 많다고 현자가 아니라, 유용한 것을 알아야 현자다.
- 아이스킬로스.
이탈리아인은 행동하기 전에 지혜롭고, 독일인은 행동할 때 지혜롭고,
프랑스인은 행동이 끝난 다음에 지혜롭다. - 조지 허버트.
지혜로운 자를 찾고 있는가? 그는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다. - 토마스 무어.
프랑스에서는 현명한 사람이 일본에서는 미친 사람이 될 수 있다.
- 토마스 무어.
평범함 속에서 위대함을 찾는 능력은 지혜의 영원한 표징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지혜를 향한 내 사랑은 나를 향한 지혜의 사랑보다 훨씬 크다.
- 조지 고든 바이런.
정치인.
지혜도 용기도 없는 자들은 역사의 선로에 누운 채 미래를 향해 달리는 열차에 깔려 죽기만을 기다리는 자이다.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역사는 우리에게 "인류와 국가는 모든 대안을 다 써버린 뒤에야 비로소 지혜롭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 아바 에반.
평생토록 배워라.
나이가 들면 저절로 현명해질 거라 믿고 허송세월하지 말라. - 솔론.
설령 자신이 옳더라도 말다툼하지 않는 자는 현명하다. - 카토.
政府란 인간이 욕구를 채우기 위해 고안한 지혜의 산물이다.
인간은 이 지혜의 산물로 자신의 욕구를 채울 권리가 있다. - 에드먼드 버크.
인간본성에는 일반적으로 지혜로움보다는 어리석음이 더 많다.
- 프랜시스 베이컨.
자연은 언제 어디서나 지혜롭다. - 에드워드 설로.
철학자.
진실보다 더 지혜로운 것은 없다. - 섹스투스.
네가 지혜롭다는 말 외에는 무슨 말이든 해도 좋다. - 섹스투스.
지혜로운 자는 삶을 거부하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 에피쿠로스.
다른 사람을 해하는 이유는 증오나 질투나 경멸 때문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이성적 사고로 그 마음을 다스린다. - 에피쿠로스.
어리석은 자는 나쁜 일을 회상하며 괴로워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좋은 일을 회상하며 과거를 즐긴다. - 에피쿠로스.
우연히 지혜로워진 사람은 없다. - 세네카.
지혜란 과학적 지식이 결합된 직관적 사고다. - 아리스토텔레스.
사람들은 요청한 질문에 즉시 답을 내놓는 이를 가장 지혜로운 자라 부른다. - 키케로.
과학은 인간에게서 지혜를 앗아 갔고, 인간은 오로지 사실만 알고 있는 허깨비가 되었다. - 미구엘 데 우나무노.
현자라면 조화로운 균형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며,
그렇지 않은 현자가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 가브리엘 마르셀.
사물의 진정한 본질을 깨닫는 것이 지혜다. - 차웅고 바라사.
지혜란 최선의 수단으로 최선의 결과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 프랜시스 허친슨.
지혜를 담은 말은 간결하다. - 섹스투스.
불교.
부처의 지혜는 사색에 있지 않으며, 실재하는 마음도 아니요, 실재하지 않는 마음도 아니다. 그 지혜가 큰지 작은지, 깨달음인지 환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 도겐.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타인의 잘못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짜증만 낸다.
반면 지혜로운 자는 타인의 잘못을 인내할 줄 알며, 오히려 자신의 인내심을 키우기까지 한다. - 범망경.
현자는 있음(有)에도 집착하지 않고, 없음(無)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 중론송.
지혜로운 자는 신중하게 상황을 살핀 다음 꼭 필요한 행동을 취한다.
- 사캬 판디타.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지혜로운 자 또한 칭찬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다. - 법구경.
지혜로운 자는 좋은 조언이라면 전적으로 수용한다.
심지어 어린아이의 조언이라 할지라도. - 사캬 판디타.
소설가.
지혜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 경험은 누구도 대신해 주거나 나누어 줄 수 없다. - 마르셀 프루스트.
우리가 아는 지혜는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일 뿐,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힘이 아니다. - 존 치버.
진정한 지혜가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레오 톨스토이.
지혜로 황금을 구할 수는 없지만,
지혜가 있으면 더 많은 황금을 구할 수 있다. - 사무엘 버틀러.
지혜로운 사람의 행동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다른 사람에게 조언한 대로 행동한다.
둘째 진실에 반하는 행동은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셋째 주변 사람들의 결점을 감내한다. - 레오 톨스토이.
부르주아에 대한 혐오는 지혜의 시작이다. -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혜란 인생의 영원한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 레오 톨스토이.
사람들은 때로 외부인이 자신들보다 더 지혜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 앤소니 트롤럽.
육십이 되어보니 노인의 지혜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이유를 알겠다.
- 존 업다이크.
비애인 지혜도 있지만, 광기인 비애도 있나니. - 허먼 맬빌. <모비딕>.
중국.
현자의 분노는 진정한 인간애에서 나오고,
우리의 분노는 자신을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 홍위안.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는 현자가 살고 있다.
다만 그 현자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묻어 둘 뿐이다. - 왕양명.
위대한 사람들은 동심을 잃지 않는다. 어린이야말로 진정한 현자다.
- 추수익.
지혜로운 자는 모든 것을 자신에게서만 찾지만,
어리석은 자는 타인에게서 찾는다. - 공자.
현자는 욕심을 줄이고 본성을 따른다. - <회남자>.
현자는 결코 과시하기 위해 옷을 입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옷을 입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일에 나서며, 그 누구도 따지지 않는 문제에 이의를 제기한다. - <회남자>.
배움에 임하는 사람이 성현의 말씀을 단순히 언어훈련으로 여긴다면 대단히 불행하다. - 설선.
종교지도자 및 저술가.
지혜를 얻고자 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무지의
안개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죄의 먼지를 전부 털어 내야 한다. - 막시무스.
지혜는 언제나 즐겁고 참되고 아름답다. - 실루아노.
지혜는 지식을 올바로 활용하는 능력이다. 방대한 지식도 아니고 심오한 지식도 아니다. 지식을 사리에 맞게 활용할 때 지혜가 생긴다. - 자라투스트라.
자신이 가장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는 대개 가장 멍청한 자이다.
- 찰스 칼렙 콜턴.
학자의 지혜는 넉넉한 여가에서 나온다.
지혜로워지고자 하는 자는 다른 일을 줄여야 한다. - <집회서>.
지혜는 여럿이 아니라 오직 하나다. - 아우구스티누스.
욕망이 없는 상태를 지혜라 한다. - 라마나 마하리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수록 자신이 보잘것없어 보인다.
이것이 지혜의 첫 번째 가르침이다. - 윌리엄 엘러리 채닝.
지혜를 배운다는 것은 도덕을 배우는 것이다.
도덕을 배운다는 것은 도덕적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행동을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 요한 게일러 폰 카이저버그.
지혜는 신성한 것들에 대한 지식이다. - 조시 클리시토프.
지혜의 특징은 지성과 지능이다.
지혜와 반대되는 상태는 지능과 지각의 결여다. - 막시무스.
극작가와 유머작가.
현명한 사람은 두 번 말하기 전에 한 번 생각한다. - 로버트 벤칠리.
필요 이상으로 현명해지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 필리프 퀴노.
자신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음을 깨달은 자여,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것은 당신이 어제보다 지혜로워졌다는 뜻이다. - 알렉산터 포프.
한 나라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지혜로운 자들인가, 어리석은 자들인가? 나는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어리석은 자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고 확신한다. - 헨릭 입센.
교육,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모르는 것을 알려 주고,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모자람을 감춰 주는 것. - 엠브로즈 비어스.
지혜롭기보다는 운이 좋은 편이 낫다네. - 존 웹스터.
잡식.
모든 언어에서 격언으로 삼을 만한 것이라도,
침묵하는 자의 지혜는 증명할 수 없다. - 베르겐 에반스.
세상의 지혜가 틀렸음을 입증하는 것은 늘 세상의 어리석음이다.
- 올리버 웬델 홈즈.
사랑은 어리석은 자의 지혜이자, 지혜로운 자의 어리석음이다.
- 사무엘 존슨.
판사 : 미스터 스미스, 당신의 변론을 읽어 보았지만, 더욱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F.E.스미스 : 존경하는 판사님, 그렇지 않습니다. 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십니다.
지혜가 없는 신념은 위험하다. - 스티븐 런치만.
나는 사회학자들의 지혜를 활용할 수 없다. 그들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이다. - 프리먼 다이슨(과학자).
낙관주의자는 모든 신호등에서 초록색만 보는 사람이고,
비관주의자는 빨간색만 보는 사람이다.
그러나 진정 지혜로운 자는 색맹이다. - 알버트 슈바이처.
지혜는 나라와 도시와 배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준다. - <포실리드의 위서>.
지혜는 꿈을 꿀 때 찾아오지만, 땅을 일구는 사람은 꿈을 꿀 수 없다.
- 워보카(아메리카 인디언 지도자).
누가 더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인가?
먹고 살기 충분할 만큼 벌지만 엄청난 고생을 하며
쉬지 않고 일하는 자인가? 사냥과 낚시를 즐기고, 그것으로 필요한 것을
모두 충당하며 여유있게 사는 자인가? - 미그맥족 추장.
사람이 항상 지혜로울 수는 없다. - 플리니우스.
한 인간의 지혜는 그 시대의 지혜이며, 그의 무지 또한 그 시대의 무지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혜는 고매한 지식이 아니라 온전한 삶을 영위하려는
개인의 꿋꿋한 경험일 뿐이다. - 마크 에드문드 존스.
감사의 말
이 책은 여러 해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돌아다니던 생각들을 정리한 것이다.
항상 격려와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