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山文集
제1권詩
서산(西山)김흥락金興洛(1827-1899)
如斯軒。次士欽弟 承洛 韻。
狂士嘐嘐不自裁。陳編千古幾回開。此間賴有源頭水。
日夜長看混混來。
[如斯軒次士欽弟(여사헌차사흠제) 承洛韻(승락운)]
여사헌*에서 아우** 사흠 승락의 시에 차운하다
* 여사헌(如斯軒) : 학봉 종택 옆에 있던 정자이다. 학봉의 현손 김세기(金世基)가 자손의 양육을 위하여 집을 짓고 당호를 ‘여사헌(如斯軒)’이라 하였다.
** 아우 : 김승락(金承洛, 1835~1899)이다. 자는 사흠(士欽)이며
호는 병서(屛西)이다. 1891년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狂士嘐嘐不自裁(광사교교부자재)
뜻만 큰 선비*로 자신을 헤아리지 못하고
* 뜻만 큰 선비 : 맹자 「진심(盡心)」장에서 온 말로 “그 뜻이 커서 항상
고인을 말하지만 평소에 그 행실을 돌아보면 말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其志嘐嘐然 曰古之人古之人 夷考其行而不掩焉者也]”라고 하였다.
陳編千古幾回開(진편천고기회개)
천고의 남은 책을 몇 번이나 펼쳤던가
此間賴有源頭水(차간뢰유원두수)
이 중에 진리의 근원 샘처럼 있으니
日夜長看混混來(일야장간혼혼래)
밤낮으로 도도히 흘러오는 것을 보리라
春日書懷。示諸君。
吾道分明在眼前。游心不必杳茫邊。塵編歷落垂謨訓。
歸去須看墨帳煙。
[春日書懷示諸君(춘일서회시제군)]
봄날에 회포를 써서 여러 사람에게 보이다
吾道分明在眼前(오도분명재안전)
우리 도는 분명히 눈앞에 있으니
游心不必杳茫邊(유심불필묘망변)
아득히 먼 곳에 마음 쓸 필요 없네
塵編歷落垂謨訓(진편력락수모훈)
옛 책에 뚜렷이 가르침이 전해 오니
歸去須看墨帳煙(귀거수간묵장연)
돌아가서 꼭 밤새 불 밝히고 읽어 보게*
* 원문의 묵장(墨帳)은 범중엄(范仲淹)의 아들 범순인(范純仁)이 공부할 때 밤늦도록 잠자지 않고 서재의 장막 안에 등불을 켜 놓았었는데, 장막이
그을음으로 검은 색이 되었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宋書 「范純仁傳」)
述夢
昨夜遠客來。手持帶鏡授。帶絲鏡以玉。云爾先祖舊。
流傳恐失墜。莫若還其胄。拜謝繼以涕。此義昔罕覯。
因念嘉惠意。無乃警昏繆。帶以束我身。鏡以開我瞀。
束身心不放。開瞀見益透。循循不自休。足目庶俱就。
我昔非無志。爲學儘鹵莽。疾病又來侵。懶廢失素守。
持身沒拘檢。看理欠析剖。尤悔日以積。庸庸百無取。
先靈默我佑。夢寐我衷誘。感此長歎息。何異親承受。
覺來如有得。書之當座右。
[述夢(술몽)]
꿈을 서술하다
昨夜遠客來(작야원객래)
지난밤에 먼 데서 손님이 오셔서
手持帶鏡授(수지대경수)
허리띠와 거울을 가져다주었네
云爾先祖舊(운이선조구)
우리 선조의 유물이라 하였네
流傳恐失墜(류전공실추)
이리저리 전하다 잃을까 염려되니
莫若還其胄(막약환기주)
주손에게 돌려주는 게 낫다 하였네
拜謝繼以涕(배사계이체)
절하고 사례하며 눈물을 흘리니
此義昔罕覯(차의석한구)
이 같은 의리는 옛날에 드물던 일
因念嘉惠意(인념가혜의)
이어서 이를 주신 뜻을 생각하니
無乃警昏繆(무내경혼무)
어둡고 어리석음 깨우치심이 아닌가
帶以束我身(대이속아신)
허리띠로는 내 몸을 단속할 수 있고
鏡以開我瞀(경이개아무)
거울로는 내 어리석음 깨칠 수 있네
束身心不放(속신심불방)
몸을 묶으면 마음이 풀어지지 않고
開瞀見益透(개무견익투)
어리석음 깨치면 보는 것이 더 맑아져
循循不自休(순순부자휴)
차례를 따라 스스로 쉬지 않으면
足目庶俱就(족목서구취)
실천과 식견을 아마 함께 성취하리
我昔非無志(아석비무지)
지난날 나도 뜻이 없지 않았으나
爲學儘鹵莽(위학진로망)
공부하는 것이 모두 거칠었다네
疾病又來侵(질병우래침)
질병이 또한 침노해오니
懶廢失素守(라폐실소수)
게을러서 처음 마음을 잃어버렸네
持身沒拘檢(지신몰구검)
몸가짐엔 검속함이 없었고
看理欠析剖(간리흠석부)
이치를 살핌에는 분석함이 모자랐네
尤悔日以積(우회일이적)
허물과 뉘우침이 날마다 쌓여
庸庸百無取(용용백무취)
용렬하여 전혀 취할 것이 없었네
先靈默我佑(선령묵아우)
조상의 영령께서 말없이 도우사
夢寐我衷誘(몽매아충유)
꿈속에서 나를 충심으로 이끄시네
感此長歎息(감차장탄식)
이에 감격하여 길게 탄식하니
何異親承受(하이친승수)
친히 가르침 받은 것과 무엇이 다를까
覺來如有得(각래여유득)
잠 깨니 참으로 깨달음이 있는 듯해
書之當座右(서지당좌우)
이를 써서 마땅히 좌우명을 삼노라
讀書有感 二首
閒居無物暢幽襟。家有千編直萬金。棐几薰爐初日上。夜齋風雪一燈深。休將冷淡謾過眼。讀到苦辛方會心。人世百年如隙駟。俛焉從此惜分陰。
爲學須從立志先。好將誠敬做眞詮。天高海闊襟情遠。玉振金聲巧力全。燒草生憎春後長。夜衾恒媿日中愆。到頭別有工夫在。磨鍊秋霜一鐵堅。
[讀書有感(독서유감) 二首(이수)]
독서하면서 느낌이 있어서. 2수
閒居無物暢幽襟(한거무물창유금)
한가히 사노라니 회포 풀 것 없으나
家有千編直萬金(가유천편직만금)
집에 있는 천 권의 책 만금에 값 하도다
棐几薰爐初日上(비궤훈로초일상)
훈훈한 화로 책상머리에 아침 해 뜨고
夜齋風雪一燈深(야재풍설일등심)
눈보라 치는 밤 서재에 등불 깊어가네
休將冷淡謾過眼(휴장냉담만과안)
냉담한 마음으로 눈요기만 하지 말고
讀到苦辛方會心(독도고신방회심)
고심하며 읽어야 이해할 수 있다네
人世百年如隙駟(인세백년여극사)
인간 세상 백 년이 한 순간 같은데
俛焉從此惜分陰(면언종차석분음)
이제부터 부지런히 촌각을 아끼리
爲學須從立志先(위학수종립지선)
공부에는 모름지기 먼저 뜻을 세우고
好將誠敬做眞詮(호장성경주진전)
성과 경을 잘 가져 참된 도리로 삼네
天高海闊襟情遠(천고해활금정원)
높은 하늘 넓은 바다처럼 원대한 뜻 품고
玉振金聲巧力全(옥진김성교력전)
시작부터 끝까지 온 힘을 다해야지
燒草生憎春後長(소초생증춘후장)
풀 태워도 봄이면 다시 자라남 싫어하고*
*호인(胡寅)의 시구 “풀을 태워도 봄바람을 맞으면 또 자라난다
[燒草又趁春風長]”를 인용하여, 입지(立志)가 굳건하지 못하면
잡생각이 자꾸 생긴다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夜衾恒媿日中愆(야금항괴일중건)
밤 이불엔 낮 동안의 허물이 부끄럽네*
* 홀로 있어도 삼가고 조심함을 말한다. 송나라 유학자 채원정(蔡元定)이
귀양지에서 배우러 온 생도들에게 「독행시(獨行詩)」를 써서 훈계하여 “홀로 다닐 때는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고, 홀로 잠잘 때는 이불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니, 내가 죄를 얻었다고 하여 해이하지 말라.[獨行不愧影 獨寢不愧衾 勿以吾得罪故遂懈]”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다.(宋史 卷434 「蔡元定列傳」)
到頭別有工夫在(도두별유공부재)
가는 곳마다 공부할 일 따로 있나니
磨鍊秋霜一鐵堅(마련추상일철견)
추상같이 굳건한 한 마음을 준비하리
次士欽
人生百年內。忽忽彈指然。榮枯元有數。憂樂且隨緣。
如何費心膂。膏火日相煎。日暮彩雲滅。秋空月華鮮。
灑然無點累。請君照心天。
[次士欽(차사흠)]
사흠에게 차운하다
人生百年內(인생백년내)
사람 살아 봐야 백 년 이내
忽忽彈指然(홀홀탄지연)
덧없기가 손가락 튕기듯 하지*
* 원문은 탄지(彈指)는 불교의 용어로서 극히 짧은 시간을 말한다.
榮枯元有數(영고원유수)
영화와 쇠락은 원래 운수가 있고
憂樂且隨緣(우악차수연)
근심과 즐거움 또한 인연을 따르지
如何費心膂(여하비심려)
무엇 때문에 마음을 써서
膏火日相煎(고화일상전)
기름불처럼* 날마다 애태우나
* 유용하여 스스로 자신을 괴롭히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 “산의 나무는 유용하기 때문에 벌목을 자초하고,
유지(油脂)는 불을 밝힐 수 있어서 자기 몸을 태우게 만든다.
[山木自寇也 膏火自煎也]”라는 말에서 나왔다.
日暮彩雲滅(일모채운멸)
해가 저무니 오색구름 다하고
秋空月華鮮(추공월화선)
가을 하늘에는 달빛이 곱구나
灑然無點累(쇄연무점루)
쇄락하기가 한 점 누됨도 없으니
請君照心天(청군조심천)
청컨대 자네 마음을 하늘에 비춰 보게
召溪月夜。與金德文 碩奎 會話。
吾道從來一髮危。如君又作樹雲詩。百年離合元常態。
萬古升沈各一時。壯士不爲生晩歎。幽期聊向歲寒知。
愀然對榻還無語。春夜幽幽白月遲。
[召溪月夜與金德文(소계월야여김덕문) 碩奎(석규) 會話(회화)]
소계 달밤에 김덕문 석규와 만나서 이야기하다
吾道從來一髮危(오도종래일발위)
우리 도는 예로부터 위기일발*이라 위태로운데
* 위기일발 : 일발(一髮)은 일발인천균(一髮引千鈞)의 줄임말이다.
한 가닥의 머리카락으로 3만 근이나 되는 무거운 물건을 끌어당긴다는
뜻으로 극히 위험하거나 무모한 일을 비유한다.
如君又作樹雲詩(여군우작수운시)
자네는 또다시 수운* 시를 짓는군
* 수운(樹雲) : 멀리 있는 벗을 그리워할 때 쓰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에 “위수 북쪽엔 봄 하늘에 우뚝 선 나무, 강 동쪽엔 저문 날 구름.[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이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百年離合元常態(백년리합원상태)
인생에 만나고 헤어짐은 본디 늘 그렇고
萬古升沈各一時(만고승침각일시)
만고에 오르고 내림도 각각 한 때의 일
壯士不爲生晩歎(장사불위생만탄)
장사는 늦게 났음을 탄식하지 않고
幽期聊向歲寒知(유기료향세한지)
어려움에도 한결같기를* 속으로 기약하지
* 원문의 세한지(歲寒知)는 논어 「자한(子罕)」의 “날씨가 추워지고 나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愀然對榻還無語(초연대탑환무어)
쓸쓸히 책상을 마주하고 도리어 말이 없는데
春夜幽幽白月遲(춘야유유백월지)
깊어가는 봄밤에 흰 달만 느리게 가네
次姜周卿 𨬋 簡寄韻
故人三年別。寒暑迭駸駸。一雨連晦朔。蒸雲仍晝霒。
獨坐無誰語。塵土欲滿襟。發篋有素書。蘭臭此重尋。
感子珍重意。何異聞跫音。昔余抱疑胷。猥誦求放心。
發之乃無端。故若托意深。君言是警我。盍於此熅燖。
郢書燕則說。實非事可欽。寄詩更見意。韻格何嶔崟。
從頭細劈破。軟物受利鐔。蕘言在所擇。曠度實吾箴。
盥薇擎讀訖。重之如球琳。大言吾有媿。數年學蟬喑。
蓋玆鄒聖訓。兩義要相參。彼哉主先入。不肯受人針。
而余迷所適。久在是非林。學問諒多端。其道何由斟。
惟心是化原。萬理此中含。出入無定鄕。神機誰測探。
崩奔不自返。本原幾時恬。覺了便在此。求仁是可任。
然後志氣淸。善端始炎炎。行解有本領。鉅細得相涵。
上達由下學。請看聖呼參。洛閩互演繹。昭若日星臨。
若道求便休。逝將異學耽。其一主存心。宗旨宜沈潛。
問學有歸宿。要使天君森。千蹊皆適國。祈招思不禁。
甲乙俱有本。未可輕擲擔。註意如指掌。爲我重發凡。
哀哉我輩人。荒屋病慵兼。園蓬久沒人。隣老仰豪男。
已矣成枯落。寤歎寢俱啽。新詩更起余。努力受鎚鉗。
[次姜周卿𨬋(차강주경면) 簡寄韻(간기운)]
강주경 면*이 편지로 보내 준 시에 차운하다
*강면(姜𨬋 , 1836~1896) : 자는 주경(周卿), 호는 극재(克齋),
본관은 진주이다. 저서로는 극재집이 있다.
故人三年別(고인삼년별)
벗과 헤어진 삼 년 동안에
寒暑迭駸駸(한서질침침)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찾아왔네
一雨連晦朔(일우련회삭)
비는 한 달 동안 이어지고
蒸雲仍晝霒(증운잉주음)
찌는 구름은 낮에도 흐리네
獨坐無誰語(독좌무수어)
홀로 앉아 말할 사람 없는데
塵土欲滿襟(진토욕만금)
세상일이 마음에 가득하더니
發篋有素書(발협유소서)
책 상자 여니 편지* 있기에
* 편지 : 원문의 소서(素書)는 진(晉)나라 육기(陸機)의 「음마장성굴행
(飮馬長城窟行)」이라는 악부시(樂府詩)에 “멀리서 온 손님, 잉어 두 마리 전해 주네. 아이 불러 요리하라 했더니, 속에서 한 자의 비단 글이 있네.
[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呼兒烹鯉魚 中有尺素書]”에서 온 말이다.
蘭臭此重尋(란취차중심)
벗님의 향기 여기서 다시 찾네
感子珍重意(감자진중의)
그대의 진중한 뜻을 느끼니
何異聞跫音(하이문공음)
찾아오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 찾아오는 것 : 원문의 공음(跫音)은 찾아오는 이의 발자국 소리를 말한다. “혼자 빈 골짜기에 도망쳐 살 적에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반가울 텐데.
[夫逃虛空者 聞人足音跫然而喜]”에서 유래한다.(莊子 「徐無鬼」)
昔余抱疑胷(석여포의흉)
전날 내 마음이 의문에 사로잡혀
猥誦求放心(외송구방심)
구방심*을 무수히 외었네
* 구방심(求放心) : 주자의 「구방심재명(求放心齋銘)」을 가리킨다.
(朱子全書 卷85)
發之乃無端(발지내무단)
발하여도 단서가 없었으니
故若托意深(고약탁의심)
그래서 의탁한 뜻이 깊었던 듯
君言是警我(군언시경아)
그대 말이 나를 깨우치시니
盍於此熅燖(합어차온심)
어찌 이에서 깊이 생각지 않으리요
郢書燕則說(영서연즉설)
영서를 연에서 기뻐한* 것처럼 하니
* 영서는 초나라 정승의 글이고 열(說)은 남의 글을 내용 이상으로 좋게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초나라 정승이 연나라 정승에게 편지를 보낼 때
촛불 맡은 사람을 불러 촛불을 들도록[擧燭] 했다. 그러자 받아쓰는 사람이 그 말까지 편지에 썼는데, 연나라 정승이 이 편지를 받아 보고 거(擧)는 어진 이를 천거하라는 말이고 촉(燭)은 어둠을 밝히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그대로 시행하여 연나라가 크게 발전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韓非子)
實非事可欽(실비사가흠)
실지로 흠모할 만한 일 아니었네
寄詩更見意(기시경견의)
시로 다시 뜻을 보여 주니
韻格何嶔崟(운격하금음)
운격이 어찌 그리도 우뚝한가
從頭細劈破(종두세벽파)
첫머리부터 세밀하게 설파하니
軟物受利鐔(연물수리심)
부드러운 것이 날카로운 칼 받은 듯
蕘言在所擇(요언재소택)
나무꾼의 말도 택할 것이 있는데
曠度實吾箴(광도실오잠)
넓은 도량은 실로 나의 경계라서
盥薇擎讀訖(관미경독흘)
공경히* 들어 읽기를 마치니
* 공경히[盥薇] : 벗에게서 온 편지를 공경하여 읽음을 말한다.
“먼저 장미꽃 이슬로 손을 닦고 나서 서신을 읽는다.
[先以薔薇露 灌手然後讀]”에서 유래한다.(雲水雜記)
重之如球琳(중지여구림)
아름다운 옥과 같이 소중하구나
大言吾有媿(대언오유괴)
큰 말씀에 내가 부끄러움 있어
數年學蟬喑(수년학선음)
여러 해 동안 풍도*를 배웠네
* 풍도[蟬喑] : 매미 소리를 듣는 것을 말한다. 당초 퇴계가 주자(朱子)의
편지를 뽑을 때 주자가 여백공(呂伯恭)에게 보낸 답서 중의 “수일 사이에
매미소리가 더욱 맑으니 들을 적마다 고풍을 사모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數日來 蟬聲益淸 每聽之 未嘗不懷高風也]”란 구절을 뽑아 넣었다.
남언경(南彦經)한테 이러한 긴요치 않은 구절을 왜 뽑았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또다시 이담(李湛)에게도 그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퇴계는 논어의 사례를 들고 또 “내가 평일에 이러한 곳을 매우 사랑하였습니다. 매양 여름철
푸른 나무가 우거지고 매미소리가 귀에 가득히 들려오면 마음이 미상불
두 선생(주자와 여동래)의 풍도를 우러러 사모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退溪集 卷10)
蓋玆鄒聖訓(개자추성훈)
이 맹자의 가르침에는
兩義要相參(량의요상참)
두 뜻을 서로 참고하여야 하는데
彼哉主先入(피재주선입)
저렇게 주장이 먼저 든 이는
不肯受人針(불긍수인침)
남의 지적을 받으려 하지 않네
而余迷所適(이여미소적)
그런데 나는 나아갈 길에 혼미하여
久在是非林(구재시비림)
오랫동안 시비 속에 있었네
學問諒多端(학문량다단)
학문의 많은 단서에서
其道何由斟(기도하유짐)
그 도를 무엇으로 짐작하리요
惟心是化原(유심시화원)
오직 마음이 변화의 근원이며
萬理此中含(만리차중함)
온갖 이치가 이 속에 있도다
出入無定鄕(출입무정향)
출입함에 정해진 방향 없으니
神機誰測探(신기수측탐)
신묘한 기미를 누가 헤아리리
崩奔不自返(붕분불자반)
무너지고 달아나서 돌아오지 않으니
本原幾時恬(본원기시념)
본원이 어느 때나 편안할고
覺了便在此(각료편재차)
깨달으니 문득 여기에 있으니
求仁是可任(구인시가임)
구인을 감당할 수가 있네
然後志氣淸(연후지기청)
그리하여 지기가 맑아지고
善端始炎炎(선단시염염)
선의 단서 비로소 불타오르네
行解有本領(행해유본령)
행동과 이해는 본령이 있어
鉅細得相涵(거세득상함)
크고 작음이 어울릴 수 있으리
上達由下學(상달유하학)
상달은 하학에 말미암으니*
* 아래로 인사(人事)를 배워서 위로 천리(天理)를 알아감을 말한다.
“아래로 인사를 배워 위로 천리를 통달한다.[下學而上達]”에서 유래한다.(論語 「憲問」)
請看聖呼參(청간성호참)
공자께서 ‘삼아’라고 부르심*을 보라
*‘삼아’라고 부르심[呼參] : 한 가지 이치가 수많은 일을 꿰뚫고 있음을
증자를 불러 알려준 일을 말한다. “삼아! 우리 도는 하나로써 꿰뚫는다.
[參乎 吾道一以貫之]”에서 유래한다.(論語「里仁」)
洛閩互演繹(락민호연역)
낙민*이 서로 풀어가니
* 염락관민(濂洛關閩)의 학문을 말한다.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頤),
낙양(洛陽)의 정자(程子),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민중(閩中)의 주자를 통칭한 것으로, 곧 송대의 성리학을 뜻한다.
昭若日星臨(소약일성림)
해와 별이 임한 듯 밝네
若道求便休(약도구편휴)
만약 도를 구하다가 곧 멈춘다면
逝將異學耽(서장이학탐)
가다가 장차 이단을 탐하리라
其一主存心(기일주존심)
그 첫째는 존심을 주장하고
宗旨宜沈潛(종지의침잠)
종지에 마땅히 침잠하여야 하네
問學有歸宿(문학유귀숙)
학문은 귀결처가 있으니
要使天君森(요사천군삼)
마음이 삼엄하도록 하여야 하네
千蹊皆適國(천혜개적국)
천 갈래 길 모두 서울로 가니
祈招思不禁(기초사부금)
기초*의 생각을 금할 길이 없네
* 기(祈)는 주(周)나라 때의 사마관(司馬官)이고, 초(招)는 당시 사마관의 이름이다. 주 목왕(周穆王)이 일찍이 천하를 주행(周行)하려 하자, 당시
경사(卿士)였던 채공 모보(祭公謀父)가 왕의 출행을 만류하고자 하여,
왕의 출행에 반드시 수행하게 되는 사마관 초를 의탁해서 시를 지어 왕을
간하였다. “기초는 온화하여 왕의 덕음을 밝히는지라. 우리 왕의 법도를
생각하여, 민력을 옥과 같이 여기고 금과 같이 여기니, 왕께서 백성의 힘
헤아리어 취하고 배부를 마음 없으시도다.[祈招之愔愔 式昭德音 思我王度 式如玉 式如金 形民之力 而無醉飽之心]”에서 온 말이다.(春秋左氏傳 「昭公」 12年)
甲乙俱有本(갑을구유본)
갑을이 모두 근본이 있어
未可輕擲擔(미가경척담)
가벼이 버리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네
註意如指掌(주의여지장)
주석의 뜻이 손바닥 가리키듯 하여
爲我重發凡(위아중발범)
나를 위해 거듭 요지를 말하였지만
哀哉我輩人(애재아배인)
애석하도다 우리는
荒屋病慵兼(황옥병용겸)
거친 데다 게으르기까지 하여
園蓬久沒人(원봉구몰인)
동산의 쑥대 속에 파묻힌 지 오랜데
隣老仰豪男(린로앙호남)
이웃 늙은이는 호남이라 우러르네
已矣成枯落(이의성고락)
어쩔 수 없도다, 말라버렸으니
寤歎寢俱啽(오탄침구암)
자나 깨나 탄식을 하네
新詩更起余(신시경기여)
새로운 시로 다시 나를 일깨우니
努力受鎚鉗(노력수추겸)
가르침을 받으려고 노력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