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지 말고 흘러라
안젤름 그륀의 마음 순례기
원제 : Vergiss das Beste nicht
The farewell is only between people
It does not exist.
Lifestyle and lifestyle patterns,
Time and time of life
I do goodbye.
이별은 단지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 습관이나 생활 패턴,
이미 지나간 인생의 시간과도
이별을 합니다.
Separation is the right time
It is a growing tongue that must go through.
Newness is only when you release old things
You can grow.
이별은 적절한 시기에
꼭 거쳐야 하는 성장통입니다.
새로움은 오래된 것을 놓아줄 때에만
성장할 수 있습니다.
Please free the past,
The future opens as the past has been released.
If you release the past, your mind becomes flexible.
과거를 자유롭게 놓아주십시오,
과거를 놓아준 만큼 미래가 열립니다.
과거를 놓아 주면 마음이 유연해집니다.
Separation from the familiar.
Habits and everything we trust
Say goodbye several times a day.
It can only be that you are present,
It opens the door to newness.
익숙한 것과의 이별.
습관과 우리를 신뢰하는 모든 것과
하루에 몇 번씩이라도 이별을 고하세요.
그것만이 현재에 당신이 존재할 수 있으며,
새로움에 문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Anselm Grun "Do not stay."-
-안젤름 그륀 ‘머물지 말고 흘러라’ 중-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자신과의 화해입니다
단순히 시간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에게는 영혼을 위한 시간도 필요합니다
이제 인생의 작전타임을 부르세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말입니다
존재하는 기술, 집중하여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세요
인생이란 받아들이고 놓아주는 행위의 변증법입니다
인위적인 리듬 대신 자연의 리듬을 선택해야합니다
삶은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진정 황무지를 일구고자 한다면 먼저
들판에 말뚝을 박아 경계를 표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길에서 오롯한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결코 다른 사람의 길을 따라가지 마세요
“나는 누구인가”
자아란 결코 뒤바뀔 수 없는 내 이름입니다
실망은 진실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인 셈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현실과 화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사랑은 발전하는 마음입니다
처음에는 기분 좋게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하지요
그런 다음에 사랑이 시작됩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이룬 모습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도사는 어부처럼 마음의 바닷가에서 생각과
감정의 물고기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립니다
머릿속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때도 그 아래
깊은 곳은 고요합니다
우리는 그곳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애써 평온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평온이 이미 마음속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해란 자신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지 않고 서로에 대해
호의적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에게 호의적일 때에만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고
스스로에게 키스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평범한 삶을 인정하십시오 그래야만
삶에 대해 품었던 환상과 이별할 수 있습니다
성공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환상과 작별을 고할 수 있습니다
육체는 존재를 위한 통로입니다
인생의 목표는 향유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인 욕구를 무시하기보다는
그 욕구를 온화하게 다루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단조로운 일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오직 중용을 갖춘 사람만이 평온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분주하게 시간을 보낸다는 건 목표와 방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 마크 트웨인
“속도는 공허함을 불러들이고 공허함은 조급함을 재촉한다”
- 폴 비릴리오
현명하다는 건
지식을 현실에 적합한 행동으로 바꾸는 이성입니다
마음 속 모든 것은 변화의 징조
지나간 일들을 신 앞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그 일들은 단순히 흘러 지나쳐 가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나이테처럼 우리의 일부분이 됩니다.
이 때 우리 내면에는 무엇이 성장했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방랑하는 자의 얼굴
방랑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마세요.
방랑하는 자만이 우울함에 지배되지 않습니다.
방랑은 불안하게 만드는 생각의 소용돌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목소리에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말하세요.
당신은 외부에 지배되지 않고 자신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단, 들을 수 없는 이는 목소리를 낼 수 없음을 기억하세요.
예수님은 농아의 혀를 치유할 뿐 아니라 듣도록 하기 위해
귀도 치유하셨습니다.
사는 즐거움을 느끼려면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매 순간을 음미하려고 하겠지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의하면서, 신중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 사실을 왜곡하려고 하기 때문에
삶이 새로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유년기의 상처에 집착하면 좋은 삶을 꾸려나갈 수 없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상처 속에는 건강한 뿌리도 존재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부모와 이별할 때 비로소
그 건강한 뿌리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향해 가고 있는 곳
우리는 인생의 비밀이 남긴 자취를 쫓고 있습니다.
그래서 묻겠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살아가고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당신에게 삶이란 어떤 느낌입니까?
조화를 이루는 사람
상대방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하지 마세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당신 내면의 의미를 신뢰하면 될 뿐입니다.
기다림과 기대감
신이 당신을 기다린다고 할 때 당신의 기분은 어떻습니까?
스스로를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십시오.
기다림은 우리에게 삶이 진부하지 않다는 생각을 선물합니다.
이는 우리가 신비함으로 가득한 무언가를 기다리고 가장 열망하던 동경이 충족되기를 기다릴 때 볼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가 생각할 수 있는 이상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다리는 대상이 주는 본질을 얻기 위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은 놓아주고 존중하는 것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인에게 대해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진실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잘못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올바른 자신을 찾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게 방해할 뿐입니다.
자신의 욕망과 소원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내면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치입니다.
그리고 자유로운 사람만이 비로소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위에 생각이 밝은 사람을 둔다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입니다.
나는 당신이 명랑한 천사들과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언제나 홀로 남는 자
진심으로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불운과 불행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교제란 성실하고 솔직해야 이루어집니다.
마음을 열 수 있는 상대는 축복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줍니다. 늘 진실만을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연민에 기대지 마십시오. 타인이 근처에 있을 때만 생동감을 느낀다면, 그건 스스로의 존엄성에 위배 됩니다. …
삶이 주는 즐거움만을 맛보려 해서는 안됩니다.
악함을 피하고 선함을 행하면서 삶의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단념을 배워야 합니다.
단념은 내면의 자유로 가지 위한 금욕을 말합니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사람만이 환희를 맛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외부로부터 강요된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의 기분은 정말 우울할 것입니다.(p.27)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매 순간을 음미하려고 하겠지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의하면서, 신중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 사실을 왜곡하려고 하기 때문에 삶이 새로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 매일 죽음을 생각합니다.
슬픈 얼굴로 세상을 달려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음미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인생을 사는 즐거움을 느끼려면 죽음을 연습하십시오.
죽는 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알찬 인생을 가꾸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p.28)
시간을 올바로 정하는 것,
즉 삶에 질서를 잡는 것이 건강한 생활을 꾸리는 출발점입니다.(p.32)
'가다(gehen)'라는 동사는 인생의 의의와 목표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이 동사의 어원은 ‘여행하다’, ‘발자국을 찾다’, ‘방향을 잡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가다’라는건 무언가를 생각하고,
의의를 묻고, 목적지를 찾는 것을 말합니다.
길을 떠나는 사람은 인생의 의의에 대해 묻습니다.
길을 가다가 도중에 서 있는 이유가 무엇이며,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끊임없이 묻습니다. 길을 가는 우리의 목적지는 결코 내면의
세계가 아닙니다. 우리가 향해 가고 있는 곳은 마지막 은신처이자 최후에 정착하게 될 고향입니다....(p.34)
올바로 경청하십시오. 그러면 자극적인 말뿐아니라 중간 높이로
공명하는 외침과 동경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만일 비판적인 말에 동요하여 스스로를 변명하고 변호하고자 한다면, 당신을 이미 패한 것입니다. 올바로 듣지 못한 것이지요.
더불어 침착함마저 잃게 됩니다.
자신이 가지는 의마보다는 감정에 충실하여 결국 타인에 의해 모든 것이 좌우될 것입니다...(p.39)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제대로 알기 힘듭니다.
깊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건 오로지 사랑뿐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줍니다.
사랑에 대한 오해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을 감싸는 것이라고 믿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p.43)
타인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결정된다는 느낌이 당신을 불만족스럽게 만듭니다. 이때 느껴지는 소외감을 기한에 쫓겨 내몰린다는
느낌과 같습니다. 낯선 것이 생활을 지배하는 것이지요,
물론 사랑은 이 낯섦까지도 자신의 일부로 변화시킵니다.
당신이 타인의 요구를 잘 조정하고 외부의 기대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기를 기대합니다.(p.45)
사랑은 발전하는 마음입니다. 처음에는 기분좋게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하지요. 그런 다음에 사랑이 시작됩니다.
사랑은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의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을 위해 새로운 눈을 가지십시오.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새로운 빛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p.46)
사랑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은 향한 선한 마음을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만들어낸 선한 마음은 현실을 기분 좋게 변화시킵니다.
믿음은 현실을 다시 해석할 뿐이지만 사랑은 그 현실을 변화시킵니다.
사랑은 헌신입니다. 결코 자신에게만 머무를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상대에게 헌신하길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헌신할 수록 사랑은 큰 선물을 전합니다.
그 선물은 이전보다 더욱 풍요로워지고 더욱 활력있고
더욱 자유로워지는 묘약입니다.
사랑은 변화하는 삶의 기본 법칙을 따르도록 되어있습니다.
사랑은 현실에 반응합니다.
.. 사랑은 놓아주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의 비밀을 직감적으로 알아내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불만족, 호전성, 권력을 얻기
위한 노력, 인정에 대한 욕구와 음모를 들춰냅니다.
그리고 선함에 대한 동경을 확인하지요.
사랑은 어느 것도 속이지 않습니다.
.. 노여움과 분노, 시기와 불안, 혐오와 실망은
사랑에 의해 변화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인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자신의 진실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잘못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올바른 자신을 찾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게 방해할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평가에 따라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또한 자신의 생활사에 얽매여 자유롭게 결정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감정, 열정, 욕망 그리고 수많은 소원들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행을 미치고 자유를 침해하기도 합니다.
.. 내면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치입니다.
.. 자유로운 사람만이 비로소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생각이 밝은 사람은 긍정적입니다. 그래서 겁먹지 않습니다.
침착하기 때문이지요..
..관계에 실해하는 이유는 상대방에게 가혹한 요구를 하기 때문입니다
...온화한 눈길로 상대방의 약점을 바라볼 때,
우리는 공존할 수 있습니다.(p.56)
타인과 화해하기 전에 자신과 화해하십시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평화를 위해 분노를 억누른다면 당신을 화나게 한
대상과 결코 화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감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감정을 함부로 평가하지 마십시오, 그 감정은 모두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호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친절합니다. 친절한 사람은 온정이 넘칩니다. 그 마음의 선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의 선함은 조화를 이룬 영혼에서 비롯됩니다.
영혼이 선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선하다고 믿습니다.
타인을 선하게 보기 때문에 선하게 대할 수 있는 겁니다.
따라서 당신의 호의적인 행동이 타인의 선한 본질을 이끌어 냅니다.
누구든 칭찬받을 만한 것이 있습니다.
먼저 상대의 긍정적인 부분을 말해 주십시오.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하지 말고, 다르게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건 당신을 먼저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변화를 상대가 알 수 있도록 살짝 들켜주는 겁니다.(p59)
가까움과 멂, 사랑과 반감, 이해와 몰이해, 일체감과 고독은
서로 짝을 이룹니다. 이들이 서로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를 위해 결실을 맺습니다. 이중 하나만을 선택하면 실망과 환상에 빠져듭니다. 소통이 없는 우정은 친구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 뿐입니다.
소통이 없다면 분열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됨과 분리됨, 가까움과 멂, 사랑과 반감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래야만 더욱 높은 차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p. 62)
동경은 유토피아를 구체적으로 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텍쥐페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당신이 배를 만들고자 한다면,
사람들에게 바다를 향한 동경을 가르쳐라.”
하늘을 동경하던 중세 사람들은 높은 돔을 지었습니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음악은 하늘로 향하는 창문을 열어준다고 믿었지요. 모든 예술은 세상에 대한 동경의 표현입니다.
동경은 우리가 주위에 쌓아 온 콘크리트벽을 부수고 방패를 쪼개는 힘을 가졌습니다. 좁은 세계를 열어줄 뿐 아니라 우리의 머리 위로 지평선을 열어줍니다. 우리는 동경을 통해 현실을 의심하지 않고 희망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p. 88)
언젠가 한 번은 모든 것들과 화해해야 합니다.
자신의 상처와 화해하지 않고서는 그 상처에 남겨진 흉터를 지울 수 없습니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인간의 과제를
“자신의 상처를 진주로 바꾸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상처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기를 멈출 때에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모욕했던 이들에게 분노하기에 앞서 당신의 상처와 화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p. 145)
책 한 권 읽지 않으면서 자신을 참고 견디며 무언가를 공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쯤 그냥 앉아서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 번쯤 그냥 앉아서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무엇이 마음속에 나타나며,
무엇이 우리를 바쁘게 만드는지를 느껴보는 겁니다.
어부는 물가에 조용히 앉아서 물고기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렇습니다. 수도사는 어부처럼 마음의 바닷가에서 생각과 감정의 물고기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립니다. 마음이 평온한 자만이 떠오르는 물고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p. 192)
길을 떠난 고단한 나그네가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났습니다.
그 누가 그런 곳에 천막을 치고 머물고 싶지 않겠어요.
마음에 드는 곳에 짐을 풀고 두 다리 쭉 뻗고 고향삼아 살고 싶지요. 그러나 세상은 영원히 순응하면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곳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미래가 손짓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안식처를 철거하십시오.
머무는 순간 낡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방금 전 그곳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세요, 당신! (p. 203)
인간의 삶은 해의 운동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떠오른 해는 세상을 밝게 하지요. 정오에 최고로 높은 위치에 도달하였다가 빛을 거두며 지기 시작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오후는 오전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인생의 오후는 오전과는 다른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p. 223)
양보하지 않으면 어떠한 관계에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양보가 없으면 자신을 타인의 손에 맡기는 것이 너무도 불안하여 견딜 수가 없답니다. 그렇다고 양보가 내 자신을 단념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 때에만 양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보는 상대가 악마가 아니라, 나에게 호의를
보내는 천사라고 느낄 때에 이뤄집니다.
자유로워지는 것은 사랑을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타인을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이기적인 동기를 개입시키지 않기 위해서 충분히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헌신함으로써 받게 될 평판, 즉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로가 협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긴장감이 필요합니다.
친근함과 거리감, 개인과 공동체, 사랑과 반감, 다툼과 화해,
대결과 인내, 말과 침묵, 그리고 분리와 단일성 사이에는 반드시
긴장감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극단적인 양면을 참고 견디기 힘들어 합니다. 언제나 친근함만을 , 언제나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소원하지요. 언제나 일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일체를 이룰 수 없는 법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상대방과 비교하는 일에 끊임없이 몰두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깍아내립니다.
침묵은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놓아줄 수 있느냐로 알 수 있습니다. 놓아줌이란 침묵의 본질입니다. 겉으로 침묵하는 사람은 놓아줌을 거부합니다. 침해받지 않기 위해 침묵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침묵은 후퇴입니다. 이런 위험스런 생각은
특히 젊은이들에게 나타납니다. 그들에게 침묵이란 자신에 대한
완고한 집착 정도로 여겨집니다. 그들은 말하는 살마이 언제나
타인에게 노출되고, 허점을 드러내어,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한 말 때문에 창피를 당할 수 있다는 피해의식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말을 해서 한 번쯤 창피를 당하는 위험을
무릅쓸 때가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용서가 없다면 화해 역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용서는 화해를 바탕으로 하는 협력을 목표로 합니다.
벗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은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까다로운 벗을 감사로 대하면 그도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거절에는 거절로 대응하는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적개심은 대부분 자신의 어두운 면을 상대방에게 투영함으로써 반영합니다.
축복은 타인을 좋게 이야기하고, 좋은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선함을 찾아서 말을 거는 순간, 자신의 선함을 먼저 만나게 되는 아주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독일어로 ‘선물하다schenken’는 본래 누군가에게 마실것을 주다라는 의미입니다. 다시말해 선물이란 갈증을 느끼는 타인에게 마실 것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전한 생각과 마음으로 일에 임한다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일에서 충분히 자신의 몫을 해내게 됩니다.
그러면 일은 나를 즐겁게 하고, 일의 마무리가 잘 되면 스스로 기분이 좋아짐을 느끼게 됩니다.
신뢰는 자유이며 믿음입니다.
칭찬은 선함을 말로써 살려냅니다. 칭찬은 꼭 말로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말로 표현될 때 그로부터 무언가가 창조되기 때문입니다.
망각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최고의 은총입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결심으로 덮여 있다.
- 몇 번씩이나 계획은 하지만 실행하지 못한다면,
그건 바로 지옥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삶은 스스로를 멸망시키는 책망과 질책으로 가득하게 된다.
스스로 선택한 곳에서 뿌리를 내릴 때까지 어떤 일이든 지속하라.
죽음이란 신의 깊은 애정의 손이 어루만지고 있는 믿음의 모험입니다. 죽음은 매 순간을 집중하고 의식하며 살아가도록 합니다.
죽음은 신이 우리를 위해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였다는 희망의 표현입니다.
현실적인 목표를 정하십시오. 어떠한 환상도 추구하지 않는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말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당신은 삶에 있어서 타협해야 하는 것을 파악해야 합니다. 남은 것은 온전히 그 일에 매달리는 겁니다, 만약 성공하지 못했다면,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 전보다 더욱 현실적인 목표를 한번 더 정해 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그 일에 매달리는 겁니다. 당신의 인내에 대한 보답이 있을 것입니다.(p.91)
“결심은 삶속의 무언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우리를 방해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사람들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모험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실패를 각오하고 과감하게 뛰어들었을 때
비로소 돌파할 수 있습니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젊은이는 청소년기에 누를 최고의 것을
놓친 것이다. 또한 산 정상에서 계곡으로 흐르는 시냇물의 비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노인은 미이라일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마치 기계와 같은 진부함을 반복한다.“- 융(C.G.Jung)
목표를 놓치면 노력은 두배가 됩니다.
목표를 마음에 두면 재촉하지 않으면서 일관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공허함을 활동으로 가득
채웁니다. 왜냐하면 매우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이 의미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염없이 바쁘기만
하지요.
“속도는 공허함을 불러들이고, 공허함은 조급함을 재촉한다.”
... 바쁘면 바쁠수록 그 사람의 내면에는 더욱 큰 공험함이 생깁니다. 그리고 공허함을 다시금 분주한 활동으로 채우려고 하지요.
이런 악순환만이 계속될 뿐입니다.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다른 삶이 주는 인생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허용할 것 같은 자유주의 속에서 거대한 획일성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신중함은 삶에 활력을 주는 정신적인 힘입니다. 신중할 때 비로소 양육된다는 느낌보다 살아간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삶을 환희로 가득한 비밀로 만들고 싶다면 매사에 신중해야 합니다.
신중함이라 ‘관심을 기울이다.’, ‘주의하다’,잘 생각하다‘, ’심사숙고하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신중하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행동을 할때 모든 감각을 집중하십시오. 신중함은 바로 육체와 정신이 동일하게 활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중함으로 또다른 표현은 정신 집중입니다. 신중한 사람은 자신의 행동, 자신이 관계하는 대상, 그리고 매 순간마다 주의하고 심사숙고합니다. 조심성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경계하고 옹호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주변 분위기에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편견에 치우쳤다면 우리는 자신의 생각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작은 생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으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과오를 범하지 않으면 당신에게 새로운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진실한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숨을 수가 없습니다.
숨을 필요가 없지요. 만약 진실한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당신은 자신의 진실을 보여줄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무소유는 옛날부터 모든 종교에서 보이는 행동양식입니다.
“무소유는 모든 것을 소유함이다.”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타인이 의존하려는 것도 놓아줄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사람들은 홀로 있는 것은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홀로 있을 때 자신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홀로 있는 것 역시 축복일 수 있습니다. 홀로 고독할 때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의무와 희망 사이의 극단적인 양면성 사이에서 길을 모색해야
할때, 비로소 자신의 욕구에 대해 귀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욕구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균형을 이룬다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균형은 자신 안에 상충하고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들 사이의 균형이며 공동체 혹은 전 세계 사람들 간에 대립하는 이해 관계들 사이에서의 균형입니다.
모든 문제를 피해만 다녀서는 결코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 없습니다. 비록 괴로운 일일지라도 참고 견뎌야 합니다. 인내하면 내면에서 서로 분리되었던 힘들이 다시 뭉칩니다. 그제야 당신은 중심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불안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병이 들면 자신 안의 본성과 만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인생에서 배제해왔던 것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병이 든다는 것은 자기 치유의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질병은 우리가 배제하려고 했던 것들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영혼의 붕괴로부터 우리를 보호합니다. 그러기에 병에 걸린다는 것도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변명을 찾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면서 죄를 무시한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자유를 누리기 때문입니다. 죄를 책임지고, 타인에게 죄를 미루려는 시도를 당장 멈추십시오, 이것이 영원한 자기 비하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만약 당신이 죄를 인정하면 사람들과 사이에 커다란 친밀감과 깊은 이해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평온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탐욕은 평온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탐욕은 가진 것에 기뻐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바라보게 만듭니다...
원래 소유란 자신을 위한 평온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마음을 온통 빼앗겼을 때 사람들은 불안에 휩쌓입니다. 마음이 풍요롭지 못한 자가 외부에서 풍요를 추구합니다.
외적인 질서가 없는 사람은 내적으로도 무질서에 빠집니다.
의례를 무시하고 단순히 쾌감과 기분을 좇아 살게 되지요.
자신과 화해하고 싶다면 현재 모습에 동의해야 합니다...
우리를 모욕하는 것과 화해하는 길은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이들을 용서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 용서의 과정은 꽤 오랜 시간을 필요합니다. 의지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없다면 화해도 없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자신과의 화해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신의 영광이 나 자신을 통과하여 빛을 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작할 때는 모든 목표가 빛이 납니다. 그러나 목표를 이루고
성공적인 삶이 펼쳐질 거란 약속은 여운만 남길 뿐입니다.
그리고 그 여운은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사라집니다. 진정한 자유는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입니다.
목표를 잃으면 매 순간을 서두리며 즐길 수 없습니다.
휴가는 허락하다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휴가란 시간의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한다는 것입니다. 시간의 여유란 현실을 충분히 즐기면서 바쁘게 지내야 한다는 압박이 없는 상태입니다.
분주하다고 해서 실속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분주한 사람은 평온하고 냉정하게 일을 시작하는 사람보다 훨씬 효율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은 금입니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시간을 절약해야 합니다.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지요.
남아있는 시간으로 아무 일도 시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쁘게 서두르기만 합니다.
노래는 모든 슬픔을 몰아냅니다. 노래는 환희와 평화의 감정을
증가시켜서 내면의 불만을 치유합니다.
‘자아’란 결코 뒤 바뀔 수 없는 내 이름으로 신에 의해 불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아는 타인과 구분되는 것 이상이고, 의식하는
사람의 본질 이상이며, 내가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결과 그 이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란 신이 나의 내면에서만 이야기해주는 단어입니다.
기도라 함은 가장 깊은 비밀의 장소에서 내 마음속에서 나에게 말을 건네고 당신의 생각을 털어 놓으시는 신과 대면하는 것입니다.
강한 자아만이 단념할 수 있습니다. 강한 자아는 자숙하며 자신을 강하게 채찍질합니다. 모든 것을 단념할 수 있을 때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십시오.
육체는 존재를 위한 통로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본능에만 충실한 자는 육체를 올바로 대하지 못합니다. 육체와 영혼의 조화는 마음속의 가장 깊은 동경에 따라 좌우됩니다.
영혼의 배고픔은 사랑과 사랑 받는 존재,
즉 충족과 만족을 향한 동경으로서의 배고픔입니다.
텅 빈 손을 신에게 내밀면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공명심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며, 모든 자기 질책으로부터의 자유로움입니다. 또한 스스로를 압박한 것으로부터의 자유로움입니다.
신비주의자들은 “영생은 신을 영원히 즐기는 것에 있다”고 합니다. ‘프뤼 데오, 즉 신을 즐기는 것’은 우리의 목표입니다.
말은 침묵에서 오며, 침묵에 의해 순화됩니다.
자유의지란 하고 싶은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히 가질 수도 있는 수많은 것들도 완전하게 단념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 이유는 엄격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자유롭지 않은 자는 체념하고 외부의 결정에 따릅니다. 결국 목적없이 인생은 표류하지요.
독일어 ‘고요한 still'이란 단어는 ’세워두다‘,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로부터 유래된 말입니다. 이는 고요해지기 위해서는 중단이
필요하다는 걸 의미합니다.
우리는 신을 만나기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물론 그 기도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로부터 독립된 존재와의 만남입니다.
이는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능력은 신과 대면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기도는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자기 자신만을 보는 사람은 본질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측면들을 보지 못합니다. 기도로서 신을 보십시오.
그러면 신을 통해 당신 자신을 응시할 수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마음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자신에게
제공된 기회를 잡을 줄 압니다. 현명하다는 건 지식을 현실에 적합한 행동으로 바꾸는 이성입니다.
평온은 매 순간을 신중하게 살아가는 자의 것입니다.
신중함이 불안을 변화시킵니다. 불안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 불안을 있는 그대로 두십시오. 그러면 불안은 더 이상 간섭하지 못합니다. 불안은 강력하게 대항할 때 더 강력해집니다.
인생에는 목표가 있습니다. 청소년기의 목표는 세상에 적응하여
무언가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중년이 되면서 그 목표는 변하지요. 하지만 목표란 정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등반이 시작되는 계곡에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입니다.
목표를 잃고 삶에 집착하는 사람은 정신적 성장과 육체적 성장이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인생은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완성됩니다.
따라서 자신의 소질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울림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은 당신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내 삶이 번영할 것인지를 내면의 울림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더욱 잘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육체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때 자기인식을 위한 네 가지 근원이 있습니다.
첫째, 생각과 감정 둘째, 우리의 꿈이며, 셋째는 영혼을 표현하는 우리의 육체이며, 넷째는 태도와 습관 그리고 일을 나타내는 행동영역입니다. 이 네 가지 영역을 모두 직관할 수 있을 때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를 실제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항상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진실을 피해가는 이유는 마음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만 자유를 이해하는
사람은 소원에 매달려 사는 사람입니다. 자유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타인을 위해 노력하고 일에 몰두하며 인간에 대한 봉사를 통해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고서는 자유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바꿀 수 없다면 사랑하라 change it or love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