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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그대의 마음에 고요가 머물기를 / 마크네포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4.01|조회수93 목록 댓글 1

그대의 마음에 고요가 머물기를

Mark Nepo 마크네포

SEVEN THOUSAND WAYS TO LISTEN

 

Faith is not an insurance, but a constant effort, a constant listening to the eternal voice.

— Abraham Heschel

정보가 부족해서 타락할 일은 없다.

이해가 모자라서 타락할 뿐이다.

… 결핍된 것은 믿음이 아닌 경이驚異에의 의지다.

… 신비의 존재에 대한 응답의 하나는 외경畏敬이다.

- Abraham Heschel 아브라함 헤셀

 

가만히 생각해본다.

식물은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순간 진정으로 듣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처럼 고집스러운 영혼들은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들을 수 있을까? 7

 

이(들음) 순례에는 돌아오려는 의지와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가 생겨 시간이 지체되고 경이감에 들뜨기도 하겠지만,

의식을 내려놓고 새로이 생각하고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삶 자체는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들음의 훈련은

지상에서 가장 신비롭고 찬란하며 힘든 예술이다.

그래서 고난이나 기쁨이 우리를 본래의 상태로 되돌려놓을 때까지 우리는 들음의 초심자와 대가 사이를 오간다.

실제로 우리는 매일 속도를 늦추고 들어야 할 상황에 놓인다.

그런데 왜 들어야 하는 것인가?

들음이 세상을 하나로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모든 중요한 것들에 이르는 문이기 때문이다.

호흡이 폐에 활력을 불어넣듯 들음은 마음에 생기를 더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깨어나,

언제나 활기차고 생기 있게 존재할 수 있도록 들어야 한다.

깊은 들음을 통해 언제나 활기차고 생기 있는 상태로 존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경배의 작업이다.

 

We spend much of our time on earth listening and waking. When awake, we come upon the risk to be authentic. And taking that risk, we are faced with the need to stand by our core in order to live life fully. If we get this far, we are returned, quite humbly, to the simple fate of being here. And after all this way, it appears that a devotion to deep listening remains the simple and sacred work of being here.

 

사실 우리는 지상에서의 많은 시간들을

들음과 깨어 있음에 할애한다.

 

깊은 들음을 통해 우리보다 큰 존재들과의

관계와 경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깨어 있을 때는 충만한 삶을 위해

상처받을 위험도 정직하게 받아들인다.

이렇게 멀리 나아가다 보면, 우리는 여기에 존재해야 한다는

분명한 운명을 아주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깊은 들음을 위한 헌신은 궁극적으로 여기에 존재하기 위한

분명하고도 신성한 작업이다.

 

To awaken our heart through this sort of reverence strengthens the fabric that knit us all together. Why is this important? Because as cells need to be rinsed by the river of blood to stay healthy, the river of blood needs healthy cells to keep the body alive and whole. In just this way, the world depends on the dance between the individual awakened soul and the river of Spirit that feeds us all. The world needs healthy awakened souls to stay alive and whole.

 

헌신적인 들음으로 마음이 깨어나면,

우리모두를 촘촘히 엮어주는 세계도 더욱 견고해진다.

세포들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정화시키는 것은 피의 흐름이며,

이 흐름을 좌우하는 것은 건강한 세포들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협력해서 몸을 생기 있고 온전하게 유지시킨다.

세계도 마찬가지다.

강물 같은 큰 영혼Spirit이 우리 모두에게 양식을 공급하고,

이 영혼과 개개의 깨어 있는 영혼들 사이의 춤이 세계를 좌우한다.

세계는 건강하게 깨어있는 영혼들로써 언제나 생기 있고 온전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

 

Yet how do we inhabit these connections and find our way in the world? By listening our way into lifelong friendships with everything larger than us, with our life of experience, and with each other.

We could say that our friendship with everything larger than us opens us to the wisdom of Source. This is the work of being. We could say that our friendship with experience opens us to the wisdom of life on earth. This is the work of being human. And we could say that our friendship with each other opens us to the wisdom of care. This is the work of love.

 

그렇다면 세계 속에서 우리의 길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들음을 통해 우리보다 큰 존재들과의 관계와 경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보다 큰 존재와의 우정은 근원적 지혜를 열어준다.

이것이 존재의 작업work of being이다.

 

경험과 존재 사이의 우정은 삶에 필요한 지혜를 열어준다.

이것은 인간됨을 위한 작업work of human이다.

타인들과의 우정은 보살핌의 지혜를 열어준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작업work of loved이다.

 

Of course, while we may feel lifted or overwhelmed by each of these on any given day, they are intertwined and inseparable—three friends we need to stay connected to if we have any hope of living an awakened life.

어떤 날에든 이 작업들에 고양되거나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분리할 수 없이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깨어있는 삶을 살고픈 소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언제나

이 세 친구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These three friendships— the work of being, the work of being human, and the work of love—frame the journey of this book.

In this book, you will find reflective pauses throughout.

Each will pose a set of questions or meditations, offered to initiate various forms of conversation as a way to locate what has meaning in your own life.

 

이 책의 여정에 틀을 잡아주는 것은 바로 세 친구 - 존재의 작업, 인간됨을 위한 작업, 사랑의 작업 - 이다.

이 책 속에서 당신은 반사적인 일시 정지 현상이 곳곳에서 발견될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갖는 것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형태의 대화를 시작하도록 제안된 일련의 질문이나 명상을 할 것입니다.

 

So I invite you into the work of reverence; into the work of staying freshly connected by entering your friendship with this mystery we call life. I invite you to listen in every way you can, for listening in all things is the first step toward friendship.

 

그래서 저는 여러분을 경건한 일에 초대합니다;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신비에 여러분의 우정을 입력함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초대합니다. 모든 일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 말로 우정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가능한 한 모든 방법으로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깊은 들음에 전념해 보기를...

 

EXCERPTS

발췌

 

Much of my life has been devoted to staying in conversation with everything around me—with the mystery, with God or Source, with the rivers of change, with you. As I get older, I long even more for the wisdom and companionship of other living things; to stay in conversation with all I love, with all I admire, with all who have suffered and given of themselves to stay alive and to keep life going.

내 인생의 대부분은 내 주위의 모든 것, 신비, 하나님 또는 근원, 변화의 강, 여러분과 대화하는 데 헌신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다른 생물의 지혜와 동반을 갈망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제가 존경하는 모든 사람들과, 살아 남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고통 받고 바친 모든 사람들과 대화 속에 머무르기를 바랍니다.

 

In many ways, our stories are part of one story. Our pain is part of one pain. Our surprise at the beauty and fragility of life is part of one chorus of awe. My passion now is to stay as close as possible to the pulse of what is kind and true; to stay in conversation with what happens there and to experience more and more ways to listen.

여러 면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한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우리의 고통은 하나의 고통의 일부입니다. 인생의 아름다움과 연약함에 대한 우리의 놀라움은 경외심의 한 부분입니다. 나의 열정은 이제 친절하고 진실 된 것의 맥박에 최대한 가깝게 머무르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대화를 나누고 점점 더

많은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주는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거미줄과 같다.

어느 한곳을 건드리면 거미줄 전체가 흔들린다.

- 스탠리 쿠니츠Stanley Kunitz

 

“우리는 매일 길모퉁이에서 온갖 모습으로 위장한 천사들을 만난다. 이 천사들은 노랫소리를 따라오라고 우리를 부른다.

옳거나 틀린 길은 없다.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가슴뿐이다.

물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가슴을 열고 모든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면 믿을 만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p31)

삶의 수많은 가능성들은 우리가 이렇게 멈추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멈춰야 침묵의 중심점에서 그 가능성을 만날수 있다.

이 중심점에 이르면, 태어나면서 부터 받아온 지루한 가르침에 억눌리지 않고 삶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미지의 것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받아들이고,

삶이 우리를 자극하고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기만의 방법을 함양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잇도록 도와줄 것이다.

삶이 깨워주려고 애쓰는 우리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힘을 북돋아 줄 것이다.”( p36)

 

야생화는 꽃을 피운다고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지지 않는다.

영원히 살게 되는 것도, 시대를 초월해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야생화는 느끼되 아직은 모르는 것을 믿은 덕분에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는다.

꽃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여기에 존재했으며 꽃이 시든 후에도

계속 남아 있을 존재들과 어우러지면서, 합일의 짧은 순간,

자신의 필연적인 위치를 깨닫는다.

무엇이 될지 모르면서도 어둠 속에서 성장을 멈추지 않는 씨앗들은 모두 이런 보답을 얻는다.(p37)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각자의 타고난 축복을 깨달을 수

있게 서로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는 것 뿐이다.

곤경에 처해 있을 때도 우리 안에서는 축복이 기다리고 있고,

축복은 길을 알고 있다. (p38)

 

우리는 아프게 하는 것들에 우리는 아주 오랜 세월에 걸려 넘어진다. 그 사이 종종 온전한 삶의 순간들을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이런 식의 열림에 저항하지만, 몸속에 살아있는 감정들은 작은 급소처럼 작용한다. 주머니 속 앙금처럼 남아 있는 상처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이 남은 감정들을 감정의

타임캡슐처럼 지니고 다닌다. 그러다 예기치 못하게 삶과 맞닥뜨리는 순간 미미하게 치유가 일어난다. 강력한 느낌이 터져나오면 당연히 흠칫 놀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를 치유해주는 것은 바로 오랜 세월 남아 있던 감정들 속에 숨어 있는 의미다.

우리는 보통 직접적인 경험의 예리함을 회피한다. 하지만 심연의 감정들과 솟구치는 눈물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 말로,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을 울리는 순간과 만나는 의미 있는 길이다.

그리고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움츠려들었던 가슴을 편안하게 펴고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경험의 예리함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p 42)

 

'형체 없는 바닷물은 지구의 깨끗한 혈액처럼 언제나 일어났다

스러지기르 되풀이하면서 그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언제나 투명하게 열린 상태로 모든 것을 부드럽게 덮어주었다.' (p55)

중요한 점은 자신의 순전한 가능성을 온 존재로 듣는 것이다.

비온 뒤 햇살을 받아야 꽃이 자신의 운명대로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처럼 우리도 들음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

어떠한 것이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깊은 들음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운명의 모든 소명들을 긍정적으로 말이다.

'예기치 못한 심오한 방식으로 소명이 주어져도 자신의 소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도 들음의 한 형태다.' (p65)

길을 잃는 것은 더욱 깊은 길로 나아가는 서막과 같다.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름을 인정하고 나면 변화의 기회가

무르익기 때문이다. 그러면 비로소 구체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길을 잃는 것은 필요한 혼란일 수 있다.

안다고 생각하던 것에서 모든 미지의 것들이 만들어내는

활기찬 세계 속으로 밀려들어 가게 되기 때문이다.”(p76)

계획으로 점칠된 삶에서 그토록 불안했던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궤도에서 이탈하면, 이궤도에 무슨 의미가 있건,

삶이 나만 홀로 남겨두고 떠나버릴 것 같은 두려움.

사실은 정 반대인 것을, 이 얼마나 어리석은 두려움이었는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신은 온전히 우리와 함께한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삶이 다양한 가면을 쓰고 나타나

우리의 계획을 구부리거나 쪼개거나 뒤집어버리지만,

배움은 흔히 이런 순간에 시작된다.' (p86)

 

 

삶의 어딘가에서 숨을 멈추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더욱 깊게 숨을 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우고 여는 훈련, 초심을 잃지 않는 훈련은 잘 되어가고 있는가? 진리를 언제나 내 앞에 두고 있는가?

잘 들을 줄 아는 이를 만난 적이 있는가?

이들에게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내가 갖고 태어난 지혜에는 어떻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나의 회복력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있는가?

변화에 저항하거나 귀를 닫고 있지는 않은가?

어떤 상처나 한계로 인해 스스로 다른 모든 것들을

손상시키거나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가?

요즘에는 누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내 안에서 "그래!"라고 말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아니야!"라고 말하는 존재인가?

삶이 깨워주려는 나의 면모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말로 표현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들여 노력하고 있는가?

모든 가혹한 일들의 한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서로에게 드러내줄 부드러운 손간들에 마음을 열어놓고 있는가?

소중히 여기는 지도들 가운데서 어떤 것이 나를 진정 발견해야 할 길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가?

더욱 깊은 다른 길이 보일 때까지 불안을 견뎌낼 수 있는가?

내면의 어디가 어떻게 분리되어 있는가?

내 갈등의 핵심을 알고 있는가?

지금의 순간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려면 오래된 정의나 계획들 중에서 어떤 것을 내려놓아야 할까?

이 모든 형태의 들음은 존재의 작업이다.

이런 들음을 받아들여 들음을 통해 배우고 자신과 대화를 나눠보기를 바란다. 이 들음은 모두를 연결시키는 하나의 생생한 느낌을 경험하게 해준다. 이 살아 있는 관계 속에 현존과 지혜의 역사가 있으며, 이 역사는 바다와 같다. 이 생명의 물에 입술을 갖다대면 누구나 이 물을 마실 수 있다. (p 89)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고착을 뚫고 나아가는 것,

세계가 우리를 분열시켜 버리는 방식에 주저앉지 않는 것이다.

이 성스런 과정을 충분히 깊게 견뎌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삶은 재정비된다.” (p108)

스스로 바다가되지 않으면

날마다 뱃멀미를 앓을 것이다.

- Leonard Cohen레너드 코언

 

“빛과 어둠의 유대 속에서도 또 다른 역설이 작용한다.

우리는 오래도록 너무 절실하게 어둠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어둠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고, 그림자가 없으면 거리를

지각할 수도 없다. 거리를 지각하지 못하면 멀리 혹은 가까이 있는 것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길을 찾아갈 때는 어둠을 피해가지 말고, 어둠과 함께 어둠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는 자연의 순수한 힘을 능가할 수 없다. 이런 깨달음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p111)

 

 

“땅속 씨앗이 난초나 히아신스로 피어난 자신을 상상하지 못하듯, 상처투성이 마음이나 절망에 휩싸여 있는 정신은 사랑받거나

평화로운 자신을 그릴 수 없다. 그러나 한 번 벌어지면 끝까지

자신을 열어두는 것이야말로 씨앗의 용기이다.”(p113)

 

자연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윌리엄 워즈워드

본질적으로 들음의 깊이는 듣는 수단에 따라 달라진다.

머리로 들으면 삶을 더욱 많이 이해하게 되지만,

마음으로 들으면 삶을 더욱 많이 느낀다.

온 존재와 영혼으로 들으면 스스로 변화해서 삶 자체와 어우러진다.

삶은 순간들 속에서 언제나 완전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순간들을 마주하고 귀 기울이는 방식에 따라 변화의길이 다르게 펼쳐진다.(p139)

“깊은 들음을 갈고닦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떤 순간 속에 있든 그 순간 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가도록

자신을 내버려두는 것이다.

언제나 존재하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곳을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할 필요는 없다.

그저 마음을 편안하게 이완하고 우리 존재의 토양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오랜 호우 뒤에 뿌리가 땅속으로 뻗어나가는 것처럼.”(p152)

 

'암으로 고통받던 중에 터득한 진정한 앎의 한 가지 측면은

죽어야 산다는 역설이었다.

지금도 나는 매일 이 의미를 체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p159)

 

깊이 듣고, 깊이 말하며, 깊이 질문하는 것.

침묵 속에서 근원의 소리를 듣고, 마음으로 경험게 귀 기울이는 것. 이렇게 얻은 가르침을 의미 있는 언어로 옮기고,

정직한 대화로 세상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는 것.

이것들 모두 지속적인 수행에 포함된다.

이제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면 좋겠다.

지칠 때 나는 무엇을 하는가?

아름다움이 가까이 있어도 무감감할 때는 무엇을 하는가?

듣고 말하고 질문하는 행위는 어떻게 나를 살아 있는 치유제 속에 머물게 하는가? 요즈음 사람에 대한 나의 신뢰는 얼마나 굳건한가?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면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 삶과의 연걸점이 사라벼저리지는 않았는가? 계속 움직이며 열고 있는가?

고통이 가슴속에서 꿀이 될 때가지 고통을 부드럽게 승화시켰는가? 이 꿀을 조금이라도 맛본 경험이 있는가?

타인들이 가슴에서 부드럽게 승화된 고통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그들의 꿀을 조금이라도 맛본 적이 있는가?

새로운 경험들을 흡수해 통합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다가오는 것들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일에만 사로잡혀 있는가?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아니면 관찰하고 조종하기만 하는가? 둘 다 누구나 하는 일이다. 누구나 일어섰다가도 다시 무너진다. 하지만 누구나 용감하게 자신을 열린 자리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더욱 커다란 힘이 우리의 마음을 통해 말한다.

그러므로 매일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어디가 탄탄한 자리인가?'

그러면 머지않아 삶이 지속적인 대화와 같음을 알게 된다.

멈추어 듣지 않으면 중요한 것들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들음은 모든 것에 귀 기울이고 모든 것과 대화를 나누게 하는 삶의 동반자이다. 그러니 부디 이 대화를 꼭 탐구해보기를 바란다.

(p 194)

현재의 순간은 우리의 변함없는 안내자이자 모든 중요한 것들로 인도하는 출입구와 같다.

라코타 족의 러셀 민즈 Russell Means가 말한 것처럼

"누군가 시계를 발명했다고 조급하게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니다."

어떤 순간이든 매 순간 급하게 내달리다 보면,

언제나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깊은 생기를 놓치고만다. 상실감으로 인해 특별하게 여겨지는것을 뒤쫓는 경우가 흔한데, 깊은 생기는 우리가 존재하는 바로 그 순간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p201)

 

"내가 아는 것은 전체를 들을 때와 부분에 귀 기울일 때, 삼라만상의 결합 방식에 귀 기울일 때, 우리의 가면 밑에 살아 있는 것들을 들을 수 있게 모든 것을 차단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뿐이다.

또 조용한 곳에 있을 때와 도심의 거리에 있을 때, 동이 트기를

갈망할 때와 일몰을 그리워할 때 들리는 것이 다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과 우리가 발견한 것에 귀 기울이는 방식도 각기 다르다. " (P 205)

 

 

"고요의 지점을 만났을 때 우리는 존재의 맨 모습 속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모든 존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살아 있는 감각과 우리가 태어나면서 맺고 있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준다. " (P218)

우리는 우리를 실어 나르는 몸을 무시 할 수 없다.

안 그러면 죽고 말 것이다. 그런데 몸이 하나의 신전이라면,

이 몸속에 깃들어 사는 동안 우리가 헌신해야 할 것은 무엇일가?

이 질문은 피어남으로 어둠을 풀고, 모든 것에 대한 사랑으로

외로움을 풀어주는 경외의 작업으로 우리를 인도한다.(p226)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진정한 자기와 관계를 맺게 나를 부르고 있는가? … 내면의 소리를 들을 만큼 충분히 오래 타인들의 목소리를 물리치고 있는가? 그러면서도 자신의 고집을 넘어 타인들에게서 배우고 있는가? 결과에 상관없이 내가 힘들게 열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열어주는 것과 직면하고 있는가?

삶의 제약과 한계들 중에 나의 재능을 강화해주는 것이 있는가? 삶의 작은 만남 덕분에 진정한 자기를 마주한 적이 있는가?” (p.256)

고립을 고귀한 것처럼 미화하면,

삶을 갉아먹는 행위들도 지지받아야 할 미덕처럼 여기게 된다.

불신을 가혹한 세상을 견디게 해주는 성숙함으로 재해석하고,

죄책감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타인들을 섬기는 희생으로 재해석한다.

불안은 자신을 양보하는 겸손으로,

우유부단함은 적응성으로 재해석한다.

정체는 고요를 위한 수양으로,

고립 자체는 독립성으로 재해석한다.

실망은 실제를 금욕주의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로 재해석한다.

이로써 진정한 성숙, 희생, 겸양, 순응, 고요, 독립, 받아들임이

우리를 위해 간직하고 있는 것들과 단절되고 만다. (p278)

언제나 행복할 수도 없다.

확장과 수축, 들숨과 날숨을 모두 경험해야 할 수 있다.

마음, 정신, 영혼도 모든 경험에 열리고 닫혀봐야, 경험이 우리를 관통할 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통, 상실, 장애물은 우리를 열었다 닫아주는 역동적인 삶의 힘이다.

이거들과의 평생에 걸친 대화를 이해하고 못하고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p289)

“심연의 바닥을 훑고 나가게 파도가 우리를 후려치듯 고통과 두려움이 내 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러나 탁 트인 하늘 아래 한 알의 모래 알갱이처럼 서 있자 두려움은 힘을 얻을 자리를 잃었다.

태양의 달램으로 구름이 하얀 배를 드러냈다.

나는 다시 확장되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 아래서 다듬어지지 않은 들판의 풀들이 이리저리 일렁였다. 태양이 작게 고동쳤다. 나도 작게 고동쳤다. 쓰러진 나무 밑에서 꺾여 있던 빛이 내가 찾던 진실처럼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p295)

고요를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움직임 자체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자연이 준 선물들 사이에서 균형 있게 살아갈 필요가 있을 뿐이다.

움직이는 세상에서 살아가면서도 물결이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바닥을 볼 수 있듯, 부단히 자신을 고요하게 만들어야

삼라만상의 진실을 얼핏이나마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고통 속에 있을 때는 특히 이렇게 하기가 힘들다.

고요에 저항하면 무언가가 우리를 고요하게 만든다. (p321)

삶의 핵심은 충분함을 아는 데 있다.

1평방인치의 가슴속에 행복을 간직하고 있으면

그 행복감으로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을 전부 채울 수 있다.

-겐세이Gensei

지구 끝까지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있어도,

가까운 생명과의 고요하고 헌신적인 관계가 주는

존재의 성취감은 얻지 못할 것이다.

-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00개의 강물을 받아들이는 바다와 같아질 때까지

멈추고 비워라.

그런 상태에 이르면

집착도 부정도 사라질지니.

- 도겐Dogen

“Being human, we are constantly broken apart by experience. To reconcile our humanness means we are ever learning how to accept our suffering and to restore our Wholeness.”

"인간인 우리는 경험에 의해 끊임없이 분열됩니다.

우리의 인간성을 조화시킨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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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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