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live in a state of emptiness? I mean, when you are in meditation or even walking down the road, are you always in a state of emptiness?
그대 공허空虛 상태에 살고 있습니까?
당신은 명상 중이거나 길을 걸을 때
항상 공허空虛한 상태에 있습니까?
Emptiness is not a state; I correct you, it is a non-state.
공허空虛함은 어떤 상태가 아닙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비- 상태를 말합니다.
I’m curious to know whether, when thoughts spring up out of that emptiness, do they go on a quarter of your time, or three-quarters of your time, and if they do, how can you keep your mind still all the time like that? Aren’t you wanting to think about things?
그 공허함에서 생각들이 튀어나올 때,
그 생각들이 당신 시간의 1/4 또는 3/4의 시간 동안 진행되는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항상 마음을 가만히 유지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런가요? 사물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까?
I never think.
나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You never think.
When you answer a question, are you not thinking?
당신은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질문에 대답 할 때 생각 안하지 않습니까?
No. I hear the question in silence,
and the answer comes out of silence.
그래요. 나는 침묵 속에 있는 질문을 듣고,
대답은 침묵에서 나옵니다.
Don’t you yearn for something? Isn’t there a yearning, a magnet that is pulling you or bringing thoughts into you that makes you want to think? I’m trying to understand, because it used to be that I did not think; I used to space out when I was a child and I would just be nowhere. I would repeat a phrase over and over again or I would have a picture in my mind and would go through a whole picture and repeat the picture again and again. So I would not think. To get out of that, I worked to think, and now it is like a process—always wanting to go on. I always have to have my intellect going on.
당신은 무언가를 갈망하지 않나요?
당신을 끌어당기거나 사고하고 싶은 생각을 갖게 하는 갈망,
자석이 있지 않나요? 내가 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에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 멍해 있곤 했으며 아무데도 머물지 않았습니다.
나는 되풀이해서 한 구절을 반복하거나 마음 속에 그림을 떠올려 전체 그림을 훑어보고 그림을 되풀이해서 반복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저는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제는 항상 진행하고 싶은 과정과
같습니다. 나는 항상 내 지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What is the motive of this intentional thinking?
이 의도적인 사고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Knowledge, excitement, discovery.
지혜, 흥미로움, 찾음이죠
But in the end what do you want really? Happiness? Joy? Peace?
하지만 결국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행복? 즐거움? 평화?
Yes, joy; exciting joy.
예, 기쁨; 흥미로운 기쁨이죠.
So you think in order to find happiness.
And have you found it?
그래서 당신은 행복을 찾기 위해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찾았습니까?
Oh, yes
아, 네. 그럼요
So you are happy?
그래서 당신은 행복하세요?
Yes, I am.
네 .물론이지요.
Well, marvelous!
흠, 놀랍군요!
I have states of spontaneous ecstasy where it… these time periods of incredible ecstasy, just joy and excitement and wonder… there have been time periods in my life, and then they go away and are not there any more….
저는 자연적인 황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황홀감의 시간, 그저 기쁨과 흥분과 경이로움...
제 삶에는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 시간들은 사라지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You go away.
당신. 떠나 가버려.
You mean, I go away?
내가 떠나가 버린다고요?
Yes, be aware of these moments when you go away.
예, 당신이 떠날 때 이러한 순간들을 주의하세요.
When I go away from the ecstasy,
or when the ecstasy is not there any more?
내가 황홀경을 떠나거나 아니면 황홀감이 더 이상 없을 때에요?
You go away from your real self.
당신은 실제 자아에서 떠나갑니다.
Oh, I see. So, you are saying that the joining of the self is the ecstasy?
아, 알겠습니다 자아의 합류가 황홀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You go away from your real self. Be aware in the moment when you go away. In happiness and in joy you cannot say, “I’m happy,” “I’m in joy”—it is not possible. When you think, “I’m happy,” you objectify it, make it a state. Where there is happiness, nobody is happy, nothing is happy. There is only happiness. You are still involved in calculative thinking, looking for a result, an experience. Real thinking is when you go away from thinking. When you look away from thinking, that is real thinking. All real thinking starts free from any thought. Real thinking comes out of silence. You may have a certain forefeeling of what you are looking for.
당신은 실제 자아에서 떠나갑니다.
당신이 떠나는 순간에 주의하십시오.
행복과 기쁨 속에서 당신은“나는 행복하다”,“나는 기쁨에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 당신은 그것을 객관화하고 상태로 만듭니다. 행복이 있는 곳에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 만 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계산적 사고에 참여하여 결과, 경험을 찾고 있습니다. 실제 사고는 사고에서 벗어날 때입니다. 당신이 생각에서 멀어지면, 그것은 진짜 생각입니다.
모든 진정한 사고는 어떤 생각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집니다.
진정한 사고는 침묵에서 나옵니다.
당신은 당신이 찾고 있는 것에 대한 특정 예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I get really confused with the terms:
what is thinking and what is not.
나는 생각하는 것과 생각하지 않은 것이라는 용어가
정말로 혼동된다.
What you understand by thinking starts with thinking. That is intentional thinking, superficial thinking, surface thinking. That is not thinking at all.
생각함으로 이해하는 것은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그것은 의도적 사고, 피상적 사고, 표면적 사고입니다.
그것은 전혀 생각되어지지 않습니다.
Just an exercise.
단지 활발발 할 뿐.
Yes. Real thinking starts from the unknown, from silence. This thinking has a completely other way of flowing, I would say. There is never assertion, there is never domination, never manipulation. This thinking is constantly in a state of “I don’t know.”
The background of real thinking is “I don’t know.”
예. 진정한 사고는 알 수 없는, 침묵에서 시작됩니다.
이 생각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흐릅니다.
주장은 없고, 지배도 없고, 조작도 결코 없습니다.
이 생각은 끊임없이 “모른다” 상태입니다.
실제 사고의 바탕은 “모른다”입니다.
So is the excitement that comes out of the “I don’t know” the excitement of the non-state?
그렇다면 '모른다'에서 나오는 자극이
비-상태의 자극이 아닐까요?
Yes. You are completely open to the unknown. In any case, what you are looking for you cannot know. All that you know is representation. When you say “I know,” you represent it. Thinking is in representation, but your totality—what you are fundamentally—can never be thought. You can only be it.
네, 당신은 미지의 것에 대해 완전히 개방적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은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은 표현일 뿐입니다.
당신이“알고 있다”고 말할 때 당신은 그것을 표출합니다.
생각은 표현이지만, 당신의 근본적인 전체(본래의 모습)는
결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직 당신은 그곳에 현존 할 뿐.
-Jean Klein
From Living Truth
“It is only through silent awareness that our physical and mental nature can change. This change is completely spontaneous.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본성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침묵의 자각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 변화는 완전히 자발적인 것입니다.
If we make an effort to change, we do no more than shift our attention from one level, from one thing, to another. We remain in a vicious circle.
우리가 변화를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주의를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옮기는 것 이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악순환에 머물러 있습니다.
This only transfers energy from one point to another. It still leaves us oscillating between suffering and pleasure, each leading inevitably back to the other.
이것은 에너지를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만 전달할 뿐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를 고통과 즐거움 사이에서 흔들리게 하고,
각각의 고통은 필연적으로 다른 것으로 이끌게 합니다.
Only living stillness, stillness without someone trying to be still, is capable of undoing the conditioning our biological, emotional and psychological nature has undergone.
살아 있는 고요함, 가만히 있으려는 사람이 없는 고요함만이
우리의 생물학적, 감정적, 심리적 본성이 겪었던 조건화를
되돌릴 수 있습니다.
There is no controller, no selector, no personality making choices.
In choiceless living the situation is given the freedom to unfold. You do not grasp one aspect over another for there is nobody to grasp.
조종장치, 선택장치, 개성에 있어서 선택의 여지란 없습니다.
소중한 삶 속에서 그 상황은 펼쳐질 자유가 주어집니다.
당신은 어느 한 측면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는데,
아무도 붙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When you understand something and live it without being stuck to the formulation, what you have understood dissolves in your openness.
여러분이 무언가를 이해하고 공식에 집착하지 않고 살 때,
여러분이 이해한 것은 여러분의 편협하지 않은 열려있는 마음에 녹아듭니다.
In this silence change takes place of its own accord, the problem is resolved and duality ends.
이 침묵 속에서 변화는 저절로 일어나고, 문제는 해결되고 이원성은 끝납니다.
You are left in your glory where no one has understood and nothing has been understood.”
여러분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며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당신의 영광 속에 남겨져 있습니다."
~ Jean Klein, 'I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