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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깨달음은 거기에 있다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5.26|조회수116 목록 댓글 1

Wherever You Are, 
Enlightenment Is There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깨달음은 거기에 있다

                                    BY Shunryu Suzuki

“Even in our imperfect practice enlightenment is there,
 says Suzuki Roshi,”We just don’t know it.”
“심지어 우리의 불완전한 수련에도 깨닳음은 거기 있다.”
Suzuki Roshi는 말한다.”우리는 단지 그것을 모를 뿐이다.”

In our practice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o realize that
we have buddhanature. Intellectually we may know this,
but it is rather difficult to accept.
Our everyday life is in the realm of good and bad,
the realm of duality, while buddhanature is found in the
realm of the absolute where there is no good and no bad.
There is a twofold reality.
Our practice is to go beyond the realm of good and bad
and to realize the absolute. It may be rather difficult to
understand.

우리의 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불성(buddhanature)을 갖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지적으로 우리는 이것을 알지도 모르지만,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
우리의 일상의 삶은 선과 악의 영역, 이원성의 영역에 있지만, 불성은 선과 악이 없는 절대적인 영역에서 발견된다.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 현실이 있다.
우리의 수련은 선과 악의 영역을 넘어서서
그 절대성을 깨닫는 것이다.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Hashimoto Roshi, a famous Zen master who passed away
in 1965, said that the way we [Japanese] cook is to prepare each ingredient separately. Rice is here and pickles are over there. But when you put them in your tummy, you don’t
know which is which. The soup, rice, pickles, and
everything get all mixed up.
That is the world of the absolute.
As long as rice, pickles and soup remain separate,
they are not working. You are not being nourished.
That is like your intellectual understanding or book
knowledge—it remains separate from your actual life.

Hashimoto Roshi는 1965년에 죽은 유명한 선 스승으로 우리[일본인]가 요리하는 방법은 각 성분을 별도로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쌀은 여기에 있고, 피클은 저기에 있다. 하지만, 당신이 그것들을 당신의 배에 넣을 때, 당신은 어떤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수프, 쌀, 피클, 그리고 모든 것이 한데 섞인다. 그것이 바로 절대성의 세계이다. 쌀, 피클, 수프가 분리된채로 있는 한, 그것들은 작용하지 않고 있다.
당신은 자라지 않고 있다.
그것은 마치 당신의 지적인 이해 또는 책의 지식과 같은데,
그것은 당신의 실질적인 삶과는 분리된채로 있게 된다.


Zazen practice is mixing the various ways we have of
understanding and letting it all work together.
A kerosene lamp will not work merely because it is filled
with kerosene. It also needs air for combustion, and even
with air, it needs matches. By the aid of matches, air, and
kerosene, the lamp will work. This is our zazen practice.

참선(Zazen) 수련은 함께 작용하는 그것을 이해하고
놓아주는 데서 가지는 다양한 방식들을 섞어놓은 것이다.
경유 램프는 그저 작용하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그것이
경유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연소를 위해서
공기를 필요로 하는데, 심지어 공기와 함께, 그것은 불꽃을
필요로 한다. 불꽃, 공기, 경유의 도움으로, 그 램프는 작용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참선 수련이다.

When we practice with the aid of the sangha, 
helped by Buddha, we can practice zazen in its true sense.

In the same way, even though you say,
“I have buddhanature,” that alone is not enough to make it work.
If you do not have a friend or a sangha, it won’t work.
When we practice with the aid of the sangha,
helped by Buddha, we can practice zazen in its true sense. We will have bright light here in the Tassajara zendo or in
our daily life.

동일한 방식으로, 심지어 당신이 "나는 불성이 있다"고 말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그것이 작용하도록 만들기에 충분치 않다. 만약 당신이 친구나 상가(sangha)가 없다면, 그것은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붓다의 도움을 받은 상가의 도움으로
수련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로 참선을 수련할 수 있다.
우리는 Tassajara zendo 또는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여기에
밝은 빛을 가지게 될 것이다.


To have a so-called enlightenment experience is of course
important, but what is more important is to know how
to adjust the flame in zazen and in our everyday life.
When the flame is in complete combustion,
you don’t smell the oil.
When it is smoky, you will smell something.
You may realize that it is a kerosene lamp.
When your life is in complete combustion you have no
complaint,
and there is no need to be aware of your practice.
If we talk too much about zazen,
it is already a smoky kerosene lamp.

소위 깨달음의 경험을 갖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참선과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그 불꽃을 조정하는 법을 아는 것이다. 그 불꽃이 완전 연소될 때,
당신은 그 기름의 냄시를 맡지 못한다. 연기가 자욱할 때,
당신은 뭔가를 맡게될 것이다. 당신은 그것이 경유 램프임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삶이 완전 연소될 때,
당신은 불평도 없고, 당신의 수련을 자각할 필요도 없다.
만약 우리가 참선에 대해서 너무 많이 말하면,
그것은 이미 연기가 자욱한 경유 램프이다.

Maybe I am a very smoky kerosene lamp.
I don’t necessarily want to give a lecture.
I just want to live with you: moving stones, having
a nice hot spring bath, and eating something good.
Zen is right there.
When I start to talk, it is already a smoky kerosene lamp.
As long as I must give a lecture I have to explain:
“This is right practice, this is wrong, this is how to practice zazen…” It is like giving you a recipe. It doesn’t work.
You cannot eat a recipe.

아마도 나는 매우 연기가 자욱한 경유램프일 것이다.
내가 반드시 강연을 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나는 단지 당신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
돌을 옮기고, 좋고 뜨거운 봄 욕조를 갖고,
뭔가 좋은 것을 먹는 것 말이다. 선은 바로 거기에 있다.
내가 말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이미 연기가 자욱한 경유 램프이다. 내가 강연을 해야 하는 한, 나는 설명해야 한다.
"이것은 옳은 수련이고, 이것은 잘못되었고,
이것은 참선을 수련하는 법이다..." 그것은 마치 당신에게
레시피를 주는 것과 같다.
그것은 작용하지 않는다. 당신은 레시피를 먹을 수 없다.


Usually a Zen master will say: “Practice zazen,
then you will attain enlightenment.
If you attain enlightenment you will be detached from
everything, and you will see things as it is.
Of course this is true, but our way is not always so.
We are studying how to adjust the flame of our lamp
back and forth.
Dogen Zenji makes this point in the Shobogenzo.
His teaching is to live each moment in complete
combustion like a lamp or a candle. To live each moment, becoming one with everything, is the point of his teaching
and his practice.

보통 선스승은 말할 것이다. "참선을 수련하라.
그러면 당신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깨달음을 얻으면,
당신은 모든 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것이고,
당신은 일들을 있는 그대로 보게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길이 항상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우리의 램프의 불꽃을 왔다갔다 조정하는 법을
연구하고 있다.
Dogen Zenji는 Shobogenzo에서의 이 포인트를 만든다.
그의 가르침은 램프나 양초처럼 완전 연소로 매 순간을
사는 것이다.
모든 것을 가진 하나가 되면서 매순간 사는 것은,
그의 가르침과 그의 수련의 포인트이다.


Zazen practice is a very subtle thing. When you practice
zazen, you become aware of things you did not notice
while you were working. Today I moved stones for a while, and I didn’t realize that my muscles were tired.
But when I was calmly sitting zazen, I realized,
“Oh! My muscles are in pretty bad condition.”
I felt some pain in the various parts of my body.
You might think you could practice zazen much better
if you had no problem,
but actually some problem is necessary.
It doesn’t have to be a big one.
Through the difficulty you have you can practice zazen.
This is an especially meaningful point,
which is why Dogen Zenji says,
“Practice and enlightenment are one.
Practice is something you do consciously,
something you do with effort.
There! Right there is enlightenment.

참선 수련은 매우 미묘한 것이다. 당신이 참선을 수련할 때,
당신은 당신이 작용하는 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을
자각하게 된다. 오늘 나는 잠시 동안 돌을 옮겼고,
나는 나의 근육들이 피로해짐을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고요하게 참선을 하면서 앉아 있을 때,
나는 깨달았다. "오! 나의 근육들이 매우 나쁜 상태로군."
나는 내 몸의 여러 부위들에서 약간의 통증을 느꼈다.
당신은 당신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훨씬 더 낫게 참선을 수련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약간의 문제는 필요하다.
그것은 큰 것이 될 필요가 없다.
당신이 가진 그 어려움을 통해서,
당신은 참선을 수련할 수 있다.
이것은 특히 의미있는 포인트로, 이것이 바로 Dogen Zenji가 "수련과 깨달음은 하나"라고 말한 이유이다.
수련은 당신이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고,
당신이 노력을 하는 것이다. 거기있다!
바로 거기에 깨달음이 있다.

You think that you can only establish true practice 
after you attain enlightenment, but it is not so.

Many Zen masters missed this point,
while they were striving to attain perfect zazen:
things that exist are imperfect.
That is how everything actually exists in this world.
Nothing we see or hear is perfect.
But right there in the imperfection is perfect reality.
It is true intellectually and also in the realm of practice.
It is true on paper and true with our body.

많은 선 스승들이 이 포인트를 놓쳤지만,
그들은 완벽한 참선을 얻으려고 애쓰고 있다.
존재하는 것들은 불완전하다.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이 실제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보거나 듣는 그 어떤 것도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불완전함으로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
완전한 현실이다.
그것은 지적으로 또한 수련의 영역에서는 사실이다.
그것은 종이 위에서 진실이고, 우리의 몸에 대해서 진실이다.


You think that you can only establish true practice
after you attain enlightenment, but it is not so.
True practice is established in delusion, in frustration.
If you make some mistake, that is where to establish
your practice.
There is no other place for you to establish your practice.

당신은 당신이 깨달음을 얻은 후에 진정한 수련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진정한 수련은 착각, 좌절 속에서 성취된다.
만약 당신이 약간의 실수를 한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수련을 성취하는 장소이다.
당신이 당신의 수련을 성취하는 다른 장소는 없다.


We talk about enlightenment,
but in its true sense perfect enlightenment is beyond
our understanding, beyond our experience.
Even in our imperfect practice enlightenment is there.
We just don’t know it.
So the point is to find the true meaning of practice before
we attain enlightenment.
Wherever you are, enlightenment is there.
If you stand up right where you are, that is enlightenment.

우리는 깨달음에 대해서 말하지만,
진정한 의미로, 완전한 깨달음은 우리의 이해,
우리의 경험 너머에 있다.
심지어 우리의 불완전한 수련에서도 깨달음은 거기에 있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모를 뿐이다.
그래서 그 포인트는,
우리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 수련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당신이 있는 곳이 어디든 간에, 깨달음은 거기에 있다.
만약 당신이 있는 바로 그곳에 서있다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This is called I-don’t-know zazen.
We don’t know what zazen is anymore.
I don’t know who I am.
To find complete composure when you don’t know who
you are or where you are, that is to accept things as it is.
Even though you don’t know who you are, you accept
yourself. That is “you” in its true sense.
When you know who you are,
that “you” will not be the real you.
You may overestimate yourself quite easily,
but when you say, “Oh, I don’t know,” then you are you, and you know yourself completely. That is enlightenment.

이것은 오직 모를 뿐(I-don’t-know )참선이라 불린다.
우리는 참선이 무엇인지 더이상 모른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더이상 모른다.
당신이 누구인지 또는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를 때
완전한 평정을 찾기 위해서,
그것은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심지어 당신이 누구인지를 모를 때 조차도,
당신은 자신을 받아들이라.
그것은 바로 진정한 의미의 "당신"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
그 "당신"은 진정한 당신이 아닐 것이다.
당신은 아주 쉽게 당신 자신을 과대평가할 수도 있찌만,
당신이 "오, 나는 모를 뿐"이라고 말할 때,
당신은 당신이고, 당신은 완전히 당신 자신을 모른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I think our teaching is very, very good,
but if we become arrogant and believe in ourselves
too much we will be lost.
There will be no teaching, no Buddhism at all.
When we find the joy of our life in our composure,
we don’t know what it is, we don’t understand anything,
then our mind is very great, very wide.
Our mind is open to everything,
so it is big enough to know before we know something.
We are grateful even before we have something.
Even before we attain enlightenment,
we are happy to practice our way.
Otherwise we cannot attain anything in its true sense.

나는 우리의 가르침이 매우 매우 좋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우리가 오만해지고 우리 자신을 너무 많이 믿는다면,
우리는 길을 잃게될 것이다.
가르침도 없고, 불교도 완전히 없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평정심에서 삶의 기쁨을 발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의 마음은 매우 크고, 매우 넓어진다.
우리의 마음은 모든 것에 열려 있고,
그래서 우리가 뭔가를 알기 전에 아는 것이 충분히 크다.
우리는 심지어 우리가 뭔가를 갖기 전에 감사한다.
심지어 우리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수련하는 것이 행복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 진실한 의미로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Thank you very much.
 매우 고맙습니다

Shunryu Suzuki (1904-1971) was a Zen mo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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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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