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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의식의 본래 상태는 무의식입니다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7.10|조회수18 목록 댓글 1

‘의식’은 ‘잠 깬 의식’은 물론이고 ‘꿈꾸는 의식’과 ‘무의식’(투명한 의식)을 다 아우르는 유일한 실재(實在)입니다. 물론 ‘의식’ 혹은 ‘실재’라는 단어는 말이고 이름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의식과 실재라는 이름을 보아서는 안 되며 그 이름들이 가리키는 곳을 보아야 합니다.

(Being :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

 

잠 깬 의식과 꿈꾸는 의식은 그 안에 내용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들을 의식으로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의식(투명한 의식)을 의식의 절대적 실종으로 여기고 이를 의식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지만, 의식의 본래 상태는 무의식(투명한 의식)입니다. 의식의 진정한 정체는 무의식(투명한 의식)입니다. 잠 깬 의식과 꿈꾸는 의식은 의식이 본래의 고요한 상태를 벗어났음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의식 스스로 상전이를 일으킨 것입니다. ‘의식’이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곳은 의식의 내용물이 아니라 ‘아는 능력’ 자체입니다. 앎의 내용물이 있든 없든 앎의 능력 자체는 항상 존재합니다. 무의식은 단지 의식의 내용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내용 없는 ‘순수한 앎’ 자체를 무의식이라고 불러온 것은 오직 자아(몸-생각)의 관점에 한정된 잘못 붙여진 이름입니다.(Being : 자아가 없는 상태를 자아는 무의식이라고 함, 의식은 자아가 없어도 존재함) ‘의식 자체가 절대적으로 상실된 상태’를 상정하는 것 자체가 의식의 활동이므로 그런 것은 어떤 식으로든 상상조차 불가능합니다.

 

무의식(투명한 의식)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의식의 본래 모습입니다.(Being : 성성적적惺惺寂寂) 의식인 무의식은 단세포가 두뇌에 이르기까지 개체발생을 주도하고, 생명활동의 핵심인 심장박동과 호흡, 소화와 생식 등을 지배합니다. 잠 깬 의식은 이런 중요활동을 담당하기에는 너무 불안정하며 능력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의식인 무의식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뭅니다.

 

의식은 몸에 속박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식이 특정한 몸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느끼지만, 이것은 오해입니다. 실제는 정반대로 몸이 의식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자아(몸-생각)는 몸에 대한 지배권이 없습니다. 의식이 자아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합니다. 그러므로 자아는 (그러고 싶지 않겠지만)의식에 모든 일을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흐르는 강물 속에 다양한 형태의 파이프들을 놓아두면 강물은 동시에 모든 파이프를 통과하여 흐르는데, 이때 강물은 스스로 파이프의 형태에 맞도록 변형함으로써 아무런 저항 없이 유유히 파이프를 지나 끝없이 흘러갑니다. 강물은 본래 특정한 모양이 없으므로 이런 일이 가능하며 더구나 강물이 존재하고 흐르는 일 자체는 파이프의 유무와 상관이 없습니다.

 

대기권에 가득 찬 공기는 하나로 유동합니다. 공기가 운동하는 공간에 다양한 모양의 구멍을 가진 물체들이 나타나면, 공기는 동시에 모든 물체를 통과하면서 각 물체와 일치하는 다양한 소리로 변신합니다. 공기는 본래 소리가 없지만, 구멍을 가진 물체를 만나 다채로운 소리로 자기 존재를 드러냅니다. 그런 물체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공기는 소리 없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소리의 실제는 소리 없는 침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의식 역시 물이나 공기와 마찬가지로 작용합니다. 형태와 색깔과 소리가 없는 의식에 다양한 형태의 모습이 나타나면 의식은 일시에 그 모습들과 일치되게끔 변신해서 흐릅니다. 서로 다른 몸과 세상 만물을 동시에 살리는 이는 단 하나의 의식입니다. 몸과 세상 만물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의식은 항상 그대로 있습니다.

 

오늘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어제는 코감기로 고생하던 나였습니다. 오늘 남산을 산책하는 그녀는 어제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던 그였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날 때 서로를 바꿉니다. 어제 나를 살린 그 의식과 오늘 그대를 살리는 이 의식은 같은 의식입니다. 1초 전 그대는 지금 나입니다. 왜냐하면, 의식은 매일 매 순간 뒤섞여 혼재하며 세상과 만물 속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온통 하나인 전자기장 안에서 다양한 전자제품들이 함께 동시에 구동되는 것과 유사합니다. 의식은 매 순간 세상 만물 속에서 상대적 위치를 바꿔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의식은 특별한 개성을 고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입니다.(Being : 불이不二)

출처 : "자유롭게 살고 유쾌하게 죽기", 이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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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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