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제자에게 묻는다.
“만약 누군가가 화살에 맞으면 아프겠는가?”
제자가 대답한다.
“아픕니다.”
스승이 다시 묻는다.
“만약 똑같은 자리에 두 번째 화살을 맞으면 더 아프겠는가?”
제자가 말한다.
“몹시 아픕니다.”
그러자 스승이 말한다.
“살아 있는 한 누구나 화살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한 감정적 고통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첫 번째 화살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고, 두 번째 화살은 그 사건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다.
상실과 실패와 재난은 누구의 삶에나 일어난다. 그러나 고통의 대부분은 실제의 사건 그 자체보다 그것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 더 심화된다.
인생이 고통이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맞는 화살은 스스로 자신에게 쏘는 두 번째 화살이다.
첫 번째 화살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두 번째 화살을 자신에게 쏘기 시작하며, 이 두 번째 화살이 첫 번째 화살의 고통을 몇 배나 증폭시킨다.
상처에 너무 상처 받지 말 것, 실망에 너무 실망하지 말 것, 아픔에 너무 아파하지 말 것-이것이 두 번째 화살을 피하는 방법이다.
잠시 아플 뿐이고, 잠시 화가 날 뿐이고, 잠시 슬플 뿐이면 되는 것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맑고 투명해진다.
우리는 첫 번째 화살에 반응을 보이는 데는 익숙하지만, 두 번째 화살을 다루는 데는 매우 서툴다.
칼루 린포체는 말한다.
“용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해방시켜 주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을 향한 원망과 분노와 증오에서 나 자신이 해방되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사건들을 우리는 즉각적으로 개인화시키고 감정을 투영한다.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우리를 더 상처 입히는 것이다.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는 문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
밖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피하거나 도망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기 안에서 스스로에게 쏘는 화살은 피할 길이 없다.
정신에 가장 해로운 일이 ‘되새김’이다. 마음속의 되새김은 독화살과 같다.
‘문제를 느끼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문제 때문에 쓰러지지는 말라.’라는 말이 있다.
첫 번째 화살을 맞는 것은 사실 큰일이 아니다. 그 화살은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화살 때문에 자신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쏘는 것이 더 큰일이다.
이 두 번째 화살을 피하는 것은 마음의 선택에 달려 있다. 외부의 일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이다.
자신이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쏠 것인가?’
삶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어리석으면 더 고통스럽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는가는 그들의 카르마가 되지만, 그것에 대해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당신 자신의 카르마가 된다.’는 말은 진리이다.
출처 :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