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부의 첫 걸음은 자신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티끌만큼이라도 ‘내가 안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것이 공부에 장애가 된다. 진정한 하심(下心)은 자신의 무지(無知)에 대한 철저한 확인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교육을 많이 받은 현대인들에게 자신이 실제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말 그대로 발밑이 허물어지는 체험일 수도 있다. 이제까지 자신이 의지했던 알음알이, 알량한 지식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오히려 진정한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란 사실을 뼈아프게 인식하는 일은 대단히 고통스러울 수 있다.
노자가 이르기를, “학문을 하는 것은 날마다 더하는 것이요, 도를 행하는 것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爲學日益, 爲道日損]”이라 하였다. 방(龐)거사는 “있는 것을 없다고 할지언정 없는 것을 있다고 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성서에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라고 하였다. 진리는 우리 인간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 있다. 진리에 대한 아무리 그럴듯한 훌륭한 묘사도 결코 진리 그 자체일 수는 없다. 우리의 지식, 앎은 분별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분별을 넘어서 있는 진리 자체를 결코 알 수 없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다. 침묵은 진리의 언어다. 말의 길과 생각의 길이 끊어진 침묵이야말로 진리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모든 분별, 생각이 자취를 잃어버리는 알지 못함 속에서 진리는 스스로를 드러낸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어렵다. 알기보다 모르기가 더 힘들다. 모른다는 생각조차 일어나지 않을 때에야 진정 모르는 것이다. 티끌만큼이라도 아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가로막혀 알지 못한다. 이 공부는 무엇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을 모두 놓아버림으로써 단박에 통하는 것이다. 오직 모를 뿐인 마음으로 버티는 것이다.
출처 : 심성일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