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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스리 안나말라이 스와미의 마지막 가르침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8.07|조회수33 목록 댓글 1

책제목: 마음은 없다.
부제: 스리 안나말라이 스와미의 마지막 가르침
엮은이: David Godman
출판사: 탐구사

 

 

 

나는 마음이 아니다. 
마음은 없다. 意識만이 존재한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나 의식일 뿐....
마음에 조금이라도 實在性을 부여하면,
그것은 그대 자신의 거짓된 實在가 될 것이다.
이 최초의 그릇된 同一視 - 나는 마음이다.
마음은 실재한다 - 가 일어나고 나면,
문제들과 괴로움이 따라온다.
마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은 가짜 호랑이이고,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非二元性비이원성이 知지이고
二元性이원성이 輪廻윤회입니다.
이원성을 놓아버릴 수 있으면 브라만 만이 남게 되고,
그대 자신이 그 브라만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이것을 발견하려면 지속적인 명상이 필요합니다.
이 일에 일정한 시간대를 할당하지는 마십시오.
그것을, 앉아서 눈을 감고 있을 때 하는 일로 여기지 마십시오. 이 명상은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밥을 먹을 때, 걸을 때, 심지어 말을 할 때에도
명상을 하십시오.
그것은 무슨 일을 하든 내내 지속되어야 합니다.


'나는 몸이다' 하는 생각,
이것은 그 위에 다른 모든 생각들이 꿰어져 있는 줄입니다.
우리가 이 생각을 하여 자신을 몸과 동일시하기만 하면
maya(환상)가 따라옵니다.
만약 우리 자신을 몸과 동일시하기를 그치면
마야가 더 이상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이 '나는 몸이다' 하는 느낌과 그것에 의해 생겨나는 마야를
어떻게 제거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平等所見평등소견(일체를 평등하게 보는 태도),
곧 우리로 하여금 행복과 불행, 쾌락과 고통과 같은 양극단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개 해 주는 平靜평정 혹은 평등의 관점이 있을 때 사라집니다.
평등소견이 성취되면 '나는 몸이다' 하는 관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마야는 초월됩니다.


眞我진아와 마주하기 위해 내면으로 돌아서는 것.
그것이 필요한 전부입니다.
만약 바깥을 보게 되면,
우리는 대상들에 말려들어 우리의 내면에서 빛나고 있는
진아에 대한 자각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거듭된 수행으로 내면의 진아에 대한
우리의 초점을 고정하는 힘을 얻게 되면
우리는 그것과 하나가 되고 眞我無知진아무지self-ignorance는 사라집니다. 그러고 나면 비록 
이 거짓되고 허망한 육신 안에서 계속 살아간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희미해지거나 줄어들지 않는
至福지복의 大洋대양 안에 안주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의 왜곡된 프리즘을 통해서
眞人진인들을 인식합니다. 그 이상은 할 수 없습니다....
지각되는 대상은 그것을 지각하는 자와
동일한 성품으로 되어 있습니다. 
생시의 상태에서는 거친 물리적 눈이
물리적 대상들을 지각합니다.
꿈속에서는 미묘한 눈이
미묘한 꿈 세계의 대상들을 지각합니다.
그 너머에는 진아의 눈 eye of the Self 이 있습니다.
진아는 무한하고 비물질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보는' 것은 무한하고 비물질적입니다.
진인은 진아일 뿐이므로 오직 진아만을 보고 진아만을 압니다.....보는 눈과 보이는 대상들은 같은 성품입니다.
눈  그 자체가 하나의 형상이라면
그것은 형상들밖에 보지 못한다.....
진정한 눈은 진아이다.
그는 형상이 없는 순수하고 무한한 의식,
곧 실재이므로 형상들을 보지 않는다....
마음의 눈으로 관찰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눈은 마음이 자기 앞에 투사하는 것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진아의 눈으로 보고싶으면
마음이라는 영사기(투사자)의 스위치를 꺼 버리십시오.
그러면 진아의 무한한 눈이 그대에게 '모두가 하나이며
不可分불가분' 이라는 것을 드러내 줄 것입니다.


생시의 상태에서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하나의 꿈입니다.
이 꿈들은 우리의 생각들이 顯現현현한 것입니다.
쁜 생각들은 나쁜 꿈을, 좋은 생각들은 좋은 꿈들을 만들고, 생각이 전혀 없으면 전혀 꿈을 꾸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설사 그대가 꿈을 꾼다 할지라도,
그 꿈 역시 진아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진아로서 안주하기 위해 생각을 억압하거나
절대적으로 무념의 상태에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대의 생시와 잠 속의 꿈들 역시 진아라는 것을 알게 되면,
생시와 잠이 만들어내는 그 생각과 꿈들은
계속되어도 무방합니다.
그것들은 더 이상 그대에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항상 진아가 되십시오. 이 상태에서 그대는,
그대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하나의 꿈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진아를 깨달으려면 제대로 잘 가동되는 육신이 필요합니다.
진아를 깨닫는 것이
금생에 할 수 있는 유일하게 가치 있는 일이므로,
그 목표를 성취할 때까지 육신을 잘 건사해 두십시오.
그러고 나면 진아가 모든 것을 보살필 것이고,
그대는 더 이상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사실 걱정을 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걱정하고 선택하고 분별하던 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 상태에서는 그것을 필요로 하지도 않을 것이고,
아쉬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집착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어느 날 사라질 것이니까.
만일 신체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면 그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우울하고 비참한 느낌이 들 것이다.
내면의 진아를 着把간파하라.
그것이 진정한 스승이고 결코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것이다.....진아의 빛은 영원하고 내재적입니다.
일단 그것을 내면에서 발견하면,
그것은 항상 켜져 있을 것입니다.


마음은 보통 두 가지 習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활동을 벌이거나,
아니면 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세 번째 길이 있어서
의식침전 상태로 떨어집니다.
거기에 탐닉하면 안됩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고 나면 거기에 중독되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에 있으면 즐겁기는 하나 만약 너무 깊이 빠져들면
거기서 나오기가 아주 어렵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자기탐구를 부단히 하십시오.


수행은 하나의 戰場전장입니다.
정신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릇된 믿음을 떠안지 말고,
그대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안겨주려고 들어오는 생각들과
동일시하지 마십시오......
이 싸움은 모두 마야 안에서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그대가 바로 평안이며
오직 평안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마야 안에서 고통 받는 동안은,
궁극적으로 마야를 정복하는 수단으로서
이러한 생각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대는 자신을 육신 및 그 행위들과 동일시하여
진아를 잊어버리든지, 아니면 자신을 진아와 동일시하여,
육신은 자기에게 예정되어 있는 행위들 -진아의 힘에 의해
발동되고 유지되는-을 수행한다는 것을 이해하든지,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매 순간 그대는 단 하나의 진정한 선택권을 갖습니다.
진아를 자각할 것이냐,
아니면 자신을 몸 마음과 동일시할 것이냐 하는.
만약 후자의 길을 택한다면 신이나 신의 의지,
혹은 모든 일이 예정되어 있는 것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신은 그대가 진아를 잊어버리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그대 삶의 매 순간 그대 자신이 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대의 삶에서 겪는 외부적 사건들에 대해서 걱정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그런 정해진 행위들에 대해
아무런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금생에서 그대의 책임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이지,
그대의 인생 각본을 새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바깥 세상은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곳입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를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 역시 우리가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誘因으로서 세상을 이렇게 유지하고 있다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하나의 진정한 선택을 설정합니다.
즉, 우리가 밖으로 나가면 문제들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평안이 있습니다.


호흡을 주시하고 호흡이 어디서 일어나는지를 보라.
마음과 호흡은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므로,
호흡의 근원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은
사실상 자기탐구를 통해 마음의 근원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과 동일하다.....
마음은 부단한 수행에 의해서만 진아 안에서 해소됩니다....
마치 해가 뜨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다섯 감각 기관은 항상 밖으로 움직여 나가
세계와 관계하려고 합니다....
마음과 호흡이 제어되어 마음의 에너지가 세상 및
그 대상들과 관계하러 바깥으로 움직여 나가지 않으면,
마음은 그 근원으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시간 속에서 오는 것은 결국 가고 맙니다.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삶은 모두 하나의 꿈입니다.
즉, 한 꿈 속에서 꾸는 한 꿈 속의 또 한 꿈입니다.....
우리의 전체 삶들이 꿈입니다.
이 꿈의 삶이 끝나고 새로운 꿈의 삶이 시작될 때는,
두 꿈이 모두 윤회라는 저변의 꿈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앎이 없습니다....
전 세계를 하나의 꿈으로 보십시오.
깨달음이 오면 어떤 것도 그대에게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모든 현상이 실재하지 않는
하나의 꿈이라는 확고한 앎을 가지게 될 테니까요.


화를 내 보이는 것이 필요할 경우도 있습니다.
화를 내는 역을 하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단지 특정한 순간에 필요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됩니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을 때도
내면적으로 우리는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과 다른 모든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우리의 주의를 진아 쪽으로 돌려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이나 다음 세상에서 어떤 것을 원하면
우리의 에너지는 이런 욕망들 속에서 분산되고,
이런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우리는 거듭 거듭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니 그대의 모든 욕망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과
선호하는 것들을 포기하십시오.
만약 그대가 참으로 전체라면,
그대 자신의 어느 부분을 좋아하고 싫어하겠습니까?


교육을 더 받고 싶다고? 그 교육은 자네에게 좋지. 더 공부하게. 그러나 그와 동시에 공부하는 것이 누구인지도 탐구하게. 자네 자신을 공부하게...


추구하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그가 찾는 것입니다. 찾는 자와 찾는 대상 둘 다 진아입니다.


禮供예공, 念誦염송, 儀式의식- 이런 것들은
초심자들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더 높은 班반의 교과목은 명상입니다.
유아반의 행위들을 계속 되풀이하는 데 몰두하여
우리의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관심을 "나는 몸이나 마음이 아니다.
나는 진아다.
모든 것은 나다' 하는 최종적인 가르침에 집중하십시오.


단식보다 순수성 식품을 적당량 먹는 것이
수행자들에게는 최선의 외부적 보조 수단입니다. 
우리는 몸에 음식을 굶기기보다는
마음에 생각을 굶겨야 합니다. 
우리가 수행을 잘 하려면 몸의 건강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몸에 음식을 주지 않으면 몸이 약해져서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합니다.


몸과 마음은 今生으로 넘어온 (과거의) 업에 따라,
쾌락, 행복, 불행 따위를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아에게는 집착도 없고, 초연함도 없고,
행복도 불행도 없고, 아무런 업도 없습니다.....
생각의 잠재력이 그대에게 남아 있는 한
생각들은 일어날 것입니다.
좋은 생각들, 나쁜 생각들 - 그런 식으로 계속 일어나겠지요. 그대가 이 흐름을 막을 방도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생각들의 흐름이
문제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진아가 되십시오.
그대의 참된 성품인 평안이 되십시오.
그러면 무엇이 오든 상관없을 것입니다. 
걷고, 먹고, 마시고, 잠자고, 명상하십시오.
그러나 자신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대의 삶을 중독시키는 생각입니다.
일단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대는 스스로를 더 나은 상황 속에 두기 위해 다른 뭔가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겠지요.
진아의 감로甘露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그 관념을 놓아버리는 것이
그대에게 필요한 전부입니다.


일체를 하나로 보는 것이 참된 소견이며, 몸 안의 다섯 감각 기관을 제어하는 것이 참된 수행입니다.....


마음이 제어되지 않는 것은 오직 욕망 때문입니다.
욕망이 모든 고통의 원인입니다.
모든 욕망의 근본 원인은 육신이 욕망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욕망하는 까닭은
'나는 몸이다' 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몸이다' 하는 관념이 제거되면
모든 욕망이 저절로 떠나버릴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욕망이라는 밧줄에 묶여 고통 받습니다.
욕망을 포기하면 아무런 고통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무랄 데 없을 사람들도
욕망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욕망이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신인 야먀와 같은, 끝없는 고통을 야기합니다.
욕망은 눈을 가립니다....
욕망은 그 대상을 얻기 전에는
그것이 수미산 만하게 보이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고 나면 원자만큼 작아보이게 만듭니다. 
따라서 메워 버려야 할 더러운 구덩이치고
욕망보다 더 나쁜 것은 없습니다.....
그토록 많은 고통을 야기하는 욕망을 제거할 방법은,
온갖 욕망의 근원인 몸-욕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몸-욕망의 근원은 '나는 몸이다'하는 생각입니다.
이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포기가 될 수 없습니다.


욕정을 극복하면 신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Cupid(애욕의 신)는 죽음의 신 야마보다 더 잔인합니다.
야마는 마지막에 가서야 죽이지만,
큐피드는 영원히 고통을 가합니다....
사람은 욕정에 의해 짜부라집니다.
욕정의 불길에 의해 끓여지고 태워져서 불탄 낙엽처럼 됩니다. 독은 마시면 죽습니다. 칼은 베여야 죽습니다.
그러나 욕정의 대상은 그것을 생각만 해도 사람을 죽입니다.


고통과 쾌락이 없이는 삶이 없습니다.
낮과 밤이 없으면 날이 없습니다.
선과 악이 없으면 삶이 없습니다.
고통과 쾌락, 모든 得과 失을 평등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양성은 세계의 본질입니다.
이것을 보고 염증을 느끼지 마십시오.
"이것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하고 탐구하여
그대 자신을 깨달으십시오. 
그러면 평안과 지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 사람은
평안과 지복을 얻을 것입니다.


마음의 평안의 적은 욕정, 증오 및 탐욕입니다.


삶의 목표는 진아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여기에 두어야 합니다.


세상 속에 머무르십시오.
그러나 세상이 그대 안에 머무르게 하지는 마십시오.
즉, 세속적 욕망이 그대의 내면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분주한 세상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잠을 자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속에서 욕망을 포기하는 것이야 말로 出家입니다.
아내와 가족을 포기하는 것만이 출가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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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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