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ADESA SARAM
우빠데샤 사람
The Essence of Instruction
가르침의 핵심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일단의 리쉬(rishis)들이 다루까 숲에 같이 살면서
의식을 거행하여 초자연적인 능력을 얻었다고 한다.
그들은 같은 수단에
의해 궁극적인 해탈을 성취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행위는 행위를 낳을 뿐,
행위의 그침을 가져다 주지 않는 것이다.
의식은 능력들을 가져다 줄 수는 있지만,
의식과 능력들, 그리고 행위의
모든 형태들을 넘어서 있는
해탈의 평안은 줄 수 없는 것이다.
시바는 오류를 납득시켜 주기로 하고
그들 앞에 방랑하는 사두로서 나타났다.
비슈누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그와 동행했다.
모든 리쉬들은 이 여인에게 반해버려 마음의 평형을 잃었고,
그 바람에 그들이 거행하던 의식도 등한시되고 능력도 감소했다.
더욱이 그들과 함께 숲 속에 살고 있던
그들의 아내들은 이 낯선 사두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여기에 화가 난 그들은
코끼리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를
마법의 의식으로 불러내어 시바를 공격하게 했다.
시바는 손쉽게 그것들을 죽여서
코끼리의 가죽은 옷으로삼고 호랑이의 가죽은 몸가리게로 했다.
그제야 리쉬들은 자기들보다
더 강한 자를 상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절하고 가르침을 청했다.
시바는 이때 그들에게 사람은 행위로써가 아니라
행위를 포기함으로써 해탈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인 무르가나르(Muruganar)는
이 주제에 관한 100연의 시를 쓰고 싶었으나,
70연 이상은 쉽사리 써지지가 않았다.
이때 그에게 시바에 관한 가르침에 관한 시들을 쓸 적임자는
바가반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바가반에게
그 시들을 좀 써 주십사고 청했고,
그에 따라 바가반은 30연의 따밀 시를 지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은 나중에 그것을 산스끄리뜨로 번역했다.
이어서 바가반은 이 30연의 시를 뗄루구어(Telugu)로 번역하여
처음에는 「아누부띠 사람」(Anubhuti Sâram)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나중에는 「우빠데샤 사람」(Upadesa Sâram)이라고 했다.
바가반은 마찬가지로
그것을 말라얄람어(Malayalam)로도 번역했다.
산스끄리뜨 번역본[우바데샤 사람]은
베다와 함께 당신 앞에서 매일 찬송되었고,
지금도 당신의 사당(삼매지) 앞에서 계속 찬송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하나의 경전같이 다루어진다.
그는 해탈에 이르는
여러 가지 길들을 언급하면서,
그것들의 효율성과 우수성의 순으로 등급을 매기고,
가장 뛰어난 것은 자기탐구임을 보여주고 있다.
1
kartur-âjñayâ prâpyate phalam,
karma kim param karma tajjadam.
업(행위)은 열매를 맺으니,
주재자가 그렇게 정해놓았기 때문이네.
업이 어떻게 지고자일 수 있으랴?
그것은 활동력이 없다네.
Action yields fruit,
For so the Lord ordains it.
How can action be the Lord?
It is insentient.
2
krti-mahodadhau patana-kâranam,
phalam-asâsvatam gati-nirodhakam.
행위의 열매는 사라지지만,
그것은 계속 업의 씨았을 남겨
끝없는 업의 바다로 이끄나니,
결코 해탈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네.
The fruit of action passes.
But action leaves behind Seed of further action
Leading to an endless ocean of action;
Not at all to moksha.
3
îsvarârpitam necchayâ krtam,
citta-sodhakam mukti-sâdhakam.
주재자에게 순복하는
사심없는 행위는,
마음을 정화하며, 해탈을 향한
길을 가리켜 준다네.
Disinterested action
Surrendered to the Lord
Purifies the mind and points
The way to moksha.
4
kâyavânmanah-kâryam-uttamam,
pûjanam japa-scintanam kramât.
확실한 것은,
예배와 염송과 명상은
몸과 말과 마음으로써 행하는 것이지만,
그 순서대로 나중 것이 낫다네.
This is certain:
Worship, praise and meditation,
Being work of body, speech and mind,
Are steps for orderly ascent.
5
jagata îsadhi-yukta-sevanam,
asta-mûrtibhrd-deva-pûjanam.
공, 지, 수, 화, 풍과
해와 달과 산 존재들을 숭배하되,
모두를 그분의 형상들로 보는 것이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숭배라네.
Ether, fire, air, water, earth,
Sun, moon and living beings Worship of these,
Regarded all as forms of His,
Is perfect worship of the Lord.
6
uttama-stavâd-ucca-mandatah,
citta-jam japa-dhyânam-uttamam.
찬양의 노래보다는 명호염송이 낫고,
큰 소리로 하는 것보다는 나지막한 소리가 낫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나은 것은
마음속으로 하는 명상이라네.
Better than hymns of praise
Is repetition of the Name;
Better low-voiced than loud,
But best of all
Is meditation in the mind.
7
âjya-dhârayâ srotasâ samam,
sarala-cintanam viralatah param.
끊어졌다 이어지는 명상보다,
면면한 물줄기같이 안정된
혹은 가만히 따르는 기름 줄기 같은,
지속적인 하나의 흐름이 더 낫다네.
Better than spells of meditation
Is one continious current,
Steady as a stream,
Or downward flow of oil.
8
bheda-bhâvanat-so'ham-ityasau,
bhâvanâ'bhidâ pâvanî matâ.
그분을 남으로 보기보다는
내면의 '나'로, 바로 '나' 자신으로
그분을 생각함이, 실로
가장 고귀한 마음가짐이라네.
Better than viewing Him as Other,
Indeed the noblest attitude of all,
Is to hold Him as the 'I' within,
The very 'I'.
9
bhâva-sûnya-sad-bhâva-susthitih,
bhâvanâ-balad-bhaktir-uttamâ.
순수한 존재 안에 안주하여
열렬한 사랑을 통해 생각을 초월함이,
지고한 헌신의
가장 핵심이라네.
Abidance in pure being
Transcending thought through love intense
Is the very essence
Of supreme devotion.
10
hrt-sthale manah-sva-sthatâ-kriyâ,
bhakti-yoga-bodhâsca niscitam.
우리가 일어난 곳인
존재의 심장 속으로 흡수됨이
행위의 길이요, 헌신의 길이며,
합일의 길이자, 지(知)의 길이네.
Absorption in the heart of being,
Whence we sprang,
Is the path of action, of devotion,
Of union and of knowledge.
11
vâyu-rodhanâl-lîyate manah,
jâla-paksivad-rodha-sâdhanam.
새가 그물에 걸려서 잡히듯,
마음도 호흡을 억제하면 제어되니
호흡조절을 하는 것은
심장 안에 몰입하는 한 방편이라네.
Holding the breath controls the mind,
A bird caught in a net.
Breath-regulation helps
Absorption in the heart.
12
citta-vâyavas-cit-kriyâ-yutâh,
sâkhayor-dvayî sakti-mûlakâ.
마음과 호흡은 (생각과 행위처럼)
두 갈래로 뻗어나가지만,
둘 다 하나의 뿌리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Mind and breath (as thought and action)
Fork out like two branches.
But both spring
From a single root.
13
laya-vinâsane ubhaya-rodhane,
layagatam punar-bhavati no mrtam.
몰입에 두 종류가 있으니.
가라앉음과 소멸이라네.
가라앉은 마음은 다시 일어나지만,
죽은 것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네.
Absorption is of two sorts;
Submergance and destruction.
Mind submerged rises again;
Dead, it revives no more.
14
prâna-bhandanâl-lîna-mânasam,
ekacintanân-nâsametyadah.
호흡을 제어하고 생각을 절제하여
내면을 향해 오로지
일념으로 된 마음은,
마침내 시들어 죽어버린다네.
Breath controlled and thought restrained,
The mind turned one-way inward
Fades and dies.
15
nasta-mânasot-krsta-yoginah,
krtyam-asti kim svasthitim yatah.
마음이 사멸된 위대한 진인은
자기의 본래적 존재로 돌아가나니,
그에게는 더 이상 해야 할
아무리 행위가 없다네.
Mind extinct, the mighty seer
Returns to his own natural being
And has no action to perform.
16
drsya-vâritam cittam-âtmanah,
cittva-darsanam tattva-darsanam.
바깥의 대상들로부터 물러나
마음이 그 자신의
빛나는 형상을 바라볼 때,
그것이 참된 지혜라네.
It is true wisdom
For the mind to turn away
From outer objects and behold
Its own effulgent form.
17
mânasam tu kim mârgane krte,
naiva mânasam mârga ârjavât.
마음이 자신의 형상을 끊임없이 살펴보면,
마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
누구에게나 이것이
직접적인 길이라네.
When unceasingly the mind
Scans its own form
There is nothing of the kind.
For every one
This path direct is open.
18
vrttayas-tvaham-vrittim-âsritâh,
vrttayo mano viddhyaham manah.
생각들이야말로 마음을 구성하고,
모든 생각들 중에는 '나'라는 생각이 그 뿌리,
마음이라는 것은 결국 '나'라는 관념일 뿐이네.
Thoughts alone make up the mind;
And of all thoughts the 'I' thought is the root.
What is called mind is but the notion 'I'.
19
aham-ayam kuto bhavati cinvatah,
ayi patatyaham nija-vicâranam.
우리가 내면으로 돌아서서
이 '나'가 어디서 일어나는지 찿으면,
수치를 느낀 '나'는 사라지나니,
지의 탐구는 이렇게 시작한다네.
When one turns within and searches
Whence this 'I' thought arises,
The shamed 'I' vanishes ---
And wisdom's quest begins.
20
ahami nâsabhâ-jyaham-aham-tayâ,
sphurati hrt svayam parama-pûrnasat.
이 '나'라는 관념이 사라진 곳에
이제 '나, 나'로서 일어난 것은
일자인 바로 진아,
무한자라네.
Where this 'I' notion faded
Now there as I, as I, arises
The One, the very Self,
The Infinite.
21
idam-aham padâ'bhikyam-anvaham,
ahami lînake'pyalaya-sattayâ.
'나'라는 말의 영원한 의미는 그것이니,
왜냐하면 우리가 깊은 잠 속에서
'나'라는 느낌이 전혀 없을 때에도,
우리는 존재하기를 그치지 않기 때문이네.
Of the term, 'I', the permanent import
Is That. For even in deep sleep
Where we have no sense of 'I'
We do not cease to be.
22
vigrahendriya-prâna-dhîtamah,
nâham-ekasat-tajjadam hyasat.
육체, 감각, 마음, 호흡, 잠 등은
모두 지적능력이 없고 실재하지 않아
실재인 '나',
이 '나'일 수가 없다네.
Body, senses, mind, breath, sleep ---
All insentient and unreal ---
Cannot be 'I',
'I' who am the Real.
23
sattva-bhâsikâ citkva vetarâ,
sattayâ hi ci-ccittayâ hyaham.
'존재하는 것'을 앎에 있어서
다른 '아는 자'란 없으니,
따라서 존재가 자각이며,
우리가 모두 자각이라네.
For knowing That wich is
There is no other knower.
Hence Being is Awareness;
And we all are Awareness.
24
îsajîvayor-vesadhî-bhidâ,
satsva-bhâvato vastu kevalam.
그들 존재의 성품에 있어서
피조물과 창조주는 근본적으로 하나이니,
그들의 차이라면 단지
부수적인 것들과 지각의 정도 차이뿐.
In the nature of their being
Creature and creator are in substance one.
They differ only
In adjuncts and awareness.
25
vesa-hânatah svâtma-darsanam,
îsa-darsanam svâtma-rûpatah.
일체의 속성을 벗어나서
자신을 보는 것이 하느님을 보는 것,
왜냐하면 그분은 순수한 진아로서
항상 빛나고 있기 때문이네.
Seeing oneself free of all attributes
Is to see the Lord,
For He shines ever as the pure Self.
26
âtma-samsthitih svâtma-darsanam,
âtma-nirdvayâd-âtma-nisthatâ.
진아를 아는 것은 진아가 되는 것일 뿐이니,
왜냐하면 그것은 둘이 아닌 때문이네.
그러한 지 안에서 우리는
그것으로 안주한다네.
To know the Self is but to be the Self,
For it is non-dual.
In such knowledge
One abides as that.
27
jñana-varjitâ'jñâna-hîna-cit,
jñânam-asti kim jñâtum-antaram.
지와 무지 둘 다를 뛰어넘는
그것이 참된 앎이니,
왜냐하면 순수한 지 안에는
알려지는 대상이 전혀 없기 때문이네.
That is true knowledge wich transcends
Both knowledge and ignorance,
For in pure knowledge
Is no object to be known.
28
kim svarûpam-ityâtma-darsane,
avyayâ'bhavâ''pûrnacitsukham.
자신의 성품을 알고 나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존재로서 우리는 안주하리,
끊임없는 의식-지복 속에서.
Having known one's nature one abides
As being with no beginning and no end
In unbroken conciousness and bliss.
29
bandha-muktyatî-tam param sukham,
vindhatîha jîvastu daivikah.
속박과 해탈을 넘어서서
이 지복의 상태 안에 안주함이,
확고부동하게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이라네.
Abiding in this state of bliss
Beyond bondage and release,
Is steadfastness
In service of the Lord.
30
aham-apetakam nija-vibhânakam,
mahad-idam tapo ramana-vâgiyam.
모든 에고가 사라지고 나서
그것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성장을 위해 좋은 고행이라고,
진아인 라마나는 이렇게 노래한다네.
All ego gone,
Living as that alone
Is penance good for growth,
Sings Ramana, the Self.
영어 번역 : K. 스와미나탄 교수(Prof. K. Swaminathan) 한글 번역 : 대성
Inspiring melodies by Sri J.Jayaraman and Dr. Lingeshwara R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