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乘入楞伽經 序文中에서 ( 金栽根 著)
認識인식되는 모든 內容내용은
認識인식하는 마음의 內容내용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對象대상 自體자체를
있는 그대로 認識인식하지 못하고,
반드시 私見사견과 偏見편견이 加味가미된채
認識인식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認識인식되는 모든 것은
對象대상 自體자체가 아니라
對象대상을 보고 만든 心像심상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보고 느끼는 感情감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愛애. 憎증도 다르고
愛애. 憎증의 度數도수도 다를것이며,
價値平價가치평가도 다르고
親친. 疏소의 尺度척도도 다를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人間關係인간관계도 다를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 자식이 되기도 하고,
兄弟형제. 아버지. 남편이 되기도 하며,
고객이 되기도 하고, 主人주인 손님이 되기도 한다.
상사가 되기도 하고 부하가 되기도 하며,
恩人은인이 되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關係관계는
비단 한 個人개인에게만
局限국한되는 問題문제가 아니라
對象全體대상전체와 認識인식전체,
對象대상과 認識인식 全體전체에 걸치는 問題문제이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對象대상을 認識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自己자기의 마음을
自己자기가 認識인식함을 깨달을 수 있다.
自己자기의 마음을 바꾸면
對象대상이 바뀌어져 認識인식된다는 것은
참으로 興味흥미로운 일이다.
우리가 對象대상을 認識인식할 때는
반드시 自己자기의 經驗경험. 智識지식. 느낌.
感情감정. 기분. 생각과 身體신체의 狀態상태
그리고 他人타인의 意見의견.
助言조언. 敎訓교훈등을 土臺토대로 하여 認識인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以上이상 의 資料자료가 없다면
認識인식의 內容내용도 없고 判斷판단할 기준도 없고
斷案단안을 내릴 건덕지도 전연 없게 된다.
그런데 問題문제는
自己자기가 지닌 智지. 情정. 意의가
어느 정도로 公正공정하고 確實확실하며,
他人타인이 지닌 智지. 情정. 意의가
어느 정도로 公定공정하고 確實확실한 가에 있다.
사람이 지닌 知識지식 속에 誤謬오류가 많다.
그래서 誤謬오류는 誤謬오류를 낳고
矛盾모순은 矛盾모순을 낳는다.
그러므로 認識인식이 있는 한 誤謬오류도 있으므로
誤謬오류 없는 認識인식을 하려면
모든 認識인식을 中止중지시킬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認識인식되는 모든 것은
오직 자기의 마음이 나타낸 것 임을 깨달아서
온갖 虛妄허망한 分別분별을 버려야 할것이다.
喜희. 怒노. 哀애. 樂락의 모든 感情감정,
憂우. 悲비. 苦고. 惱뇌. 不安불안. 緊張긴장.
恐怖공포. 孤獨感고독감. 疏外感等소외감등의 모든 感情감정은
自己자기의 心身심신이 일으키는 感情감정이지
결코 外部외부에서 주어지는 感情감정은 아니다.
그러므로 自己자기의 마음이 超然초연 할 때
오만 가지 感情감정이 스러지게 된다.
우리의 認識인식은
(1) 對象대상은
自己자기의 마음이 나타낸 것임을 깨닫지 못하여
執着집착하고 取취함.
(2) 옛적부터 내려 오면서
形色형색을 한 虛妄허망한 習氣습기.
(3) 識식의 本性본성이 그러함.
(4) 온갖 가지 色相형상을 보기 좋아함.
때문에 생긴다고 楞伽經능가경은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認識인식을 없애려면
(1) 제 마음이 나타낸 것임을 깨닫고
(2) 虛妄허망한 習氣습기와 習慣관습을 없애고
(3) 識식의 本性品본성품에 通達통달하고
(4) 온갖 世俗的세속적인
好奇心호기심과 慾求욕구를 없애면 될 것이다.
楞伽經능가경에서는
認識인식을 能見능견, 對象대상을 所見소견이라 했다.
能見능견. 所見소견은
한 마음의 두 가지 作用작용에 의해서 생기므로
心像(=心相)심상을 없애면
能見능견.所見소견이 同時동시에 消滅소멸된다.
換言환언하면 分別분별이 없으면
分別분별에 의해서 생기는 對象대상과 認識인식이
同時동시에 消滅소멸된다는 이야기이다.
對象대상과 認識인식이 同時동시에 消滅소멸되고 나면
비로서 마음의 平穩평온을 얻게 된다.
衆生중생들은 分別분별 때문에
온갖 苦惱고뇌를 받는다.
恒時항시 自己자기의 分別분별에 의해서
自己자기가 束縛속박된다.
그러므로
自己자기의 分別분별이 消滅소멸될 때
萬法만법에서 解脫해탈하게 된다.
그러나 認識인식과 分別분별이
消滅소멸된다고 해서
識別식별의 主體주체인 마음조차
消滅소멸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비록 認識인식되는 內容내용은 消滅소멸되어도
認識인식의 바탕은 消滅소멸되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거울에 비치는 影像영상은 消滅소멸되어도
거울은 消滅소멸되지 않듯이…
自己자기의 感官감관에 超然초연할 때
우리는 모든 것에 超然초연할 수 있다.
衆生중생들은
明滅명멸하는 樂락에서 살므로 苦고.
樂락이 交互교호하게 되나,
聖賢성현들은 一切일체의 苦樂고락에서 超越초월하였으므로
明滅명멸이 없는 寂滅적멸의 樂락을 恒時항시 누리게 된다.
그러나 認識인식되는 苦고.樂락은
결코 眞正진정한 苦고. 樂락이 될 수 없다.
眞正진정한 苦樂고락은 認識인식될 수 없으므로
認識인식됨이 없는 것 그것이 진정한 苦樂고락이 된다.
그러나 認識인식되지 않는 苦樂고락은
이미 苦樂고락이 아니므로
그러한 境地경지에서
苦痛고통과 快樂쾌락이 同一동일해 진다.
그러므로 苦痛고통과 快樂쾌락의 本性본성은
同一동일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苦痛고통과 快樂쾌락이
同一동일한 境地경지에 들면
苦痛고통에서 快適쾌적하게 살 수 있고
快樂쾌락에서 超然초연하게 살 수 있다.
이러한 境地경지를 가리켜 涅槃열반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