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世人)들의 아무리 진보된 이론이나
심원(深遠)한 학설(學說)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는 인생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니
이는 명상(名相)에 집착되었기 때문이니라.
이론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깨우쳐 주는 이론이라면,
그 이론은 곧 도의 입문으로 인도하는
대도사(大導師)가 되는 것이니라.
형이상학(形而上學)이나
유심론(唯心論)을 말하는 자 스스로
물질적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것을 모르나니라.
세상에는 바른 말 하는 사람도 없는 동시에
그른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 것이니라.
신(神)은 아무리 신통 자재(神通自在)한 최고신으로
인류 화복(人類禍福)을 주재(主宰)한다 하더라도
육체를 갖추지 못한 사(邪)이니라.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무지(無知)를 면치 못하고,
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은 어리석음을 면치 못하나니라.
현대 과학이 아무리 만능(萬能)을 자랑하지만
자타(自他)를 위하여 순용(順用)되지 않고,
역용(逆用)되는 이상
그것은 인류에게 실리(實利)를 주는 것보다
해독(害毒)을 더 많이 주는 것이니,
다만 세계가 자타의 아상(我相)이 없는 생활로
물질과 정신의 합치(合致)인 참된 과학 시대가 와야
전인류는 합리적인 제도하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니,
인간의 근본을 밝히는 정신 문명(精神文明)이
사람마다 마음 속에 건설하여야
잘 살 수 있는 진정한 평화가 되나니라.
물질 과학의 힘으로서는
자연의 일부는 정복할지언정
자연의 전체를 정복할 수는 없는 것이요,
설사 다 정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생(多生)에 익혀 온 습성을
어느 정도까지 만족시키는 데 지나지 않을 뿐으로,
정말 습성 자체는 정복하지 못한 것이니,
그 습성 자체를 정복하고,
그 근본에 체달한 후라야
비로소 자연과 습성을 모두
자가용(自家用)으로 삼게 될 것이니라.
물질과 정신이 합치된 과학자는
영원의 만능을 발휘할 수 있나니라.
현대 사람은 자만심(自慢心)을 본위로 한 신경만 예민하여,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법문(法門)을 들을 때에
신중히 생각하지도 아니하고,
부인할 아무 근거도 없이
무조건 반박해 버리는 것으로
쾌사(快事)를 삼는 일이 많으니,
그것은 암흑의 길을 자취(自取)하는 것이니라.
아집(我執)은 배타적(排他的) 정신이라,
남이 곧 나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나를 점점 더 축소시키는 무지이니라.
중생들은 잘하고 착해야 될 줄을 알면서도,
잘하고 착하게 하는 사람,
곧 나를 찾는 공부는 할 생각을 못하나니라.
중생들은 인간이 만물(萬物)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사색(思索)하는 데 있다하면서
사색하는 그 자체를 알아 볼 생각은 하지 못하나니라.
중생들은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도 까맣게 모르면서
학자인양 종교가인양 하여
제법 인생 문제를 논하는 것은
생명을 잘라 놓고 생명을 살리려는 것과 다를 바 없나니라.
이론이 끊어지고, 학론(學論)이 다한 곳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나를 발견하는데,
내가 나를 찾기 전에는
인생 문제의 해결은 결코 불가능하나니라.
인생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인연이나 희망이 아니요,
진아(眞我)를 체달하여
이사(理事)에 임의로 처리하게 되어야 하나니라.
중생들은 알 줄만 알고, 모를 줄은 모르나니라.
알지 못함을 알면 철저히 아는 것이니,
정말 아는 법은 알지 못할 줄을 능히 알 때에
비로소 진아에 체달되나니라.
지구(地球)라는 한 모태(母胎)에서
같이 출생한 동포가
서로 총칼을 겨누게 되니,
어느 형(兄)을 찌르려고 칼을 갈며,
어느 아우를 죽이려고 총을 만드는지 비참한 일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