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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

끼란 바바와의 대화 -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2편)

작성자山木|작성시간23.09.14|조회수17 목록 댓글 1
다만 쉬어라. 그리고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아라.




나는 첫 만남 뒤에 여러 번 끼란을 방문하였다. 다음의 대화는 1994년 3월에 푸나에 있는 그의 집에서 녹음된것이다. 그때 나는 끼란과 그의 가르침에 관한 비디오를 편집하고 있었다. 이때 방문자는 나 혼자뿐 이었다


명상(冥想)은 없다 :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 마두까르 ] 제가 제 친구들에게 선생님에 관하여 말하면, 그들은 흔히 이런 질문을 합니다 : '이 끼란이란 사람은 누구인가?' 선생님에 관하여 좀 이야기해 주십시오. 이렇게 묻겠습니다 : '끼란, 당신은 누구입니까?'


[ 끼란 ] 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고 있습니다. 당신들과 나 사이에 있는 유일한 차이는 이것입니다 : 당신들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고, 나는 깨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현상(現象)과 삶은 다만 꿈이요 연극일 뿐임을 나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삶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나 자신과 분리됩니다.


나는 다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지켜보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다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다만 삶을 즐기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불만도 없습니다. 나에게는 도달해야 할 목표나 성취해야 할 목적이 없습니다. 나는 영적인 삶으로부터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내 자신의 자연적 공간으로 돌아와 있는 것입니다.


외면적으로는 나는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평범할 뿐입니다. 내면적으로 나에게는 어떤 절망이나 고통도 없습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더 많이 이해할수록 나는 더욱 평범해 졌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이러한 알수 없음에 충격받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알거나 이해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누가 그것을 이해할까요? 어떤 지식이나 이해도 요구하지 않는 앎과 단일성을 나는 어디에서 얻을까요? 나는 존재 자체의 일부분인 동조(同調) 혹은 공명(共鳴) 때문에 그것을 얻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습니다. 주장할 것이 무엇 있습니까? 아침에 당신이 꿈에서 깨어나 지금 잠이 깨어 있다면, 당신이 무엇을 주장하겠습니까? '나는 깨어있다.' '나는 위대하다.'라고 주장할 것입니까? 그것이 성취입니까? 그것은 자유(自由)의 느낌일 뿐입니다. 당신은 번뇌(煩惱)라고 하는 모든 그러한 꿈들로부터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당신은 자신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당신은 편안해지고 삶을 즐기고 삶을 찬양하게 됩니다.

 
[ 마두까르 ] 만약 당신이 가르치지도 않고 스승도 아니라면, 당신이 하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 끼란 ] 나는 아무것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교육은 어떤 지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육은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나에게 질문하고 있을 때, 나는 당신의 지식을 증가시킬 대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나는 다만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가질 뿐입니다. 나누어 가진다는 것과 가르친다는 것은 다릅니다. 나누어 가진다는 것은 당신의 즐거움, 침묵, 이해를 나누어 가지는 것입니다. 나는 깨어 있기 때문에,나의 깨어 있음을 나누어 가집니다. 당신들이 꿈 속에서 울고 있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을 흔들어 깨우려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깨어났을 때, 당신은 다만 웃을 것이고 나도 웃을 것입니다. 이해하거나 알 것은 아무것도 없고, 도달해야 할 곳도 없습니다. 모두가 꿈입니다. 깨어나기 위하여 방법과 기술을 실행하는 것도 꿈의 일부분입니다. 그리고깨어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그 사람도 역시 꿈의 일부분입니다. 당신은 그에 관하여 꿈을 꾸고 있고, 그는 당신에 관하여 꿈을 꾸고 있습니다. 어떤 소통도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이 꿈 속에서 얼마나 오래 있기를 원합니까? 오직 당신이 정말로 당신의 꿈에 절망할 때에, 비로소 당신은 어느 순간에라도 깨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앉아서, 나는 당신들에게 어떤 해답이나 기술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가르치지도 않고 설교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전해줄 것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 '깨어나시오! 왜 꿈을 꾸고 있습니까? 당신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오시오.' 나는 내가 다른 사람의 꿈의 일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에 항상 주의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매달리고 그가 나를 그의 꿈의 일부로 만들고 있음을 내가 눈치채면, 나는 그를 평상(平常)의 깨어 있는 상태로 돌이킬 장치를 만들어 냅니다. 만약 그가 깨어나지 않는다면, 그 장치는 그가 나를 떠나게 만듧니다. 만약 그가 꿈을 꾸도록 놓아 두고 그가 나에게 매달리도록 놓아 둔다면, 나는 그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해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구도자들이 나에게 매달리도록 만드는 상황을 조성한다면, 나는 그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순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냉엄한 진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실한 스승이라면 제자가 그에게 매달리도록 허용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오히려 그는 제자를 두드리고 흔들어서 깨웁니다.


그런데 사람은 늘 자기를 꿈에서 흔들어 깨우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더구나 그 꿈이 아름다울 때에는 더욱더 싫어하죠.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 되죠. 어떤 꿈을 꾸고 있든지 간에 나는 계속 고함을 질러서 깨워야 합니다. 아름답든 추하든 꿈은 꿈일 뿐입니다. 얼마나 오랫 동안 꿈을 꾸고 있을 것입니까?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나는 어떤 꿈도 제공해 주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당신을 흔들어 깨울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만약 당신이 깨어난다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깨어나지 못한다고 하여도, 마찬가지로 좋습니다.


나는 내가 이해했던 것을 나누어 가집니다. 나는 "내가 깨달았다." 거나 "나는 깨어있다." 거나 "나는 자유롭다."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의 집, 나 자신의 자연스런 공간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곳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나는 당신들 모두에게 이것을 함께 나누자고 초대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그것을 독차지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나 자신만의 즐거움으로 삼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에게도 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나는 어떤 소문도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이해한 것에 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오해한다면, 그것은 그의 문제입니다. 오해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꿈에서 깨어나 나와 함께 웃을 때까지, 그를 계속 두드릴 것입니다. 내가 깨어나는 것이 가능하다면, 당신이 깨어나는 것 역시 왜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존재가 나를 통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깨달음은 점차적 과정이든 갑작스런 깨어남이든 하나의 사건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깨달음은 당신의 자연적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무엇이 이런 자연적 상태일까요? 그것은 꽃이 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의 꽃이 필 때, 그 꽃은 자신의 자연스런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연스런 상태에서 그 꽃의 향기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한 송이의 꽃이 피는 것은, 그 동안에 어떤 시점(時點)에서 꽃이 피고 그리고 향기를 발산하기 시작하는 것을 당신이 관찰하는 그런 점차적인 과정은 아닙니다. 그것은 꽃피고 있는 중이라는 상태입니다. 그것은 꽃이 되어가는 상태입니다.


그 꽃은 꽃피고 있는 상태에 있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꽃피는 것은 가장 높은 꼭대기의 한 점입니다. 이것은 은유를 통하여 나타내어 집니다. 꽃피는 것은 당신이 향기를 발하기 시작하는 가장 높은 꼭대기의 한 점입니다. 그 꽃핌은 바로 인간 의식의 꽃핌입니다. 그때 존재의 향기가 당신을 통하여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 향기는 그 꽃의 향기가 아닙니다. 존재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이 향기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침묵의 공간에서 이 향기는 떠오르기 시작하며, 이 기쁨은 솟아오르기 시작합니다. 존재의 성질인 침묵이 당신 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마음의 모든 놀이는 꿈과 비슷합니다. 당신이 깨어났을 때, 당신은 완전히 이해하고 완전히 알고 모든 것이 분명합니다.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당신이 당신을 속이는 마음과 함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깨어났을 때, 당신은 그 꿈이 더 이상 실제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당신이 깨어나는 순간, 당신이 꿈 속에서 즐겼던 즐거움은 사라집니다. 깨달은 상태는 잠에서 깨어났다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것들은 모두 은유입니다. 그러므로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실제 발생하는 것은, 점진적 과정도 아니고 갑작스런 깨달음도 아닙니다. 자연적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갑작스런 일이 아닙니다. 당신의 자연적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단지 당신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천천히 천천히 당신은 마음의 뿌리를 잘라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떤 한 점에서 당신은 완전한 이해에 도달합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자연의 움직임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당신은 전 존재와 하나가 됩니다.


 나무는 그런 자연의 움직임 속에 있습니다. 새들은 그런 자연의 움직임 속에 있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도 그런 자연의 움직임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당신은 다만 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라는 것입니다. 자유는 당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해한 것이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 마두까르 ] 당신은 어떤 것이 원인이 되어 그 결과로서 깨달음이 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노력도 깨달음을 발생시킬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당신은 우리와 대화를 하고 우리를 데리고 소풍을 나가기도 하는 것입니까?


[ 끼란 ] 나는 다만 당신들이 어떤 노력도 필요 없으며 도달해야 할 어떤 지점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신들을 일깨우려고 애써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들에게 이것을 말하기 위하여는 어떤 방편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법회(法會 satsang)라는 이름의 방편을 만든 것입니다. 당신들이 단지 당신들의 언어만을 이해하기 때문에, 나도 당신들의 언어로 말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모임을 법회(法會 satsang)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나는 법회에서 어떠한 수행(修行)도 행하도록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다만 법회라는 명칭 아래서 당신들을 나에게 오도록 부르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들이 여기에 오면 나는 당신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단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는 나의 깨달음에 당신들도 눈뜨도록 일깨우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들은 단지 모든 것이 마음의 장난일 뿐임을 이해하면 됩니다. 당신들은 깨어나 이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법회라고 불리는 우리의 모임에서 매일 저녁 끝 없이 이 노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출처:www.z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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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혜 | 작성시간 2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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