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念爲宗(무념위종) 無作爲本(무작위본) 眞空爲體(진공위체) 妙有爲用(묘유위용) 夫眞如無念(부진여무념) 非想念而能知(비상념이능지) 實相無生 (실상무생) 豈色心而能見(기색심이능경) 無念念者(무념염자) 卽念眞如(즉념진여) 無生生者(무생생자) 卽生實想(즉생실상) 無住而住(무주이주) 常住涅槃(상주열반) 無行而行(무행이행) 卽超彼岸(즉초피안) 如如不動(여여부동) 動用無窮(동용무궁) 念念無求(염념무구) 求本無念(구본무념) 菩提無得(보리무득) 五眼而了三身(오안이요삼신) 般若無知(반야무지) 運六通而弘四智(운육통이홍사지) 是知(시지) 卽定無定(즉정무정) 卽慧無慧(즉혜무혜) 卽行無行(즉행무행) 性等虛空(성등허공) 體同法界(동체법계) 六度玆圓滿(육도현원만) 道品於是舞虧(도품어시무휴) 是知(시지) 我法體空(아법체공) 有無雙泯(유무쌍민) 心本無作(심본무작) 道常無念(도상무념) 無念無思(무념무사) 無求無得(무구무득) 不彼不此(불피불차) 不去不來(불거불래) 體悟三明(체오삼명) 心通八解(심통팔해) 功成十力(성공십력) 富有七珍(부유칠진) 入不二門(입불이문) 獲一乘理(획일승리) 妙中之妙(묘중지묘) 卽妙法身(즉묘법신) 天中之天(천중지천) 乃金剛慧(내금강혜) 湛然常寂(담연상적) 應用無方(응용무방) 用而常空(용이상공) 空而常用(공이상용) 用而不有(용이불용) 卽是眞空(즉시진공) 空而不無(공이불무) 便成妙有(편성묘유) 妙有卽摩訶般若(묘유즉마하반야) 眞空卽淸淨涅槃(진공즉청정열반) 般若是涅槃之因(반야시열반지인) 涅槃是般若之果(열반시반야지과) 般若無見(반야무견) 能見涅槃(능견열반) 涅槃無生(열반무생) 能生般若(능생반야) 涅槃般若(열반반야) 異名體同(이명체동) 隨義立名(수의입명) 故云法無定相(고운법무정상) 涅槃能生般若(열반능생반야) 卽名眞佛法身(즉명진불법신) 般若能建涅槃(반야능건열반) 故號如來知見(고호여래지견) 知卽知心空寂(지즉지심공적) 見卽見性無生(견즉견성무생) 知見分明(지견분명) 不一不二(불일불이) 故能動寂常妙(고능동적상묘) 理事皆如(이사개여) 如卽處處能通(여즉처처능통) 達卽理事無碍 (달즉이사무애) 六根不染(육근불염) 卽定慧之功(즉정혜지공) 六識不生(육식불생) 卽如如之力(즉여여지력) 心如境謝(심여경사) 境減心空(경감심공) 心境雙亡(심경쌍망) 體用不異(체용불이) | 생각 없음으로 종지를 삼고 지음 없음으로 근본을 삼으며 참된 공으로써 본체가 되고 미묘한 있음으로 작용을 삼는다. 진여라 함은 무념이니 생각으로는 능히 알 수 없고 실상은 생겨남이 없으니 어찌 물든 마음으로 볼 수 있으랴 무념을 생각하는 것이 곧 진여를 생각함이요. 무생이 일어나는 것이 곧 실상이 일어남이다. 머무는 바 없이 머무름이 곧 항상 열반에 머무는 것이고 행함이 없이 행하는 것이 곧 피안을 넘어서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움직이고 작용함은 끝이 없다 생각,생각마다 구함이 없는 가운데 본래부터 있는 무념을 구한다. 보리는 얻을 바 없지만 오안을 맑혀 삼신이 깨치고 반야는 앎이 없으나 육신통을 움직여 네가지 지혜를 넓힌다. 이것을 알라, 정(定)에 즉(卽)하면 정이 없고 비쳐봄에 즉(卽)하면 비쳐봄이 없으며. 행(行)에 즉(卽)하면 행(行)이 없다. 심성(心性)은 허공과 같고 몸은 온 세상과 하나가 되니 육바라밀은 무루익어 원만해지고 깨달음 수준이 이로부터 타락하지 않는다. 이것을 알라. 나와 대상이 한 몸이 되어 空하게 되면 있음과 없음은 함께 없어지며. 마음은 바탕이 되어 지음이 없게 되고 도란 항상 생각 없는 것이다. 망념도 없고 생각도 없으며 구함도 없고 얻음도 없고 저쪽도 아니고 이쪽도 아니니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 본체를 깨달아 세가지가 밝아지고 마음이 열려서 팔계가 풀어지며 공덕으로 열 가지 심력을 이루고 부귀로는 일곱 가지 귀한 보배를 얻는다. 불이문(不二門)으로 들어가서 일승의 이치를 얻음은 미묘함 속의 미묘함이 되니 그 미묘함이 곧 법신이며 하늘 속의 하늘이 되는 것이다. 이에 금강 같은 지혜는 맑은 그대로 항상 고요하며 그 쓰임새는 무한정이니 작용하지만 항상 텅 비어있고 텅 비었지만 항상 작용한다. 작용은 하지만 있는 것이 아니니 바로 이것이 진공(眞空)이요 텅 비었지만 없는 것이 아니니 적절하게 이루어진 묘유(妙有)로다. 묘유가 곧 마하반야요 진공은 곧 청정열반이다. 반야는 이 열반이 원인이요 열반은 이 반야가 결과이다. 반야는 봄이 없으나 능히 열반을 보고 열반은 무생이지만 능히 반야를 일으킨다. 반야와 열반은 이름은 다르나 몸은 한 몸이니 뜻을 따라서 이름을 세웠기에 고로 "법은 일정한 모양이 없다"고 했다. 열반은 반야를 일으킬 수 있으니 즉 참다운 불법의 몸이라고 부르고 반야는 열반을 세워주기 때문에 그러므로 여래의 지견이라고 부른다. 안다는 것은 곧 마음이 공적함을 아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곧 성품이 무생임을 보는 것이다. 앎과 봄이 분명하여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다. 때문에 움직이고 고요함이 항상 미묘하고 이치(본체)와 현상(작용)이 모두 똑 같다. 같다는 것은 즉 모든 곳이 두루 통할 수 있으므로 통달하면 본체와 작용에서 아무런 걸림이 없다. 여섯 감각 기관에 물들지 않음이 바로 선정과 지혜의 공력이요 여섯 의식이 나지 않음이 바로 여여함의 힘이다. 마음이 항상 여여하면 경계는 사라지니 경계가 줄어들면 마음이 텅 비어지고 마음과 경계가 다 같이 없어지면 본체와 작용이 다르지 않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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