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은 <나라는 생각>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마음과 에고는 똑같으며 지성, 기억 등의 정신적 속성도 역시 마음이다.
또한 개체적 영혼이라는 것도 마음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의 본성, 즉 마음을 일으키는 본체를 알 수 있습니까?
여러가지 생각들을 가치에 따라 순서를 매겨볼 때
<나라는 생각>이 가장 중요하며
개체성(개인)에 대한 생각도 다른 모든 생각의 뿌리 내지는 줄기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모든 생각은 <어떤 개인>의 생각으로서 일어나며
에고와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에고가 생각과 행위를 전개시킨다.
2인칭이나 3인칭은 1인칭 없이는 나타나지 않으며
1인칭이 나타난 다음에야 나타나기 때문에,
이들은 결국 같이 나타났다가 같이 사라진다.
그러면 <나>의 궁극정인 원인을 추적해 보자.
어디로부터 이 <나>가 일어나는가?
그것을 내면에서 찾아보면 그것은 사라진다.
이는 현명한 추적 방법이다.
마음이 스스로의 본성을 계속 규명해 들어가면
결국 마음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마음이란 생각의 집합에 불과하며, <나라는 생각>이
모든 생각의 뿌리이기 때문에 마음은 결국 <나라는 생각>일 뿐이다.
<나라는 생각>의 탄생이 곧 한 개인의 탄생이며
<나라는 생각>의 죽음이 그 개인의 죽음이다.
또 <나라는 생각>이 일어난 다음에 육체와의 그릇된 동일시가 시작된다.
<나라는 생각>을 없애라.
<나라는 생각>이 있는 한 고통이 있으며 그것이 없을때 고통도 없다.
<나라는 생각>에 집중하려고 하면 다른 생각들이 일어나서 저를 방해합니다.
그것들이 누구의 생각인지 살펴보라.
그러면 그것들은 사라질 것이다.
그 생각들은 <나라는 생각>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나라는 생각>에 몰두하면 사라져 버린다.
자아탐구를 하는 것도 역시 에고인데,
어떻게 자아탐구를 통하여 에고의 비실제성을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나라는 생각>이 일어나는 근원으로 파고 들어가면
현상적인 에고의 존재는 초월된다.
마음의 속성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진아를 직접 깨닫기 위해서 <나라는 생각>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야만 합니까?
<나라는 생각>은
마음의 다른 속성들과는 달라서 마음의 속성이라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상호간에 본질적인 연관관계가 없는 마음의 다른 속성들과는 달리
<나라는 생각>은 마음의 모든 속성들과 본질적으로,
그리고 똑같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속성들은 <나라는 생각> 없이 존재할 수 없지만,
<나라는 생각>은 다른 속성들 없이도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나라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마음의 다른 속성들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나라는 생각>의 근원을 찾는 것은
단순히 에고의 여러 형태 중 한가지 형태만의 뿌리를 찾는 것이 아니고
<나라는 생각>이 일어나는 근원 그 자체를 찾는 것이다.
진아는 결코 에고에 의존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라는 생각>의 형태를 가진
에고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능적인 면에서 본다는 에고는 유일한 한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에고는 순수한 의식인 진아와 스스로의 지각능력이 없는
수동적인 육체 사이에서 매듭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그대가 <나라는 생각>의 근원을 계속 파고 들어가다 보면
그대는 에고의 본질적인 의식의 측면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진아의 순수한 의식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진아는 마음을 초월해 있다고 하면서
깨달음은 마음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합니다.
예컨데 <마음이 그것을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오직 마음만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라는 식입니다.
이것은 모순이 아닙니까?
<죽은 마음>을 통해서 아트만(진아)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죽은 마음>이란 생각이 없는 마음이요, 내부로 향해진 마음이다.
그때 마음은 마음의 근원을 보며 그 근원(진아)이 된다.
이는 주관이 객관을 지각하는 것과는 다른다.
마음의 본성은 바로 각성, 또는 의식이다.
에고가 마음을 지배할 때는
마음이 생각하고 헤아리고 느끼는 작용을 하지만
에고에 의해서 지배되지 않는 우주적인 마음은
모든 것을 그 안에 포함하며,
순수하게 각성상태만을 유지할 뿐이다.
진아의 지고한 의식 안에서 마음이 사리지게 되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힘과 더불어
나타났던 여러가지 힘들이 완전히 사라지며,
그것들이 자신의 의식속에 나타났던
비실재적인 환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생각과 망각의 작용을 하는 순수하지 못한 마음이
바로 탄생과 죽음의 순환인 윤회이며,
생각과 망각의 작용이 사라진 상태의 진실한 <나>에는
탄생과 죽음의 원인이 되는 <진아에 대한 망각>이 없다.
어떻게 에고를 없앨 수 있습니까?
우선 에고를 찾아보라.
그리고 나서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를 물어보라.
그 질문을 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이 에고이다.
그런 질문은 에고를 키우는 길이지
결코 에고를 없애는 길이 아니다.
그러나 에고를 찾아보면 그대는
에고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그것이 에고를 없애는 길이다.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습니까?
마치 불에서 불꽃이 일어나듯
절대적인 진아로부터 불꽃이 나타나는데
그것을 에고라 한다.
무지한 사람에게 나타난 에고는
나타나는 순간,
자신을 어떤 대상과 동일시 한다.
에고가 대상과 연관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그 연관이 바로 무지이며
그 연관을 파괴하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이다.
대상과 연관지으려는 에고의 습성이 사리지면
에고는 순수한 채로 남으며 근원으로 녹아 들어간다.
육체와의 그릇된 동일시가 바로
<육체가 나>라는 생각이며
우선 이 생각이 사라져야 한다.
순수한 <나>는 두 가지 마음 상태,
또는 두 가지 생각들 사이의 틈에서 체험된다.
에고는 끊임없이 계속 어떤 대상과
연관을 맺으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으며,
에고가 모든 대상 또는 생각과 단절되었을때만
그것의 진정한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형태가 없는 유령같은 에고는
형태와 연관을 맺음으로써 존재하고,
형태와 연관을 맺음으로써 지속되며,
연관맺은 형태들로 인하여 점점 커진다.
또 한 형태와의 연관이 끊어지면
다른 형태와 다시 연관을 맺는데,
찾으려고 하면 도망가 버린다.
에고, 즉 1인칭이
<육체가 나>라는 형태로 존재하는 한
2인칭, 3인칭도 존재하지만,
1인칭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1인칭이 사라지면,
2인칭, 3인칭도 따라서 사라지고,
밝게 빛나는 진아가 드러난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이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의 실 위에 다른 생각들이 꿰어져 있다.
따라서 관심을 내부로 돌려
<이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탐구하게 되면
모든 생각 (<나라는 생각>을 포함한)이 사라지고
진아가 자연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