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다 놓어버려라
가이 핀리 지음/ 김우열 옮김,
당신의 참 모습, 참 자아는
당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생각 속에서
두려움이나 의심에 빠질 수 있지만,
안정이나 참된 행복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걱정은 버리고,
자기 자신이 되세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자신에게 강요하지 말고
조용히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 목소리를 따라가
참 자아가 있는 곳을
알아내십시오.
당신이 이 세상에 온 것이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사실부터
인식하면 됩니다.
당신 자신이 되고,
당신 자신을 기쁘게 하세요.
1. 참된 행복은 애쓰지 않아도 찾아온다.
'놓아버리기'는
잘 익은 열매가 무거워지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듯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나무나 사람, 아니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필요없는 것은
놓아버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나무는 인위적으로
힘을 가할 필요도 없이
열매가 떨어지면
씨앗을 퍼뜨려 번식을 하지요.
나무의 번식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혼자서 해내지 못하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당신은 그저 강하고 영원한
우주의 섭리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쓰라린 감정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후회도,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큰 걱정도,
고뇌하는 마음도
놓아버릴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겁을 내는 이유는
그 사람을 향한
'당신의 생각'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감정은
당신의 것이 아니었고
당신보다 강한 어떤 사람을
향한 것도 아닙니다.
두려움은
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당신의 생각'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두려워하다니,
놀랍지 않나요?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이제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놓아버릴 수 있습니다.
누가 일부러 공포에 매달리겠습니까.
약물이나 알코올에 의존하면
노력하지 않고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제외하면
우리는 자신을
진정 행복하게 만들고 싶을 때마다
어떤 식으로든 '노력'해야 합니다.
(…) 하지만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그 어떤 노력도 '헛된'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만약 이 말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참된 행복은
애쓰지 않아도 온다는
더 멋진 발견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 중요한 것은
'행복이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행복은 무언가의 결과가 아닙니다.
숨쉬기 위해
공기를 찾아다닐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복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에게
행복이 찾아갑니다.
행복은 살면서 발견해야 할
삶의 일부입니다.
갓 구운 빵 냄새를 맡는다고
주린 배가 차지 않듯,
기대감에 들뜬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형태든
행복을 소유할 수 있다는
그릇된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이것은 손으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행복은 압박에서 벗어난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시커면 구름이 사라지고 나면
햇살이 저절로 땅을 비추듯
그렇게 말입니다.
2. 본래면목은 고귀하다.
현재 인식 수준에서 보면
당신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체로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거나
그것 때문에
자신이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참 자아가
어떤 사건에 혼란을 느끼거나
그 때문에 고통 받는 경우는
단 한 가지뿐입니다.
한 마디로
그릇된 정체성 때문에
고통 받을 때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정체성이
형성되는 이유는
자신, 즉 본질적인 자아가
어떤 식으로든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좌우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생각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원인이 됩니다.
인생이
사건에 좌우된다고 믿기에
사건을 통제할 수 없으면
자신 역시
통제하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불어오는 바람은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고
사납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당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구름이 하늘이 아니듯
당신은 당신을
스쳐 가는 것들이 아니다.
3. 자기 파괴에서 벗어나는 법
우리의 삶을 되찾는
반란의 첫걸음은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두지 말고
생각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고를
돌아보는 법을 터득하면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의 생각이
지혜로운지 점검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슬기로운 행동입니다.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면
자신을 점검하지 않은 채
행동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반대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말하기 전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점검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면 백발백중 화가 납니다.
거짓 자아가 써먹는
속임수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곧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 관찰을 통해 우리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휩쓸리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고 이해하게 됩니다.
이 새로운 내적 위치,
주변과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는 위치는 일이
일어나는 과정의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그것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말라."라고
말한 것을 떠올려보면,
지금 언급한 내적 성역이
무엇을 말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깨어나게 되면,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사건이나
거기서 발생하는 결과에
매달리지 않는 의식 수준에서
행동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해서 더 지혜로운 것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자기 관찰이
자신을 바꾸는데
가장 좋은 방법인 이유는,
자기 관찰이라는
새로운 눈만으로도
참다운 자기 인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적으로 자유로워지면
고차원적인 본성에
온전히 따라가게 됩니다.
이 고결한 상태에서
거짓 자아를 놓아버릴 때 오는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이 고차원적인 본성은
높은 곳에 거합니다.
그 본성에 합류하십시오.
그 본성을 따라
내면의 참 고향으로 돌아가십시오.
4. 멋진 신 세상으로
인간의 내면에는
우리가 외부 세상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생각과느낌이라는
광대한 세계가 존재합니다.
이 내면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우리가 인간관계와 사건을
보는 관점에
깊이 관여합니다.
이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내면이 외부를 결정한다는
내용과 연관됩니다.
바꿔 말해서
눈에 보이는 것은
외부의 대상이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내면입니다.
마음이 무겁거나
근심으로 가득할 때를
떠올려 봅시다.
그렇게 느낄 때마다
주변의 모든 일이
어둡게만 보입니다.
하지만 이 때
얻을 수 있는 통찰은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인내심있게 연구해보면,
멋진 신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슬픔이나 기쁨은
우리가 느끼는 것이지,
우리의 특성이 아니다."
느낌은 단지 느낌일 뿐입니다.
느낌은
그것을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상황과 동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실체가 없으니까요.
기분좋게 느낄 때
우리는 그것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기분 좋은 느낌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곧 그 느낌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이런 착각은
한 가지를 제외하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한 가지는
기분좋은 느낌이 희미해질 때,
느낌이란 다 그렇지만,
느낌과 일체되었던 자신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쾌해지고,
그래서 기쁨을 찾아다니는 과정을
반복하게 됩니다.
"마음이 아프거나 고통스러운 건
우리가 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초점을 바꿔서
더 먼 곳에서 바라봐야 한다.
더 넓게 볼 수 있다면
그 한 부분 때문에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된다."
5. 삶의 흐름에 따르라.
"스트레스가 생기는 건
저항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전부죠.
우리가 삶을
힘겨워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밀고 가야 한다는
그릇된 생각,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인생을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 역시
그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현실은
그것이 가야 할 길로
물 흐르듯 흘러갑니다.
우리는 그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일수도 있고,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틀려고
끝없이 몸부림칠 수도 있습니다.
힘이 있어야만
인생이 흘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바꿔 말해서 (트랙트를)
올라탈 수 있는데
왜 밀어야 하나요?"
사실 우리는 인생을
통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생이란 통제해야 할
외부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 모습, 참 자아는
인생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반가이 맞이해야 합니다.
과거가 어떻든 상관없이
매 순간 인생은
새롭고 안전합니다.
인생을
이렇게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을 참 자아에게
맡기는 셈입니다.
삶의 진정한 목적은
자신을 찾는 것입니다.
6. 다시 또 다시 시작되는 삶
우리는 매 순간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그 때가 되면
이미 일어난 일을 피하려는
헛된 바람 때문에
다시 시작하고
싶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뭔가 피하려고 하면
거기에 묶이게 된다고 한 말 기억하나요?
슬픈 상황이나
자신의 나쁜 면에서 달아나기 위해
인생을 다시 시작하려는 것은
무너지는 부두를 피하려고
침몰하는 배에 올라타는 것과 같습니다.
당연히 이것은
다시 시작하는 길이 아니라
침몰하는 길입니다.
하지만
새로 시작할 길은 있습니다.
태양 아래 모든 것이
각기 태어남과
삶과 죽음이 있다고 본다면,
언젠가 다음과 같은 깨침에
도달할 것입니다.
지난 일에서 생기는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저절로 사라져 없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슬픔이 떠나지 않는다면,
거짓 자아가 그것을
놓아버리지 않으려고
저항하기 때문에
슬픔의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물리학자들이 최근에 확인한 바는
종교학자들과 현자들과 신비가들이
예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내용입니다.
'현재 순간은 늘 새롭고,
새로운 것은
늘 바로 지금 일어난다.'
현재는 과거라는 잎을
끝없이 떨어뜨립니다.
새로움은
끝없이 이어지는
새로움 속에서 죽어갑니다.
(…) 인생은 이 과정대로 흘러갑니다.
그저 살아있는 생명체를 보기만 하면
시작하고 또 시작하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삶의 어떤 부분이라도
과거를 떨어뜨리지 못하면
금세 정체되고 말지요.
새로운 물줄기가
샘솟지 않는 샘물은
곧 더럽고 불쾌해집니다.
이 원리가
가장 잘 적용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7. 씨앗이 햇살을 향하듯
영리한 독수리는
어디서 기다려야
강력한 상승기류에
올라 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여
높이 올라갈 힘을 얻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해탈과 연관되는
섭리에 순응해야만
현재의 자아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핵심입니다.
현재 의식수준을
진정으로 바꾸기 위해서
자신을 뛰어넘으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내면세계는
왜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는지
스스로 지적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 내면의 흐느낌을
들어보았습니다.
내면은
"말도 안 돼.",
"뭣 하러 힘들게?",
"너무 힘들어." 하고
끝도 없이 외칩니다.
비판 없이 받아들이면
이 내면의 목소리는
우리를
위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모두 거짓말이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당신 자신과의 싸움에
승리하는 길입니다.
당신은 깨어나겠다고,
놓아버리겠다고,
자신의 참 모습을 알아내겠다고
멈추지 않고 바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세력은
강력하게 저항하면서도
결국 두려움과 절망이라는
보기 흉한 정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추악한 모습은
당신의 친구가 아닙니다.
사실 거짓 자아의 유일한 임무는
당신이 뒷걸음질 치도록
만드는 것뿐입니다.
그러기 위해
강력하지만
거짓인 이 악마는
당신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믿게 만듭니다.
내적 지식을 얻고
그대로 실행하면
이 악의 손아귀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 외에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 힘겨운 시기가 찾아오면
이것을 연습하세요. 명심하세요.
내적 성장이란
두려운 생각과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깨치는 것이 아니라,
늘 깨어있는 상태로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감시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두렵게
만든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결국 자신이
원래 있던 자리인
'무'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그저 진실에 따라
행동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햇빛처럼 승리가 찾아올 것입니다.
8. 놓아버리고 가볍게 살아가기
"저도 이제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온 것이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사실부터 인식하면 됩니다.
자신의 기대도 똑같습니다.
하루하루 자신을
소모하고 갉아먹는 일에
시간을 소모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있는 일이 있습니다.
참 자아는 우리가
한 가지 명령에만
따르면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 명령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고통을 유발하거나,
자신의 신념을
희생해야 하는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다.'"
인생을 당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게 만들기 위해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 많은 짐들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따져보세요,
이제 다 놓아버리고 나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이 되나요?
9. 비밀스러운 자아와 만나라.
비밀의 자아는
선하고 친절하고
지혜롭고 자애로운 것들의 근원으로,
거대한 힘과 고요한 지혜를
쉬지 않고 퍼뜨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 성스러운 본성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 치유력을 받아들여서
그것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해야 합니다.
이해가 되나요?
이것은 비밀의 자아와
만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지식입니다.
비밀의 자아가 주는
영적인 선물을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는 먼저 비밀의 자아가
들어오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장해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수용적인 상태가 되는 첫단계는
우리가 수용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해서,
수용성을 높이려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우리 지성과 마음을 차지하도록
무의식적으로 방치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인생이 제시하는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경쓰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생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인생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그 거대한 부귀가
이미 우리 것이라고
말해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이미 모두 얻었습니다.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내 것'에 매달려야 한다고
잘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과 감정,
자그마한 병에
인생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을 놓아버려야 합니다.
삶이 흘러지나가는 대로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면
자신과 인생이
결국 하나라는 것을
깨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원한 보물의 방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