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達磨:?~528?) 혜가: 불도를 얻고자 하면 어떤 법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요긴하겠습니까? 달마: 오직 이 모든 행을 다 거두어 들이는 것이니 이 법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다. 혜가: 어째서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거두어 들인다 하십니까?" 달마: 마음이란 모든 것(萬法)의 근본이므로 모든 현상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달으면 만 가지 행을 다 갖추는 것이다. 이를테면 여기 큰 나무가 있다고 하자. 그 나무의 가지나 잎이나 열매는 모두 뿌리가 근본이다. 나무를 가꾸는 사람은 뿌리를 북돋을 것이고, 나무를 베고자 하는 사람도 그 뿌리를 베어야 할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마음을 알고 도를 닦으면 많은 공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이룰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수도한다면 부질없이 헛된 공만 들이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음 밖에 따로 구할 도가 있다면 옳지 않은 말이다. 혜가: 어떻게 마음을 관하는 것이 마음을 아는 것이라 하십니까?" 달마: 보살이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행할 때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이 본래 공하여 실체가 없음을 밝게 하며, 또 자기 마음을 쓰는 데 두 가지 차별이 있음을 분명히 본다. 두 가지란 맑은 마음(淨心)과 물든 마음(染心)이다. 맑은 마음이란 번뇌가 없는 진여(眞如)의 마음이요, 물든 마음이란 번뇌가 있는 무명(無明)의 마음이다. 이 두 마음은 본래부터 갖추어 있어 비록 인연 따라 화합하기는 하지만 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맑은 마음은 항상 착한 인연을 즐기고, 물든 마음은 악한 업을 생각한다. 만약 진여의 마음을 깨쳐 그것이 물들거나 때묻지 않는 것인 줄 깨달으면 이 사람은 성인이다. 그는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의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물든 마음을 따라 악한 짓을 하면 온갖 괴로움과 어둠이 몸에 감기고 덮이게 되니 이를 범부라 한다. 범부는 항상 삼계(三界)에 빠져 갖가지 괴로움을 받으니, 그것은 물든 마음으로 말미암아 진여의 마음이 가려졌기 때문이다. 십지경(十地經)에 말하기를 '중생의 몸 가운데 금강석처럼 굳은 불성(佛性)이 있어 해와 같이 밝고 원만하며 광대무변하지만, 오온(五蘊)의 검은 구름에 덮여 마치 항아리 속에 있는 불빛이 밖을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다'하였고, 또 열반경(涅槃經)에 말하기를 '일체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으나 무명에 덮여서 해탈을 얻지 못한다'고 하였다. 불성이란 깨침이다. 스스로 깨치고 깨친 지혜가 밝아 번뇌에서 벗어나면 이것이 곧 해탈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善)은 깨침이 근본임을 알아야 한다. 이 깨침이 근본이 되어 모든 공덕의 나무가 무성하고 열반의 열매가 여문다. 이와 같이 마음을 관하는 것을 마음을 알았다고 한다. 혜가: 진여 불성(眞如佛性)의 모든 공덕은 깨침이 근본이 된다는 것은 알았으나 무명인 마음과 온갖 악은 무엇을 근본으로 삼습니까? 달마: 무명인 마음에는 팔만 사천의 번뇌와 정욕이 있어 악한 것들이 한량없으나 그 모두는 삼독(三毒)이 근본이다. 삼독이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인데, 이 삼독심에는 저절로 모든 악한 것이 갖추어져 있다. 마치 큰 나무가 뿌리는 하나이나 가지는 수없이 많은 것처럼, 삼독의 뿌리는 하나이지만 그 속에 한량없이 많은 악업이 있어 무엇으로 비교할 수도 없다. 이와 같은 삼독은 본체에서는 하나이나 저절로 삼독이 되어 이것이 육근(六根)에 작용하면 육적(六賊)이 된다. 육적은 곧 육식(六識)이다. 육식이 육근을 드나들며 온갖 대상에 탐착심을 일으키므로 악업을 지어 진여를 가리게 된다. 그러므로 육적이라 이름한다. 중생들은 이 삼독과 육적으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생사의 구렁에 빠져 육도(六途)에 윤회하면서 온갖 고통을 받는다. 이를테면 강물이 원래 조그마한 샘물에서 시작하여 끊이지 않고 흐르면 시내를 이루고 마침내는 만경창파를 이루게 되나, 어떤 사람이 그 물줄기의 근원을 끊으면 모든 흐름이 다 쉬게 된다. 이와 같이 해탈을 구하는 사람도 삼독을 돌이켜 삼취정계(三聚淨戒)를 이루고, 육적을 돌이켜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이루면 저절로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혜가: 삼독과 육적이 광대 무변한데 마음만을 보고 어떻게 한없는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달마: 삼계에 태어남은 오로지 마음으로 되는 것이니 만약 마음을 깨달으면 삼계에 있으면서 곧 삼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삼계라는 것은 곧 삼독이다. 탐내는 마음이 욕계(欲界)가 되고, 성내는 마음이 색계(色界)가 되며, 어리석은 마음이 무색계(無色界)가 된다. 삼독심이 갖가지 악을 짓고 맺어 업을 이루고 육도에 윤회하게 되니 이것을 삼계라 한다. 또 삼독이 짓는 무겁고 가벼운 업을 따라 과보를 받는 것도 같지 않아 여섯 곳으로 나뉘게 되니 이것을 육도라 한다. 그러나 악업은 오로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잘 거둬 그릇되고 악한 것을 버리면 삼계와 육도를 윤회하는 괴로움은 저절로 소멸되고,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니 이것을 해탈이라 한다. 혜가: 부처님께서는 삼 아승지겁(阿僧祗劫)을 부지런히 수행하여 불도를 이루었다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오직 삼독을 없애면 곧 해탈이라 하십니까? 달마: 부처님의 말씀은 진실하다. 아승지는 곧 삼독심이다. 아승지는 셀 수 없다는 뜻이다. 마음 가운데에는 항하(恒河)의 모래와 같이 많은 악한 생각이 있고 그 낱낱 생각 가운데 다 일 겁씩 있으니, 삼독의 악한 생각이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으므로 셀 수 없다고 말한다. 범부는 진여의 성품이 삼독에 덮였으니,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악한 생각에서 뛰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해탈이라 할 수 있겠느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심만 제거해 버리면 이것이 곧 삼 아승지겁을 지낸 것이다. 말세 중생이 어리석고 둔하여 부처님의 깊고 묘한 삼 아승지겁이라는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한량없는 겁을 지내야만 성불한다고 알고 있다. 이것이 어찌 말세에 수행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뜻을 잘못 알고 의심을 내어 보리도(菩提道)에서 물러나게 함이 아니겠느냐. - 달마 (관심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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