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한 인간을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소유로부터 질투와 공포와 투쟁이 생겨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
당신이 소유하지 않고,
질투하거나 탐욕하지 않고,
존경심과 자비를 베풀고,
이웃에 대해 연민을 가질 때
당신은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종교적인 사람은..
마음이 소박하며
무엇인가로 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것입니다.
이런 정신의 소유자는 무한한 이해력을 가질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정신에는 아무런 장애도 공포도 없고
또한 어떤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로 되려는'노력은
자기가 불안을 느끼고 있을때만 생기는것입니다.
당신이 내면의 미숙함을 자각하여 도피하지 않고
그것을 완전히 수용해서 그것과 함께 살게될때,
비로소 당신은 놀라운 정적을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이런 정적 안에서만 창조적 인간은 존재하는것입니다.
왜 인간에게는 목적이나 소망을 달성하려는 욕망이 있는 것일까요?
목적을 달성하기도 하고 무엇인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은
확실히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또한 '나'는 불충분하고 공허하며 마음이 빈약하기 때문에
무엇인가 되려고 함으로써 투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
이 '나'의 공허를 충만시키기 위하여 '나'의 생애 전부를 소비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미숙함이나 마음의 빈약함을 알고
그로부터 도피하기 위하여 또는 그것을 충만시키기 위하여 분투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 고독과 공허와 함께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공허함을 그대로 수용했을 때
분투나 노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창조적 상태를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이리하여,
있는 그대로의 것 -- 즉 공허함과 내면의 미숙함 -- 을 이해하고,
그것과 함께 살며, 완전히 그것을 이해했을 때,
창조적인 '참된 실재'와 창조적 이해력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러한 것만이 행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당신이 내면의 미숙함을 자각하여 도피하지 않고
그것을 완전히 수용해서 그것과 함께 살게 될 때,
비로소 당신은 놀라운 정적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정적은 만든다든가, 꾸며내는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것'을 이해함과 동시에 생겨나는 정적입니다.
이런 정적 안에서만 창조적 인간은 존재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자기 자신을 알게 되면 될수록 사물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자기인식에는 끝이 없으며, 목적에 도달하는 일도, 결론에 도달하는 일도 없읍니다.
그것은 끝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배우며 그 속으로 깊이 돌진함으로써 당신은 마음의 평안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강요하는 자기수련에 의해서가 아니고,
자기인식을 통해서 정신이 정적(靜寂)을 찾게 되었을 때,
그 정적과 침묵 속에서 진실한 실재라는 것이 탄생합니다.
또한 그때라야 비로소 무상(無上)의 지복(至福)과 창조적 행위가 생겨납니다.
이와 같은 이해와 경험이 없이 그저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듣거나, 선전활동을 하는 것은 마치 철없는 아이들이 하는 짓과 같은 일이며,
아무 의미도 없는 행위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일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저 창조적인 행복과 두뇌로부터 생긴 것이 아닌 어떤 것을 체험할 수 있게 되면,
그때야말로 우리의 주위의 것과의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서 변혁이라는 것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종교적인 사람은..
마음이 소박하며 무엇인가로
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것입니다.
이런 정신의 소유자는 무한한 이해력을 가질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정신에는 아무런 장애도 공포도 없고
또한 어떤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로 되려는'노력은
자기가 불안을 느끼고 있을때만 생기는것입니다.
당신이 내면의 미숙함을 자각하여 도피하지 않고
그것을 완전히 수용해서 그것과 함께 살게될때,
비로소 당신은 놀라운 정적을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이런 정적 안에서만 창조적 인간은 존재하는것입니다.
-자기로부터의 혁명中에서 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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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로부터의 혁명(1,2,3)
크리슈나무르티
<<책소개>>
우리 나라 명상서적의 효시는 82년 출간된 크리슈나무르티의 <자기로부터의 혁명>이다. 진리는 누군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당신 자신이 찾아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이 책은 제 1부에서 <개인과 사회> <자기 인식> <행위와 관념> <신념> <노력> <모순> <수동적 응시> <욕망> <자기기만> 등 28개 항목에 대해 그 구조와 본질을 해명해 놓았다. 그리고 제 2부에서는 <현재의 위기> <민족주의> <지식> <고독> <고뇌> <전쟁> <증오> <신과 사랑> <기도와 명상> <성(性)> <사랑> <죽음> <진리와 허위> 등 38개 항목의 대화록을 통해 사고는 어떤 기원(起源)을 갖고 있으며, 어떤 작용을 하며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가를 밝혀냈다. 본 서적을 통해서 그는 우리는 여러 가지 하찮은 당파나 계급으로 분열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수한 차별이 있습니다. 이런 사정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세계도처에서 똑같은 것입니다. 기독교가 같은 기독교를 파멸시킨다든가, 아주 사소한 일로 서로 죽이며 국민을 군대로 끌여 들여서 세계는 전쟁의 공포에 싸여있습니다. 따라서, 신념이나 신앙은 인간을 결합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말한다. 기존 신념이나 신앙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크리슈나무르티는 [진리의 열쇠는 자신 안에 있으며, 따라서 자기응시를 통한 자기인식 속에서 만이 시간에 속하지 않은 영원하고 불멸하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설법한다.
최근 시중에는 아포리즘 에세이형태의 가벼운 명상서적들이 범람하고 있다. 읽을 때는 신비적 감미로움 속에서 내면세계를 성찰하지만 읽고 나면 공허하게 느껴지는 책들이다. <자기로부터의 혁명>은 이와는 달리 지성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