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것'이고
'만물'은 나에게 속하기에
나는 사실 아무런 '욕망'도 없다.
나는 열매를 거두기 위해 ,
그저 생각하고 말씀을 선포하기만 하면 된다.
그대는 나의 이데아를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어서 창조된 존재이다.
그 밖에는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다.
영원함 속에서는 시간이나 공간이나 개인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마음의 자궁에서 태어난 생각이
물질의 세상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 뿐이다.
그래서 시간, 공간, 개인성의 환상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생각이나 창조물은 바로 이런 환상 때문에
사유자나 창조자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의식을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개성이라는 환상,
그것은 그렇게도 오랜 세월동안 그대로 하여금 나를,
그대의 영광스러운 신적인 자아를
의식하지 못하도록 그대를 분리시켜 온 것이다.
그대에게 말하노니, 이 모든 가르침들이란
그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과거의 것들일 뿐이다.
이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하고많은 지식들을 옆으로 치워버릴 때가 온 것이다.
모든 가르침, 모든 종교, 모든 권위적인 것들을,
'내가' 개시되어 있다는 다른 '외부적인' 책들이나
심지어는 여기에 적한 '나'의 권위마저도
다 치어 버릴 때가 온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대에게,
그대의 '내면'에서 '나의 현존'을
의식할 것을 촉구해 왔기 때문이다.
'외부'에 그 근원을 대며
권위를 내세우는 모든 가르침과 종교는,
그것이 아무리 고상하고 신성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대에게는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 안에 있는 '나'에게로, 모든 질문에 대한
최종적인 권위자인 '나'에게로 고개를 돌리게 하는
하나의 방편으로서 쓰여질 때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러니, 이미 지나가 버린 종교나
인간적인 지식이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 속에서
도움과 안내를 찾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나'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어디에 가서 찾는단 말인가?
지나간 모든 것은 잊어버리라.
과거의 것은 이미 죽은 것이다.
그런 죽은 것들로
그대 영혼을 짐지울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대가 과거의 것들에 머무르는 꼭 그만큼,
그대는 아직도 과거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것들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언제나 '지금', 영원한 현재 안에서 산다.
그대가 과거의 행위나 경험,
과거의 종교나 가르침에 얽매이는 꼭 그만큼,
그대는 '나'를 가리는 구름을,
그대 영혼의 창 앞에 만들어 놓고 있는 셈이다.
그런 구름들은 그대로 하여금 '나'를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그대가 그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
내면으로 발을 들여 놓을 때까지는,
그래서 '나의 초자아적 의식'의 '빛' 안으로 걸음을 들여 놓기 전까지는.
'나의 초자아적 의식'은 어떠한 경계도 없으며, 만물의 무한한 '실재'를 꿰뚫는다.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해서도 전혀 신경쓸 것이 없다.
최종적인 완성을 목표로 미래를 늘 염두에 두는 사람은
과거에 얽매여있는 것이고, 결코 자유롭게 되지 못할 것이다.
자기 행위의 결과를 먹고 자기 마음을 살찌우는 일을 그만둘 때까지는,
그래서 자신의 유일한 '안내자'인 '나'를 알아보고
모든 책임을 '나'에게 떠넘길 수 있게 되기까지는.
그대는 '나'와 하나인 그대는,
'지금' 완전하다. 언제나 완전했다.
청춘도 늙음도 알지 못하고, 탄생도 죽음도 알지 못한다.
완전한 존재인 그대는, 과거에 그대가 무엇이었든,
미래에 무엇이 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대가 보살펴야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영원한 '지금'뿐이다.
걱정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당장 그대 앞에 있는 문제일 뿐이다.
'나의 이데아'를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완전하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일 뿐이다.
내가 의도적으로 그대를 데려다 놓은 거기 그 자리에서 말이다.
이미 되어버린 일인데, 어찌하여 그 모두를 뒤에 두고 떠나지 않는가?
어찌하여 과거를 질질 끌고 가는가?
어찌하여 그대 몸과 영혼에 짐을 지우는가?
살점이 이미 뽑혀 버린 빈 조개껍질에 불과한 것들을 왜 끌어안고 가는가?
'내가' 그대 안에 있는데, 심지어는
그대가 추구하는 어떠한 것 안에도 '내가' 있는데,
모든 지혜, 모든 권능, 모든 사랑이 오직 '나'에게서만 나오는데,
어찌하여 그대는 지금 '나'에게 오지 않는가?
어찌하여 그대는 '그대'를 통하여
'나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나'에게 준비를 시키지 않는가?
오, 나의 아이여,
그대가 껍데기 같은 인간의 지식과 가르침들 속을 헤매며
바깥에서 구하느라 허비하는 시간과 에너지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내면으로 방향을 돌려 나를 찾는 일에 쓸 수만 있다면,
십분의 일만이라도 그렇게 열심을 부리기만 한다면,
하루 중 한 시간만이라도 '나'에게 온전히 시간을 바쳐,
그대 안에 있는 '나의 현존'을 마음에 그리고 수행할 수 있다면,
그러면 그대에게 약속하리니.
그대는 곧 '나'를 만나게 될 뿐만 아니라,
그대 인간의 마음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지혜와 힘과 원조의 샘물을,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는 샘물을 그대의 것으로 하게 되리라.
그렇다. 그대가 그렇게 "나"를 구하기만 한다면,
그대의 삶속에서
"나"를 "으뜸 가는" 자리 에 놓고,
"나"를 만날 때까지
쉬임 없이 정진하기만 한다면,
"나의 현존"을, "내 사랑의 목소리"를,
그대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그칠 새 없이 말하는
"내 사랑의 목소리"를 의식 할 수 있는 날이 결코 멀진 않으리라.
그대는 "달콤한 하나 됨" 속에서 "나"에게로 오는 법을 배울 것이고,
"나의 의식" 속에서 살게 되리라.
"나의 말씀"이 그대 안에 살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고,
그대가 무엇을 원하든 기적과도 같은 방법으로
다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언제나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이,
처음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 물든 그대의 습관이,
육신을 입고 있다는 제약이, 악의 발톱이,
그대의 의식에 계속해서 흔적을 남기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는 "나의 초자아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일에 길들여지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만물의 "실상"을 볼 수 있게 되리라.
지상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것들의 "실상"을 알게 되리라.
그때, 그대는 경이롭고 새로운 세상을 발을 들여 놓았음 을 깨닫게 되리라.
사람들이 모두 천사 같은 존재로 보일 것이고,
개성을 입은 육신이란 단지 탈 것이요 도구요
의복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리라.
육신이란 '나의 이데아'를
지상에 완전하게 펼치는 데에 필요한
'영혼의' 자질들을 계발하기 위해,
자신들이 창조한 경험과 지상적인 환경을 만나기 위해
임시로 입고 있는 옷일 뿐이다.
그때, 그대의 눈에는
어떠한 그림자도, 어떠한 악도,
어떠한 악마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만물이 빛과 사랑을, 자유를,
행복과 평화를 노래할 것이기에.
그대는 만물 안 에서,
"나"의 속성을 입고 있는 저마다의 개체 안에서,
"나를 " 보게 될 것이기에....
그대는 단지 그대 가슴에서 흘러 나오는
"내 사랑의 빛"으로 밝게 비추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사랑의 빛은, 그대가 바라보는 만물이
"진정한" 의미를 밝게 비추어 보여 주리라.
다시 말하자면, '신의 왕국'은
'만물의 실상' 그 자체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든 것은 단지
이 '실상'의 그림자일 뿐이다.
나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인간의 잘못된 견해와 믿음이
그 그림자를 창조했던 것이다.
들으라!
나는 언제나 모든 것을 다 공급해 주지 않았는가?
내가 적시에 나타나서 도움의 손길을 내뻗어 주는것 이외에,
필요한 다른 무엇이라도 있단 말인가?
사방이 온통 어둠뿐인데도 내가 빛을 가져오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대가 지금 알고 잇는 것들에 비추어,
그 시각으로, 그대의 삶을 돌아보라.
그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을까?
그대는 자신의 '영적인' 눈뜸을, 지상의 다른
보물과 바꿀 수가 있는가?
그대가 지금껏 내내 '내'말을 듣기를 거부하고
저항햇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모든 것을 하지 않았는가?
오, 나의 아이여, 그대는 아직 알아차리지 못햇는가?
돈이나 집이나 의복이나 의식이나
그 모든 소유물들은 단지 부차적인 것들이어서,
그대의 '진정한 생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그대가 '나'를 한쪽으로 치워 놓고는,
그것들을 그렇게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이 진짜처럼 되어 버린 것뿐이란 것을.
세상의 것들을 빼앗기는 것이
'진리'를 배우는 데 보탬이 된다면,
나는 그렇게 되도록 허락한다.
생명에 있어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참자아'라는 것을,
그대가 진실로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으뜸 가는 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허락한다.
진정하고 영원한 행복과 번영이 그대의 것이 될 수 있도록..
나의 아이야, 가까이 오라.
이제 그대에게 건강과 번영과 행복과
하나 됨과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비결을 일러 줄 터인즉.
다음의 말씀 속에는, '위대한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그것을 발견할 기회를 얻은 그대에게 진정 축복 있으라!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그대가 곧 신임을 알라!
'진정한 나'는 그대 안에 있음을 알라.
'나'는 곧 그대임을 알라.
'나'는 곧 그대의 '생명'임을 알라.
이 '생명' 안에는
모든 '지혜', 모든 '사랑'이
다 갖추어져 있음을 알라.
그 모든 것이 '이제'
그대의 전 존재를 통하여
자유롭게 흐르고 있다.
'나'는 모든 물질 안에 있는 '생명'이요, '지성'이요, '힘'이다.
그대 몸의 모든 세포들 안에도 있고,
모든 광물, 식물, 동물의 세포들 안에도 있다.
불이나 물이나 공기 안에도 있다.
태양과 달과 별들 안에도 있다.
'나'는 그대 안에 있는 것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의 의식은
'그대의 의식'과 더불어 '하나'이다.
'만물'은 '나의 의식'이다.
그들 안에 있는 '나의 의식'을 통하여,
그대가 요구하기만 한다면,
그들이 가진 모든 것,
그들의 전 존재가 그대의 것이다.
그들에게 '나의 이름으로' 선포하라.
'나'와 더불어 '하나'인 그대의 '의식'으로 선포하라.
그대 안에 있는 '내 권능의 의식'으로,
그들 안에 있는 '내 지성의의식'으로 선포하라.
이 의식으로, 그대가 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고 선포하라',
그러면, '온 우주'가 그 말에 복종하기 위해 다시 배치되리라.
일어나라!
오 '나'와 하나되려는 뜻을 품은 자여,
이제 그대의'신성한 유산'을 받아들이라!
그대의 '영혼'을 활짝 열어라.
그대의 마음을, 그대의 몸을 활짝 열어라.
그리고 '생명의 내 숨결'로 호흡하라.
깨어라! 일어나서,
그대의 '주인 됨'을 선언하라.
그대의 '참나'를 알라.
그대의 '진정한 힘'을 알라.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그대의 것임을 알라.
'나의 전능한 생명'이 그대를 통하여 흐르고 있음을 알라.
그대의 '그것'을 차지 할 수 있고,
'그것'으로 그대가 원하는 바를 다 지을 수 있다.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건강'으로, '힘'으로, '번영'으로,
'하나 됨'으로, '행복'으로,
'평화'로 나타난다.
그대가 '내게'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준다.
그대가 이 모든 것을 이루었을 때,
천상의 '말씀들'은 그대 영혼 안에 잠재된
'나의 신성한 힘'을 깨울 것이고,
그리하여 그대는 내면에 있는
'권능의 힘'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그 '권능의 힘'은 그대가 '내 안에'사는 그만큼,
'나의 말씀들'이 그대 안에서 사는 그만큼,
그대를 '꿈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풀어 놓아 주리라.
그대의 영혼을 깨어나게 할 것이고,
그대를 깨끗하게 해줄 것이며,
그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주리라.
그리하여 그대를 모든 고통과 괴로움에서 해방시켜 주리라.
그때는 의심이나 의문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그대의 '참자아'인 '내가'
모든 것을 다 공금한다는 것을,
언제나 길을 가리켜
보여 준다는 것을 알 것이기에.
'그대와 나는 하나'임을 알았을 것이기에.
..."내 안의 나"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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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나
(조셉 베너)
<책소재>
'나'는 누구인가?≪내 안의 나≫는
시작부터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책이다.
이 책을 받아 적은 조셉 베너는
1941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거짓된 자아를 벗어 던지고 고요해진 마음으로
하늘의 소리를 받아 적은 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출판된 지 3년 후,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감히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할 수 없어 익명으로 발표했던 것은,
아마도 자신의 유한한 [개체성]에
이 메시지를 가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 [나]라고 표현되는 화자는
다름아닌 우리가 [신]이라 부르는 그 존재이다.
그렇지만 서구의 기독교에서 말하는 [God]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아니라 내 안의 [나],
내 안의 [신성]이 표면 의식의 나에게 진심어린 충고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내 안의 '신성'을 일깨우는 책이 책은 내면의 [참자아]가 보내온 초대장이다.
바깥에서 찾고 구하기에 지친 우리를
더없이 큰 사랑으로 안아 주면서도
우리 영혼의 키를 한껏 키워 주는 [상승]의 책이다.
내 안의 [참자아]가 무엇인지,
행간에서 우리를 멈추게하고,
사색하게 하는 아름다운 책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내가 아니라],
훨씬 더 크고 더 밝은 존재임을 깨우치게 해주는 책이다.
20세기 초반에 씌어지기 시작한 이 책의 메시지가,
[내 안의 참자아]로 위장한 겉껍질의 말이 아니라는 것은,
책 전체를 뚫고 흐르는 진정성에 참여한 독자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더구나 뉴에이지와 신과학적 사고방식에 이미 접어들어 있는 독자라면,
시대를 훨씬 앞질러 갔던 저자의 깊이 있는 통찰력과 예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개성]을 살찌우고
거기에 무언가를 덧붙이고자 애쓰는 노예적인 삶에서 벗어나,
[내 안에 깃든 신성]의 주인이 될 것을,
그리하여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창조자]로서의 위치를
되찾을 것을 촉구하는 이 책 속의 목소리는,
시대를 건너뛰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랑을 받아 왔다.
이 책의 내용을 공부하고 명상하는 스터디 그룹이 만들어져 왔고,
그 흐름은 최근 들어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다.
한 시대가 가면 한 시대가 오지만,
영원한 진리는 그 생명력이 다함이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여겨진다.
이 책은 부피가 두껍지 않으면서도 삶 전체를 궁구하게 하고,
그 지향점을 뚜렷이 가리켜 보이고 있기에,
수많은 독자들이 성경이나 불경처럼
늘 곁에 두고 참고하는 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어떠한 종교에 소속되어 있든,
궁극적인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염원을 지닌 독자라면,
그 모든 교리와 자신의 신앙 체계를 풀어헤쳐 놓고,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볼 것을 권한다.
진정한 종교는 그 어떠한 울타리로도
신성을 가두지는 않을 것이므로.
[인터파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