諸法無行經
제법무행경
文殊師利法王子白佛言:
“世尊!今云何應觀四聖諦?”
문수사리법왕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제 어떻게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관해야 합니까?”
佛告文殊師利:
“若行者,能見一切法,卽是無生性,是名見苦。
若能見一切法,不集不起,是名斷集。
若能見一切法,畢竟滅相,是名證滅。
若能見一切法無所有性,是名修道。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행자가 일체의 법이 곧 무생(無生)의 성품임을 볼 수 있다면 이것을 괴로움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일체의 법이 모이지 않고 일어나지 않음을 볼 수 있다면
이것을 괴로움의 모임을 끊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일체의 법이 필경 적멸한 모습임을 볼 수 있다면
이것을 소멸의 증득이라고 한다.
만약 일체의 법이 존재가 없는 성품임을 볼 수 있다면
이것을 도를 닦는 것이라 한다.
文殊師利!若行者,能如是見四聖諦,是人不作如是分別,是法善是法不善,是法應見、是法應斷、是法應證、
是法應修,所謂苦應見、集應斷、滅應證、道應修。
문수사리야, 만약 행자가 이와 같이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 법은 선하다. 이 법은 선하지 않다. 이 법은 보아야만 한다. 이 법은 끊어야만 한다. 이 법은 증득해야만 한다. 이 법은 닦아야만 한다’는 그와 같은 분별을 하지 않는다.
이른바 괴로움은 보아야 하고, 괴로움의 모임은 끊어야 하며,
괴로움의 소멸은 증득해야 하고, 괴로움을 없애는 도는 닦아야 한다.
所以者何?凡夫所行貪欲、瞋恚、愚癡,行者見是法皆空、無生、無所有、不可分別,但積集虛妄。
무엇 때문인가? 범부의 소행(所行)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행자는 이런 법이 모두 공하고, 무생이며, 무소유이고, 분별할 수 없는 것으로서 그저 허망이 쌓이고 모인 것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爾時,於法無所取無所捨,於三界中心無所㝵,見一切三界畢竟不生,見一切善不善法虛誑不實,如幻如夢如影如響如焰。
이때 법에서 취하는 것이 없고 버리는 것도 없고 삼계(三界)에서 마음이 걸리는 것도 없다. 일체의 삼계는 필경 나지 않는다[不生]고 보며, 모든 선법(善法)과 불선법(不善法)은 허망하고 거짓되며 실답지 않아 허깨비와 같고 꿈과 같고 그림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불꽃과 같다고 본다.
行者見貪欲性卽是涅槃性,瞋恚性卽是涅槃性,
愚癡性卽是涅槃性。
若能見一切法性如是,便於一切衆生之中不起憎愛。
행자는 탐욕의 성품이 곧 열반의 성품이며, 진에의 성품이 곧 열반의 성품이며, 어리석음의 성품이 곧 열반의 성품이라고 본다.
만약 일체법의 성품이 이와 같다고 볼 수 있으면
곧 일체 중생 가운데서 미움과 사랑을 일으키지 않는다.
所以者何?是行者不得是法,若生愛處、若生憎處,安住虛空,心中乃至不見佛、不見法、不見僧,是則不見一切法。
왜냐하면 이 행자는 이런 법을 얻지 않기 때문에 혹 사랑의 세계[處]에 태어나건 혹은 미움의 세계에 태어나건
허공과 같은 마음에 안주(安住)하며, 내지 부처를 보지 않고
법을 보지 않고 승가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일체의 법을 보지 않는 것이다.
若不見一切法,於諸法中則不生疑,
不生疑故則不受一切法,不受一切法故則自寂滅。
만약 일체의 법을 보지 않으면 모든 법에서 의혹을 일으키지 않는다. 의혹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곧 일체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일체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곧 스스로 적멸하다.
喜根菩薩於衆僧前,說是諸偈:
희근보살은 대중 앞에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
貪欲是涅槃(탐욕시열반),
恚癡亦如是(에치역여시),
如此三事中(여차삼사중),
有無量佛道(유무량불도)。
탐욕이 곧 열반이요
성냄과 어리석음도 그와 같나니
이와 같은 세 가지 일 중에
한량없는 불도(佛道)가 있다네.
若有人分別(약유인분별),
貪欲瞋恚癡(탐욕진에치),
是人去佛遠(시인거불원),
譬如天與地(비여천여지)。
만약 어떤 사람 분별하기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 한다면
그 사람 부처님과 멀어지리라
비유컨대 하늘과 땅처럼.
菩提與貪欲(보리여탐욕),
是一而非二(시일이비이),
皆入一法門(개입일법문),
平等無有異(평등무유이)。
보리와 탐욕
그것은 하나이고 둘이 아니니
모두가 하나의 법문에 들어
평등하며 다름이 없다네.
凡夫聞怖畏(범부문포외),
去佛道甚遠(거불도심원),
貪欲不生滅(탐욕불생멸),
不能令心惱(불능령심뇌)。
범부들 듣고 두려워하며
불도(佛道)에서 아득히 멀어지지만
탐욕은 생기지도 멸하지도 않고
마음을 괴롭힐 수도 없다네.
若人有我心(약인유아심),
及有得見者(급유득견자),
是人爲貪欲(시인위탐욕),
將入於地獄(장입어지옥)。
만약 사람이 나라는 마음이 있고
또 보는 자가 있다고 하면
그 사람 곧 탐욕스러운 자이니
장차 지옥에 들어가리라.
貪欲之實性(탐욕지실성),
卽是佛法性(즉시불법성),
佛法之實性(불법지실성),
亦是貪欲性(역시탐욕성)。
탐욕의 참다운 성품이
곧 불법의 성품이며
불법의 참다운 성품이
또한 곧 탐욕의 성품이라네.
是二法一相(시이법일상),
所謂是無相(소위시무상),
若能如是知(약능여시지),
則爲世閒導(즉위세한도)。
이 두 가지 법은 일상(一相)이니
이른바 그것은 무상(無相)이라
만약 이와 같이 알 수 있다면
곧 세간의 도사(導師)가 되리라.
若有人分別(약유인분별),
是持戒毀戒(시지계훼계),
以持戒狂故(이지계광고),
輕蔑於他人(경멸어타인)。
어떤 사람들 분별하기를
이것은 지계이고, 이것은 파계라 하며
지계 때문에 미쳐
다른 사람을 경멸하네.
是人無菩提(시인무보리),
亦無有佛法(역무유불법),
但自安住立(단자안주립),
有所得見中(유소득견중)。
이런 사람에게 보리는 없고
또한 불법도 없나니
그저 자신만 안주하고 세우네
얻음이 있는 견해 가운데.
若住空閑處(약주공한처),
自貴而賤人(자귀이천인),
尚不得生天(상부득생천),
何況於菩提(하황어보리)。
만약 한적한 곳에 머물며
자신은 귀하다며 남들을 천시한다면
하늘에도 태어날 수 없는데
하물며 보리일까.
皆由著空閑(개유저공한),
住於邪見故(주어사견고),
邪見與菩提(사견여보리),
皆等無有異(개등무유이)。
그것이 다 한적함에 집착한 까닭이요
삿된 견해에 머무른 까닭이니
삿된 견해와 보리는
모두 평등하여 다름이 없다네.
但以名字數(단이명자수),
語言故別異(어언고별이),
若人通達此(약인통달차),
則爲近菩提(즉위근보리)。
그저 글자의 수와
언어 때문에 다를 뿐이니
만약 사람이 이것을 통달한다면
곧 보리에 가까워지리라.
分別煩惱垢(분별번뇌구),
卽是著淨見(즉시저정견),
無菩提佛法(무보리불법),
住有得見中(주유득견중)。
번뇌의 때라고 분별하는 것
그것이 곧 깨끗한 견해에 집착함이니
보리도 불법도 없는데
얻음이 있는 견해에 머무는구나.
若貪著佛法(약탐저불법),
是則遠佛法(시즉원불법),
貪無㝵法故(탐무애법고),
則還受苦惱(즉환수고뇌)。
만약 불법에 탐착하면
이는 곧 불법에서 멀어지는 것
탐욕은 걸림이 없는 법이기에
곧 도리어 고뇌(苦惱)를 받는다네.
若人無分別(약인무분별),
貪欲瞋恚癡(탐욕진에치),
入三毒性故(입삼독성고),
則爲見菩提(즉위견보리),
是人近佛道(시인근불도),
疾得無生忍(질득무생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사람이 분별함이 없다면
3독의 성품에 들어가기 때문에
곧 보리를 보게 되리니
이런 사람 불도에 가까워져
무생법인을 빨리 얻으리라.
若見有爲法(약견유위법),
與無爲法異(여무위법이),
是人終不得(시인종부득),
脫於有爲法(탈어유위법)。
만약 유위법(有爲法) 보기를
무위법(無爲法)과 다르다 한다면
그 사람에겐 끝내 있을 수 없으리라
유위법에서 벗어나는 일.
若知二性同(약지이성동),
必爲人中尊(필위인중존),
佛不見菩提(불부견보리),
亦不見佛法(역부견불법),
不著諸法故(불저제법고),
降魔成佛道(강마성불도)。
만약 두 가지 성품이 같음을 알면
반드시 사람 가운데 존귀한 자 되리니
부처님께선 보리를 보지 않고
또 불법(佛法)도 보지 않으시니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신 까닭에
마왕(魔王)를 항복시키고 불도를 이뤘다네.
若欲度衆生(약욕도중생),
勿分別其性(물분별기성),
一切諸衆生(일체제중생),
皆同於涅槃(개동어열반),
若能如是見(약능여시견),
是則得成佛(시즉득성불)。
만약 중생을 제도하려 한다면
그 성품을 분별하지 말라
일체의 모든 중생은
모두 열반에 있어서는 같으니
만약 이와 같이 볼 수 있다면
이것이 곧 성불(成佛)하는 것이니라.
其心不閑寂(기심불한적),
而現閑靜相(이현한정상),
是於天人中(시어천인중),
則爲是大賊(즉위시대적),
是人無菩提(시인무보리),
亦無有佛法(역무유불법)。
그 마음은 한적하지 않으면서
한적한 모습을 겉으로 나타내면
그는 하늘과 사람 중에서
곧 큰 도둑놈이 되리니
이런 사람에게 보리는 없고
또한 불법도 없다네.
若作如是願(약작여시원),
我當得作佛(아당득작불),
如是之凡夫(여시지범부),
無明力所牽(무명력소견)。
만약 다음과 같이 원(願)을 세워
나는 분명 부처가 되리라 한다면
이와 같은 범부는
무명의 힘에 끌리리라.
佛法湛淸淨(불법담청정),
其喩如虛空(기유여허공),
此中無可取(차중무가취),
亦無有可捨(역무유가사)。
불법은 너무도 청정해
그것을 비유하면 허공과 같나니
그 가운데는 취할 것 없고
또한 버릴 것도 없네.
佛不得佛道(불부득불도),
亦不度衆生(역불도중생),
凡夫强分別(범부강분별),
作佛度衆生(작불도중생)。
부처님께선 불도를 얻지 않고
또 중생을 제도하지 않았는데
범부들 억지로 분별한다네
부처가 되어 중생제도 한다고.
是人於佛法(시인어불법),
則爲甚大遠(즉위심대원),
若見衆生苦(약견중생고),
則是受苦者(즉시수고자)。
이런 사람은 불법에서
너무도 멀리 있는 것이니
만약 중생의 괴로움을 본다면
그가 곧 괴로움을 겪는 자이다.
衆生無衆生(중생무중생),
而說有衆生(이설유중생),
住衆生相中(주중생상중),
則無有菩提(죽무유보리)。
중생에게 중생은 없는데
그럼에도 중생이 있다고 설하네.
중생의 모습에 머무르면
곧 보리란 없으리라.
若人見衆生(약인견중생),
是畢竟解脫(시필경해탈),
無有婬恚癡(무유음에치),
知是爲世將(지시위세장)。
만약 어떤 사람 중생 보기를
이것이 필경의 해탈이라 한다면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없으리니
이것을 알면 세간의 장수(將帥)라 하네.
若人見衆生(약인견중생),
不見非衆生(불견비중생),
不得佛法實(불득불법실),
佛同衆生性(불동중생성)。
만약 사람이 중생을 보고
중생이 아닌 것을 보지 않으면
불법의 진실을 얻지 못하리니
부처님은 중생의 성품과 같다네.
若能如是知(약능여시지),
則爲世閒將(즉위세한장),
若人欲成佛(약인욕성불),
莫壞貪欲性(막괴탐욕성)。
만약 이와 같이 알 수 있다면
곧 세간의 장수가 되리니
만약 사람이 성불하고 싶다면
탐욕의 성품을 파괴하지 말라.
貪欲性卽是(탐욕성즉시),
諸佛之功德(제불지공덕),
若人欲發心(약인욕발심),
隨順菩提道(수순보리도)。
탐욕의 성품 곧 그것이
모든 부처님의 공덕이니
만약 사람이 발심하려 한다면
보리의 도에 따라야 하네.
莫自有分別(막자유분별),
心異於菩提(심이어보리),
發心卽菩提(발심즉보리),
知是爲世將(지시위세장)。
제 맘대로 분별하지 말라.
마음이 보리와 다르다고
발심이 곧 보리(菩提)이니
이것을 알면 세간의 장수가 되네.
若說外道惡(약설외도악),
稱佛世中尊(칭불세중존),
是二說非異(시이설비이),
知是爲世將(지시위세장)。
만약 외도는 악(惡)이라 하고
부처님을 세상에서 존귀한 자라 칭찬한다면
이 두 가지 말은 다르지 않나니
이것을 알면 세간의 장수가 되네.
若人求菩提(약인구보리),
是人無菩提(시인무보리),
若見菩提相(약견보리상),
是則遠菩提(시즉원보리)。
만약 사람이 보리를 구한다면
그 사람에게 보리는 없나니
만약 보리의 모습을 본다면
그것은 곧 보리에서 멀어지는 것이라.
菩提非菩提(보리비보리),
佛以及非佛(불이급비불),
若知是一相(약지시일상),
是爲世閒導(시위세한도)。
보리는 보리가 아니며
부처님 역시 부처님이 아니니
만약 이런 일상(一相)을 알면
그를 세간의 도사(導師)라 하네.
若人作是念(약인작시념),
我當度衆生(아당도중생),
卽著衆生相(즉저중생상),
是人無菩提(시인무보리),
亦無有佛法(역무유불법),
住於有見中(주어유견중)。
만약 사람이 생각하기를
나는 중생을 제도하리라 한다면
곧 중생의 모습에 집착하는 것이니
그 사람에게 보리는 없으며
또한 불법도 없나니
있다는 견해에 머무는 것이라네.
貪欲無內外(탐욕무내외),
亦不在諸方(역부재제방),
分別是空法(분별시공법),
凡夫爲所燒(범부위소소),
如幻如焰響(여환여염향),
如夢石女兒(여몽석녀아)。
탐욕은 안에도 바깥에도 없고
어느 곳에도 있지 않거늘
이런 공한 법을 분별하여
범부들 그 불길에 타지만
허깨비와 같고 아지랑이나 메아리와 같으며
꿈과 같고 석녀(石女)의 아이와 같다네.
諸煩惱如是(제번뇌여시),
決定不可得(결정불가득),
不知是空故(불지시공고),
凡夫爲狂惑(범부위광혹),
若求煩惱性(약구번뇌성),
煩惱卽是道(번뇌즉시도)。
모든 번뇌 이와 같아
확고하게 정해진 것 얻을 수 없거늘
이런 공을 모르는 까닭에
범부들 미치고 미혹하지만
만약 번뇌의 성품을 찾아본다면
번뇌가 곧 도(道)라네.
若有人分別(약유인분별),
是道是非道(시도시비도),
是人終不得(시인종부득),
無分別菩提(무분별보리),
凡夫畏佛法(범부외불법),
去佛法甚遠(거불법심원)。
만약 어떤 사람 분별하기를
이것은 도(道)고 이것은 도가 아니라 한다면
그 사람 끝내 얻지 못하리라
분별이 없는 보리를
범부들 불법을 두려워하며
불법에서 아득히 멀어지는구나.
若不疑空法(약불의공법),
是人得菩提(시인득보리),
一切有爲法(일체유위법),
卽是無爲法(즉시무위법),
是數不可得(시수불가득),
無數故無爲(무수고무위)。
만약 공한 법을 의심하지 않으면
그 사람 보리를 얻으리니
일체의 유위법
그것이 곧 무위법이요
그 수(數) 얻을 수 없으며
수가 없기에 무위라네.
若以菩提心(약이보리심),
自高無所畏(자고무소외),
自念當作佛(자념당작불),
是人無菩提(시인무보리),
亦無有佛法(역무유불법),
離菩提寶印(리보리보인)。
만약 보리의 마음으로
스스로 잘난 체하고 두려워하는 것 없으며
부처가 되리라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보리는 없고
또한 불법도 없으리니
보리의 보인(寶印)에서 멀어지리라.
若有但誦經(약유단송경),
憶想作分別(억상작분별),
不深思義趣(불심사의취),
但爲貪名利(단위탐명리)。
만약 그저 경만 독송하고
기억하고 생각해 분별하면서
그 뜻을 깊이 사유하지 않는다면
명예와 이익을 탐하는 것일 뿐이네.
自念當作佛(자념당작불),
必成無有疑(필성무유의),
唯貪於名利(유탐어명리),
讀經住閑靜(독경주한정),
分別少欲行(분별소욕행),
還爲貪心牽(환위탐심견)。
부처가 되리라 스스로 생각하고
반드시 이룰 것을 의심하지 않으며
오직 명예와 이익만 탐하고
한적한 곳에 머물며 독경하면서
욕심이 적은 행이라고 분별하지만
도리어 탐욕스런 마음에 끌려가는 것이라네.
若欲捨遠貪(약욕사원탐),
不得遠於貪(부득원어탐),
若達貪實法(약달탐실법),
是人能離貪(시인능리탐)。
만약 탐욕을 멀리 벗어나려 한다면
탐욕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만약 탐욕의 진실한 법에 통달한다면
그 사람 탐욕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不得法實際(부득법실제),
雖長夜持戒(수장야지계),
得諸無㝵禪(득제무애선),
不入佛法味(불입불법미)。
법의 실제(實際)를 얻을 수 없는데
누가 긴 세월 계(戒)를 지니는가.
모든 걸림없는 선정을 얻는다 해도
불법의 참맛에는 들어가지 못하네.
知法無有性(지법무유성),
不壞一切法(불괴일체법),
不言戒非戒(불언계비계),
得脫有見中(득탈유견중)。
법에 성품이 없음을 알고
일체의 법 무너뜨리지 않으며
계(戒)라고 계(戒)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면
있다는 견해에서 벗어나게 되리라.
以無持戒性(이무지계성),
知於持戒法(지어지계법),
如是知戒相(여시지계상),
終不毀於戒(종불훼어계)。
지계(持戒)의 성품이 없다고
지계의 법을 알며
이와 같이 계(戒)의 모습을 알면
끝내 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리라.
諸佛之法王(제불지법왕),
法藏叵思議(법장파사의),
無量方便力(무량방편력),
引導諸衆生(인도제중생),
以一相法門(이일상법문),
令入寂滅道(령입적멸도)。
모든 부처님은 법왕(法王)
그 법의 창고 헤아릴 수 없나니
한량없는 방편의 힘으로
모든 중생을 인도하시고
일상의 법문으로
적멸의 도에 들게 하시네.
凡夫聞佛說(범부문불설),
無我無有法(무아무유법),
一相自性空(일상자성공),
不信墮深坑(불신타심갱)。
범부들 부처님의 말씀을 듣기를
나[我]도 없고 법(法)도 없으며
일상(一相)으로서 자성이 공하다고 하여도
믿지 않고 깊은 구덩이에 떨어지네.
雖白衣受欲(수백의수욕),
聞是法不畏(문시법불외),
勝於頭陁者(승어두타자),
住在有見中(주재유견중)。
비록 욕락을 누리는 속인이라 할지라도
이 법을 듣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두타행을 하는 자보다 뛰어나리라
있다는 견해에 머물러 있는 그들보다.
現在十方佛(현재시방불),
利益諸世閒(이익제세한),
知法如虛空(지법여허공),
皆以得菩提(개이득보리)。
현재 시방에 계신 부처님
모든 세간을 이롭게 하시니
법이 허공과 같음을 알아
모두들 보리를 얻으셨네.
若有無智者(약유무지자),
樂於分別法(악어분별법),
聞是實法者(문시실법자),
則生疑怖畏(즉생의포외),
是人無量劫(시인무량겁),
備受諸苦分(비수제고분)。
만약 지혜 없는 자로서
분별의 법을 좋아한다면
이 진실한 법을 듣고
곧 의심하며 두려워하리니
그런 사람 한량없는 겁 동안
온갖 괴로움을 골고루 받으리라.